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해 스토리콜렉터 52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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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가엾은 사디스트 자식아.
정말 미안해. 그때 눈을 제대로 찌르지 못해서.
미안해. 벽돌로 네 놈의 머리를 완전히 박살내지 못해서.
미안해. 네 눈알을 뽑아내지 못해서. 

ㅡ  미안하다고 말해, 북로드, p548

 

 


격하게 몰입하여 정신없이 읽다 이 문구를 앞에 두곤 눈이 질끈 감겼다. 피해자 파이퍼 해들리가 조지를 향해 쏟아내는 그 분노에 동조되어 나도 모르게 책에 대고 주먹을 휘두를 뻔 했다. 귀한 책이라 훼손은 못하고 대신에 이불을 쥐어뜯는 것으로 그쳤지만 화가 주체가 안되서 읽는 내내 씩씩대며 불이 났다. 파이퍼를 대신하여 조지의 눈을 찌르고, 벽돌로 머리를 내리찍고, 눈알을 뽑아내고. 나라면 기꺼이 그 놈 몸에 불도 질렀을텐데. 개새끼, 이 어린것들을.. 손가락 마디만큼도 미안한 마음없이 아주 산산이 부서뜨려 놓고 싶은, 쌍욕이 절로 나오는 놈 조지는 조 올로클린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이다. 병이나 인격장애가 아니라 그저 타고난 성격특성에 불과하며 치료조차 불가능하다고 하는. 아마 그의 정신을 1천 8백 조각쯤 산산히 분해해 해부한다 해도 양심이나 죄책감, 도덕적 불확실성은 나노 현미경으로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영혼이라는 걸 해부할 수 있을 때에야 말이지만. 어쨌든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요구하는 그의 뻔뻔함엔 소름이 끼치다 못해 아주 치가 떨렸다. 그의 결말이 단순한 구속, 수감으로 끝나지 않아 천만다행일 정도. 같은 공기조차 마시고 싶지 않을만큼의 인격들은 모두가 이와 같은 결말을 맞으면 좋을 텐데. 소설이 현실보다 통쾌하다는 것이 서글픈 세상이다.


어찌됐든 로보텀의 전작들도 그렇지만 이번 미안하다고 말해의 스토리도 굉장히 익숙하고 뻔하다. 15세 소녀들의 실종, 납치, 지하벙커, 완전한 사육 그리고 탈출. 스릴러를 좋아하고 많이 읽은 독자라면 이 소재만으로도 기-승-전-결의 구조를 한눈에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이클 로보텀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에는 스토리를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 섬세한 감성, 부드러운 필치(라이프 오어 데스와 미안하다고 말해, 산산히 부서진 남자의 역자가 다 다름에도 섬세하게 이어지는 감성 스릴러로서의 느낌은 한결같다), 잔잔한 몰입감, 한순간 몰아치는 폭력적인 감정이입, 어딘지 달콤쌉싸름한 낭만이 가미된 결말. 조 올로클린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코 독보적이라고 평가 받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앞서 나열한 서정성과 연계된 높은 긴장감과 속도감이 아닐까 싶은데 이제는 18세가 된 파이퍼 해들리, 이 작가로서의 재능이 넘치는 감수성 풍부한 소녀와  태쉬가 갇혀 있는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하나. 조가 사건을 풀어가는 옥스퍼드 시골에서의 이야기로 다시 둘. 이면성을 띈 두 방향에서의 이야기들이 핑퐁처럼 오며가는 탓인지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스토리가 순식간에 진행이 된다. 조의 시점에서, 오디의 시점에서 틈틈이 주춤거렸던 이전의 이야기들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조의 관찰로 인한 설명보다는 피해자 파이퍼의 직접적인 진술로 인해 깊이 있게 감정 전달이 된 탓인지 긴장감도 비할 데 없이 높다. 상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싶은 페이지, 납치된 두 소녀의 열악한 환경, 피해 상황들까지도 자연스럽게 떠올라 조지를 찢어 죽이거나 때려죽이고 싶다는 과격한 상상도 몇 번이나 하게 만드는 몰입감이다. 마녀에게 사로잡힌 헨젤과 그레텔의 스릴러화 같은 느낌으로 파키슨병 환자인 조의 불완전한 심리, 물리적 단서나 목격자에 대한 단순한 설명을 넘어 범죄자와 기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조의 흥미로운 통찰들, 시골의 폐쇄적인 환경과 음울한 분위기, 청년들의 범죄 및 납치와 살인사건, 그 안에서도 또렷한 빛깔로 드러나는 두 빙엄소녀의 우정이 빛나는 이야기 "미안하다고 말해"를 3월의 추천책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속독파가 아니라면 부디 이 책만큼은 꼭 주말에 읽으시기를. 장장 591 페이지의 이 소설은 도무지 어떻게 해도 끊어 읽을 방법이 없으므로 주말이 아니라면 한 주가 피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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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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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에 읽었던 종말의 바보 리뷰를 이제서야 쓰다니.
3.1절에 일본 소설 리뷰 쓰기가 머쓱해 잠시 둔다는 게 미루고 미루다 20일까지 와버렸다.

