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은 자에 대한 응징

가장 빈번히 거론되는 대중문화의 소재이자 흔히 떠올리는 시체 발굴의 중심 대상은 아마도 뱀파이어일 것이다. 
(중략)
사실 드라큘라 백작이 동유럽권을 배경으로 탄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8세기 초 세르비아와 왈라키아 일부 지역이 오스트리아에 합병되면서 해당 지역에 새롭게 파견된 담당 관리들은, 유해를 발굴해 예리한 나무 말뚝으로 찔러보는 기괴하고도 거북살스러운 지역 관습을 접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 P66

 이처럼 섬뜩한 일련의 의식에 겁을 집어먹은 담당 관리는 상관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혹여 착오가 발생한다고 해도 본인의 책임 사항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날뛴 저 폭도들을 탓해야할 일입니다."³⁶

36 뱀파이어와 매장, 그리고 죽음: 민속과 생활 (Vampires, Burial and Death: Folklore and Reality), 폴 바버 저, pp.309 - P68

실제로 특이한 환경 조건이 한 가지만 존재하더라도 부패는 지체될 수있다. 사체의 부패 정도는 공기, 습도, 온도, 미생물과 곤충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질 뿐만 아니라 매장되는 장소의 온도가 매우 낮은 경우 등 기타 변수도 작용한다. - P68

플로고요히츠의 사례 역시 이 경우에 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겹의 목판과 함석으로 제작된 관을 점토에 묻거나 시신을 석회로 덮어두면(생석회와 달리) 시신의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 플로고요히츠의 피부가 생장하는 듯 보이는 현상 역시 뱀파이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매도될 필요는 없었다. - P68

키실로바 주민들이 ‘생존‘의 징표로 오인한 또 다른 현상 중 시신의 손톱이 자라나고 ‘새살‘이 돋는 듯한 모습 역시 탈수로 유발되는 수축 때문에 느껴지는 환상에 불과하다. 정상적 부패 과정의 일부로 피부 상피가 분리되면 아래쪽의 불그스름한 속살이 드러난다.  - P69

플로고요히츠가 뱀파이어로 탈바꿈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또 다른 증거로 간주된 발기 현상은 박테리아가 발생시키는 가스가 활성화됨에 따라 성기가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 P69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18세기 유럽 슬라브족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뱀파이어 발굴과 관련된 내용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시기는 20세기 직전으로, 뉴욕과 고작 240킬로미터 떨어진 로드아일랜드 엑서터 Exeter 지역이 그 배경이다. - P70

이후 엑서터에서 일어난 일은 170여 년 전 키실로바 마을에서 벌어진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체스트넛 힐 Chestnut Hill 묘지 지하 납골당에 머시가 잠시 매장된 후(묘터의 땅이 너무 얼어 있어서 그녀를 묻어두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조지 브라운은 몇몇 지인을 대동하고 묘지로 찾아가 딸의 유해를 발굴했다. 당시, 냉동고처럼 얼어붙은납골당 내부 조건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부패의 흔적을 찾아볼 수없을 정도로 멀쩡한 머시의 시신은 뱀파이어에 관한 소문을 사실로 증명하는 듯했다. - P70

유럽 이주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설에 따르면 머시처럼사후에 심장이나 간에서 혈액이 발견되면 해당 장기를 태워 환자(본 사례의 경우 에드윈)에게 먹임으로써 뱀파이어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에드윈은 목숨을 부지했어야 하지만, 이 청년은누이의 유골을 태워 마셨는데도 두 달 만에 사망했고 묘지에서 자행된 이같은 만행은 모두 헛된 소동인 듯했다. - P71

진상 파악

. 근대에 들어 시신은 장례 후 수년이 지나 흔하게 발굴되기도 한다. 대개 관 속에 안치된 이가 묘석에 기재된 실제 사망자인지 확인하기위함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를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고인이 된 영웅이나 정치가, 범법자 혹은 성인이라면 으레 사망의 경위나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발굴되어 엑스레이, DNA 검사, CAT 스캔 및 각종 독극물 검사가 잇따르는 이른바 ‘CSI 조사‘를 거치게 된다. - P71

