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 1--단장 1


"자크가 같이 와 줘서 다행이야."
마을을 떠나 한참을 걸어왔을 때, 아레스가 불쑥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정말 나로 괜찮아? 제대로 된 어른이 더 낫지 않았을까?"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하던 말을 꺼냈다. 14세 소년 둘이서 왕도로 향하는 것은 조금 무모하지 않을까 계속 생각한 것이다. - P114

타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 아레스조차 속으로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느낀 것 같았다.
"뭐, 마물은 강하니까. 우리 부모님도 살해당하셨고, 누가 싸우고 싶겠어."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모험가다. 마물과 싸우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계셨지만, 마왕군과의 큰 싸움 중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 P115

아레스는 메마른 미소를 지었다.
"・밤에 일어나면 가끔씩 어머니가 우시는 모습을 볼 때가 있었어. 사실은 용사 따위는 되지 않기를 바라셨을 거야."
그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나의 양부모님이기도 한 아레스의 부모님은 예언자가 남긴 예언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되도록이면 아레스가 용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 P115

여정은 순조로웠다. 도중에 들른 마을들에서 아레스는 어른처럼 능숙하게 협상을 하더니 얼마 안 되는 돈과 맞바꿔 물과 식량을 손에 넣었다.
마물과 조우해도 최대한 싸움을 피했고, 어떻게 해도 피할 수없을 때에만 싸웠다.
싸울 때도 나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 냉정하게, 그리고 착실하게 싸움을 진행했다. 공격 마법과 회복 마법을 정확하게 사용해 칼로 숨통을 끊는 그 모습은 역시 용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P116

"대단하다. 아레스 혼자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중략).
"자크도 날 너무 치켜세운다니까. 뭔가를 혼자 계속하는 건 힘든 일이야. 네가 있어 주니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지. 검을 배웠을 때도, 마법을 공부했을 때도, 회복 마법을 배웠을 때도 그래. 처음에는 다른 무리들과 함께 시작했지만, 잘 안 된다는 걸알고 나면 한 명 한 명 빠져나가.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건 늘 너와 나뿐이었지." - P117

"아레스가 잘하지 못한다는 건 상상이 안 가. 하지만 나도 뭔가하나쯤은 배우고 싶었는데."
그것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뭔가 하나쯤은 동갑인 사촌을 따라잡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늘 잘 되진 않았다.
"나도 잘하지 못하는 것 정도는......"
거기까지 말하고, 아레스는 멈춰 섰다. 나도 뭔가를 알아차리고 멈춰서서 주위의 상황을 살폈다.
지나치게 조용하다. - P118

마인. 마왕의 권속인 이들은 사람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힘도 마력도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내가 바로 도망친 것은 마인에 대한 공포도 있었지만, 아레스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였다. - P118

처음에는 여유를 보이던 마인도 공격을 하지 않는 아레스의 모습에 드디어 귀찮아진 것 같았다.
"방어만은 훌륭하구나. 하지만 마법은 어떨까?"
쉽게 공격이 닿지 않는 것에 초조해진 마인이 검으로 하는 공격을 멈추고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다.
그 순간을 아레스는 놓치지 않았다. - P119

그리고 날카로운 아리스의 일격에 맞아버린 마인은 마침내 검을 풀어뜨리고 말았다.
제그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마인의 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레스는 마인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휘둘다 - P120

바람 마법을 마인의 눈을 향해 날렸다.
"칫!"
마법은 회피해 버렸지만, 그 사이 아레스는 뒤로 물러나 간격을 벌릴 수 있었다.
마인은 왼손을 파고들던 검을 뽑아 숲속에 내팽개쳤다. 왼손은축 늘어져 있다. 저 상태로는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 P121

나는 아레스를 향해 내 검을 던졌다.
마인이 오른손 손톱을 치켜들었다.
(중략).
"・목숨도 내주마・・・・・・ 하지만, 너도 길동무다・・・・・・・"
마인은 검에 꿰뚫린 상태로, 입안에서 엿보이는 커다란 송곳니로 아레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아레스의 목에서 거세게 피가 뿜어져 나왔다. - P122

-fragment 2--단장 2

자크는 내가 여섯 살 때 우리 집에 왔다. 아버지의 여동생이자크의 어머니였기에 그 녀석은 나의 사촌 형제에 해당했다. 나이도 똑같고 키도 비슷해서 나는 좋은 놀이 상대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자크의 부모님은 모험가를 하고 있어 그런지 체격이 아주 좋았다. - P124

자크의 부모님은 일주일 정도 집에 머무른 뒤 마왕군과 싸우기위해 떠나게 되었다.
들어보니 마리카국이 마왕군의 침략을 받아 큰 싸움이 벌어졌으니, 그곳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잠시 동안은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잠시? 계속 평화로워지는 게 아니라?" - P125

목표는 자크의 아버지 같은 전사. 그가 보여주었던 그 검술을 모두가 목표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레스, 질렸으니까 다른 거 하자."
한 달쯤 지나자 친구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맞아, 아레스만 너무 강하니까 재미없어."
다른 친구들도 거기에 찬성했다.
아무래도 연습을 하면서 실력에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내가 제일 잘했고, 친구들과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P126

우리 집은 촌장 집안이라 아버지도 어머니도 학문에 뜻을 두셨었고, 덕분에 자크와 함께 읽고 쓰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집에 있던 여러 가지 책을 읽게 되었다. 자크가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이었을 것이다.
읽은 책 속에 용사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에 따르면 용사는 검뿐만 아니라 마법사와 같은 공격 마법, 성직자와 같은 회복 마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 P127

"용사? 그래, 용사라."
신부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께 허락을 받고 오거라. 그러면 간단한 기초는 알려주마. 원래라면 성직자가 될 사람만 알려줘야 하는데, 시대가 시대이니 말이야." - P128

곧바로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복 마법? 그건 선택된 인간이 아니면 쓸 수 없을 텐데.
뭐, 신부님이 기초를 알려주신다고 했다면 시험해 보려무나."
아버지는 내가 회복 마법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허락은 떨어졌다. - P128

