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니 트윌과 종이 심장 시어니 트윌과 마법 시리즈 1
찰리 N. 홈버그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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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몇 페이지를 읽고는 "속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법학교라고 해서 아주 어린 소녀가 주인공인 성장소설이라고 상상했거든요. 헤르미온느나 타라 덩컨, 네버무어의 모리건 크로우 같은 녀석들처럼요. 알고 보니 영국의 마법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한 19세 시어니 트윌이 30세 종이 마법사 에머리 세인의 견습생으로 지정받아 함께 살면서 마법을 익히고 악당과 대적하며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였더라구요. 깜빡 속았다는 마음이 실망이다로 변질되면 어쩌나 아주 걱정을 했는데요. 기우였습니다. 디즈니 플러스 영화화 확정, 청소년을 위한 최고의 판타지 소설 후보로 괜히 오른 게 아니었어요. 속도감 있는 전개, 친숙하지만 언제 만나도 설레는 소녀소녀한 소재, 독특한 구성, 환상적인 마법의 조건을 두루 갖춘 멋진 책이었어요.

 

일주일에 주말이라고는 단 하루.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공부에만 매진했던 지난 5년 여의 삶을 지나 최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는 시어니에겐 금속 마법사로서의 꿈이 있었습니다. 빵빵하게 돈 벌어서 가난한 집안도 먹여 살리고 번듯하게 살아보리라 청사진을 그렸죠. 그러나 어쩐 일인지 원치 않았던, 약하고 돈 못벌기로 소문난 종이 마법사의 견습생으로 떡 하니 배정을 받고 맙니다. 종이 마법사 수가 넘 적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데 아무리 장학생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시어니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이제와 마법사를 포기하고 요리사의 길로 전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시어니는 짐을 꾸려 런던 외곽에 있다는 종이 마법사의 집을 방문합니다. 악마의 왕관 같은 탑과 부스러져 흘러내리는 페인트 더께, 구멍이 나있는 지붕 위에서 울고 있는 까마귀를 보고 있자니 망했다!!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아요. 게다가 손님을 마중 나온 것은 종이로 만든 해골 집사!!! 으시시시시. 시어니의 눈에는 종이 마법을 이딴 식으로밖에 쓰지 못하는 마법사 세인이 아주 미친 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세인은 시어니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 후견인이었고요. 가르침에 매우 너그러운 관대한 스승이었습니다. 다 큰 성인남녀가 감시하는 이 하나 없는 외딴 집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쭈욱 함께 지내는데 눈이 안맞으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닌가요? 설령 그 놈이 아니 그 남자 세인이 이미 한 차례 결혼을 했었고 전부인이 사람을 밥 먹듯 도륙하는 금지된 마법을 쓰는 신체 마법사라 할지라도 말이죠. 전남편의 심장은 내꺼! 라고 주장하는 미친 전부인에게 가슴을 뜯긴 세인을 위해 시어니는 종이심장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법을 부려도 종이는 종이. 단 하루뿐인 종이심장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세인의 심장을 찾기 위해 시어니는 총알이 하나 밖에 들어 있지 않은 권총 하나 짊어지고 모험을 떠나요. 이 와중에도 종이마법을 믿지 못하는 시어니, 훌륭해 ㅋㅋㅋㅋ

 

"마치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알아온 것 같아요. 남자의 심장 속을 걸어본 적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전 당신의 심장 속을 걸어봤어요. 에머리 세인.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준 이 개도 참 마음에 들어요."(p347)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구요? 걱정마십쇼. 종이마법 강아지는 짖고 까불고 방방 뛰기는 해도 개털을 날리지는 않습니다. 집에 에어컨이 없으시다구요? 걱정마십쇼. 종이 마법사가 접은 부채는 성인 여성을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바람을 쉴새없이 쏘아보냅니다. 강도를 만날까봐 겁나신다구요? 이런이런. 종이 방패를 하나 만들어 드려야겠군요. 유치원에서 만드는 종이 목걸이 아시죠? 종이 마법사들은 그걸 사슬이라고 부르는데 마법의 힘만 있으면 총알도 날아와도 내 몸은 안전! 기타등등 종이 마법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어니와 세인을 통해 만나보십셔. 그 김에 벚꽃 흘날리는 봄에 어울릴만한 로맨스도 함께 맛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 무척 재미있습니다. 판타지 로맨스, 성장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님들이라면 백퍼 마음에 들거라고 장담합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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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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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이사카월드에 입성한 신간이다. 후가는 유가. 제목 독특, 표지 예쁨, 기존 월드와 통일성 유지, 현문 잘했어! 쓰담쓰담! 궁디 팡팡해! 이사카씨의 작품은 작가를 무명씨로 출간해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이 작가가 거주 중인 센다이시를 배경으로 한다는건데 소설 제목이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일 때조차도 주무대는 화성이 아닌 센다이였다 ㅎㅎ 이번에도 그곳 센다이에 사는 매우 희소한 재능을 지닌 쌍둥이 형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이 불행하고 하루하루가 절망스럽지만 둘이 함께라 으쌰으쌰 할 수 있는 짠하지만 재미난 녀석들이다.

