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전행선 옮김 / 리프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1.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남자

죄송합니다만, 환자분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겁니다.”

_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p15



.. 이렇게 잔인할 수가. 의사 선생님, 몽테뉴 환생한 줄 알았잖아요. 독감인 줄 알고 내방한 환자 앞에 두고 너무 거침없는 거 아닙니까?😭 몽테뉴가 그랬다죠. 죽음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는 언제든 장화를 신고 인생 뜰 준비를 해야한다구요. 야코 사장님도 몽테뉴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런 상황입니다. 사장님 안에 도사리고 있던 죽음이 실체를 드러내며 몇 주, 어쩌면 며칠 밖에 남지 않은 생의 시간을 알려왔습니다. 췌장암도 아니고 간경변증은 더더욱 아닌데 증상은 비슷한 음독이랍니다. 평소 아내가 챙겨주는 삼시세끼 말고는 먹는 게 없는데 음독이라니요? 장기복용을 한 것 같다니요? 뭐에 중독됐는지 의사도 모른다니요?! 사장님 잘 생각해 봐요. 일본에 송이버섯 수출하면서 독버섯 아무렇게나 씹어먹은 거 아니에요? 사장님, 아무거나 먹으면 어떡해요!!

2. 아무도 믿지 마세요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죽게 되리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다. 그건 마치 이 여름이 끝나더라도 다음번 여름은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며, 어떤 이유에선지 그 여름은 지나간 여름보다 훨씬 더 근사하리라 믿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시시각각 짧아지는 지금 이 시간뿐이다.”

_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p96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젊은 주부인 주인공은 자신은 따뜻한 바람이 머리칼을 흩날리는 동안 스포츠카를 타고 파리를 운전해 다닐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임을 깨닫는 내용이다. 노래의 주인공도 유럽, 빠른 차, 아름다운 머리 같은 모든 것을 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깨달은 것은 본질적으로 이런 사실이다. 삶은 사라졌고, 꿈은 꿈일 뿐 절대로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자신에게는 지금 그리고 이곳뿐이며, 그조차도 일시적일 뿐이라는 사실.”

_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p243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과 본질적인 면에서 연결된 게 틀림없다.”

_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p307


병원에서 돌아온 야코 사장님, 수사 일지를 작성합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데 죽게 생긴 사람은 할 말도 할 일도 너무너무 많아서요. 노트가 빼곡하게 채워져요. 죽을 날 받아놨어도 나 죽이려는 놈이 누군지 꼬옥 잡아 복수하겠다 이겁니다. 평범하다 못해 약간은 소심하고 솔직히는 많이 주눅든 채로 살아왔던 인생, 이렇게나 적(?)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크림, 소금, 버터, 치즈, 다량의 돼지고기를 기본으로 매끼 칼로리 폭탄의 식단을 대령했던 아내가 1차 용의자입니다. 보디빌더처럼 빼어난 육체의 아내가 알고 보니 열살은 더 어린 납품 담당 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있더라구요. 야코 사장님만 죽으면 알량한 재산도 차지하고 어린 애인과 자유 연애도 하고 좋겠지 좋겠어. 이를 아득바득 갈며 야코 사장님이 아내 타이나를 용의주시합니다. 두번째 용의자는 말할 것도 없이 내연남 페트리죠. 누군가를 음독할 깜냥은 없어보이지만 전처에게 재산 다 뺏기고 어머니한테 얹혀사는 처지에 독하게 마음 먹었을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세번째 용의자는 하미나 머시룸 컴퍼니 3인방입니다. 야코 사장님의 노르딕 포레스트 델리커데스 주식회사(회사 이름 누가 지은 거에요?😣)의 경쟁사인데 존속살해범에, 전직 양손잡이 타자에, 여자친구 뺏아간 친구 물에 빠트려 죽였을지도 모르는 사이코패스까지. 한 명 한 명이 어디를 어떻게 봐도 정상은 아니니까 의심하겠습니다.

3. 잘 가요, 독한 사람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죽기 전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범인을 밝히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다!”

