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대여점 - 무엇이든 빌려드립니다
이시카와 히로치카 지음, 양지윤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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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모든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얼굴을 택할 것인가. 나라면 배우 서강준의 얼굴을 고르겠다. 내 생각에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다. <날씨가 좋아지면 찾아가겠어요>를 평생 앓고 있기에 더더욱. 이시카와 히로치카의 장편소설 외모대여점은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원하는 외모를 하루 동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가게에 관한 이야기다.

 

변신 여우 네 마리와 점장 아즈마 안지가 가게를 꾸려나가며 손님을 받는다. 총 열 명의 손님이 외모대여점을 찾는데, 저마다 이유도 목적도 다르지만 작은 깨달음을 얻은 채 대여를 마무리한다. 흔한 옴니버스 구성이지만 소재가 독특하여 읽는 내내 지루함은 없다.

 

외모지상주의가 심각한 요즘의 세태에 맞게 어두운 내용을 예상했다. 그러나 외모대여점은 훨씬 얌전한 소설이었다. 가게를 찾는 손님도 대부분 생각이 깊은 사람이며, 손님의 희망을 이루어 주는 변신 여우들의 대처도 능숙하다.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생각과 마음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진리를 아주 잘 보여준다.

 

하루라는 한계를 주기에 더욱 외모 대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왕 외모를 바꿀 수 있다면 원하는 얼굴로 평생 살아가길 바랄 것이다. 이를 위해 성형 수술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 동안의 변화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이 바뀌는 설정이 좋았다.

 

물론 예쁘고 잘생긴 얼굴로 살고 싶어서 외모대여점을 찾는 손님은 일부일 뿐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연을 가지고 외모대여점을 방문한 손님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따뜻하고 신비로웠던 소설, 외모대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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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섬 아르테 미스터리 8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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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이치의 장편소설 예언의 섬을 읽었다. 보기왕이 온다를 시작으로 즈우노메 인형, 시시리바의 집까지 히가 자매 시리즈를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작품은 히가 자매 시리즈가 아닌, 본격 미스터리에 도전한 작품이라 더 관심이 갔다.

 

우쓰기 유코라는 유명한 영능력자가 자신이 죽은 지 20년이 지난 후, 무쿠이 섬에서 여섯 명이 죽는다는 예언을 남긴다. 시간이 흐른 뒤 무쿠이 섬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이다.

 

무쿠이 마을에서는 히키타 원령이라는 영적 존재를 믿고 있다. 저주를 입을까 극도로 두려워하는 주민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실제로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서 섬에 놀러 온 주인공 무리는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과연 예언은 진짜로 실현되는 것일까.

 

무속 신앙과 추리가 결합했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생각났다. 이 작품 역시 후반부에 논리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부족함 없는 설명이 책의 완성도를 높인다. 차근차근 쌓아 올린 복선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게 흥미진진하다.

 

독특한 것은 진실이 드러난 후에도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소설이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말에 있을 것이다. 추리 게임을 하듯 사건이 속 시원히 풀어지는 것보다 그 이면에 있는 어두움을 더 조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개운함 대신 씁쓸한 뒷맛이 남는 소설이었다. 본인의 장기인 호러를 곁들여 논리적인 미스터리를 써낸 것이 좋았다. 히가 자매 시리즈도, 오리지널 이야기도 모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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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아르테 미스터리 15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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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M. 로건의 장편소설 홀리데이를 읽었다. 근사한 프랑스 별장으로 일주일 동안 휴가를 떠난 네 명의 친구와 그들의 가족. 그러나 휴가는 별장만큼 근사하기는커녕 악몽이 되어버렸다. 의심과 다툼, 폭력으로 인해.

 

다양한 인물의 시점이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케이트라는 인물이 주로 서술을 담당한다. 케이트는 남편 이 불륜 중이라는 의심에 괴롭다. 남편의 핸드폰에서 코럴 걸과의 대화를 보고 케이트는 알게 된다. 불륜 상대가 함께 여행 온 자신의 친구 세 명 로언, 제니퍼, 이지 중에서 있다는 것을.

 

케이트는 거의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모두를 의심하고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게다가 세 명 모두 의심할 여지가 충분해 케이트를 더 미치게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케이트가 답답하면서도 이해가 됐다. 누구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점점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한번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생각에 지배당해 그릇된 행동을 할 수 있다.

