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파수꾼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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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감각이 넘치는 연애 소설이다. 동시에 연애 소설의 탈을 쓴 스릴러기도 하고. 도로시는 비트족인 어린 남자 하나를 먹여 살리려는 중이다. 이름은 루이스. 도로시의 동년배이자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 폴과 데이트 하던 밤에 그의 차에 치일 뻔한 바로 그 어린놈이다. 약에 취해 자동차도 구분 못하던 녀석은 그러나 꽤, 상당히 완벽한 미남이라 도로시는 첫눈에 마음이 치였다. 병원에서 나가고 싶다는 루이스의 말에 도로시는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모든 남자가 자신의 형제이자 아들처럼 느껴지는 무한 돌봄의 욕구가 샘솟는 날이었다는 게 변명이라면 변명인데 도로시에게는 딸만 있을 뿐이고 손주들을 돌보는 일이 귀찮아 핑계를 대고 회피한다는 건 실상 비밀도 아니다.

중년의 여성과 젊은 남성의 동거라. 어린 육신과 열정에 빠져드는 도로시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나이에 관해 모욕과 상처를 입고, 폭주하는 사랑에 정신보다 육체가 먼저 피로를 느끼고, 열정은 없지만 안정적인 삶과 관계로 회귀하는... 쓰고 보니 완전 폴이다. 도로시의 애인 폴 말고 브람스의 폴. 폴쪽이 대여섯살쯤 더 젊긴 하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탄 정도를 예상했던 나는 그 다음 전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깔깔 웃는다. 작가의 독자 뒤통수 후려치는 기술이 완전히 세련되고 매력적이어서. 상상도 못할 만큼 재미나서 자꾸만 웃음이 터졌다. "내가 계속 여기 머물게 되면, 그래도 뭔가 일은 해야겠죠."/"로스엔젤레스에 정착하고 싶어?"/난 '여기'라고 말했어요." 그가 턱으로 베란다와 자기 의자를 가리키며 딱딱하게 대꾸했다."(p54)

도로시와 루이스 사이에는 폴과 시몽에게서 보였던 로맨스, 낭만, 쾌감, 비애, 비감, 슬픔, 배신, 이별이 없다. 도로시는 완벽한 키다리 아주머니다. 젊은 목양신 같은 루이스의 아름다움이 좋긴해도 그에게 육체적으로 끌리진 않는다. 말하는 가구, 말이 그렇게까지 많지도 않은 가구 하나를 들여 오며가며 만족하고 감탄하는 수준이다. 몸이 나은 루이스를 독립시키기 위해 일자리도 제공한다. 폴과도 연애도 순조로워서 폴의 프로포즈를 늦추기 위해 갖은 사교성을 발휘하는 중이며 마흔다섯의 건강한 육체에도 전적으로 만족한다. 쓰고 보니 폴과는 정말 다르다. 루이스로 말할 것 같으면 목하 플라토닉 열애 중이다. 녀석은 도로시에게 푹 빠졌다. 양아치인 줄 알았더니 도로시의 집에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주어진 일도 잘 처리하고 롤스로이스를 구입해 도로시에게 선물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정말 몰랐다.

최초에는 도로시의 전남편이 죽었다. 자살이었다. 두번째엔 도로시를 모욕한 전적이 있는 할리우드의 관계자가 사망했다. 동성애를 위한 그렇고 그런 곳에서의 사망이라 시끌벌적했지만 그렇고 그런 곳이어서 범인의 행방은 묘연했다. 세번째엔 도로시의 전남편과 불륜한 여배우였다. 집까지 찾아와서 미안했네 어쩌네 꼴깞을 떨다가 루이스에게 반해 유혹신공을 펼쳤던 그녀는 다음 날 교통 사고로 꽥. 아무도 그게 도로시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당연히 도로시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알고 보니 도로시가 원인이었던 연쇄 죽음들에 도로시는 펑펑 울고 루이스는 난감해하고 독자는 피식피식. 연쇄살인마의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이토록 귀엽고 빵 터지는 소설이 있었을까? 나는 없다. 그래서 정말 반해버렸다. "그는 당신을 떠났어요. 그래서 벌 받은 거죠. 인생은 그런 거에요."/나는 반론을 제기했다./"너 유치하구나. 하지만 고맙게도 인생은 너처럼 그렇게 유치하지 않아. /"인생은 유치할 수 있어요." (p50)

아차, 배경이 되는 곳은 프랑스가 아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헐리우드다. 도로시는 성공할 뻔한 배우였고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다. 루이스는 도로시의 인도로 배우 세계에 입문해 오스카 상을 수상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려는 중이지만 그런 거 아무 관심없고 오로지 도로시의 집에 있는 자기 방에서 잠이나 자고 싶다. 이거 영화로 안만들어졌을까? 코믹 스릴러 영화의 시나리오로도 아주 딱인 것 같은데. 사강의 이런 소설 또 있으면 알려줘요! (추신 : 어제 쓰인 소설 같다. 이백, 이백오십 남짓, 사강이 길지 않은 페이지 속엔 배경 묘사가 거의 없는데 이런 작가의 취향이 시대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고 소설은 더욱 현재성을 갖는 것 같다. 관계 역적된 할리퀸 로맨스 맛이 참 좋군!)



+ 소담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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