_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죽을 날 받아놨는데 무서운 게 있을리가요. 전에 없이 아내에게 반항하며 아내의 음식을 거부하구요. 잘생긴 페트리를 뒤쫓아 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합니다. 경쟁사의 공장에 무단침입까지 하는데요. 그곳에 걸린 일본도를 만졌다는 이유로 다툼이 벌어져... 이런.... 살인 사건이 일어나 버리네요? 아니 참, 이건 살인도 아닌 것이 자살사건이라고 해야 할까요? 토미라는 남자가 야코 사장님을 죽이려고 일본도를 들고 뛰다가 본인 머리를 꿰어버려요. 공격을 감행하려던 건 맞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내 범인 찾기도 바쁜 와중에 실종된 토미를 찾겠다며 수사에 돌입한 티카넨 형사를 상대하구요. 야코 사장님을 의심해 쫓아다니는 머시룸 2인방과 번아웃을 주장하며 공장에서 내보내려는 아내까지 피해야 합니다. 오늘내일 하는 중에 직원 산니의 엉덩이는 왜 또 그리 예쁘냐구요. 뜻밖의 경로에 돌입한 야코 사장님의 범인찾기 대장정! 결말을 알려드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출판사에서 쫓아올지 모르니 줄거리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독자님은 얼른 서점으로 달려가세요. 고고!!



4. 이런 북유럽 소설 처음 봤어요 ⭐⭐⭐⭐⭐

안티 투오마이넨, 유럽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가로 불리우는 이유를 알겠어요. 북유럽 특유의 안개 낀 듯이 꿉꿉하고 텁텁한 우울감 없이 아주 화창하게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더라구요. 덤덤하고 담백한 성격으로 국자를 휘두르는 야코 사장님도 취향이구요. 죽음에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다이어트 효과는 그럴 듯 하다와 같이 갖가지 우스개 소리와 철학자의 메모 같은 내용이 어우러져서요. 마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추리 버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조용하고 점잖게 회사가 하라는대로 아내가 하라는대로 사장이 된 후에는 사업에 크게 욕심내는 법 없이 인생 조용조용하게 살아왔던 남자가요. 죽음을 앞두고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 24시간을 48시간을 72시간을 꽉찬 행동력으로 독파하는 이야기에요. 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에서 아무거나는 "아무 시간"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지만 알고 보면 그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닐지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겠어요. 국내 첫 출간작이었던 이번 작품 뒤로 안티 투오마이넨의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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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떠돌이 을불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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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부 한다고 국사책을 달달달달 외웠음에도 기억이 전무한 나라. 고구려에 대해서는 아는 정말 없어요.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고종(측천무후의 남편) 대해서 아마 많이 알걸요?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여러번 만났으니까요. 김진명 작가의 역사소설 <고구려> 순수하게 고구려가 궁금해 읽으려던 아니었습니다. 드라마화, 1천억원의 제작비, 블록버스터급 대하사극에 대한 예고 때문에 관심이 커졌구요. 출간 텀이 5 씩이나 되는 책임에도 식지 않는 관심이나 불타는 화제성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가독성이 진심 놀랍더라구요. 달려가는 페이지 뒤쫓아가느라 무지 바빴습니다. 눈이 1센티는 튀어나온 같아요🤣🤣


1권은 훗날 미천왕이 되는 고을불의 이야기로 생에 초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구려 13 서천왕의 손자인 을불은 왕자로 태어났지만 떠돌이로 세상을 주유한 시간이 훨씬 길었던 왕족입니다. 서천왕은 태자 상부의 성정이 옹졸하고 포악한데다 의심이 많아 왕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왕위는 동생인 안국군에게 주고 싶어했고 차남인 돌고를 총애했지요. 그러나 나라의 기운이 기우는 때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왕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맙니다. 사직의 안정을 위해 장자 세습을 이어가기로요. 서천왕이 죽자 상부는 그간 억눌러온 폭력성을 폭발시킵니다. 안국군을 역적으로 몰아 목을 베구요. 아우 돌고마저 참극합니다. 서천왕의 후궁을 범하고 눈에 가시같던 신하들을 처형했으며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립니다. 상부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아버지의 비겁함에 을불은 몸서리를 쳤지만요. 모든 것이 아들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돌고가 상부의 칼날에 목을 내어놓은 후에야 깨달은 을불은 이름을 버리고 세상으로 숨어듭니다. 훗날의 복수를 다짐하면서요😤😬