 

시작은 성년이 된 유가와 한 방송국 피디의 만남이다. 신기한 동영상을 확보했다, 편집되거나 조작한 흔적이 없는데 변기에 앉아있는 네 모습이 순식간에 바뀐다, 이건 틀림없이 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거냐. 피디 다카스기가 추궁한다. 처음엔 사생활 침해라는 둥 내가 아니라는 둥 아까도 이 모습이었다는 둥 변명하지만 만만치 않은 피디의 조목조목한 반박에 유가는 결국 실토를 한다. 후가와 유가, 우리 쌍둥이로 말할 것 같으면 일 년에 딱 하루인 생일날에 공간이동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다카스기가 이를 믿을리 없다. 너무 엉터리 같은 이야기니까. 유가는 다카스기를 설득해 방송에 출연할 요량으로 어릴 적부터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잊을 수 없는 소년기.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방임, 가정을 벗어나 마주치는 또다른 학대가정과 학대를 방치하는 사회 속 아이들과의 만남, 그 모든 환경 속에서도 대나무처럼 성장했던 그간의 일들이 하나둘 펼쳐진다.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함께라는 것이 너무나 필요해서 언제나 꼭 붙어있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애달픈데 쌍둥이의 남다른 재능과 성격만큼은 부럽기도 하고. 하여튼 이사카씨의 주인공들 아니랄까봐 매력이 넘친다.

 

누가 봐도 이사카 코타로 작품이다 싶은 그런 소설이다. 쌍둥이, 생일에 공간 이동을 하는 초능력, 순둥순둥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최고로 협력하는 녀석 하나 성격이 억센 듯 엉뚱한 듯 말썽쟁이면서도 정의로운 녀석 하나가 나쁜 놈들 무찌르고 다니는 이야기?? 말미엔 살짝 알쏭달쏭?? 담백하고 소박한 감동과 웃음이 소복소복 쌓인다. 전작들의 특징이 알알이 박혀있는데 작품이 성장했다고는 말 못해도 장점은 안빼먹고 다 챙긴 책이다. 이사카씨 스스로도 중력 삐에로(이 책은 매우 좋았고♡)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이 책은 살짝만 좋았고 ㅋㅋ)의 감성을 소중히 해 그때의 감성으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니 두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필히 좋을 것이요 나처럼 한 권만 좋았던 독자도 맘에 들거다. 이사카씨의 낭만이 쭉쭉 뻗어 매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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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화훼영모화
장지성 지음 / 안그라픽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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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영묘화는 동물과 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아우르는 통칭입니다. 한국의 화훼영모화에는 꽃, 새, 곤충, 풀, 동물에 대한 고대 예술의 흔적부터 시작해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는 기록들이 담겨있는대요. 우리의 옛 정취를 감상하는 재미를 느끼려고 선택한 책인데 이거이거 읽는 재미도 못지 않게 쏠쏠한 책이었어요.

 

선덕여왕의 모란도 얘기 다들 아시죠? 당 태종이 진평왕 때 모란도와 꽃씨를 보냈는데 공주 덕만이 그림을 보고 이 꽃에는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겠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꽃씨를 심어 꽃을 피우고 보니 아무 향도 없어서 덕만 공주의 총명함을 칭송하게 되더라는 고사인데요. 놀라운 사실은 미술사학자들은 이 일화에서 덕만공주의 명민함에 집중하지 않고 모란도의 존재에 환호한다는 거에요. 중국의 화훼영모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사실을 최초로 언급한 기록이라나요? 어느 위치에서 연구하느냐에 따라 같은 기록도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이 시작부터 흥미를 더했습니다.

 

사임당 신씨편을 읽으면서는 새로운 단어들도 습득했어요. 아들잡이: 아들이 없는 집에서 딸이 아들 노릇을 하는 풍습을 이르는대요. 재능도 출중했지만 결혼 후에도 친정의 아들잡이로 강릉에 머물렀던 배경이 사임당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구요. 또 사임당 작품에는 전칭작과 위작이 많은데요. 위작은 다들 아실테고 전칭작은 그 사람이 그렸으리라 추측은 하지만 실제로는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작품을 이르구요. 전작은 화가 본인이 그린 게 확실한 작품을 말하는가 봐요. 사임당의 그림들은 조선 초기와 중기의 화풍이 섞여 분석이 어렵고 사임당의 작품이라 하면 가치가 높아지다보니 출처가 불명확한 그림도 사임당의 것으로 둔갑시킨 경우가 많아 학자들이 골머리를 썩는다고 합니다. 이 책에도 많은 작품이 실려있었는데 대다수 그림에 가로 열고 전이라고 쓰여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작품이 전칭작이고 어느 것도 확실하게 전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하니 두 번 세 번 놀라며 읽게 됐어요.

