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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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하라리는 거시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정 사건, 인물을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사피엔스'를 통해 현재의 인류가 어떻게 지구의 주인이 되었는지, 그만의 통찰로 보여주었다. '호모데우스'에서는 사피엔스 이후, 인간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들려주었다. 유발하라리의 책을 읽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현실의 삶에서 한 발 물러나 큰 그림을 보게 된다. 이것이 유발하라리의 매력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주제로 얘기를 이끌어 나가면서도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사이에 위치한다. 사피엔스는 '과거'를 돌아보고, 호모데우스는 먼 '미래'를 바라본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현재 사피엔스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룬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호모데우스를 통해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그의 통찰을 완성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현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21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환멸 / 일 / 자유 / 평등 / 공동체 / 문명 / 민족주의 / 종교 / 이민 / 테러리즘 / 전쟁 / 겸손 / 신 / 세속주의 / 무지 / 정의 / 탈진실 / 공상과학 소설 / 교육 / 의미 / 명상) 유발하라리는 21가지 문제를 다시 기술적 도전, 정치적 도전, 절망과 희망, 진실, 회복탄력성의 5가지 분야로 나누어 논의를 전개한다.

1. 기술적 도전
쓸모 없는 인간, 사회와 무관한 인간이 넘쳐나게 될것인가 ? 알고리듬에게 우리의 결정 권한을 넘겨주고 말것인가 ?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을 두 축으로 하는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쓸모없는 존재를 넘어, 사회와 무관한 사람들의 출현이 예상된다.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간을 생물학적 특징에 따른 계층으로 분화시킬 수 있다. 인간의 지능 또는 일부 신체 기능을 강화하는 기술은 조만간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의 첫번째 수혜자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들이 우수한 능력을 갖게된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능력을 공유할 것인가? 특권 계급을 형성하며 더욱 앞서 달려나갈 가능성이 커보인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독재나 알고리듬의 위협은 어떤가? 유발하라리가 책의 첫머리에 기술적 도전을 다룬 이유는 그만큼 시급하고 명확해 보이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를 인간 스스로 해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 정치적 도전
인류는 국가와 민족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그만큼 국가와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사람들에게 만족스러운 환경을 제공했다. 국가와 민족을 기반으로하는 협력을 통해 놀라운 발전을 이뤄왔다. 그런데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협력을 요구한다. 기후 문제가 대표적이다. 기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영향에는 국경이 없다. 사피엔스가 만들어 놓은 생태계 파괴에 우리 모두는 공동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기술적 도전은 또 어떤가? 생명기술과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는 한 국가와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 놓여있는 현대 사회에서 초 국가적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다.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의 윤리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감시와 규제를 통해 통제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3. 절망과 희망
유발하라리는 테러리즘과 전쟁을 절망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테러리즘은 적은 노력으로 수 많은 대중을 공포에 빠뜨릴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테러러리즘은 그 목표를 달성해 온 듯하다. 테러가 발생하면 테러를 당한 국가는 보복할 상대를 찾아내고, 군사행동을 감행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반응이 테러리스트가 노리는 부분이다. 혼란과 공포 그리고 분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대전의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국가간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고 경제는 점점 통합되어 간다. 그럼에도 유발하라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간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겸손과 세속주의가 다뤄진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는 자세와 '진실'과 '연민'을 중심으로 하는 세속주의로 인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4. 진실
우리는 예전보다 진실을 알아내기가 훨씬 어렵다. 유발하라리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촌 세계의 내재적 특징은 인과관계가 고도로 분화하고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진실은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가짜 뉴스도 넘쳐난다. 세뇌, 언론조작 등 거짓을 진실로 믿게하려는 시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진실을 명확히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허구와 진실을 구분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만 한다.