 미국 대통령도 이런 첨단 조사를 피하지 못했다. 취임한 지 16개월 만에 집무실에서 사망한 제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는 독극물 테스트를 위해 1991년 시신이 발굴되었다. 조사 결과 거친 풍파를 이겨낸 준비된 장군‘이라 불리던 그의 사망 원인은 단순한 위장 질환으로 판명되었다.

2004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착수된 메디치가 Medici 49인의 유해 발굴작업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야심차게 진행되었다. 각국 고생물병리학자와 인류학자, 고고학자, 사학자들이 산 로렌초 교회 묘지로 몰려들어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발굴단은 당시의 생활상과 사인 규명을 위해 대공 8인을 비롯한 시신 여러 구를 대상으로 다양한 첨단 수사를 진행했다. - P72

어린 아이의 유해 8구가 발견됨에 따라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관 속에 있는 시신과 묘석에 새겨진 인명이 일치하지않았다. 마치 수세기 동안 휴식을 취하던 중 무료해진 시신들이 걸어 나와 돌아다니다가 서로 자리를 바꾸기라도 한 듯했다. - P72

1998년 이탈리아 파도바 Padova에서는 수세기 동안 성 누가 St. Luke로 알려진 인물을 검증하기 위해 해당 시신을 발굴했다. 미토콘드리아 DNA 검사를통해 채취된 39개 서열은 현대 그리스 및 시리아인과 비교 조사했다(성서에는 누가가 본래 시리아 안디옥Antioch 출신이라 기록되어 있다). 조사 결과 파도바에서 발굴된 시신은 실제로 시리아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전설적 무법자 제시 제임스Jesse James의 무덤만큼이나 의문에 가려진 경우도 드물다. 남북 전쟁 당시 연합군 소속으로 활동한 제시와 그의남동생 프랭크는 결탁하여 ‘제임스-영거 James-Younger‘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치며 미주리, 미네소타, 테네시 주 등지에서 16년 동안 은행털이와열차 절도를 일삼았다.

사후에 그의 유해는 미주리 주키니 Kearney에 있는 가족 농장으로 반환되었고, 사체의 절도나 훼손을 우려하여 앞뜰에 매장되었다. 이후 1902년에 제시의 유해는 키니의 마운트올리벳Mount Olivet 가족 묘지로 옮겨져 재매장되었는데, 생전에 악명 높았던 그에게 사후의 평화로운 휴식이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재매장되고 나서 약 50년이 지난 1951년, 텍사스 그랜베리Granbury에서 사망한 103세 노인의 신원 확인을 위해 호출된 보안관 오런 C. 베이커Oran C. Baker는 이 사체가 제시 제임스의 것이라는 데 대해 조금의 의심도품지 않았다.

 제임스의 친족들과 유해의 DNA 조사 결과가 99퍼센트 일치함에 따라 발굴된 유해가 전설적 악당의 것임은 거의 확실시된다. 한편 텍사스 출신이었던 프랭크 돌턴의 유해는 2000년에 발굴되었는데, 시신의 팔이 한쪽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생전에 돌턴의 양팔이모두 성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묘석에 적힌 이름의 주인공과 발굴된사체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위장하려 한 사람이 정작 저승에서는 외팔이 사기꾼에게 당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공개되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유해 발굴을 통해서 알아내고자 한 진실이 반드시 드러난다거나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유해가 보존되지만은 않는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 P74

7
지상에서 우주까지

추모의 다각화


예를 들면 유해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가 하면, 인공 산호초로 에워싸기도 하고, 망자가 응원하던 축구팀을 대표하는 색으로 맞춤 제작한 관에 시신을 안치하는 등 오늘날 장례식은 실로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성가조차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우니 Abide with Me>와 <나 같은죄인 살리신mazing Grace> 등의 기존 인기곡이 빌보드 차트 40위에 드는 곡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추세이다. - P161

