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예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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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9할의 사실에 1할의 허구를 약간 가미하는 것이다. 사실적인 바탕 위에 화자의 상상력이 더해진 약간의 허구가 이야기를 더욱더 흥미롭게 한다. 그렇기에 소위 팩션이라고 불리는 소설이 더욱 재미있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도 그렇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작가의 상상력이 1할보다 더 넘는 것 같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꿀벌, 등검은말벌, 지구 온난화, 십자군 전쟁 등 소설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약간의 검색으로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모두 역사적, 사실적인 팩트이다. 이것을 주인공 르네가 행하는 퇴행 최면으로 묶어 ‘꿀벌의 예언’이라는 예언서를 등장 시키는 것은 모두 작가의 과학적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이 매력적이기에 『꿀벌의 예언』은 흥미로운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주인공은 르네 톨레다노이다. 작가의 전작 『기억』에서도 등장하는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나는 전작을 읽지 않아서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그는 연인 오팔 에체고옌과 함께 유람선에서 참가자들에게 퇴행 최면으로 전생을 보여주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 참가자의 요청대로 미래의 모습을 최면으로 보여주다 사고가 생겨 법원으로부터 감당하지 못할 벌금형을 선고받고 삶이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이에 르네도 최면으로 미래의 모습을 보고 오는데 르네가 다녀온 30년 뒤의 미래는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게다가 미래에서 만난 30년 뒤의 르네 자신은 르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인간이 소비하는 식물의 80퍼센트가 꽃 식물이네. 그리고 이 꽃 식물의 80퍼센트가량의 수분을 담당하는 곤충이 바로 꿀벌이야. 그동안 꿀벌은 서서히 사라지는데 인구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던 거야. 인간이 직접 손으로 하거나 로봇을 이용한 수분이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지. 조그만 원인 하나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어. …… 식량은 부족한데 인구가 많아지면 배고픔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건 필연적이고 불가역적이지.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들은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됐네. (69쪽)

요컨대 꿀벌이 사라짐으로 해서 수분이 되지 않고 거기에 온난화가 더해져 농업 생산량은 급감하고 식량 자원을 위해 폭동 및 3차 세계대전까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막는 방법으로 한 가지 예언서를 언급한다. 소설의 제목과도 같은 ‘꿀벌의 예언’이라는...

미래의 모습을 보고 온 르네는 퇴행 최면으로 자신의 전생도 경험한다. 이 퇴행 최면을 자신의 은사인 알렉상드르 교수에게도 소개하고 그 둘은 동시대의 인물인 살뱅 드 비엔과 가스파르 위멜이라는 인물이 자신들의 전생임을 알게 된다. 그러고는 미래의 큼직한 사건들에 대하여 넌지시 언급을 한다. 그렇다. ‘꿀벌의 예언’이라는 예언서는 주인공이 퇴행 최면으로 자신의 전생에게 알려준 일어나게 될 사건의 집합인 것이다. 

퇴행 최면과 전생 및 미래를 오가는 설정은 흥미로웠으나 주인공 자신이 미래를 바꿀 예언서를 집필(?) 하는 과정이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지금의 많은 이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앞으로의 일어날 일들은 정해진 대로 일어난다면, 즉 정해진 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지금의 삶은 무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도입부에 이러한 대목이 있다. 

우리가 태어나는 이유는 세 가지 때문이다. 
1 배우기 위해
2 경험하기 위해
3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17쪽)


『꿀벌의 예언』은 꿀벌이 사라진 미래를 바로잡기 위한 소설이기에 3번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비록 잦은 퇴행 최면으로 사실감이 떨어지긴 했으나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 소설이다. 과연 미래는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님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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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순간이다 -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김성근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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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스포츠 가운데 나는 야구를 가장 좋아한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스포츠여서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럼에도 예전 야구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 왜 좋아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스포츠는 상대방과 승부를 내는 것이 목적이기에 기록이 빠르든 점수를 많이 획득하든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해야지 경기가 끝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중 구기 종목은 대부분 득점을 통해 승패를 결정하는데 홈()으로 들어와야 득점이 인정되는 방식을 가진 야구가 좋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런 야구라는 세계에서 지독하게 살아남은 야구인이라면 많은 이들이 김성근 감독을 꼽는다.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를 모은 인생은 순간이다에는 그러한 김 감독의 야구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인생은 순간이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김성근이라는 야구선수의 인생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구감독으로서의 김성근이 그것이다. 그것을 우리의 삶에 대입해보면 야구선수일 때의 이야기는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지, 야구 감독으로서의 이야기는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먼저 김성근 감독의 야구 선수로서의 이야기이다. 잘 알려진 대로 김감독은 재일교포 출신이다. 꿈을 펼칠 나이에 혈혈 단신으로 홀로 국내로 들어온 그는 지금보다 더 심한 차별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취급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김성근 감독의 사례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최근 격투기의 추성훈 선수가 일본으로 귀화하는 과정에서의 인터뷰를 본다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짐작은 할 수 있다.

