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자리 빌리암 비스팅 시리즈
예른 리르 호르스트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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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린데를 살해한 혐의로 형을 언도받았던 루돌프 하글룬. 17년이 지나 출옥한 그가 억울함을 토로한다. 당시 증거로 채택된 담배는 경찰에 의해 조작된 것이며 사건이 벌어졌던 시각에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증명할 목격자가 있었으나 경찰이 무시했다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언론사가 냄새를 맡았다. 기자인 비네는 다음 날 발간될 기사를 읽고 당시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아버지 비스팅에게 전화를 건다. "내일 조간에 아빠에 대한 기사가 실릴 거에요. 이번에는 아빠가 입방아에 오를 거에요. 기사에서 공격할 사람이 아빠라고요."(p11)

비스팅은 무죄다. 본인뿐만 아니라 당시 휘하에 있던 부하직원 누구도 그런 짓을 벌일 만한 인물은 없다. 처음의 생각은 확고했다. 기사가 떠들어도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아도 내가 떳떴하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오해이고, 그러니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발달한 기술은 담배꽁초에 남은 DNA뿐만 아니라 필터 속 성분까지 분석해 함께 발견된 다른 두 꽁초와는 메이커까지 다르다는 사실을 밝힌다. 범인을 확정짓기 위해, 빠른 사건 해결을 위해, 경찰내부에서 누군가가 부정을 저질렀다. 빼도박도 못할 증거 앞에서 비스팅은 정직 통지서를 받는다. 모범적인 경찰로 성실하게 근무해왔지만 그는 형사로서 미숙했던 17년 전의 자신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리고 경험이 부족할지언정 그 자신이 무능하진 않았다는 믿음도 있다. 압박하는 여론과 상부에 짓눌린 것은 사실이나 죄 없는 남자를 체포해 형을 살게 할만큼 그는 경찰로서 무책임한 적이 없었다. 조작된 증거로 들끓는 여론, 살인범에 대한 의혹, 동료들에 대한 흔들리는 신뢰, 루돌프 하글룬이 출옥하자마자 뒤따른 여학생의 실종, 개를 산책시키다 살해당한 또다른 남자. 별개인 듯 연결되는 사건을 얼개를 찾아야만 한다. 경찰의 옷을 벗고 경찰 밖의 시선으로 17년전의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비스팅과 기자로서의 책무와 비스팅의 딸로서 느낄 수 밖에 없는 갈등을 안고 기자다운 촉으로 비스팅을 돕는 비네. 17년 전 그날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갓 스무살이 된 아름답고 젊고 유능했던 여성 세실리아 린데는 어째서 시체로 발견되어야만 했나? 그리고 오늘, 지금, 여기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경찰대를 졸업해 십수년을 현장에서 뛰었던 형사 출신 작가 예른 리르 호르스트가 쓴 빌리암 비스팅 시리즈의 첫 권이다. 비스팅의 고뇌는 곧 작가 예른 리르 호르스트가 경찰로서 느낀 고뇌의 직접적 표현이리라.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구성하는 걸 넘어서 살인사건과 피해자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좀 더 나은 경찰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각오하는 비스팅이라는 캐릭터가 참 멋지게 표현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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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자리 빌리암 비스팅 시리즈
예른 리르 호르스트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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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비스팅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고 말을 아끼며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것. 그는 자기 감정을 내세우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모는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혼자가 되기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누구나 홀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갈구하고 있었다.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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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길을 잃었어 I LOVE 그림책
조쉬 펑크 지음, 스티비 루이스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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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모로우>에서 해일과 추위를 피해 주인공들이 숨어들었던 곳 기억하시나요?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던 장서들과 방 한켠에 가득가득 쌓여서 화톳불로 타오르던 수천 수만권의 책들! 천국이 도서관 같은 모습일거라던 보르헤스의 말에 꼭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요. 지옥 같은 재난 속에서도 도서관과 책이 주는 낭만으로 영화가 한층 재미있고 따뜻했던 건 분명하거든요. <도서관에서 길을 잃었어>는 영화 속에서 하얗게 얼어붙었던 그곳! 뉴욕공공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입니다.

뉴욕공공도서관에는 수많은 조각, 동상과 화가들의 그림이 있는데요. 밤이 되면 이들은 마법처럼 깨어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고 말을 합니다. 물론 개구진 친구들은 숨박꼭질을 하기도 하고요. 뉴욕공공도서관의 입구를 지키는 사자상 "인내"처럼 도서관의 책을 읽기도 해요. 여느날처럼 밤이 되자마자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버린 "인내"를 쌍둥이 조각상 "용기"가 조용히 기다립니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요? 새벽이 다와가도록 "인내"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해가 뜨기 전에 도서관의 입구에 자리를 잡아야만 하기에 발을 동동 구르던 "용기"는 처음으로 입구를 떠나 도서관 안으로 발을 디딥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도서관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장난기 있어 보이는 작은 조각상을 만나기도 하고요. 로즈메인 열람실도 구석구석 살펴봅니다. 벽을 따라 늘어선 초상화 속의 인물들이 화를 내기에 얼른 자리를 비키기도 했지요. 분수대의 사자 머리 동상을 만나 도서관의 지도도 보게 되었는데요. 아뿔싸! 도대체가 방들이 어찌나 많은지 용기는 아주 깜짝 놀라버렸답니다. 순간 겁이 날 정도로요. 하지만 용기는 인내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들을 떠올립니다. 아기 오리와 달 옷장과 단추의 재미난 이야기들을요. 신이 나서 용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인내의 모습까지도요. 그랬더니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용기가 샘솟지 뭐에요.

