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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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왕 헨리 8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왕 카를로스의 심각한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플랑드르를 방문한 토머스 모어. 그곳에서 모어는 라파엘이라는 오디세우스적 선원을 소개 받게 됩니다. "참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 인물"(p27)을 두고 오디세우스적이라 한다는 걸 오디세우스를 읽고서도 몰랐던 저는 주석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방랑하는 모든 모험가에게 오디세우스적이라는 비유를 붙이는 줄 알았는데 주의해야겠어요. 라파엘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탐험대원으로 세 번이나 여정을 함께했는데 마지막 탐험에서 다섯 명의 수비대원과 함께 새로운 개척 모험을 떠납니다. 우연하게 발을 들인 유토피아에서 원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5년 넘게 행복한 삶을 꾸린 그는 유럽인들에게 유토피아를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 나라를 떠나지 않았을 거라고 해요. 도대체 어떤 매력의 나라이길래 정든 고국을 버리고 타국의 국민으로 살기로 결심한 걸까요? 토머스 모어는 사법 집행관 대리로 매일의 공사가 다망한 와중에도 라파엘로부터 전해들은 지혜로운 문물과 제도에 대해 1년 여에 걸쳐 집필을 하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유토피아 공화국에 대해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원래는 섬이 아니었던 유토피아는 유토포스라는 장군에게 정복되면서 모퉁이에 판 수로로 인해 뜻밖의 섬으로 분리가 됩니다. 이후 유토피아는 독자적인 문명으로 발전해 나가는데요. 무엇보다 혁신적인 것은 유토피아에 사유 재산의 개념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재화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분배됨으로해서 모든 인간이 행복해지는 기틀이 마련되었던거죠. 유토피아에서 금과 은만큼 값어치 없는 것이 또 있을까요? 죄인을 묶는 쇠사슬과 족쇄가 금으로 제작되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유토피아 사람들은 집이 아닌 영지의 공용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곳에서 사용하는 식기까지도 금은보화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은식기를 훔쳐갈 생각 따윈 아무도 하지 않는 나라니까요. 농업을 중시해 도시민들도 돌아가며 2년씩 농사에 종사하구요. 남녀 공히 노동을 하고 군사교육을 받으며 이혼과 재혼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오전과 오후를 다합쳐 오직 "6시간만!!" 노동하는 나라라니 근로 조건은 5백년 전의 유토피아 국민들이 저보다 더 좋군요. 저는 8시간, 눈물 또르륵. 귀족이나 하인과 같은 계급이 없고 노예는 존재하나 이는 죄를 지은 자국민이나 해외에서 비교적 좋은 좋건으로 유입된 사람들이라고 해요. 다양한 종교가 존중되며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강요하실 시 추방까지도 가능합니다. 유토피아에서는 안락사도 권장을 했는데요. 믿기지 않아 그 부분은 두 번, 세 번씩 다시 읽었어요. 강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인데 존엄을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한 점이 정말 놀라웠어요. 도적도 없고 사기꾼도 없으며 평등의 가치를 믿어 더불어 노동하고 투명하게 감독하며 다수 국민의 행복을 이끄는 나라! 사생활이 없고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게 심하게 흠이지만 노년에 의탁하면 참 좋을 나라다 싶었습니다. 토머스 모어가 라파엘에게 유토피아 위치까지 물어봤으면 좋았을텐데요. 제일 중요한 걸 빼먹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죠??

