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역 폭발사건
김은미 지음 / 제8요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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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헤이, 윤하, 복순을 중심으로 1936년에서 45년, 다시 199X년과 201X년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소설이다. 실은 이렇게 다양한 소재가 얽혀있는 소설이라고는 생각지를 못해서 초반 조금 당황을 했다. 윤동주 시인에게 숨겨둔 연인이 있었음을 가정한 대체역사물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정보 조합을 잘못한 거였다. 우리 역사의 방향에서 무언가 달라진 건 아니므로 대체역사라고 할 순 없고 역사 판타지 정도로 장르를 인식하면 될 것 같다. 

시작은 신주쿠역 폭발사건이었다. 제목의 이 폭발사건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할거라 생각했는데 제대로 뒤통수였다. 201X년. 매일 300만명이 오가는 신주쿠역 그 중에서도 유독 깜깜한 어느 구역에 설치된 폭탄이 빵 하고 터져버린다. 경찰은 CCTV를 돌려 재빠르게 용의자를 체포했으나 그는 푼돈을 받고 종이봉투를 놓고 왔을 뿐 진범은 아니었다. 폭발의 배후에 존재하는 검은 마스크와 검은 모자의 남자. 경찰은 이 두가지 단서만을 가진 채 범인을 쫓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야기는 훌쩍 199X의 과거와 다시 또 훌쩍 1936년의 시대를 되짚어간다. 90년대의 주인공은 코헤이이다. 재일조선인 코헤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꿈을 꾼다. 부모님이 검은 승용차에 쫓기다 과속으로 사망한다는 매우 재수없는 꿈이었다. 하루종일 뒤숭숭한 기분이었지만 별 일 있으랴 했는데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이 꾼 꿈과 한치 어긋남 없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건. 그리고 다시 한번 꿈 속을 지배하기 시작한 한국여자 윤하. 꿈 속에서나마 만나는 윤하의 존재에 위로받던 코헤이는 그러나 그녀가 사망하는 또다른 꿈을 꾸게 되고 얼마 안있어 교환학생으로 온 윤하와 직접 마주하게 된다. 부모님의 꿈을 단순 우연이라 치부하면서도 내심은 불안했던 그가 이제는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예지몽을 꾼다는 사실을! 또다른 주인공 복순의 시대는 36년이다. 일제시대 만주로 이주한 복순의 부모님이 무리한 노동으로 사망한 후 복순은 오빠의 교장선생님을 따라 일본으로 가게 된다. 마츠모토가의 식모살이를 하던 그녀 앞에 도련님의 친구 동주가 나타났고 그들은 운명처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역사가 반복됐다.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사건으로 동주가 체포, 연인 복순도 혐의를 벗지못해  복역되고 두 사람은 함께 생체실험을 당한다. 동주는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지만 복순은 고문 같은 생체실험의 여파 속에서도 뱃속의 아들 준영을 잃지 않았고 홀로 강인하게 그를 키워낸다. 이변을 느낀 것은 아들 준영이 다 자라도록 그녀가 조금도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과 주변이 알아채면서부터였다. 어느 주사바늘이 몰고온 파괴력이 세월이 그녀를 비껴가게 만든 것이다. 복순은 잠적한다. 그리고 현대로 들어와 복순과 코헤이, 윤하의 시간이 한 톱니바퀴 안에서 맞물린다. 그러다 신주쿠역 폭발사건까지 발생한다. 어째서? 왜? 무슨 이유로?