"신의 존재를 느끼면서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면."
(중략).
"집에서 하는 밭일은 힘드니까. 신부님처럼 기도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친구의 동기는 불순하다고 생각했지만, 기도하는 방법은 알려주었다. (중략). 이유는 똑같다. 신부라는 일이 ‘폼나고 편하니까‘라는 것이었다. - P129

이 나라의 뮬러 장군이 이끄는 군이 분전하여 마왕군을 격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도착이 늦은 탓에 마리카국은 멸망했다.
의용병으로 전선에서 싸우던 모험가들은 누구 한 명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그 소문을 들은 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와 자크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자크는 우리 아이가 될 거란다." - P130

미미하지만 신의 기적을 일으킨 다음 날 아침, 교회에 가서 신부님께 그것을 보여드렸다.
"대단하구나. 솔직히 말하면 난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전 확실히 신의 기적이 맞단다."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신부님은 나를 칭찬해 주셨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강한 힘이 느껴지진 않는구나. 아마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초보 회복 주문 정도일 거다. 그래도 계속할 거니?"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P131

(전략).
다만 신부님 말씀대로 한계는 금세 찾아왔다. 초급 회복 마법밖에 쓸 수 없었고, 그 이상의 신의 기적은 행사할 수 없었다.
솔직히 이대로는 아무 쓸모가 없을 것 같아 나는 공격 마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공격 마법을 배워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자크가 이 이상 회복 마법을 배워봤자 소용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32

우리가 공격 마법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에 졌다. 그러자 또 친구들이 함께 공부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단순히 ‘마법을 쓸 수 있는 인간은 대단하다‘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 P132

결국 내가 처음으로 마법 영창에 성공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5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자크가 함께 공부해 주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자크는 공격 마법도 습득하지 못했다. - P133

그럴 때, 절망적인 일이 벌어졌다.
마을에 예언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 마을에서 마왕을 물리칠 용사가 나타난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예언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지 마! 제발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 P134

결국 나는 용사로 추대되었지만, 묵묵히 받아들였다.
부모님과 상의해 일단 왕도로 가 팔룸 학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만은 냉정하게 판단해 주셨고, 그들은내가 당장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용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계셨다. - P134

fragment 3-단장 3

결과적으로 아레스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마인이 바로 죽어버린 데다 목에 난 상처도 생각보다 증상은 아니었고 회복 주문으로 상처는 막을 수 있었다. - P136

"미안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아레스가 사과했다.
"신경 쓰지 마. 난 지금 세상을 구하려는 용사를 구하고 있잖아. 그럼 엄청난 영웅 아니야?"
농담으로 얼버무렸지만,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 P137

아레스의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었다.
배의 상처가 곪은 것인지 고열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나는 대부분의 짐을 버리고 아레스를 업고 걸어갔다.
자신과 같은 체격의 사람을 업는 것은 괴롭다. 금세 체력이 바닥난다.
등에 업고 걷다가 바로 쉬는 것을 반복했다. - P137

근처에 강이나 수도 시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숲이너무 험해서 안까지 들어갈 수도 없었다. 물의 소중함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물은 어제 아레스의 상처를 씻는 데거의 다 사용해 버린 탓에 더는 없었다.
"물이여!"
옛날 아레스와 함께 연습한 물의 마법 영창을 시도해 보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P138

밤이 찾아오고, 주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중략). 불이 필요했다.
"불이여!"
문구만 아는 불의 마법을 시전했지만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레스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상처가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무서워서 상처를 덮은 천을 들어 올려 그것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 P139

"어떻게 해야 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절망감에 그만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말았다.
"죽여줘......."
아레스가 신음하듯 그렇게 말했다.
"난 이미 틀렸어. 이대로라면 자크 너까지 죽을 거야. 게다가 너무 괴로워. 내 몸이 썩어가는 것도 무서워. 부탁이야, 내 검의로 날 찔러줘." - P140

아레스는 눈을 뜨지 않았다. 통증을 감내하듯 얼굴만 몇 번씩 찡그릴 뿐이다.
"나 혼자 왕도에 가서 뭘 어쩌라는 거야? 넌 용사잖아? 용사가죽어버리면 세상은 끝인 거잖아!"
"....결국 난 용사가 아니었던 거야. 예언자도 이 마을에서 세계를 구할 용사가 나타난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지. 나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어. 게다가 난 예언자의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아니라 어쩐지 자크가 떠올랐어." - P142

fragment 4-단장 4


그 후로 8년이 흘렀다.
이 숲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하고 울창한 나무들, 이유 모를 불안감이 느껴지는 이 분위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마왕은 처리했지만 아직도 마물의 수는 많았고, 인적은 전무했으며, 숲을 빠져나가는 길은 황폐했다. - P144

"거기서 뭐 하는 거지, 아레스? 이런 곳에서 한눈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왕도로 돌아가 마왕 토벌 보고를 해야지. 잔당도많이 남았다고 하고, 아직 우리의 힘은 필요해"
길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 나에게 레온이 말을 걸었다.
그는 귀가를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차기 백작가 당주로서 큰공을 세웠으니 가슴을 펴고 당당히 왕궁에 보고를 하고 싶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 P144

레온은 잠시 말을 끊고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혹시 왕이 되는 것이 불안한가? 그래,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평민 출신인 인간이 왕이 되면 반대하는 귀족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걱정이라면 내가 붙어있으니까 괜찮다! 백작가가 전력을 다해 지원하마. 누구에게도 불평이 나오지 않게 만들겠어." - P145

"미안 나는 아레스가 아니야. 사실은 용사가 아니었어."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서야 입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네가 아레스가 아니면 누구라는 거야?"
레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크, 내 진짜 이름은 자크라고 해. 지금까지 속여서 미안해‘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P146

"내가 용사를 죽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용사를 이어받아야 했어. 그 책임이 있었어."
용사를 죽인 책임을 지기 위해 나는 여기까지 왔다.
"아레스가 죽은 건 마인 때문이에요. 당신 잘못이 아닌데요?"
마리아가 말했다.
"......아니, 아레스가 죽은 건 나 때문이야. 내 손에는, 아레스를 검으로 찔렀을 때의 감촉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 그리고 난 자크로서 마왕을 토벌한 게 아니야. 아레스로서 마왕을 쓰러뜨렸지. 자크로 있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거야." - P147

