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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평점 :
예전에 근무하던 직장 옆에 장애인복지센터가 있었습니다. 제가 퇴근하는 시간이랑 장애인들이 집에 가는 시간이 비슷했는지 퇴근시간이면 그들을 수시로 만났습니다. 신체는 건강하지만 자폐를 앓는다거나 다운증후군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모양 생김이 비슷하게 생겨서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보였는데 왠지 무서워서 가까이 가거나 말을 붙이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제시 볼의 형도 다운증후군을 앓았다고 하네요. 가족 중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오래 못 살 거라는 걸 알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나마 동생이 작가가 되어 형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니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이 이 책을 읽게 되면 형을 추억하고 동생을 자랑스러워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시한부 진단을 받은 의사였던 아버지가 다운증후군을 앓은 아들을 데리고 인구조사원이 되어서 위쪽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책이 잔잔합니다. 읽고 있음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아버지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인구조사를 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아내 이야기도 있고 본인과 아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다운증후군을 앓는 사람과 의사소통이 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소설이라 그런지 아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인구조사라는 것도 소설이라 그런지 색다른 방법으로 합니다. 어찌 보면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에 큰따옴표가 없습니다. 이게 처음에는 너무 이상해서 누가 한말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모르겠던데 자꾸 읽다 보니 적응이 되고 큰따옴표가 없는 게 더 고요하고 조용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에 책 읽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따옴표가 이렇게 중요할지.. 처음 알았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자신의 죽음을 알고 미리 준비를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의 이별도 이렇게 담담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죠. 담담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느껴졌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도 잘 느낄 수 있었고요. 저도 부모인지라 장애를 가진 아이만 남겨놓고 먼저 떠나야 하는 마음을 더 오롯이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지만 가볍지 않고 삶의 의미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