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인내의 시간

1635년,
엑상프로방스

편지로 세계를 잇다



새벽 4시, 보름달이 떠 있다. (중략). 그들은 어느 귀족의 저택 지붕에서서 뭔가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중이다. 교구 사제와 제본업자도 그틈에 섞여 번갈아 가면서 길쭉한 황동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 P27

정작 이 모든 활동을 지휘한 주인공은 지각이다. - P27

그의 이름은 니콜라클로드 파브리 드 페이레스크 NicolasClaude Fabri de Peiresc. 이 집의 주인이자 자연철학자이며, 무엇보다도 위대한 유럽의 지성들을 잇는 연결자다. - P29

그런데도 그는 이 시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다. (중략). 그는 이 야심찬 실험이 성공할지 도무지 확신이 없다. 아마추어 수십 명이 참여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하나의 천체 현상을 관측하고 이를 정확히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가 몸소 일일이 협조를 구했다.  - P28

그날 오전 늦게 페이레스크는 진홍색 양탄자와 칙칙한 유화들이 겹겹이 쌓인, 터져나갈 듯한 자기 서재에서 암울한 순간에도 자신을 지탱해주는 활동으로 넘어간다. 다름 아닌 편지 쓰기다.  - P29

 그는 깃펜에 잉크를 찍어 누르스름한 종이 위에 단어들을 휘갈겨 쓴다. "준비한게 모두 허사가 되었습니다."⁴ - P30

1장 인내의 시간 (1635년, 엑상프로방스)

4 Peiresc to Gassendi, Aug. 29, 1635, in Lettres de Peiresc, 4:535. - P458

편지의 시대


오늘날에 와서 보면, 당시 나온 지 200년도 되지 않았던 인쇄기는 페이레스크 생전엔 혁명적인 매체였다. 팸플릿과 책을 복제할수 있게 되면서 마르틴 루터 같은 반체제적인 성직자가 자신의 의견을 퍼뜨리고 금세 추종자를 얻었다. - P30

페이레스크가 살던 시절에 우편이 신속해지고 상대적으로 믿을만해지면서 이런 상황은 달라졌다. 규칙적인 편지 교환이 가능해지면서 공동 작업, 즉 각종 이론을 공유하고 논쟁할 수 있게 됐다. - P30

17세기는 단번에 비약적으로 그런 일을 해낼 만한 시대가 아니었다.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처럼 끝을 맞고 싶다면 모를까. 이탈리아 도미니코회 수사였던 브루노는 당시로부터 불과 30년 전에, 로마의 피오리 광장에서 벌거벗겨진 채 말뚝에 묶여 산 채로 불태워졌다. 우리가 사는행성이 우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비쳤다는 이유였다.  - P31

과학자들로 구성된 관현악단을 꿈꾸다


월식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시간의 표지, 즉 어디서나 보이는 하늘에 뜬 거대한 시계일 뿐이었다. 그래도 페이레스크는 이 시계가 숱한 일생의 과제 가운데 하나를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가 평생 추구한 과제들을 일부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P32

그는 지중해를 그리고 그 바다를 둘러싼 사람들과 문화에 관계된 거라면 뭐든 사랑했다. 무엇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게 없었다. - P33

편지 공화국의 대표 시민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여전히 페이레스크는 여러 사람이 한날한시에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해서 경도를 계산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다만 이제는 달을 좀 더 가시적인 기준점으로 바꾸어 망원경으로 월식을 관찰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P35

편지 공화국은 과학 학술지(이런 형태의 출판물이 나오기 전일 뿐만아니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도 존재하기 전이었다)의 편집 위원회와 유사한 협업 프로젝트로서 조각보처럼 이어진편지들로 유지되었다. - P36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페이레스크의 서재를 얼핏 들여다보기만 해도 편지 공화국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깃들었는지, 관심사가 얼마나 다방면에 걸쳐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그의 저택에는 편지가 끊임없이 도착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 P37

