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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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애국심과 정부
아나키즘에 대하여
살인하지 말아라
우리 시대의 노예제
사회주의, 국가, 기독교도
사회 개혁가에게 고함
세상의 끝, 다가오는 혁명

 

 



 

"국가 폭력의 사슬은 테러리즘, 강탈, 세뇌, 군대로 엮여져 있다" (p.21-25)

 

"모든 사람들이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p.88)

 

"왕이나 황제는 목을 자르면 거기서 새로운 목이 나오는 신화속의 괴물과도 같아서

그들의 목을 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를까?"(p.94)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버팀목은 사소한 물질적 만족 때문에

자유와 명예를 파는 우리들의 이기심과 정신적 마비다"(p.97)

 

"노동자들은 세금, 토지 , 그리고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 시켜줄

 상품을 지배하는 사람들 밑에서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p.142)

 

"노예제의 본질은 토지소유, 조세징수, 물건소유 법률이 아니라

 입법권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p.151)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힘은 단 한가지 뿐이다. 그것은 폭력이다.

권력자들은 조직화된 폭력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구체화한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p.154)

 

"법은 조직화된 폭력으로 통치하는 사람들이 만든 규칙이다.

이 규칙에 따르지 않는 자는 폭행이나, 구속, 살인을 당할 수 있다" (p.154)

 

"복수의 감정과 분노를 표출할 때를 제외하면,

폭력은 어떤 사람에게 그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강요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노예제다."(p.163)

 

"우리는 누구를 섬길지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인가, 부의 신인가. 둘 모두를 섬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섬길 생각이라면, 우리는 사치품과 문명을 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p.166)

 

"가지지 못한 자의 항의와 억압받는 자의 신음과 불만을 품은 자의 목소리가

 그리스도의 이상, 진실과 선의 이상에 호소하며 더욱 더 크게 들려오고 있다."(p.188)

 

"만인에게 가장 유익한 조직은 모든 사람의 목적이 이득이나 물질적 안락이 아니라

 세속적 행복과 상관없는 영적안녕일때 모숩을 드러낸다."(p.190)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이롭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를 따른다.

기독교 신앙이 가르쳐 주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p.195)

 

"생산성이나 부가 증가하더라도, 상층 계급이 잉여의 부를

 사치품에 소비할 수 있는 권력과 욕망을 소유하고 있는 한,

하층계급의 여건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p.196)

 

"기존의 권력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우리의 시대에는 결코 무력에 의해 전복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사람들은 권력과 권력에 의해 야기되는 모든 폐악들이

부도덕한 삶에서 비롯 되었으며 따라서 권력과 권력의 폐악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올바른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것이다."(p.216)

 

" 기독교도는 오로지 폭력에 의해 세워지고 폭력에 의해 유지되며

기독교 규범에 거슬러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권력기관에 복종해서는 안된다.

징집, 전쟁, 감옥, 처형, 국민들이 토지를 이용할 수 없는 가능성을 박탈하는 일까지

 권력 기관이 하는 일은 모두 기독교 규범에 어긋난다."(p.261)

 

"국가에 속해 있는 한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다."(p.276)

 

"국가라 불리는 인위적인 연합체를 위해 삶과 자유를 희생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삶과 자유를 위해 국가라는 미신에서 해방 되어야 한다."(p.265)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부활' 등의 소설로 유명한 톨스토이는 노벨상 수상 소설가 일뿐 아니라,

미학, 역사, 철학, 신학등 다양한 토픽에 관련한 탁월한 저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대지주의 자식으로 태어나, 장교로 참전까지 했던 귀족출신인 그는 러시아 하층민의 삶에 자극받아

노년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농노들과 시골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이상을 실현하다 떠난 실천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비록, 이교도들의 이주를 위해 '부활'을 창작하면서 정부와 마찰을 빚어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면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이상을 위해 온 몸으로 생을 살아낸 또 한분의 성자였습니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책  '국가는 폭력이다'는 그의 탁월한 논리와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대가의 혜안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기독교 아나키스트 라고 칭할만한 '국가 그 자체가 폭력이니, 무정부 공동체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나 전제정권 혹은 폭력적 아나키즘으로 국가를 전복하고 혁명을 하자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비폭력 평화주의 불복종 기독교 아나키즘, 일명 톨스토이즘이라고도 하는, 그의 사상은

후에 간디의 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고, 현재까지 수 많은 기독교 농경 공동체가 지구상에 그의 뜻을 따라 만들어지고, 살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위트니스'에서 해리슨 포드가 부상을 입고 꼬마와 여인을 따라 도망가는 마을에서 보여진 '아미쉬 공동체'가 언뜻 생각나는 군요. 

최근, wbc 와 김연아 신드롬, 희망 마케팅을 보면서 다시 든 생각이지만, 

미디어의 스포츠 내셔널리즘 '애국심' 물타기와 각종 로비 리스트로 인한 가쉽몰이, 북한전쟁위협 불안조성으로 

슬쩍, 언론사 피디와 노조위원장은 잡혀갔고, 저작권법이 개정되어 인터넷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제주 4.3항쟁 법률은 폐지되고 있고, 줄 세우기 일제고사는 여전히 치뤄지고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했던, 바로  세뇌로 인한 정신적 마비와 이기심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톨스토이의 이상처럼 세금을 내지말고, 병역을 거부하고, 부동산을 나눠갖자는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늘 '국가의 폭력성'에 대해 민감한 레이더를 돌리면서 타인의 행복을 위해 고민해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요즘에 법치주의니 무관용 원칙이니 하는 말에 상처받은지라 좀 예민한것도 같네요.

'국가는 폭력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톨스토이의 마지막 기도


마음에 슬픔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고
똑같은 슬픔을 느끼며 잠을 깬다. 나는 모든 걸
견딜 수 없다.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아버지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우주의 영이여,
생명의 원천이여, 날 도와주소서.
내 인생의 마지막 며칠, 마지막 몇 시간이라도
당신에게 봉사하며 당신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날 도와주소서.


- 레프 톨스토이의 《톨스토이의 비밀일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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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당광대 > 김탁환, 그의 뜨거웠던 천일야화!

 

김탁환, 그를 만나고 오다.   

[노서아가비] 라는 구한말 바리스타의 이야기를 새롭게 낸 그.  

출간즉시 영화화 판권이 팔렸다는 홍보문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훅킹한 소설이었다. 

꽤 더웠던 여름날 밤에 만난 뜨거웠던 그와의 천일야화.  

  

[한 길 사람 속] 이라는 제목을 두고 고민을 했었다 한다.  