아무 연결고리 없을 것 같은 이들 인물 사이에 얼개가 엮이며 풀려나오는 한땀 한땀의 역사가 아쉽고 아프고 미안하고 화가 난다. 조금 더 상세하고 조금 더 깊이 있고 무엇보다 조금 더 많이 윤동주 시인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조금 속상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 시인과의 만남을 꽤 기대하고 있었던걸까. 하지만 역사와 예지몽, 극복된 생로병사, 더하여 제국주의 시대 일본을 여전히 찬양하며 일본의 부활(아니 지금도 너무 잘 사는 것 같은데요;;)을 꿈꾸는 세력과의 다툼이 주는 재미가 없지는 않았기에 김은미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내내 기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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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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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단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인간은 말이지, 밥을 먹으면 똥을 눠야 해.
밑을 닦을 휴지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폭력단은 화장실 휴지 같은 거야." (p213)

잘 쓴 스릴러 소설이 주는 희열에는 일반적인 감동 이상의 강력한 고양감이 있다.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처럼 단시간에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달까. 결국 평소 잠드는 시간을 훌쩍 넘겨 새벽 늦게까지 흥분 속에 독서를 하고 말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철야독서, 철야책, 고독한 늑대들과의 만남. 간밤이 토요일이라 다행이다.

오가미 쇼고,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의 주임이자 폭력단계 반장인 그와의 첫만남은 어처구니 없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커피숍, 시간은 오후 한 시. 일반적인 약속이라면 그게 뭐? 하겠지만 오가미 쇼고는 히오카의 직속상사다. 출근도 않은 짝꿍 상관을 찾아 발령 첫날부터 신입이 외근을 나온거다. 이 순진하고 교과서의 전형 같은 신참 경관 히오카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사를 하는데 왜 야쿠자 같이 구냐며 뒤통수를 빡! 상사가 담배를 빼무는데 왜 멍청이 같이 가만 보고 있냐고 또 뒤통수를 빡! 파출소 1년 기동대 2년 근무했다 하니 숫처녀냐는 비웃음을 다시 빡! (2018년이 아니라 1988년이 배경임을 감안하며 분노를 삭히자.) 야쿠자하듯 상사 앞으로 앞서 안가고 뒤를 따랐다고 재삼 뒤통수를 빡빡! 어떤 때는 야쿠자냐고 때리고 어떤 때는 야쿠자 안같다고 때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거기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어린양과 다름없는 히오카를 던져 조폭과 싸움까지 하게 만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전히 발령 첫날이다. 히오카는 자갈에 눈을 맞고 쌍코피가 터지고 연거푸 배를 걷어차이고 하늘에 별이 뱅글뱅글 보일 정도로 두들겨 맞고 쓰러진다. 도망쳐 히오카,이 직장은 아닌가봐! 

"히오카, 자네는 2과 형사의 임무가 뭐라고 생각하나?"
"폭력단을 괴멸시키는 겁니다"
"폭력단이 사라지면 우리 밥줄도 끊겨. 우리의 임무는 야쿠자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야. 나머지는 도를 넘는 녀석들을 없애기만 하면 돼." (p214)

