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톤체홉은 4대희곡 (벚꽃동산,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자매)으로 세익스피어의 뒤를 잇는 최고의 극작가로 명성이 높다. 헌데 그의 단편소설 또한 후대의 모든 현대 소설가들의 전범이 될 정도로 간결체의 문체와 촌철살인의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아마도 헤밍웨이를 비롯한 유수의 작가들은 그의 작품을 흠모 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 계보는 레이먼드 카버와 존 치버를 거쳐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민규에게 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터이다.

부끄럽지만 이제서야 표제작 '사랑에 관하여'를 비롯한 9편의 단편을 수록한 펭귄 클래식의 체홉 단편선으로 그의 단편과 처음으로 만났다. 동시대 러시아 작가군인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과 비교해 본다면 얼마나 체홉이 모던한 작가였는지는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게 러시아의 국민성이다보니 이 두 거장의 클래식한 작품들이 오히려 당대엔 주목받았을 것이다.

허나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리는 당대의 러시아 소설에 대한 섭취에 있어서만큼은 이 두 선생보다는 단연 체홉이 대중적 인기와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대학로에서는 거의 일년 내내 그의 희곡이 공연되고 있으며, 학교 워크샵 작품으로 단연 일순위에 꼽히는 게 바로 체홉이니 말이다. 게다가 소설창작 수업에서도 어김없이 거쳐가는 작가들의 교과서같은 작품들이 또한 체홉의 단편들이니 두 말 할 나위 없이 그는 '살아 숨쉬는' 이야기꾼인 것이다.

아홉편의 단편들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느낄 순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어떤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절망스런 세상에 대한 풍자와 조롱,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는 우리안에 있는 '휴머니즘'을 통한 연대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 문학 특유의 색깔인 종교와 이상, 신념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색과 삶에 대한 처절한 묘사는 그의 이야기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체홉이 일견 평가절하 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다른 면에선 그가 여전히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단편을 읽는 법은 서사구조가 꽉 짜여진 장편소설이 아닌 탓에 하나의 시처럼 노래처럼 각각의 단편에서 스쳐가듯 느껴진 단상들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홉편의 단편들에서 내 삶으로 들어온 매혹적인 문장들과 그에 대한 소소한 생각들을 적어가면서 리뷰를 마치려 한다.
 

 


"순간 맛있는 냄새가 더 이상 내 몸을 간질이지 않는다. 환상이 사라진다....... 이제 난 모든 걸 알아버렸다!" 


- 소년이 고통스럽게 성장하는 순간이다. 꿈과 환상이 사라진 그 자리엔 가혹한 현실만이 들어찰 것이다. 자신도 아비처럼 대물림 받은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살 것이고, 굶주림과 병으로 인해 눈물 흘릴 것임을 모두 알아채고 만 것이다. 차마  잠들지 못하고 눈 앞에서 중얼거리는 광기 어린 아비를 훔쳐 보며 이 소년은 슬쩍 눈을 감는다.  약해져 버린 아비의 등 굽은 허리를 바라본 자식들이라면 모두 그 쓸쓸한 야윔을 만나는 순간이 얼마나 눈물을 자아내는 것인지 알 것이다.  세상은 고통스럽고 아픔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 그것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때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일 테니까 말이다.  소년은 이젠 울지 않을 것이다...
 

 

진창

"마음을 짓누르던 권태는 단번에 사라졌고 지리멸렬하던 눈빛은 만족감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 사채 빚을 받으러 간 결혼을 앞둔 동생과 유부남 형이 한 유대인 여인네의 매력스런 진창에 빠져서 허우적 거린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산다는 것은 인류보존의 사명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제도일 것이다.  허나 어떠한 제도 이던 간에 이는 개인의 관습적 삶의 하나의 선택일 뿐, 인간으로서의 의무나 시민으로서의 책임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궤도에 들어가지 않는 이는 그럼으로써 맞닥 드려야 할 무수한 적들과 장애물들과 투쟁할 수 밖엔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결혼을 앞둔 이에게 이 여인네는 끝없이 말을 건넨다. 왜 그 수렁으로 들어가냐고, 그 진창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차라리 이곳에서 나와 함께 깊고 푸른 밤을 지새면서 한바탕 흥겨이 노니고 가는건 어떻냐고 유혹하면서 말이다.   꿈같던 시간에서 벗어난 그는 다시 제도라는 진창에 발을 내 딛지만 끝내 마지막 순간엔 다시 그녀에게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토록 엄격했던 형을 만나곤 충격에 빠져 꼬리를 빼며 도망쳐 버리고 만다.  아마 그는 주말마다 이곳에 다시 찾아올 것이고, 어쩌면 또 다른 귀여운 여인을 만나 손을 꼭 잡고 사랑의 도피를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나 멸균스런 삶을 살고 있진 않는가? 진창에 빠져서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노닐고 싶진 않는가?
 