역시, 글쟁이들은 제목이 절반이라 여길터, 꽤 적절한 제목이었다. 

마징가의 '아수라 백작'.  

선과 악.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 혹은 다중 인격자로서의 작가라는 존재.  

내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내고, 만나고,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존재론적 본질일터.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화두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작가는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이라는 걸 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보르헤스는 그 선택에서 '가지 않은 길'까지 한번 전부 이야기에 담고 싶어했다. 

바로 이 단편소설에서. 

내가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 그 길에서 끝없이 갈라지는 수많은 길들... 

인생이 바로 선택이고, 선택이 바로 이야기이고, 고로 삶이 이야기가 되는 운명의 수레바퀴. 



사람은 '나랑 닮은 이'와 사랑에 빠지거나 '나랑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양귀자의 이 소설처럼 어떤 선택을 하던 선택하지 않은 이를 늘 그리워 하게 될터. 

헌데, 생각을 달리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야기를 버린것이 아니고, 

선택할 이야기들의 가능성들이 모여드는 것이라 한다.   

'반쯤 찬 물컵'을 보고 반이 비었다가 아닌 반이나 차있다 라고 생각할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탁환은, '우짜다가' 글쟁이가 되었을까? 

 

여행자로서의 김탁환.  

리심과 혜초, 그리고 따냐는 세상을 부유하며 떠다니는 여행자들이다.  

왜 이렇게 인물들은 헤메일까? 

방콕을 사랑하는 작가들을 길로 나서게 하는건 바로 이야기.  

소설이, 나를 여행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출간된 여행 에세이집에서 혜초의 여행길에 대한 글을 올렸던 그였다.  

앞으로 가고픈 곳은 사하라 사막 아래 있는 진짜 아프리카라 한다.  

만약 시간 이동을 할수 있다면 40년전 과거나 40년전 미래에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 

 

그는 칼 세이건의 SF 소설을 소싯적에 읽으며 미래소설을 오랬동안 꿈꿔왔다 한다.  

고전문학 전공자이자 역사소설의 1인자로서 확고한 자리에 오른 그의 또다른 도전이 될듯하다. 

 

알고 봤더니, 그는 이미 동아일보에 정재승과 함께 '눈먼 시계공'이라는 미래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소설의 첫 문구를 살짝 엿보면,

“사건번호 35! 30세, 93퍼센트 인간, 여, 유전형질연구원, 직접사인 뱀독에 의한 급성중독, 간접사인 오른 팔꿈치 절단에 의한 과다출혈. 지금부터 서울특별시 종로 8가 홀로그램 거리 <앙상블>에서 살해된 박진숙의 브레인 스캔을 시작하겠습니다. 브레인에서 인출할 피해자의 단기기억은 120초입니다

그는 테크노 스릴러라고 불리는 추리형사물 SF 소설에 벌써 도전하고 있었다.  

역사소설과 과학소설을 오가는 그의 진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철학자 김용석님이 우주 철학자라며 그에게 '우주 소설가'가 되라 했다는 농은 이루어질까? 

이 땅에도 부디 '1984'와 '멋진 신세계'가 나오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몽상의 자식들의 아비로서의 김탁환.  

다른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만이 갖는 재미를 추구하고 싶어했다.  

그의 역사소설 궤도에서 벗어난 작품 여럿이 있다.  

특히 '부여...'는 '나, 황진이'의 필드 리서치를 하며 서경덕과 연관된 '전우치전'에서 나왔다한다. 

 

'홍길동전'과 강호의 무협을 다투는 우리 고전소설 '전우치전'  

이미 국문학도 출신 이야기꾼 최동훈에 의해 선택되어 강동원, 임수정에 의해 올 연말을 휘저을 예정인 바로 그 소설 아닌가.  

'지괴소설'이라는 동양의 모든 귀신들을 하나하나 잡아 가두는 '고스트버스터' 부여현감. 

이렇게 그의 소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져 나온다.  

시대와 맞부딛혀 살다가 죽어가는 여성의 비극적인 이야기인 '리심'에서 출발한 '노서아가비' 

같은 시대에서 점핑하는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 무거운 소설로 휘청한 균형을 잡고 싶었다 한다.   




재미 있으면 살려주고, 재미 없으면 죽인다! 

바로 이야기꾼의 운명은 바로 이 천일야화속에 있다.  

고전소설 전공자로서, 그가 추천하는 필독서 셋.  

'아라비안 나이트'와 '서유기' 그리고 '태평광기'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고전속 원형을 '발견하는 것 !' 그게 바로 이야기꾼의 운명. 



'센' 여자들을 사랑하는 김탁환. 

시대의 비극속에서 운명의 굴레와 한판 맞짱을 뜬 그의 여인들은 '센' 여인들이다.  

남성작가가 여인이 주인공인 작품을 쓸때는 분명 좋아하는 여성형이 나올수 밖에 없을터. 

섬세한 작가들이, 강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마 당연한게 아닐까?  

아마 앞으로 나올 여성 캐릭터들도 아주 일관성 있게 이렇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꾼으로서의 김탁환. 

'쓴다'의 주어로 살아남기 위한 작가의 길.  

픽션 뿐 아니라, 산문, 번역, 평론 등 이른바 잡문에도 능한 그.  

이미 소설 못지 않게 수 많은 비소설 서적을 출간해왔다.  

정신분석학, 심리학, 뇌과학, 그림, 춤, 노래.... 그리고 글쓰기. 

한길 사람속을 알기 위한 인간의 여러 활동중에 글쟁이는 글쓰기로 그 일을 파헤친다.  

경험론자로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쓰고, 그분을 잘 영접해 뮤즈의 여신으로 사람속을 파헤치기.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글쓰기를 통해 할려는 아수라다. 너도 아수라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를 글쓰기를 통해 알려는 아수라다' 

'내 안의 추악함을 오래오래 보고보고 또 들여다보는 것의 고달픔이여!'

보통사람들은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면 미치거나 범죄하게 된다.  

헌데, 작가들은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 보며 그걸 글로 풀어내 먹고 사는 천형을 지녔다. 

사람을 괴롭히는, 고문하는, 죽이는 100만가지 방법 이런걸 늘 공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허균이 능지처참 당하는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어떻게 하면 죽일까 몇날을 고민했었다. 

대로에서 두 팔과 다리를 네 방향으로 소가 끌어서 찢기워 죽이고 피가 동료의 얼굴에 튀는... 

'내가 어디까지 갈수 있는가? 나는 환자가 아닐까? 

