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모래알
이양지 / 다모아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재일동포 작가들 중 이양지를 제일 좋아한다. 학부 시절 '일본문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에서 이양지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냥 무덤덤하게 넘겼었지만 한참 지난 지금 이양지의 소설들을 새삼스레 구해 읽게 되었다. 여러 소설들 중에서 <유희>나 <각(却)>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각>은 우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될때 <꿈꾸는 모래알>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나왔다. 

<각>의 주인공인 재일동포 순이는 나이가 대략 26살 정도로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고, 한국에 온 목적이 조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학원인지 대학교인지 모르겠지만 아침 9시까지 학교에 가서 재일동포들끼리 모여있는 반에서 오후 4시까지 열심히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나서 택시를 타고 가야금 레슨을 받으러 가고, 그것이 끝나면 또 살풀이춤 레슨을 받으러 간다. 끝나고 하숙집에 돌아와서 학교에서 배운것을 복습하고 한 새벽 3시쯤에 잔다.

그런데 작품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초조해하며 꽤 자주 화장을 지웠다가 새로 하고, 밖에 있을 때 틈만 나면 손을 씻는 등의 일종의 결벽증을 그는 갖고 있다. 완전히 만취해서 평소에 시끄럽게 짖던 하숙집 개를 두들겨 패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한밤중에 공부하다가 갑자기 가야금의 줄을 전부 쥐어뜯어버리기도 하고 참 알 수 없는 캐릭이다.

이 작품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해서 작가 이양지의 경험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이양지는 와세다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으로 유학와서 서울대 국문과를 다녔으며 오빠의 사망, 휴학 등 우여곡절 끝에 졸업하고 이화여대 고전무용과 대학원을 다녔다. 또한 명인에게 살풀이와 가야금 등을 지도받았다고 한다. <각>에서의 주인공의 모습은 곧 작가 본인의 체험인 것이다. 조국이라는 것을 알고 느끼기 위해서, 자기 안의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을 채우기 위해서 한국에 와서 한국어와 살풀이춤을 배우는데 살풀이라는 것은 '한의 승화'의 의미가 강하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진정으로 속하지 못하는 자이니치로써의 한을, 살풀이로써 승화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또한 조국의 문화와 언어를 접하려면 한국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며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를 갖고 또 한국의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녀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데 계속 학교와 레슨장소, 하숙집만 왔다갔다하는 빡빡한 일정을 주인공은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며 살고 있어도 한국에서 순이는 '말투에서 일본어의 느낌이 나는'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결국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그러한 것에 대한 절망들이 마음에 쌓여서 한밤중에 공부하다 말고 가야금 줄을 전부 뜯은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웬지 내 자신의 모습이, 주인공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확실히 자이니치 관련 작품을 읽으면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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