상스러운 입버릇에 근무는 설렁설렁 가혹행위는 습관이고 증거조작도 밥 먹듯이. 조폭과의 연은 또 어찌나 깊은지 호형호제는 기본에 야쿠자 두목에게 폴더인사 뇌물수수로 씀씀이도 장난없다. 그러나 이런 남자가 경찰청장상을 비롯한 표창을 100회 넘게 받으며 범죄자들 특히 폭력배들을 무수히 잡아들였으니 대체 일본 경찰은 얼마나 썩은거냐 라는 생각이 들기 일수. 시작의 이미지와는 좀 다른 사람인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야쿠자 조직의 경리였던 남자의 장기 실종 사건을 접하면서부터였다. 뼛속 깊이 썩어빠졌다고 생각한 상사의 의외의 면모들을 히오카는 접하게 된다. 타락경찰의 정수인 줄만 알았던 오가미가 실은 히로시마 내의 야쿠자들 사이에서 지랫대 역할을 자청하고 있었다는 것. 경찰과 야쿠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며 양쪽에서 인정받고 양쪽에서 공격받는 다중의 생활을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심, 경찰로서의 소명만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히오카의 발령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터지는 야쿠자들의 이권다툼과 폭력, 살인, 연이은 총격 앞에 히오카는 그리고 오가미는 구레하라와 더 크게는 히로시마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내내 등장하는 삭제된 경찰일지의 반전까지 더하여 시작부터 끝까지 바닥나지 않는 즐거움으로 무장한 책이었다. 지루함이라는 방탄조끼에 탕탕 총탄을 새기는 고독한 늑대들. 그들과 함께 달리며 그들과 함께 웃고 그들과 함께 울었다. 콜드 느와르로 포장돼 있지만 내게는 너무 핫했던, 뜨거운 여름 늑대들이 흘리는 피땀눈물을 상기시키는 최고의 경찰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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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부엌 - 맛있는 이야기가 익어가는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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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
싱크대도 작고 조리 공간도 좁다.
하지만 여기서 만들지 못할 요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양과좌점 코안도르, 남극의 쉐프, 리틀 포레스트, 카모메 식당. 일본의 부엌 그도 아니면 일본의 음식을 엿볼 수 있는 영화들. 도쿄의 부엌 그 첫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곧장 그 영화들을 떠올렸다. 옅고 짙은 마루. 잡다한 물건들로 수선스런 선반.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그릇. 르쿠르제 그도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메이커의 무쇠 냄비와 주전자. 바람에 흩날리는 새하얀 커튼현대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닌데 작고 좁은 조리대와 싱크대에 어울린 이런 풍경들은 갑갑하다기 보다 식탁 위에 소박한 입맛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만난 책이 또한 그랬다. 작가가 매주 한 곳씩 103군데나 되는 도쿄의 집들을 방문하여 엮은 책 속에서 만난 부엌들은 눈 돌아가게 화려하거나 부럽게 아름답지는 않다. 작가가 전문 사진가가 아니라 아마추어여서 그럴 지도 :) 그러나 생활의 맛, 풍경으로 뿜어내는 맛이 있어 좋다. 각각의 부엌이 가진 사연들이 부엌보다 더 진한 사연으로 맛을 우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령에 혼자 지내는 사람인 경우엔 취재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부부인 경우엔? 설령 노숙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쑥스럽게 부엌을 소개해 준다. 노숙에 부엌? 말이 앞뒤가 안맞는 것도 같지만 정착형 노숙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있는가 보다. 강변에 얼기설기 엮은 오두막집 같은 곳에 사는 이들. 그러나 손님이 오면 합판을 주워 만든 테이블에 캔커피를 대접하는 여유가 있다. 부엌에서 엿보는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와 아이를 포기한 부부의 삶은 닮고도 달라서 각각의 커플을 모두 응원하게 된다. 어머니의 온기를 잊고 싶지 않아 그가 떠난 후에도 마루바닥 하나 교체하지 않는 딸의 부엌과 어머니가 떠나자 마자 집을 허물고 이사 나간 또다른 딸의 삶도 있었다. 남편을 위해 20년 가까이 매실을 담았지만 별거 후 올해를 그냥 지나쳤다는 만화가는 입으로는 돌아와도 이제 줄 방은 없다고 하지만 부엌 한 켠에 여전히 자리한 매실병에서는 그녀의 다른 속내가 비치는 듯도 했다. 고향에서 보내온 조미료 및 식량박스에 의지해 음악생활을 이어가는 대학생과 요리하진 않지만 레시피 노트 작성과 조리도구 모으기가 취미인 직장인도 기억에 남는다. 42세가 되어 드디어 세 가지 반찬은 만들 줄 알게 되었다고. 과연 나도 늦지 않았구나 싶다. 요리쯤 조금 더 천천히 시작해도 되겠어 :-) 가장 감명 깊었던 사연은 장국영에 반해 홍콩 가정식 요리를 만들게 된 주부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고 자란 거리의 맛을 좇아 홍콩까지 찾아가 요리를 배우고 그가 팬들의 곁을 떠난 지금까지도 그 요리들로 본인과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 먹는 거 참 귀찮고 대단찮게 여기는 나지만 베란다에 말리고 있는 돼지고기 하나에까지도 정다운 웃음이 터졌다. 사는 거 참 별 거 없는데 별 거 없는 걸 이토록 재미나게 꾸리는 사람이 있구나 감탄하고 말았다.  

