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게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형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가장 원초적인 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한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흔히 알려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팔을 부러뜨린 자는 팔을 부러뜨리는 등의 식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게 되는 과정에서 고의성이 없이 우연성이 겹친 사고일 경우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러한 다양한 문제적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으므로 가해자로 지목된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고의성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뉴스에 흉악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심신미약이 바로 그것이다. 심신미약으로 고의성을 지우려는 수법이 뻔히 보이는 대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범죄자를 볼 때면 함무라비 법전이나 고조선의 법률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도쿄에서 일어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3건의 살인 사건을 다룬 매스커레이드 게임은 전작과 다르게 심신미약(소설에서는 심신모약이라고 표현됨)이라는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3건의 살인 사건으로 살해된 이는 모두 각기 다른 죄로 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라는 것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든 몇 해가 지나서든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그리고 그 유족들이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에 비슷한 시기에 묵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매스커레이드 게임 이제는 팀장으로 승진한 닛타 경감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급히 돌아온 나오미 콤비 외에도 나쁜 범죄자를 잡는 것을 일 순위로 삼고 다른 절차적인 위법은 무시해버리는 아즈사 경감이 새롭게 등장하여 닛타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실제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오염되었다고 법정에서 증거 채택이 되지 않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어 아즈사 경감처럼 수사를 한다면 체포율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지만 기소율을 상대적으로 저조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호텔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읽다 보면 작가의 의도에 넘어가 모두가 범인같이 보여 이번에도 범인을 찾는데 실패를 하긴 했지만 매스커레이드 게임에서는 스토리보다 다른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서두에도 잠깐 언급한 '심신미약'이다. 소설 중반쯤 관련된 이들의 범행을 짐작게 하는 모임이 등장하는데 다음은 그곳에서 운영자가 올린 글 중 일부이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되었다고 합시다. 체포된 범인에게는 형사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 문제는 심신상실이나 심신모약을 일으킨 원인이 본인에게 있는 경우입니다. 이를테면 각성제 등의 약물입니다 그런 마약을 복용하면 정신에 이상이 초래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알코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량 음주로 취해버리면 상궤를 벗어난 행동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습니다. 즉 의도적으로 심실상실 혹은 심신모약이 된 셈이고 그것에 의해 죄를 범했다면 형사책임능력이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292쪽)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모 국회의원을 습격한 중학생이 촉법소년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떤 범죄가 일어나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일본의 현실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특히 의도적으로 심실상실이 된 셈이고 그것에 의해 죄를 범했다면 형사책임능력이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심실상실과 함께 소설을 읽으며 든 생각은 용서이다.


이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유괴살인한 살인마를 용서하기 위해 면회를 갔는데 이미 신에게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는 소릴 듣고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라며 절규하는 신애의 장면이 떠올랐다.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기 전에 반성문을 쓰는 피고인이 많다고 한다. 문제는 그 반성문의 방향이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곳은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형을 선고하는 판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한다. 그리고 그것을 참작하여 다양한 감형 이유를 들어 선고를 내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어차피 형사재판에서는 검사와 피고가 당사자이긴 하나 너무 사건에서 가장 힘들 피해자에 대해서는 등한시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초반에 살해당한 전과자에게 아들을 잃은 가미야 요시미는 소설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누군가를 계속 미워한다는 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에요. 게다가 거기서 새로운 뭔가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지요. (407쪽)


형벌에는 반드시 반성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범한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409쪽)


그녀는 아들을 잃게 한 그가 출소 후 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닛타를 통해 유추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를 용서하게 된다. 그녀가 말했듯 자신이 범한 죄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살면서 실수를 하면서 배우고 살아간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그 실수가 집단에서 정한 규범이나 법률에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심신미약으로 도망을 가지 말고 자신이 범한 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스커레이드 게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