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대체 왜그럴까?
고정관념과 예술성
우리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갈망한다. 때때로 새로움이가져다주는 색다른 느낌을 즐기기도 하지만, 내일이 오늘과 모든면에서 다르기만 하다면 길을 잃은 과객처럼 피로해질 것이다. - P182
미래는 운율을 맞추며 온다
영어권에서는 종종 "역사는 반복된다"보다 조금 더 미묘한뉘앙스를 풍기는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을 맞춘다(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hymes)"라는 표현이 사용된다(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이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 P183
첫째,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인간의 창의성에 눈을 감게 하고, 자연이 창의성의 발현을 뜻하지 않게 도와주는 ‘행운의 우연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새로움을 향한 의지를 꺾어 ‘고정관념=진리‘라는 낡은 사고를 공고하게 한다. 사실 나 역시 명색이 인간의 창의성을 고민하고 미래를 논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게도 내 낡은 인식과 편견을 깨달은 일이 있었다. - P184
무엇이 예술을 만드는가?
19~20세기에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전통적인 예술의 가치가 해체된 분야는 미술뿐만이 아니었다. 음악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1882~1971)가 1913년 파리에서 불협화음과 새로운 리듬감으로 가득 찬 발레 <봄의 제전>을 초연하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일을 현대음악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날 파리의 길거리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파괴했다며 분노한 시위대로 가득했다고 한다. - P186
캠벨수프 통조림에 서명한 앤디 워홀이나 기성품인 소변기를엎어버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창작‘이 예술인까닭은 그것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어려운 물리적 행동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갖는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 P188
어느 날 AI가 내게 슬프다고 말했다
대화와 창의성
2022년 7월, 구글에서 개발 중이던 언어 AI 람다GMDA가 "어떠한 주제를 꺼내도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물리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일고여덟 살 정도 아이의 의식을 갖고 있다"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 P254
대화란 무엇인가?
람다에게 자의식이 있다고 주장한 구글의 엔지니어는 ‘데이터 보안 정책 위반‘을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고 하는데, 회사 내부 사정을 영영 알 수 없게 된 우리는 사태의 진실을 마음대로 상상할 자유가 있다. - P255
AI와 인간의 차이점
사실 컴퓨터 화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AI가 오감을 지닌 인간과 똑같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다만 람다가 구사하는문장만 보면 사람과 견주어도 될 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틀림없으니 한번 직접 말을 주고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58
2023년 당시 대화형 AI 가운데 제일 진보했다고 평가받던 오픈 AI OpenAl의 챗GPT와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상호작용을 시도해 보았다. ①너는 대화를 왜 하니? ② 네게도 사회적 야망이 있니? ③ 네게 언제쯤 감정이 생길까? 엔지니어가 해고까지 당한 람다 사태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챗GPT의 반응은 매우 싱거웠다. - P258
나는 전략을 바꿔 "언어 Al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러자 챗GPT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이점을 제시했다.
①의식 consciousness: 나에게는 의식·감정·자의식이 없지만 인간에게는이것들이 있다. ②처리processing: 나는 알고리즘과 기계학습을 통해 정보를 처리해 질문에 답하지만 인간은 인지, 추론, 경험 등을 조합해 답한다. ③학습eaming: 나는 대량의 문자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반면, 인간은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이를 일반화하는 능력이 있다. ④창의성creativity: 나는 학습 데이터의 패턴과 정보로 글을 생성할 수 있지만, 인간처럼 진정한 창의성을 지니지는 않았다. - P259
그런데 다행히④번 대답에서 약간의 생각할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챗GPT(또는 챗GPT를 만든 사람들)는 학습 데이터의 패턴과 정보로 글을 생성하는 것과 인간의 진정한 창의성은 같지 않다는 꽤나 강력하고단정적인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P260
실없는 농담일까? 위험한 가짜뉴스일까?
챗GPT의 거짓말은 유명하다. 이미 유명해진 ‘고종 맥북 도난 사건‘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내게 들려준 버전은 애플의노트북 PC인 ‘맥북‘이 나온 건 2006년으로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붕어한 지 87년 뒤임에도 불구하고 "고종이 업무를 위해 사용했던 맥북이 최근 도난당했다"라는 이야기였다. - P263
창의성의 본질을 묻다.
구글에 "neural style transfer"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붓놀림으로 표현했다는 그림도 있다(호기심에서라도 한번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내게 그 그림은 전혀 아름답지 않아서 책에 싣고 싶지 않다). 이제생성 AI가 반 고흐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일까?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한 친구는 이 질문을 듣고 나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반 고흐는 잘 차려입은 귀부인을 그리지 않아." - P267
내가 구름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과학용어와 일상어 - P321
권적운, 적란운, 고적운... 입에 넣으면 녹는 달콤한 솜사탕이나 귀여운 양떼 같은 폭신하고 푸근한 구름들의 이름 치고는 혀가 입술과 부딪쳐 꼬일 것처럼 발음하기 쉽지 않다. 또한 전문성이 잔뜩 서려 있는 딱딱한 느낌이라 암기시키기 좋아하는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시험 문제로 내기에 적격 같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이름들이 (라틴어 어원의) 영어 이름을 한자어로 옮긴 것이라는 점이다. - P322
앞에서 나열한 구름들의 이름을 지어낸 사람은 루크 하워드Luke Howard (1772~1864)라는 영국의 아마추어 기상학자였다. 하위드가 아마추어로서 구름의 명명법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그가 말 그대로 어떤 일을 ‘사랑해서 하는 사람amateur‘이었기 때문이다. - P323
다만 하워드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과학적 개념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어떤 대상에 사랑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인간적인 욕망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교과서적정의에서 벗어나지 않고, 언어의 뉘앙스와 거리를 두는 태도가 정말 올바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P325
영향력의 과학적 정의
어떤 말에 대한 일상적인 이해가 때로는 과학적 진보에 중요한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 있다. 지금은 성공적으로 박사가 되어 활약하고 있는 한 제자와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영향력‘을어떻게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먼저 나온 작품 A가 나중에 나온 작품 B에 끼친 영향력은 두작품의 유사성으로 측정한다. - P326
영향력에 대한 일상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A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창작 빅데이터에서 A를 제거)의 B가 생겨날 확률을 계산해 그 차이를 A가 B에 준 영향력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로부터 영향력의 새로운 과학적 정의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과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큰 만족감을 느꼈다. - P327
과학자는 일반인과 다른 말을 쓴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불확실한 개념들에 이름을 지어주면서 인류 지식의 지평선을 넓힌 창의적인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하고, 개중에는 시인에 비견될 만큼 비상한 언어적 감수성을 발휘한 이들도 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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