 

구세프

"아무것도 무섭진 않아." 


"전처럼 설명할 수 없는 갈망이 그를 괴롭히지만 도대체 뭐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곧 그 자신도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럽고 열정적이며 기쁨에 넘치는 빛깔을 띠어간다."
 

-  한 인간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인간이 함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생사필멸. 생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여행일 뿐이니, 죽음 또한 탄생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런 삶의 여정일터,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허나 생명보존이라는 동물적 본능과 삶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라는 사회적 본성은 우리를 죽음앞에서 두려움과 절망으로 떨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살아가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당연스레 죽어가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나 이제 죽습니다'라는 유언으로 죽음을 맞이한 체홉의 유언처럼 생의 페이지가 넘어갈때 당당하게 그 숙명을 받아드릴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것이다.  구세프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아니 어쩌면 죽음과 끝까지 싸우다 간 노인의 스러져감을 목격하였다.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다가올 자연현상에 대해 인정하고, 마음을 비운 후 그는 이젠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뭔가 삶에 대한 미련의 끝자락이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지만 그 정체가 무언지는 자신도 알수가 없어한다.  허나 결국엔 구세프는 방어떼와 상어떼의 뱃살 위에서 유영을 하며 찰랑이는 물에 비치는 한줄기 햇살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육신은 깊은 어둠의 심연에 묻힐 테지만, 영혼은 부드럽고 열정적인 햇살과 함께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다닐 것이다.  어찌하여 생명의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 하면서, 영혼의 죽음은 무서워하지 않는것일까?  

검은 수사 


"그는 저열하거나 아주 평범한 행복의 대가로 삶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를 생각했다." 


"모든 인간은 그저 자신의 상태에 만족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슬픔 때문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했고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아름답고 달콤한 기쁨이 그의 가슴속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타냐를, 이슬이 맺힌 화려한 꽃들로 뒤덮인 정원을, 공원과 털복숭이 뿌리를 드러낸 소나무들과 호밀밭을, 자신의 뛰어난 학문과 젊음과 용기와 기쁨을, 너무도 아름다웠던 삶을 불렀다.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행복감이 그의 온 존재를 감쌌다."

- 한 젊은 학자가 숲길에서 우연한 전설과 마주친다.   언젠가 이곳을 지나갔던 검은 옷을 입은 수사가 지구를 돌고 돌아 천년에 한번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바로 그 전설과 말이다. 연구에 대한 열정에 가득했던 그는 수사가 던진 한마디를 평생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네는 최고의 천재일세' 그의 말에 자신감에 충만하여 온갖 열정을 바쳐 연구를 하려던 그는 행복에 취해 한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 평범한 대학교수로써 삶을 마감한다. 죽기 전 바로 그 순간 다시 검은 수사가 나타나서 그의 삶을 뒤흔드는 한마디를 건넨다. '왜 자네는 내 말을 믿지 않았나' 평범하게 살기 위해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생계를 위해 교수일을 했던 그는 삶의 끝자락에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교수로서의 명성도 아니고, 재물과 부도 아니고, 재혼한 아름다운 여인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순수와 열정이었다. 그때는 참 아름다웠었는데... 라며 말이다. 
  어느새 자신의 삶은 평범한 인생에 길들여져 버렸고 해소되지 못한 광기는 학문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그저 죽음과 함께 스러져가 버렸던 것이다.  검은 수사는 누군가에겐 신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신념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자신의 그림자일수도 있다.  생을 살다보면 언젠가 누구나에게 이러한 검은 수사와의 만남은 소리없이 불쑥 닥치게 마련이다. '왜 내 말을 믿지 않았나' 라는 질문에 생을 돌아볼때 떠올릴만한 행복한 순간을 곰곰히 떠올려 보자.  바로 그 순간이 진정 내가 살아가야만 할 길이 아닐까?

로실드의 바이올린

 "인생은 아무런 유익도 만족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담배 한 모금 빨아들일 시간도 없이 헛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앞을 보면 이미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뒤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손해,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한 손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인간은 이런 상실과 손해 없이는 살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왜 사람들은 서로서로 편안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못하는 걸까? 그로 인한 손해가 이렇게 큰데도 말이다! 얼마나 무서운 손실인가! 증오와 미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엄청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인간은 삶에서는 손해만을, 죽음에서는 이익만을 얻는 것이다. 물론 온당하지만, 어쨋든 서글프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다. 도대체 왜 이 세상에는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이 아무런 유익 없이 흘러간다는, 이토록 이상한 질서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져왔고 사라질 테니까!"

"손해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인생을 생각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너무도 구슬프고 감동적인 선율이 흘러나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더 깊이 생각에 잠길수록 바이올린은 더 서글프게 노래했다"

"그가 문턱에 걸터앉아 야코프의 연주를 흉내 내려 할 때면 너무도 우울하고 비장한 음조가 흘러나와 듣는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고, 결국은 그 자신도 눈을 치켜뜨며 "아!"하는 탄성을 지르고 만다."