 

홀리데이는 심리 스릴러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중간중간 다른 인물의 시점을 빌려와 그들의 마음 역시 보여주는데, 마음 편히 여행에 온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솔직히 이럴 거면 왜 여행을 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있고 날카로운 상태의 이들은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태로 아슬아슬한 대화를 이어간다. 이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갈등의 불씨가 모여 결국 폭발하고 마는 후반부에는 충격적인 여러 진실이 밝혀진다. 몇 가지 반전 끝에 만난 결말은 속이 시원했다. 끝까지 참으면 두꺼운 분량 안에 감추고 있던 비밀이 드러나 드디어 모든 진실을 남김없이 알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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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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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유튜브 너덜트 채널에 올라온 영상은 상대적 박탈감에 관한 것이었다. 이직해 통근 거리가 멀어져 독립을 알아보는 친구가 월세가 비싸다고 불평한다. 이를 두고 다른 친구는 3년째 취업을 못 해 눈치 보이고 최근 부모님의 다툼이 늘었다고 눈총을 준다. 또 다른 친구는 부모님이 이혼해 집에 부모님이 함께 있는 시간조차 없다며 타박한다. 우스꽝스럽지만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공감이 갔다.

 

마찬가지로 방금 다 읽은 백온유 작가의 페퍼민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작가의 전작 유원이 마음을 강하게 두드리는 작품이어서 이번 책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다행히 기대감을 충족시켜준 작품이었다.

 

시안해원의 입장에서 번갈아 진행되는 소설이다. 절친이었던 이들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헤어지고, 시간이 흘러 현재에 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해원은 숨 막히는 학원과 서운한 게 많은 남자친구로 고민하는 평범한 삶을 사는 반면, 시안은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엄마 외에 어떠한 고민도 할 수 없다.

 

시안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그 삶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긴 시간 동안 엄마를 돌봐와서 능숙해진 그 일상이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해원이 엄청나게 행복한 인생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해원도 큰 상처가 있고 이를 꼭꼭 묻어둔 채 밝은 척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의 크기는 비교할 수 있다. 해원의 평범한 불행은 시안에게 상처가 되었다.

 

시안이 독을 품고 해원에게 하는 행동은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상대를 찌르지만 결국 제일 아픈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시안은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호러 소설도 아닌데 비명을 지르며 소설을 읽을 지경이었다.

 

결말이 살짝 아쉬웠지만 페퍼민트로 인해 백온유 작가의 이름이 머리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벌써 세 번째 작품도 기대하게 된다.

 

어울리지도 않는 불행한 표정으로 해원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150)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슬픔을 최선의 선생님과 나누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덕분에 나는 아주 조금 가벼워졌는지도. (194)

 

엄마는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몸을 벗어 잠시 개켜 놓고 엄마의 영혼 옆에 나란히 누워 보고 싶다.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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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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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마시던 중 운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 명 다 장롱면허에 가까운데 운전 연수부터 한문절TV에 올라온 사고 영상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집에 와서 책을 읽다가 원래도 많지 않았던 운전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야쿠마루 가쿠의 장편소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이다.


대학생 마가키 쇼타는 친구들과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집에 돌아갔다가 여자친구의 문자를 받는다.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라는 메시지를 보고 쇼타는 지하철이 이미 끊겼기에 운전해서 여자친구의 집에 가기로 한다. 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사람을 치어 죽게 만들고 감옥에 간다.


음주 운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그래서 마가키를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사고 후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다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4년 10개월이라는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가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가해자의 관점에서 쓴 소설이다. 누가 봐도 지탄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른 자의 심리를 촘촘히 묘사하며 속죄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결국 영원히 속죄할 수 없는 걸까.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범죄자여도 범죄를 저지른 측면 말고 수많은 다른 면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부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억울한 마음과 죄스러운 마음이 섞인 복잡한 내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이 제시하는 결론이 참 좋았다. 도망치지 말고 속죄하라는 것, 그게 용서의 발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눈물이 맺혔다.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 중 한국에서 가장 크게 사랑받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지만, 이번 작품 《어느 도망자의 고백》이 새로운 대표작이 되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뉘우침의 눈물일까. 아니면 자기 앞길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눈물일까. (107-108쪽)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테니 지금 말할게. 우리 가족은 너 때문에 불행해졌어. 그런데 가장 불행한 건 우리도, 더욱이 너도 아니야.” (225쪽)


계속 도망치는 한 사람은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340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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