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와 준 펭귄클래식 57
아나이스 닌 지음, 홍성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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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 나는 흐느껴 울었다. 내가 여자가 된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흐느껴 울었다."

 

[헨리와 준]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나이스 닌은 무엇 때문에 이렇 듯 흐느껴 울었을까?

 

그녀는 어릴때부터 남동생들을 돌보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린 열한살부터 편지글 형식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평생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써 내어 삼만오천페이지의 육필원고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녀의 삶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 1931년-1932년의 일기를 엮은 산문집이다.

 

이 작품에 대한 기억은 오래전 영화로 만들어진 '헨리와 준'을 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게 이 작품은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작품을 만든 '필립 카우프만'이라는 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에로틱한 문학영화 정도였다.

당시 '킬빌'이전의 신인이었던 '우마서먼'이라는 배우의 뇌쇄적인 매력에 혹해 이 작품을 본 건 순전한 그런 관능성 때문이었다.

허나 그녀보다는 '헨리'와 '준' 사이를 오가던 '닌' 역할의 '마리아 데 메데이로스'의 묘한 얼굴이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스모키한 화장에 숏컷 헤어를 하곤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글을 쓰는 역할이기에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나이스 닌'은 이렇 듯 영화 속 매력적인 여배우의 모습으로 만 내 맘속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무의식이 독서모임에서 추천도서를 고를 때 주저없이 맨 처음으로 이 '헨리와 준'이라는 작품을 고르게 했을 것이다.

 

결국 가슴 설레이며 이 작품의 페이지를 넘기던 시간은 상당 부분은 즐거운 충격이었고, 어느 정도는 실망스런 고통이 되었다.

 

고백하건데 아리스토텔레스 옹의 가르침에 따른 '소설'의 꽉 짜여진 구조와 캐릭터에 이미 몸이 적응되어 있던터라,

인과관계가 허술한 단편적인 사건과 인물의 연결과 감정의 지리한 묘사로 구성된 '일기'를 읽는 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허나 일기란 원래 자신의 역사를 정리하고 생각을 기록하기 위한 일종의 다큐적 글쓰기 아닌가.

이렇듯 누군가의 삶을 훔쳐본다는 것은 관음증적 쾌감은 있을지언정 느슨한 서사적 완결성으로 인한 지루함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묘사해 내고, 철저하게 주관적인 인물에 대한 시선을 그려내면서,

일명 '에로틱한 글쓰기'로써 가감없는 직설적인 표현과 강도 높은 애증의 널뛰기 정서의 서술에서 오는 통쾌함과 뜨거움은 단연코 매럭적이기도 했다.

 

요즘에도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나 '까페활동' '블로깅' 등을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감정과 의견을 배설하고 공유하는 즐거운 문화를 향유하고 있기에,

당연스레 이러한 고답스러운 '일기' 훔쳐보기 또한 익숙한 '쾌'를 선사할 것이다. 어떤이는 '유쾌'로 다른이는 '불쾌'로 각기 다른 경험이겠지만 말이다.

 

이제, 다시 맨 처음에 던졌던 화두로 돌아가 보자. '왜 닌은 흐느꼈나?'

그녀는 은행가 남편을 두고 파리의 저택에서 살고 있는 상류층 귀부인이다. 먹고 살 걱정 전혀 할 필요 없는 배경이다.

로렌스에 대한 논문을 써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매일마다 일기를 쓰며, 가끔 소설도 쓰며 자신의 꿈인 '창작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게다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닌을 사랑한다!

우정으로써 사랑하는 에두아르노, 숭배로써 따르는 프레드,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알렌디, 헌신적인 남편 휴고, 열광하는 준, 모든 걸 내던지는 헨리 까지...

일기라는 사적인 매체라는 걸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욕망하고, 숭배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삶인 것인가.

심지어 남편의 재정후원으로 파트너 헨리의 창작에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서 '빠뜨롱'처럼 지원하기 까지 한다.

가끔은 하루에 여려명의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즐기기 까지 한다.

 

닌의 객관적인 상황만 이야기 한다면 듣는 어느 누구나 '팔자 좋은 여인네' 하면서 부러워 하거나 '미친 x'하면서 욕을 하거나 할 것이다.

나 또한 이 모든 걸 모르고 있는, 어쩌면 모른척 하고 있을지도 모를 남편 휴고에게 감정이입되면서 단죄하고 픈 마음이 모락모락 올라왔으니 말이다.

허나 우리들 모두가 그녀 자신이 아닌 이상, 그녀의 행동과 감정에 대해서 어찌 감히 말 할수 있을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 혹은 '순간 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생' 어쩌면 '육체적 쾌락와 정신적 만족을 한껏 누린 순간'

아마도 이 작품은 닌의 인생 중 가장 역동적이고 충만했던 생의 반짝반짝 빛나는 찰라를 그려 낸 정밀화이자

마음의 물결과 파고를 원초적으로 스케치한 추상화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언제 한번 '아나이스 닌'처럼 순전한 내 욕망에 충실하면서 뜨겁게 사랑해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내 삶의 파편을 여과없이 솔직하게 글로 표현해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인해 처절하게 '흐느껴 울어 본' 적은 있는가?

 

이제, 한껏 흐느껴 울 시간이다.

사랑한다면, 아니이스 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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