"그러니까, 그 공적을 모두 아레스 것으로 돌리고 넌 떠나겠다고?"
솔론의 말끝마다 분노가 느껴졌다.
"원래 아레스에게 돌아갔어야 할 공적이야.‘ - P147

"용사는 너야! 아레스는 도중에 쓰러졌고! 그게 사실이지! 게다가 예언자의 말은 나도 알고 있어. 이 마을에서 마왕을 물리칠 용사가 나타난다‘라고 했지. 정확히 아레스를 가리킨 게 아니야. 처음부터 용사는 너였던 거라고!"
현자인 솔론의 지적은 옳다. 나도 그것은 알고 있다.
"나는 검도 마법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이야. 용사가 될 만한 그릇이 아냐.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용사는 아레스야!" - P148

"정말 떠나는 건가요. 아레스... 아니, 자크."
마리아가 평소와 같은 꾸며낸 성녀의 얼굴이 아닌, 진짜 얼굴로 진심을 담아 날 걱정해 주고 있었다.
"가지 말아요, 자크. 제가 이렇게 말리고 있잖아요. 제 부탁을 거절하는 건 신을 향한 모독이나 다름없는데요?" - P149

"국왕 폐하는 아직 연로하지 않으시다. 서둘러 차기 국왕을 결정할 필요는 없지. 언제든지 돌아와라. 나는 널 기꺼이 맞아 줄거다."
"고마워, 레온, 나는 너라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당연하지." - P150

솔론이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솔론. 당신은 어릴 때부터 친구가 한 명도 없었잖아요."
마리아가 놀렸다. 솔론은 그것을 눈으로 잠시 비난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서 데리고 올 거야. 친구니까." - P151

알렉시아의 장


"왔어?"
뻥 뚫린 방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솔론이 앉아 있었다. 언제나처럼 자주색 현자의 로브를 걸치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올 것을 예상했던 모양이다.
"어째서 아레스가 용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려준거죠?"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일이니까." - P152

"우리가 이 나라로 돌아온 후, 너에게는 수차례 혼담이 들어왔어. 그 필두는 레온이었지. 하지만 너도 레온도 거절했어. ‘죽은 용사야말로 왕녀의 약혼자이며, 아직 오래 지나지도 않았다‘라고하면서."
혼담은 레온뿐만이 아니었다. 솔론 역시 후보로 거론되었지만그 역시 거절했다. 나는 날아드는 혼담을 계속 거절했고, 레온과 솔론은 어째서인지 그것을 지지해 주었다.  - P153

"하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였겠지. 폐하께서 가만히 두고 보시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넌 용사의 공적을 문헌으로 정리하는사업을 시작했다. 그 녀석을 찾기 위해."
맞는 말이었다. 나는 국가 시책으로서 용사의 공적을 문헌에정리할 것을 제안했고, 직접 나서서 그 조사를 시작했다.
그가 살아 있다고 믿고하지만 설마 그가 아레스가 아니었다니. - P153

"하지만 말이지. 그 거짓말을 셰라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어쩔래?"
"어쩔래......라니, 모르고 계시잖아요."
"알아. 반드시 알고 있을걸."
솔론은 단언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죠?"
"한 번 더 셰라를 만나러 가봐. 그럼 그쪽에서 알려줄 거야." - P155

"지금으로서는 이 방에서 전이해서 이 방으로 돌아오는 것못해."
솔론은 마치 결함인 것처럼 말했지만 충분히 대단한 성과였다. 획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156

솔론이 말한 대로 셰라가 사는 촌장의 집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도중에 오고 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의아한 눈초리를 받긴 했지만 솔론은 그들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촌장 집에 도착했고, 그의 재촉에 나는 집 문을 두드렸다.
"네... 어머?"
나온 것은 세라였다.
"또 오셨군요...... 오실 줄 알았습니다." - P157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도 짐작하고 있겠지."
"네, 자크 말이죠."
그녀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알고 있답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말해야만 한다는 것도, 아니, 사실은 그 아이에게 그 자리에서 말했어야만 했는데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건가요?!"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설마 그렇게 일찍부터 알고 있있을 줄은 몰랐다. - P158

"자크가 이 집에 돌아왔을 때, 전 순간 아레스가 돌아온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 아이의 상냥하고 슬픈 눈빛을 보고 곧바로 자크라는 걸 알았죠. 그러고는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아레스가 마왕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아레스도 마인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라고.
그러고는 저에게 저 검을 건네주었어요."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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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함의 해부


건물의 내부보다는 외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부야 어찌 되든 좋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중요하다. 단지, 건물 안에들어가는 사람에게만 중요할 뿐이다. 게다가 페인트나 물건, 가구의 도움이 있으면 건물 내부의 느낌을 바꾸는 일은 그리 어렵지않다. - P84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평범한 건물의 외관은 ‘특정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밴쿠버에서 본 모습, 방금 빠르게훑어본 페이지에서 본 모습들. 알잖나. 전 세계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P85

더 나은 말이 있으면 좋으련만 듣는 순간에, 내가 여전히 우리를사로잡고 있다고 믿는 100년 동안의 전 세계적 재앙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말이.

그러나 이 재앙을, 건물을 생각할 때면 항상 이 말로 돌아오게된다.

바로 이것이다. - P86

따분하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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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책을 읽어도 읽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있다. 에세이를 읽은 것 같은데 기억 나는 부분은 없다. 저자가 뭔갈 역설한 것도 같지만 헛깨비를 본 것 같다.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책을 리뷰하는 건 무의미하니, 예전에 본 영화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본 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었다. 그때는 영화에 막 관심을 가졌을 때였고, 4시간 짜리 영화도 잘 봤었는데.

각설하고 영화는 관혼상제 중 혼에서 시작해 상으로 끝난다. 그 사이 일어나는 일들은, 지금도 적당한 표현을 모르겠지만 마음에 남는다.

