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 담덕 5 - 영락태왕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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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고 행각하오. 우리 고구려를 강국으로 만드는 길은 우선 경제를 일으켜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 하고, 그 재화로 군사력을 길러 무적의 군대를 육성하는 길밖에 없소. (187쪽)


지금까지 편찬된 역사서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우리나라의 연호인 영락(永樂)’을 사용한 고구려의 19대 왕인 광개토태왕 담덕이 왕위에 올라 신하에게 자신의 포부와 계획을 밝히는 대목에서 나오는 말이다. 스스로 강국이 되는 길이 경제를 일으켜 그 재화로 군사력을 키운다는 계획이 현대의 강대국들이 실행하고 있는 일과 비슷하다.


광개토태왕 담덕의 다섯 번째 이야기인 영락태왕15세의 담덕이 태자의 신분으로 무명선사를 찾아가서 무명검법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하여 18세로 고구려의 왕위를 물려받고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인 관미성을 빼앗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드디어 담덕이 왕위에 올라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게 되어 반갑기는 했으나 그 과정이 모두 담덕에게 맞춰지는 것 같이 그려지고 있어 아쉬운 점도 있었다. 먼저 초반에 찾아가게 되는 무명선사는 과거 발란을 일으킨 해평의 아버지인 왕제 무이고 그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우적은 담덕의 아버지 고국양왕이 태자 시절 그의 태자비로 자신의 딸을 천거하가 실패하자 담덕을 제거하기 위해 시도를 하다 실패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이 담덕의 정체를 알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특히 무명선사는 연나라와의 약속으로 한 평생을 조국 고구려를 떠난 인물이었으니 고구려의 부흥을 이끌 담덕의 잠재력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주는 것이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 보였으나 우적이라는 인물이 소금매매로 질 좋은 철광석을 모아두고 그것을 모두 담덕에게 전해주는 장면은 조금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직의 구심점이 될 걸출한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니까 그들의 선택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다음으로 아쉬운 점은 백제의 진사왕에 대한 묘사였다. 담덕이 왕위에 올라 고구려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금의 강화도에 있는 관미성을 빼앗아 부소갑(개성)과 갑비고차(강화도)를 잇는 서해의 인삼교역권을 장악하려고 한다. 그 과정인 관미성 전투에서 진사왕은 고구려군에게 패하고 환궁하는 중 세상을 떠나고 아신왕이 백제를 이어받는다.


침류왕이 죽은 뒤 태자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동생인 진사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전해지는 진사왕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는 용감하고 지혜로웠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그였기에 조금 더 지혜롭고 지략이 많은 왕으로 그려졌다면 그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평가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고구려 군의 대척점의 수장인 그가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제는 광개토태왕 담덕이 왕위에 올라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하나씩 실행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영락태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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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 쿤룬 삼부곡 2
쿤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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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되게 신나라는 대사는 많은 짤의 생성과 함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지 않는 이들도 알 만큼 유명한 대사가 되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학교 평판을 염려하여 일을 크게 키우지 않으려는 학교 측의 입장과 도리어 폭력의 원일을 피해자에게 돌리곤 하는 가해자 측의 입김이 커 현실에서의 학교 폭력은 피해자가 피해를 입고 끝나는 경우가 많기에 더 글로리가 더욱 인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쿤룬 작가의 삼부곡 중 두 번째 이야기인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는 제목 그래도 학교 폭력으로 인하여 한 여학생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여기의 주인공은 전편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의 주인공 스녠에게 살해를 당하는 초등학교 교사 장린칭의 딸이다. 전작에서 장리칭은 살인마 집단인 Jack의 조직원이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혼자 사는 것으로 알고있는 스녠에게 살해를 당하지만 그 순간을 장페이야와 그녀의 동생이 목격하게 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이다.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페이야와 동생은 각각 고모의 집에 맡겨지게 된다. 작은고모의 집에 맡겨진 페이야는 학교에서 폭력과 성희롱을 당하고 심지어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정작 보호자인 고모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심지어 고모부는 이상한 눈빛을 하며 그녀를 보곤 한다. 하루라도 일찍 집을 나가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 낸 류촨한과 언젠가 같이 살게 될 것이라 믿고 있는 동생뿐이다. 특히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촨한과 어두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페이야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전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닥터 야오와 이하오, 다비도프도 등장한다.