쓰고 보니 특별한 사연의 열거가 되었지만 실은 평범한 이야기를 가진 부엌이 훨씬 많다. 평범하지만 "고향과의 거리. 지금까지 걸어온 길.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라왔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생활신조와 장래의 꿈까지" 모두가 달라서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다. 부엌의 수다스러움에 푹 빠진 시간, 나의 주방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주말 오늘, 책은 잠깐 내려놓고 정성 들여 부엌을 정리해봐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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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프랑수아 아르마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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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아멜리 노통브, 요 네스뵈, 밀란 쿤데라, 페터 회, 더글라스 케네디, 히라노 게이치로 등 유럽과 북미, 러시아,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작가들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

단 한번도 대규모 설문조사의 대상이 되어 본 적 없는 이 질문이 전세계의  작가 180여명과의 인터뷰와 편지를 통해 답변을 받습니다.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 전부를 영원히,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나머지는 어떤 하나보다도 더 나아 보인다"(p7/지상의 양식/지드)는 생각으로 답변을 포기한 많은 작가님이 계셨던 것 같지만 대게는 본인 스타일과 양식대로 답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무인도에 갇히게 된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님들은 과연 어떤 책들을 선택하셨을까요?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으로 들어가 작가님 라벨 별로 분류된 책들을 꺼내어 봅니다.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건 성경과 셰익스피어 전집이로군요. 잇따라 프루스트, 톨스토이, 매우 의외로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호메로스, 조이스, 몽테뉴 작가의 고전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당연히 생존작가님 보다는 고인들의 명작이 화제였구요. 무인도이기 때문에 무조건 긴 책으로 선택하신 작가님들도 많으셨는데 폴 오스터의 답변이 인상적입니다.

"무지무지 두꺼운 책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 전집, 돈키호테, 몽테뉴의 수상록을 가져가겠다. 저런, 셋 다 동시대인 아닌가! 좋은 시절이었다!" (2007년 11월)


으응?? 세 분이 동시대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검색까지 했는데 저런, 셰익스피어 1564 세르반테스 1547 몽테뉴 1533년생이시더군요. 전 왜 셰익스피어가 한참 선배 연배라고 생각했었을까요? 어쨌든 폴 오스터도 돈키호테를 선택했다는 거. 여기에 별표. 별 의미는 없고 제가 하반기에 돈키호테를 읽을 생각이어서요. 그런거죠 뭐 :-)


 

무인도이니만큼 식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것을 걱정하신 작가님들도 계셨습니다. 딱 네 분. 그 중 존 밴빌의 추천책이 인상적이었어요.


"바다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내겐 분명 식탁의 즐거움이 가장 아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방수 가방 안에 마땅히 정통 이탈리아 요리의 성서로 정의되는 <일 쿠키아이오 다르젠토>를 넣어가겠다. 꼬질꼬질하고, 맨발에, 넝마를 걸치고 종려나무 잎사귀 한 장을 접시 삼아 염소 고기와 카사바 뿌리(나는 이게 정확히 뭔지도 모른다) 요리 위에 수그린 채 브란지노 알 피노키오(펜넬을 가미한 농어요리)나 소박한 수프 조리법을 보며 침을 흘리고, 레몬나무가 자라는 그 지상낙원을 꿈꿀 수 있어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 무척이나 생생하게 그려진다. (2015년 4월, 존 밴빌)"

                        
마땅히 저도 모르는 요리들이지만, 정확이 뭔가요 대충도 감이 안잡히는 걸, 어쩐지 식욕이 팍팍 돌고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겁니다. 이탈리아 요리야 스파게티로 제대로 못만드는 저이지만 <일 쿠키아이오 다르젠토>를 나도 읽어보고 싶다 하며 열심히 검색을 했죠. 세상에! 운명처럼 2017년에 떠억하니 번역이 되어 출간이 된겁니다. 한국어판 제목은 <실버 스푼>. 제가 아주 좋아하는 빨간 양장본입니다. 그러나 구매 페이지까지 넘어가지 못하고 저는 무릎을 꿇었어요. 가격이 99,000원.  시시시시시실화인가요?? 이런 책이 있다~ 하는 걸 알게 된 것으로 저는 만족을 하겠습니다 . 덧붙여 줄리언 반스도 요리책을 선택했어요. 다람쥐 요리법이 적힌 <즐거운 요리하기>. 무인도에 과연 다람쥐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사냥에 대한 기개를 높이삽니다.