영화 대사 중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서 장면은 그에 대한 말을 듣는 장면과 동시에 갓 태어난 아이가 교차된다. 우린 아이를 두려워 할까, 아님 사랑스러워 하는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다른 것으로 어떻게 포장되는가. 아님 아이라는 미래는 두려움인가, 소중한 것인가.

다른 장면들도 많았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장례 중 할머니에게 올리는 편지도 좋았지만 나는 이 교차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오랜 시절 본 영화였음에도 요번 달에 읽은 책보다 감명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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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시각적 방해: 앱에서 실수로 상품을 구매했을 경우에도 환불이 불가능함

2019년 말에 테슬라는 모바일 앱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했다. 간단히 말하면 테슬라 차주가 차량 업그레이드(완전 자율 주행 기능의 잠금을 해제하는 자동 조종 기능 등)를 구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¹⁴ 이 추가 기능의 가격은 무려 4000달러가 넘었다. - P157

14 이 글을 쓰는 현재, 테슬라의 자율 주행 기능은 2단계에 불과하며, ‘완전‘자율 주행이 아니다. 즉, 이는 속임수 표현 또는 허위 광고이다. 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Morris, J. (2021, March 13). Why is Tesla‘s full self-drivingonly level 2 autonomous? Forbes. https://www.forbes.com/sites/jamesmorris/2021/03/13/why-is-teslas-full-self-driving-only-level-2-autonomous/2002 from - P326

테슬라 고객이자 유명 작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2020년 1월에 이 문제를 제기하며 환불을 요구했다. 그는 테슬라 고객지원 부서의 환불 불가 메시지를 받았고, 이를 트위터에 게시했다.¹⁷ 메시지는 ‘소프트웨어 구매 시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 P157

17 Taleb, N,N, (2020, January 15). Elon Celonmusk, your Customer Support at Teslais even worse than I claimed last time [Tweet]. https://twitter.com/taleb/status/1217471369350348807 - P326

속임수 표현 기만적 패턴

속임수 표현 유형은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여 사용자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도록 한다. 모호한 문구, 이중 부정, 문장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내에서 전략적으로 배치된 정보를 통해 사용자를 조종한다. - P161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트럼프 후보 측이 쓴 속임수 표현

트럼프의 선거운동에서는 다양한 기만적 패턴이 적용되었는데, 그중에 속임수 표현도 있다. 2021년 3월에 나는 <뉴욕타임스>의 셰인 골드마허 기자의 연락을 받았다. (중략). 골드마허의 기사에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여기에서는 요약만 하겠다.¹⁹ - P161

19 Goldmacher, S. (2021, April 17). G.O.P. group warns of ‘defector‘ list ifdonors uncheck recurring box.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
com/2021/04/07/us/politics/republicans-donations-trump-defector.html - P326

골드마허가 했던 조사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바로 시간순으로발견 사실을 정리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기만적 패턴이 어느 시점에 도입되었는지 입증하고 트럼프 선거운동 구독자와 바이든 선거운동 구독자의 환불 요구 비율을 데이터로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트럼프 선거운동 본부의 환불 금액은 1억 2200만 달러였던것에 비해, 바이든 선거운동 본부의 환불 금액은 2100만 달러에 그쳤다. - P166

라이언에어의 속임수 표현 기만적 패턴 사용

라이언에어는 대략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몇 년 동안 속임수표현을 비롯한 여러 기만적 패턴을 사용했다. 다음 장의 캡처 화면은 그 수법을 매우 잘 보여준다.²¹ - P167

21 Brignull, H. (2015, April 1). Ryanair hide free option: Don‘t insure me.
darkpatterns.org. Retrieved 8 May 2023 from https://web.archive.org/web/20150804081628/http://darkpatterns.org/ryanair-hide-free-option-dont-insure-me/ - P326

압박 판매

압박 판매에는 여러 기만적 패턴과 희소성, 앵커링 등 인지 편향을 이용하여 사용자가 구매를 완료하도록 압박을 주는 행위가 포함된다. - P168

부킹닷컴의 압박 판매

(전략). 일례로 영국의 반독점 규제 기관(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CMA)에서는 2017년에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익스피디아, 이부커스닷컴, 아고다, 트리바고 등을 조사했다.²⁴ 그 결과 현행 법률을 제대로 준수할 수 있도록 엄격한 지침이새롭게 만들어졌다.²⁵ - P169

24 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2019, September 13). Online hotelbooking. GOV.UK. Retrieved 13 October 2022 from https://www.gov.uk/cma-cases/online-hotel-booking

25 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2019, February 26). Consumer protectionlaw compliance: Principles for businesses offering online accommodationbooking services, GOV.UK. Retrieved 13 October 2022 from https://bit.
ly/436v415 - P327

이제 당시 부킹닷컴이 사용했던 압박 판매 기법을 살펴보기 위해 2017년의 부킹닷컴 웹사이트를 들여다보자. 다음 장의 캡처 화면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로만 체플야카가 쓴 <부킹닷컴이 당신을 조종하는 방법>이라는 글²⁶에서 가져온 것이다. - P169

26 Cheplyaka, R. (2017, September 23). How Booking.com manipulates you. Roche info, Retrieved 3 August 2022 from https://ro-che.info/articles/2017-09-17-booking-com-manipulation - P327

좀 더 살펴보자. 오른쪽을 보면 ‘잭팟! 해당일에 런던에서 보신 최저가입니다!‘라는 말풍선이 있다. 체플야카는 이 문구가 반복이라고 지적했다. 사용자에게 표시된 첫 번째 가격이므로, 이를테면 한 항목의 샘플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런던에서 특정일에 딱 하나의 호텔만 보았으므로, 최저가가 된 것이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최고가이기도 하다. - P171

그러면 이제 강조 표시된 가격을 보자. 모든 객실의 가격이 두번 할인된 것처럼 보인다. 가장 위에 있는 객실의 가격은 189달러에서 175달러, 그리고 158달러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체플카야는가격 위에 마우스 커서를 두고 기다리면 위와 같은 메시지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 P172

18장

희소성

(중략).