5. 회복 탄력성
우리가 알던 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것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 앞에서 유발하라리는 책을 읽는 독자 개개인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지향점은 우리 모두가 되새겨 볼만하다. "그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인류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장기적이고 최후적인 방법은 교육이 될 것이다. 그래야 이번 세대가 아닌 미래 세대에서라도 더 나은 삶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유발하라리가 제기한 21가지 문제들은 모두가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명료하게 단기적으로 제시되기 어렵다. 하지만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을 위한 큰 진전을 이뤄냈다고 할 수도 있다. 특히, 기술의 도전과 정치적 도전은 시급하게 해결책을 준비해야만 하는 과제들이다. 인류사를 통해 그 어떤 생명체보다 대규모의 협력을 이뤄냈던 사피엔스가 더 큰 규모의 협력을 통해 마주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또한번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며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될것인가? 우리들 각자는 진실을 명확히 구분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면서, 인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는 과제를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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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2019-04-08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숙제하는데 크 도움이 되었습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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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란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에 어머니는 없다. 인간은 부화기에서 태어나며 용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 알파 플러스, 베타, 감마......엡실론. 공장에서 단순한 일을 하기 위한 사람들은 일란성 쌍둥이로 만들어 진다. 100여명의 쌍둥이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용도가 정해진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세뇌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다. 모두가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고통을 모른다. 기분이 우울해 지기 전에 '소마'라는 알약을 복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세상은 늘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외로울 틈이 없다.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 서로를 '공유'하며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다. 육체는 늙지 않는다. 젊음을 유지하다, 60세가 될 쯤 갑자기 숨을 거둔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고 있는 세상이다. 고통이 없고, 만족하며, 외롭지 않다. 생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세상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출판되었다. 1930년대에 상상해본 미래 세상이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거나 낮설지 않다. 오히려 그 상상력이 실제가 될까봐 두려움을 갖게 한다.

저자 올더스 헉슬리는 1984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너드 헉슬리는 작가였으며, 할아버지인 헨리 헉슬리는 진화론을 지지한 생물학자였다. 올더스 헉슬리는 원래 의사를 희망했으나, 학생 시절 찾아온 일시적 실명으로 인해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멋진 신섹계'의 영문 제목은 "Brave New World"인데 이는 세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야기는 완전하게 행복한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버나드 마르크스에게서 시작된다. 버나드는 모든 남성이 한번쯤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구역'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문명화된 세상과 격리된 야만인 구역은 모태를 통해서 아이가 태어나며, 그들 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의식가 유사한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버나드와 레니나는 그곳에서 문명 세계에 살다가 야만인 구역에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린다를 만난다. 린다의 아들 존은 야만인 구역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가 전해준 세익스피어의 책들을 읽으며 문명 세계에 대한 희미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버나드는 린다와 존을 문명세계로 데려오게 된다. 린다는 늙고 망가진 몸으로 문명 세계 사람들을 놀라고 하고, 결국 '소마'를 과다 복용하며 죽어간다. 하지만 아들 존은 문명화된 세계에 회의를 품는다. 고통과 자유가 없이 '행복'으로만 채워진 세상을 부정한다.

야만세계에서 문명세계로 들어온 존은 알약으로 행복을 느끼고, 서로를 공유하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존을 통해 세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에 나오는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비극을 통해 인간 삶을 그려냈던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작가는 비극이 없는 세상의 행복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지향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라고 답한다면 '멋진 신세계'는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진정한 행복'에 관한 논의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일체의 고통과 고독이 없이 육체적 안락함을 얻는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앞으로 자신이 하게될 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뇌에 새기고, 잠시라도 우울감이 찾아올라 치면, '소마'를 복용해서 행복감에 젖어들고 마는 그런 삶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까? "결국 모두가 행복하지 않나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행복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고통과 자유가 없는 행복은 조작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세계의 사람들은 "오 마이 포드!"라고 외친다.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을 잃어버렸다. 신을 알지 못하고, 포드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1908년을 원년으로 하는 포드력을 사용한다. 기술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술은 철저히 필요에 따라 통제되고 활용된다. 이러한 문명세계의 출발점은 9년 전쟁으로 묘사된다. 탄저균을 사용한 최악의 전쟁으로 9년 전쟁이후 인간은 완벽하게 통제된 행복을 선선택하게 되었다.