책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낭만적이고 또 신난다. 찡찡 울다가 아, 뭐래? 하며 큭큭 웃다가를 반복. 종말이 코 앞이니 세상은 하 수상한데 사람들은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쓰담쓰담해주고 싶은 인물이 한둘이 아니었다. 종말이 배경인 동화, 종말 속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읽는 기분이랄까.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는 마냥 유쾌한 글만 쓰는 줄 알았다가 (아무래도 명랑한 갱의 이미지가 나한텐 압도적이었던 듯)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도 그렇고 종말의 바보도 그렇고 참 놀라게 된다. 물론 집들코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종말의 바보는 또 너무 취향이라 이 두 소설을 연달아 읽으니 이사카라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 종말의 세상, 그 세상의 작은 조각 센다이의 힐즈타운에서 시작하는 몇 없는 주민들의 이야기, 첫편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종말의 바보였다.


1. 종말의 바보

첫 장면에서 인물들이 쌀 5kg를 구입하길래 나는 아직 종말의 상황이 뉴스를 타지 않은 줄로 알았다. 종말의 개봉인가? 하며 출근하고 돌아와 3.1절을 맞고 다음 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5년 전에 종말의 상황이 전해지고 앞으로 남은 지구의 시간은 고작해야 3년이 전부. 왜 이렇게 평화롭나 했더니 한차례 살인, 강도, 자살이라는 슈퍼 태풍이 전일본을 휩쓴 상태였다. 그리고 그 태풍의 눈 안에서 3년 후의 종말이 아니라 집으로 오겠다고 연락해 온 딸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남자, 오베가 떠오르는 그런 가장이 등장한다. 딸이 나를 죽이러 오는 게 아닐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는 피식피식 웃었지만 굉장히 재수없게 느껴지는 남자였다. 연약한 인간이고, 핍박받는 사회인이고, 그 스트레스와 불안을 풀길 없어 만만한 자식과 아내를 질타했던 아버지이자 남편. 그 변명이 혐오스러웠음에도 이미 네 죽음 내 죽음 우리 모두의 죽음이 예견된 상태라 그런지 그런 그를 용서하려는 딸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됐다. 물론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2. 태양의 딱지

주인공 부부의 이야기 보다 태어날 때부터 아팠고 진행성이라 계속 더 아파할 아이를 키우는는 쓰치야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진득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아프지만 그래도 매일을 즐겁게 살고 있는 가장, 그러나 막연하게 뒤를 쫓는 두려움. 내가 늙거나 먼저 죽으면 아픈 아이는 혼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당연한 두려움 앞에 전해진 비보, 종말.