모으고 관찰하고 비교하라. 이게 바로 편지 공화국의 행동 윤리였다. - P37

이 시기는 학문이 전문가들만의 전유물로 발전하기 전이었기에 페이레스크 같은 아마추어 박식가는 식물학, 동물학, 수비학, 그리고 천문학 등 호기심이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  - P38

만물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데 이토록 헌신한 페이레스크는 의식적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선택할 정도였다. 부친이 프로방스 회계청장 딸과의 결혼을 권하자 페이레스크는 "아내와 자식들을 챙기다 보면 연구 활동을 마음껏 이어나가지도, 박식한 사람들을 후원하지도 못할 거라고 설명했다.²¹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 P39

21 Pierre Gassendi, The Mirrour of True Nobility and Gentility, trans. William Rand (London, 1657), 162-63 - P459

이 편지들은 단순한 일대일 소통 이상이었다. - P39

페이레스크가 경도 프로젝트에 다시 전념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도움을 청한 사람들은 바로 편지 공화국의 모든 친구와 협력자였다.  - P40

인내를 기르는 도구

지도를 다시 그린다는 게 별로 대단한 이유 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편지들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페이레스크는 이 잠재적 관찰자들이 자연과 새로운 관계, 익숙함이나 안전함과는 먼 관계를 맺도록 살살 끌어당겨야 했다.  - P41

믿음이라는 문제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이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교양인들이 주로 독실한 종교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선교사거나 은둔하는 수도승이었다. - P43

자연철학에 쓸데없이 끼어드는 것에 대한 종교인들의 불안과 우려만으로도 문제인데, 경고가 되는 갈릴레이의 사례까지 있었다. - P44

갈릴레이의 저서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는 신성모독으로 지탄받고 금서가 됐고, 갈릴레이는 남은 평생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가톨릭교회의 분노는 편지 공화국 전체를 벌벌 떨게했다.  - P44

페이레스크는 가톨릭교회가 가장 중시하는 계율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식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어렵사리 가톨릭 교회의 호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 P45

이처럼 조심스러운 성격은 페이레스크가 교황의 조카인 권세가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Francesco Barberini 추기경에게 갈릴레이의 감형을 호소하는 순간에 여실히 드러났다. - P46

(전략). 하지만 자기 눈엔 갈릴레이가 탄압받는 천재로 보인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었고 감추지도 않았다. 이런 읍소와 가젤 같은 선물이 효과를 발휘한 듯했다. 가택연금장소를 피렌체로 옮겨달라는 갈릴레이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 P46

알레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카푸친회 선교사 미슐랑주 드 낭트에겐 실질적인 측면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성직자는 신학적 우려를 표했다. - P47

과학하는 법을 가르치다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건 첫 번째 단계에 불과했다. 페이레스크는 체계적으로 정확히 관찰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신뢰할만한 조사 결과를 얻으려면 몇 가지 기준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이런 생각 역시 당대의 혁신이었다. - P48

1635년 5월, 카이로에서 월식을 보게 될 아가탕주 드 방돔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이레스크는 관찰 장소와 방법을 상당히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 P48

사실 아가탕주는 배움이 빠른 사람은 아니었다. 두서없는 그의 월식 보고서를 읽자마자 페이레스크는 다음번 월식에 대비해 그를 좀 더 제대로 준비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P49

많은 물품이 지중해를 건너갔다. 다르코 쪽에선 보석으로 장식한 단검과 살아 있는 카멜레온 그리고 고대 카르타고 주화가, 페이레스크 쪽에선 포도주가 담긴 술통과 함께 특정 아랍 서적을 구해달라는 요청 그리고 마침내는 경도 프로젝트와 여기 참여하는 방식을 전하는 3500단어가 건너갔다. - P50

페이레스크가 협력자들을 움직이기 위해 몇 단어나 썼는지 세는것은 진 빠지는 일이다. 1635년 봄과 여름 내내 편지들이 그들을 부추기고 구슬리고 추켜세웠다. 페이레스크는 그들에게 과학 실험을 하는 법뿐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법, 즉 과학자가 되는 법을가르쳤다. - P51

