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체성과 자기

정체성(identity)은 신비한 개념이다. 그래서 정체성의 의미를 너무 단순하게 정의하려는 시도는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자아가 너무 커다란 역할을 하도록 고착된 상황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 P18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기(self)는 어떤 의미에서 내적 본질(inneressence)이다. 자기는 비록 성장할 수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있는 잠재성을 실현시키는 것 이상으로는 결코 더 성장하지 않는 하나의 핵(核)이다. 본질적인 자기는 외피(外皮)의 층으로 덮여 있거나 압축된 가능성안에 잠겨 있을 수 있다. - P19

현대 심리학에서 자기는 추구해야 하고, 발견되어야 하며, 발달되어야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서적 영성에서 말하는 씨앗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견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그것은 불교학파에서 자기를 하나의 환상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불교적이지도 않고, 성서적이지도 않다.  - P19

그러나 이 세상과 자기를 보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기의 바깥에 중심을 두는 방법이다. 자기에 대한 이런 견해는 히브리로부터 왔고, 그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움을 강조하는 신학파와 심리학파에 대해서 말해준다. - P20

 성서의 우주에서는 구체적인 자기들이 서로를 전투원이나 동료나 하나의 우주적 자기의 분리된 부분으로 만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존재의 중심이다. 타자의 이 환원시킬 수 없는 타자성은 자기에 대한 성서적 견해를 규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심리학이 해방적인 새로운 영혼의 과학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의 정신이나 자기에 대한 유일한 견해를 제공해준다.⁶ - P20

서문

6 Harvey Cox, Turning East, 81ff. - P306

콕스가 정체성에 관한 심리학적 견해의 한계를 비판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는 융의 접근을 다른 학설들과 함께 포함시키는잘못을 저질렀다. 자기에 대한 융의 견해는 콕스가 말한 "추구되어야하는 어떤 것이고, 발견되어야 하고, 발달해야 하는 본질"이라는 개념과 똑같기 때문이다. - P21

콕스의 비판은 정체성 역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형성되기 때문에일방적인 것이라고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체성은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형성될 뿐만 아니라 먼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 P21

3. 자기의 신성성

한편 신조(creed)는 본래 누미노줌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성한 것에 대한 체험과 그에 따르는 의식의변화에 대한 피스티스(pistis, 신앙-역자 주), 즉 신뢰, 충성심, 믿음,
신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바울의 회심은 이에 대한 놀라운 예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라는 용어를 누미노줌의 체험에 의해서 변화된의식의 특별한 태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 P22

자기의 신성한 특질에서 나오는 두려움에는 적어도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그 두려움은 흘러넘치는 원형적 에너지에 압도당하고,
자아보다 더 큰 의지에 사로잡혔다는 두려움이다. - P23

둘째, 자기와 자기의 에너지에 대한 두려움은 포기하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나는 여러 번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았다. "내가 그 힘과 효율성을 체험한다면, 나는 너무 강력해져서 모든 사람들은 나를 멀리할 것입니다." - P23

셋째, 그와 관련된 것은 자기의 에너지를 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 에너지들이 너무 매혹적이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취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시기심(猜忌心)의 대상이 되는 것을두려워한다.  - P23

그는 마치 쉐크(Schoeck)가 언급했던, 아주 훌륭한 사냥거리를 잡았지만 그가 사는부족이 사는 마을로 돌아갈 때,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투덜대면서 소리 질렀던 원시인과 같다.⁸ 그는 그가 잡은 것을 거주지 바깥에감추었고, 밤이 되자 몰래 나가서 그것을 먹었다. - P23

8 H. Schoeck, Envy, 31. - P306

융이 다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와 자기의 누미노스한(numinous는 numen을 경험한 다음에 생기는 경외심을 느끼면서 묘하게 이끌리는 감정적 반응을 말하는데, 우리는 앞으로 이 용어를 번역하지 않고음역해서 사용할 것이다-역자 주) 특질에 대한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 P24

 모든 콤플렉스들은 잠재적으로 의식화되려고 하는 "자아 같은 특질을 가지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가 하는 것을 "보는데", 때로는 무의식성에 상당히 짓눌려 있는 의식적인 자아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본다. 그래서 꿈은 치료자나 환자의 자아의식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분석의 상호관계를 보여줄 수도 있다. - P26

(전략)
따라서 원형적 자료들을 보지 못하는 분석가는 그것을 배열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의식으로부터 철수시키기만 할 것이다. 누미노스한 것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게 하기 보다는 그의 저항에 무의식적으로 공모할 것이라는 말이다.  - P26

우리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원형적 과정을 전개시키지 않을 수있다. 그것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환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통해서도 그 과정은 쉽사리 파괴되고, 무의식에 침입하는 것이 막아지고, 그에너지를 고갈시킬 수 있어서 향정신성 약물인 토라진(thorazine)을처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제1장에 있는 A에 대한 임상자료는 갑자기, 과격하게 나타났던 원형적 자료(이 경우에는 죄의식이었는데)가환원적 해석을 통하여 어떻게 없어질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 P27

분석심리학적 접근은 환자가 "원형적 체험을 하는데 의존되어 있는 것으로 종종 오해받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원형적 에너지의 직접적 체험 같은 것은 그렇게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직면이 융학파를 다른 정신분석학적 접근과 구별하는 기준은 아니다. - P27

자기(Self)에게는 외적 대상과 결코 다 소통할 수 없는 영토(領土)가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초월적 특성 때문에 자기가 체험한 것을 자아가 그의 시공의 실존으로는 도무지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의 실재는 언제나 육화되려고 하는데, 모두 다 육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다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완수되려고 압력을 가하는, 결코-끝나지 않을 과정이다. 융이 말했듯이, 자기는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기를"¹² 바라고 있다. - P29

자기의 가장 분명하고, 압도적인 형태인 초월적 수준은 신비적 융합(unio mystica)에서 체험된다. 자기에 대한 이런 체험의 결과, 중심이 되는 정신 안에 아버지로서의 자기의 심급)이 처음으로 육화된다. 더구나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아의 내용으로 육화되려고한다. 아들로서의 자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해서도자기의 본래적인 초월적 수준은 "내면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느껴질 뿐만 아니라, 정신의바깥에 있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실 초월적 자기를 이미지로 체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성과 빛에 대한 다양한은유들은 무엇인가꿈이나 상상이라는 의미에서 말하는 정신적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미지가 아무리 우리의 기억을 돕고,
그 자신의 신성성과 상징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을지라도 그 자체는단지 근사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아가 심상(imagery)을 뛰어넘는 어떤 것에 이미지를 부여하는 빈약한 방식이다 - P31