유토피아. 이게 원래 제목이 맞을까요?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 원제를 검색했겠지요.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한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대단히 훌륭한 소책자> 역시는 역시였다며 ㅋㅋㅋ 역자님의 해제에도 등장하는 이러한 제목 때문에 <걸리버 여행기> 같은 책일거라 상상했어요. 유토피아를 여행한 누군가의 황당하고 기가 막히게 멋진 모험기요. 유토피아라는 세계가 천국 같은 곳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니 제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시죠? 그런데 말입니다. 읽다 보니 유토피아와 걸리버 여행기는 결이 달라도 너무너무 다르더라구요. 유토피아도 여행기인 건 맞지만 허무맹랑한 거인이나 소인, 말 같은 건 등장하지 않고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가 다더라구요. 판타지, 해양 모험, 개척물, 영지경영, 전쟁, 전투 이런 쪽으로는 일체 기대하지 마시구요. 대신에 이 책은 유토피아 지리 수업책이다, 역사 수업책이고, 경제와 철학 수업도 겸하고 있다, 총괄적 유토피아 학습서다 생각하며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대해야 할 것 같았어요. 유토피아 속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는 익숙하기 그지 없는 개념들이고 벌써 실패를 맛본 세계로 허황되어 보이지만 1500년대, 헨리 8세 치세의 암울하고 배고프고 불평등한 사회의 독자들에겐 얼마나 충격적이고 새롭게 근사했을지, 또 얼마나 꿈 같이 동경하게 되는 세계였을지를 생각하고 읽으면 조금씩 재미를 더해갈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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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속성 (150쇄 기념 에디션) - 최상위 부자가 말하는 돈에 대한 모든 것
김승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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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자발적으로 읽은 두 번째 경제 서적입니다. 첫 번째는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라는 책이었는데 유명 투자자인 짐 로저스가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예견한 책이었어요. 흥미로웠지만 폭넓은 미래 전망, 돈의 거대한 흐름 속에 제가 속한다는 느낌이 없다 보니 마냥 관망하는 느낌이었어요. 반면에 돈의 속성은 돈의 영역이 훨씬 독자쪽에 가깝게 구축되어 있어서 심정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이런이런 점은 나도 실천해 볼 수 있겠다는 자극도 되구요. 그런 면에서 경제서적 보다는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돈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투자하고 투자가 성공해 더 큰 자본을 갖게 됐을 때 어떻게 대응하며 관리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거든요. 수치적인 잣대를 내세우기보다는 전인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부분이 독특하게 느껴졌는데 비교할 수 있는 경제서적이 한 권 뿐이라서 객관성이라고는 1도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라는 점 감안해주세요.

"돈을 감정을 가진 인격체로 대하며 돈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자. 내 능력을 믿지 못하겠을 땐 나보다 훌륭한 경영자에게 투자하자. 일정하게 들어오는 돈을 우대하자. 복리의 힘!! 돈의 중력!! 남의 돈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내 돈을 대하는 태도이다. 부자가 되려고 무리할 수록 부자의 삶에서 멀어진다. 근검절약으로 종잣돈을 모으는데 힘쓰자. 그러려면 핑곗거리를 만들어 돈 쓸 궁리를 하지 말아야겠고 무엇보다 예쁜 쓰레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가난은 생각보다 잔인하며 돈을 못모으는데는 이유가 있다. 경제를 정치적 신념으로 해석하고 따라가선 안된다. 돈이 느끼기에 좋은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무엇보다 돈에 종속된 사람이 아니라 돈을 거느리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아차, 본인이 금융 문맹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이 책에 등장하는 용어 정도는 최소한도로 이해하고 외우도록 해야한다"는 얘기도 빼먹으면 안되겠어요. 전 빼도박도 못하게 금융 문맹인임이 확인되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당장 기억나는 몇 가지 사항들만 추린건데 딱 봐도 크게 어렵다거나 판타지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책은 아니다 싶지요? 웃어른이 젊은 사람들 앉혀 놓고 조곤조곤 일러주는 좋은 말씀들 같았어요. 행실 조심하고 몸가짐 바로하고. 근데 그 대상이 다른 어른이나 친구나 선생님 또는 상사를 대할 때의 태도가 아니라 돈을 대할 때의 태도라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이었어요. 부자가 된다는 이론적 고찰이나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책만을 기대한다면 모르겠어요.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으려나요? 그러나 돈 앞에서 우리 더욱 떳떳하고 성실하고 괜찮은 어른이 되어보자는 결심을 바로 서게 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전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머릿속에 콱 박혀 잊혀지지 않는 말이 하나 있었어요. "경제적 독립기념일", 이 단어 앞에서 어쩜 그리 설레이던지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그 모든 게 내 자유가 되는 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동시에 쟁취한 사람"(p122) 돈의 속성을 읽고 정말이지 이런 사람이 되어 이러 날을 맞이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이 책을 지지난 주 주말에 완독하고 처음으로 주식 계좌도 개설을 했는데요. 당장에 투자를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계좌를 개설한 건 아니고 공부할 마음자세를 한번 갖춰보겠다는 뜻에서요. 주머니에 있던 현금 털어 몇 주 구매도 했어요. 돈의 속성에서 알려주는 모든 마음가짐을 다 깨우친다고 한들 우리 독자들이나 제가 부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냉정하게 따진다면 부자될 사람은 이 책 읽을 시간에 벌써 돈을 벌고 있을테지만요. 지금 현재 나의 경제 관념, 경제 지식, 경제적 위치와 경제적 의욕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책 한 권으로 마련할 수 있으니 읽는 시간도, 16,800원이라는 가격도 안아까울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엉덩이 무겁고 게으른 제가 뭔가를 시도하게끔 푸쉬를 넣었다는 것부터가 꽤 괜찮은 책이지 않은가 싶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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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가르쳐준 소중한 것 - 앤을 좋아해서 다행이야
모기 겐이치로 지음, 양지윤 옮김 / 프로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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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앤을 좋아해서 다행이야"