 

아차. 신사임당에 앞서 등장한 화가 이암 얘기를 먼저 했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이 책의 표지도 그렇고 종종 강아지들이 등장하는 조선의 그림들을 볼 때가 있잖아요. 그 그림들 중에서 강아지들 세 마리가 등장하는 작품이 보이면 무릎을 치며 아는 척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건 틀림없이 이암 선생의 작품이겠구나! 큰소리로 외쳐도 망신 당할 일은 별로 없지 싶습니다. 이암의 개 그림에는 필수적으로 강아지 세 마리가 놀고 있고요. 그 밖으로 나무나 새, 어미 개 등이 분포해 있다고 해요. 강아지를 그린 작품들이 많지 않고 더하여 꼬박꼬박 세 마리 강아지를 그린 작품은 더 드무니까 이암의 작품은 앞으로 못알아 보기가 힘들 것 같아요. 실제로도 애견인으로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셨을까 추측하며 이암 편은 귀엽게 마무으리~

 

작품을 보는 재미는 조선 후기로 넘어갈수로 커지는데요. 그림을 뜻을 전하는 도구처럼 여기던 세태가 변화하며 순수한 감동, 교감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화훼영묘화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군자 그림 싫었는데 으음 넘 가르치려 해서 그런거였구나 싶었습니다. 신영복의 화훼영모화는 예상 밖으로 아무 느낌도 없... 죄송합니다. 김홍도의 고양이 그림은 언제나처럼 좋았구요. 첫만남에도 마음에 쏙 든 작품은 변상벽의 죽수쌍작 참새 그림이었습니다. 새가 진짜 나무인 줄 알고 앉으려고 했다는 일화의 그림을 보고는 그 시절 새들은 눈이 좀 삐었나 싶었는데 여기 참새들은 진짜 참새들이 친구야 하고 날아왔겠다 싶을만치 생생하더라구요. 치열한 관찰이 바탕이 된 윤두서의 말 그림도 좋았구요.

 

그릇에 담긴 채소랑 과일 같은 먹을 것에 관한 그림을 소과도라고 하는데 많이 없다 정도가 아니라 실려있는 작품이 단 두 점 뿐입니다. 그것도 조선 후기 윤두서의 소과도 두 점. 조선 초기나 그 이전 시대 그림들은 없냐구요? 예, 없습니다. 조선 초기 강희안 등이 소과도를 그렸다는 기록은 있는데 후대까지 전해진 작품이 전무하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좀체 남아있는 화훼영모화가 없어서 도자기에 새겨진 것을 따로 떼어 채색한 그림을 실어놨을 정도구요. 이 그림들로 그 시절 화훼영묘화는 어떠했을거라고 추측하는게 흥미롭기도 했지만 실제 그림으로 봤으면 더 좋았을 거에요. 비교 대상으로 올라온 중국 화가의 작품이 취향이었던 경우도 있는데 이를테면 강세황 작품 같은 거요. 색감이나 꽃잎 모양이 더 화려하고 섬세해서 저절로 눈이 가더라구요. 그래도 우리 것은 소중하니까 애정을 가지고 감상하려고 노력했어요.

 

너무 서양 그림책들만 봐온 것 같아 한국의 화훼영모화를 선택해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나서 엄청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혹 책 가격이 비싸서 부담스러우시다면 (38,000원!!) 도서관 희망도서로라도 꼬옥 신청해서 만나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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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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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받으면 까암짝 놀라요. 822 페이지!! 책 정보로 쪽수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목격하는 상상초월 두께에 심장이 두근두근. 제목이 신들의 봉우리라고 책 높이마저 에베레스트를 따라가나요? 어떻게 된 책이 쉬지 않고 읽어도 페이지가 줄지를 않고 지쳐서 잠깐 휴식했다 잡으면 페이지가 자가증식해 있습니다. 절반쯤 읽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숨 돌리는데 겨우 3백을 넘겼을 뿐이란 걸 알게 됐을 때의 아득함이란. 인간적으로 이 두께는 독자에 대한 범죄 아닙니까? 야이 시간 도둑놈아! 그래도 재밌으니까 용서할게요.