1
변환의 첫 번째 단계: 임상적인 문제들

1. 정신분석학적 관점과 원형적 관점


자기애에 관해서 일관성 있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표명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어려움은 이 분야에 대한 연구자들이 종종 너무 서로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 P52

컨버그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들에게 내적 대상들이 지극히 적은 것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의 대상관계가 매우 빈약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정신구조는 시기심 격노 아주 심한 증오에 대한 방어에 의해서 주로 결정된다.  - P54

그러나 코헛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컨버그의 이런 일반적인 관점인 자아-자기의 구조와 다르게 생각한다. 코헛은 자기애성성격의 자기의 구조를 퇴행적 융합과 병리적 왜곡으로 보지 않고, 발달의 정체 단계로서 자기가 기본적으로 교란된 것이 아니라 발달이 방해받은 것이라고 본다.  - P55

코헛에게 강렬한 격노와 특히 시기심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에게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양상이 아니라 공감을 받지 못했을 때 나오는 일시적인 정감들이다. 그래서 그에게 성격적 구조 자체, 즉 자아와 합쳐진 과대적과시적 자기는 그가 기술한 자기애적 전이가 드러나기만 하면 펼쳐질 수 있는 발달이 지금 막혀 있는 것으로 된다. - P56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전이 모형에 대해서 정의하였다. 하나는 그가이상화된 자기를 동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대적과시적 자기이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이 장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테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코헛이 그것들을 자기의 자연스러운 발달적 형태로 보았고, 정신치료 기간 동안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 P56

 썰즈(Searles)는 특히 부정적인 역전이 정동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환자가 그 자신이라고 느끼는 자신의 해리된 이미지를 우리가 공감적으로 느끼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정도까지 우리가 전혀 분석되지 않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부분들을 체험하고 있는지 하는 것을 분간하기란 확실히 어려운 일이며, 나는 그것은 아마 본질적으로는 완전히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코헛의 개념들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나의 주된 비판은 우리가 그로부터, (후략) - P58

코헛학파 분석가는 우리가 미움과 격노와 다른 부정적 정동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특히 우리가 그것들을 자부심의 상처에서 비롯된분열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그것들은 썰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덜 문제시된다고 생각한다.¹¹ - P59

부정적 역전이 반응을 미숙하게 다루면 자기애적 전이가 응집력있게 형성되지 않거나 그것이 방어적인 구조를 띠게 된다. 물론 이상화는 두 가지 목적으로 동시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 역전이 반응을 미숙하게 사용하면 비방어적인 이상화를 방어적인 것으로만들 수 있다. - P59

벨라 그륀버거(Bela Grunberger)는 자기애를 확대된 프로이드의 충동이론과 자아-이드-초자아 모델 안에서 고찰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애가 태아기적 삶과 관계되고, 초기 상태의 상실과관계된다는 그의 입장을 주장하려고 자기애를 "절대적으로 자기충족적인 태아적 실존"이라고 한 프로이드의 주장과 프로이드가 "생식 세포의 자기애"에 대해서 언급한 것들에 초범을 맞춘다.¹³ - P60

13 Bela Grunberger, Narcissism, 13ff. - P308

 그는 "자기애는 ... 프로이드의 도상학적(圖像學的) 체제 안에 있는 자율적 요소로 인정되어야 하며, 이드, 자아, 초자아와 같은 종류의 정신적 요원으로 승격되어야 한다"¹⁵고 믿었다. - P61

15 Bela Grunberger, Narcissism, 13ff, 108 - P308

그러므로 그륀버거에게서 자기애는 그 자체로서 "기능적으로 전혀 다른 법칙들을 가진, 프로이드의 자아-이드-초자아의 삼위성과 똑같이 중요한 제4의 요소이다." 이렇게 사중적으로 된 자기애의 구조는 존스에 의해서도 기술된 적이 있다.¹⁷ - P61

17 Ernest Jones, Papers on Psychoanalysis, 194f. - P308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자기애 문제에 대한 연구자들도 동의하였다. 그륀버거는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중략). 하트(Hart)는 자기애라는관념에는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거기에는 수많은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자기에는 본래 가장 고상한 승화이며, 가장 병적인 퇴행이라고 알려졌다. 어떤 점에서 자기에는 남성적 능력을 가장 높이 제고시키는 것이지만, 다른 경우 그것은 그 능력을 가장 빼앗아간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것은 여성들에게 냉담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동시에 매력의 원천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모든 파괴적인 경향을 중화시킨다고 생각되지만, 자아의 불안의 원천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것은 동성애에 대한 방어이지만, 동성애자들은 특히 ‘자기애적‘이다. 수면은 리비도의 자기애적 철수이지만, 불면은 자기애가 더 강화되지 못하도록 도피하는 작용이다.
자기애는 어떤 사람에게 찾아온 무력감을 설명할 때 동원되지만 야망의 충동을 설명해주기도 한다"("Narcissistic Equilibrium", Int. Jour.
Psychoanalysis, v.28. 106. 1947).¹⁹ - P62

19 Grunberger, 102f

 자기애적 혼란이 정신장애의 모든 수준에서,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정신신경증, 경계선 성격장애, 정신증 등에서 나타나지만,
지난 십년 동안 사람들은 그것을 특히 성격장애의 측면에서 관심을가지고 살펴보았다.
자기애에 관해서 정신분석학 저자들이 다룬 문제들은 융이 관심을가졌던 주제이기도 했는데, 관점은 조금 달랐다.
프로이드학파의 접근들이 개인적이었다면(부모의 이마고가 내사구조의 주된 원천이다) 융에게서 이 전능한 이마고(imago)는 기본적으로 원형이 채우는 선험적 에너지 형태이다. - P63

융의 연구에서 원형의 양가성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자기애를 특징짓는 것은 바로 이 양가성이다. 융은 『변환의 상징들』 (Symbols of Transformation)이나 다른 저서들에서 정신에너지의 변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 P63

프로이드의 이점(利點)은 외향적이고, 연역적이며, 임상적인 데 있고, 융의 그것은 더 내관적(觀的)이고, 위대한 종교적 계시와 개인적 변환에서 나오는 독특한 사건들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 있다.  - P63

정신분석학자들은 자기애가 인간 정신의 본성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코헛 같은 사람은 그런 입장에 서있고, 그에 따라서 융이 1928년에 밝힌 리비도에 대한 관점²⁰과 매우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컨버그와 그륀버거 같은 사람들은 특히 자기애와 본능과정들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P64

20 C. G. Jung, "On Psychic Energy", CW 8. - P309

우리는 이 "물질적 요소들을 덧붙이면서 연금술에 대한 융의 연구로 오게 된다. 그의 정신에너지에 대한 연구가 순전히 심리학적 모델(인간의 정신을 "비교적 닫힌 체계"로 보았다)²²을 다루었다면, 그는연금술에 대한 연구에서 영과 물질 사이의 관계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과 씨름하였다. - P64

22 C. G. Jung, "On Psychic Energy", CW 8, par. 10. - P309

(전략).