측정의 날


8월 28일 밤, 페이레스크가 애타는 마음으로 자택 옥상을 서성이는 동안 지중해 전역에서 아마추어 관찰자들이 최선을 다해 그의 상세한 지시를 따랐다. - P51

월식이 있고 수개월 동안은 기대가 컸다. 자꾸만솟는 의구심, 이런저런 작은 사고 소식, 망원경을 잃어버렸다는 전갈에도 페이레스크는 다양한 관찰값이 하나로 합쳐져서 뭔가 새로운 발견에 이르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협력자들에게 끝없이 되묻는 질문으로 가득 채운 그의 편지는 온통 불안을 드러냈다. - P53

여러 곳 중에서도 로마, 이집트, 파도바, 나폴리, 레바논, 피렌체, 튀니스, 파리, 네덜란드, 독일 등지에서 쓸 만한 측정값이 모두 들어오자 페이레스크는 기존 지중해 지도에 표시했다.  - P54

현실에 맞서는 인식을 시험하는 이 새롭고도 여전히 위험천만한 방식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편지로 제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선원과 지도 제작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도 선교사와 상인으로 구성된 분산된 집단이 수행한 실험의 바로 이런 측면이었다. - P55

그 월식이 있고 나서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1637년 6월 24일, 향년 56세였던 그는 한창 일이 진행되던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하던 수많은 과제는 거의 모두 미완으로 남았다. 활기 넘쳤던 편지공화국은 그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진공 상태가 되었다. - P56

무엇보다 방대한 그의 아카이브를 구성한 10만 장의 서류야말로 가장 위대한 그의 기여였다. 그것은 소통, 즉 그가 매일 편지를 쓰는 데 바친 수많은 시간의 유물이었다.  - P56

페이레스크가 서재에 남긴 수많은 미완의 과제 중에는 달 표면의 지도를 그리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는 20년 넘게 정확한 달의풍경을 구현하려고 애썼다. - P57

2장

응집의 날

1839년,
맨체스터


청원이 불씨를 지피다


오코너는 전국을 돌면서 청원이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청원서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반 페니짜리 종이 한 장, 펜 한 자루, 잉크 몇 방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청원서를 쓸 수있다." - P61

수청원서를 펼치니, 서명으로 가득한 수많은 페이지를 하나로 이어붙인 길이가 약 4800미터에 달했다. 청원인은 땀흘려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 P61

. 그것은 새로운 유권자층을 형상화한 물리적 실체였다. - P61

 탄원서는 아주 급진적인 바람으로 시작했다. "존경하는 하원에서 이 청원을 가장 진지하게 고려해주시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정신이 건강하고 범죄에 물들지 않은 모든 성인 남성에게 의회에서 일할 의원에게 투표할 권리를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켜주시기 바랍니다."³ - P62

노동자 계급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긴 청원서가 문제없이 의회안으로 들이닥칠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의 에너지와 자존심 덕 분이었다. - P62

1775년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표현한 바에 따르면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단 하나의 방식"이었다.⁴ - P63

12장 응집의 날 (1839년, 맨체스터)


4 Correspondence of the Right Honourable Edmund Burke, ed. Charles William, EarlFitzwilliam, and Richard Burke (London: Francis & John Rivington, 1844), 2:61. - P460

그 청원서는 새롭게 자각한 노동자 계급에게 목표를 주고 그들을 하나로 묶으며 공장 바닥 위와 좁고 눅눅한 광부들의 생활공간 속에 감돌던 분노의 입자를 그 이상의 뭔가로 바꿨다. - P63

타고난 연설가 오코너는 미친 듯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명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청원서가 의회에 제출되기 전해에 그는 중요한 연설을 147차례나 했고, 길에서 123일을 보냈다.⁵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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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 학습을 위한 문해력 수업 방향

교과 시간에 교과서를 벗어나 책을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되었다. 교사들은 교과의 맥락 안에서 학생들의 읽고 쓰는 역량을 키워 주고 싶지만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 P15

첫째, 교과 성취기준에 중심을 둔다 - P15

둘째, 모든 교사가 교과 학습을 위한 문해력 지도를 담당한다

모든 교과에서 학생들이 읽고 쓰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교과마다 특수하게 쓰이는 상징과 기호, 텍스트의 구조, 어휘가 다르기 때문이다. - P16

셋째,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학생들이 읽기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어려움을 느끼는 시기는 언제일까? 바로 중학교 시기이다.  - P16

넷째, 교과 학습을 위한 문해력 도구와 연습 기회를 제공한다

교과 텍스트를 제대로 읽으려면, 교과 텍스트의 복잡한 구조와 전문 용어를 이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 P17

교과학습을 위한 문해력 수업 실천 방법

(중략).
 