공상속에서 작가는 참 잔혹하다. 고통과 아픔을 주는 오만가지 방법을 늘 꿈꾸지 않는가.  

이런 파괴적인 타나토스의 충동이 바로 예술가의 창작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완월회맹연'  

180권짜리 가문소설이다. 네 가문이 결혼하는 이야기인데 해군학교 근무시절 군인정신으로 읽었다. 매일 아침에 칼출근해서 멍하니 바다만 봐야 하기에 읽었다는 바로 이 소설로 인해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였다.  

그렇게 육개월간 180권을 읽었는데, 이게 다 작가가 계획하고 쓴건가, 그냥 쓰다보니 이렇게 된건가 궁금한 맘에 다시 또 육개월을 읽었는데, 복선이 좌악 깔렸던 것. 마지막 멘트가 압권인데, 이 책은 원래 1800권인데, 180권으로 압축한것이니 나머지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다른 소설을 읽으라고 했다.  

'노서아가비'에서 이 이야기가 생각나 따냐의 또 다른 책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 한다.  

아... 180권짜리 고전소설에 도전해 보아야 하는가. 이 책은 20권으로 출간되어 있다.  

사료의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에 관한 김탁환의 변.  

역사책을 뒤적이다보면, 역사의 검은 구멍이란게 있다. 자료가 더 이상 안나오는 지점.  

바로 이 역사학자들이 멈추는 자리에서 몽상이 시작된다. 구멍을 메우는 상상력의 과정이다.  

늘상 엉뚱한 곳으로 가는 상상을 한다.  




<난중일기>를 보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이것에서 난중일기를 쓰는 이순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 '불멸의 이순신'이다.    

우들목 전쟁의 내용은 거의 소설이다.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를 내며 상상해 봤다. 

있는 텍스트는 모조리 다 읽고, 그 구멍을 몽상하는 게 포인트다.

  

'어우동' 시대에 있었던 '감동'이라는 희대의 팜므파탈. 

이 둘 사이에 있는 검은 구멍을 채우는 이야기도 그려볼수 있다. 

 

한시를 600여편 모았다. 황진이가 읽었을 법한 시를 몽땅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하나의 문단이다. 접속사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는데,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서 접속사를 쓰는 듯 해 강박적으로 하나의 문장으로 쓴 글이다.  

러시아 배경으로 소설을 두편정도 기획중이다.  

배경이 반복되는건,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모여있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호러나 추리도 무척이나 흥미가 가는 장르다. 호러 주말 연속극이 꿈이다.  

 

  

글쓰기에 대한 김탁환의 조언

 아이디어에서 초고단계로 바로 넘어가면 안된다. 그 사이에 노력이란게 필요하다.  

매천야록을 보다가 김용옥 이야기가 눈에 띄면, 어 재밌네 하면서 또 다른 공부를 하게 된다.  

아이디어 노트에 100여가지 이야깃거리가 담겨져 있다.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이 아이디어와 에피소드로 만들어 진다.  

관심 가는 아이템은 킵 해놓는다. 항상 관심은 두고 살아간다.  

학회, 책, 논문 모아서 구석에 주욱 놓아둔다. 언젠가는 쓰리라 다짐하며 말이다.  

그렇게 모아놓은 자료를 후룩 보고서, 쓰자 하면 바로 쓰게 된다.  

자료는 10년정도 오랫동안 모아놓는다. 생각은 오래하되, 쓸때는 집중해서 말이다. 

'한문장으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불멸의 이순신은' '모든 장수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패할때, 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승리한 장수' 라는 한줄 로그라인이 있었다.  

왜 그길로 갔을까? 그럴수 밖에 없었던 삶을 어릴적부터 써보는 거다.  

아.. 그래서 다른 병법이 나올수 밖엔 없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허균'은 '배고픔과도 같은 희망'이었다. 

배고픔을 채우려는 지식인이 바로 허균이었다.  

잘먹고 잘살았는데 혁명을 한 이유가 뭘까? 고민하는 거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라는 허균의 고민이 그 안에서 나오게 된다. 

쓰는게 뭐냐. 핵심을 틀어쥐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헐리우드 엘리베이팅 피칭 처럼 '한줄로 이야기를 요약'하는 로그라인이 먼저 나와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한게 있나 하며 전부 찾아본다. 그래서 뛰어난게 있으면 질단 질투한다.  

여기서 더 잘쓸 자신이 없으면 접는다.  

 

예전에 한참 나노기술에 빠져서 쓰려고 했었다.  

헌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접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쓴 놈이 누군가? 제일 쎈 작품이 뭔가? 그 장르의 마스터를 마스터 하라! 

독해져야 살아 남는다. 전 세계의 대표선수들과 필드에서 경기하는 게 작가들이다! 

 

 

그의 글처럼, 짧았던 시간속에 강렬함과 재미와 깊이가 있었던 만남이었다. 

이야기꾼은 말에서 그의 내공이 묻어나는 법이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있는 그 이지만, 재미난 놀이에 대해 열광하는 어린아이인듯 했다.  

글 쓰기를 진정으로 즐기고, 그 안에서 행복해 하는 그는 역시 타고난 작가였다.  

늘 고통속에서 글을 쓰는 나는 언제쯤 즐길수 있게 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글을 보고 이야기를 접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생각되어 미련없이 서랍에 넣었더랬다.  

헌데, 이 날 강의를 들으며 순간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진 길'의 하나가 번쩍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다른 길을 다시 가면 되는 것이다.  

이내 웃으며 몽상에 빠지기 시작한다.  

선택할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내게 모여들기 시작한다.  

나의 천일야화가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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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    역사 교과서 수정, 인터넷 실명제, 이메일과 핸드폰 감청, CCTV와 범죄자 유전자 은행 감시,  광장패쇄와 시위엄벌, 4대강 죽이기의 환경파괴, 부자감세와 세수충원을 위한 각종 서민세 증가,  그들만의 리그 관료행정...  

이 모든 것의 화룡점정이 바로 미디어 장악을 통한 '여론조작 및 선동'이다.  미디어와 파시즘에 대한 공부가 올 하반기의 나만의 리스트가 되어야 할 이유는 백만가지는 될것이다.  

1. 파시즘의 대중심리 - 빌헬름 라이히  : 파시즘은 독재자가 아닌 대중의 지지로 이루어 졌다는 바로 그 유명한 '대중독재'의 개념을 밝힌 일상속의 파시즘의 고전.  