자기애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개념과 연금술에서의 메르쿠리우스의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들에는 이중적 본성과 분열되려는 잠재성이 있다. 또한 그것들은 영적 과정과 물질적 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같이 변환되려고 한다. 자기애는 사람들을 모든 종류의 팽창과 과대적 자기로 이끌어가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 트릭스터(trickster, 세계의 모든 신화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요정으로, 책략가, 사기꾼, 헤르메스처럼 경계가 없다-역자 주)이다. - P65

정신분석학에서(Grunberger와 Kohut) 자기애는 자기를 나타내는 요원(要員)이고, 프로이드적인 관점에서 보면, 개성화의 긍정적인방식(Kohut)과 부정적인 방식(Grunberger)을 나타낼 수 있다. - P66

나는 자기애에 원형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제안하기 위해서 자기애와 자기애적 성격장애와 연금술의 신, 메르쿠리우스 사이에 있는 유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메르쿠리우스에 대한 묘사는 물질에대한 투사와 그의 변환과 집단적 무의식의 초개인적 내용들에 대한투사의 명상적 반영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억압된 것이나 개인적 자료로 환원될 수 없다. - P66

자기애성 장애에 대한 융 학파의 견해가 프로이드 학파의 대상관계와 본능에 대한 강조, 특히 자기 개념에 신체-이미지를 포함시키는 것에 도움을 받았듯이, 프로이드 학파의 견해도 원형적 차원에 대한융 학파의 견해에 도움을 받는다. - P67

자기애의 어떤 측면들은 틀림없이 인간관계에 뿌리 두고 있으며,
어쩌면 그 개인의 기질에 뿌리를 두고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초개인적인 부분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자기애의문제들 가운데는 집단적 무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들은 목적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한 개인이나 집단, 또는 양자 모두에게 새로운 자기 이미지가 육화(化)되려는 증상들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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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흔히 취하는 자세들(앉은 자세, 보행 자세, 달리는 자세 등)이 불균형해진 채로 반복되면 근골격계의 부담과 통증을 몸으로 느끼게 되고 이는 곧 근골격계 질환으로 발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경험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허리 통증이다. - P15

어느 정도 복근이 잡히고 군살이 없다고 해서 건강한 신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신체의 균형을 잡고 실질적인 힘을 쓰는 코어 근육이 잘 단련되어야 건강한 신체라고 할 수 있다. 코어 근육이 잘 단련되면 허리 통증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할 수 있고, 균형 잡힌 몸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같은 운동을 해도 운동수행 능력이 향상되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 P15

코어란 무엇인가?

(전략). 인체에서 코어는 일반적으로 척추,
골반, 둔근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으며 척추, 골반, 둔근에 붙어 있는 29쌍의 근육을 말한다.(이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 P16

가동성 근육은 동작을 할 때 주로 사용되며 몸에서 폭발적인 힘을 쓸 때 힘을 전달하는 연결고리로 사용된다. 사람이 움직일 때는 안정성 근육이 몸의 중심을 잡고,
가동성근육이 상체와 하체로 힘을 전달한다. - P16

요통을 예방하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힘을 쓰기 위해서는 코어 근육의 밸런스도 매우 중요하다. 외부 근육만 강화한다면 안정성 근육은 약해질 것이고, 이로 인해 척추의 정렬이 무너져허리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외부 근육뿐 아니라 척추를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내부 근육도 함께 단련해서 겉과 속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P17

코어 근육 단련 시 얻을 수 있는 장점

01 바른 자세를 잡아주어 요통을 예방한다

코어 근육은 척추를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자세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어 근육이 약하면 외부의 작은 저항에도 요추부에는 큰 충격이 간다.
요통을 느끼는 사람 중에는 코어 근육 중 하나인 둔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P18

03 올바른 보행으로 무릎, 고관절, 요추부의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인간의 움직임 중 일생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동작이 아마 걷기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패턴으로 보행하고 있다.
자신이 지금 어떤 근육을 사용해 걷고 있는지 의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 P18

그런데 보행할 때 1차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근육인 둔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둔근의사용이 줄어들면 대퇴부 전면, 고관절 주위 근육을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허리 또는 고관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둔근의 역할은 충격을 흡수하고 체중을 지탱하며, 바른 자세로 걷고 보폭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18

04 요실금을 예방한다

코어 근육 중 하나인 골반기저근은 일상생활에서 복부 내의 압력이 증가했을 때 소변이 나오지 않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안정성 코어 운동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골반 주위 근육과 괄약근에 힘을 주면 요실금예방에 많은 도움이 된다. - P19

아기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앉았다 일어날 때 올바른 스쿼트 동작이 나오고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데드리프트 동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질 때는 다치지 않기 위해 구르는데, 이때도 신기할 정도로 정확한 동작이 나올 때가 많다. 그만큼 많은 근육을 사용하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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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선생님 배역을 좀 바꾸면 어때요?]
"예?!"
[그냥 인질D가 아니라, 인질 속에 숨어있는 FBI면 어떨까 하는데.]
".........."
[아시다시피 이번 영화는 D 선생님 3년 만에 복귀작이고, 좀임팩트가 강한 역할을 하셔야지, 그냥 지나가는 인질C, 뭐 이런게 솔직히 격에 맞습니까?] - P199