- 인생은 덧없다. 화무십일홍이라 언젠가 우리 모두는 지게 마련인 것이다.  늘 손해만 떠올리며 살다간 한 바이올린 연주자 겸 관 제조자가 있다.  누군가 죽어 나가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장의 노동자는 서글프고 고통스럽기 마련일 것이다. 누군가 생을 유지한다는 게 그에게는 전부 손해일테니까. 그렇게 늘 증오와 미움 속에서 살아간 그에게 유일한 행복은 바이올린 연주 였다.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자신에 대한 치유이자 이웃에 대한 보은인 것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며 연주를 하곤 그 바이올린을 평생 혐오하던 로실드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그는 떠난다.  그 위대한 유산은 로실드의 새로운 삶이 되어 선율로 되살아나고, 또 다른 이에게  그 아름다운 연주는 카타르시스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한다. 손해만을 생각하며 증오와 미움속에서 살아온 인생이 덧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각성과 성찰의 순간이 그의 바이올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로실드가 연주할 때면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것처럼, 야코프가 깨달음을 얻은 것 처럼, 우리는 체홉을 읽으면서 '아!' 하고 내 삶의 무늬를 넓힌다.  누군가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할 나의 바이올린은 무엇일까? 그 바이올린에 성찰이라는 각인을 새겨 넣고는 있는가?

 

상자 속의 사나이

"관에 누워 있는 그의 표정은 유순하고 유쾌하며 심지어 신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상자에 자기를 담아준 것을 기뻐하는 듯했지요. 그래요, 그는 꿈을 이룬겁니다!"

"사실 벨리코프를 장사 지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전히 상자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도시에서 갑갑하고 비좁게 살면서 쓸데없는 서류를 쓰고, 빈트 놀이를 하는 것, 그건 상자가 아닐까요? 우리가 평생을 한량, 소송꾼, 어리석고 하는 일 없는 여자들 사이에서 살면서 이런저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 그건 상자가 아닐까요?"

"그 거짓말을 참기 때문에 바보란 소리를 듣는 겁니다. 모욕과 경멸을 견디면서 자기가 정직하고 자유로운 인간 편에 속한다는 것을 당당하게 선포하지 못하고, 자기도 거짓을 말하고 미소를 짓는 거죠. 그리고 그게 다 빵 한 조각, 미룰 수 없는 따뜻한 방구석,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거지 같은 관직 때문인 거죠. 아뇨, 더 이상 그렇게 살수는 없습니다!"

- 어느 자리에서나 늘 놀림감이 되는 사람좋은 동네 바보형 하나 쯤은 있게 마련이다.  벨리코프는 은둔형 외톨이 처럼 늘 혼자 있는게 편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미숙한 아이와 같은 바보형으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심지어 결혼할 짝에 대한 욕망조차 주변인들이 놀림반 충고반 섞어서 부추기고 엮어 주어서 겨우 가슴속에서 끄집어 냈으니까 말이다.  상자 속에만 있던 그가 드디어 처음으로 상자 밖으로, 세상 속으로, 인간들 안으로 발을 내딛으려 한다.  허나 생은 얼마나 가혹한가. 바로 그녀 앞에서 계단을 우스꽝스럽게 굴러 떨어지며 몸 개그를 펼치고 만 우리의 바보형은 다시 상자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그 바보형이 상자에 누워 있는 것을 목격한 동네 사람들은 묘하게 자신의 삶을 유추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거짓말쟁이이고 결국엔 안정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관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수는 없어!' 라는 사유를 남기고 떠나 간 동네 바보형의 생이 어쩌면 바보임을 모르고 평생을 살고 있는 그들보다 아름다웠으리라.  나는 온 동네 꼬마들의 놀림감이 된 바보형일까? 아니면 자신이 바보임을 외면하고 위선으로 가득 찬 거짓말로 살아가는 가면을 쓴 바보일까?

산딸기

"세상에는 스스로에게 만족한 행복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건 얼마나 억압적인 힘인가!"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요. 삶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은 어딘가 무대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무대 위는 고요하고 평온하죠."

"행복한 사람이 평안한 건 불행한 사람들이 말없이 자기 짐을 지는 덕분이라는 게 명백하니까요. 불행한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으면 행복이란 불가능하겠죠."

" 뭘 위해서 기다려야 합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도시에서 지내는 게 참을 수 없이 힘들어졌습니다. 도시를 가득 채운 고요와 평온이 저를 짓누릅니다. 창문을 들여다보는 게 두려워요. 이제 나에게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행복한 가정보다 더 끔찍한 광경이란 없으니까요. 난 이미 늙었고, 싸울 수도 없어요. 심지어 증오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저 마음으로 슬퍼하며 신경질을 내고 분개할 뿐이죠. 밤마다 생각이 넘쳐나 머리가 뜨거워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아, 내가 젊었더라면!"