 

김감독은 혼자 건너온 고국에서 열정 하나로 살다 뜻하지 않게 부상을 당해서 선수생활이 일찍 끝이 난다. 그럼에도 야구가 얼마나 좋았던 것인지 끊임없이 야구 하나만을 보면서 살아간다. 그런 그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인생을 살아보니, 기회란 흐름 속에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오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는 그런 기회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니, 기회라기보다는 마치 순리처럼 내게 찾아온 일들이었다. 그러니 매일의 순간순간을 허투루 보내서는 아 되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핑곗거리로 삼지 않았다. 내일이 있으니 오늘은 어떻게 되든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내일이 와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

 

리더는 모두가 포기할 때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찾아주는 것이 리더이다.’, ‘홈런을 치고 안타를 만들 수 있다면 파울을 몇 번을 쳐도 괜찮다.’ 등 많은 문장을 수집하게 만든 책이지만 내일이 있다는 것을 핑곗거리로 삼지 않았다.’와 소제목이기도 한 오늘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면 어느새 내일은 온다.’는 다른 어떤 문장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게다가 야구뿐 아니라 흐름 속에 앉아 있다 보면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은 어느 한 분야에서 통달을 한 고수가 전하는 진한 가르침과 같은 말과 같다. 다른 유명 선수와 같이 긴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엄청난 기록을 남긴 것도 아니라 부상으로 일찍 은퇴를 하고 8개의 프로구단 감독을 맡았지만 그 만큼 숱하게 경질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야구를 놓지 못하는 야구 고수(흔히들 야신이라고들 하지만)의 말이기에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 김성근 감독은 선수생활보다 지도자 생활을 더 오래했다. 그렇기에 한 집단을 이끄는 리더의 덕목에 대해서 적지 않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SK와이번스 감독 시절 3번의 우승으로 소위 왕조을 만들었던 것보다 구단의 미비한 지원속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낸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주머니에 10원짜리밖에 없어도 그 10원짜리로 이길 방법을 찾는 게 60여 년간 내가 야구를 해온 방식이다. 남과 비교하며 다른 팀보다 선수층이 얇아서 졌다거나 누구만큼 지원받지 못해서 졌다거나 하는 말은 책임 전가밖에 되지 않는다. 핑계 속으로 도망치는 일이다.

 

예전 어느 설문조사에서 지도자의 덕목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한창 영화 명량이 흥행하던 때라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을 보고 지도자의 덕목은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차분하게 주위를 이끄는 이순신 장군과 김성근 감독이 가지고 있는 평정심이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의 모든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감독이 웃는 것은 우승이 확정되는 그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소위 한 우물을 파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한 평생 한 우물을 파오면서 성공한 이의 이야기는 앞으로 살아가는데 적지 않게 기운을 주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버겁거나 지쳐 갈 때 쯤 한 번씩 꺼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인 것 같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더욱 좋고.

 

이제는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라. 몸에 저절로 새겨질 때까지 정신없이 열중해 본 적 있느냐고, 그만큼 절실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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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카페 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지음, 고상숙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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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료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유명해지고 나서 딱딱한 자기계발서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려 말하는 책이 많아진 것 같다. 존 스트레레키의 세상 끝의 카페도 이와 비슷한 형식의 자기계발서였다. 매일 같은 일상에 지쳐 다 소모하고, 충전하고, 또 다소모하고 재충전하고 그래서 결국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단 말인가(40)’란 의문이 들어 떠난 여행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재충전을 위해 떠난 여행이 엉망이 되면서 차의 기름도 바닥이 보이고 허기에 지쳐갈 무렵 책의 제목과 같은 세상 끝의 카페에 우연히 들린 존은 그곳에서 신기한 경험을 한다. 웨이트리스 케이시가 가져다 준 메뉴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 3개를 보게 된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49쪽)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첫 번째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이다. 이에 대해 케이시는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약간의 생각할 시간을 주고는 다음과 같이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에 대해 도움을 준다.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일컬어 존재의 목적을 찾았다고 하는데, 인생을 살면서 바로 이 존재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 가지 일을 할 수도 있고, 스무 가지 또는 수백 가지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존재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찾아내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86-87쪽)