2.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 - 독일 국민들을 파시즘의 광기로 몰아넣은 언론조작의 귀재, 괴벨스라는 인물은 필히 연구해 봐야 한다.  

3. 전체주의가 어쨋다구? (슬라보예 지첵) - 지첵의 문화를 통한 전체주의 읽기는 어떨까? 

4. 다중 (네그리, 하트) - 제국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다중의 힘으로 이겨낼수 있을까? 

5. 여론조작 (촘스키, 허먼) - 언론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선전도구인가? 

6. 헌법의 풍경 (김두식) - 법치주의의 근본인 헌법의 정신으로 이 시국을 바라볼수 있을까? 

7. 자유전쟁 (레이코프) - 우리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8. 국가,정체 (플라톤) -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9. 문화과학 58호. 2009 여름, 파시즘 - 지금 이땅의 파시즘에 대한 논객들의 의견은 어떨까? 

10. 감시와 처벌 (푸코) - 권력은 왜 감시를 통해 세상을 이끌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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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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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킹 2010-09-1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벨스나 정치선동에 대한 책 더 있을까요?
 
 전출처 : 무당광대 > (제대로) 살기 위하여 , 시인으로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 방안. 밤.
 
(off sound) "(앵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마지막 남은 새만금의 물길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딸(11)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고, 홍선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tv를 바라보고 있다.
 
홍선장 : 어민은 사람도 아니란디. 아가야, 어민의 딸은 사람도 아닌거여.
홍선장 :  니는 커서 공부 잘 해두 판사 같은거는 절대 되지 마라.
딸 : (관심도 없이) 판사가 뭐야?
홍선장 : 니가 판사 된다고 하면 내가 너랑 확 연을 끊어버릴텡게.
딸 : (바다 그림만 열심히 그린다)
홍선장 : 그려,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그라. 그라서 세상에 대한 비판 좀 하고 살아라.  
딸 : 시인이 뭐야? ... 난 바다가 좋단게! 
   

 
다큐는 세상의 진실을 비추는 한줄기 빛 같은 거다.
그래서 투박한 질그릇에 담겨있더라도,  진실한 삶의 내음이 담긴 인간의 냄새를 맡고, 온기를 느끼는 우리는 감동하게 되는 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0년이 넘게 싸워온 그들의 일은 그저 신문 한 귀퉁에서 슬쩍 보고 넘어가는 무관심 사건이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중인데,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고, 어민들의 터전이 막막하다 라는 그저 피상적인 정보 뿐이었다.
그건 그저 그들의 일일 뿐, 내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므로 그저 창문밖 불구경이었을 뿐이었다.
 
이 모든게 전복된건, 바로 작년 촛불때였다.
꾹 참다가, 도저히 그대로 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듯 해서 호기심 반 거리에 나갔다가 첫날 물대포와 방패세례에 호되게 당하고 줄기차게 나갔었다.
그저, 말도 안되는 꼴통들의 짓거리가 꼴보기 싫어 소수정당에 투표를 꼬박꼬박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 촛불은 충격이었다.
평생 책상머리에서 배운것을 거리에서 단 며칠만에 다 배워버렸다고 해야 할까...
 
헌데,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이면, 나와 상관없는 것은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전 세계 4대 갯벌인 서해안.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이후 그 갯벌은 육지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필터였고, 소금과 어패류, 생선을 주던 생존의 일터였고,
새와 게, 조개와 미생물까지 동거동락하던 생명의 보고 였었다.
 
헌데, 일제의 식량 수탈을 위한 간척사업으로 시작해서  박통의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간척, 그리고 현재의 시화호, 새만금 등 부동산 간척까지...
도대체 이 매번 반복되는 약자에 대한 수탈과 핍박의 싸이클은 어떻게 맞서야 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터져버릴듯 답답했다.
전국 300만을 기록한 메가톤 흥행작 다큐  '워낭소리'는 시골에 대한, 늙어감에 대한, 노부부에 대한, 정서적인 울림으로 따듯했었는데,
이 영화 '살기 위하여'는 따듯하기보단 한 여름에 사막에서 팔팔 끓는 가마솥에 맨손을 넣는 느낌이랄까, 먹먹함 그 자체였다.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과 리더들의 정치적 술수에 대한 분노, 생명에 대한 엄숙함 까지...
신경이 곤두서고, 심장이 울렁거리고, 호흡도 쉽지 않게 만드는 꽤 불편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 불편함이 엔딩크레딧에 이르면 죽어버린 갯벌에서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막걸리 한잔에 활짝 웃는 이모들의 얼굴로 인해 화악 따스함으로 변해간다.
바닷물이 없어 말라 비틀어 가는 조개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제 몸의 수분을 빼내며 끝까지 버텨가고 있듯이,
달랑 보상금 몇백만원에 평생 해온 일자리가 없어지고, 새와 조개들과 노닐던 천국이 없어지고, 동료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더라도,
살기 위하여, 죽음 속에서 생명을 일으켜야 하고, 울음 속에서 웃음을 터트려야 하고, 말라버린 갯벌에서 조개와 여전히 함께 버텨야 하는,
바로 우리의 이모들, 형님들처럼 말이다... 
 
지금 이 땅이 바로 이 새만금이다.
촛불이 그랬고, 용산이 그랬고, 대운하도 그렇고, 경제불황도 그렇고...
 
말라 비틀어진 갯벌에서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백합조개처럼, 우리 모두는 지금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타들어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생명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삶에 위기가 닥치면 생명체는 저항을 하게 마련이고, 진화를 통해 변화하게 마련이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게 마련이니까...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바닥을 치더라도, 우리는 살아남을 꺼다.
 
' (남들을 죽여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 가 아닌,
'(남들과 함께 제대로) 살기 위하여'
 
잘 먹고 사는게 행복이 아닌, 제대로 사는게 행복이 되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판사가 아니라 시인이 된다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사랑으로 넘치게 될까...

[출처] [시인이 된다면...] 새만금 다큐 '살기 위하여' |작성자 mov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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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위대한 예술작품을 보고 나면 한없이 숙연해지다가 갑작스레 카타르시스가 휘몰아치는 순간이 있다.

가끔 베토벤의 음악을 듣듯, 고호의 그림을 보듯,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읽듯, 그런 영화들이 있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도 황홀해서 장엄해지기 까지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학시절 선배 연구실에 가면 24시간 무한반복으로 이 영화의 ost가 흘러나오곤 했다.

영화 동아리 회장직을 넘겨주며 후배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남겼는데,

그게 또 바로 이 영화의 대형 포스터 판넬이었다.