'멋진 신세계'가 그리고 있는 문명세계는 낯설지 않다. 그동안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다뤘던 어두운 미래와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우리가 이대로 나아간다면, 기술의 발전에 우리의 운명을 맡긴다면 도착점은 '멋진 신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고통속에 태어나고, 육체의 허약함을 경험하며,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이길 포기한 행복은 인간의 행복이 아닌 동물의 행복이라고 올더스 헉슬리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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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플러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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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은 100℃에서 끓는다." 초등학교시절 자연 시간에 배웠던 '사실'이다. 그 뒤로 한번도 물이 100℃에서 끓는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선생님을 포함한 모두가 그렇게 말했고, 모두가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던져준 명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과학자들의 절대 권위를 인정한다. 우리는 왜 '과학'을 믿는걸까? 우리가 지금 과학적 사실이라고 부르는 이론들은 어떻게 발전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졌을까?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학이론은 자주 바뀌는데, 현재 과학자들이 자신있게 주장하는 말도 나중에 변하는 것은 아닌가?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는 친근한 사례를 통해 과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펼쳐 놓았다. ​

이 책의 저자는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교수이다. 장하석 교수는 이론 물리학(양자역학)을 전공하였으나 과학철학 교수가 되었다. 학부(켈리포아니아공대 물리학과)시절, 교수들에게 과학의 기초 원리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하였으나,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해 실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론 물리학자에서 과학철학자로 변신한 직접적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장하석 교수의 가장 유명한 저서로는 "온도계의 철학"이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온도계가 얼마나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만들어 졌는지 밝히고 그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기술한 책이다. 장하석 교수는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철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수상하였다. ​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PART1 과학지식의 본질을 찾아서, PART2 과학철학에 실천적 감각 더하기, PART3 과학지식의 풍성한 창조. 'PART1 과학지식의 본질을 찾아서'는 '과학이 무엇인가'라는 대담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칼 포퍼의 반증주의와 비판적 사고,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정상과학을 소개한다. 칼 포퍼는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특정 패러다임이 자리를 잡으면 그 틀 안에서 과학의 발전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 기존 패러다임을 몰아내면 과학혁명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칼 포퍼는 기존 이론을 반박하는 과정을 통해 과학이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둘의 뜨거운 논쟁은 1960~1970년대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PART1에서는 과학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다루었다. 관측에서 오는 지식의 한계를 밝힌다. 측정이 기존 이론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측정의 이론적재성'을 통해 인간의 측정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말한다. 또한 관측된 사실에서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귀납법의 헛점을 이야기 한다. "과학의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을 통해 과학이 무엇인지 답하고자 한다. ​

PART2. 과학철학에 실천감각 더하기에서는 PART1에서 설명한 과학철학의 내용들을 과학사를 통해서 알기 쉽게 전해준다. '산소'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에 사용되었던 '플로지스톤'의 개념은 산소 이전에 화학적 현상들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플로지스톤이 산소의 개념으로 대체되는 과정, 물이 H2O임을 '정해나가는' 과정, 물이 100℃에서 끓는지 정하는 과정을 통해 과학철학의 실제 사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PART3. 과학지식의 풍성한 창조를 통해서는 저자 장하석 교수가 생각하는 새로운 과학 지식의 창조과정과 바람직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동안 우리가 맹신했던 과학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하게 된다. 아무런 의심없이 믿어왔던 '과학적 사실'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데카르트처럼 끝없는 회의를 저자는 옳다고 보지 않는다. 의심하되 합리적으로 과학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 한다. 그것을 다원주의로 표현하였다. 좀 더 과학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자연을 설명하는 이론이 절대적인 한 가지로 정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둘 이상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여러 이론들이 나름의 발전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과학을 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저자는 결론 짓는다.