"소행성 충돌 때문에 앞으로 3년이면 끝장이야. 모두 똑같아. 그렇잖아? 그야 무섭지. 하지만 우리의 불안은 사라졌어. 우리는 아마 리키하고 함께 죽을거야. 아니, 모두 함께지. 그렇게 생각했더니 굉장히 편해지더라. " (p78)

"다른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요즘 나는 정말 행복해." (p78)

쓰치야의 말을 듣고 주인공 남자는 생각한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감탄인지 경탄인지 모를 감정으로 가슴이 뭉클했다"고. 순간 나도 말문이 막혀 이 페이지에서 한참을 주춤했던 기억이 있다. 달리 표시하지 않아도 문단을 옮겨 쓰기 위해 페이지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만큼 뚜렷하게 남은 쓰치야의 마음. 아이의 몇 해 남지 않은 시간에 좌절하고 고통받을 부모들에 대해서는 상상해 본 적이 있지만 아픈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차라리 온가족이 다함께, 확실하게 끝나게 될 시간에 대해서 감사하고 행복해 할 부모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뭐야? 뭐지? 잠깐 의아했다가 곧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납득하게 됐다. 종말의 바보를 읽을 때처럼 평가하고 재단하는 마음 없이 그냥 충격적이었고 동시에 감동적이었다. 인간의 이런 류의 나약함은 차라리 마음에 든다.


3. 농성의 맥주

인질이었던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여론의 호도, 참지 못한 여성의 자살, 그에 대한 형제의 복수.
소행성에 선수를 뺏기기 전에 여론을 몰아간 대상에게 죽음을 선사하겠다는 일념이었으나 알고 보니 그 복수의 대상이 자살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복수의 형태는 무엇이어야 할까? 


4. 동면의 소녀

소녀의 부모는 살아남기 위해 우악을 떨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한 채 생을 저버린다. 어린 딸만 남겨둔 채로.

/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 아버지의 책을 전부 읽는다.
/ 죽지 않는다.

노력할 필요도 없이 잘 실행하고 있는 첫 번째 목표는 물론이거니와 곰팡이처럼 번식하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포자 퍼트리기를 멈춘 서재의 책까지 모두 읽어 두 번째 목표까지 달성! 죽지 않는다는 세 번째 목표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 년의 매일매일을 책 읽는데에만 집중했던 미치는 친구와의 만남으로 애인을 찾는다는 네 번째 목표를 가지게 된다. 비지니스 서적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세 명의 의견을 들어라"(p157)라는 문구를 실행하여 마치 이솝 우화처럼 그녀는 사람들을 찾아서 집을 나선다. 처음으로 만난 인물은 첫 번째 이야기 종말의 바보 속 주인공 가토리 부부, 두 번째 인물은 동경하던 동급생이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급생의 어머니로 대신하게 되었고, 세 번째 인물은 제자의 이름과 최고 점수만큼은 잊지 않는다는 옛 과외 선생이었다. 이들과의 만남 끝에 종말이 겨울잠이라면 혼자서 자는 건 쓸쓸하다며. 역시나 애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던 미치는 곧 동화처럼 쓰러진 남자를 보게 된다. 그 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희미하게 드는 예감 앞으로 점프! 막연히 희망하기 보다 긍정적으로 실천하고 움직이는 미치의 소녀 같은 낭만과 목표들이 예뻤다. 가장 좋았던 이야기.


5. 강철의 울

소년 만화 잡지 점프에서 봄 직한 이야기였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잽, 잽, 라이트훅을 날리겠다는 우직하고 열성적인 킥복싱 선수와 그를 동경하는 소년. 종말의 선언 이후 방 안에 틀어박힌 아버지와 남은 시간만큼은 올곧게 잘 살아내고 싶은 아들의 갈등. "앞으로 3년이잖아... 어차피 3년이야. 최대한 평화롭게 살고 싶지 않아?", "세상을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잖아. 이 집안을 말하는 거야. 세상은 불가능하더라도, 이 집 정도는, 우리는 평화롭게 살 수 있잖아. 아니야? 아버지는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p210) 아버지를 향해 외치는 소년의 분노에 가슴이 뜨끔뜨끔. 종말의 소식이 들린다면 가장 먼저 방에 틀어박힐 유형의 인간이 나라서 남 일 같지 않았다. 나 또한 저와 다를 것 없이 크게 좌절하다 우울감에 빠지지 않을까. 죽을 용기도 없이. 소년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이사카 코타로 식으로 단편들의 끝, 심해의 지주에가서야 긴가민가 이어지는 부자의 뭔가 흐뭇해지는 해피엔딩도 좋았고, 소년의 땀내나는 로망도 두근두근했지만 그 중에서도 저 외침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6. 천체의 돛배


동면의 소녀에 이어 두 번째로 좋았던 이야기. 역시나 소년만화 같은 느낌으로 태양의 딱지처럼 중심인물 보다 천체 오타쿠인 주변 인물인 니노미야의 이야기가 좋았다.