 

예전에 우연히 본 유튜브 쇼츠 영상에 이런 것이 있었다. 어린 딸아이가 처음으로 한복을 입고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며 버스정류장에 있던 영상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린 아빠가 활짝 웃으며 딸을 안고 가는 짧은 영상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있었다. 하루하루 먹고 자고 똑같던 의미 없던 삶이 더 없이 소중하게 바뀌는 순간이라는 내용의 댓글이었는데 이것도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의 죽음에 관한 질문도 결과적으로 첫째 질문인 존재의 이유와 연결된다. 생명을 띄고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죽음은 알 수가 없는 미지의 상태이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준다.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묻고,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들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이미 원하는 일을 했거나 매일 하고 있다면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죠. (136쪽)

 

결국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죽음의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고 충만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 끝의 카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때로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생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은 의식하고 있지는 못해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순간 다가온다. (23쪽)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유를 찾는 것의 중요함을 알려준 책을 읽게 된 것은 첫 문장에 나오는 것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생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될 수 있는그러한 경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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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게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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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가장 원초적인 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한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흔히 알려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팔을 부러뜨린 자는 팔을 부러뜨리는 등의 식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게 되는 과정에서 고의성이 없이 우연성이 겹친 사고일 경우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러한 다양한 문제적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으므로 가해자로 지목된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고의성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뉴스에 흉악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심신미약이 바로 그것이다. 심신미약으로 고의성을 지우려는 수법이 뻔히 보이는 대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범죄자를 볼 때면 함무라비 법전이나 고조선의 법률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도쿄에서 일어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3건의 살인 사건을 다룬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전작과 다르게 심신미약(소설에서는 심신모약이라고 표현됨)이라는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3건의 살인 사건으로 살해된 이는 모두 각기 다른 죄로 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라는 것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든 몇 해가 지나서든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그 유족들이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에 비슷한 시기에 묵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매스커레이드 게임 이제는 팀장으로 승진한 닛타 경감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급히 돌아온 나오미 콤비 외에도 나쁜 범죄자를 잡는 것을 일 순위로 삼고 다른 절차적인 위법은 무시해버리는 아즈사 경감이 새롭게 등장하여 닛타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실제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오염되었다고 법정에서 증거 채택이 되지 않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어 아즈사 경감처럼 수사를 한다면 체포율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지만 기소율을 상대적으로 저조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호텔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읽다 보면 작가의 의도에 넘어가 모두가 범인같이 보여 이번에도 범인을 찾는데 실패를 하긴 했지만 매스커레이드 게임에서는 스토리보다 다른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서두에도 잠깐 언급한 '심신미약'이다. 소설 중반쯤 관련된 이들의 범행을 짐작게 하는 모임이 등장하는데 다음은 그곳에서 운영자가 올린 글 중 일부이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되었다고 합시다. 체포된 범인에게는 형사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 문제는 심신상실이나 심신모약을 일으킨 원인이 본인에게 있는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각성제 등의 약물입니다 그런 마약을 복용하면 정신에 이상이 초래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알코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량 음주로 취해버리면 상궤를 벗어난 행동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습니다. 즉 의도적으로 심실상실 혹은 심신모약이 된 셈이고 그것에 의해 죄를 범했다면 형사책임능력이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292쪽)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모 국회의원을 습격한 중학생이 촉법소년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떤 범죄가 일어나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일본의 현실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특히 의도적으로 심실상실이 된 셈이고 그것에 의해 죄를 범했다면 형사책임능력이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심실상실과 함께 소설을 읽으며 든 생각은 용서이다.