봉상왕 상부가 왕위에 앉았을 적의 고구려는 안팎으로 혼란하던 시기였습니다. 5 16 하나인 전연의 시조 모용외가 모용부의 우두머리가 되어 천하를 주유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었구요. 팔왕오제의 난으로 쑥대밭이 황도를 피해 낙랑으로 최비가 태수의 몫을 훗날을 도모하며 힘을 키우고 있었어요. 진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으니 고구려가 힘을 키우기에 좋을 때였지만 상부의 눈은 고구려 안으로만 향할 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목을 노린다는 의심이 항시 그를 부추겼거든요. 을불은 뭐하고 있었냐구요? 상부의 추적을 피해 비렁뱅이처럼 동냥도 하구요. 시정잡배 속에서 몸을 웅크린 심부름도 떠맡구요. 머슴도 되었다가 소금 행상도 하는 왕족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다해요. 낙랑에서는 무예총위 양운거를 만나 무술을 익히기도 했는데 양운거의 수제자인 정균의 음모로 제대로 인사조차 못한 채로 이별합니다.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떠돌 밖에 없는 것이 을불의 운명인가 봐요😭😢


안국군의 동료들과 연을 맺기 위해 저가에게 의탁한 을불. 지방의 동맹제에 참여해 힘을 키우기로 하는데요. 결승전까지 올라 승리를 앞에 상황에서 상부와 마주치게 됩니다. 상부는 무섭도록 성장한 조카를 눈에 알아보고 그를 죽이기 위해 한시도 곁에서 떼놓지 않았던 명장 해추까지 파견합니다. 을불이 차근차근 인재를 모았다한들 그를 믿고 따르는 이라야 고작 삼십여 남짓. 을불의 무리는 고구려의 정예인 해추를 물리치고 목숨을 보전할 있었을까요? 자객에게 당해 죽다 살아난 양운거, 최비의 밖에 소청과 함께 낙랑을 떠나게 그는 고구려에 도착해 무사히 을불과 조우하게 될까요? 소청과 을불의 이어지지 못했던 마음은 과연?? 😍🥰

넘치는 기개를 억누르지 못해 극의 초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어리석은 소년은 더는 없습니다. 밝은 눈을 가진 참을성 많고 지혜로운 을불의 용맹한 전투가 가슴을 뛰게 만들어요. 을불이 이제 세력을 키워가는 시점에서 1권을 덮으며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지금 손에는 2권이 없거든요. 역사소설에 취약한 독자라 삼국지만큼 아니 이상으로 고구려에도 인내를 발휘해야 할까봐 걱정했는데 오롯이 재미있어 좋았습니다. 미천왕의 옹립, 만주벌판을 누비는 고구려의 기상을 목격하게 다음 권들과의 만남도 기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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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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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과는 첫만남. 갓선란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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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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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펀딩으로 일찌감치 입소문을 탔죠. 천선란 작가의 장편 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입니다.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이라니 어쩜. 요즘 제가 딱 찾아 헤매던 책이었어요. 여름밤을 저격하기에 이만한 장르가 없잖아요.

철마재활병원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번이 꼬박 네 번째 자살입니다. 투신, 꽃동산으로 가겠다는 유서, 무엇보다 그곳이 요양병원이었던 탓에

죽음은 사건이 되지 못하고 사고로 끝이 납니다. 다만 한 사람, 가족과 다름없는 은심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있는 형사 수연만은 어딘지 깨름칙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7층에서 사람이 떨어졌는데 이렇게 깔끔하다고? 일흔이 넘은 노인이 몸을 던졌다기엔 건물과 현장의 거리도 너무 멀잖아? 마치 피를 빨린 후 던져진 것처럼... 근데 그게 말이 돼? "편하게 생각하자, 편하게." 자식도 원치 않는 진실을 부러 파헤치기엔 현실은 참 각박하지요.

그럼에도 수연은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그게 은경 선배에게 수연이 배운 수사의, 아니 삶의 제 1 철칙이었으니까요. '수연아 궁금한 거 참지 말고 살아.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p273) 그래서 은경 선배가 죽었고 그래서 수연 자신도 죽게 된다 할지라도요. 수연은 제 발로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래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수연은 현장에서 완다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납니다. 피가 말라있는 현장에 코를 박을 듯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여자를 수연이 미치광이라고 생각한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하물며 완다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었거든요.

