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
15년전쟁과 일본의 의학의료연구회 엮음, 하세가와 사오리 외 옮김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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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명의 연구회가 간행하는 『15년전쟁과 일본의 의학의료연구회 회지』에서 선정한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 참고로, ‘15년 전쟁’이란 1931년 만주사변에서 시작해 1937년 중일전쟁, 1941~1945년 태평양전 쟁 종전까지의 일본제국군대가 일으킨 전쟁을 말하는 용어

 

이미『731부대와 의사들』(2015년, 건강미디어협동조합) 이라는 뛰어난 책을 읽은바 있지만, 이 책『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는 훨씬 내용이 풍부하고 다방면의 글이 포함되어있어 731부대의 진상을 폭넓게 알 수 있는 책이다.

 

몇몇 글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 자체가 731부대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 자료의 유실을 막기위한 성격의 책이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책 중 흥미로운 부분이 너무도 많지만 그 중 하나를 꼽자면 <세균전부대에 관한 사료와 어느 장교의 최후> 부분이다.


가라사와 도시오(柄沢 十三夫) 군의(軍醫) 소좌는 1911년 나가노현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나 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에서 매우 성실하게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이었다. 1936년 육군군의학교에 입학하였고, 이후 731부대 제4부 세균 제조과장이었던 가라사와는 1945. 9. 1. 봉천(奉天)에서 소련군에 체포되어 하바롭스크로 이송되어 금고 20년에 처해진다.

 

인체실험을 비롯한 731부대 실태에 대해 처음으로 온전히 털어놓은 사람은 가라사와가 유일했다.

 

이후 가족과 연락이 닿아 매달 1회 엽서를 통해 부인과 소식을 주고받던 가라사와는 특별사면으로 귀국하게 되었음에도 귀국 직전 목을 매어 자살한다. 유서도 남기지 않는다.

전쟁범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었는지 아니면 731부대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 한 것에 대한 동료들의 질책이 두려웠던 건지 알 수 없다.

 

평범하고 성실했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가라사와가 군의로서 731 부대의 만행을 저질렀던 것은 왜일까.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어떤 인간도 악마가 아니기에 나는 사형에 반대하며, 전쟁은 어떤 인간이라도 악마로 만들기에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267쪽)

 

 

개론 성격의 <교토대 병리학교실사로 본 731부대의 배경> 중 몇몇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군의학교 방역연구실 개설(1932. 8.)

- 군의학교 내에 세균전 준비를 위해 이시이 시로(石井四郞)를 수반으로 5명의 군의가 배속된 방역연구실이 개설됨

 

◎ 도고부대에서의 인체실험

- 이시이는 하얼빈 남동 약 70km에 펼쳐진 곳에 스스로 도고다로(東鄕太郞)라는 가명으로 극비 세균연구집단인 ‘도고부대(東鄕部隊)’를 조직하여 포로를 이용해 탄저균 접종 등 인체실험을 시행.


- 도고부대는 포로수용소가 아니었지만, 이시이는 만주사변(1931년) 이후 체포한 포로와 정치범을 특이급(特移扱, 특별이송취급)이란 이름으로 인체실험에 사용하는 체계를 확립.


- 당시 부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기아상태로 물만 줬을 때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여부, 고압전류로 감전시키면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청산화합물을 이용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등 여러 인체실험 실시함(도고부대에서만 약 200명의 포로를 인체실험한 것으로 추정).


- 도고부대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이때 이미 731부대의 인체실험 노선이 거의 확립된 시범부대 성격임.

 

◎ 관동군방역부(1936년)

- 비공식이었던 도고부대는 1936년 관동군 소속으로 개편되어 ‘관동군방역부(關東軍防疫部)’로 개칭되어 급성 전염병 방역에 관한 조사연구 및 세균전 준비를 주 목적으로 함

 

◎ 이시이 부대에 공헌한 군의들

- 마스다 도모사다(增田知貞, 1892~1952)

: 1941년 이시이를 이어 군의학교 방역연구실에서 관동군방역급수부의 업무를 지도. ‘이시이 오른팔’

 

- 나이토 료이치 (內藤良一, 1906~1982)

: 독일 및 미국에서 유학 후 귀국하여 군의학교 교관으로 세균전연구를 구상하며 이시이를 지원. 영어에 능통하여 전후 통역으로 미군과의 면죄협상에서 중심 역할. 이후 일본 녹십자를 설립. 혈액제제와 인공혈액 생산과정에서 에이즈와 간염 감염문제 발생하기도 함.