앤이 왜 좋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빨강머리 앤이 가르쳐준 소중한 것>을 읽고서야 처음으로 내가 앤을 좋아하는 이유, 어른이 된 많은 독자들이 11살 어린 소녀에게 여전히 매료되는 까닭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출간된지 100년도 지난 책이 매해 다양한 출판사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와 독자를 만날 수 있었던 데에는 앤이 전하는 삶의 메시지가 큰 몫을 했는데요. 일본의 저명한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가 자신의 감상을 더해 이를 설명합니다. 초등학교 5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앤을 만나 무심코 앤을 읽었고 이후 앤의 세계에 흠뻑 빠져 앤의 10부작 번역본뿐 아니라 원서까지 모조리 독파했다는 작가님. 앤을 만나기 위해 프린스 에드워드 섬으로 여행도 가고 앤에 대한 동경으로 캐나다에서 유학생활까지 하셨다니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앤의 팬이십니다. 그럼 이제 뇌과학자 모기와 함께 인생의 소중한 부분을 배우러 출발해 볼까요?

1. "아침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p18)

"주어진 환경이 각박하거나 삶이 자신의 뜻대로 잘 굴러가지 않더라도 상상력을 보태면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것이, 이 작품이 전하는 커다란 메세지입니다"(p27) 앤은 초록 지붕 집에 오기 전까지 아주 외로운 소녀였어요. 고아였고 친구도 없었으니까요. 토마스 부인과 해럴드 아줌마의 집이 아이들로 북적이긴 했지만 앤이 돌봐야 할 노동의 대상이었지 친구였던 적은 없거든요. 앤은 상상 속에서 친구를 만들어 냅니다. 토머스 부인 집에선 책장 유리에 비친 제 모습에 케이트 모리스라는 이름을 붙여 모든 속내를 털어놓구요. 책장조차 없었던 해럴드 아줌마 집에선 골짜기의 메아리를 비올레타라는 소녀라고 상상했어요. 다이애나라는 마음의 친구를 사귀기 전까지 두 친구를 인생의 위안이자 위로로 삼았던 앤의 상상력이 정말 놀랍죠? 모르는 게 많아서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다고 생각하고, 퍼프 소매의 원피스를 입은 친구가 부럽긴해도 주눅 들거나 샘내기 보다 언젠가는 마음에 쏙 드는 원피스를 입길 희망하며 상상 속에서 예쁜 옷들을 입어 보는, 상상의 내공과 긍정성을 본받고 싶어요. 상상이 부정적으로 흘러서 유령의 숲 같은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앤의 상상력은 앤과 앤을 사랑하는 주변 사람 그리고 독자 모두의 행복이 되니까요.

2. "마릴라 아주머니, 저는 오늘 즐겁게 가기로 결심했어요. 마음만 굳게 먹으면 거의 모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제 좌우명이에요. 물론 아주 단단히 결심해야 하지만요." (빨강 머리 앤, 알에이치케이코리아)