"평온하게 지내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잠재우지 마십시오! 아직 젋고 강하고 원기 왕성할 때, 지치지 말고 선한 일을 하십시오! 행복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지만, 만일 삶에 의미와 목표가 있다면, 그 의미와 목표는 우리의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더 합리적이고 위대한 것에 있는 겁니다. 선한 일을 하십시오!"
 

-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분노가 사라지고 차분하게 생을 관조하게 된다고 한다. 깨어 있는 어른이 많지 않은건 아마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행복과 긍정의 담론이 온통 세상을 휘덮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살아 가는게 녹녹치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고, 중세에 종교가 창궐했 듯 언제나 불안과 공포의 시대가 다가오면 행복 전도사들이 위대한 선지자가 되게 마련이다. 도시에서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생을 연장해 줄 자식을 낳고 직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 받는 지위에 오르게 되면 점차 만족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평형추로 균형을 잡은 멸균의 삶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른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조화롭고 비례가 완벽한 위대한 성을 쌓은 것이다. 동생이 평생의 목적으로 삼은 시골에서 직접 재배한 산딸기 먹기를 늘 조롱하던 형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산딸기를 떠올리게 된다. '조금만 기달려 봐' 라고 늘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며 살아 왔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분노를 잃어 버렸기 때문임을 알게 되지만 이미 늙어버렸다!
 내 소중한 산딸기를 땅 속에 묻어만 놓고 그 위에 펜션을 짓고 행복하다며 미소 짓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썩어가고 있는 소중한 분노의 산딸기를 캐어 보는것은 어떨까?

사랑에 관하여

"사랑에 관해 지금껏 내려진 정의 중 논쟁할 수 없는 진리는 딱 하나예요. 그건 바로 '사랑의 비밀은 위대하다'는 거죠. 이외에 사람들이 말하고 쓴 모든 정의는 해답이 아니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제들을 제기한 데 불과한 거였죠. 어떤 경우에는 유용해 보이는 설명이 다른 수십 가지 경우에는 소용이 없는 겁니다.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경우를 종합하려하지 않고 각각의 경우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왜 그녀가  아닌 그 사람을 만났는지,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삶에 이런 끔찍한 실수가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발버둥쳤습니다."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수줍게, 그리고 갖은 애를 써서 숨기곤 했습니다. 우리의 비밀을 우리 자신에게 폭로해 버릴 수 있을 일들이 두려웠습니다. 분명 그녀를 부드럽게, 깊이 사랑했지만, 우리의 사랑을 억누르지 못하면 이 사랑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하고 자문했습니다."

"만일 자기 감정에 몸을 맡기면,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말해야 할 텐데, 그녀의 상황에서는 전자도 후자도 똑같이 두렵고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있을 때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내가 누구와 논쟁이라도 벌일 때면, 항상 상대의 편을 들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또 그녀와 극장에 갈 때 오페라글라스를 가져오는 걸 깜빡하면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저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심장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제야 우리의 사랑을 방해한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사소하고 기만적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랑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선행이나 악행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들 한다.  주말마다 북한산 자락에서 불콰한 얼굴로 중년의 로맨스를 나누는 이들을 보면 혀를 차거나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위대한 사랑의 비밀을 아직 깨닫지 못한 탓일 게다. 어쩌면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분들의 사랑이야말로 로맨스일 것이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 금기와 위반에서 고민하며 차마 사랑이라 고백하지도 못하는 이 두 남녀를 바라보는 심정은 꽤나 복잡하다. '우린 그들에게 지지 말아요' 라며 내내 끙끙 앓다가 앙코르와트 사원에 가서야 조심스레 고백을 하는 화양연화의 양조위의 사랑 과  '당신을 안고 싶어요' 라며 건반 하나씩 거래하다 벙어리 에이다가 말을 트고 남편을 떠나고 새롭게 삶을 선택하게 한 피아노의 하비케이텔의 사랑.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이렇 듯 각자 다른 선택을 할 순 있겠지만  어느 누가 이 둘의 사랑을 불륜이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진실로 고백할 수도 없고, 거짓말로 외면할수도 없는 이 아이러니야말로 사랑의 위대한 비밀의 방정식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하는 순간 그제서야 그 모든 것은 사소한 위선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이 둘은 깨닫게 된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사랑하기! 조건없는 사랑. 앞뒤 따지지 않고 몸을 맡기는 사랑.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랑.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랑. 체홉이 말하는 위대한 사랑의 비밀은 바로 모든 사랑은 다 사랑이다 라는 단순한 진리일 것이다.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가? 고백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아무 생각 없이 가슴이 뛰는 곳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가야만 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빠르게 스쳐 지나갈 관계. 이름도 성도 모르는 미지의 여인과의 연애에 대한 매혹적인 생각이 갑작스레 그를 사로잡았다."

