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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엔 건지 감자껍질파이가 그대로 요리 이름인 줄 알았어요. 사투리긴 하지만 건지라는 우리 말이 있기도 하고 건지 아일랜드 라는 곳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지명일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건지 아일래드는요. 영국 해협, 채널 제도에 속한 작은 섬이래요. 빅토르 위고가 사랑한 땅이고요. 2월에도 멕시코 만류의 기운으로 흰 라일락을 피우는 따뜻한 곳이라네요. 검색해보니 우리 울릉도보다 조금 더 크다는데 실은 울릉도를 안가봐서 감은 안잡혀요. 주변에서 여기 클럽 얘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인생 북클럽이다, 기존 회원들 진짜 좋다, 책 추천 많이 받는다, 가입 꼭 해라, 안하면 후회한다길래 책 좀 읽는 저도 관심이 생겼죠.
우선 회원들 소개부터 할게요. 회원이 많지는 않은데 성별, 직업군, 연령대가 무지 다양해요. 나치의 돼지 이력추적시스템 속에서도 돼지 한 마리를 빼돌린 간 큰 농장주 아멜리아! 아멜리아가 돼지구이 파티를 안열었다면 우리 건지 감자겁질파이 북클럽은 애초에 문을 열지도 못했을 거에요. 전 후기 회원이라 이 모임엔 참여해 본 적이 없지만요. 자글자글 흘러내리는 육즙과 바삭한 돼지껍질, 살코기의 맛은 전해듣기만 해도 황홀하더군요. 더욱이나 6개월만의 고기파티였다니 저였다면 통구이 앞에서 대성통곡해서 나치를 불러모았을지도요. 참석 못한 게 다행같아요ㅡ.,ㅡ 이웃이긴 했지만 큰 친분이 없던 어부 에번 램지, 타칭 마녀 이솔라, 주인 행세하는 하인 존 부커, 넝마주의 윌 시스비, 돼지치기 도시 애덤스를 불러모은건 엘리자베스 메케너였어요. 나치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은 그녀이지만 북클럽의 모든 회원들이 그녀를 사랑한답니다. 이들이 통금을 어겨 나치에 체포되었을 때 북클럽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도 그녀고요. 폭스 서점을 털어서 실제로 북클럽 활동을 시작하게 한 사람도 그녀에요. 나치에 점령 당한 가혹했던 5년을 책과 우정으로 버티게 해 준 사람도 바로 그녀 엘리자베스 메케너였지요. 그전까지는 엘리자베스를 제외하고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이솔라가 폭풍의 언덕에 푹 빠질 줄은 (근데 이건 제인 오스틴을 만나기 전의 얘기! 역시 오만과 편견!!), 존 부커가 질리니까 제발 다른 책 좀 읽으라는 주변 회원들의 성화에도 세네카만 읽을 줄은 (그래요, 인생책 한 권이면 충분한 경우도 있죠), 에번 램지가 빌어먹을 놈 대신에 셰익스피어 선집 속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인생의 용기를 되새기는 날이 올 줄도 (전 성의 부족인가봐요. 책 읽고 문장 외우기 넘 힘들어요ㅠㅠ), 내성적인 도시가 찰스 램에 푸욱 빠져 외지의 여자에게 편지를 쓰는 날이 오게 될 거라고 ("술, 술, 술, 짠, 짠, 짠, 벌컥, 벌컥, 팽, 팽, 팽, 어질, 어질, 어질, 쾅! 난 결국 구제불능이 되고야 말겠지" 찰스 램 선집 중, 저도 찰스 램이 마음에 들어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포로를 숨겨준 죄목으로 수용소에 끌려간 엘리자베스의 생사는 알 수 없지만 우리 회원들은 그녀가 살아있을 거라고, 꼭 돌아올 거라고 학수고대 하고 있어요. 눈초리가 매섭고 달리기를 잘하고 꼭 한 개 보물상자가 있는 씩씩한 엘리자베스의 딸 킷을 키우면서요.
건지 섬에서만 활동하던 우리 북클럽을 전세계에 소개한 사람은 작가 줄리엣이에요. 혹시 "이지 비커스태프, 전장에 가다"를 아는 독자가 있을까요? 소장 중인 분이 있다면 저한테도 보내주세요. 공전의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인데 어떻게 된 게 구할 길이 없네요;; 그녀가 쓴 초기 수필 "닭"도 있으시면 좀. 근데 제목이 닭이 맞나요?하여튼 이 분이 돼지치기 도시 애덤스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알게 되요. 어려운 시기였으니까요. 덕후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줄리엣이 소장 중이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선집"을 팔아버리는데 그 책이 바다를 건너 건지 섬까지 흘러들어가 도시의 품에 안기게 된 거에요!! 책 앞에 줄리엣의 주소가 적혀 있었거든요. 원래 엄청 수줍음이 많은 남자인데 빠가 다 그렇죠 뭐. 모든 서점이 문을 닫아서 책을 구할 길이 없으니 얼굴에 철판 깔고 찰스 램의 책 좀 있으면 보내주십사 생판 남한테 부탁 편지를 쓴 거에요. 낭만이라곤 모르는 저는 소름! 덜덜덜!! 이라며 편지를 버렸을텐데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판박이 같은, 성격뿐만 아니라 편지에서 풍기는 매력까지 합쳐서, 줄리엣은 책과 함께 활달하고 재치 넘치고 다정다감한 답장까지 보내준답니다. 도시는, 제 생각에 이 때 이미 줄리엣에게 반한 것 같아요, 본인의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또 편지를 쓰고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궁금해하는 줄리엣을 위해 북클럽의 다른 회원들과 섬사람들이 그녀에게 편지를 쓰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요. 다시 한번 말하건데 그는 정말로 수줍음 많은 남자랍니다 ㅎㅎㅎ 덕분에 우리는 북클럽의 역사와 활동이력, 최애작가, 인생책, 회원들 사이의 친목, 그 밖으로도 1940년과 이후 5년 동안의 섬 안팎의 여러 상황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고요. 아직까지 회원모집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에요.
줄리엣이 그러더라구요. 책에도 귀소본능이라는 게 있다구요. 저도 동감! 이녀석들에게 팔다리는 없지만요. 자기에게 딱 어울리는 독자를 향해 시간과 국경이라는 바다를 넘어 헤엄쳐가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중간다리 독자가 되어 우리 북클럽이 깊은 바다에 잠기지 않고 계속해 더 많은 독자를 만나기를 응원합니다. 주변의 추천으로 제가 인생 북클럽에 새로이 가입한 것처럼 또 누군가가 제 추천으로 이 책을 인생책으로 소중히 품을수 있기를 바래요. 백번 천번 추천합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새회원으로 얼른 가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