수업 시간을 마련하는 방법

수업 시간이 부족하다면 교육과정 재구성하기

내용교과에서 문해력 수업을 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겪게 되는 어려움은 수업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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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학창 시절에 유난히도 마음 좋고 별로 격식을 차리지않는 물리 선생님이 있었는데, 우스갯소리하는 투로 끊임없이 자살 얘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 P9

물리 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 자루에 머리를 넣고 그대로 자기 목을 베었다. - P10

이 책은 실비아 플라스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 P10

자살만큼 모호하고 극히 복잡한 동기를 가진 행위를 한 가지 이론으로 풀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11

. 자살이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엄청난양의 자료가 있었고, 심지어 해마다 불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자료 가운데 전문가 외의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별로 없고, 보통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것과 관계있는 자료는 더더욱 드물다. - P12

. 바로 자살이 어떻게 또 어째서예술 창조자들의 상상 세계를 물들이는가를 알아 내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자살을 문학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 P13

나는 아무런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실 해답이 있으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 P14

거의 모두가 자살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의견을 갖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이름을 들어 가며 점잖게 감사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주 많은 이들이 참고 자료와 상세한 이야기와 생각할 점을 제공해 주었다. - P15

. 고맙게도 결정적인 순간에 보조금을 내 준 영국 예술협회에도 감사한다. - P16

제1장 프롤로그 · 실비아 플라스


제1장
프롤로그 · 실비아 플라스

(전략). 나는 3년 전 그가 출간한「빗속의 매 The Hawk in the Rain」에 크게 경탄한 터였다. 그러나 그의 시들을 보면 뭐랄까, 내가 그 시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P23

휴스 부부는 리전트 공원 동물원에서 멀지 않은한 자그마한 연립 주택에 살고 있었다. (중략). 어느 집이든 눈부시게 하얀 실내 장식이 되어 있을 것 같았고, 오래된 집들은 새로단장한 덕분에 더욱 크고 으리으리해진 듯했다.
그러나 휴스 부부가 사는 광장은 아직 그렇게까지 변하진 않았다. - P24

이때가 테드의 시대였다. 바야흐로 그는 상당한 명성을얻어 가는 중이었다. 이전에 나온 그의 첫 번째 책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미국에서 온갖 상을 탔는데, 그러면 대개는 그 두 번째 책부터 내려앉기 마련이다.  - P25

그는 천성적으로 우유부단하고 자기 작품을 불신했지만, 그렇더라도 분명 자신의 위력과 성공을 의식하고 있었을것이다. - P26

이것은, 표면상으로는 전형적인 성공담이었다. - P27

『마드무아젤』에 특집 기사가 실린 달과 스미스대학에서 보낸 마지막 학년 사이에는 신경쇠약과 자포자기에 기반한 심각한 자살 기도가 있었고, 바로 그 경험이그녀의 소설 『벨자 The Bell Jart』*의 테마가 되었다. - P27

한순간 나는 완전히 멍해졌다. 그녀가 무슨 얘길하는 건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걸 알아차리고날 구해 줬다. "1년 전에 『옵서버』에 실어 주셨던 그시 말이에요, 밤의 공장에 관한 시였죠." - P29

나는 그녀가 누군지 몰랐던 게 낭패스러웠다. 실비아는 내 기억을 일깨워야 했다는 게 낭패스러운 모양이었고, 동시에 그 점에 풀이 죽은 것 같았다. - P31