"이것과 다른 삶도 있잖아...... 제대로 살고 싶어! 살고, 또 살고 싶어......"

"얼마나 야만적인 사람들인가! 도대체 이 무의미한 밤과 지루한 날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미친 듯 빠져드는 카드놀이, 폭식, 만취, 항상 똑같은 이야기들, 불필요한 일과 늘 똑같은 대화가 인생 최고의 시간, 최고의 힘을 앗아가 버리고, 결국에는 날개도 꼬리도 잘려버린 삶, 웬 헛소리 같은 삶만 남는다. 하지만 거기서 도망치거나 떠나는 것도 불가능해, 정신병원이나 수인부대에 갇힌 듯 살아가는 것이다!"

"이 평범한 여자가 그의 삶 전체를 채우는 슬픔이자 기쁨이요, 그가 원하는 유일한 행복이었다."

"모두들 마치 밤 같은 비밀의 덮개 아래 흘러가는 진짜 인생, 가장 흥미로운 인생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의 개인적인 삶은 비밀스레 유지되고 있고, 부분적으로는 그 때문에 문화적인 인간은 사적인 비밀을 지키는 일에 그토록 예민하게 구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멀고도 먼 길이 남아 있으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두 사람 모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이번에 그는 아무 조건없이 생각 없이 모르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헌데 단지 일시적인 충동에서 시작한 이 위험한 게임이 그의 삶 전체를 뒤흔들어 버리고 만다.  일상에서의 일탈이 익명성과 결합하면 묘한 과감함과 관능성이 솟아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름도 모를 이와의 짜릿한 짧은 로맨스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것 중 하나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때 낯선 이와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무목적성의 조건없는 연애를 낳고 그것이 때론 사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모두가 숨기고 있는 진짜 흥미로운 인생을 드러내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매혹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조건과 외모의 교환이라는 결혼시장에서의 계약에서는 중요치 않았던 이러한 관능성과 매혹을 뒤늦게 만나는 순간 일탈의 쾌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의 해결책이 아름답고 흥미롭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멀고도 먼 복잡하고 어려운 길에 들어선 것일 뿐일 수도 있다. 허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이 아닌, 시작점에 선 사랑이기에 그 길은 그리 고통스럽고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삶이 휘청거리고 생의 에너지가 넘치고 슬픔에 눈물 흘려본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뿐 아니라 그저 여인일지라도 몸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 두근거리고 설레일 시간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12-19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아무 조건없이 생각 없이 모르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도발적이군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죠. "그저 여인일지라도 몸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 두근거리고 설레일 시간이다". 도발적인 것이 책인지 블로그인지 당최 헷갈리기까지..^^;;
 
헨리와 준 펭귄클래식 57
아나이스 닌 지음, 홍성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젯밤 나는 흐느껴 울었다. 내가 여자가 된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흐느껴 울었다."

 

[헨리와 준]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나이스 닌은 무엇 때문에 이렇 듯 흐느껴 울었을까?

 

그녀는 어릴때부터 남동생들을 돌보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린 열한살부터 편지글 형식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평생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써 내어 삼만오천페이지의 육필원고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녀의 삶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 1931년-1932년의 일기를 엮은 산문집이다.

 

이 작품에 대한 기억은 오래전 영화로 만들어진 '헨리와 준'을 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게 이 작품은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작품을 만든 '필립 카우프만'이라는 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에로틱한 문학영화 정도였다.

당시 '킬빌'이전의 신인이었던 '우마서먼'이라는 배우의 뇌쇄적인 매력에 혹해 이 작품을 본 건 순전한 그런 관능성 때문이었다.

허나 그녀보다는 '헨리'와 '준' 사이를 오가던 '닌' 역할의 '마리아 데 메데이로스'의 묘한 얼굴이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스모키한 화장에 숏컷 헤어를 하곤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글을 쓰는 역할이기에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나이스 닌'은 이렇 듯 영화 속 매력적인 여배우의 모습으로 만 내 맘속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무의식이 독서모임에서 추천도서를 고를 때 주저없이 맨 처음으로 이 '헨리와 준'이라는 작품을 고르게 했을 것이다.

 

결국 가슴 설레이며 이 작품의 페이지를 넘기던 시간은 상당 부분은 즐거운 충격이었고, 어느 정도는 실망스런 고통이 되었다.

 

고백하건데 아리스토텔레스 옹의 가르침에 따른 '소설'의 꽉 짜여진 구조와 캐릭터에 이미 몸이 적응되어 있던터라,

인과관계가 허술한 단편적인 사건과 인물의 연결과 감정의 지리한 묘사로 구성된 '일기'를 읽는 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허나 일기란 원래 자신의 역사를 정리하고 생각을 기록하기 위한 일종의 다큐적 글쓰기 아닌가.

