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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고요 은행을 털고 간자키 일당으로부터 습격 당한 때로부터 다시 1년 후. 제목처럼 명랑한 갱단들의 전혀 평범치 못한 일상들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마치 소년 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살인 사건들처럼 명랑한 갱단들의 일상에서도 석연치 않은 미스테리한 일들이 작은 불꽃처럼 팡팡 터지기 시작한다. 갱단의 리더이자 인간거짓말 탐지기인 시청 계장 나루세는 부하 직원 오쿠보와 함께 민원신청을 왔던 시민 몬마가 칼을 든 범인으로부터 위협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몬마가 떨어뜨린 쪽지의 수수께끼 같은 숫자를 해독해 건너편 아파트에서 발생한 강도사건을 처리한다. 지독한 수다쟁이 카페 사장인 교노는 단골 손님 후지이의 환상의 여인을 찾기 위해 그의 미스테리한 저녁을 뒤쫓다 후지이의 동료 모모이의 교통사고 비밀을 밝혀낸다. 모 회사의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 중인 인간초시계 유키코는 동료 직원 아유코에게 개그쇼 티켓을 남기고 간 남자에 대한 흔적을 쫓아 그와 아유코 사이의 숨은 사연을 털어낸다. 소매치기에 능한 동물애호가이자 양 성애자인 구온은 도박빚쟁이 와다쿠라의 뒤를 캐어 그의 강도합류사건을 막는다. 별개의 단독 단편처럼 이어지던 "제1장. 악당들은 각자의 일상들을 보내며 때로 남의 뒤치다거리를 해준다" 가 끝나는 순간 난데없이 펼쳐지는 또다른 은행강도사건. 이제야 본업을 시작하는구나, 어떤 재미난 일이 펼쳐질까 두근두근 하는 순간 제2장의 제목처럼 "악당들은 먼젓번 실수를 교훈 삼아 대책을 강구하나, 은행 습격 후 골칫 거리에 직면한다." 골칫거리란 다름아닌 나루세의 부하직원 오쿠보의 어린 여자친구 요시코. 유명한 약국체임점의 사장 딸인 요시코가 남자친구인 오쿠보와의 사이를 허락받기 위해 가출했다 납치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요시코의 납치사건이 나루세 일당이 은행을 털던 그 순간에 일어났던 것만 같다?! 근래없던 부하애를 발휘하며 요시코를 구해내려는 나루세의 작전과 범인들에 대한 추적 속 드러나는 일말의 전모들, 결코 우연은 없다는 끊임없는 작가의 세뇌 속 아무 연관도 없는 것 같던 제1장의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얽히며 사건을 꼬고 풀고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후추처럼 뿌려지는 어수룩한 납치범들과 가짜 악당에서 진짜 악당으로 이어지는 납치의 연속사건, 주인공 사인방의 기지와 익살 속 악당의 예견된 남미 감방행까지. 빵빵 터지는 재미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웃음이 가득한 나루세 부하 직원의 여자친구 구출 대작전이었다.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속엔 손에 땀을 쥐는 미스테리나 긴장감은 없다. 대신에 깜찍한 우연들과 더 깜찍한 우연의 결과물들이 존재할 뿐. 소설인데 마치 만화처럼 느껴져 조금 과장하면 글자까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는 지경으로 뛰어난 가독성이 장점이다. 장면장면들이 어찌나 착착 눈 앞에 그려지는지. 명랑한 갱단들의 조금 더 인간적이고 단독적인 일상을 마주하며 마치 은퇴한 연예인의 생활을 엿보는 듯한 얼렁뚱땅한 웃음과 애정이 솟아나는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그들 명랑한 갱단에게 습격 당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