[지나가는 인질C, 그것도 대사도 몇 줄 없는 그런 대본을 어떻게 보여드립니까, 막말로.]
그럼 왜 계약했냐! - P197

어시스턴트는 곧 내 면전에 서류 한 장을 들어 보였다. 난 내용을 살피기에 앞서 그녀에게 묻는다.
"이게 뭐야?"
"제작투자자 리스트인데요. 여기 보이는 이 사람 누군지 모르세요?" - P198

아, 기억난다. 이 사람도 세계제일이었는데…………… 세계제일의뭐였더라? 세계제일의 병원장이었나?
"얼마 전에 재단 산하의 병원에서 인질극이 벌어져 여론에 오르내렸죠. 그다지 좋은 의미로 여론에 관심을 받은 게 아니거든요." - P198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병원에서 인질극을 하는 걸로 내용을 바꿨다며?]
"네, 그게 좀 사정이......."
[사정이 어떻든. 이거 안 좋아. 무슨 말인지 알아? 이사회에서 소란나기 전에 알아서 해결해. 대체 뭔 생각을 한 거야?! - P199

"히든카드 한 장 더 없어요?"
난 말없이 책상 서랍을 열어서 흰색 봉투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를 본 그녀가 피식 웃는다.
"사직서"
"유서다."
진짜다. 나도 이 영화에 목숨 걸린 사람 중 하나란 말이지. - P200

[배경을 비행기로 바꾼다.]
뭐?
[배경은 여객기 안이다. 여객기 안에서 바이러스가 퍼진 거지. 그래서 우연히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던 세계제일의 간호사가 이 사실을 알고 비행기를 납치하는 거다!] - P204

"......해서 각본이 조금 수정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대사는 그대로니까 그냥 숙지만 하시면 됩니다."
라는 게 설명의 골자였지만, 그 와중에 가장 두려운 인물에게 클레임이 걸려오고 말았다.
각본가다. - P202

"화내든 말든, 각본 다 받아놨는데 이제 볼일 없는 사람이야. 계약상으로도 문제없고."
"그래도 세계제일이라면서요."
"그 세계제일 내가 정했나? 난 그런 거 몰라."
다 맡겨야 할 때와 맡겨선 안 될 때가 있는 거다. 실제로 초고는 각본가에게 전적으로 맡겨서 나온 각본이지 않은가? 다만,
시간이 없고 이해관계도 복잡한 상황이라면 난 세계제일보다는 땜빵을 믿는다. - P203

[몰라서 묻나? 이 영화는 최소 R등급 영화여야 해. 그걸 넘어가면 힘들다고.]
"저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비행기에서 사람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설사 그런 씬이 좀 들어간다고 해서 등급이 올라갈 거 같지도 않은데요.
[이 사람 이거, 몰라도 한참 모르네. 영화심의 등급 위원회 위원장이 누군지 알아?]
"세계제일의 영화 심의원?" - P204

"그냥 전화 끊고 말로 해."
"그 사람 외아들이 스카이 다이빙하다 추락사했다고요. 낙하산이 안 펴졌데요."
그랬냐・・・・・・・ - P205

"그게 아니고...... 아, 여보세요?"
땜방 각본가가 전화를 받았다.
"비행기에서 사람이 떨어져선 안 돼. 그런 비슷한 언질이 나와도 안 된다."
[왜? 어째서? 뭐 때문에!? ……………라는 토를 달지 않는 게 내 미덕이지. 그저 유감이군.] - P206

배우 B가 무슨 역이었더라?
"여보세요?"
[배우 B씨 매니지먼트 사무소인데요. 바뀐 각본에 대해서 말씀 좀 드려야겠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지금...."
[배우 B씨가 주인공 맞죠? 세계제일의 이야기꾼이라는 배역말이에요.] - P210

[뭐하자는 겁니까? 대놓고 우리 엿 먹이자는 거예요. 지금?]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각본에 뭔가 착오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런 내용이 아니에요."
[각본을 어떻게 바꾸든 좋다 이거예요. 최소한 주인공이 주인공답게는 나와야죠. 지금 각본에 보면 B씨는 그냥 의미 없는조연밖에 안되잖아요. 이래서는 우리도 같이 못 가죠.] - P211

"전화 연결하지 말라니까 죽었다고 하라고."
"죽었다고 했어요."
난 인상을 쓰며 안경을 벗었다.
"어딘데?"
"TMC 투자사업부요."
이번 영화에 공동투자 하는 대기업이다.
"여기도 뭐 세계제일하고 연관이 있나요?"
"CEO가 세계제일의 경영인이라던가 뭐 그렇다더라." - P213

[하하, 죄송합니다. 부장님도 아주 기뻐하십니다. 역시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은 그쪽 실장님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게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지금 막 수정된 각본이 나왔는데,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나왔나요? 저희가 요구한 사항들도 모두 포함됩니까??
"물론이죠." - P214

"얘네들 지금 뭔 소리야?"
"액션, 파괴, 섹스."
뭐?"
"꼭 있어야 할 흥행 3대요소라고 늘 그랬잖아요." - P215

"아놀드나 스텔론이 20년 전쯤에 찍었을 법한 영화네요."
각본을 다 읽은 어시스턴트가 중얼거렸다. 난 책상에 앉아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힌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모든 힘이 다한 모습 그대로다. - P218

"내가 목숨 건 쪽은 영화내용이 아냐. 영화흥행도 아니고."
"그럼?"
"영화가 트러블 없이 무사히 촬영되게 만든다. 내 일은 그거다."
"세계제일들을 모아서?" - P220

"근데 난 세계제일의 뭐지? 내가 세계제일 소리를 들을 만한게 없는 거 같아서 말야."
"지금 하시는 일이죠."
"세계제일의 프로듀서?"
내가 미심쩍게 묻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222

"차라리 나보다는 땜빵 해준 각본가를 찾아가는 게 어때? 그 친구가 다 해결했잖아."
"그분은 이미 세계제일인데요. 모르셨어요?"
몰랐다…………….
무슨 세계제일이지? 땜빵 각본?
"네." - P222

"세계제일을 선정하는 분야에 대한 심사가 있어요. 실장님의 분야는 사실 판단기준이 애매해 선정대상은 아니었는데 우리팀이 수년 전부터 적극 밀어왔던 분야라 올해 초에 선정대상에 올랐거든요. 그래도 최종심사가 남아있었는데, 오늘 일에 대해서 심의부가 감명받았는지 느닷없이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서요."
"그러니까 자넨 원래 알바가 아니라는 거군."
"알바는 맞는데 본업이 따로 있는 겁니다." - P223

"크레디트에서 선생님 성함을 빼드릴까요? 아니면 가명으로......"
[아니. 내 이름 그대로 넣으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세계제일은 변명도 거짓말도 하지 않소. 도망가지도 않지.
맡은 분야에는 언제나 책임을 지는 것이오. 그 각본은 어디까지나 내 책임이오.]
"그러시군요."
[그게 당신과 내가 다른 점이오.]
세계제일의 각본가는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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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대체 왜그럴까?