매진임박 메시지 기만적 패턴

헤이머치의 쇼피파이 앱인 ‘헤이!스커시티 로우 스톡 카운터‘는 매진임박 메시지 기만적 패턴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앱에서는 쇼핑몰 운영자가 손쉽게 가짜 매진 임박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게 해준다(다음장 그림)¹ - P180

18장 희소성

1 Image source for figure: HeyMerch. (n.d.). Hey!Scarcity Low Stock Counter.
Shopify App Store, Retrieved 21 December 2022 from https://apps.shopify.com/heymerch-sales-stock-counter - P328

주문 폭주 메시지 기만적 패턴

주문 폭주 메시지 기만적 패턴은 재고 임박 메시지의 게으른 버전이다. 그냥 페이지에 해당 상품의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는 텍스트만 넣으면 된다. 이펙티브 앱스가 만든 ‘스커시티++ 로우 스톡카운터‘는 주문 폭주 메시지에 애니메이션을 더해 눈길을 끌도록 만들었다.³ - P182

3 Effective Apps. (n.d.). Scarcity+++ Low Stock Counter. Shopify App Store.
Retrieved 21 December 2022 from https://apps.shopify.com/almostgone-low-in-stock-alert - P328

19장

방해

(중략).


페이스북과 구글 개인정보 설정에서 나타나는 방해

EU에서 GDPR이 발효되면서, 기업은 개인정보 데이터 사용에동의(또는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옵션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이런 동의는 ‘자유롭고, 구체적이며, 결과에 대해인지하도록 분명해야 한다(4조 1항)¹ - P184

19장 방해

1 European Parliament and Council. (2016, May 27). Regulation (EU) 2016/679.EUR-Lex, Retrieved 5 August 2022 from https://eur-lex.europa.eu/eli/reg/2016/679/oj - P328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설정에 동의하기는 쉽게, 거부하기는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는 위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동의는 ‘동의하고 계속하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지만, 사용자가 거부하고 계속하기‘를원한다면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없다. 그 대신, 사용자는 ‘데이터 설정관리‘라는 모호한 이름의 버튼을 클릭하고 모호한 토글 버튼을 왼쪽으로 밀어야 한다. 토글 버튼의 이름도 부적절하다. - P185

구글의 접근법도 비슷하다. 구글에서는 사용자가 먼저 가입한 다음 자기 의지로 프라이버시 설정 대시보드를 찾아 활용해야 한다. 여기서 사용자는 설정을 해제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방해에 해당하며 GDPR 규제 요건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다.⁴ - P186

4 Image source for figure: Forbrukerrådet [Norwegian Consumer Council].
(2018, June 18). Deceived by design: How tech companies use dark patternsto discourage us from exercising our rights to privacy. Retrieved 8 March 2023fromhttps://fil.forbrukerradet.no/wp-content/uploads/2018/06/2018-06-27-deceived-by-design-final.pdf - P329

어려운 취소 기만적 패턴

(전략). 매우 쉽고 간단한 구독 경험이 한 쌍으로 따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가입은 쉽게 만들고 탈퇴는 어렵게만드는 것이다. 이 쌍을 일명 ‘바퀴벌레 모텔(roach motel)‘이라고도 하는데, 동명의 해충 관리 기기를 빗댄 유머러스한 표현이다.⁶ - P187

6 Brignull, H. (2010). Roach Motel - Dark Patterns, Retrieved June 29, 2023, fromhttps://old.deceptive.design/roach_motel/ - P329

2021년 9월에 <뉴욕타임스>는 자동 구독 갱신 경험과 관련하여 집단 소송에 직면했다. 주된 원인은 다음 내용을 규정한 캘리포니아주 자동갱신법의 위반이었다.¹⁰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자동 갱신 또는 서비스의 지속적인 제공에 동의하도록 하는 기업은 소비자가 자기 의사에 따라 온라인에서 자동 갱신 또는 지속적인 서비스를 해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때 소비자가 자동 갱신 또는 지속적인 서비스를 즉시 해지할 능력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추가 단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 P190

10 Business and professions code, article 9, Automatic purchase renewals [17600-17606]. https://leginfo.legislature.ca.gov/faces/codes_displaySection.xhtml?lawCode=BPC§ionNum=17602.

- P330

취소하기 어려운 아마존 프라임

2021년에 EU와 미국의 16개 소비자 단체가 아마존 프라임 구독을 해지하려는 사용자에게 어려운 취소 기만적 패턴을 썼다는 이유로 아마존에 소송을 제기했다. 노르웨이 소비자 평의회는 <로그아웃은 가능, 탈퇴는 불가능>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다음 장의그림처럼 미로같이 헷갈리는 선택 사항이 포함된 취소 과정을 설명했다.¹⁴ - P191

14 Forbrukerrådet [Norwegian Consumer Council]. (2021). You can log out,
but you can never leave: How Amazon manipulates consumers to keepthem subscribed to Amazon Prime. Retrieved 25 May 2023 from https://fil.
forbrukerradet.no/wp-content/uploads/2021/01/2021-01-14-you-can-log-out-but-you-can-never-leave-final.pdf - P330

조사 과정에서 내부 문건이 <인사이더>라는 비즈니스 뉴스 사이트에 유출되었는데, 아마존이 고객을 유지하고 해지율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기만적 패턴을 의도적으로 썼다는 것이 폭로되었다.¹⁷ - P194

17 Kim, E. (2022, March 14). Internal documents show Amazon has for years knowingly tricked people into signing up for Prime subscriptions. "We havebeen deliberately confusing,‘ former employee says. Business Insider. https://www.businessinsider.com/amazon-prime-ftc-probe-customer-complaints-sign-ups-internal-documents-2022-3 - P330

FTC의 아마존 조사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되는 것 같다.
2023년 3월에 FTC는 어려운 취소 기만적 패턴에 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리나 M. 칸 FTC 위원장은 "제시된 규정에 따르면 기업은 구독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만큼 해지하는 것도 쉽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¹⁸ - P194

18 Federal Trade Commission. (2023, March 23). FTC proposes rule provisionmaking it easier for consumers to ‘click to cancel‘ recurring subscriptions andmemberships. Retrieved 25 May 2023 from https://www.ftc.gov/news-events/news/press-releases/2023/03/federal-trade-commission-proposes-rule-provision-making-it-easier-consumers-click-cancel-recurring - P331