착오로 인해 초록 지붕 집에 오게 된 다음 날 아침. 펑펑 울다 잠든 앤은 평화로운 아침 풍경에 감화되어 더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지 않기로 결심해요. 고아원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잠시 잊고 지금 가는 길만 생각하죠. 들장미도 바닷가 길도 하다 못해 나무와 꽃, 과수원,개울까지 모두가 아름다운데 이런 풍경을 그저 흘려보내는 건 아까운 일이라는 걸 알았던겁니다. 절망 속에서 앤의 희망을 싹 틔워줄 씨앗이 그런 사소하고도 별 거 없는 풍경이며 소리이고 색이었으니까요. 초록 지붕 집에 온 이후로도 시시때때로 앤은 힘든 일을 겪지만요. 그때마다 앤은 상황의 장점을 찾아내고 굳세게 이겨내요. 8살 밖에 안된 나이에 여덟 명의 아이들을 돌봤고, 가족이 생길 기회를 잃고 고아원에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으며, 친구들 속에서 부당한 벌을 받고, 하고 싶지 않은 사과를 하고,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대학이라는 거대한 꿈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을 때조차 앤은 결심하기 전까지는 고민할지언정 딱 결정이 나고 나면 불평은 그치고 최선을 다해 즐거움을 찾아내요. 저는 불평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인데요. 앤을 보고 반성합니다.

3. "세런디피티, 뜻밖의 행운을 만나는 능력, 스스로 생각했을 때 좋은 방향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머리속으로만 끝내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합시다." (122)

앤과 다이애나가 조세핀 할머니가 누워있는 줄 모르고 손님 방으로 뛰어든 다음 날. 화가 난 할머니는 다이애나의 집에서 하루도 더 머물기 싫다며 나갈 준비를 합니다. 다이애나에게 주기로 했던 피아노 레슨비도 칼 같이 끊겠다고 하구요. 이 얘기를 전하면서 다이애나는 앤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하고 앤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요. 만약 제가 앤이었다면 후회를 하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을지언정 할머니를 만날 생각은 못했을 거에요. 오히려 다이애나가 나한테 할머니 좀 만나달라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을지도요. 낯선 할머니께 혼나는 건 상상만 해도 무섭거든요. 그런데 앤은 그러지 말라 말리는 다이애나를 설득해 성큼 조세핀 할머니를 만나러 가요. 손을 덜덜 떨면서도 당시의 상황이 자신의 책임임을 설명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앤의 솔직한 기질에 반한 조세핀은 두 아이를 용서하고 이후 앤의 조력자이자 친구로 남아 시시때때로 도움을 줘요. 앤의 이런 행운은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에 있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 근간이 됐어요. 물론 겁도 없이 혼자 배를 타고 강물에서 떠내려가는 등의 모험으로 위험에 처할 때도 있긴 하지만요. 앤에게 돌아오는 각종의 행운들은 "좀처럼 행운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유지해나가는 일"(p19)에서 기원한다는 뇌과학자의 말씀 적극 동감합니다.