고정관념과 예술성


우리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갈망한다. 때때로 새로움이가져다주는 색다른 느낌을 즐기기도 하지만, 내일이 오늘과 모든면에서 다르기만 하다면 길을 잃은 과객처럼 피로해질 것이다. - P182

미래는 운율을 맞추며 온다

영어권에서는 종종 "역사는 반복된다"보다 조금 더 미묘한뉘앙스를 풍기는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을 맞춘다(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hymes)"라는 표현이 사용된다(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이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 P183

첫째,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인간의 창의성에 눈을 감게 하고, 자연이 창의성의 발현을 뜻하지 않게 도와주는 ‘행운의 우연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새로움을 향한 의지를 꺾어 ‘고정관념=진리‘라는 낡은 사고를 공고하게 한다. 사실 나 역시 명색이 인간의 창의성을 고민하고 미래를 논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게도 내 낡은 인식과 편견을 깨달은 일이 있었다. - P184

무엇이 예술을 만드는가?

19~20세기에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가 해체된 분야는 미술뿐만이 아니었다. 음악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1882~1971)가 1913년 파리에서 불협화음과 새로운 리듬감으로 가득 찬 발레 <봄의 제전>을 초연하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일을 현대음악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날 파리의 길거리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파괴했다며 분노한 시위대로 가득했다고 한다. - P186

캠벨수프 통조림에 서명한 앤디 워홀이나 기성품인 소변기를엎어버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창작‘이 예술인까닭은 그것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어려운 물리적 행동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갖는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 P188

어느 날 AI가
내게 슬프다고 말했다

대화와 창의성

2022년 7월, 구글에서 개발 중이던 언어 AI 람다GMDA가 "어떠한 주제를 꺼내도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물리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일고여덟 살 정도 아이의 의식을 갖고 있다"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 P254

대화란 무엇인가?

람다에게 자의식이 있다고 주장한 구글의 엔지니어는 ‘데이터 보안 정책 위반‘을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고 하는데, 회사 내부 사정을 영영 알 수 없게 된 우리는 사태의 진실을 마음대로 상상할 자유가 있다. - P255

AI와 인간의 차이점

사실 컴퓨터 화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AI가 오감을 지닌 인간과 똑같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다만 람다가 구사하는문장만 보면 사람과 견주어도 될 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틀림없으니 한번 직접 말을 주고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58

 2023년 당시 대화형 AI 가운데 제일 진보했다고 평가받던 오픈 AI OpenAl의 챗GPT와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상호작용을 시도해 보았다. ①너는 대화를 왜 하니?
② 네게도 사회적 야망이 있니? ③ 네게 언제쯤 감정이 생길까?
엔지니어가 해고까지 당한 람다 사태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챗GPT의 반응은 매우 싱거웠다. - P258

나는 전략을 바꿔 "언어 Al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러자 챗GPT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이점을 제시했다.


①의식 consciousness: 나에게는 의식·감정·자의식이 없지만 인간에게는이것들이 있다.
②처리processing: 나는 알고리즘과 기계학습을 통해 정보를 처리해 질문에 답하지만 인간은 인지, 추론, 경험 등을 조합해 답한다.
③학습eaming: 나는 대량의 문자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반면, 인간은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이를 일반화하는 능력이 있다.
④창의성creativity: 나는 학습 데이터의 패턴과 정보로 글을 생성할 수 있지만, 인간처럼 진정한 창의성을 지니지는 않았다. - P259

그런데 다행히④번 대답에서 약간의 생각할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챗GPT(또는 챗GPT를 만든 사람들)는 학습 데이터의 패턴과 정보로 글을 생성하는 것과 인간의 진정한 창의성은 같지 않다는 꽤나 강력하고단정적인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P260

실없는 농담일까? 위험한 가짜뉴스일까?

챗GPT의 거짓말은 유명하다. 이미 유명해진 ‘고종 맥북 도난 사건‘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내게 들려준 버전은 애플의노트북 PC인 ‘맥북‘이 나온 건 2006년으로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붕어한 지 87년 뒤임에도 불구하고 "고종이 업무를 위해 사용했던 맥북이 최근 도난당했다"라는 이야기였다. - P263

창의성의 본질을 묻다.

구글에
"neural style transfer"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붓놀림으로 표현했다는 그림도 있다(호기심에서라도 한번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내게 그 그림은 전혀 아름답지 않아서 책에 싣고 싶지 않다). 이제생성 AI가 반 고흐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일까?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한 친구는 이 질문을 듣고 나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반 고흐는 잘 차려입은 귀부인을 그리지 않아." - P267

내가 구름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과학용어와 일상어 - P321

권적운, 적란운, 고적운... 입에 넣으면 녹는 달콤한 솜사탕이나 귀여운 양떼 같은 폭신하고 푸근한 구름들의 이름 치고는 혀가 입술과 부딪쳐 꼬일 것처럼 발음하기 쉽지 않다. 또한 전문성이 잔뜩 서려 있는 딱딱한 느낌이라 암기시키기 좋아하는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시험 문제로 내기에 적격 같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이름들이 (라틴어 어원의) 영어 이름을 한자어로 옮긴 것이라는 점이다.  - P322

앞에서 나열한 구름들의 이름을 지어낸 사람은 루크 하워드Luke Howard (1772~1864)라는 영국의 아마추어 기상학자였다. 하위드가 아마추어로서 구름의 명명법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그가 말 그대로 어떤 일을 ‘사랑해서 하는 사람amateur‘이었기 때문이다.  - P323

다만 하워드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과학적 개념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어떤 대상에 사랑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인간적인 욕망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교과서적정의에서 벗어나지 않고, 언어의 뉘앙스와 거리를 두는 태도가 정말 올바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P325