21장

다크패턴끼리 결합하는 경우

리오르 스트라힐레비츠 시카고대 법학 교수와 제이미 루구리박사는 2021년에 진행한 사회심리학 실험에서 기만적 패턴의 양적 영향을 조사할 기발한 방법을 고안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에 기만적 패턴을 포함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만들었다. 설문 조사의 주요 내용은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는 마지막에 나타날 기만적 패턴을 위한 전제로써 유인용 질문이었다. - P204

요약하면, 보통 수준의 기만적 패턴 조건에서 첫 문단은 대조군과 똑같지만, 그다음에 사용자는 굵게 표시된 ‘동의하고 계속하기(권장)‘나 ‘기타 옵션‘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기타 옵션‘을 선택하면 원형 버튼의 개수가 늘어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여기서 다시 거부(‘내 데이터나 신용 내역을 보호하고 싶지 않습니다‘)하면 또 다른단계로 넘어간다. 이 설계에는 시각적 방해, 속임수 표현, 방해 등여러 가지 기만적 패턴이 사용되었다. - P207

또한 스트라힐레비츠는 "보통 수준의 기만적 패턴이 가장 교활하다"고 결론지었다. "소비자를 소외시키거나 많은 사용자의 로그오프를 유발하지 않고도 의심스러운 혜택이 주어지는 프로그램에 동의할 확률을 상당히 높였기 때문이다.³ - P508

21장 다크패턴끼리 결합하는 경우

3 Strahilevitz, L. (2022, August 12). Update on Dark Patterns at the NIAC2022 Summer National Meeting. niac.org. Retrieved October 18, 2022,
from https://content.naic.org/sites/default/files/national_meeting/Lior+Update+on+Dark+Patterns.pdf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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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은 추리보단 드라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잘 쓰는.



4

공을 던진 순간, 아니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손가락 끝에서 공이 떠나기 직전에 ‘아아, 이건 아닌데.‘ 하는 감이 왔다. 이래서는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느끼면서 팔을 뻗었다. 당연히 좋은 볼이 던져질 리 없다. - P279

비록 전력 외 통보를 받은 몸이지만, 구단이 박정하게 굴지는 않았다. 현역으로 계속 뛸 생각이니 연습장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지금 시점에서 야나기사와에게 손을 내밀어 줄 만한 구단은 없었다. 이대로 가면 은퇴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남은 기회는 단 하나, 합동 트라이아웃뿐이다. - P280

야나기사와는 속구 투수는 아니었다. 제구력과 공의 배합, 날카로운 변화구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변화구가 이제는 말을 듣지 않는다. 머릿속에 그린대로 공이 곡선을 그려 주지 않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인지자신도 알 수 없었다. - P280

남은 공 다섯 개를 모두 던졌지만 만족스러운 공은 한 개도 없었다. 씁쓸하게 웃으며 무네타에게 다가갔다.
"지금 이런 공은 무네타 씨도 던지겠어."
"컨디션이 저조해서 그래. 시즌 동안 피로가 누적된 데다그런 일까지 일어나서 한동안 연습도 제대로 못했잖아."
‘그런 일‘이란 물론 사건을 말할 것이다. - P281

"이 물건에 관해 뭔가 좀 알아내셨나요?"
"돌아가신 부인의 지인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는 분이 없더군요. 몇몇 분이 남편에게 선물하려던 게 아니겠느냐고 말한게 전부입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무슨 기념일도 아니고……………. 내용물이시계라고 하셨죠?"
"X선으로 조사해 본 결과 자명종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럼 더더욱 이상하죠. 제게 뭐 하러 그런 걸 선물하겠습니까." - P282

"이거 야나기사와 씨 겁니까?"
야나기사와가 잡지 제목에 눈길을 주었다. 야구와는 무관한 스포츠 종목이 쓰여 있다. 구사나기가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중략).
"아니요, 신경이 좀 쓰여서요. 이건 배드민턴 전문지잖아요. 야구 관계자가 왜 이런 잡지를 읽는지 궁금했습니다." - P283

헤어지기 전에 무네타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속는 셈 치고 얘기나 한번 들어 보지 그래? 참고가 될지도모르잖아."
하지만 야나기사와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물리학자인지 뭔지는 몰라도, 배드민턴에 관해 글을 쓴 사람에게 야구에 관해 의논하러 가자니, 가당키나 한소리인가. - P284

5

품격 있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야나기사와는 목을 움츠렸다.
"문턱이 높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보군. 설마 내가 데이토대학문을 들어서게 될 줄이야."
그 말에 무네타가 슬며시 웃음 지었다.
"입학시험을 보러 온 것도 아닌데 긴장할 필요 없잖아."
"성격 탓이야 이런 데는 딱 질색이야." - P287

유가와가 책상 밑에서 뭔가를 또 꺼냈다. 이번에는 야구공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야구공처럼 생긴 플라스틱 구체였다.
"구사나기에게 얘기를 듣고 두 분께 설명해 드리려고 만들었습니다. 안에 센서가 들어 있는 공이에요. 서두르는 바람에조잡하게 만들어져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 의도는 이해할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유가와는 그 공을 야나기사와에게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 P289

"학생들이 장난하는 거라면 야단을 치겠지만 이건 물리 실험입니다. 더구나 두 분은 아마추어가 아니잖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럼 한번 해 보죠."
무네타가 재킷을 벗었다.
"직구와 변화구를 번갈아 던지세요."
유가와가 말했다.
"구종을 적당히 섞으셔도 괜찮습니다." - P290

"야나기사와 씨의 첫 번째 공입니다."
유가와가 설명을 시작했다.
"회전수는 1초에 32.3회, 회전축은 수평보다 오른쪽으로8.7도 기울어 있습니다. 두 번째 공은 회전축이 수직에 가깝고 9.2도 기울어 있고요. 회전수는 1초에 13.5회. 이건 변화구군요." - P291

무네타가 앞으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호조를 보이던 시절의 투구 폼과 비교해서 뭘 어떻게 교정해야하는지 알아내는 일도 가능할까요?"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야나기사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호조를 보이던 시절의 비디오는 지겹도록 봤어요.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도 잘압니다. 그걸 교정해도 나아지지 않으니 답답한 겁니다." - P292