작년에 우연히 가게된 엔니오 모리꼬네 콘서트에 입장하자 막 연주하고 있었던 음악도 바로 이 영화의 ost.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예의 하는, '재미있다' '잘만들었다' 뭐 이런 말보다는, 그냥 '좋다' 혹은 '침묵'이 더 어울릴법한 영화다.

 

처음으로 이 영화를 제대로 된 복원판 필름 프린트로 스크린에서 227분짜리 버전으로 보고 나니 든 생각은.

그동안 이 영화의 반도 못봤구나...

자고로 영화는 극장에서, 더군다가 이런 마스터피스는 꼭 극장에서 봐야한다.

VHS는 말할것고 없고, DVD나 BLUE-RAY로는 이 섬세한 필름영화의 질감은 절대 느낄수 없는 법이다.

특히, 세르지오 레오네처럼 화면비가 시네마스쿠프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이 영화는 4시간여에 걸쳐 숨한번 쉬지 않고 경탄하며 관객들과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종교의식처럼 경배하며 찬미하며 관람해야만 제대로 본 것이다.

아니, 평생을 두고두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번 봐야 할 영화라고나 해두자.

 

30대 중반 이 힘든 시절에 본 이 영화의 감상의 결은 '권력과 사랑'으로 모아졌다.

첫사랑 데보라를 향한 누들스의 여정이 이 영화의 전부인 것이다.

어리지만 당찬 데보라는 첫 만남부터 누들스에게 '권력을 가질것'을 종용한다.

 

'난 당신이 맘에 들지만, 내가 찾던 그런 남자가 못 될것 같네요. 자신을 한번 둘러보시죠?'

 

누들스는 어쨋든 데보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신념에 대한 순수를 지킨다.

하지만 이 모든게 죽마고우 맥스와의 만남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맥스는 누들스를 번번히 데보라에게서 훔쳐내어 갱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다. 누들스는 친구에게 버림받고, 애인까지 뺏기고 쓸쓸히 살아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왜 누들스의 인생은 이토록 잔인했던 것일까.

 

 

영화 초반에 누들스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지트로 활용하는 화장실에서 몰래 보는 책이 나온다.

바로, 사회주의 소설가 잭런던의 '마틴 에덴' 이다. 이 책의 내용은 빈민층의 남자가 상류층의 여자를 사랑해서 그 여자를 갖기 위해 소설가로 성공하려는 잭 런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권력을 가지려 한다' 바로 이 영화의 전체 플롯이자 테마를 소설로 보여준다.

 과연 누들스는 데보라를 가질수 있을까?...

 



 

누들스는 친구 뚱보의 레스토랑 창고에서 발레 연습을 하는 데보라를 몰래 훔쳐본다.

데보라는 '곡물창고'에서 '축음기'를 틀고 '발레'를 하고 있다.

누들스는 화장실 구멍으로 몰래 훔쳐볼수 밖에 없다.

데보라도 그런 누들스의 시선을 즐기며 슬쩍 미소를 보내고, 나신을 보여주기 까지 한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수많은 남성들을 눈물짓게 한 제니퍼 코넬리의 환상적인 자태가 보여진다.

 



 

하지만 누들스는 데보라에게 바퀴벌레 취급을 받는다.

'넌 더럽고, 역겨워. 화장실 벽이나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쯤 되는거지. 너가 뭐라고 생각해? 니 꼴이나 보셔!'

좋다고 은근슬쩍 보여줄뗀 언제고, 바로 튕기는 이 팜므파탈 데보라 같으니.

근데 이런 여자 너무 멋지다...흑.

 



 

이 영화에선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일명 거울씬이 많이 보인다.

라깡의 거울단계까진 가진 않더라도, 거울을 보며 내가 뭘까? 내가 왜 이렇게 살까?

뭐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감정을 보여주는데 아주 그만인 씬이다.

영화 초반에 금고에 돈이 없자 뉴욕을 떠나려다 거울을 향해 걸어간다.

거울에 비친 누들스는 백발의 노인이다. (최고의 명 트랜지션 중 하나.)

이 영화 전체가 누들스 자신의 인생. 혹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낸 경제부흥기의 주역인 한 인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하여간. 데보라에게 한방 맞은 누들스는 거울을 보며 우울해 한다. 친구들은 뻐기느라 바쁜데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데보라를 가지기 위해선 어떤 내가 되어야 할까?

이제 범죄의 세계로 슬슬 빠져들어간다. 이민자 출신 빈민인 그의 성공은 이길밖엔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슬슬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어깨에 힘 좀 주게 된 누들스는 용기를 내어 당당히 데보라 앞에 섭니다.

데보라는 남들 다 교회가는 감사절에 뭐하냐며 그분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며 자리에 앉히고 성경문구를 읽어줍니다.

바로 연인들의 성서파트. 아가서 죠.

아가서 4장 1절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아가서 4장 3절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데보라의 은근슬쩍 고백에 누들스는 한껏 들뜬다.

허나, 바로 데보라의 한방 "작년 12월 이후로 씻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부턴 데보라의 고백, 혹은 데보라의 시가 이어진다.

"그의 눈은 비둘기 같고, 그의 몸은 환한 아이보리 같고, 그의 다리는 대리석 조각같고,



 

그러다 다시한방을 날린다.

"팬티는 더러워서 난리가 나있지만 말이다"



 

다시 감동의 싯구. "허나 그는 사랑스럽구나"



 

다시 한방. "그렇지만, 그는 양아치일뿐,그는 내 사랑이 될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데보라는 누들스에게 '넌 참 멋져. 아마 널 사랑하는 거 같아. 하지만 내 짝이 되기엔 아직 부족해. 분발해라'라는 고백을 한거다. 이런 고백을 받은 어떤 남자가 그 말을 듣지 않으리...

게다가 키스가 이어지는데 말이다... 코넬리 넘 멋져... 흑...

 



 

하지만, 친구인 맥스가 판을 깬다. 어찌할줄 몰라하는 누들스.

역시 강한 데보라. "가봐. 니 엄마가 부르잖니" 타고난 팜프파탈이다!



 

결국, 누들스와 맥스는 동네 양아치패들에게 한방 당한다다. 이제 당했으니 갚아주러 가야지.

사랑이냐? 폭력이냐? 혹은 데보라냐? 맥스냐? 혹은 여자냐? 우정이냐? 뭐 이런 갈림길에 선다...



 

금방 올게... 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얻어터진 누들스는 데보라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한다.

허나 데보라는 눈물을 참으려 문을 굳게 닫는다. 거봐,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데, 맘 돌아서면 끝이야.