낭만을 잃지 말아요. 호기심과 상상력, 감수성과 동심을 갈고 닦아 둔감하지 않으려 노력하구요. 무엇보다 행동하자고 새삼 결심합니다. 제랴늄 한 송이에도 기쁨을 발견하고 소박한 행복을 곳곳에 포진시키며 일상을 소소한 행복으로 정성스레 써내려 간다면 앤을 읽는 일처럼 내 일상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이 앤 같은 친구를 꿈꿨던 저는 이제는 앤의 장점을 취해 앤 같은 동심을 간직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참. 작가님이 남자에요. 제가 얼마나 편견 가득한 독자였는지 저는 앤을 소년이나 성인 남자가 읽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후기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얼마나 좁은 시야의 사람인지 새삼 깨닭아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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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Art & Classic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설찌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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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소녀 앤이 마릴라와 매슈 남매의 초록 지붕 집에 살면서 성장하는 이야기. 빨강 머리 앤을 한 줄로 요약하는 건 무척 쉽다. 그러나 앤의 매력은 이 한 줄로 표현할 수도 없고 독서를 한대도 첫눈에 앤의 매력을 다 알기도 어렵다. 앤은 거듭 읽어야 한다. 나도 몇 번째인지 모를 앤을 또 읽었다. 한두번이 아닌 건 확실해서 빨강 머리 앤 속에 등장하는 각종 사건들, 앤의 상상과 말썽에 대해서라면 빠삭하다고 자부한다. 초록 지붕 집에서 마중 올 사람을 기다리는 앤, 어느 엉뚱한 농부가 심어놓은 사과나무 길에 첫눈에 반해 기쁨의 하얀 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앤, 마릴리와 매슈가 기다리던 아이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는 앤, 다락방에서 처음으로 기도 드리는 앤, 다이애나와 마음의 친구가 되어 우정을 맹세하는 앤, 길버트의 놀림에 석판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앤, 다이애나에게 포도주를 먹인 앤, 후두염으로 죽을 뻔한 미니메이를 살리는 앤, 베리 부인을 위한 케이크에 진통제를 넣는 앤, 조세핀 할머니가 누운 손님방의 침대로 뛰어드는 앤, 머리를 초록으로 염색한 앤, 백합공주가 된 앤, 처음으로 퍼프 소매 원피스를 입게 된 앤, 매슈와 마릴라가 천국에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끼게 될만큼 자랑스러운 성적을 낸 앤 등 무수한 앤의 이야기를 이미 충분할만큼 잘 아는데 충분치 못했던 것처럼 다시 행복해진다. 왜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옛날 얘기를 하면서 매번 똑같은 부분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그리워하지 않나. 앤을 만난 나도 꼭 그런 기분이 되어 울고 웃는다. 매번 처음인 듯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소녀는 없을거야 감탄하면서.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이 어느 앤이나 훌륭하지만 알에이치코리아의 빨강 머리 앤은 설찌 작가의 삽화 때문에 한층 특색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이 아닌 것이다. 팔꿈치에 보조개가 쏙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앤의 꿈을 이뤄주듯 모든 삽화 속의 앤이 포동포동하게 웃는다. 물론 말썽을 일으켜 아주 혼이 날 때는 울기도 하지만. 내용과는 조금씩 다른 풍경들도 원작을 해치기 보단 원작에 신선함을 더한다. 박혜원 작가의 재치 넘치는 번역도 좋다. 두어번 등장하는 오타는 아쉽지만 마릴라의 시니컬한 유머 감각을 잘 살린 각편의 마무리가 백점 만점. 마릴라를 근엄하고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오해는 번역 탓이 상당하다. 실은 상당한 유머 감각을 지닌 여인으로 잘된 번역으로 마릴라를 만나면 앤을 향한 뼈 때리는 질타 속에 웃음이 감춰져 있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번 번역본이 그랬다. 하도 읽어서일까? 여태와는 달리 사건 보다 사소한 사실들이 눈에 들어와 재미를 더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정보들 말이다. 2월 생인 다이애나와 3월 생인 앤. 두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왜 여태 이들의 생일을 축하해 줄 생각을 안했을까? 동갑내기 같지만 실은 길버트와 앤은 2살 차이가 난다. 같은 학급에서 공부를 하고 긴 세월 라이벌이었으며 서로를 오빠동생으로 칭하지 않아서 내내 인지를 못했나 보다. 길버트가 앤에게 준 사탕에 적혀 있던 문구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는 걸, 앤이 길버트의 턱을 보고 잘 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은 있었다는 걸 이제는 잊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자잘하고 소소한 내용들을 몰라도 책을 이해하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앤의 팬이니까! 재독하지 않았다면 인지하지 못했을 이런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게 못내 뿌듯하다. 앤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이 늘어간다는 게 참 좋다. 무엇보다 이번 독서에서도 앤이 여전히 재미있는 친구, 다정한 친구, 또 읽고 싶은 친구로 남았다는 게 고맙다. 나이를 먹고 세월의 떼를 묻혀 가며 내가 얼마나 삭막한 어른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알아서 앤을 펼칠 때마다 살짝 겁이 난다. 앤이 유치하게 느껴지면 어쩌지? 앤의 수다에 짜증나거나 귀따갑게 느껴지면? 앤의 슬픔, 외로움, 욕망, 갈등, 기쁨에 공감하기보다 하나하나 훈수 두고 잔소리하고 가르치고 싶어지면?? 그만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어떡하나 생각하며 책을 펼치는데 이번에도 고비없이 완독을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앤이 불러일으키는 동심과 애정만큼은 언제까지고 식지 않기를. 앞으로도 셀 수 없이 앤을 만나고 지치지 않고 앤에게 감격할 수 있었으면. 어른이 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많이 쑥스럽지만 앤 나는 네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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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세트 - 전4권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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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추천받은 나폴리 4부작 시리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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