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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란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상.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에 어머니는 없다. 인간은 부화기에서 태어나며 용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 알파 플러스, 베타, 감마......엡실론. 공장에서 단순한 일을 하기 위한 사람들은 일란성 쌍둥이로 만들어 진다. 100여명의 쌍둥이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용도가 정해진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세뇌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다. 모두가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고통을 모른다. 기분이 우울해 지기 전에 '소마'라는 알약을 복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세상은 늘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외로울 틈이 없다.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 서로를 '공유'하며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긴다. 육체는 늙지 않는다. 젊음을 유지하다, 60세가 될 쯤 갑자기 숨을 거둔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고 있는 세상이다. 고통이 없고, 만족하며, 외롭지 않다. 생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세상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출판되었다. 1930년대에 상상해본 미래 세상이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거나 낮설지 않다. 오히려 그 상상력이 실제가 될까봐 두려움을 갖게 한다.
저자 올더스 헉슬리는 1984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너드 헉슬리는 작가였으며, 할아버지인 헨리 헉슬리는 진화론을 지지한 생물학자였다. 올더스 헉슬리는 원래 의사를 희망했으나, 학생 시절 찾아온 일시적 실명으로 인해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멋진 신섹계'의 영문 제목은 "Brave New World"인데 이는 세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야기는 완전하게 행복한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버나드 마르크스에게서 시작된다. 버나드는 모든 남성이 한번쯤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구역'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문명화된 세상과 격리된 야만인 구역은 모태를 통해서 아이가 태어나며, 그들 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의식가 유사한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버나드와 레니나는 그곳에서 문명 세계에 살다가 야만인 구역에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린다를 만난다. 린다의 아들 존은 야만인 구역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가 전해준 세익스피어의 책들을 읽으며 문명 세계에 대한 희미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버나드는 린다와 존을 문명세계로 데려오게 된다. 린다는 늙고 망가진 몸으로 문명 세계 사람들을 놀라고 하고, 결국 '소마'를 과다 복용하며 죽어간다. 하지만 아들 존은 문명화된 세계에 회의를 품는다. 고통과 자유가 없이 '행복'으로만 채워진 세상을 부정한다.
야만세계에서 문명세계로 들어온 존은 알약으로 행복을 느끼고, 서로를 공유하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존을 통해 세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에 나오는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비극을 통해 인간 삶을 그려냈던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작가는 비극이 없는 세상의 행복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지향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이라고 답한다면 '멋진 신세계'는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진정한 행복'에 관한 논의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일체의 고통과 고독이 없이 육체적 안락함을 얻는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앞으로 자신이 하게될 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뇌에 새기고, 잠시라도 우울감이 찾아올라 치면, '소마'를 복용해서 행복감에 젖어들고 마는 그런 삶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까? "결국 모두가 행복하지 않나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행복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고통과 자유가 없는 행복은 조작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세계의 사람들은 "오 마이 포드!"라고 외친다.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을 잃어버렸다. 신을 알지 못하고, 포드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1908년을 원년으로 하는 포드력을 사용한다. 기술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술은 철저히 필요에 따라 통제되고 활용된다. 이러한 문명세계의 출발점은 9년 전쟁으로 묘사된다. 탄저균을 사용한 최악의 전쟁으로 9년 전쟁이후 인간은 완벽하게 통제된 행복을 선선택하게 되었다.
'멋진 신세계'가 그리고 있는 문명세계는 낯설지 않다. 그동안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다뤘던 어두운 미래와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우리가 이대로 나아간다면, 기술의 발전에 우리의 운명을 맡긴다면 도착점은 '멋진 신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고통속에 태어나고, 육체의 허약함을 경험하며, 자유를 추구한다. 인간이길 포기한 행복은 인간의 행복이 아닌 동물의 행복이라고 올더스 헉슬리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