한때 중국에서는 파격적인 분위기의 장례식이 시도된 바 있다. 2006년8월 중국 장쑤 성에서는 장례식에 스트립쇼 공연단을 보낸 혐의로 5명이 체포되었다. 장례식 참가자들은 영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에로틱한 공연의 관객으로 대우받았고, 이러한 분위기는 마치 남성들의 술자리(총각파티)를 연상케 했다.  - P162

 물론 지역 주민들은 불만스러워했는데, 그들은 장례식 참석 인원과 고인의 명예는 비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한 옷차림과 풍만한 가슴을 뽐내는 젊은 여성 공연단을 투입하는것보다 장례식 규모를 부풀릴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엄숙히 슬퍼해야 할 때

 19세기 영국 사회에서는 요크 공작과 같은 왕족은 물론 남편이나 부친 등 친족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신분 계층을 막론하고 무척 진지한 태도로 애도의 예를 갖추었다. <월간 여성Ladies Monthly》과 같은 패션 잡지는 애도 기간에 바람직한복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애도 의식이 진정한 예술로 승화된 시점은 이로부터 수년 후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이다.

일례로 1860년대 후반, 영국에서 과부는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 존재였다. 남편의 사후 첫해 동안 이들은 어떠한 초청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공공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과부들은 또한 꼬박 일 년 하루 동안 깊은 애도에 임해야 하고 반사광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검은색 크레이프만 착용할 수 있었다. - P163

 패니 더글러스 부인Fanny Douglas은 1890년에 발행된 숙녀의 복장 규범서 Gentlewoman‘s Book of Dress」에서 마침내 외출을 허락받은 과부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심각한 어조로 기술했다. "거리의 오물이 묻는 것을 피하도록 치마를 들어 올릴 때는 주름 장식이 달린 검은색 페티코트와 무늬 없는 검은색 스타킹을 살짝 드러내어 남편을 잃은 슬픔이 자신의 가장 은밀한 성역에까지 침투했음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양산을 펼치는 것은 지극히 경박한 행위로,
과부에게는 상복 소맷자락으로 햇빛을 가리는 것조차 사치가 아닐 수 없다." - P163

일 년간의 애도를 마친 과부들은 이제 약식 애도 단계로 들어가며, 이때부터는 검은색 크레이프 대신 비단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렇게 12개월이 지나면 자주색이나 연한 자주색 옷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1850년대 아닐린 염료가 개발되면서부터는 보라색이나 청자색, 엷은 자색, 체꽃색, 엷은 자줏빛 의상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약식 애도 기간에는 특정 보석류를 착용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일반적으로 진주와 자수정 등을 지닐 수 있었으나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흑옥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이 사망한 지 25주년이 되는 1887년에 마침내 상복을 벗고 은 장신구를 착용한 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애도 규범을 완화하는 데 동의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과도한 애도의 형식이 막을 내리고, 애도를 대표하는 색으로 검은색 대신 은색이 성행하기시작했다. - P164

빅토리아 시대에는 장례를 치르고 나면 으레 ‘애도 카드‘를 발송하여 망자의 죽음을 주변에 알렸다. 처음에는 고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로 주변에 카드를 나눠주었으나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카드 발송이 장례 절차로 굳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다소 과장되고 지루할 만큼 길던 영국식 애도 풍습도 차츰 사라졌다. 74만 5천 명이라는 유례없이 많은 전사자를 낸전쟁이 끝나자 영국 정부는 기존의 빅토리아 시대 상복 대신 검은색 완장을 착용하도록 장려했고, (후략)