어설픈놈!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스틸컷. 포스터 이미지로도 쓰였다.

누들스는 맥스와 함께 비즈니스를 하며 제법 어깨에 힘주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동네 갱들에게 막내가 당한다.



 

막내는 누들스에게 한마디 남긴다. ' 나 미끌어진거 같아'

가장 힘이 없고, 작고, 어렸던 막내는 차마 도망갈수 없어서 죽음을 맞이 한 것이다.

이 세상의 생리가, 아니 특히 이 갱들의 세계는 무자비한 곳이다.

누들스의 인생이 앞으로 이렇듯 미끌어질거라는 묘한 암시를 주고 죽어간다...



 

결국, 누들스는 복수를 하고 빵에 간다. 친구들을 남긴채.



 

 

빵에가서 살다온 누들스는 금주법 시대에 한몫 잡고 있는 친구들에게 돌아간다.

나오자 마자 맥스는 응축을 풀게 해준다. 여자한테 거기 잡히면 끝이라니까...



 

친구들은 뚱보의 레스토랑 한편에 비밀 바를 차려놓고 대박을 내고 있었다.

왼쪽에 렘피카의 그림이 보이는가?

열정과 관능의 팜므파탈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렘피카가 1930년대 초반에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였으니 고증에 충실했다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의도적으로 대마이에 툭하고 그림을 미장센으로 활용하고 있다.

열정의 화가. 렘피카. 상류층 여성들을 독특한 화법으로 그려낸 그녀는 관음증, 그룹섹스, 동성애등 파격적인 소재를 그려내 유명해진 그녀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항상 망명자로서 불안과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암울한 어둠이 있던 화가였다.

맥스의 삶이 앞으로 그러할 것이고, 이들 모두 그런 상류층을 꿈꾼다는 걸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데보라와의 재회.

그런데 이번엔 데보라 뒤 그림을 '아담과 이브'를 걸어놨다.

아담인 누들스는 이브인 데보라의 유혹에 넘어가 사과를 따 올것인가?

데보라는 여전히 차갑고 뜨거운 팜므파탈이지만, 뭔지 모를 거리감이 있다.

아마도 세상의 때가 덜묻은 누들스는 여전히 순진한  소년이고, 데보라는 조금은 타락한 성녀가 아닐까?



 

어린소녀역의 제니퍼 코넬리의 환상적인 외모와 표정에 못미치는 성인역의 데보라는 늘 실망이다.

이렇게 크면 안되잖아...

어린 데보라의 눈빛이 있지만 뭔가 세상에 찌든 여인이 되어 있는듯 하다. 절묘한 캐스팅이다.

이번에도 맥스가 누들스를 부르자 "가봐, 엄마가 부르잖니" 라며 예전 대사를 쳐추시는 센스를 보인다.



 



이리하여 누들스는 다시 출소첫날 범죄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다.

조 페시 형님 깜짝 출연하신다.

다이아 훔치러 가서 맥스는 주인의 아낙을 범한다.

데보라와 전혀 다른 창녀같은 그녀에게 말이다. 누들스는 데보라의 순수를 차마 범할수 없어 이렇게 푸는건가.

점점 누들스의 사랑이 꼬여만 간다.

 



 

여기서 참 묘한 시선이 등장한다. 당한 이 여인네는 뭔가 아픔보다는 환희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레오네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들은 항상 이렇게 남성들에게 당하고 약간은 그걸 즐기고 있다.

레오네는 분명 여성에게 된통 차인 아픈 사랑의 상처가 있을거다.

이런식으로 밖에 풀지 못하는 남성들을 줄곧 그리니말이다



 

경찰청장이 나와 노조 시위진압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 던진다.

"에, 그건 과잉진압이 아닙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것이죠..."

1930년대 미국이나 지금 이땅이나 권력자들의 꼼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리 변함이 없을지...



 

그리하야, 이들은 4녀 끝에 득남해 좋아라하는 경찰청장의 아들을 바꿔치기 하는 테러를 저지른다.

어청수에게 이 방법 하실분 누구 하실분 없나?

근데 독특한 씬연출이다. 온 세트와 의상과 소품을 화이트로 도배를 했다.

1930년대라고 하기엔 뭔가 포스트포더니즘 스럽지 않은가?

아주 유쾌하고 빠른 템포에 게다가 음악은 베토벤이다. 바로 그 유명한.... 

그렇다. 아마 큐브릭의 '클락웍 오렌지'에 대한 오마주 가 아닐까 싶다.  



 

이런 극단적인 직부감 샷은 레오네 영화에서 아마 이 샷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큐브릭에게 경배를~



 

이들의 소굴에 아까 그 당한 여인네가 고급 창녀로 들어온다.

그래놓곤 맥스에게 꼬리를 친다.

이 여인네의 캐릭터는 아주 단순한 창녀캐릭터로 데보라의 성녀캐릭터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허나 마지막엔 아주 극단으로 반전을 주지만 말이다.


 


 






누들스는 데보라를 화려한 레스토랑에 데려간다.

어디서 많이 본 씬 아닌가? 그렇다.

김유진 감독의 '약속'에서 박신양이 전도연을 레스토랑에 데려가면서 이렇게 전 테이블을 예약해 구애를 했다.

레오네가 그의 영화에서 꾸준히 말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비극성이 단적으로 보여지는 씬이 아닌가 한다.

누들스는 갱스터로 성공도 했고, 이젠 이렇게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서 데이트를 할 만큼 성공한 권력자다.

그토록 원했던 누들스의 첫사랑이자 순수와 구원의 여신 데보라는 과연 넘어갈 것인가?

 



 

누들스는 이렇게 궁전같은 레스토랑 앞 화려한 해변가에 양탄자를 깔아놓고 샴페인을 마시며 구애를 한다.

이미 세상을 더 알아버린 데보라는 어릴쩍 꾸질꾸질했던 뒷동네 양아치 누들스가 이정도 성공한 것만으로 만족할수 있을까?



 

여기서 감동적인 프로포즈 씬이 시작된다.

"빵에서 매일밤 성경을 읽으며 당신 생각을 했었지"

데보라는 역시 누들스의 성모 마리아였던 게다.



 

눈물나는 프로포즈가 시작딘다

어릴적 데보라가 누들스에게 고백했던 바로 그 '아가서'를 인용하면서 누들스가 데보라에 대한 맘을 고백한다.

