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 오웰은 영국의 작가로써 <1984>,<동물농장> 등의 디스토피아적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르포에 해당된다. 이 책이 쓰여진 계기는 1936년 '레프트 북클럽'이라는 단체에서 오웰에게 영국 북부 탄광지대의 실업 문제에 대한 르포를 청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오웰은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이 이용하는 하숙집에서 생활을 하고 석탄을 캐는 막장 지대까지 내려가 본다. 그리고 나서 완성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실상과 탄광의 실태에 대한 묘사가 아주 뛰어난 르포다. 1부의 제일 첫 부분에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의 하숙집 이야기가 나올때 필자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19세기도 아닌 20세기에 이렇게 더럽고 과밀한 주거환경이 있었다니 놀랍기도 했고, 보통 생각하는 1~2인이 한 방을 쓰며 독립된 생활공간으로 구성된 하숙집이 아닌, 하숙생을 받기에 그다지 적절해보이지 않는 작은 집에 침대만 여러개 들여다놓고 거기서 꽤 많은 사람이 하숙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주거환경이 몇십년 전에 비해 굉장히 좋아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석탄을 캐는 막장의 이야기 역시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흥미진진했다. 오웰은 실제로 땅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갱도의 막장까지 들어가봤는데, 광부들이 실제로 석탄을 캐는 곳까지 들어가려면 허리도 제대로 펼수 없고 심지어는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땅속 통로를 통해 적어도 1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강도의 노동인데다가, 쉬는 시간도 없이 7시간 반 동안 석탄을 캐야 한다. 작업환경도 위험하기 짝이 없어서 폭발, 붕괴 등의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오웰은 그들이 없다면, 지상의 세계도 없다고 말한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것, 빵 굽는 것에서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것이 석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 깊은 땅속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광부들이 있기에, 상류층들의 우아한 생활도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도 문명의 안락을 누리는 계층이 있으면 누군가 좋지 못한 환경에서 노역에 시달리는 착취를 당해야만 하는게 아닌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등등...

하지만 이러한 광부들의 생활은 꽤나 열악하다. 하루의 힘든 작업을 마치고 몸에 묻은 탄진을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는 목욕 시설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설비가 좋은 대형 탄광 중에는 목욕탕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탄광에는 목욕탕이 없다. 또한 그 당시 노동자들의 집에는 제대로 된 목욕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받는 급여도 간신히 생활을 할수 있을정도의 적은 돈이고, 작업 중에 부상을 당해 영구적인 장애를 입는다고 해도 연금을 타는데에 온갖 불편과 냉대를 감수해야 한다. 그들이 사는 주거환경도 굉장히 열악해서, 낡고 좁으며 벌레가 우글거리거나 비가 새는 집에서 사는 경우가 태반이다. 과밀 문제도 심각해서, 작은 방 둘에 여덟이나 열 명이 되는 식구가 자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집에서 깔끔한 생활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동네 자체가 악취가 진동하고 쓰레기가 널려있으며 더럽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것은 굳이 1930년대의 영국 슬럼가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인 지금도 서울의 빈민가나 쪽방촌에 있는 집들은 오웰이 언급한 주거환경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웬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계속 일을 할수 있어서 적은 급여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자리를 잃는 일도 허다했기 때문에 실업 수당에 관련된 이야기를 오웰은 하고 있다. 이러한 실업 수당을 받고 사는 독신자 혹은 가족들의 삶 역시 비참하다. 1인당 매주 평균 6~7실링으로 먹는 것과 입는 것, 난방과 그 외의 것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도 없고, 기껏해야 빵과 약간의 차와 채소 등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신체적인 퇴보로 나타나서, 노동계급의 체격이나 치아 등은 상류층과 차이가 난다. 어릴 때부터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로 자라기 때문에 이도 금방 빠져버리고 체격도 크게 자랄 수 없는 것이다. 

2부는 오웰 자신의 성장 배경과 영국의 계급 문제,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담은 주장 강한 에세이의 성격이 강하다. 오웰은 사회주의를 대담하게 비판하는데, 그는 사회주의를 지지하지만 사회주의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갔던 말이 "일반인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나 '프롤레타리아의 연대' 같은 말을 들으면 영감을 받는 게 아니라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다." 라는 문장이었다. 사실 정말로 그렇다. 몇몇 집단에서 서로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위화감이 들 뿐더러,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어떻든 그냥 별로 동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한 중산층 사회주의자들 상당수가 속으로는 계급적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속물이며 별난 취미를 뽐내고, 어려운 말을 쓰기를 좋아하며, 이론적 독선에 차 인간다움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 계급뿐만 아니라 많은 중산층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오웰은 개탄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필자 자신도 뜨끔했다. 항상 약자를 탄압하는 자는 절대로 좋게 생각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의 고통을 알기 위해서 청빈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필자가, 실제로는 스스로 그들과 다르다는 그러한 우월감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읽으며 많은 반성을 하였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지 오웰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그의 문학의 토대가 된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1930년대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상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현재에도 노동자들의 삶이 별로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을 느끼고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분노 혹은 안타까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 세상을 정말로 달라지게 하려면 우리들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니면 누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러한 책이 번역 출판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에서 약간은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