용기는 인내를 찾아 도서관의 입구로 되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인내는 새벽이 오도록 도대체 어느 방에서 무얼 하고 있는걸까요? 책을 읽고 나면 함께 책을 읽을 짝꿍이 그리워지고요. 도서관으로 매일매일 모험을 떠나고픈 마음이 생긴답니다. 뉴욕공공도서관이 우리 옆집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 하루종일이라도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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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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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이 악마여서 나를 강간한 게 아니다. 여기서는 그게 강간이 아니니까 강간한 거다. 당숙이 당당한건, 가해자면서 희생자인 척 구는 건, 이 세계에서 아주 당연한 문법인 거다. 여기 사람들은 ‘강간‘이나 ‘성폭행‘ 의의미를 모른다. ‘남자가 꼴리면 그럴 수도 있는 짓만 안다. 돈이 많으면 돈도 많은데 무슨 대수냐, 궁핍하면 불쌍하니까 눈감아주자, 돈이 적당히 있으면 먹고살 만해서 잠깐 딴 생각을...... 그러므로 이곳에서 남자는 언제나그럴 수 있다. p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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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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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마흔한살의 밀크맨, 유부남과 불륜 중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화자 "나"는 이제 겨우 열여덟살,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애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소설 <아이반호>를 읽으며 걷고 있었다. 마치 들어주는 사람이라도 있다는 냥 혼잣말을 하고 손짓발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특이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건 죄가 아니고 그게 불륜할만한 성격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것도 이상한데 "나"의 경우엔 소문을 부채질 하는 계기가 됐다. 충분히 그럴만한 애라는 것이다.

자, 사건의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아이반호>를 읽으며 걷는 "나"의 옆에 차 한 대가 정차한다. "아무개 딸 아무개야, 타, 태워줄게." 허락하는 말도 안했는데 조수석 문을 벌컥 열고 권유하는 남자는 밀크맨이다. 밀크맨이지만 실은 그가 뭣하는 사람인지는 동네 사람들 아무도 모른다. 진짜 밀크맨은 따로 있다. 엄마의 첫사랑, 옆집에 산다. 여느 때라면 아무 생각없이 차에 올라탔을 것이다. 대중교통도 엉망이고 도로에 차가 많지도 않고 무엇보다 좁은 동네니까. 좁기 때문에 그만큼 믿을 수 있고 안전하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나"를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띄운 마흔한살의 남자가 오늘은 왠지 꺼림직하다. 그래서 차를 그냥 보냈다. 밀크맨도 강요는 없다. <아이반호>를 치켜들고 "나"는 계속 걸었다. 그런데 그 소문이 나돈다. 밀크맨과 아무개집 딸 아무개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하는. 처음엔 언니가 달려왔다. 너 행실 바르게 해라! 그런 거 아니라고 짜증을 내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으레히 묻힐 헛소리인 줄 알았다.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는 "나"의 앞에 다시 밀크맨이 나타났을 때 주춤한 건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좁은 동네다. 달릴 수 있을만한데는 여기 공원 밖에 없다. 그렇다해도 기다렸다는듯 자신의 옆에서 달리기 시작하는 밀크맨에게 당황하게 된다. 뭐지? 이 아저씨 왜 이러는 거지? 왜 내 옆에서 뛰는 거지?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마주보고 대화할 여력도 없다. 그냥 나란히 뛴다. 그런 두 남녀를, 소문의 유부남과 어린애가 나란히 달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밀크맨이 쫓아오지 못할만큼 박차고 가하고 싶은 충동 반,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 웃어른을 앞서 나가도 괜찮을지 걱정하는 마음 반. 고민이 고민을 낳는 사이 달리기가 끝나고 밀크맨은 사라졌지만 소문은 화톳불처럼 끓어오른다. 이번엔 엄마가 달려왔다. 내가 널 이렇게 키운 줄 몰랐다. 너 반드시 후회할거다. 아니라고 하는데 엄마도 언니도 믿지 않는다. 또래의 남자친구가 있다고 밝히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 대신에 엄마의 결혼 닦달에 시달리다 정신 차려보면 웨등드레스를 입고 있겠지. 그런 시대다. 열여덟도 조금 있으면 노처녀가 된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 밀크맨은 계속해 "나"의 앞에 나타난다. 밀크맨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나"의 얼굴도 보지 않고 허공을 응시한다. "나"에게 건내는 몇 안되는 짧은 말도 겉만 보면 멀쩡하다. 그러나 그 아래 도사린 상징이 자꾸만 "나"를 옥죈다. 이것은 희롱인가 아닌가? 언어적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요 물리적 폭행은 더더욱 없다. 가족과 이웃 드디어 연인까지도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데 이러한 상황을 "나"는 누구에게 고발해야 할까? 정신적 파탄을 "나"는 고발할 수 있기나 할까? 따져 묻고 싶은데 "나"는 어쩐지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고 변명하고 싶은데 생각할수록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다. 무기력에 빠진다. 밀크맨이 다시 차를 몰고 다가온다. 조수석 문을 벌컥 열고 다시 한번. "아무개 딸 아무개야. 타, 태워줄게."

위협을 받는데 위법적이지 않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이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보니 마치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되어버린다. 그가 때렸어? 아니. 내내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했어? 아니. 번호를 알아내서 집으로 밤낮 전화를 한다거나. 아니. 집 앞에서 몰래 기다리고 있다거나? 아니. 그럼 그냥 옆에 와서 잠깐 서있거나 말 좀 시킨게 다라는거네? 응. 너 피해망상 아니야? ......... 사건의 끝에 입을 다물어 버리는 피해자를 나는 이 책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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