이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살인한 살인마를 용서하기 위해 면회를 갔는데 이미 신에게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는 소릴 듣고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라며 절규하는 신애의 장면이 떠올랐다.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기 전에 반성문을 쓰는 피고인이 많다고 한다. 문제는 그 반성문의 방향이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곳은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형을 선고하는 판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한다. 그리고 그것을 참작하여 다양한 감형 이유를 들어 선고를 내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어차피 형사재판에서는 검사와 피고가 당사자이긴 하나 너무 사건에서 가장 힘들 피해자에 대해서는 등한시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초반에 살해당한 전과자에게 아들을 잃은 가미야 요시미는 소설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누군가를 계속 미워한다는 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에요. 게다가 거기서 새로운 뭔가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지요. (407쪽)


형벌에는 반드시 반성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범한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409쪽)


그녀는 아들을 잃게 한 그가 출소 후 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닛타를 통해 유추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를 용서하게 된다. 그녀가 말했듯 자신이 범한 죄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살면서 실수를 하면서 배우고 살아간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그 실수가 집단에서 정한 규범이나 법률에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심신미약으로 도망을 가지 말고 자신이 범한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스커레이드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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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 - 인생이라는 극한의 전쟁에서 끝내 승리하는 법
데이비드 고긴스 지음, 이영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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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은 어쩌면 정해진 플롯을 따라가고 있는지 모른다. 영웅이 등장한다. 그리고 영웅보다 더 큰 세력이나 힘을 가진 빌런이 등장한다. 영웅은 역경이 처해있다. 그럼에도 그 역경을 이겨내고 앞길을 막는 빌런도 몰아내면서 승리를 쟁취하는 구조이다. 그 역경이 크면 클수록 빌런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영웅의 승리는 커지므로 초반의 영웅과 빌런의 차이를 보여주는 비교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영웅의 이야기에 환호를 보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즐긴다.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도 큰 성과를 이루어 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얻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자기계발서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대게는 그 빌런이 과거의 자신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을 이겨내고 삶에서 성과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많다. 그것을 깨닫고는 자기계발서는 자주 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가끔 삶이 나태하다고 느낄 때 반성의 의미로 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데이비드 고긴스의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도 무기력함에 빠져 허덕일 때 집은 책이다.

 

미국의 네이비 실 출신으로 육군과 공군의 특수부대 훈련을 모수 소화한 군인으로 울트라 마라톤을 출전하고 턱걸이 기네스 기록을 가진 저자라고 소개되었기에 그가 하는 들려주는 말은 책 표지만 보아도 어렴풋이 추측이 가능해 보였다. 그럼에도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책의 프롤로그격인 들어가며에서 발견한 문장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격려의 말도자기 계발 비법도 임시방편일 뿐이다그것으로는 뇌의 배선이 달라지지 않는다당신의 목소리를 증폭시키지도당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들지도 않는다동기부여로 바뀌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1쪽)

 

동기부여를 위해 집은 책인데 동기부여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니 조금은 다른 내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는 자기계발서의 내용도 물론 포함하고 있지만 데이비드 고긴스라는 인물의 자서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식당에서 바퀴벌레를 잡는 일을 하던 그가 네이비 실에 지원을 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잃은 전우를 위해 울트라마라톤에 지원을 하는 등 점차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이들의 삶에서 엿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점도 많지만 인상적인 점이 두 가지 있었다.

 

먼저 저자가 ‘40퍼센트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연료와 공기의 흐름을 제한해서 자동차가 가열되지 않도록 하는 조절기에 비유를 한다. 그 조절기가 우리의 최대 능력에서 40퍼센트쯤만 발휘하면 한계임을 직시하고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대 한계까지 왔다고 느낄 때도 60퍼센트의 능력을 더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계속 달리고 하루 종일 달려야 하는 울트라마라톤에서의 고통을 견디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조절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를 쉬지 않고 달려 그리스의 승리를 알리고 숨을 거두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만약 그가 10km 마다 조금씩 쉬어 갔다면 승전의 소식은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승전국의 용사로 더 상세한 소식을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페이디피데스가 조절기를 제거하고 달린 사례일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40퍼센트의 법칙은 잠재력은 자기 자신의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점으로만 인식하면 좋을 것 같다.

 

둘째로는 성공한 이들에게 자주 보여 조금 흔한 내용이지만 저자가 실패를 대하는 태도이다. 턱걸이 세계기록을 손의 물집으로 두 번째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어머니는 저자에게 한 가지는 알겠다고 말한다. 그것을 네가 이런 일을 다시 할 거라는 걸라고... 그녀의 말처럼 저자는 손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수행 보고서를 살펴보고는 세 번째 도전 끝에 기네스도전에 성공을 한다. 실패는 목표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적어도 저자는 한 두 번의 실패로 그의 목표를 수정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영웅의 이야기처럼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 성공하는 것을 보는 일은 부럽기도 하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저자가 이야기했듯이 동기부여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동기가 행동이 될 때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동기부여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바꿔볼 행동의 시작은 바로 동기부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놓지 않고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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