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1
존 D. 앤더슨 지음, 윤여림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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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섯 종류의 선생님이 있다고 토퍼는 말한다. 첫째는 좀비유형. 풀어야 할 문제지를 한가득 배포하며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게 수업하는 웅얼웅얼 형이다. 루스벨트 시절부터 학교에 뼈를 묻고 살았을 것만 같은 고리타분한 타입으로 배움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모조리 빼앗아가는 악마적 존재다. 둘째는 카페인 중독자 유형이다. 어디에서 받았는지 알 수 없는 기념품 보온컵을 매시간 들고 다니며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해하든 말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쫑알댄다고 한다. 토퍼는 몰랐겠지만 이 선생님은 수면 부족 상태가 아니었을까? 나처럼 밤새 책을 읽는다던지 해서. 직장인이라는 게 다들 그렇지 않나. 뭐라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평일 밤 쉽사리 잠들 수 있을 리가 ㅎㅎㅎ 셋째는 던전 마스터 형. 교내체벌의 부활을 꿈꾸며 빨간색 경고장을 남발하고 다니는 교도관 같은 존재다. 이럴 수가! 미국 학교에도 경고장이 있었다니! 우리도 요즘 벌점인가를 준다던데 놀랄 노자다. 넷째는 스필버그 유형. 스필버그처럼 멋진 감독형이라는 말이 아니라 수업시간에 언제나 영화를 틀어줘서 스필버그형이라나? 참고로 나는 이런 유형의 선생님을 좋아했다;; 다섯째는 신참 유형. 갓 부임해 따끈따끈한 정열을 가졌다. 길어야 1년 혹은 2년 안에 대체로 1-4 유형으로 전환되는 것이 함정. 여섯번째는 좋은 선생님이다. 학생들이 따르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졸업하고도 찾아 가고 싶고 스승의 날이면 곧장 떠올라 그리워지는 그런 선생님. 모든 아이들에게는 아닐지라도 특정한 아이들에겐 평생의 추억으로 깊게 남을 그런 사람.

빅스비 선생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확히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그 안에서도 선두권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선생님인데 토퍼와 브랜드와 스티브는 모두 빅스비 선생님을 좋아한다. 또한 그런 이유로 결심도 한다. 여름방학을 한 달 앞두고 췌관선암종(췌장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한 선생님을 찾아가자고. 부모님 흉내를 내 학교에 결석 전화를 하고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당연히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아이들이 우르르 버스를 타는 일은 미국에선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어마어마한 눈치를 보며 병원 근방에 도착해 미셸 베이커리의 화이트 초콜릿 라즈베리 슈프림 치즈케이크를 사고, 맛도 이름도 얼렁뚱땅하게 느껴지는 와인을 고르고, 맥도날드의 라지 사이즈 감자튀김도 사야하는데!! 계획은 장대했지만 도대체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미셸 베이커리의 화이트 초콜릿은 감당이 안될만큼 비싸고 와인은 어떤 거짓말로도 아이들끼리는 구매할 수가 없는 품목이다. 그나마 손쉬우리라 생각한 맥도날드의 매장에선 뜬끔없이 스티브의 누나가 등장해 아이들의 멱살을 잡는다.

고작해야 병문안이데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왜 이리 힘이 든걸까? 아이들은 과연 무사히 빅스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또 아이들은 무슨 이유로 빅스비 선생님을 이만큼 좋아하며 따르는 걸까? 부모님께 말씀 드려 함께 병문안을 간다는 손쉬운 방법도 있는데 어째서 어른들께는 비밀로 한 채 이 험난한 병문안 길에 오르게 된 걸까? 의문에 대한 모든 답 속에 뭉클한 감동과 저마다의 사연과 선생님과 함께 하는 성장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빅스비 선생님은 묻는다. 지구에서 남은 하루가 딱 하루 밖에 없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할까?아이들이 묻는다. 지구에서 남은 하루가 딱 하루 밖에 없는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무슨 일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의 스승이 없노라고 종종 불평하곤 했는데 어쩌면 그건 나한테는 그분들이 전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아니어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더 필요한 아이들에게 더 큰 양분이 되어주기 위해 평범한 아이들을 살짝 빗겨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지만 책을 덮고 난 후 존경할만한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한결 가셨다. 좋아했던 선생님이 있는 독자라면 그때의 간질간질한 기분을 돌이키며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테고 아니라 해도 재미나고 유쾌하고 자그마한 감동으로 가슴을 부풀릴 수 있을만한 성장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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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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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그 마지막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악의>로 저와는 첫만남을 가졌던 가가 형사가 두번째 만남만에 완결이라니 기분이 싱숭생숭하지만

가가 형사 시리즈는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이야기 하나하나가 완결성을 가지기 때문에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괜찮은 거.... 맞겠죠?? ㅋㅋㅋ

가가 형사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이 아버지가 형사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컸어요.