"충돌할 때 넌 어쩔 거야?"
거기에서 니노미야가 뺨을 누그러뜨리고 평소의 긴장한 눈매에서 힘을 빼더니 나를 향해 웃었다.
"당연히 망원경을 봐야지."
"당연한 거냐?"
"그야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에서 몇십만 킬로미터 아니면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혜성을 보면서 기뻐했어. 그걸 훨씬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쪽으로 다가오는 거니까." 말할수록 흥분하는 그에게 나는 압도당했다.
"굉장하지 않아? 진짜로, 만약에 정말로 떨어진다면 굉장한 일이야. 지금부터 잠이 안 올 정도야."

혜성 충돌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글이글 하게 타오르는 니노미야의 말에 얼이 빠졌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 그런데 그게 정말 유쾌했다. 거짓말이지? 하고 되묻는 야베의 마음이 이해가 가서 더 웃음이 났다. 물론 종말이 닥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읽는 이야기라 웃을 수 있는 거겠지만 이 놈 정말 재미있지 않냐고, 괴짜 친구를 소개하듯 주변에 마구 얘기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7. 연극의 노

종말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다함께 살게 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


8. 심해의 지주

슈이치의 아버지는 망루를 만든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건물이 가라앉더라도 망루에 앉아 물에 휩쓸려 가는 거리를 바라보겠다는 괴짜 아버지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 새 부자는 함께 망루 앞에 서있다. 종말의 그 날, 아내와 함께 딸을 한 칸이라도 더 높이 올려 1분 1초라도 더 오래 살게 하겠다, 추하더라도 생에 대해 악착을 떨겠다고 결심하는 슈이치의 그 마음이 그대로 망루를 만든 그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괴짜의 부성애는 이런 식으로 표현 되나봐 하며 잔잔히 웃었다. 아버지에 대해 혀를 차는 슈이치 또한 보통 인물은 아니라 이 상황에서도 테이프 반납을 미룬 손님에게 연체금을 받으러 다니는 기행을 벌이는지라 그런 점도 재미있었고, 여태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단편 같은 연작집의 특성 그대로 힐즈 타운의 바보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장면들에도 눈가가 시큰시큰했다. 상투적이지만 어딘지 가족 드라마 같은 결말이 맘에 든다.    


수월하게 읽혀서 넘어가는 페이지가 가볍게만 느껴졌는데 책을 덮은지 스무날이 넘어가도록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었다. 명랑한 갱을 이어 이사카월드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기도 하고. 그러나 장은진의 날짜 없음과 마찬가지로 종말의 바보 또한 생존본능을 쫓아 이리저리 도망치며 살아남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므로 투쟁, 극복, 승리!를 모토로 한 극적인 재난 소설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비추다. 이들은 대체로 재난 극복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조차 없다. 좀비도 아니고 회오리도 아니고 눈사태도 아니고 지구를 때려박는 혜성충돌이니 별 뾰족한 수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그저 살아간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올지 안올지 모를 내일과 그 너머의 종말에까지. 그 잔잔한 살아나감이 감동적이고 유쾌하고 웃음이 나는 아주아주 재미난 이야기 모음집,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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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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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p376)