 

책은 1924년 6월 8일 에베레스트 등정에 지질조사원으로 참여한 오델의 목격담으로 시작합니다. 영국인 맬러리와 어빈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으리라 예상되던 오후. 오델은 쨍하게 맑아진 하늘 아래 능선을 따라 최고봉으로 전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등정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은 상태로 오델은 베이스캠프로 내려왔지만 어쩐 일인지 맬러리와 어빈은 돌아오지 않고 그들의 성공 여부는 에베레스트만이 답을 아는 미스터리로 남겨지게 되요. 처음엔 맬러리의 미스터리를 쫓는 산악 추리물 내지는 재능이 없어 산을 포기한 젊은 산악인의 성장기인가 했습니다.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실패하고 하산한 카메라맨 후카마치 마코토가 맬러리의 것으로 추측되는 코닥 카메라를 발견해 그 카메라의 출처를 찾아나서거든요. 마흔에 가까운 나이, 산을 쫓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일상, 연인의 변심, 이런저런 현실에 압박받은 후카마치가 너절한 삶에 대한 도피로 선택한 것이 에베레스트였고 등정에 실패한 후에도 카트만두를 떠나지 않길래 잘못된 추측을 한 거였어요. 또한 마흔쯤이면 이미 노장 취급을 받고 은퇴한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착각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산악인이라고는 무릎팍 도사에 나온 엄홍길 대장님밖에 몰라서 다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산을 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ㅠㅠ

 

예상 밖의 전개 속에 등장한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일본의 천재적인 산악인이자 이제는 잊힌 한 남자 하부 조지였습니다. 표고 8000 미터 아래에서 어쩌면 맬러리의 카메라를 처음으로 발견했을 남자, 홀로 에베레스트 정상 또는 근방을 밟은 것으로 추측되는 남자, 산과 지상에서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살아오다 잠적해 버린 하부 조지의 일생을 그가 처음으로 들어간 산악 동호회 임원과 그의 직장 동료와 그의 연인과 라이벌이 남긴 기록으로 파헤쳐가며 후카마치는 점점 하부 조지에 매료됩니다. 산이 좋아서 또한 거기 산이 있어서 산을 타는 게 아니라 내가 여기 있어서 산을 타는 것 말고는 잘할 수 있는게 없어서 산을 탄다는 남자의 선택.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산에 대한 열망과 집념 외에는 삶에 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남자의 발악 같은 열망과 산에 대한 처절한 사투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만큼 절박한 구석이 있습니다. 맬러리의 카메라, 료코의 납치, 구르카 용병 대장 등 이야기는 여러 겹의 사건으로 구성되지만 실상 이 책은 하부 조지의 산에 대한 의지가 그를 정상까지 오르고 또 오르게 하는 이야기랄 수 있습니다. 하부 조지의 괴팍하고 어린애 같고 자기 중심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수행자처럼 정진정명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쩐 일인지 마음이 한껏 정화되며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후카마치가 카메라의 눈으로 정상의 능선에 매달린 하부 조지를 찾아 해맬 때는 맬러리와 오델의 첫장면이 떠올라 대성통곡까지 했어요. 엉엉ㅠㅠ

 

목숨 걸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를 못했어요. 지금도 다 이해 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에베레스트는 위험해요. 책으로 간접 경험했을 뿐이지만 아마 저 같은 사람은 에베레스트의 절반만 올라도 숨 한번 잘못 쉬어 골로 갈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위험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하부 조지는, 또 많은 산악인들은 산으로 떠납니다. 뉴스에서 이런 모험가들의 얘기를 들으면 무모하다, 어리석다, 가족 생각은 안하는가봐 쯧쯧 혀를 차고는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도저히요. 산에 대한 간절함, 혼이 다 닳듯이 오르고 내리는 의지 앞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페이지였는지 쪽수를 찾을 수 없어 옮겨쓰지는 못했지만 인간에게는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가 아닌 것 같아 한 5분 열심히 뒤져서 찾았습니다. "인간에게는 권리가 있다. 무엇을 뺏기든, 무엇을 잃든,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남겨진 권리. 그건, 자신의 선택한 삶의 방식에 생명을 걸어도 된다는 권리다."(p776) 후카마치의 말이지만 하부 조지의 마음 속에도 꼬옥 이런 결심이 서있었겠지요. 생존에 대한 욕구보다 강렬한 의지에의 직면, 이것이 신들의 봉우리가 주는 가장 큰 감동입니다.

 

본인 입으로 산악소설 광이라고 말하는 평론가 기타가미 지로마저 언급하는 산악 소설이 몇 없는 것으로 보아 꽤나 매니악한 소재인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로써도 처음 만나는 소재의 책이었는데요. 그 처음이 이 책이라 다행이고 굉장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참고로 음양사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님의 이름을 몰라서 같은 작가님이라는 사실을 후기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작가님 취향이 애처로운 남자가 뭔가를 갈구하는 얘기라는데 이 책이 딱 그런 책입니다. 쓰다 남긴 건 없다는 후기 앞에서는 인간적으로 여기서 더 쓸 게 남았다고 하면 사람도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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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저편 1 - 애장판
히가와 쿄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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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장판 다시 나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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