그렇더라도 여전히 일부 문화권에서는 애도 의식에 관해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기도 한다. 그리스 정교회 중심의 사회에서 과부들은 2년동안 검은색 옷만 입어야 한다. 힌두교에서는 애도 기간에 흰색 복장을 입는 것만 허락되고, 과부는 평생 사별한 남편을 기리며 살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과부는 한 달에 한 번씩 머리카락을 잘라야 함은 물론 장신구를 착용하지 못하며, 결혼 피로연과 같은 축제에 참석할 수 없다. - P166

그런가 하면 힌두교의 사티sati 제도는 무척이나 잔인한 애도 풍습으로 손꼽힌다. 힌두교 사회에서 과부가 된 기혼 여성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입증하는 의미로 장례 당일에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되어야 했다(자의든 타의든 간에). - P166

그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1987년 9월에 사망한 루프 칸와르Roop Kanwar에 관한것으로, 당시 18세였던 그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했다고 전해진다. 혼인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들던 어느 날 남편이 맹장 파열로 사망하자 칸와르 부인은 결혼 당시 착용했던 예식 사리를 두른 채 남편을 화장하기 위해 쌓아놓은 장작더미로 기어 올라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시동생에게 점화할 것을 재촉했다. - P167

머리카락의 소장 가치

엄격한 규범과 크레이프는 자취를 감추었으나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애도 의식은 여전히 21세기 영미권 사회에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유족들은 고인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내어 유품으로 소중히 간직함으로써 떠나간 이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고자 했다.  - P168

고인의 머리카락으로 장신구를 제작하고자 모발을 땋고 가공하는 작업의 수요가 급증하자 헤어 아티스트라는 직종이 생기기에 이르렀고,
이들의 기술은 높이 평가되었다. 거금을 들여 헤어 아티스트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은 알렉사나 스파이트Alexanna Speight의 안내서 모발의 취급Lock of Hair (1891) 등을 참고해 스스로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이경우에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장담할 수 없었다. - P168

오늘날에도 브로치나 팔찌, 목걸이 등에 고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넣어 봉한 다음 평소에 지니고 다닐 수 있다. - P168

코네티컷 주 웨스트포트에 거주하는 존 레지니코프John Reznikoff는 가장 왕성히 활동하며 높은 수익을 올리는 수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며, 백여 점이 넘는 다양한 머리카락을 소장하고 있다.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나폴레옹, 웰링턴 공작 Duke ofWellington, 에이브러햄 링컨(거래가 75만 달러), 헨리 포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군대식 헤어스타일이었을 당시)의 머리카락이 모두 그의 소장품이다.
최근 레지니코프는 고인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매입해 논란에 휩싸였다. 머리카락의 주인은 바로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으로 당시 3,000달러에 매매되어 현재 레지니코프의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 P169

손톱이나 혈액을 대상으로 성행한 중세 시대의 유물 거래가 다소 역겹거나 끔찍하게 여겨지는가? 그렇다면 오늘날의 유물 거래도 과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봄 직하다.

다이아몬드, 여성의 로망

 그러나 실제로 미국과 스위스의 한 업체가 각기 고인을 화장하고 나서 남은재를 이용하여 다이아몬드로 변모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최대2만 2,000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들여 연간 수백 점에 달하는 ‘인간 다이아몬드 diamond geezers‘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 P170

한편, 스위스업체 알고르단자Algordanza 측은 자사의 다이아몬드 제품은 철저하게 자연소재로 제작되며 일절 첨가물이 더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업체가 발표한 바로는 다이아몬드의 색은 고인이 생전에 섭취한 음식물에 따라자연적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인이 채식주의자였다면 다이아몬드는 옅은 푸른색을 띤다. - P171

오브제, 예술과의 접목

목걸이나 반지 등에 고인의 유해를 넣어 다니는 데 그치지 않고 유해 자체를 빛나는 보석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크리스털은 영원히 Crystal Eternity‘
라는 한 업체는 인체를 태워서 나온 재와 액체 상태로 녹인 유리를 혼합한 유리 기념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유리 제품은 제각기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면서 오래도록 고인을 기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P172