: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지금까지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책들과 이번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의 재미를 더한 값. 앞뒤 표지의 귀여운 그림과 문구로 그 내용과 분위기를 완전히 착각해버린 책. 은행털이에 이은 서점털이인가? 전국의 서점을 돌며 일어사전을 훔치는 괴짜 좀도둑들이 우연히 만난 오리들을 아파트에서 키우는 아기자기한 이야기일까 생각했었다. 남극펭귄을 키우는 파퍼씨네 가족들처럼 요란법썩한 동물 이야기에 호탕한 웃음이 터지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웬걸. 미묘하게 웃음이 싹 빠진, 영화 4월의 이야기처럼 풋풋하고 어딘지 울적하고 왜 평점이 높은걸까 살짝 의아한, 이케가미 후유키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추리소설이지만, 동시에 유연한 정통 문학"의 느낌이 있었다.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의 작품을 그저 유쾌상쾌통쾌한 장르문학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작가의 다른 면모를 느끼게 하는 첫작품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취향은 아니라서. 어지간한 팬이 아니고서야 쉽게 읽어내기는 좀 힘든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래도 작가의 마이너함을 내가 너무 얕봤던가 보다. 그럼에도 결말이나 반전은 참 좋았지만.


2. "우리의 로망은 어디인가"(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우리의 로망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집들코로 돌린다면 모형 권총을 들고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며 서점 뒷문의 망을 보는 일, 얼마나 많이 올려다 보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라는 바람에 실려서라는 밥 딜런의 노랫말을 외우게 만든 첫사랑, 꼬리말린마리(검은고양이)의 꼬리에 묶인 복권, 한끝차이로 고지엔 대신 잘못 훔친 고지린, 레서판타를 봉투 속에 숨겨 달아나는 아이들, 인과응보, 조장(鳥葬), 주마등. 그리고 코인로커 안에서 무한 재생되고 있을 신의 소리쯤 되려나. 아참, 다시 태어나 안을 수 많은 여자들까지.


3.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는 나레이션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결말. 결만만을 놓고 본다면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등장인물인 고토미, 도르지, 가와사키, 시나, 레이코 등 인물의 면면이 좀 매력이 떨어진달지 반감이 든달지 그런 부분들이 있었는데 결말에 가서 모두 해소된 느낌. 아, 주인공 고토미만 빼놓고. 고토미의 심리상태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 것이 작품의 재미를 덜하게 만든 요인이었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 만큼 고토미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읽는 중간중간 고토미 뒤에서 빵빵! 빵빵빵빵! 몇 번이고 경적을 울리고 싶었으니까. 운전자의 불만이나 화를 터트리기 위한 용도일 뿐 가장 쓸모없는 발명품이 자동차 크락션이라고 고토미는 말하지만 안전에 대한 경고, 위험주의의 의미도 있다는 걸 그녀에게 알려 주고 싶었달까. 빵빵! 빨리 경찰에 신고 좀 해라, 빵빵! 시시콜콜할 필요는 없지만 주위에 도움 좀 청하면 안되니?, 빵빵! 대체 왜 이렇게 경각심이 없니? 빵빵빵빵! 정말 끝까지 이럴래?! 마음을 담은 거친 크락션 소리가 오히려 그녀에겐 해가 된 듯이 이야기는 결국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상쾌한 물속으로 기운차게 다이빙 하듯 뛰어들어가는 도르지의 그 결말이 좋아서, 중도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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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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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신비한 남자(독자의 한줄평 속 문구 by오세영) 오디가 있었다면 산산이 부서진 남자 속엔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해 숨이 막히는 남자 조가 있었다. 대학교수로 부임한 조는 강의 첫날 거친 빗속에서 다리 난간에 매달려 있다 자살하는 여성을 설득하는 일을 맡게 된다. 어딘지 의문점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ㅡ 그녀가 죽기 직전, 조는 그녀의 휴대폰 너머 한 남성의 "뛰어 내려" 라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는데 확신하질 못한다 ㅡ 그 여성의 죽음이 별 여지없이 자살로 종결 되어지려던 순간 조를 찾아온 소녀 다아시의 "엄마는 자살한 게 아니에요, 엄마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관람차조차 타지 못해요" 라는 말에 자살에서 타살로 사건은 급선회를 하게 된다. 연이어 이어지는 연쇄살인사건들. 피해자는 모두가 여성들로 한결 같이 옷을 발거벗은 채 누군가와 통화를 지속하다 마치 고문 받듯 자살 같은 타살로 삶을 종결 당한다.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엿볼 수 있는 수법들 속 드러나는 범죄자를 쫓아 심리학자인 조는 은퇴한 경찰 친구 빈센트와 함께 살인마의 추적을 시작하게 되고, 추적의 얼개를 풀어 하나하나 비밀을 밝혀나가는 그 결정적인 순간 살인마의 발길은 조의 내밀한 공간까지 짓쳐 들어온다.