6

연습장에서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무네타일 것이다.
구사나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야나기사와가 투구 연습을 하고 있다. 무네타가 공을 받고 있다는 점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지만 오늘은 협력자가 하나 늘어났다. 옆에 놓인 책상에서 유가와가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 P293

봉투 속에 든 것은 카스텔라 사이에 단팥을 넣은 빵이었다.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유가와 교수님의 도움을받은 이래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야나기사와의 투구폼이 그 정도로 망가졌을 줄은 몰랐거든요. 약간만 교정을 했을 뿐인데도 상당히 좋아진 것 같습니다. 큰 공부가 되었어요. ‘관절의 각속도 같은 용어도 처음 알았고요."
무네타의 말이 공치사로 들리지는 않았다. - P294

"사건의 충격이 여전한 모양이군요."
"그런 점도 있겠지만, 다소 께름칙한 마음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부인이 야나기사와가 현역 생활을 계속하는 데 반대했었나 봅니다."
(중략).
"부인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씀이군요" - P295

(전략).
그렇게 전제한 뒤 구사나기는 야나기사와 다에코가 살해되었을 당시 자동차에 놓여 있던 쇼핑백 얘기를 꺼냈다.
"아닌 게 아니라 묘한 구석이 있군. 그 시계를 누군가에게선물할 작정이었다면 당연히 그 상대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을 텐데, 그런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거야?"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어. 휴대 전화통화 이력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빠짐없이 물어봤지만헛수고였지." - P297

구사나기가 입꼬리를 비죽이 내려뜨렸다.
"그걸 뭐 하러 가르쳐 주겠어. 알아 봐야 이래저래 의심만생길텐데."
흠, 하며 유가와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다.
"바람을 피운거 아닐까 하고?"
"주부가 대낮에 한껏 꾸미고 외출을 했다. 게다가 그런 사실을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누가 들어도 수상하다고 여길걸. 그런 쓸데없는 일을 알려 줄 필요가 있겠어?"
"그래,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 P298

7

운동장을 빠져나온 후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도중에 안면이 있는 기자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야나기사와가 전력 외 통보를 받았을 때 은퇴하기에는 이르다는 요지의기사를 써 준 기자다.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어서 걸음을 늦췄다. - P299

오늘 첫 번째 트라이아웃이 있었다. 전력 외를 선고받은 각구단 선수들이 모여 각자의 실력을 어필했다. 어느 구단의 눈에라도 들면 재고용의 길이 열리겠지만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야나기사와는 세 명의 타자와 경기를 펼쳤다. 실전처럼 주자가 1루에 나가 있는 설정으로, 간간이 견제구를 던져 가며세트 포지션으로 던졌다. - P300

운동장 옆 보도를 남자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낯익었다. 속도를 늦추고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틀림없다.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서둘러 차창을 내리고 말을 건넸다.
"유가와 교수님!"
그러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유가와는 고개를 숙인 채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유가와 교수님! 하고 다시 한 번 불렀다. - P301

유가와 조수석에 태운 채 두리번거리며 찻집을 찾았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눈에 띄어 그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부러 보러 오시다니, 놀랐습니다.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할지."
야나기사와가커피잔에 손을 대기 전에 먼저 고개를 숙였다.
"우연히 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요." - P302

(전략).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일단 야구에서 물러나기로 한 이상더는 교수님께 폐를 끼칠 수 없습니다."
야나기사와가 양손을 무릎에 얹고 다시 한 번 깊이 고개를숙였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재기해서 은혜를 갚고 싶었는데, 그러기는 힘들 것 같으니 다른 형태로라도 보답하겠습니다."
"보답은 필요 없습니다만....... 정말 그만두실 작정인가요? 오늘 있었던 트라이아웃을 보고 어느 구단에선가 손을 내밀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 P304

두 사람은 패밀리 레스토랑을 나와 야나기사와의 자동차로 걸어갔다. 그런데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유가와가 의아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러시죠?"
"아, 그게, 칠이 좀 이상한 형태로 벗겨져 있어서요."
그 말에 야나기사와가 조수석 쪽으로 다가갔다. 유가와의말대로 창틀 조금 아래쪽의 칠이 벗겨진 채 녹이 번져 있었다.
"여기도 그렇군요. 그리고 여기도요."
유가와가 보닛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 P305

"아니요. 사실은 운전이 오랜만입니다. 아마 그날 세차한이후 처음일 거예요. 그 직후에 사건이 일어났으니까요."
"사건이 있던 날 부인이 차를 몰고 나가셨죠?" - P305

"무슨 문제라도...... 녹이 좀 묘하게 슬기는 했지만,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쯤 해서 새 차로 바꿀까 하던 참이었으니 걱정 마세요."
그러자 물리학자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렇군요.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요. 금속이 이런 식으로 녹슨걸 본적이 없거든요."
"역시 과학자는 관찰력이 대단합니다." - P306

8

(전략).
유가와에게 이상한 질문을 받은 것은 어제저녁이었다. 야나기사와 다에코가 살해된 날 혹시 도쿄 어딘가에서 약제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강알칼리성 약제일 거야. 소화기 분말로 추정되는데."
유가와의 말투로 미루어 급한 일인 듯했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유가와는 야나기사와의 자동차 얘기를 꺼냈다. 차에 난 흠집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 P307

호텔에서 발생한 사고란 자동차 사고였다. 지하 주차장 출입구를 대형 트럭이 들이받은 것이다. 높이 제한을 무시해서생긴 단순한 실수였다. (중략). 주차장 출입구 쪽으로 대량의 소화기 분말이 분사된 것이다. 사태를 알아차린 경비원이 스위치를 껐을 때는 이미 3분가량 분말이 분사된 후였다.
구사나기는 유가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에 관해 말해 주었다. - P308

"소화제가 출입구 부근에서만 분사된 덕에 주차돼 있던 차에는 영향이 없었어요. 다만 분사되는 시점에 몇 대가 출입구를 통과했으니 그 차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방범 카메라에 찍히기는 했는데, 거품 때문에 번호판을읽기 힘들어서 연락을 취할 도리가 없었어요."
"그 영상을 볼 수 있을까요?" - P309