이렇듯 누군가의 삶을 훔쳐본다는 것은 관음증적 쾌감은 있을지언정 느슨한 서사적 완결성으로 인한 지루함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묘사해 내고, 철저하게 주관적인 인물에 대한 시선을 그려내면서,

일명 '에로틱한 글쓰기'로써 가감없는 직설적인 표현과 강도 높은 애증의 널뛰기 정서의 서술에서 오는 통쾌함과 뜨거움은 단연코 매럭적이기도 했다.

 

요즘에도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나 '까페활동' '블로깅' 등을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감정과 의견을 배설하고 공유하는 즐거운 문화를 향유하고 있기에,

당연스레 이러한 고답스러운 '일기' 훔쳐보기 또한 익숙한 '쾌'를 선사할 것이다. 어떤이는 '유쾌'로 다른이는 '불쾌'로 각기 다른 경험이겠지만 말이다.

 

이제, 다시 맨 처음에 던졌던 화두로 돌아가 보자. '왜 닌은 흐느꼈나?'

그녀는 은행가 남편을 두고 파리의 저택에서 살고 있는 상류층 귀부인이다. 먹고 살 걱정 전혀 할 필요 없는 배경이다.

로렌스에 대한 논문을 써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매일마다 일기를 쓰며, 가끔 소설도 쓰며 자신의 꿈인 '창작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게다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닌을 사랑한다!

우정으로써 사랑하는 에두아르노, 숭배로써 따르는 프레드,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알렌디, 헌신적인 남편 휴고, 열광하는 준, 모든 걸 내던지는 헨리 까지...

일기라는 사적인 매체라는 걸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욕망하고, 숭배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삶인 것인가.

심지어 남편의 재정후원으로 파트너 헨리의 창작에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서 '빠뜨롱'처럼 지원하기 까지 한다.

가끔은 하루에 여려명의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즐기기 까지 한다.

 

닌의 객관적인 상황만 이야기 한다면 듣는 어느 누구나 '팔자 좋은 여인네' 하면서 부러워 하거나 '미친 x'하면서 욕을 하거나 할 것이다.

나 또한 이 모든 걸 모르고 있는, 어쩌면 모른척 하고 있을지도 모를 남편 휴고에게 감정이입되면서 단죄하고 픈 마음이 모락모락 올라왔으니 말이다.

허나 우리들 모두가 그녀 자신이 아닌 이상, 그녀의 행동과 감정에 대해서 어찌 감히 말 할수 있을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 혹은 '순간 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생' 어쩌면 '육체적 쾌락와 정신적 만족을 한껏 누린 순간'

아마도 이 작품은 닌의 인생 중 가장 역동적이고 충만했던 생의 반짝반짝 빛나는 찰라를 그려 낸 정밀화이자

마음의 물결과 파고를 원초적으로 스케치한 추상화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언제 한번 '아나이스 닌'처럼 순전한 내 욕망에 충실하면서 뜨겁게 사랑해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내 삶의 파편을 여과없이 솔직하게 글로 표현해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인해 처절하게 '흐느껴 울어 본' 적은 있는가?

 

이제, 한껏 흐느껴 울 시간이다.

사랑한다면, 아니이스 닌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래식 20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 사자가 왔다. 나의 아이들이 가까이 오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무르익었다. 나의 때가 왔다. 

  이것이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이 시작된다. 솟아라. 위로 솟아라. 그대 위대한 정오여!"

니체를 읽기 위해선 책을 펴기도 전에 우선 그 무게감에 압도되어,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은 빨라지고 손은 바들바들 떨리는 그런 강렬한 두려움의 순간을 체험해야만 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고전의 정의는,
니체에 있어서는 '아무나 읽고 싶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해야 하리라. 

니체 하면 떠 오르는 두편의 영화가 있다. 

첫째는, 그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원숭이가 뼈를 내리치며 폭력의 태초를 경험하는 순간 하늘로 던져진 그 뼈다귀는 시공간을 초월해 우주공간의 우주선으로 바뀐다. 그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곡이다. 

다음엔, '리틀 미스 선샤인' 이라는 영화에서 
장남 캐릭터가 첫 등장부터 방에 커다란 니체의 포스터를 붙여놓고 역기로 운동을 하고는, 식사시간엔 떡 하니 바로 이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며 앉아있다. 니체사상에 심취해서 묵언수행을 하며 메모로 대화를 나누던 그는 후에 색맹임이 밝혀져 파일럿이 될수 없음에 체념하고 통곡을 하곤 스스로 깨어나게 된다.