어릴적 초등학교에서 '자연'이라는 과목으로 과학을 처음 접하였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아무런 의심없이 '과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과학은 나에게 절대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과학은 미신의 대척점에 있었다. 과학은 합리적이고 위대했다. 현재 인류의 삶은 과학의 토대 위에 지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하석 교수의 책을 읽고나면 과학이 좀 인간다워 진다. 실수가 있고, 논쟁이 있다. 때론 오류가 진리가 되기도 하고, 애매하면 슬쩍 넘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이론들이 언젠가 거짓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된다. 그렇게 과학은 이 책을 통해 더욱 가까워 졌다.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아직 읽지 못했다. 서점에서 들추다 슬며시 내려 놓았다. 이제는 토마스 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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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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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구이는 넓은 땅을 가진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고, 젊은 시절은 방탕하게 보냈다. 심성이 고운 아내 '자전'과 결혼했지만 놀음과 기생에 빠져 지냈다. 아내 자전이 눈물로 도박을 말렸지만, 임신한 아내를 발로 차버린다. 그렇게 많았던 재산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자신이 소유했던 땅을 바라보며 쓰러진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한 후, 놀음으로 날려버린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작농으로 살아간다. 성안의 의사를 찾아갔던 길에 국민당 군대에 강제로 끌려간 푸구이는, 남겨진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 채 하루 하루 목숨을 이어간다.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사랑스런 딸 펑샤는 열병을 앓아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가난으로 딸 펑샤를 다른 집으로 보내지만, 평샤는 일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푸구이는 굶어 죽어도 가족이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아들 유칭은 공산당 간부의 아내를 위한 수혈을 하다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다. 심성이 착한 아내 자전도 불치병에 걸리고, 농아인 딸 펑샤는 결혼을 한다. 평샤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만 아들 쿠건을 낳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연이어 아내 자전이 죽고, 손자 쿠건을 업어 키우던 사위 얼시도 죽고만다. 손자 쿠건과 둘만 남겨진 푸구이는 계속해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손자 쿠건도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푸구이가 준 음식을 먹다가 하늘 나라로 가버린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푸구이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붙여준 늙은 소 '푸구이'와 함께 밭을 갈면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위화의 인생은 화자가 밭을 갈고 있던 노인 푸구이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푸구이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젊은 화자에게 생생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화자는 푸구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푸구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푸구이는 왜 죽지 않고 살아 있을까?"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위화는 '인생'의 서문에서 삶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서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거창한 삶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냥 숙명처럼 이어지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푸구이는 끝없이 아픔을 겪지만, 계속해서 살아간다. 아들 유칭이 피를 너무 많이 뽑아 어이없게 죽었을 때도, 사랑하는 딸 펑샤가 손자 쿠건을 낳다가 죽었을 때도, 손자 쿠건이 황망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계속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죽음을 앞둔 소 '푸구이'와 함께 오늘도 밭을 갈고 있다. 위화는 말하고 있다. 삶의 목적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의 삶에 특별한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이 이뤄지거나 좌절된 후 우리는 삶을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우리가 마지막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살아가는 것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이 오늘을 살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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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개정판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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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제목이 심상치 않다. 표지의 색깔도 강렬하지만 제목만으로 호기심이 자극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책의 제목이 지닐 수 있는 미덕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라면 이 책은 꽤나 성공적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책을 펼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강렬하다.

책을 펼치면 앤드류 와일즈 교수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뉴턴 아이작 연구소에서 증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드라마의 절정부가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것만 같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이 시작되면서 오랜 수학의 역사가 함께 펼쳐진다. 앤드류 와일즈가 증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수학은 어떻게 발전되어 왔으며 천재들이 어떻게 삶을 바쳐 노력했는지 하나 하나 보여준다. 앤드류 와일즈의 증명은 결국 지난 세월을 살았던 수 많은 천재 수학자들의 노력의 바탕 위에 만들어 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이 완결되는 장면을 만나기 위해 독자는 갈증을 품은 채 매력적인 수학자들과 마주하게 된다.



수학에 관한 책이지만 매우 재미있다. 수학이론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론을 만들어내고 증명해내는 수학자들의 열정과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앤드류 와일즈의 증명이 시작되는 장면을 읽기 시작했다면 쉽사리 책을 덮을 수 없다. 수학 이론과 그 증명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등장하는 수학이론은 그것을 증명해내는 한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고단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이다.