"조, 나는 사람이 희망을 모두 잃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긍지, 기대, 믿음, 욕망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지배해. 완전히 장악해버리지.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는 아니야. 그렇다고 심장이 저며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축축한 소리도 아니지. 그건 하나의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아연히 상상하게 되는 소리야. 가장 강력한 의지가 무너져내리고, 과거가 현재로 스며들어오는 소리. 너무나 높은 고음이라서 지옥의 사냥개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네게도 그 소리가 들리나?"
"아니."
"누군가가 몸을 조그맣게 웅크리고 조용히 울면서 끝없는 밤으로 침잠해가고 있어. 엄청나게 시적이지 않아? 나는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시인이야. 조, 내 말 들리나? 아직 듣고 있어? 지금부터 내가 줄리안에게 하려는 게 바로 이런 거야. 줄리안의 마음이 부서지면 네 마음도 그렇게 되겠지. 원 플러스 원이라고나 할까." 





                                                                                         

 

ㅡ 산산이 부서진 남자, p574, 북로드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에는 이 소설이 한 범죄자로 인해 인생이 무너져내린 피해자의 복수극일 줄만 알았다. 그러므로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그 피해자를 지칭하는 문구일 거라 여겼지만 소설을 다 읽은 지금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주인공 조 올로클린일까 연쇄살인마 기드온일까. 그도 아니면 둘 다인걸까. "누군가가 몸을 조그맣게 웅크리고 조용히 울면서 끝없는 밤으로 침잠해가고 있어" 라고 살인마 기드온은 말한다. 아동폭력, 가정학대, 여전히 살아 있고 그를 옭매고 있는 가해자. 그렇게 산산히 부서지는 누군가가 그 자신이었을지도 모를 기드온의 말을 무시할 도리가 없었다. 조는 분노했지만 그 순간 독자인 나의 분노는 저도 모르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동시에 살인마 기드온의 사연과 대사에 불손한 마음으로 작가에게 울컥해지고 만다. 감정적으로 범인에게 동조하게 되는 순간, 그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동정하게 되는 순간순간들이 싫다. 누가 뭐라 해도 그가 벌인 짓이 잔악무도한 살인이라는 것은 변치않으므로. 그럼에도 그 또한 한 가정과 한 사회의 피해자이기에 온전히 미워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직접적 타살 대상이 아이들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 정도로 감정이입이 높은 소설 속 피해대상이 아이들이었다면 어떤 찬사를 받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나는 책을 다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주인공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전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 속에서 다른 살인사건이 있었던 모양으로 이미 한 차례 범죄사건을 맞닦드렸던 적이 있던 부부 조와 줄리안의 일견 완벽해 보이는 사랑이나 조의 점점 심해져가는 파킨슨 병, 심리학자로서 스스로 불치병 환자의 불안 삼단계를 극복했다고 믿지만 어딘지 숨길 수 없는 조의 내밀한 불안들, 살인사건의 첫번째 피해자의 딸이자 아름다운 소녀인 다아시의 침투로 평화의 균형이 깨어지기 시작한 조의 가정, 다아시에 대한 줄리안의 노골적인 적대감,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조의 질투 등 살인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조금씩 무너지는 조의 생활과 심리, 범인 간의 이야기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놀라울 정도의 균형감을 발휘해 독자의 집중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 간다. 시작하는 순간 책의 끝까지 놓을 수 없었다는 류의 평이 얼마나 상투적인 것인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그런 표현이 마땅하게 느껴졌고 나 또한 강조해 쓰고 싶다. 