이렇듯, 

내게 있어 니체는 장엄하고도 웅장한 어마 어마한 철학적 담론을 무겁게 말하고 있을 것이고, 
그 것은 한 인간의 삶을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포스를 뿜어낼 것이라는 무섭고도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무척이나 쉬었으며 강렬한 독서체험을 선사하기엔 말랑말랑한 책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한 인간이 산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속세로 내려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삶을 각성하고, 설교한 후 산에 다시 되돌아 왔더니 '아, 나부터 바뀌어야 겠네' 라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산하는' 아주 단순명료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모르 빠띠', '위버멘쉬', '위버멘쉬에의 의지', '힘과 자기 극복에의 의지', '위험하게 살아라!', '영원회귀', '삶의 총체적 긍정', '위대한 정오' 

이러한 철학적 관념어들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며 후덜덜 다리에 힘 빼가며 굳이 읽지 않아도 충분히 니체의 이야기는 총체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한 구도자의 여행기로 읽으며 그가 경험하는 모험담을 즐겨도 좋고, 
한편의 거대한 장편 서사시로 읽으며 문체와 운율을 즐기며 서정을 탐해도 좋고, 
여러개의 아포리즘으로 읽으며 몇개의 맛깔난 문장을 가슴에 담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물론, 크리스천이라면 '신은 죽었다' 라는 니체의 무신론적 과격성에 오버하며 흥분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의 이야기에 온 맘과 몸이 빨려 들어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하며 신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허나. 읽기도 전에 무턱대고 두려워 해서 책장에만 전시해 놓거나, 
혹은 읽는 내내 명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며 한숨과 짜증을 퍽퍽 내쉬며 가학적 독서행위를 한다면 인생에 있어 큰 손해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한번 읽고 휙 던져서 라면 받침대로 사용해도 좋고, 너무 좋아서 재독, 삼독 하며 논문을 써내려 가도 좋다. 

어찌하든, 무게에 눌리지 말자!

고전을 오랫동안 읽어오며 확신하는 두가지가 있다. 

책이 잘 읽혀지지 않고 고통스럽다면, 
아마도 번역자가 숭구리당당 숭당당 해서 외계어로 써 내려간 것이거나, 
손에 든 그 책의 저자가 삐리리해서 중언부언 횡설수설 하고 퇴고도 안한 것!
분명 이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내 지적 능력이 모자라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거나, 
갑작스레 난독증에 빠져서 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니, 무게감에 짓눌리지 말자.

라며 이 책을 손에 들고 시시때때로 휘리릭 넘겨가며 폭풍처럼 읽어 내려갔다. 
그 와중에 내 가슴을 파고든 단 하나의 문장은 바로 저 서두에 적어놓은 '위대한 정오!' 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건.

추운 겨울 밤, 밖에는 칼바람이 불어오고 방은 난방이 되지 않아 오들오들 떨리는데 호롱불 하나 켜놓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상투와 깃을 바싹 세우고 고고하고도 치열하게 절대적 고요와 침묵속에서 책장을 넘기다가  

결국엔 가슴속이 뜨거워져 문을 활짝 열어보니 어느새 저 산너머 하늘엔 붉은 태양이 솟아나는 것을 목격할 때의 그런 심정일테다. 

언제 다시 그 추위와 싸워가며 고난의 행로를 해 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따스한 봄날 오후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어느 여인네의 무릎에 기대어 '차라투스트라'의 모험담을 연애시처럼 자곤조곤 속삭일 날이 올 게다...




p.s) 10대에 이 책을 진작에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살아 있을때,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진짜 눈물이 무엇인지 몰랐단다." (행복한 왕자 중)

 

왕자는 죽고 나서야 인간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생을 끝내고 나서야 인간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초월적인 이러한 희생에 얼마나 조롱을 던지며 살아가는가.

 

"내 정원 어디에도 붉은 장미꽃은 없다고"(나이팅게일과 장미 꽃 중)

 

누구나 저 마다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김태평군의 몇백평짜리 휘황찬란한 시크릿 가든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 속 작은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나이팅게일은 붉은 장미 꽃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찢으며 사랑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는가.

 

" 내가 얼마나 못되었던가! 봄이 오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할겠다.저 불썽한 작은 아이를 나무 꼭대기에 올려 줘야지. 그리고 저 벽을 모두 부숴버려야겠다. 내 정원이 영원히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자기만 아는 거인 중)

 

우리는 저마다의 그 정원에 울타리를 치고 '아무도 들어오지 마시오' 라며 벽을 쌓는다.

눈물과 노래로 장미 꽃을 피워 냈지만  그 꽃은 그 안에서 시들어만 가고 아무도 이제는 볼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도 오지 않고, 봄 조차도 찾아오지 않는 처절한 외로움과 고독속에서 발버둥 쳐본 자 만이 자신의 벽을 깨 부술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

그 속에서 겨울을 이겨내고 묵묵히 자라난 우리의 나무가 되어야만 비로소 그것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수 있다.