 

다음은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듯 보이는 닥터 야오의 말이다. 아버지를 잃은 페이야를 위해 학교에서 마련해준 상담을 닥터 야오가 맡고 있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페이야, 우리는 가해자에게 우호적이고 피해자를 무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단다. 가해자가 받을 처벌을 동정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 그럴 때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지곤 하지.” (197쪽)

 

전편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쿤룬 작가의 소설은 잔인하다. 전편보다 정도가 덜하긴 하지만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도 잔인한 표현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폭력에 방관하는 어른과 심지어 피해자에게 벌을 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학교, 정도가 심해지는 가해 학생들의 폭력 때문인지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페이야를 볼 때에는 통쾌하기도 하였다. 모범생인 페이야는 주위의 환경으로 인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복수를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한다. 그래도 주위의 악마들에게 마지막까지 몰린 주인공 페이야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얼마 전 부산에서 일어난 경악스러운 사건 때문일까?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만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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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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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개를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늙지 않는 배우로 유명한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인 존 윅이다. 벌써 4편까지 나왔으니 흥행을 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에는 독특한 인물이 나온다. 바로 황금코인을 받고 난장판이 된 현장을 청소해주는 청소부이다. 혈흔이 낭자한 현장에서 사체수거부터 바닥청소까지 깔끔하게 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퇴장을 한다. 다시 찾아줘서 영광이라는 의미심장한 인사를 하고서...

 

타이완의 작가 쿤룬의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 바로 영화 존 윅이었다. 타이완의 떠오르는 작가라고 소개되는 쿤룬은 공개석상에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며 인터뷰도 가면을 쓰고 할 만큼 내성적인 성격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표지에도 마스크를 쓴 인물이 등장한다.

 

먼저 밝혀두자면 이 소설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다. 일단 엄청 잔인하다. 추리소설과 무협지를 좋아해서 어린이 시절부터 읽어 와서 나름 살인사건이나 그것을 묘사한 것에 무던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지만 이 소설은 그 정도가 심했다.

 

이야기의 줄기가 다크웹에 스너프(살인이나 잔인한 장면을 연출과 여과 없이 찍은 것) 영상을 올리는 ‘JACk’이라는 일당 찾아 살해하는 미소년 킬러의 이야기이다. 영국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따라하는 집단인 ‘JACK’은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신의 가슴에 알파벳 J를 새겨 넣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과거 소중한 사람이 Jack의 일당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본 스넨은 그들의 정보를 정보상 다비도프에게 얻어 그들을 찾아 한 명씩 처리한다.

 

잔인한 설정과 묘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이유는 등장인물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주인공 스녠은 어릴적 트라우마로 인해 결벽증을 가지고 있으며 jack의 일당을 살해할 때에도 현장을 청소한다. 그는 청소에 대한 팁, 예를 들면 냉장고는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합니다. 특히 악취를 주의해야죠. 레몬과 물을 1:1 비율로 섞어 내부를 닦으면 악취제거 효과적입니다.”,혈흔은 찬물로 미리 닦아 두면 뒤처리가 쉽습니다.”과 같은 말을 하면서 그런데 당신이 그 문제를 고민할 필요는 없겠군요.”라며 청소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납치사건에 연루되어 스녠에게 도움을 받는 사축샤오쥔이 있다. 야근과 박봉에 시달리며 세상의 온갖 불운을 온몸으로 맞는 인물로 야근을 하고 다음날부터 있을 휴가의 시작으로 심야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에 납치를 당한다. 또한, 이 모든 판을 그린 듯 한 닥터 야오와 정보상 다비도프도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의미심장한 문장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함을 유지하는 시간은 실온에 보관한 우유만큼 짧다.”(130쪽)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Jack의 일당이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는 말인데 이야기의 흐름과 관계없이 공감이 되는 말이다^^


떠도는 유언비어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319쪽)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시 죽을 뻔 한 샤오쥔이 회사를 그만두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이다. 역시 소설의 흐름과 관계없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잔인한 묘사에 가려지긴 했지만 서사의 앞뒤가 잘 짜여져 있었다. 스녠의 과거와 그를 도와주는 닥터 야오, 닥터 야오의 심복인 이하오, 정보상 다비도프 등 등장인물의 이해가 쉽지 않았던 소설 초반의 말과 행동이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을 잔인한 장면의 묘사가 자주 나온다. 자극적이고 잔인한 표현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잘 짜여진 범죄스릴러를 원한다면 선택해도 좋을 듯 한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이다. 다음은 이 소설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정상인과 미치광이는 한 끗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한 끗이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가른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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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4 - 고구려 천하관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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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아우구스티누스뿐 아니라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 학자들은 적지 않다. 그 여행을 원해서 한 것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넓은 세상을 두 눈으로 보는 일은 시야를 넓혀주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광개토태왕 담덤의 네 번째 이야기 고구려 천하관에서는 동부욕살 하대곤과 해평의 반란으로 압록강을 표류하게 된 담덕과 마동이 뜻하지 않게 여행을 하며 유람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먼저 표류하던 중 백제로 가는 교역선의 도움으로 백제의 땅인 갑비고차(강화도)에서 한동안 지내다 관미성을 눈으로 보게 되고 그 교역선을 따라 동진으로 또 다시 서역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연나라의 고구려 유민을 규합하여 태극군이라는 군대를 조직하고 요동성을 공격하는 아버지 고국양왕을 도움으로써 다시 고구려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중원을 돌아보며 담덕이 마동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 고구려도 광활한 땅이 필요해. 땅은 농부들에게 부와 행복을 두고, 또한 그들이 내는 세수가 부국강병의 나라를 들어 주니까(108쪽)”