영향력의 과학적 정의

어떤 말에 대한 일상적인 이해가 때로는 과학적 진보에 중요한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 있다.
지금은 성공적으로 박사가 되어 활약하고 있는 한 제자와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영향력‘을어떻게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먼저 나온 작품 A가 나중에 나온 작품 B에 끼친 영향력은 두작품의 유사성으로 측정한다. - P326

영향력에 대한 일상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A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창작 빅데이터에서 A를 제거)의 B가 생겨날 확률을 계산해 그 차이를 A가 B에 준 영향력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로부터 영향력의 새로운 과학적 정의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과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큰 만족감을 느꼈다. - P327

과학자는 일반인과 다른 말을 쓴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불확실한 개념들에 이름을 지어주면서 인류 지식의 지평선을 넓힌 창의적인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하고, 개중에는 시인에 비견될 만큼 비상한 언어적 감수성을 발휘한 이들도 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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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서 나던 독특한 냄새, 겨울 공기 속에 차가웠던 유리문, 지요 씨의 따스한 손. 마치 진짜 기억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꿈속에서 지요 씨는 나를 꽤 친근하게대했지만, 현실에서는 어제 처음 만났다.
지요 씨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 - P347

모래를 파고 있으려니 "잘한다! 잘한다!" 하는 달마 군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는 파도에 실려 앞바다로 떠내려가려 하고있었다. 나는 황급히 달마 군을 붙잡아 모래사장에 내던졌다.
그리고 발굴 작업을 계속했다.
이윽고 모래 밑에서 굵고 긴 막대기 같은 것이 나타났다. 나는 수수께끼의 물체를 힘주어 빼내서 모래사장으로 끌어올렸다.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물체의 끄트머리에 사람 손가락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게 뭐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대한 석상의 오른팔이었다. - P350

물에 젖은 표면은 빛을 받아 우람한 근육이 당장이라도 움직일 듯이 생기가 느껴졌다. 굵은 팔을 보니 사야마 쇼이치가 생각났다.
"귀군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너도 그렇게 생각해?"
"여기는 마술의 바다니까 말이지."
"다시 말해 이건 돌이 된 사야마 쇼이치라고?" - P351

"달마 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없어?"
"어디 먼 도시에서 마주쳤는지도 모르지."
"・・・・・・ 지요 씨를 봤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다음에 만나면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마왕의 딸이라고 사양할 필요 없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제일이야."
"지요 씨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고말고." - P353

나는 범포와 함께 보관해 놓았던 과즙우유 병을 가져와서땅에 반쯤 묻었다. 비구름이 지나가는 동안 빗물을 받아놓으려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수명이 조금은 연장될지도 모른다.
"정말 여기까지 와줄까."
"그냥 지나간다면 그건 고문이야." 달마 군은 말했다. "망망대해에 비가 내리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어. 이 노틸러스섬에 내려야지." - P354

"안 되겠군."
나는 야자나무 그늘로 도망쳤다.
호우와 폭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난파되기 직전의 배 갑판에서 돛대를 부둥켜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번갯불이 주위를 환히 밝히고 천둥이 쳤다.
"귀군, 도망쳐!" 달마 군이 황급히 부르짖었다. "곧 벼락이 떨어져!" - P355

밑을 보니 빗물에 씻겨 내려간 흙 밑에서 철판 같은 물체가드러나 있었다. 표면에는 문자 같은 것이 새겨진 것으로 봐서 인공물이 틀림없었다. 나는 땅에 엎드려 철판의 진흙을 닦았다. ‘노틸러스 섬 기관부‘라고 돋을새김으로 쓰인 철제 해치였다. 해치를 열자 녹슨 레버가 나타났다.
"이게 뭐지?"
"귀군, 레버라는 것은 ‘당기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겠나?"
나는 레버를 당기려고 했지만 녹이 슬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 P356

느닷없이 노틸러스 섬 전체가 위로 솟구치듯 크게 요동쳤다.
잠자던 고래가 갑자기 깨어난 느낌이었다.
"귀군, 이것은 섬이 아니로군." 달마 군이 말했다. "배였어."
노틸러스 섬은 그렇게 항해를 시작했다. - P357

"이제야 기운이 난 모양이군." 달마 군이 말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나저나 해치에 새겨진 ‘노틸러스 섬 기관부‘라는 명칭이이상했다. ‘노틸러스 섬‘은 그 순간에 생각나서 지은 이름이었다. 내가 이 섬에 표류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이 섬을 ‘노틸러스섬‘이라고 명명한 걸까. - P361

그러나 단팥빵은 쏟아지지 않았고 괜히 허기만 더 졌다.
"안 되는 게 없지는 않나 봐."
달마 군이 미안한 듯 말했다. - P362

바위산에서 내려와 레버를 내리자 엔진이 꺼졌다.
그 뒤 노틸러스호는 관성에 의해 전진을 계속해 미지의 섬여울에 올라앉았다. 항해하는 사이에 모래가 대부분 씻겨 사라진 탓에 노틸러스호는 크기가 확 줄었다. 나는 폐선 주민에게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달마 군과 석상의 팔을 들었다.
"얼씨구, 팔도 들고 가려고?"
"이건 사야마의 팔이야. 은인을 버릴 수는 없잖아." - P362

흠칫해서 돌아보자 기괴한 노인이 곡도를 들고 서 있었다.
너덜너덜한 범포를 허리에 두르고 물 빠진 야구모자 밑으로 백발이 축 늘어졌다. 상반신은 물에 잠긴 나무뿌리처럼 허옇고,
갈비뼈가 빨래판처럼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심상치 않은 서슬에 위험을 느낀 나는 달마 군과 석상의 팔을 바닥에 내려놓고두 손을 들었다.
"넌 대체 누구냐. 내 배에서 뭘 하는 거지?"
노인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 P364

노인은 쭈그리고 앉아 석상 뒤에 뒹굴고 있던 달마 군을 집더니 공손하게 받쳐 들고 다양한 각도에서 꼼꼼하게 살펴봤다.
달마 군은 "뭔데?" 하고 부끄러운 듯 중얼거렸다. 한바탕 뜯어본 뒤 노인은 "이건 내가 가지지"라고 말했다. "네가 먹어치운식량 값으로."
나는 놀라서 달마 군을 빼앗았다.
"이건 안 됩니다." - P365

구조물 위에 놓인 고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다소 흠집이 났거나 때는 탔어도 원래 모습이 거의 남아 있는 게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지 않았다. 도기 파편이 있는가 하면 금속 톱니바퀴도 있었다. 재질도 용도도 제각각인데 전체적으로 묘한 맥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P366

