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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1.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p376)
: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지금까지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책들과 이번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의 재미를 더한 값. 앞뒤 표지의 귀여운 그림과 문구로 그 내용과 분위기를 완전히 착각해버린 책. 은행털이에 이은 서점털이인가? 전국의 서점을 돌며 일어사전을 훔치는 괴짜 좀도둑들이 우연히 만난 오리들을 아파트에서 키우는 아기자기한 이야기일까 생각했었다. 남극펭귄을 키우는 파퍼씨네 가족들처럼 요란법썩한 동물 이야기에 호탕한 웃음이 터지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웬걸. 미묘하게 웃음이 싹 빠진, 영화 4월의 이야기처럼 풋풋하고 어딘지 울적하고 왜 평점이 높은걸까 살짝 의아한, 이케가미 후유키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추리소설이지만, 동시에 유연한 정통 문학"의 느낌이 있었다.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의 작품을 그저 유쾌상쾌통쾌한 장르문학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작가의 다른 면모를 느끼게 하는 첫작품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취향은 아니라서. 어지간한 팬이 아니고서야 쉽게 읽어내기는 좀 힘든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래도 작가의 마이너함을 내가 너무 얕봤던가 보다. 그럼에도 결말이나 반전은 참 좋았지만.
2. "우리의 로망은 어디인가"(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 "우리의 로망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집들코로 돌린다면 모형 권총을 들고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며 서점 뒷문의 망을 보는 일, 얼마나 많이 올려다 보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라는 바람에 실려서라는 밥 딜런의 노랫말을 외우게 만든 첫사랑, 꼬리말린마리(검은고양이)의 꼬리에 묶인 복권, 한끝차이로 고지엔 대신 잘못 훔친 고지린, 레서판타를 봉투 속에 숨겨 달아나는 아이들, 인과응보, 조장(鳥葬), 주마등. 그리고 코인로커 안에서 무한 재생되고 있을 신의 소리쯤 되려나. 아참, 다시 태어나 안을 수 많은 여자들까지.
3.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는 나레이션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결말. 결만만을 놓고 본다면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등장인물인 고토미, 도르지, 가와사키, 시나, 레이코 등 인물의 면면이 좀 매력이 떨어진달지 반감이 든달지 그런 부분들이 있었는데 결말에 가서 모두 해소된 느낌. 아, 주인공 고토미만 빼놓고. 고토미의 심리상태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 것이 작품의 재미를 덜하게 만든 요인이었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 만큼 고토미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읽는 중간중간 고토미 뒤에서 빵빵! 빵빵빵빵! 몇 번이고 경적을 울리고 싶었으니까. 운전자의 불만이나 화를 터트리기 위한 용도일 뿐 가장 쓸모없는 발명품이 자동차 크락션이라고 고토미는 말하지만 안전에 대한 경고, 위험주의의 의미도 있다는 걸 그녀에게 알려 주고 싶었달까. 빵빵! 빨리 경찰에 신고 좀 해라, 빵빵! 시시콜콜할 필요는 없지만 주위에 도움 좀 청하면 안되니?, 빵빵! 대체 왜 이렇게 경각심이 없니? 빵빵빵빵! 정말 끝까지 이럴래?! 마음을 담은 거친 크락션 소리가 오히려 그녀에겐 해가 된 듯이 이야기는 결국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상쾌한 물속으로 기운차게 다이빙 하듯 뛰어들어가는 도르지의 그 결말이 좋아서, 중도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