 

- 기타노 마사지 (北野政次, 1894~1986)

: 731 부대 설립시 만주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로 부임하여 관동군 고문을 맡았고, 1942년 제2대 731부대장에 취임.

 

◎ 731부대 요약

- 731부대는 이시이의 개인 발상이 구현된 곳으로 은사였던 기요노 겐지(淸野謙次)가 주장한 민족 우생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육군도 대학관계자도 이시이 시로의 비인도적 실험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 이시이의 주도로 도고부대 초기부터 ‘포로를 사용한 인체실험’이 도입되었고 그 노선은 최고의 기밀준수와 포로의 ‘특이급’, 풍부한 예산, 대학의 보증에 의해 지켜지고 발전했다. 그 후 수많은 세균학자와 대학관계자가 이 계획에 동참했다. 대학은 그 권위와 협력을 통해 대규모로 자행된 ‘포로를 사용한 인체실험’을 정당화 했다.


- 인도적 측면에서 이러한 대규모 인체실험을 (관련 실험자료를 넘겨받는 대가로) 면책한 미국의 전후 처리는 큰 문제가 있다.

 

■ 독일과의 비교

독일의사협회 총회는 2012. 5. 23. 『2012 뉘른베르크 선언』을 통해 전쟁기간 중 시행된 인체실험에 대하여 반성하고 사죄하였다. 황상익 선생의 추천사에 소개된 이 역사적 선언 전문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 인체 실험은 자주 피검자의 사망을 초래했고,‘유전적 질환자’라고 분류된 36만명 이상이 강제적 단종수술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허약하거나 장애가 있는 2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살해된 사실이 밝혀졌다.

...... 대부분의 심각한 인권 침해는 정치조직이나 권력자들이 아니라 의사들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의과대학들과 이름 있는 의학연구기관들의 저명한 학자들의 적극적인 동참, 그리고 의사단체와 전문적인 의학 학회들의 지도급 인사들이 실질적으로 관여한 가운데 벌어진 범죄이다.

 

독일의사협회 총회는 『2012 뉘른베르크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 우리는 나치 치하에서 자행된 의학적 범죄 행위에 대해 의사들의 책임이 막중함을 고백하며, 그러한 범죄 행위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경고라는 사실을 명심한다.

........

 

- 우리는 역사자료들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독일의사협회의 여러 기구를 활용하여 과거의 만행에 대해 지속적인 역사 연구와 재평가를 활발히 벌여나갈 것을 이번 총회 자리를 빌려 천명한다. 󰡓

 


일본은 아직까지 의사들 및 의협에서 전혀 반성도 사과도 없는 상태다. “전쟁이었잖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라며 모든 것을 전쟁 탓으로 돌리고 자기 책임마저도 지우려는 것이 현재 일본의 모습이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는 동시에 우리들 또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희망한다.

 


사족 1.

책의 치명적 단점

이런 책은 자료집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놀랍게 책 뒤에 찾아보기가 없다. 낯선 인명, 지명 등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책임에도 찾아보기가 없다는 것은 편집자의 무능과 불성실함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판을 거듭 찍게 된다면 꼭 찾아보기를 추가하고 일본인 이름에는 괄호안에 한자를 병기하기 바란다.

 

사족 2.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 김효순 저, 서해문집(2020)

- 중국 푸순전범관리소에서 일본 전범들이 어떻게 교화되어 가는지 매우 흥미진진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기구한 인연』 - 김원, 한울(1995)

- 위 김효순 선생의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인데, 푸순전범관리소장으로 재직하며 일본 전범들의 교화에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존경을 받은 조선족 김원의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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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진 2020-08-1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 공동번역자인 최규진입니다. 선생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따끔한 질책도 감사합니다. 선생님 조언 새기고 있다가 이번에 세종도서에 선정되어 새로 인쇄를 들어갈 때 오탈자 수정하고 찾아보기도 넣었습니다.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새로 인쇄한 책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받으실 주소하나만 제 메일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imkilled@hanmail.net 또는 qjchoi@gmail.com 입니다.

응돌 2020-08-1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규진 님!

응돌 2020-08-1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규진 2020-08-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응돌님 덕분에 더 나은 책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