 

"내 다정한 친구여, 내 정원에 있는 꽃을 모두 가져가도 되네."(헌신적인 친구 중)

 

단 한명의 소중한 친구를 위하여, 우리는 그렇게 다시 피워낸 꽃을 진정으로 내 줄수가 있다.

정원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꽃일지라도, 이미 그 꽃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지지 않고 만발해 있기에 아낌없이 줄수 있는 것이다.

 

"내가 정말 큰 일을 할 줄 알았지." (비범한 로켓 불꽃 중)

 

죽어가는 순간까지 이러한 우리의 삶은 쓸모 없는 것이라 손가락질 당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왕의 결혼식에서 번쩍이며 터트려 지는 멋진 클라이막스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던 거위 한마리라도 그 고난을 뚫고 살아난 한가닥의 불꽃을 볼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모두가 다 삶을 그렇게 거대하게 살아내는 것만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슬픔이 만든 옷을 어찌 기쁨이 입을 수 있겠습니까?" (어린 왕 중)

 

우리는 우리의 삶이란건 슬픔이라는 옷을 한땀한땀 지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이태리 장인의 손을 거친 기쁨이라는 옷을 입고 살아간다며 허풍을 떨겠지만 누구도 그것이 슬픔의 옷이라는 건 알고 있다.

 

"앞으로 나를 즐겁게 해 줄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해." (공주의 생일 중)

 

헌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그러한 삶의 진실을 직면하지 못한다.

공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에 가득차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난쟁이 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언젠가 그 어두운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을 만나게 될 것을.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그 현실에서 잔혹하게 깨어질 환상이라는 마약에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면서 말이다.

 

"내가 새벽마다 그대를 불렀건만 그대는 내게 돌아 오지 않았다. 이제 그대가 죽었으니 나 또한 그대와 함께 죽으리라." (어부와 그의 영혼 중)

 

그럼에도 우리는 늘 사랑을 하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버리기도 한다.

관습, 윤리, 제도, 도덕 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육체성의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스러운 인어는 언젠가 바다로 사라지고야 만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인어와 함께 다리를 자르고 파도속으로 뛰어들거나

영혼의 만족을 위해  우리 안의 그 인어를 죽여버리거나 말이다.

 

"제 고통은 이제 제가 견디기에 너무 큽니다. 절 용서해 주세요.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별에서 온 아이 중)

 

우리는 처음엔 누구나 별에서 온 아이로 태어났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말이다.

지구에서 온 아이들과 난 다르다며 늘 그들을 짓밟고 누르고 죽이면서 우리는 우리의 숲을 잊어 버리고 만다.

실은 우리 모두는 숲에서 나온 것임을 망각하기 위해 별에서 왔다는 환상속에서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환상속에서  자라난 고통은 견딜수가 없게 되고, 그때서야 우리는 그 숲을 찾아가야만 함을 깨닫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 숲으로 돌아갔을까?

우리는 언젠가 그를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를 만나면서 나를 비춰보게 된 환상의 거울을 피할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파도속으로 휩쓸려 들어갈때까지 우리는 그 거울을 닦고 닦아 처절하게 들여다 봐야만 한다.

아마도 그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왕자는 장미꽃을 가슴에 찌르며 타인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 왕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 지세요.

그리고 거울을 통해 삶을 직시하세요.

단단한 울타리와 벽은 허무세요.

그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놀수 있잖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세상에 대한 우화로만 알려져 있지만 노동자와 자본가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헤친 정치적인 메타포로 읽을수도 있죠. 신 자유주의 시장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2010년 가을밤에 새로 나온 번역본으로 꼭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몇몇 작가님들이 올해 본 가장 뛰어난 소설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에요. 밑바닥 삶에서 벗어나려 발바둥 치는 인도의 인간군상을 치밀하게 그려낸 로힌턴 미스트리의 이 작품은 하우스푸어와 워킹푸어, 그냥 푸어로 모두가 바닥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과 디졸브 되면서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켄폴릿은 <바늘구멍>이라는 작품으로 역대 서스펜스 소설 베스트 10에 꼭 들어가는 작가에요. 허름한 헌책방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득템했던 추억이 있기도 하구요. 정말 오랜만에 그의 신작이 번역되었어요. 특히나 리들리 스콧에 의해 드라마로 방영되었다고도 하니 더욱 기대가 되네요. 중세시대 민중들의 이야기, 꽤나 매력적입니다.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여성문호라고 하네요. 얼마전 전경린 작가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딱 한편의 추천 소설로 이 작품을 단연 꼽으시더군요. 어느날 폐허에 버려진 한 여성이 벽에 갖혀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라는데, 일인칭 소설의 섬세한 묘사가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네편의 소설을 올 가을엔 읽고 싶은 리스트로 만들어 올립니다.  

이벤트 당첨여부를 떠나 이렇게 읽을 책을 고르는 과정 자체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총 구매금액, 50,760원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