 테드와 나는 프림로즈 힐이나히스 숲 근처의 선술집에서 만나 맥주 한잔을 하곤 했다. 가끔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산책했다. ‘전문 분야‘ 얘기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 P32

그 무렵 내 아내와 나는 스위스 코티지 부근에 있던 아파트에서 히스 숲 근처 햄스테드의 고지대에 위치한 주택으로 이사했다. - P32

 "누구나 알 수 있듯, 그것 [거상]은 수정과도 같은형태로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오늘날의 문학 비평은 그런 식으로 말한다. 심지어는 적나라하게 육박하는, 야수처럼 전면으로 공격해 오는 그녀의 성숙기 작품보다 더욱 우아한 초기 시를 더 좋아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 P34

휴스 부부의 집은 한때 그 지방 영주의 영지였다. - P36

그들은 1월에 새 아이를 낳았었다. 남자아이였다. 그러고 나서 실비아는 달라졌다.  - P37

전기 시설들, 새로 페인트를 칠한 방들, 과수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그 무덤 언덕과 ‘옛적 시체들의 벽‘을 보여줬는데, 그녀는 훗날 어느 시 속에서그걸 "자신의 "재산이라고 불렀다.

* 그 ‘무덤 언덕‘은 실은 옛날 옛적의 요새였다. 또한 내가 들은 얘기에 의하면, ‘옛적 시체들의 벽‘이란 아마도 휴스 부부의 정원과 거기에 이웃한 교회 부지 사이에 세워진 벽을 가리키는 것 같다. (원주) - P37

(전략), 다행히도 그녀의 몸이나그들의 낡은 왜건형 모리스 자동차는 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 P38

"그냥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한번 들러 볼까 했죠."
그녀가 말했다. 정장하고 말끔하게 머리를 한 타래로묶은 그녀는 흡사 고상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사교상의 의무를 행하고 있는 에드워드 시대 귀부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 P39

"이 짤랑거리는 소리는 미국이 그리워지게 만들어요." 그녀가 말했다. "꼭 이것만 그래요." - P40

"새로 쓴 시들을 좀 읽어 드리고 싶어요." 그녀가말했다. 그녀는 옆에 바닥에다 놓아두었던 숄더백에서한 묶음의 타이프 원고를 꺼냈다. - P-1

"그 여자, 시인이지요, 안 그래요?" 그다음 날, 허드렛일해 주는 여자가 내게 물었다.
"맞아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완연히 만족스러운 낯빛을 하고 여자가 말했다. - P42

그녀는 스스로 "좀 가벼운 시들"이라고 부르는 시들을내게 읽어 주었다. 「아빠」와 「라자루스 부인」을 두고한 말이었다. - P43

시의 세부적인 표현에 관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 말이다. 내가 특별히 들춰내어 흠을 잡은 한 구절이 있었다. - P43

이런 일들이 있는 동안 죽, 실비아의 시들이 남긴 형적과 그녀라는 인물이 남긴 형적이 완전히 달랐다. 시에 나타나는 절망과 무자비한 파괴성이 그녀의 사교적인 거동에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 P45

절박하고 사납기까지 했지만 자기 연민은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 P47

(전략), 즉 성인이란 살아남은 사람을 뜻한다는 확신으로 변형되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죽음이란 10년마다 한 번씩 치러야 하는 빚이 되었다. 성인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시인으로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으로써 그 빚을 뭐랄까, 수수께끼와도 같은 외곬의 방법으로 갚아야만 했다. - P47

이런 추측은 어쩌면 다음과 같은 질문의 답이 될수도 있겠다. - P50

그녀는 굳이 자살과 연관된 내적 동기들을 찾아보고 검토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일은 그녀를 대신해서 시들이 해 주었던 것이다. - P51

1958년에 그녀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청년기와 20대 전반 내내 스스로 그토록 공들여 준비해 얻은 대학 교직을 포기한 것이다. - P53

사실 과거의 로웰은 그 복잡한 가톨릭적 상징주의와 빽빽한 짜임새를 자랑하는 엘리엇-엘리자베스 시대풍 언어, 그리고 시행을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으로 재단해 내는 단호한 능력으로 신비평파의 총아 - P55

