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정치를 말하다 - 보수와 진보의 뿌리는 무엇인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손대오 옮김 / 김영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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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사안마다 보수와 진보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세금, 사회복지 프로그램 등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부자 감세 정책에 찬성하고, 진보주의자들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보수주의자들은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인정하지 않고 범죄자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계급과 사회적인 원인을 강조한다. 왜 같은 사안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왜 진보, 혹은 보수를 선택하였으며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일까.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이 책 <도덕, 정치를 말하다(원제 Moral Politics : How Liberals and Conservatives Think)>에서 더이상 색깔논쟁이나 이념이 아닌, '도덕의 프레임'으로 정치를 바라봄으로써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핵심을 분석하고 갈등의 원인을 밝혀내고 있다. 

사람들의 정치적 사고를 읽어내는 데 인지언어학을 적용해 온 저자는,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중간 선거 유세과정을 지켜보며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정치적인 담론들이 판이한 도덕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정교하게 쌓아놓은 개념적 구조와 상식의 논리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올바른 행동과 잘못된 행동은 무엇인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등에 대한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국가는 곧 가정'이라고 판단할 때에 보수주의자는 '엄한 아버지 모델'을 추구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자애로운 부모 모델'을 따른다.  

엄한 아버지 모델은 순종에는 보상해주고 불순종에는 징벌하는, 일종의 보상과 징벌의 도덕으로 간주할 수 있다. 경쟁에서 성공하려면 자제력을 배우고 품성을 쌓아야 하고, 역경을 통하여 도덕적 힘이 쌓여가기 때문에  어떤 행동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징벌한다. 도덕적으로 약한 사람은 결국 악에 굴복하게 되고, 그러므로 도덕적 약함은 비도덕의 한 형태이다. 그러한 도덕적 약함을 조장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비도덕적이다. 만약 복지가 노동에 따르는 인센티브를 빼앗아 간다면 도덕적 힘 비유에 따라 복지는 비도덕적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주어지는 복지혜택을 비난하고 나서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낙오자들에게 자신들이 힘써 일해서 낸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한 지배와 도덕적 권위의 측면에서 우월함과 열등함의 선을 긋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성인이 어린이를 지배하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이익을 얻어내야 하고,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땐 때려서 가르쳐야 하고, 여자들이 있을 곳은 가정이므로 직업을 갖고 일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자애로운 부모 모델은 존중과 사랑의 양육, 원만한 의사소통을 중요시한다. 보상과 징벌을 통해서 배우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배운다고 가정한다. 이 모델에서는 도덕으로서의 감정이입, 도덕으로서의 양육 등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도덕적 행동을 완전한 감정이입 행동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한다. 약자에 대한 연민도 이에 포함된다. 또한 공정한 분배가 중시되어서 양육이 한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분배의 공정함을 요구함과 같이 도덕적 양육도 이 비유를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들에서 보면, 일을 자기훈련의 일환으로 보는 엄한 아버지 모델에서와 달리 일은 가능한 한 안전하고 건강해야 하며, 근로자의 안전에는 높은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 또한 가정생활에 최대한 배려를 해 줘서 직장에 유아 센터를 갖추거나 근무시간을 조정해 주는 등 안정적인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며, 사람들은 그들의 일에 비례하여 공정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임신한 여직원 퇴사 종용 금지, 비정규직 차별철폐,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의 도덕적 행동 카테고리에는 보상과 징벌의 도덕으로써 자제력 있고 자립적인 사람에 대한 자기이익 추구를 간섭하지 못하게 하고 자제력의 결여에 대한 징벌을 보장하는 등의 원칙이 내재되어 있다. 그들은 범죄자에게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10대 미혼모의 임신에 대해서는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은 본인의 자제력 부족이므로 마땅한 벌(원치 않는 출산)을 받아야 하고, 낙태 등으로 그 벌을 피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돈을 많이 번 것은 자신의 자제력과 자립심 덕분이므로 그에게 많은 세금을 물려서 이익 추구를 방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따라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공공의 도움에 의지함으로써 약하고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양산해 내므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그들은 역시 주장한다.  

하지만 진보주의의 도덕적 행동 카테고리에는 감정이입 행동과 공정성에 의거하여,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사람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고 보호해야 하며 인생에서의 충만함을 장려하는 등의 원칙이 내재되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가장 나쁜 제비를 뽑았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빈민가의 알콜중독자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더라면, 혹은 거동조차 불편한 장애인으로 태어났더라면 그때도 과연 위의 보수주의적인 원칙들을 지지할 수 있을까? 항상 자신이 그 입장이 되었을 경우를 가정하여 약한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이다.  

또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보는 '지옥에서 나온 시민', 즉 자신들의 도덕 카테고리를 위반하는 사람들의 범주 역시 크게 다르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엄한 아버지 도덕을 위반하는 사람, 곧 여권주의자, 동성애자, 다문화 지지자, 평등주의자들과 자기통제 결여로 인해 복지혜택에 의존하는 미혼모, 마약중독자들, 그리고 환경보호 운동가, 소비자보호 운동가, 차별금지조치 지지자와 같은 정부가 자기이익의 추구를 방해하도록 이끌어 기업활동을 제한하고자 하는 사람들, 반전운동가, 인권운동가처럼 국방과 사법 시스템의 작동에 반대하는 사람들 등을 들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사회적 책임감도 보여주지 못하고 불공정하기 짝이 없는 대기업과 기업가, 노동조합을 기피하는 기업,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들을 이용해먹는 사람들, 교육, 예술, 학문을 위한 공공지원에 반대하는 사람, 일반 시민을 위한 의료혜택 확장에 반대하는 사람 등이 악인으로 간주된다. 참 재미있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모델 시민이 보수주의자에게는 악마가 된다는 점,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가까운 예로 대기업 회장의 족벌 경영도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익을 추구하는 바람직한 일인데,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도덕성이 결여된 행동으로 보이는 것을 들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시민들이 한 가지 모델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정에서는 자애로운 부모인 사람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적일수 있고, 정치적으로 진보주의적인 사람이 집에서는 엄한 아버지일 수 있다. 부자 감세를 반대하지만 환경보호주의자일 수도 있고, 노동자의 복지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낙태는 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구분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마치 스펙트럼과도 같아서, 어떤 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보수와 진보로 갈라 구분할 수는 없다. 필자 역시 기본적으로는 진보적 성향이 강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 선거 때마다 서민들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그래서 결국 자신들에게 불리할지도 모르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일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린 듯 하다.  

이 책은 보수와 진보 어떤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중립적으로 쓰여진 편이지만(그래서 어떤 쪽이 나쁘다고 단정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저자 자신은 진보 쪽에 가까워서,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정치적인 성공을 차지했고 그들을 이해할수록 더 두려워진다.'라고 고백한다. 또한 부의 편중과 불균형이 진정한 사회 번영을 위협할 수 있다며 진보의 선전을 독려한다.  지극히 공감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한국만 해도 선거 때마다 보수주의적 정당과 후보가 거의 대부분 승리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국민들 중 대다수가 보수주의에 가깝다는 말이다. 필자 역시 예전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좌파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 반도체 회사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했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근로빈곤층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몇 극보수주의자들의 완고함과 이기적인 면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처럼, 진보가 더욱 발전해야 할 때다. 새도 양 날개로 나는데, 균형이 너무 안 맞으면 결국은 어떻게든 무너지니까 말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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