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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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걸 알게 되면 회사만큼 멋진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이 끝났을 때 당신은 언제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회사를 졸업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 것. 그것만큼은 정말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51세 무직의 봄입니다. "

ㅡ 퇴사하겠습니다, p193, 엘리

제목과 표지부터가 참 매력적인 책, "퇴사하겠습니다."

50세면 퇴사하겠다는 결심을 한 후 30대 중반부터 조금씩 퇴사 준비를 해왔던 아사히 신문의 사회부 기자 이나가키 에미코. 이십 년 넘게 한 직장에서 장기근속한 그녀가 퇴사한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보니 아무래도 퇴사 후에도 어떻게든 살아지더라는 그녀의 말에는 별 공감이 가지 않았지만 족히 십오년 전, 거의 내 나이대부터 차곡차곡 퇴사를 생각해 왔다는 그녀의 준비성에는 감탄과 함께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막연한 은퇴 준비가 아니다. 자발적인 퇴사 준비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자발적 퇴사는 젊은 친구들도 쉽게 엄두를 못내는 일인데 그녀 나이 50세. 다른 사람들이 은퇴 후의 경제력을 걱정할 시기에 (더욱이 독신여성인) 이나가키 에미코는 퇴사 후 자신이 정신적으로 회사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월급이라는 걸 받으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직장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끼던 시기를 벗어나서도 씀씀이를 줄여가며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를 말이다.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일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지긋지긋해서가 아니라 그 모두에 대한 존중과 존경과 애정을 밑바탕으로 한 채, 성장한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듯 언젠가 애정을 주고 받았던 이곳 회사로부터 자발적으로 이별하겠다는 그 마음 자세가 대단하달지. 약간 존경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이러니저러니 불평하면서도 글 곳곳에 회사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묻어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일이 힘들기도 하고, 거래처 진상도 갈 수록 늘어 스트레스를 받지만 인간적으로나 인생선배로서 존경스러운 상사를 모시고 그 밑에서 일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나름 만족하며 사는 터라, 나 같은 소시민, 평범한 직장인을 마냥 한심하게 보는 류의 책이거나 일의 가치 자체를 폄훼하는 글이면 좀 싫었을 것 같은데 그런 지적질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서문에 밝힌 그대로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의 하루하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작은 계기"(p21) 를 마련해 주는 것이여서 그런지 글 내용도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았고, 그냥 농담을 듣는 것처럼 웃으며 그래그래 그렇기도 하지, 그렇게까지 생각했단 말이야 하는 식으로 읽게 되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물론 써볼만큼 써보고 누려볼만큼 누려본 후 돈 그까짓 별 것도 아니더라, 나는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 너희도 그럴 수 있을 거다 라는 느낌을 주는 내용 등에서는 아무래도 약간의 반감이 생기기는 했지만 술술 읽힌다는 장점만큼은 확실해서 에세이 장르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쯤 잡아봄 직한 책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단 평범하게 퇴사한 친구에게 선물할 만한 책은 아니지 않나 싶다. 작가가 느끼는 퇴사 후 현실이라는 게 좀 지나치게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서 (건강보험이니 신용카드니 퇴직금의 소득세니 이리저리 현실이 만만치 않다라고 말은 하는데 분위기는 썩...) 실제로 퇴사를 하고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책을 읽다가 열불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살짝 있었다. 이 책은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적합한 책인 걸로,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덧붙여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회사의 필요가치에 처분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만큼, 또 회사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만큼 서로 도움을 주고 받다가 스스로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아주 긴 시간이 지난 후에 회사와 이별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의 퇴사 또한 졸업같은 느낌이기를. 너무 큰 소망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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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망고셩 2017-02-1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읽어봐야할 가치가 있을것 같애요.30대부터 차곡차곡 준비해온 퇴사라니.
지금의 저를 생각해볼수있을것 같애요

캔디캔디 2017-02-14 09:41   좋아요 1 | URL
유쾌하게 생각할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재미난 에세이였어요.
막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은 아니었지만요^^

망고망고셩 2017-02-14 09:50   좋아요 0 | URL
힐링인가요?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