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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의 원점
다카노 에쓰코 지음, 김옥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다카노 에쓰코의 <20세의 원점>, 이 책을 읽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때는 1960년대 말, 유럽에서는 68운동이 일어났고 일본은 그때 전공투 시대였다. 당시 여대생이었던 다카노 에쓰코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고, 그것을 노트에 남겼다. 이 책은 그가 건널목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나서 가족에 의해 발견된 노트들을 엮어서 나온 것이다. 일기에 배어 있는 허무감이나 자학하고 고뇌하는 모습은 마치 내 자신의 복잡한 머릿속을 보는 듯 하였다. 물론 나는 20세를 넘긴지 너무나도 오래 되었지만, 아무래도 나의 영혼은 20세 근처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듯 하다.
시와 음악과 재즈와 담배를 사랑했던 그는,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고 깊이있는 독서를 했다. 허나 내겐 그런 것이 부재하는듯 하다. 시대에 대해 그리고 실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그와는 전혀 딴판으로, 얕고 종잡을 수 없는, 때로는 흥미위주의 독서를 하며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느끼는 감수성도 점점 둔해져 가고 있다. 작가가 되겠다는 뜻도 있었지만 지금 쓰는 글이라고는 시덥잖은 서평들 뿐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의 주인공인 귀족 출신 모녀와 같은, 한없이 몰락해버린 모습이다. 생활력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도 이 책의 주인공인 다카노 에쓰코도 아주 깊은 사유를 갖고 살며 자신의 사상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책을 읽을수록 내 자신의 보잘것없음이 느껴진다. 다카노 에쓰코는 20살 때에 벌써 불의에 저항하고 실존적인 문제에 대해 사색했는데, 나는 20살때 무엇을 했던가? 물론 그들이 살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많이 다르다. 그 당시에 불의에 항거하며 수업과 시험을 보이콧했던 학생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토익책을 들고 도서관에 틀어박힌다. 그렇다. 요즘의 세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기 힘들도록 한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1968년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격한 시위를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지만, 책을 읽고 깊은 생각을 하고 싶다. 확실히 독서 수준이나 사고의 깊이 같은 것은 그 당시의 대학생, 또는 중고등학생들이 훨씬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독서와 사고 수준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난 아직 멀었다. 주변 환경이나 시대 탓을 하기보다, 많은 생각을 하고 머릿속을 채워나가고 싶다. 내게 있어서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는 명백하게 달라졌다. 정신을 좀 더 단단히 무장한 느낌이랄까. "인간의 존재 가치는 완전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면서도 그 불완전한 부분을 극복하는 데 있다." "자기 창조를 완성시킬 때까지 나는 죽지 않을 겁니다." 이 두 구절이 내게 특히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