그래도 그녀는 애처로울 만큼 외로웠다. - P58

 "파괴의 열정 또한 창조의 열정이다." 미하일 바쿠닌은 말했다. 그건 실비아에게도 들어맞는말이었다. 그녀는 분노와 고통의 감각을 일종의 축제로 바꾸어 놓았다. - P59

. 그녀의 시는 어떤 이상하고도 강력한 렌즈 같은 역할을 했고, 일상생활은 그것을 투과한 뒤 놀랄 만큼 강렬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 P60

 만약 자살 기도가 어느 정신과 의사의 생각대로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라면, 그렇다면 이 시기의 실비아는 자살 상태에 있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 것은 도움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 P61

11월, 우울한 어느 오후에 그녀는 크게 흥분한 모습으로 내 작업실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썰렁한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 다니면서 의기소침한 채 그리고 얼마쯤은 그냥 하염없이 집 사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 P62

그녀가 그토록 흥분했던 것은 단순히 집을 마침내 구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 P63

학식과 세련됨과 장인적 기교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올바른 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했거나 문명의 세례라는 것을 제대로 신뢰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 P64

 그런데 이제는 시가 정말 흑마술 같은 것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녀가 그토록 자주 그리고 오직 의기양양하게 물리쳐 버리기 위해 불러냈던 그 인물이 그녀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 P69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이전시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그녀가 그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 P70

그러나 만일 내가 그녀를 다른 식으로 대했더라면, 거기에는 내가 원치않는, 심지어 우울증에 빠져 있던 나로서는 애초에 감당조차 할 수 없는 책임들을 스스로 떠안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 P71

이루 말할 수 없는 겨울이었다. - P71

민감하고, 언제나 과로 중인 그녀의 담당 의사 역시 똑같이 생각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진정제를 처방해준 뒤 심리치료사를 만나 보도록 주선해 주었다.  - P73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그녀는 최후의 자살기도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배려해 놓았던 것 같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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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은 내 생애에 가장 뜨거운 해였다. - P10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폭격과 썩어가는 시궁창 물속의 참호에서 싸우는 1차 세계대전 군인처럼,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함에 더 두려웠다. - P11

헬기가 말썽만 피우지 않으면 자정 전에 정비를 끝낼 수 있다. (중략), 산불진화 헬기 무진 1호기가 말썽을 피웠다.  - P12

2


헤드라이트 불빛이 한적한 시골길을 깨웠다.
(중략).
"준호야, 수원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다짜고짜 나에게 와서 돈 빌려달라 하고, 빌려주고 나니깐 행방불명이라니?" - P13

"준호야, 아직 주님 곁으로 갈 때는 아니지 않냐? 휴~, 죽을 뻔했네."
(중략).
"찾지 못하면 수원 선배가 죽을지도 몰라요." - P14

"선배가 죽지 않더라도 내일까지 못 찾으면 우리도 끝나요." - P15

첫 번째는 정비검사관들은 계약직이다. (중략).
정규직 공무원은 가벼운 징계로 끝나겠지만 계약직인 우리로서는 바로 계약해지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 P15

무진 1호가 출동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국정원에서 조사가 들어올 것이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일탈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면 관리소 소장부터 모두 징계다. 민수원 선배뿐만 아니라 나도 함께 계약해지다. - P16

"그래, 첫 번째 두 번째 문제는 이해했어. 그런데, 왜 수원이가 죽는다는 거야?"
(중략).
"엄마, 형님이 이야기하라면 하는 거야." - P17

3

이야기는 민수원 선배가 스물한 살이던 때 장미 여관방에서 시작한다. 옆에는 나이트에서 만난 이름 모를 여자가 누워 있었다. 맨살 양어깨가 이불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 P18

"지연이"
잠시 사귀었던 여자친구였다.
(중략).
"나 지금 미혼모 복지시설에 있어." - P19

공장 다니는 스무 살 여자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지연은 해외 입양을 결정했다. 아이를 떠나보낼 날이 이틀 남았을 때 지연은 선배에게 전화했다. - P20