 

(아가서 7장2절)
[너의 배꼽은, 섞은 술(개역:포도주)이 고여 있는 둥근 잔 같구나

 



 

(아가서 7장 2절)

[너의 허리는 나리꽃을 두른 밀단 같구나]



 

(아가서 7장 8절)

[그대의 가슴은 포도 송이,]

 




(아가서 7장8절)
[그대의 코에서 풍기는 향내는 능금 냄새]

 



 

"이 모든게 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고 있지?"

싯구를 통해서 사랑을 고백하고 고백하는 이 둘의 사랑은 참 안쓰러우면서도 짜릿하다.

게다가 성경문구로 표현하다니. 아, 성경문구가 작업의 수단이 될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고마운 작품...

감독은 누들스를 끝까지 비열한 권력게임을 거부하는 순수를 간직한 남자로 그려낸다.

후에 맥스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까지 구원을 찾는 인간이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데보라의 거절. "전 헐리우드에 갈거에요. 건달 싸모로 만족할순 없는걸요. 알잖아요"

아,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사랑에서 시작하는게 아니라 이별에서 시작하는 법.

이제 이 둘의 안타까운 사랑은 파멸로 향해가려는가?


 


 






여성들이여, 사랑에 거절당한 남자의 고통을 아는가?

누들스의 구원의 여신인 데보라와 이렇게 파멸을 맞는다.

'너의 맘을 가질수 없으면 너의 몸이라도 갖겠어!'

이 심정은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행해본, 혹은 행하고픈 충동을 느끼는 감정이다.

레오네의 영화에서 유난히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일것이다.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에게서 지탄을 받는 이유이기도 한데.

레오네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은 여성들에 대한 폭력적인 구애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풀고 있다.

[석양의 건맨]에서 나오는 회중시계속 옛 연인의 배신도 그러하고,

[원스어폰어타임인더웨스트]에서 유혹하는 여인은 '전 목욕물만 있으면 어디든 좋아요'라 한다.

아마도 레오네 자신은 사랑에 대한 아주 깊은 배신 혹은 상처로 인해 여성에 대한 동경과 애증이 가득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이 씬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지만, 십몇년간 빵에서 데보라만 그리며 살았던 누들스에게 이 거절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씬의 감정에는 동의한다.

관객이 불편해 할만한 장면연출을 하면서도 그 감정에 푹 빠져서 수긍하게 만드는 그 절묘한 선타기란....



 

맥스는 누들스에게 여자에게 빠지면 비스니스에 방해되니 정신차리라 호통을 친다.

정작 자신은 교황이 앉던 의자(맥스 뒤에 보이는 화려한 의자다)에 앉아 권력에 대한 꿈을 꾸면서 말이다.

누들스도 질수 없다.

"너도 캐롤이랑 살면서 내게 그런말 할 형편이 되냐" 그러자 맥스는 이 여자에게 갖은 욕설을 하며 내보낸다.

큰 건 하자는 맥스의 제안에 누들스는 "편히 해변에서 쉬고싶네"라며 나가 버린다.



 

이렇게 이둘은 마이애미 해변에서 망중한을 보낸다.

헌데 난리가 났다. 바로 금주법이 풀린것. 이제 이들의 사업은 끝장이다.

맥스와 누들스에게 달려드는 여성들의 자세연출을 보라.

아, 역시 남자는 권력이 있어야 ...



 

맥스가 엄청난 건을 터드리려고 하자 이 여자는 누들스에게 검은 제안을 한다.

"맥스를 죽이기 싫으면 경찰에 고발해요. 빵에 가더라도 사는게 낳잖아요..."

캐롤은 영화내내 누들스와 앙숙이었다. "이번만 같은 편이 되어봐요. 뒤엔 다시 앙숙으로 돌아가죠"

섣불리 결정을 못하는 누들스를 몰아치는 캐롤의 연기가 발군이다.

친구 맥스를 경찰에 고발하는게 누들스에겐 친구를 선의 길로 인도하는 지저스가 되는건가?

아니면, 누들스는 혈육같고 아버지같던 동지를 팔아먹는 유다가 되는 건가?

누들스에게 연인을 고발하라고 설득하는 캐롤은 성모 마리아 인건가?

아니면 또 하나의 함정을 파고 누들스를 끌어들이는 악녀 마리아 인건가?

이렇듯 레오네의 캐릭터들은 시시때때로 선과 악의 묘한 경계에서 고뇌하곤 한다.

물론, 관객도 선뜻 절대악, 절대선에 대한 판단을 내릴수가 없다.

그저 인간은 상황에 따라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다는 것뿐...

 



 

이렇게 금주법을 애도하는 금주법 장례식을 치룬다.

이제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주법을 만들고, 갱들과 연합해 떼돈을 벌어 미국의 경제부흥을 일으킨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다.

물론 맥스와 누들스를 비롯한 이 "옛날옛적미국갱들"의 시대도 끝나는 것이고 말이다.

이 날, 이 친구들은 남은 술을 처분하기 위해 마지막 선적을 하기로 했고, 누들스는 그걸 경찰에 제보한다.

이들 친구들간의 우정도 이날로 장례식을 치루는 것이다.

아니러니하게도 여기에 국화를 건네는 이 짝눈과 눈썹 이 둘만 죽음을 맞게 된다. 이날 밤에 말이다.

그것도 친구인 누들스의 제보와 보스인 맥스의 음모로 말이다.

레오네는 참 이런 다중적인, 혹은 아주아주 섬세한 디테일을 4시간에 걸친 러닝타임 내내 선보인다.

쩝. 할말이 없는 거장이다.

아마 봉테일도 분명 무릎꿇고 울고 갈거다.



 

맥스는 이렇듯 이 둘 친구와 누들스를 바라보며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짓는다.

저 뒤에 렘피카 그림 역시 이번에도 확 눈에 띄게 보여준다.

열정과 관능의 여인이지만 냉정하고 비정한 여인.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성녀이자 창녀인.

데보라와 캐롤도 있지만, 누들스에게 진짜 연인은 바로 이 맥스다.

그 핵심엔 맥스가 있다.  가슴에 꽂힌 국화꽃 또한 맥스가 오늘 서류상 죽는 날이 될꺼라는 디테일.



 

그리하야, 자 다시 이 영화의 오프닝으로 돌아가보자.

아편굴에서 마약을 하는 누들스의 귀에 전화벨이 줄기차게 울리고,

그 벨은 이 장례식 파티장으로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드는 걸로 울리고,

마침내 경찰서에서 울리는 걸로 맺는다.

