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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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펀딩으로 일찌감치 입소문을 탔죠. 천선란 작가의 장편 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입니다.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이라니 어쩜. 요즘 제가 딱 찾아 헤매던 책이었어요. 여름밤을 저격하기에 이만한 장르가 없잖아요.

철마재활병원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번이 꼬박 네 번째 자살입니다. 투신, 꽃동산으로 가겠다는 유서, 무엇보다 그곳이 요양병원이었던 탓에

죽음은 사건이 되지 못하고 사고로 끝이 납니다. 다만 한 사람, 가족과 다름없는 은심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있는 형사 수연만은 어딘지 깨름칙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7층에서 사람이 떨어졌는데 이렇게 깔끔하다고? 일흔이 넘은 노인이 몸을 던졌다기엔 건물과 현장의 거리도 너무 멀잖아? 마치 피를 빨린 후 던져진 것처럼... 근데 그게 말이 돼? "편하게 생각하자, 편하게." 자식도 원치 않는 진실을 부러 파헤치기엔 현실은 참 각박하지요.

그럼에도 수연은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그게 은경 선배에게 수연이 배운 수사의, 아니 삶의 제 1 철칙이었으니까요. '수연아 궁금한 거 참지 말고 살아.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p273) 그래서 은경 선배가 죽었고 그래서 수연 자신도 죽게 된다 할지라도요. 수연은 제 발로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래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수연은 현장에서 완다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납니다. 피가 말라있는 현장에 코를 박을 듯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여자를 수연이 미치광이라고 생각한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하물며 완다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었거든요.

"뱀파이어야. 이 사람들을 죽인 범인, 인간이 아니고 뱀파이어라고."(p9) 헛웃음이 터졌을 뿐, 완다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의 자살자가 나오고 뱀파이어의 흔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여태 인간만을 추척해온 수연에게는 너무나 말이 안되는 사건이었죠. 수연은 완다와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외롭고 또 외로워 죽음을 바랐던 사람들을 보았구요. 그들을 찾아온 밤의 구원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신과 달리 인간의 슬픔과 고독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매혹적인 존재를요.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수연과 완다, 난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시점이 상당히 복잡한 소설입니다. 파트너와 아버지, 오빠 등으로 남자가 등장하긴 하지만 존재감이 아주 옅구요. 전적으로 세 여성의 삶에 서사를 집중하고 있는데 신기하리만치 술술 읽혀요. 여성이며 홀로라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흥미로워 그런가봐요.

부모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은심 할머니와 은경 선배를 만나 직업과 소명을 찾은 수연. 인생 처음으로 사귀게 된 친구가 릴리라는 뱀파이어였던 프랑스 입양아 완다. 아들딸 차별에 뼈가 시릴만큼 외롭게 큰 걸로도 부족해 부모님의 빚까지 떠안은 난주. 외로움을 냄새 맡을 줄 아는 뱀파이어들과 조우한 이들의 운명은 어째서 장르에 "로맨스"가 붙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파리하고 퍼석퍼석해요. 달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더라구요.

파편 같이 흩어진 이야기들을 주워 담고 이어 붙이며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안의 외로움에 저항하거나 외로움을 부수려하지 말고 인정하고 잘 다독이며 기운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거든요.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픈 작가의 의도가 투명하게 보여서 난감한 부분도 있었지만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고픈 작가의 마음으로 이해했습니다. 성장을 지켜보고픈 작가님이에요.


#안전가옥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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