그런데 막상 같이 살려고 해도 살 집이 없었다.
군대 관사가 배정될 때까지 장모님 집에 얹혀살아야 했다. - P22

하사 월급으로는 결혼 생활이 힘들었다.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따듯한 이들이 많았다. 사무실 선배 하나는 월급날이면 십만 원을 떼서 호주머니에 찔러주고 퇴근했다. - P23

국민에게 큰 고통의 기억을 준 IMF도 선배를 비껴가지 않았다. 부사관 연장신청이 안 되어 강제 전역을 하게 되었다. - P23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때쯤 대기업 계열 회사로 이직했다. 대기업에 간다는 것보다 가족에게 더 많은 걸 해줄 수 있다는 것에감사했다. - P24

대기업에서 월급을 많이 주는 이유가 있다. (중략). 몸을 움직이지 않는 주말은 오히려 머리가 깨져나갈 것같이 더 아팠다. 문제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라 낮잠 자는 것이 두려웠다.  - P25

형수와의 문제였다.
시작은 부부 잠자리 거부였다. 마음이 안 가 관계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P26

형수는 언제나 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자기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답답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 텐데 다 자기 때문이야. 스무 살에 시집와서 남들 다 하는 것 하지도 못하고 " - P27

선배는 연이어 고부갈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 찾아뵙는 것, 일 년에 한두 번이야. 명절하고 제사 지낼때, 그것도 어머니가 제사상 다 봐놔. 몸만 와서 제사 지내고 설거지하면 끝이야. 갔다 오면 며칠간 화가 나 있어. (후략)." - P28

언젠가 선배가 오공본드를 구하러 사무실로 왔던 적이 있었다. (중략). 신발 밑창이 덜렁덜렁 뜯겨 있었다. (중략).
"새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P29

선배는 산림청 산림항공본부가 정비복을 많이 주어 옷 살 필요가 없어 좋다고 했다. 내가 선배를 기억하면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기름 묻은 정비복에 초라한 신발이었다. - P30

동료들을 오래간만에 만나면 미소와 함께 안아서 반기는 선배의버릇을 알고 있는 나는 선배가 장모님과 처제에게 어떻게 했을지 눈에 훤했다.
"대기업 복장 규율이 군대보다 더한 것 알고 있어?" - P31

선배는 마지막으로 잠자리 거부 이유 중 하나를 설명했다.
"당신하고 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
남자로서는 맥 빠지는 이야기다. - P32

부부관계 거부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형수의 불만 사항에도 선배는 내가 열심히 하면 아내가 언젠가 알아줄 거야, 내가 사랑하면 되잖아 하는 심정으로 직장 생활에 더 몰입했다. - P33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형수는 일주일에 네 번은 만취 상태로 자정을 넘겨 들어왔다. 언제 올까, 속 썩으며 기다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또한 형수의 술자리에는 다른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불안했다. - P34

주말부부로 오 년을 살았다. 아니 오 년을 버텼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주말에 갈 때마다 아내의 얼굴이 바뀌었다. - P35

 조정 끝에 무진 산림항공관리소로 전입이 결정되었다. 아내가 있는 청주와 오십 분 거리다. 기쁜 마음에 선배는 바로 형수에게 전화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무진 산림항공관리소에는 관사가 없대? 같이 사는 건 좀 그런데, 내가 마음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마음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니깐 시간 좀 줘. 그동안 잠시 다른 곳에서 출퇴근 좀 해." - P36

선배는 불륜남의 아내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다시금 아내와 상간남을 만나지 않게 하겠다고 각서를 쓰고 나왔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 P37

"유 선배님, 이 아기는 누구 아기예요? 어울리지 않게 유모차를 밀고 오셨어요?"
(중략).
"네 전 형수 아기야." - P38

민수원 선배는 기억하고 있었다.
유선배의 형수가 상간남과 바람을 피워서 그 고통에 선배가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 P39