관객들은 도대체 저 전화가 뭐야? 라는 호기심과 궁금함을 가지고 이야기에 빠지게 되고,

3시간 30분을 기다려서 아. 이게 누들스가 맥스 제보하는 전화였구나. 라는 해답을 얻게한다.

참 과감한 플래쉬백 편집법이다.

어쨋든, 시체발견현장에서 누들스는 불에 타버린 맥스를 보고, 아 저게 맥스가 아니구나 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노인이 된 현재의 누들스가 도대체 맥스는 어디간거야 라는 추적의 플롯 또한 힘을 받게 된다.

 

굴러굴러 찾아간 맥스는 노인요양소에서 할망구가 된 캐롤을 만난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볼보며 쓸쓸히 살아가는 캐롤. 그녀 역시 창녀로 나왔지만 성녀의 인생을 살고 있는것.

그런데 병원 창립자 사진 중앙에 떡하니 '데보라'가 보인다.

데보라는 그렇게 누들스에게 사진속 프레임의 추억으로 존재하는, 가질수 없는 그런 이미지일 것이다.

 



 

노인이 된 누들스는 데보라를 찾아간다.

브로드웨이에서 스타가 된 데보라가 분장을 지우고 있다.

이 둘 사이에 멀리 떨어진 거리를 보라. 그 사이엔 거울과 의자가 떡하니 가로 막고 있다.

조명은 또한 데보라를 향해 비추고 있다.

뭔가 진실을 밝히고 싶은 누들스의 심정을 전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데보라의 뒤에 보이는 포스터 보이는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다.

'나이도 그녀를 어쩔수 없었네' 라는 홍보문구.

황금과 젊음에 대한 욕망속에서 살다가 결국엔 파멸하는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적인 삶이 바로

데보라의 삶. 혹은 물질 자본주의를 탐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미국시민들의 안타까운 운명일 것이다.

 



 

데보라는 묵묵히 분장을 지운다.

가면을 쓰고 평생을 살아왔던 인생을 지우듯.

누들스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가듯,

광대가 되어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살았던 인생을 후회하듯,

데보라는 누들스에게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자"라고 한다.

누들스는 진실을 원한다. "도대체 내게 초대장을 왜 보냈지?"

"왜 맥스의 애인이라는 걸 말 안하는거냐구!"

누들스는 그렇게 배신을 당했으면서도 데보라에 대한 순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내게 왜 그깟 사실 하나 이야기 못하는거니?'

'날 생각한다면, 진실을 말해줘야 하는거 아니니?'

캐롤이 누들스에게 맥스의 제보를 하라고 했듯,

데보라는 누들스에게 맥스를 만나지 말라고 설득한다.

데보라는 친구의 소중한 우정과 애잔한 추억을 지키고픈 성녀인가?

아니면, 친구의 애인이 된 자신에 대한 변명과 애인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지키려는 창녀인가?

누들스에게 구원의 천사였고, 순수의 표상이었던 성녀 데보라는 이렇게 비참한 말로를 살고 있다.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최고 권력자의 여인이 되었지만 데보라는 웃음과 몸을 팔고 살았던 창녀가 된 것이다.

 



 

"나도 이제 늙었다구요. 어쩔수 없잖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안착할수 밖엔 없었다구요"

누들스에게 던지는 이 대사는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이 또한 변명일 뿐인가.



 

그토록 말렸건만 누들스는 파티장에 온다. 놀란 데보라의 표정.

이전에 맥스가 교황의 의자에 앉았던 걸 기억한다면, 이 씬에서 주교가 내왕하는 이 신의 미장센 또한 이해가갈터. 황금으로 치장된 인테리어며, 수많은 천사와 성자 조각상들, 게다가 주교까지 아부하러 오는 그런 교황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오른편엔 휘장을 두른 장교가 서있다.

종교과 군대를 등에 업고 스타 데보라를 가운데 둔.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보여주는 미장센이다.

 



 

맥스와 누들스는 이렇게 참으로 안쓰러운 해후를 한다.

그냥 만나지 말았으면 좋을것을...

맥스는 누들스의 여인인 데보라를 가졌고, 친구들을 배신하고, 아니 누들스를 이용해서 새 신분을 얻어

정치권력의 정점까지 올라가 이렇게 화려한 황금으로 둘러싼 노년을 맞고 있다.

누들스는 친구들을 배신하고 죽였다는 죄책감에 여생을 고통속에 보냈고, 유일한 사랑 데보라를 놓쳤다는 아픔에 눈물속에서 살았다.

"나를 죽여주게"

"그럴순 없네. 우린 참 많은 나쁜짓을 했지. 살인강도방화강간.

 우리에게 의뢰한 많은 이들이 있었지. 어떤건 했지만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일은 하지 않았어.

 너가 건드린건 우리가 절대 손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었어."

이민자 이탈리언 갱들을 통해 경제부흥을 했고, 그들을 배신하고 소탕하며 그 부를 독점했고,

노조와 손 잡고 정치권력을 얻어 갖은 권모술수로 민중들의 피를 빼먹으며 이렇게 황금궁전에 사는것.

그건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누들스의 회환어린 고백.   



 

끝내 맥스는 누들스에게 용서받지 못한채, 죄책감을 덜지 못한채

쓰레기 차속에 몸을 던진다.

영화초반에 누들스가 경찰에 도망가면서 지나가던 마차에 몸을 숨겼던 씬과 묘하게 피드백되는 씬이다.

화려한 파티를 뒤로한채, 자신의 비리가 까발려져 정치생명이 끝나는건 견딜수 없기에

그렇게 맥스는 쓸쓸한 인생을 정리해 버린다.



 

맥스가 실린 쓰레기차가 지나나고 나서,

흥청망청 술과 마약을 하며 노니는 젊은이들이 무심하게 지나간다.

미국을 만들었던 선조들의 시대가 가고 그 풍요를 이어받은 새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에겐  황홀하고 즐거운 파티이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관객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 분명 또다른 누들스와 맥스, 데보라와 캐롤이 있을거구, 이들의 말로 또한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기에.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속성이란 그런 태생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기나긴 4시간여의 대 서사시는 끝을 맺는다.

친구를 배신하고 고통을 참을수 없어 아편굴에서 마약을 하며 껄껄대고 웃는 누들스의 얼굴에서 프리즈된다.

누들스처럼 살아온 미국인들은 과연 지금 행복한가?

당신은 지금 황금궁전에 살아서 행복한가?

이래도 권력과 돈만 탐하며 살고 싶은가?

그냥 이렇게 한바탕 헛헛하며 웃으며 마음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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