 

담덕, 아니 광개토태왕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을 천명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토 확장에 관하여는 어느 지도자보다 뛰어난 그였기에 당연한 듯 보이는 말이나 문제는 그의 나이가 11살이라는 데 있다. 담덕이 부모의 품을 떠나 을두미 사부에게 간 나이가 일곱 살이고 해평의 반란이 일어나고 유람을 하는 나이가 10살에서 11살 정도의 나이다. 물론 덩치가 여타 성인만큼 크다는 설명이 있긴 했으나 과연 그러했을까란 의심은 충분히 들었다.

 

20세에 왕위에 올라 33세의 세상을 떠날 때까지 15년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서양역사를 바꿔 놓을 만한 일을 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비교되는 광개토태왕이기에(광개토태왕은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긴 하나 나라는 이끌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리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4권 째 이긴 하나 아직 담덕이란 이름을 쓰고 있는 신분이다. 그가 제위에 올랐을 때는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불렸다. 우리가 아는 광개토태왕으로서의 모습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다음 권의 제목이 영략태왕이다. 이제부터는 속이 뻥 뚫릴만한 고구려 대왕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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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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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업적을 남겨 후대에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서 남기는 것이 이름만이 아니라 흔적도 있다. 마에카와 호마레 작가의 소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는 사람이 죽어 남긴 흔적을 청소하는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의 이야기이다.

 

도시를 떠다니는 해파리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아사이 와타루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도쿄로 돌아와 술집에서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처음 보는 사사가와와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고 과음으로 사사가와의 양복에 실수를 하게 된 아사이는 옷을 세탁해 주기로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늘 일손이 부족한 사사가와가 운영하는 데드모닝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일은 일종의 유품정리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고독사로 표현하지만 일본에서는 감정이 배제된 죽음인 고립사(孤立死)로 표현한다고 한다. 사체는 경찰이 수거를 해가지만 남은 유품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체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흔적마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와타루는 사사가와와 함께 고립사한 할아버지의 흔적을 지우는 일에서부터 남편과 싸우고 화해하지 못한 채 남편을 보낸 아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집을 청소하려는 엄마, 같은 집에 살지만 2주가 지나서야 동생의 죽음을 안 형, 둘만의 파티를 하고 욕조에서 죽음을 맞은 어린 딸과 엄마 등 여러 의뢰인들을 만나며 다양한 죽음의 현장을 청소한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

 

흔히 삶의 중대사를 관혼상제로 표현하기도 한다. 성인식을 뜻하는 관례, 혼인의 혼례를 제외하고 상례와 제례는 죽음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예부터 공동체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살아가는데 큰일이었지만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요즘에는 이웃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우리의 삶이다. 그렇기에 고독사나 고립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사가와는 와타루에게 특수청소와 죽음에 대한 인상적인 대화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말이야 끝내 알 수 없었어. 딱 하나 알게 된 건 완전히 똑같은 죽음은 없다는 거야. 죽음을 맞이한 상황도 다르고, 유족의 반응도 모두 달라.”

 

똑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인생에는 각각의 고뇌가 있고, 고독이 있고, 슬픔이 있고, 또 행복이 있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결국 죽음은 그냥 인 거야. 반대로 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도 그냥 인 거지. 중요한 건 그 을 묶은 이야. 즉 살아 있는 순간을 하나하나 거듭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337쪽)

 

어쩌면 우리는 사사가와와 같이 죽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모든 것을 공동체와 같이 해도 죽음으로 하는 길은 홀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사가와와 와타루처럼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사가와의 말처럼 탄생의 점과 죽음의 점을 잇는 선을 어떻게 그을지는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좀 더 선명한 좀 더 찬란한 선을 그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어제는 이미 살았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오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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