로맨티스트 로버트 올렌 버틀러는 아내의 책을 가져가겠다고 당당히 선포하셨더군요. 책을 가져감으로써, 아내를 함께 데려가는 셈이라나요. 혹 편지를 쓰실 적에 아내분이 옆에 앉아계셨던 건 아닌가 몰라요. 의심하고 싶습니다. 매우매우 의심하고 싶어요. (속마음은 부럽다..일까요?) 나는 이미 읽은 책으로만 가져가겠다는 파와 곰팡내 나게 읽은 책은 뭐하러 가져가 파로도 양분되었는데 게중 가장 튀는 분은 할런 코벤이었습니다.

"나는 아직 읽은 적 없는 소설들을 가져가겠다. 내가 어떤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드물다. 내가 무인도에 간다면 그건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일 텐데, 무엇 하러 재독을 하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내 머릿속에서 이따금 원작과 사뭇 다른 형태로 제 삶을 계속 살아나가며, 나는 실제 경험을 되살림으로써 그 정신적 모험을 망치는 것을 거부한다. 추천은 언제든 환영인데, 부탁드리건대 내가 그 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소설을 추천해주길 바라며(특히 에세이는 사절!), 길었으면 한다." (2015년 4월. 할런 코벤)

할런 코벤 작가는 특별히 줄리언 반스 작가와 붙여 대담을 나눠보게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이유는 "아무리 길더라도(혹은 내가 아직 모르는 책이라도) 소설은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라고 줄리언 반스가 말했기 때문입니다. 취향이 극과 극이죠? 제 취향은 할런 코벤쪽이군요. 저도 에세이는 영. 딱 두 분의 작가님이 제가 좋아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꼽아주셨는데요. 그중에서도 로버트 굴릭은 설득을 최고로 쳐주셨더라구요. "내가 읽어본 가운데 가장 충만하고, 뛰어난 로맨틱 코메디(2015년 6월)" 라구요. 기분이 울적할 때면 제인 오스틴을 꺼내든다는 작가님, 저도 한번 실행을 해보겠습니다.

몰래 한 권을 더 숨겨가겠다는 히라노 게이치로, 무인도에 책을 뭐하러 가져가냐는 응우옌 후이 티엡(베트남 소설가), 설문조사에는 절대 답변하지 않겠다는 미셸 우엘백, 전화번호부면 충분하다는 움베르토 에코(이 설문에 응하실 때만 해도 살아계셨다는 게 그냥 그 사실에 괜히 찡했습니다), 오로지 중국고전 주역과 사기와 장자로만 꼽아주신 중국작가님 랴오이우의 답변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일본, 중국, 베트남 작가님들이 계신데 끝끝내 한국작가님이 아무도 등장을 안하셔서 조금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에 꽂힌 아름다운 책들을 한 권 한 권 완독하는 어느 여유로운 날들을 상상하며 긴 리뷰 마칩니다.

"모두 행복하고 그림 같은 은둔 생활 하시기를!" (2015년 3월. 티에르노 모네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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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여가 1
명효계 지음, 손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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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최고의 문파로 이름 높은 열화산장의 고명딸 열여가는 집을 나와 청루 품화루에 몸을 담는다. 귀한 댁 애기씨가 집을 나온데는 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었으니 자그마치 혼인을 약속한 남자의 바람!! 바람!!! 바람!!!! 열화산장 수제자 전풍의 바람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던 것. 열여가를 믿음직하게 아껴주었던 호남자 전풍은 애처로운 기생 ㅇㅇ에게 마음이 돌아서 여가를 무시하기 일수다. 열녀의 기운이 가득한 열여가는 자그마치 2년에 걸쳐 변심 중인 전풍이 막 대하고 박대해도 애끓는 연정을 버리지를 못한다. 하다하다 생각해낸 게 바람난 그녀가 기생이니만큼 자신도 청루에서 제대로 남자 홀리는 법을 배워보자 라는 것. 전풍의 마음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기녀들의 하녀가 되어 수발 들고 굽신대는 일쯤 대수로울까 싶다.