"두 달만 봐달라고 하는데, 벌써 육 개월이 지났잖아요? 또 출근할 때 아기는 누가 봐요?"
"아주머니 한 분을 고용했어. 한 달에 이백만 원이야. 두 달이 육개월이 되어도 좋아. (후략)." - P40

무진 1호 담당 정비사였던 민수원 선배는 작업공정에 따라 자재수급과 서류작업을 병행해야 했기에 정신적으로도 지쳤다.
다시 말하지만, 그날은 민수원 선배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지쳤던 날이었다. - P41

"자기야, 살려줘."
(중략). 다급한 마음에 아내가 자살하러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위치추적으로 아내의 위치를 찾았다. - P42

경찰서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형수가 이야기했다.
(중략).
아내는 만나지 말라는 상간남을 만나서 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먹었다. 그리고 모텔로 향하던 중 상간남의 아내를 만났다. 상간남의 아내는 형수를 때리고 발로 차고 길거리에 패대기쳤다. 형수는 죽을 것 같은 공포에 도망쳤다. - P43

다음 날, 형수는 선배에게 말했다.
"자기와 떨어져 사는 것이 내게 더 행복할 것 같아. 제발 이혼해줘." - P43

선배는 이혼해주기로 결심했다.
(중략). 선배는 마지막으로 형수와 이혼 여행을 갔다. - P44

가족을 위해 뛰어온 이십 년의 세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모두 악몽으로 변했다.
(중략).
선배는 그리움을 참을 수 없음에 전 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 걸었어! 이제 남남이라는 것 잊어서 전화 걸지 마!" - P45

이혼은 현실이다.
선배는 미약하나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정리해보았다. (중략). 그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이혼을 하니 알 수 있었다. 재산 분할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모든 게 계획된 행동이었다. - P46

선배는 췌장이 안 좋아 보험사가 보험 가입을 거부해 결혼 후 전 형수 이름으로 가입한 보험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했다. (중략).
"아내께서 보험 납부금으로 대출을 다 받으셔서, 보험을 유지하시는 것보다 해지하시는 것이 더 이익입니다." - P46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수원이가 살아 있는 것이 용하구나. 자식 진작 이야기하지, 크." 하고 대현 선배는 미간에 검지를 대었다.
"내가 눈물이 난다."
선배는 낮게 저음으로 말했다. - P47

4

"민수원 선배가 갑자기 찾아와 삼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는거죠?" - P48

"안전항공 팀장을 만나러 간다고 중얼거리면서 가더라고. 눈이 풀려 있고 걸음걸이도 비틀거리고 있었어. 걔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야?"
"안전항공팀장을 만나러 갔다는 거죠?"
"안전항공팀장이 어디 있는데 만나러 간다는 거야?" - P50

특수부대원 출신으로 150kg의 군장을 메고 천리행군을 한 체력의 소유자지만 연이은 전투에 지쳐가고 있었다. 또 다른 적 잠과싸우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민수원 선배 오지 않았어요?"
"저한테 와서 긴급히 쓸 돈이 필요해서 그러니 돈 좀 빌려달라고해서 빌려줬어요." - P52

대현 선배와 안전항공 팀장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1960년대생으로 형수와 사이가 좋다. 직업 특성상 가족과 떨어져 있지만, 형수가 남편들을 끔찍하게 위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 P53

1960년대생 아내들의 좋은 남편 기준은 그저 바람 안 피우고 술담배 하지 않고 성실하게 집안 경제를 유지하는 남편이면 되었다. - P53

반면, 1970년대생 아내들은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은 기본에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이들까지 돌보는 것까지 요구한다. - P54

전업주부에게 독박육아라니?
나의 아내와 민수원 선배의 전 형수가 말하고, 1970년대생 남편들이 공통으로 듣는 말이 독박육아다. 과연 육아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왜 한국 여성들은 유독 이 육아를 싫어할까? - P54

산업화는 남자에게서 육아라는 것을 빼앗았다. 자녀들과 떨어져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해야지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 P55

아버지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뜨거운곳에 들어가고 더 무거운 짐을 들었다. 돈을 더 받기 위해 더 위험한 일을 했다. 산재 병원에 가보면 남성들밖에 없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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