"뱀파이어야. 이 사람들을 죽인 범인, 인간이 아니고 뱀파이어라고."(p9) 헛웃음이 터졌을 뿐, 완다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의 자살자가 나오고 뱀파이어의 흔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여태 인간만을 추척해온 수연에게는 너무나 말이 안되는 사건이었죠. 수연은 완다와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외롭고 또 외로워 죽음을 바랐던 사람들을 보았구요. 그들을 찾아온 밤의 구원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신과 달리 인간의 슬픔과 고독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매혹적인 존재를요.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수연과 완다, 난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시점이 상당히 복잡한 소설입니다. 파트너와 아버지, 오빠 등으로 남자가 등장하긴 하지만 존재감이 아주 옅구요. 전적으로 세 여성의 삶에 서사를 집중하고 있는데 신기하리만치 술술 읽혀요. 여성이며 홀로라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흥미로워 그런가봐요.

부모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은심 할머니와 은경 선배를 만나 직업과 소명을 찾은 수연. 인생 처음으로 사귀게 된 친구가 릴리라는 뱀파이어였던 프랑스 입양아 완다. 아들딸 차별에 뼈가 시릴만큼 외롭게 큰 걸로도 부족해 부모님의 빚까지 떠안은 난주. 외로움을 냄새 맡을 줄 아는 뱀파이어들과 조우한 이들의 운명은 어째서 장르에 "로맨스"가 붙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파리하고 퍼석퍼석해요. 달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더라구요.

파편 같이 흩어진 이야기들을 주워 담고 이어 붙이며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안의 외로움에 저항하거나 외로움을 부수려하지 말고 인정하고 잘 다독이며 기운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거든요.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픈 작가의 의도가 투명하게 보여서 난감한 부분도 있었지만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고픈 작가의 마음으로 이해했습니다. 성장을 지켜보고픈 작가님이에요.


#안전가옥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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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세계 - 80가지 식물에 담긴 사람과 자연 이야기
조너선 드로리 지음, 루실 클레르 그림,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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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 인생 처음으로 맞이하는 장마철. 예상했던 이상으로 고배를 마시는 중입니다. 아무 것도 안했는데 (어쩌면 아무 것도 안해서?) 식물이 연쇄적으로 죽어가고 있어요. 과습을 걱정했던 로즈마리는 바싹 말라 미라가 됐구요. 쌩쌩하던 핑크아악무도 습도를 이기지 못해 가지를 개나 떨구었어요. 보겠다고 들인 촉의 호접란은 이파리들이 노랗게 말랐구요. 향수국은 저희 집에 오고 나서 서서히 향기를 잃더니 현재는 무향수국이 되었습니다. 식물하고는 안맞나봐, 똥손이 똥손했지 , 시무룩해 있던 차에 책을 읽었어요. <식물의 세계>. 식물 덕후 조너선 드로리가 런던의 집에서부터 시작해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 따라 지역 재미나는 식물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식물이 가진 과학적 학술적 속성뿐 아니라 인간이 얽힌 역사의 면면을 소개합니다.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작은 글자들을 파고 들며 읽었어요. 게다가 환상적인 일러스트라니요! 힘없이 늘어져있는 저희 초록이들만 보다가 파릇파릇 생기 넘치는 꽃과 나무들을 보니 기운이 나요. 장마철 스트레스로 녹초가 식집사님들을 초대합니다. 식물의 세계로 구경 오세요!


1. 향쑥

향쑥. 초록 요정이라 불렸던 압생트의 원료에요. 향쑥과 여러 허브들을 혼합한 증류주로 제조한 독주는 에메랄드빛 묘한 색깔 덕분에 더욱 각광을 받았습니다. 최초에는 특허 약품이었기 때문에 열병과 기생충 예방, 오염된 물을 소독하는데 쓰였는데요. 알제리의 프랑스 부대에서는 압생트를 공식적으로 배포하기도 했던가봐요. 병사들 사이에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대히트를 쳤구요. 그들이 고국에 돌아간 후에도 압생트를 찾아서 프랑스 술집 곳곳으로 유행처럼 퍼져나갔습니다. 고흐의 반짝이는 노란색이 압생트에 의해 탄생했을거란 썰이 있어요. 향쑥의 환각 효과 때문에요. 압생트는 다른 술보다 유독 중독 증상이 심했는데 처음엔 향쑥 탓이라는 오해를 받았지만 조사해보니 높은 도수의 알코올에 각종 유해 착색제와 유독 물질을 탓이었다고 해요. "초록색 시간" 맛보라는 당시의 홍보문구가 삽화와 어울려 매혹적으로 다가왔어요.


