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래식 20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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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사자가 왔다. 나의 아이들이 가까이 오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무르익었다. 나의 때가 왔다. 

  이것이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이 시작된다. 솟아라. 위로 솟아라. 그대 위대한 정오여!"

니체를 읽기 위해선 책을 펴기도 전에 우선 그 무게감에 압도되어,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은 빨라지고 손은 바들바들 떨리는 그런 강렬한 두려움의 순간을 체험해야만 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고전의 정의는,
니체에 있어서는 '아무나 읽고 싶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해야 하리라. 

니체 하면 떠 오르는 두편의 영화가 있다. 

첫째는, 그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원숭이가 뼈를 내리치며 폭력의 태초를 경험하는 순간 하늘로 던져진 그 뼈다귀는 시공간을 초월해 우주공간의 우주선으로 바뀐다. 그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곡이다. 

다음엔, '리틀 미스 선샤인' 이라는 영화에서 
장남 캐릭터가 첫 등장부터 방에 커다란 니체의 포스터를 붙여놓고 역기로 운동을 하고는, 식사시간엔 떡 하니 바로 이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며 앉아있다. 니체사상에 심취해서 묵언수행을 하며 메모로 대화를 나누던 그는 후에 색맹임이 밝혀져 파일럿이 될수 없음에 체념하고 통곡을 하곤 스스로 깨어나게 된다.

이렇듯, 

내게 있어 니체는 장엄하고도 웅장한 어마 어마한 철학적 담론을 무겁게 말하고 있을 것이고, 
그 것은 한 인간의 삶을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포스를 뿜어낼 것이라는 무섭고도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무척이나 쉬었으며 강렬한 독서체험을 선사하기엔 말랑말랑한 책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한 인간이 산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속세로 내려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삶을 각성하고, 설교한 후 산에 다시 되돌아 왔더니 '아, 나부터 바뀌어야 겠네' 라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산하는' 아주 단순명료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아모르 빠띠', '위버멘쉬', '위버멘쉬에의 의지', '힘과 자기 극복에의 의지', '위험하게 살아라!', '영원회귀', '삶의 총체적 긍정', '위대한 정오' 

이러한 철학적 관념어들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며 후덜덜 다리에 힘 빼가며 굳이 읽지 않아도 충분히 니체의 이야기는 총체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한 구도자의 여행기로 읽으며 그가 경험하는 모험담을 즐겨도 좋고, 
한편의 거대한 장편 서사시로 읽으며 문체와 운율을 즐기며 서정을 탐해도 좋고, 
여러개의 아포리즘으로 읽으며 몇개의 맛깔난 문장을 가슴에 담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물론, 크리스천이라면 '신은 죽었다' 라는 니체의 무신론적 과격성에 오버하며 흥분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의 이야기에 온 맘과 몸이 빨려 들어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하며 신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허나. 읽기도 전에 무턱대고 두려워 해서 책장에만 전시해 놓거나, 
혹은 읽는 내내 명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며 한숨과 짜증을 퍽퍽 내쉬며 가학적 독서행위를 한다면 인생에 있어 큰 손해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한번 읽고 휙 던져서 라면 받침대로 사용해도 좋고, 너무 좋아서 재독, 삼독 하며 논문을 써내려 가도 좋다. 

어찌하든, 무게에 눌리지 말자!

고전을 오랫동안 읽어오며 확신하는 두가지가 있다. 

책이 잘 읽혀지지 않고 고통스럽다면, 
아마도 번역자가 숭구리당당 숭당당 해서 외계어로 써 내려간 것이거나, 
손에 든 그 책의 저자가 삐리리해서 중언부언 횡설수설 하고 퇴고도 안한 것!
분명 이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내 지적 능력이 모자라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거나, 
갑작스레 난독증에 빠져서 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니, 무게감에 짓눌리지 말자.

라며 이 책을 손에 들고 시시때때로 휘리릭 넘겨가며 폭풍처럼 읽어 내려갔다. 
그 와중에 내 가슴을 파고든 단 하나의 문장은 바로 저 서두에 적어놓은 '위대한 정오!' 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건.

추운 겨울 밤, 밖에는 칼바람이 불어오고 방은 난방이 되지 않아 오들오들 떨리는데 호롱불 하나 켜놓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상투와 깃을 바싹 세우고 고고하고도 치열하게 절대적 고요와 침묵속에서 책장을 넘기다가  

결국엔 가슴속이 뜨거워져 문을 활짝 열어보니 어느새 저 산너머 하늘엔 붉은 태양이 솟아나는 것을 목격할 때의 그런 심정일테다. 

언제 다시 그 추위와 싸워가며 고난의 행로를 해 낼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따스한 봄날 오후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어느 여인네의 무릎에 기대어 '차라투스트라'의 모험담을 연애시처럼 자곤조곤 속삭일 날이 올 게다...




p.s) 10대에 이 책을 진작에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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