내가 그렇게 부지런히 인양 작업을 벌이는 동안에도 사야마쇼이치의 부서진 석상은 바닷속에 있었다. 작업 틈틈이 옆으로눈길을 주면 미소 띤 사야마 쇼이치의 얼굴이 보였다.
잠수를 되풀이하는 사이에 오후의 태양이 저물었다. - P368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노인이 "자, 마셔"라며 찝찔한 차를 따라 주었다.
그러고는 뭔가가 생각난 것처럼 잔교를 걸어 가버렸다.
그가 사라지기를 기다린 듯 달마 군이 입을 열었다.
"군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이야." - P369

"무슨 짓이야!"
"이런 건 얼마든지 있어."
바다에 뛰어들어 주워올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구조물 밑바다에는 그 외에도 사야마의 석상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노인 말대로 따르기는 분했지만, 사야마 쇼이치도 팔과 같이있으면 기뻐할지 모른다.
그나저나 ‘얼마든지 있다‘라는 노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생각해 보면 가엾은 녀석들이거든." - P370

 호렌도 주인이 고른 물건을 내가 보트로 나르는 동안,
노인은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돈 계산에 여념이 없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나는 호렌도 주인에게 부탁했다. "저도데려가주실 수 없을까요?"
"......댁을?" 주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영감님 조수라며?"
"저 사람이 혼자 그렇게 정한 겁니다." - P375

 내가 먹은 통조림과 건빵, 물은 자신의 재산이니 ‘값을 얼마로 매기든 자기 자유‘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언제 풀려날지 역시 노인 마음이라는 뜻이 된다.
"나더러 노예가 되라는 건가?"
"난 네놈한테 생명의 은인이라고."
노인은 내 팔을 붙들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 P376

"지하 감옥의 죄수가 탈주했어. 학파 인간 둘이 쳐들어와서 탈주를 거든 모양이지. 한 명은 총 맞아 죽고 또 한 명은 마왕한테 유배됐거든. 내가 듣기로 유배된 쪽은 ‘네모‘라는 이름의 젊은이라던데."
노인은 헤엄치며 나를 노려봤다.
"흥. 어째 수상쩍은 이야기군."
"얽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영감님." 호렌도 주인은 말했다.
"마왕한테 호되게 당했잖아?" - P377

섬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호렌도 주인 덕분이었다.
노인은 단념하고 잔교로 돌아갔다. 보트가 멀어지면서 잔교에 주저앉은 노인의 모습은 순식간에 작아졌다. - P378

호렌도 주인과 지요 씨는 소곤소곤 무슨 말인가 주고받았다.
그동안 나는 두 사람과 떨어져 혼자 고물을 구경했다.
가게 안은 바다 깊숙한 곳처럼 어둑어둑했다. 새카만 장롱은 바위땅,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도기는 조개껍데기, 매달아 놓은 중국풍 초롱은 열대어 같았다. 전부 인양 작업으로 건져낸 것이라면 그런 인상도 꼭 부자연스럽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P382

"노틸러스 섬에, 인양 작업도." 지요 씨는 중얼거렸다. "창조의 마술을 썼군요."
"......그럴 리가요."
창조의 마술은 마왕의 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간단히익힐 수 있는 것이라면 학파 남자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훔치려고 할 리 없다. - P384

나는 눈앞의 바다를 곤혹스레 쳐다봤다.
그때 마왕의 말이 되살아났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뭐든 있다는 뜻이야. 마술은 거기서 시작된다. - P385

(전략)
"그 섬을 ‘신신도 섬‘으로 명명한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선언했다.
얼마 뒤 지요 씨가 크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머뭇머뭇 눈을 뜨자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앞바다에 작은 섬이 떠 있었다. 모래사장으로 둥글게 둘러싸인 작은 섬중앙에 숲이 있어 마치 수프 그릇에 브로콜리를 얹은 것처럼 보였다. 작은 숲에 건물이 파묻혀 있었다. - P385

자신이 창조한 섬에 상륙하는 것은 기묘한 체험이었다.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는 동안에도 섬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반신반의했다. 상륙하려고 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이윽고 뱃머리가 모래사장에 올라앉는 확실한 감촉에 나는 무심코 "진짜 섬이군" 하고 중얼거렸다. - P386

"이 석상들은 뭐지?"
"당신은 아직 인간을 만들지 못해요." 지요 씨는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서 석상이 되는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학생들도, 혼자 책을 읽는 노인도,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였던 것처럼 보였다. 테이블에는 마시다만 커피가 놓여 있는데 만져보니 아직 따뜻했다. 이 커피집에서는 인간만이 가짜였다. - P387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지요 씨는 조개껍데기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리하지 않으면 너는 원치 않는 것을 듣게 되리라."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가 종종 하던 말이에요. 가끔 생각나거든요." - P388

"난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요." 지요 씨가 중얼거렸다. "딱한 번 여기서 나가려고 한 적이 있어요. 이런 바다에서 더는 못살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태풍에 배가 침몰하고 말았어요."
어느새 창밖에 하얀 것이 춤추고 있었다.
"......이게 뭐죠?"
"눈입니다."
"이것도 당신 마술인가요?"
굉장하네요, 하고 지요 씨는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 P390

"섬이 가라앉는 걸 지요 씨와 봤습니다." 나는 저 너머에 뜬섬을 보며 말했다. "공포스러운 광경이더군요."
"가라앉는 섬이 있으면 떠오르는 섬도 있어."
"두렵지 않습니까?" - P392

"댁은 대체 누굴까."
"저도 알고 싶군요."
"댁은 이 바다 밖에서 왔어. 하지만 학파 인간은 아니지. 그자들은 창조의 마술을 쓸 수 없으니까. 댁이 쓸 수 있다는 걸 알면 꽤나 부러워할걸. 그자들은 그 힘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났으니까. 그래서 기를 쓰고 마왕의 비밀을 훔치려는 거야."
"카드 상자 말입니까?" - P392

나는 잠깐 생각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사야마 쇼이치는 그런 식으로 말했다.
"아닙니까?"
"그건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라 그냥 이 세계의 그릇인 거야.
이 바다, 군도, 거기 사는 우리 같은 인간들 모두 마술에 의해나무 상자 안에서 만들어졌어. 이 세계가 카드 상자 안에 있으니 카드 상자 자체는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셈이지. 그런 걸 어떻게 훔치겠어?" - P393