X^n + Y^n = Z^n (n 승)
n이 3이상일 때 X, Y, Z를 만족하는 정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책의 제목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매우 간단하다.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게 되는 앤드류 와일즈는 10살 때 처음으로 집근처 도서관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접하고 일생의 목표를 세우게 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누구나 잘 아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서 유래했다. 페르마는 정식으로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취미로 공부한 수학이 그의 뛰어난 천재성으로 빛나게 되었다. 페르마는 고대 수학책인 디오판토스의 '아리스메티카'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 책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이나 증명을 그적여 놓았다. 그 가운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있다.

"경이로운 방법으로 증명하였으나 여백이 부족하여 여기에 적지 않는다. "

페르마의 한 줄의 노트가 350년간 많은 수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페르마는 증명했다고 선언했으나 증명 방법을 남기지 않았다. '나는 알아냈으니 너도 한번 해보라.'고 말하는 페르마의 이야기를 알게된 뛰어난 수학자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350년 동안이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증명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앤드류 와일즈가 완벽한 증명을 시작한 것이었다.

"수학적 증명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이 세상의 어떤 결론보다도 신뢰도가 매우 높은데, 그것은 단계별로 진행되는 완벽한 논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증명은 과학적 해결 방법과 다르다. 과학은 실험을 통해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결론을 유추한다. 따라서 과학적 결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수학은 논리적 결함이 전혀 없는 완벽한 진리를 추구한다. 증명은 어떤 사실이 어떠한 환경, 어떠한 시대에도 변함없는 '진리'임을 밝히는 과정이다. 수학자들의 증명은 이미 증명되어진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마치 견고한 벽돌로 쌓아 올린 성과 같다. 아래를 바치고 있는 어떤 벽돌이 흔드리면 그 위에 쌓인 성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엄밀한 증명'의 과정을 요구한다. 하나의 증명이 발표되면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서 결함이 발견되지 않아야 비로소 증명은 완성된다.

앤드류 와일즈의 증명에 이르기 까지 소개되는 많은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자칫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는 책을 매우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다.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20대에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60대에 남은 한쪽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실명에 대비하여 눈을 감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할 정도로 수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오일러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7년간 수학연구를 계속했으며 이 기간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오로지 생각만으로 수학 문제를 해결했다. 앤드류 와일즈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에는 '다니야마 시무라의 추론'이 하나의 기둥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추론의 창시자인 다니야마 유타카는 시무라 고로와 함께 놀라운 이론을 만들어 냈지만,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유서를 남긴 채 결혼을 앞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다니야마 유타카의 자살은 그의 약혼녀였던 스즈키 미사코가 다니야마의 뒤를 따름으로 더욱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다양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는 앤드류 와일즈의 증명이 결코 그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님을 설명함과 동시에 흥미로운 수학의 역사를 독자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뉴턴 아이작 연구소에서의 발표 후, 앤드류 와일즈의 증명은 본격적으로 수학자들의 검증을 받게 된다. 엄밀한 증명에서는 한치의 논리점 허점도 허용될 수 없었다. 7년간 외부와 단절한 채 오롯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앤드류 와일즈에게 이러한 검증의 시간은 피를 말리는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검증 과정 중에 한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앤드류 와일즈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의 1년의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된다. 자신의 오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압박을 견디며 결국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만다. 그 1년의 시간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어느새 독자도 함께 고통스러워 하고 마음을 졸이게 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으면 많은 수학자를 알게되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평생을 바쳤는지 알게된다. 그리고 왜 그들이 한 줄의 수식을 위해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어 냈는지 이해하게 된다. 앤드류 와일즈는 의심의 여지 없이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앞서 간 뛰어난 수학자들의 삶을 통해 가능했음을 이해할 때 이 책은 바로 읽힌다. 수학은 어렵고, 지루하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흥미롭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의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읽기를 권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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