<악의>에도 잠깐 그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범죄자를 쫓는데 혈안이 된 아버지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구요.

아내와 친척들 사이를 제대로 중재하지도 못했고

아픈 시어머니를 모셨는데 그 어머니가 얼마 안돼 사망한 탓에 비난을 받았고

또 알고 보니 술집일을 한 전적이 있어 친척들 입장에서는 장손의 아내감으로는 탐탁치 않았다더라 하는

꽤나 막장스러운 이 가정사 때문에 가가는 형사가 되지 않고 교편을 잡은 적도 있었답니다.

자신의 학급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결국 교사는 내 길이 아니구나 물러나고 말았지만요.

가가 형사 시리지의 마지막 편은 이 모든 사연을 묻고 소리소문 없이 집을 나간 가가 어머니의 삶으로 문을 엽니다.

편지 한 장 남겨두고 가출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일생은 다행스럽게도 마냥 외롭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또다시! 술집이긴 했지만 사람 좋은 사장을 만나 탈없이 장기근무 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했고

사랑인지 동지애인지 영영 알 순 없지만 인연이 닿았던 남자도 있었으니까요.

평생의 죄책감이 병이 되었는지 일찍 사망했는데

가가는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뼛가루로나마 모친과 재회할 수 있었어요.

처음엔 가가의 어머니가 살해당한건가 이 미련한 독자는 의심을 품었답니다.

곧 의심의 여지가 없는 병사임이 확인되어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풀리려는건지 도통 가늠을 못하겠더군요.

가가와 비슷하게 집을 나간 어머니를 둔 젊은 연출가와

그 연출가의 어머니를 알아 보고 연출가를 찾아간 중학교 동창생이 살해된 사건과

살인현장과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또다른 신원미확인 시체.

여기 어디에 가가 어머니를 연결할 실마리가 있는걸까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며 읽었답니다.

가가나 가가 어머니의 과거사는 어딘지 촌스러운 감이 있어요.

가출 자체에는 어떠한 음모도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실망할 독자도 있을거라고 봐요. (바로 저;;)

술집 여자 스토리가 너무 구시대적이라 90년대 월화 드라마삘이라고 해야 할지

막장치고도 지나치게 노회한 느낌도 있구요.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불우한 가정사라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직업적으로 훌륭히 성장한 소년과 소녀의 만남.

고독이, 또 어쩌면 비틀린 성장이 빚어냈을 실수들에 대한 안타까움.

자신의 그림자까지 지워가며 일평생 숨어살았던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빛바랜 바램.

마냥 미워하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또 희생적인 범인에 대한 동정심.

이 모든 감동을 딛고 새로이 시작될 이야기를, 활자로는 만나지 못할 가가의 앞날을, 즐겁게 상상하게 만드는 여운.

몇 몇 아쉬움에도 별 다섯 개를 쾅쾅 찍는 재미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리즈의 시작부터 함께 달린 독자도 아닌데 책을 덮고 나서는 마음이 좀 울먹울먹합니다.

현대문학에서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도 출간되었으니만큼

한 권 한 권 차근차근 가가 형사의 이야기를 뒤쫓아야겠다고 결심해봐요.



#기도의막이내릴때

#히가시노게이고

#재인

#가가형사시리즈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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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 - 말보다 확실한 그림 한 점의 위로
조안나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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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우울하거나 한없이 땅을 파고 싶어질 적에 나는 책을 펼친다. 신간일 때보다는 좋아하는, 그래서 몇 번이나 읽었던 책인 경우가 많다. 빨강머리 앤, 초콜릿 공장의 비밀,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키다리 아저씨,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자기 앞의 생.

 

초록 지붕 집에서 원하던 아이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앤이 울며 잠들던 밤과 지난 밤을 까맣게 잊은 듯이 기쁘게 맞이하기로 결심한 6월의 아침 속에 기지개를 켠다. 찰리의 주린 뱃속에서 찰랑거렸을 초콜릿 한 컵을 맛본다. 대굴대굴 굴러 제임스와 친구들을 망망대해의 모험으로 이끈 보솜보솜한 복숭아를 상상한다. 높은 창문 앞 여닫이 책상에 앉아 기숙사 밖 경치를 감상하고 편지를 쓰고 매일 더 의연해지자 결심하는 주디와 만난다. 삐삐가 부엌 바닥에 쏟아놓고 하나하나 헤아리던 금화를 만지작댄다. 그로 안될 때는 로자 아줌마의 지하실과 모모, 아르튀르와 히틀러를 펼쳐놓고 펑펑 울기도 한다. 맥주를 마시며 나의 어린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 종종 더 외로워지기도 하고 내가 한심할 때도 있고 또 항상 너무 어린 친구들만 불러 모으는게 아닌가 쑥스럽기는 해도 책이 있어 괜찮을 때가 더 많다. 대게는 결국 괜찮아지는 하루로 마감을 한다. 그렇듯 작가 조안나에겐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들이 있다. 스무살 적부터 주욱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여지껏 책에 대한 책들만 써왔던 사람이지만 이번엔 그림으로 버무려진 담백하고 슴슴한 에세이를 썼다. 전문가도 아니고 깊이 있게 공부했다고도 할 수 없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읽는 우리들도 다 전공자는 아닐진대. 궁금한 건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 그림에 담긴 조안나의 이야기이므로 아무 상관도 없노라고. 수줍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좋았노라고.