2. 고사리

장마철이 되어 식집사들에게 유독 각광받는 고사리에요. 다른 식물들이 축축한 습기에 힘을 잃어가는 요즘 독야청청 홀로 쌩쌩하게 버틴다길래 저도 키워볼까 하던 차에 <식물의 세계> 먼저 만났습니다. 처음엔 고사리 화분을 키운다는 이해가 안갔어요. 그야 콩나물도 키워먹는 대한민국의 식집사지만 아니 그래도 고사리를?? 나물 외에 다른 가치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고사리가 19세기부터 관상용 식물로써 인정 받아 인기를 구가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요. 고사리 마니아가 무척 흔했대요. 고사리 키우는 취미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사리 사냥을 나갔다나요? 고사리 , 고사리 학회, 고사리 재배용 유리 상자, 고사리 용품, 고사리 전문가와 고사리 장사꾼들로 활황이었던 영국을 상상하니 재밌습니다. 아참, 유명 작가 찰스 디킨스도 딸에게 고사리를 키워보라고 권유했대요. 이참에 저도 고사리를 들여볼까요?


3. 쿠쿠이나무

모비 딕의 등장인물이죠. 저에게는 주인공과 다름없었던 이교도 작살잡이 "퀴퀘그". 퀴퀘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온몸에 새긴 문신이에요. 시대 감안, 뭣보다 남태평양 출신이라는 점에서 퀴퀘그의 문신도 여기 쿠쿠이나무로 새겼을 가능성이 높은 같아요. 말린 쿠쿠이나무 열매에 불을 붙이구요. 그위에 조개껍데기나 판판한 , 그도 아니면 코코넛을 대고 기다려서 그을음을 모은대요. 깨끗한 코코넛 물을 섞은 다음 거북이 등딱지나 나무 , 인간의 , 상어의 이빨로 한땀 한땀 문신을 새기는데요. 문신사에게나 문신을 받는 사람에게나 고통스러운 작업이라 하루이틀, 한두달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시간을 들여 문신을 완료했다고 해요. 복잡한 문신이 자체로 인내심을 부르는 상징이었다니 다했죠. 퀴퀘크의 문신에 대해 읽을 제가 무슨 느낌을 받았는지 기억이 안나요. 형용할 없는 강인한 정신력을 엿보았던가 내내 고민했지만 아주 깜깜. 언젠가 모비딕을 다시 읽게 되면 퀴퀘그의 문신이 등장하는 부분을 야무지게 분석해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3. 밖에 이루 말할 없이 예쁜 꽃과 나무들

 

 

읽는 내내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꽃과 나무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싶었지만 저작권 때문에 자제하고 자제했어요. 삽화만 봐도 행복한데 이야기 하나하나가 무척 재미있어요. 마취 효과가 전혀 없는데도 약으로 사용됐다는 맨드레이크, 호구가 숙주를 찾아 미터 넘게 탐색용 뿌리를 뻗는다는 크리스마스 나무, 피임약이라는 세기의 발명의 재료가 , 극미량의 카페인으로 벌들의 기억력을 자극하는 커피, 1 티스푼의 기름을 모으기 위해 증류되는 7 송이의 장미, 인디언옐로 물감의 원료를 만들기 위해 망고 껍질을 먹고 오줌을 싸야했던 인도 소들,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아티초크 여왕이었던 마릴린 멀로 등등 읽다 보니 시간 가는 모르겠더라구요. 2020년도에 <나무의 세계> 출간되고 금방 <식물의 세계>까지 출간된 이유를 것만 같았어요. 세계 여러나라의 독자들이 찾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말씀!

시공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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