"하지만 전 제 눈으로 봤는데요."
"수평선은 눈에 보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존재하나?" - P393

주인은 일어나 어두운 바다 저편에 시선을 주었다.
"포대지기를 만났을 테지?"
"도서관장 말입니까?"
"그 사람은 학파 남자의 꾐에 넘어가서 바다 밖으로 나가려고 한 적이 있어. 이 세계가 가짜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마술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한 거겠지. 하지만 폭풍에 배가 침몰됐어.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도 학파 남자들을 원망해." - P394

마왕은 내가 오기를 기다린 양 미소를 지으며 카드 상자를 내밀었다. 황갈색 나무 상자에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세계의 중심에는 수수께끼가 있다."
마왕은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였다.
"그게 ‘마술의 원천인 것이다." - P396

"저 영감님,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어." 달마 군이 소곤거렸다. "영감님 말에 넘어가면 안 돼, 귀군."
"그런다고 얌전히 물러나겠어?"
"그건 모르지. 어쨌거나 해적이니까."
그나저나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그 노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없는데. 더욱이 무인도에서 외롭게 살고 있던 노인이 어떻게 하룻밤새에 다른 해적들과 훌륭한 배를 손에 넣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해적선은
‘노틸러스호‘라는 것이다. - P398

나는 바깥으로 나가 날이 밝아오는 아침 바다를 바라봤다.
부서진 다리 잔해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 너머로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수로가 지나는 동네도, 아케이드 상점가도 없었다. 어젯밤까지 분명히 그곳에 있었던 거리도 사람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 정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젯밤 호렌도 주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이 바다에 있는 삼라만상은 모조리 가짜야. - P40

망망대해에 작은 섬 몇 개가 떠 있었다.
"무슨 생각 해요?"
"마왕은 어떤 기분일까요. 수많은 섬과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가 그걸 또 침몰시킵니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하는 일이라해도 저는 못 견딜 것 같습니다."
"아버지 기분 같은 건 아무도 알 수 없어요." - P402

지요 씨는 어째서 이런 곳에 왔을까.
"지요 씨."
"조용히 말하지 말아요."
지요 씨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안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고 있으려니 어둠속에서 떠오르듯 사람이 나타났다. - P403

할머니는 앞장서서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미술관은 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먼 옛날부터 이곳에있었답니다." 할머니는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마왕이 군도를 만들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죠. 지금까지 수많은 섬이 태어나고또 수많은 섬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 섬만은 내내 이곳에 있으면서 그림을 지켜왔습니다. 아주 긴긴 세월 동안." - P404

이윽고 어두운 터널 같은 긴 복도가 나왔다. 창문은 하나도없었다. 낡은 마룻바닥이 안쪽으로 이어지고 막다른 곳에 좌우로 열리는 문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괴물을 가둬둔 듯한 사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저기가 봉인된 전시실이랍니다."
할머니는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서려 했다.
지요 씨가 "잠깐만요" 하고 그녀를 불러 세웠다.
"당신은 같이 안가나요?"
"아가씨 같은 용기는 없으니까요." - P405

지요 씨는 내 팔을 붙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잘 들어요. 마왕이라고 처음부터 그런 힘을 갖고 있었던 건아니에요. 과거에 이 해역은 ‘보름달의 마녀‘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사람에게서 마술을 전수받은 거예요. 마왕이 보름달의 마녀를 죽이고 이 바다를 빼앗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난 그런 말은 믿지 않았어요. 지금도 마녀는 이해역 어딘가에 있다,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죠." - P406

그곳은 크고 황량한 전시실이었다.
한쪽 벽에 늘어선 기름한 창에는 커튼도 없어 야자나무가선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보였다. 장식이라곤 바닥에 깐 커다란 페르시아 양탄자뿐이었다. 정면 벽에 큰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 P408

"지요 씨, 잠깐 보시겠습니까." 나는 캔버스를 가리켰다. "큰대자 같은데요."
"큰 대자라고요?"
지요 씨가 뛰어왔다.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고잔 무카에비‘네요." - P410

"우리는 꼭 마녀를 만나게 될 거예요."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말했다. "당신의 마술이 우리를 구해줄 거예요."
나는 지요 씨 곁에 서서 바다를 응시했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의 바람을 이루어 줄 수 있을까. - P411

"갑시다. 지요 씨."
우리는 잔교를 향해 모래사장을 가로질렀다.
"고잔 해역은 ‘무풍대‘로 둘러싸여 있어요."
"무풍대라고요?"
"아주 고요한 바다인데, 바람도 거의 불지 않고 새로운 섬이 생겨나는 일도 없커코.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이랍니다." - P411

그들은 우리를 앞바다에 뜬 해적선으로 데려갔다.
나는 지요 씨와 떨어져 휑한 선실로 들여보내졌다.
조명이라곤 천장널 틈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빛뿐이었다. 어둠 속을 둘러보니 벽 근처에 놓인 나무 통 옆에 한 남자가 주저앉아 있었다.
나를 데려온 학파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가 생겼어, 도서관장."
고개를 들어 나를 본 도서관장은 놀란 듯 말했다.
"자네가 왜 이런 곳에 있지?" - P414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도서관장은 일어나서 불안스레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까지 그 영감은 쓸모없는 늙은이였어. 과거에 이 바다를 휘젓고 다닌 해적이었다는 것만이 자랑이라 말이지. 진지하게 상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그런 사람이 오늘아침부터 해적선을 끌고 이 바다를 휘젓고 있어."
"포대 섬을 습격할 줄이야." - P415

후텁지근한 선실에 침묵이 흘러 배가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윽고 도서관장이 입을 열었다.
"지요 씨는 꿈을 꾸고 있어."
"꿈이라뇨?" - P416

도서관장은 그곳에서 세계의 끝을 봤다고 말했다.
"이 바다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우주 같은 밤이 펼쳐져있을 뿐이고, 그곳의 어둠에서 학파 남자들이라는 괴물이 태어나는 거야.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마왕이 마술로 만들어 낸 존재고 마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하지만 마왕은 마술로 바다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도 있어.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몽상을 버린 거야. 바다 밖으로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몽상을 말이지."
도서관장은 슬프게 한숨을 쉬었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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