무사히 수술을 마친 엄마를 병원에 모셔놓고 잠시 틈을 내어 집에 돌아갔을 때 펑펑 울다 떠올린 코로의 하늘을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색이 모조리 담긴 것만 같은 고흐의 정물화를 보여주고 매일 같이 내리는 눈에 풀 죽었던 작가를 위로한 라울 뒤피의 바다와 파리의 풍경 앞으로 독자의 등을 떠밀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을 떠올리게 했다는 페어필드 포터의 화보 같은 그림에 감탄하다 작가가 인용한 <설득>의 구절을 찾아 내 책장을 뒤졌다. 주말의 휴식 같은 기분을 한껏 끌어올리는 르누아르의 뱃놀이 속 솜털 같은 청춘들이 예뻐 함박 웃음이 났고, 눈 앞에서 참방대는 클림트의 초록 앞에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이 그림을 소개한 작가에게인지 이 그림을 그린 클림트에게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고마움이었다. 작가의 애완묘 두루의 사진과 존재 자체가 그림 같은 명화 속 고양이들을 보며 주먹을 꾸욱, 폭발하는 귀여움이 몇 장 안되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책을 구길 뻔 했다. 독서하는 다양한 여인들의 그림을 보며 그림 속 책의 제목을 알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왜 화가들은 책의 제목은 표기하지 않았을까 아쉬워졌다. 표지가 된 앙리 마티스의 <꽃병 옆에서 책 읽는 여인>은 나처럼 그림이 있는 책을 읽는 것 같다고 추측만 해본다.

작가 조안나가 시시때때로 찾고 검색하고 방문하고 조사하고 소유하고 감상해 온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가 조근조근 차분하게 펼쳐지는 시간들이 얇은 책 속에 풍성하다. 엄마의 배 속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엄마의 감상 속에 작은 심장 소리를 더했을 태아가 어느 덧 세상에 나온지 6개월이 됐다는 후기에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작가가 지금껏 써왔다는 독서 에세이들을 꼭 읽어봐야지. 상황과 기분에 따라 떠오르는 그림들이 다양하게 생길만큼 나도 열심히 공부해봐야지. 또 나를 위로하고 껴안아줄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야지. 이러저러한 결심을 덧붙이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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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4
이혜경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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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지가 가슴 아리게 알려주는 대로,

많은 이들은 바로 그 역사로부터 피해를 입으면서 역사로부터 소외된다.

이혜경 소설은 역사가 가하는 소외의 냉혹함을 일깨우면서

망각의 역설과 싸우고 있다."

ㅡ정홍수, 작품 해설 중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핀 시리즈 그 열네번째 소설은 이혜경 작가의 <기억의 습지>이다. 지난한 한국사의 저 밑바닥에서 피해자였고 동시에 가해자인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다.

