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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신영복이 20 년여 전과 거의 같은 말과 그림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그림을 싣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의 단편적이고 독단적인 경구체 글이 무한반복되고 있다. 지독한 자기복제이고 자기표절이라고 하면 심한 말일까.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 2>에서의 편지글도 처음의 책만큼 깊은 감동을 주지 못했건만 이 책 <신영복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에서는 위 글에서 더욱 잠언체 문장만 잘라내어 책을 구성하고 있다.
20 년여 전 처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을 때 진한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위 책에서 저자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암담한 무기수의 신분으로 옥 밖의 ‘계수씨’, ‘형수님’, ‘아버님, 어머님’에게 작은 엽서를 통해 수정처럼 맑고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이런 저자에게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그 편지글이 자신의 심정과 생각을 특정인에게 내밀하게 보내는 것이지, 다른 불특정 독자들을 상대로 가식적으로(?) 씌여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저자의 다른 저서들인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 1, 2>(1998)를 읽고는 알지 못할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 책들도 여전히 편지글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달리 편지글의 수신인이 없고 글은 너무 감상적이며 지나친 잠언체, 경구체로 일관하고 있어 머리보다는 가슴을, 생각보다는 실천을 주장하는 저자의 태도와 정작 배치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저자의 책과는 멀어지게 되었다가 2006년 <신영복 함께 읽기>를 구입하여 읽게 되었고 이때 부록으로 저자의 서화로 제작된 그림엽서책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이 책 <신영복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은 지금까지 나온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 2> 및 위 그림엽서책에 있는 그림과 글씨를 싣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 그린 그림이 몇 십점 있다고 하나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내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여졌다고 하는데 그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던 듯싶다. 저자의 글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제 도사님처럼 남들과는 뭔가 다른 고상하고 멋들어진 잠언체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보통의 글, 멋은 없지만 진솔한 글을 써보시는 것은 어떨지 주제넘지만 감히 청해보는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