재미있다. 군인 출신의 사연있는 악당이라는 소재 자체는 분명 식상한 면이 있었고 주인공의 우유부단한 태도들도 답답한 면이 있었지만 범죄에 대한 묘사가 하드코어 하지 않다는 점, 내밀한 심리 묘사, 아름답게도 느껴지는 부성애와 이성애의 면면들이 서정적인 스릴러로 보기 드문 수작이다. 너무 완벽해 인간이기보다는 신의 현신 같았던 오디보다 지극히 불안정해 어느 순간에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던 남자 조가 조금 더 취향이기도 했고. 마이클 로보텀 작가의 신작 소식도 있는 지금, 과거의 매력적인 작품들 산산이 부서진 남자와 라이프 오어 데스를 함께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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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고요 은행을 털고 간자키 일당으로부터 습격 당한 때로부터 다시 1년 후. 제목처럼 명랑한 갱단들의 전혀 평범치 못한 일상들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마치 소년 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살인 사건들처럼 명랑한 갱단들의 일상에서도 석연치 않은 미스테리한 일들이 작은 불꽃처럼 팡팡 터지기 시작한다. 갱단의 리더이자 인간거짓말 탐지기인 시청 계장 나루세는 부하 직원 오쿠보와 함께 민원신청을 왔던 시민 몬마가 칼을 든 범인으로부터 위협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몬마가 떨어뜨린 쪽지의 수수께끼 같은 숫자를 해독해 건너편 아파트에서 발생한 강도사건을 처리한다. 지독한 수다쟁이 카페 사장인 교노는 단골 손님 후지이의 환상의 여인을 찾기 위해 그의 미스테리한 저녁을 뒤쫓다 후지이의 동료 모모이의 교통사고 비밀을 밝혀낸다. 모 회사의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 중인 인간초시계 유키코는 동료 직원 아유코에게 개그쇼 티켓을 남기고 간 남자에 대한 흔적을 쫓아 그와 아유코 사이의 숨은 사연을 털어낸다. 소매치기에 능한 동물애호가이자 양 성애자인 구온은 도박빚쟁이 와다쿠라의 뒤를 캐어 그의 강도합류사건을 막는다. 별개의 단독 단편처럼 이어지던 "제1장. 악당들은 각자의 일상들을 보내며 때로 남의 뒤치다거리를 해준다" 가 끝나는 순간 난데없이 펼쳐지는 또다른 은행강도사건. 이제야 본업을 시작하는구나, 어떤 재미난 일이 펼쳐질까 두근두근 하는 순간 제2장의 제목처럼 "악당들은 먼젓번 실수를 교훈 삼아 대책을 강구하나, 은행 습격 후 골칫 거리에 직면한다." 골칫거리란 다름아닌 나루세의 부하직원 오쿠보의 어린 여자친구 요시코. 유명한 약국체임점의 사장 딸인 요시코가 남자친구인 오쿠보와의 사이를 허락받기 위해 가출했다 납치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요시코의 납치사건이 나루세 일당이 은행을 털던 그 순간에 일어났던 것만 같다?! 근래없던 부하애를 발휘하며 요시코를 구해내려는 나루세의 작전과 범인들에 대한 추적 속 드러나는 일말의 전모들, 결코 우연은 없다는 끊임없는 작가의 세뇌 속 아무 연관도 없는 것 같던 제1장의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얽히며 사건을 꼬고 풀고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후추처럼 뿌려지는 어수룩한 납치범들과 가짜 악당에서 진짜 악당으로 이어지는 납치의 연속사건, 주인공 사인방의 기지와 익살 속 악당의 예견된 남미 감방행까지. 빵빵 터지는 재미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웃음이 가득한 나루세 부하 직원의 여자친구 구출 대작전이었다.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속엔 손에 땀을 쥐는 미스테리나 긴장감은 없다. 대신에 깜찍한 우연들과 더 깜찍한 우연의 결과물들이 존재할 뿐. 소설인데 마치 만화처럼 느껴져 조금 과장하면 글자까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는 지경으로 뛰어난 가독성이 장점이다. 장면장면들이 어찌나 착착 눈 앞에 그려지는지. 명랑한 갱단들의 조금 더 인간적이고 단독적인 일상을 마주하며 마치 은퇴한 연예인의 생활을 엿보는 듯한 얼렁뚱땅한 웃음과 애정이 솟아나는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그들 명랑한 갱단에게 습격 당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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