군대에 있다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던 필성. 국회의원과 친분이 있던 황상병은 편지 한통에 방귀 새듯 군대에서 빠져나갔지만 힘없는 쭉정이 같은 필성은 도리없이 베트남으로 끌려간다. 죽지 않기 위해 베트공들을 죽였고 어쩌면 어린아이와 예쁜 처자와 바구니에서 빵이나 과일을 꺼내는 여자와 밭에서 김 매던 할아버지도 죽였을지도 모르겠다. 베트공은 어디서나 나타나 찾아 나서면 없어지는 그런 존재이니까. 그 막연함이 불러오는 공포가 얼마나 컸을텐가. 종종, 실은 자주, 군표를 주고 여자를 사기도 했다. 응웬, 아니 판. 처음엔 가짜 이름을, 떠난다는 말엔 진짜 이름을 알려준 매춘하는 소녀. 필성이 낭만으로, 첫정으로 기억하는, 한국군에게 몸을 팔아야만 했던 가냘픈 여자. 그녀가 그리워 아내와 함께 베트남을 찾은 남자의 정서를 나는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북파 공작원 김씨. 6.25로 길바닥에서 부모님을 잃었다. 군대에서 한몫 잡게해주겠다는 어른의 꼬임에 넘어가 북파공작원이 되었고 무사히 탈영한 후엔 필성이 있는 시골의 외딴 산자락에서 홀로 살아간다. 이미 몇차례 살인을 경험한 그가 쫓기는 심정으로 숨어살면서 보통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었을리가. 김씨는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외톨박이를 자처했지만 딱 그만큼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무시에 마음을 끓였던 듯 하다. 이건 보복이다 라고 외치며 철규의 베트남 신부를 강간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베트남 신부 응웬. '베트남 숫처녀와 결혼하세요. 초혼, 재혼, 장애인 환영. 65세까지, 100% 성사' 광고의 그 말처럼 스무 살도 더 많은 남자에게 몸을 팔듯 시집왔다. 한국군의 총에 맞아 장애인이 된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학대받으며 살았던 자신과 어머니.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울 돈을 벌고 싶었다. 한국남자와 결혼해 열심히 일할 각오를 했는데 외국인학교에 공부라도 하러 갈라치면 시어머니는 흰눈을 뜨고 아가는 언제 생기냐고 독촉을 한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고향에 대한 그리움, 시집살인의 불편. 돌처럼 맺히는 응어리에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못했다. 그저 잠깐 산책이려나 하려던 것인데 김씨에게 변을 당해 사망한다.

응웬의 장례식에 참여하려 베트남에서 온 가족들을 마중가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응웬이 사망하기까지의 시간 속을 영감님처럼 느리게 느리게 밟아가는 소설이다. 6.25와 베트남 전쟁과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과 그 밖의 시골풍경이 새카만 느낌으로 쓰여졌다. 어떻게 닦아도 얼마를 닦아도 뗏자국이 벗겨지지 않을 것만 같이. 대단히 평면적이고 상징적인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대변하는 역사가 아주 흥미롭다거나 엄청 인상적이라거나 대단히 감동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서 의미를 찾아가며 읽으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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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블랙 에디션, 양장 특별판)
미카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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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아주 다른 말을 쓰던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한 가난한 마을에 나타난 거지 소녀 모모는 커다란 돌로 지어진 극장의 무너진 귀퉁이 방에 살았다.

작고 깡마른 몸에 빗질하지 않아 마구 헝클어진 새까만 고수머리,

알록달록 색동 같은 치마에 커다란 남자 웃옷을 입은 모모는 겨울이 아니면 신을 신지 않았다.

그래도 눈동자만큼은 놀랄만큼 반짝반짝한 이 소녀에게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기가 마음에 드니?"

"여기서 계속 살 생각이니?"

"부모님은 어떤 분이시니?"

"꼬마야, 그럼 넌 어디서 온 거니?"

마을 사람들이 의지가지 없는 모모를 쫓아내지는 않을까?

그래서 모모가 상처받는 내용이면 어쩌지?

두근두근 걱정했는데 믿을 수 없을만큼 다정한 이웃들은 허물어진 모모의 집을 수리하고

난로와 책상, 의자, 예쁜 꽃그림과 매트리스에 담요까지 챙겨다 준다.

마을 아이들은 먹을 것을 쥐고 달려와 입주 축하 파티를 열어주고

어른들은 고민이 있을 때면 눈이 맑고 마음이 넓은 이 어린 소녀를 찾아와 상담하곤 했다.

어느 새 모모는 마을에서 없으면 안될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어있었다.

꿈같이 평화로운 나날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어른들이, 그다음엔 아이들이 모모와 원형극장에서 등을 돌렸다.

바빠, 시간이 없어, 다음에,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찾아갈게.

여전히 모모를 좋아하지만 더는 모모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 이웃들.

그리고 이웃들의 시간을 훔쳐 그들의 삶을 여유없이 바쁘게 몰아가는 회색신사들.

이웃들은 제 시간이 훔침 당하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저축해 이자 받을 생각으로 그들과 계약한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도 만나지 않고

효율성만을 따져 친절을 베푸는 삶을 거절한다.

꽃 한 송이, 차 한 잔, 휴식이라곤 없이 오로지 노동으로만 채워진 삶.

도둑질 당한 시간으로 피폐해진 이웃을 구하기 위해 모모는 미래를 보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와

아무 데도 없는 집의 주인 호라 박사를 만나 회색신사에 대적한다.

마을을 즐겁게 비질할 줄 알았던 청소부 베포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재잘대던 이야기꾼 기기,

가난한 이웃 노인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줄줄 알던 레스토랑 주인 니노와

극장을 놀이터 삼아 즐겁게 뛰어놀았던 아이들을 되찾기 위한 모모의 용기있는 모험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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