그러나 기생이라고 보니 별 대단한 수완도 없고 별무소득으로 시간만 흐르는 하루하루. 묵직한 허무감을 이겨내지 못한 채 결국 마중나온 사형 옥자한의 걱정에 이끌려 천금만금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간다. 헤어져있었으니만큼 전풍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무언가 깨달은 게 있지 않을까 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똥물 그 자체. 저 나름 사연을 갖추긴 갖춘 듯한 전풍은 남주 아웃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무례하고 폭력적으로 여가를 대한다. 키스 장면은 애틋함 하나 없이 혐오스럽기 그지 없고! 이런 놈 때문에 속끓는 여가가 등신인가 싶을 정도로 갑갑하다. 전풍의 저만 아는 사연따위 알 것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하여간 이런 놈이 남주 후보라면 볼장 다봤지. 너는 그냥 똥차다 똥차. 흥!! 하고 분노하는 사이 여가만 애면글면. 전풍은 여전히 나를 사랑해 따위의 시덥잖은 생각으로 버티고 버티다 기녀와의 폭행이 원인이 되어 드디어 전풍을 떠나보낸다. 너랑은 끝! 결혼 불가! 전풍 혼자 술 마시고 토하는 찌질댐을 모른 채 분연히 재출가 하여 세상으로 나아간다.

여가의 첫 가출 때와 달리 두번째 출가 때에는 드디어 동행이 생겼다. 그이가 바로 두번째 남주 후보 은설이다. 눈이 멀 것 같이 눈부신 미모에 금 타는 솜씨가 천하제일인 은설은 여가를 자신의 주인으로 정하고 매일 같이 사랑해 사랑해 널 사랑해  나도 사랑해 줘를 입에 달고 산다. 여가에 대한 은설의 마음이 지극하지만 신분도 정체도 어딘지 미스터리. 잘 생긴 건 알겠는데 어쩐지 여가는 은설에게 좋아하는 마음 이상의 애틋함이 생기지를 않는다. 여전히 마음 한 켠에 품은 전풍을 잊지 못하는 탓도 있고 언제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병약한 미남자 옥자한에게 한 발 걸쳐 마음이 흔들린 탓도 크다. 사각관계의 중심, 장하다 열여가 ㅋㅋ 여가의 사형이자 황자인 남주 후보 3 옥자한 또한 범상치 않은 인물인데 날 적부터 귀가 들리지 않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컴플렉스를 극복하게 해준 여가를 만나 여가 나이 세 살 옥자한 나이 아홉살 때부터 마음에 품고 지극한 짝사랑을 십년 넘도록 이어 오고 있다. 도대체 여가가 누구랑 이어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가슴 찢어지는 은설 관련 에필로그를 끝으로 마감된 1권. 2권은 언제 오냐고요! 보고 싶어 애간장이 녹는다고요!

옥자한을 미는 분들이 많던데 나는 은설파!! 초미남에 전생 인연 설이랑 잘됐으면 좋겠다!!!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어 드라마 결말이라도 알고자 사이트를 엄청 뒤졌는데 이게 해피야 언해피야?? 드라마 결말이니 소설 결말이랑은 다르겠지?? 제발제발제발 은설이랑 엮어주세요 자까님. 만녕빙설에서 고생고생하며 여가만 기다린 은설이, 그 마음 보답받지도 못하고 다시 또 피를 토하고 있는 은설이, 삼일간만이라도 나를 사랑해달라고 간청하는 은설이ㅠㅠ 너무 가엾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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