이즈음에서 더 실제적인 유물의 예를 들어보자. 1967년에 프리스비(원반 던지기 놀이에 쓰이는 플라스틱 원반, 고유 상표명)로 특허를 획득한 에드헤드릭 Ed Headrick은 친구와 친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프리스비에자신의 모습을 찍어 넣었다. - P172

그런가 하면 친환경적 기념품도 있다. 1998년에 사망한 칼턴 글렌 파머 Carleton Glen Palmer는 자신의 유골이 환경 보호와 관련된 분야에 사용되기를 희망했다. 당시 열성적인 환경 운동가이기도 했던 파머의 사위 돈브롤리 Don Brawley는 ‘리프 베리어 개발 그룹‘이라는 업체를 운영했는데, 이곳에서는 친환경 소재의 콘크리트 볼을 해저에 가라앉혀서 파괴된 산호초를 대체하게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 P173

그러나 화장이 반드시 가장 친환경적인 시신 처리 방식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물론 화장을 택하면 토양과 지하수 오염의 우려가 있는 유독방부 처리 용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산이나 바다에 유골을 뿌릴 필요도 없으며, 묘지 정돈에 사용되는 제초제나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잔디 다듬는 기계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 P173

화려한 최후

 억만장자들은 2,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우주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단 995달러면 자신의 유골을 우주로쏘아 보낼 수 있다. 실례로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셀레스틱스 사Celestics Inc에서는 추모 우주 비행 편을 제공한다. 1~7그램 정도의 유골을 립스틱 용기 크기의 개별 캡슐에 넣은 다음 인공위성에 부착된 추모 우주선에 실어 우주로 보내는 원리이다.

그런가 하면 그중에는 LSD 주창론의 권위자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의 유골도 있었다. 그 역시 《워싱턴 포스트》의 표현처럼 ‘처음이자 마지막, 그러나 혁신적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의 유골을 담은 캡슐이 5년간 지구를 선회하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면 유골은 2차 소각의 순간을 맞이한다. - P176

아무리 아끼던 사람이라지만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장례 비용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더 저렴한 방법도 있다. 에식스에 있는 ‘폭죽 천국 Heavens.
Above Fireworks‘이라는 업체는 1,470~2,950달러 선에서 유골을 넣은 폭죽을 제작해준다. 이렇게 맞춤 제작된 폭죽이 터질 때 업체에서 서비스로 고인이 선호하던 곡을 배경 음악으로 틀어주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3부작 소설 『다크머티리얼즈Dark Materials』 (인기 판타지 영화 <황금 나침반>의 원작)의 저자 필립 풀먼Philip Pullman 역시 폭죽을 통해 양아버지를 기리고자 했다. - P177

 2002년 5월 세스너Cessna 사의 경비행기 한 대가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 구단의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 상공을 선회하다 비행기에 탑재된 컨테이너 틈으로 회색 가루를 살포하자 야구장에 온 관중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 P178

관계자들의 과장된 반응에 놀란 조종사는 자신은 단지 유골 살포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사실이 밝혀지자 미 연방항공국 소속 데이브 밀러 Dave Miller는 "유골 살포 위치를 경솔하게 택한 경우"라고 무덤덤하게 언급했다."⁷² - P178

차별화된 나만의 공간

뉴캐슬 지역에 거주하는 레슬리 맥기네스Lesley McGuiness는 30대에 요절한 남편을 기리며 생전에 그가 가장 아낀 축구팀의 셔츠 모양과 색상을 본떠 묘석을 제작했다. 이 묘석은 가업을 이어받아 조셉 리치먼드 앤드 선Joseph Richmondand Son 사에서 근무하던 사이먼 리처드Simon Richard가 제작한 것으로, 화강암재질에 뉴캐슬 유나이티드Newcastle United 팀을 대표하는 검은색과 흰색이칠해졌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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