자동차 몇 대가 그 거품 속을 통과했다. 별일 아닐 거라고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유가와가 "잠깐만!" 하고 외쳤다.
"방금 지나간 차 아니야?"
영상을 되돌려 확인했다. 은회색 자동차가 출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번호판은 보이지 않지만 생김새가 야나기사와의 차와 흡사하다. - P310

"소화기 분말의 성분을 알 수 있을까요?"
유가와가 경비원에게 물었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그러고서 경비원이 팸플릿을 찾아왔다.
"역시 수성막포 소화약제로군."
팸플릿을 읽고 난 유가와가 중얼거렸다. - P310

"야나기사와 투수의 부인이 사건 당일에 이 호텔을 방문했던건 확실해 보여."
걸으면서 유가와가 말했다.
"문제는 호텔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건데."
"일단 프런트에 가서 확인해 볼까?"
"아마 소용없을 거야. 밀회가 목적이었다면 유부녀가 프런트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겠지. 남자가 먼저 체크인을 해 놓으면 그 방으로 직접 갔을 거야." - P311

엘리베이터 앞에 선 채 두 사람은 호텔 내부 시설들을 확인했다. 1층에 티 라운지가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으로 가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종업원에게 야나기사와 다에코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 이분 말이군요."
"기억나십니까?"
"몇 번 오신 적이 있어요. 주로 허브티를 주문하셨던 것 같습니다." - P312

"요즘은 통 안 보이시던걸요. 아마 3주쯤 전에 오신 게마지막일 거예요."
그녀의 기억은 정확했다. 사건은 20일 전에 발생했다.
"그때도 남자분과 함께였습니까?"
"그랬을 거예요. 아, 맞다!"
종업원이 뭔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케이크를 주문하셨어요. 쇼트케이크요. 그러면서 초가 있느냐고 물었어요‘ - P313

그리고 다음 순간 유가와가 눈을 화들짝 떴다.
"내용물이 시계라고 했지? 그렇군! 그럴 가능성도 있겠어."
"뭐야, 무슨 말이야?"
그러자 유가와가구사나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봐, 이번에는 내가 부탁을좀 해야겠어. 그 남자를찾아줘." - P314

9

(전략).
"급작스레 나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구사나기가 사과했다.
(중략).
야나기사와가 앉자 두 사람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종업원이 다가오자 맥주와 음식을 주문했다.
"차체의 녹슨 부분은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가와가 물었다 - P315

"사고차량이 소속된 회사에서 배상하겠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다에코 그 사람이 그런 곳에는 왜 간건지 그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소문대로 맛은 있었지만 야나기사와는 다에코의 의문스러운 행적이 마음에 걸려 느긋하게 음미하기 어려웠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가와가 "예의 물건은 가지고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 P317

야나기사와는 옆에 놓아두었던 쇼핑백에서 포장지에 싸인상자를 꺼냈다. 사건 당일 다에코의 차에서 발견된 물건이다.
"내용물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아니요, 뜯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잠시 보겠습니다."
(중략).
"테이프를 떼었다 붙인 흔적이 있어. 일단 풀었다가 다시포장했어."
"이걸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군."
야나기사와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는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 P317

야나기사와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흰 요리사 복장을 한 체격이 다부진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쉰 전후로 보였다.
"부인과 만난 사람이 바로 접니다. 양, 이라고 합니다. 대만에서 왔어요. 이 음식점 주인입니다."
"대만......."
야나기사와는 숨을 삼켰다. 다에코가 대만 사람을 만나 내일을 의논하다니…………. - P318

"야구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국외로 진출하는 경우도 각오하고 있을 텐데, 그렇게 될 경우 당황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준비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설마 그 사람이………. 제게는 은퇴를 권해 왔거든요."
"그게 부인 나름의 독려 방식이었습니다. 어디라도 두말없이 따라가겠다는 태도를 보이면 남편은 분명 마음이 해이해질 것이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전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고 싶다. 그러시더군요." - P319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지 않았습니다."
"왜죠?"
"대만에서는,"
유가와가 말했다.
"자명종을 남에게 선물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답니다." - P320

야나기사와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께 얘기를 듣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아내의 진심을 알았어요."
"부인은,"
양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었다.
"남편의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꼭 다시 보고싶다고 하셨어요" - P321

10

(전략).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대만의 관습까지 그렇게 꿰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어."
구사나기가 말했다.
"대만에는 우수한 물리학자가 많아. 그들에게는 멋진 구석이 있는데, 설사 비과학적이더라도 문화와 인습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시계에 관해서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어." - P322

양은 휴대 전화가 있지만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 연락하려면 가게로 전화하는 것이 빠른 길이었다. 야나기사와 다에코도 그러한 사정을 알기에 만나자고 약속할 때는 가게로 전화를 걸었던 듯하다. - P323

"투수란 그런 존재야. 그리고 양 씨를 만난 이후로 야나기사와 투수는 확실히 변했어. 내게 새삼 협조를 요청했을 뿐 아니라 연습에 임하는 자세도 크게 달라졌지. 그 결과, 과학적인데이터만 봐서는 전성기와 견주어도 투구에 손색이 없어."
"아니, 그럼 부활할 수 있다는…………..?
그때 쉿, 하고 유가와가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마운드에서 야나기사와가 투구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 P324

6장

위장하다

1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획기적인 발명품이지만 융통성이없다는 게 맹점이야."
조수석에서 유가와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부터 산속의 외길만 줄기차게 보여 주잖아.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 차라리 다음 분기점이 나올 때까지 꺼두는 게 낫겠어." - P395

"강수 확률이 90퍼센트로군. 예보로 봐서는 곧 비가 올 모양인데, 그것도 꽤 많이 올 것 같아."
"정말이야? 이거 낭패인걸. 우산도 없는데."
"차를 호텔 현관 앞에 세우면 괜찮을 거야."
"주차장이 멀리 있으면 어쩔 건데? 나만 쫄딱 맞으라는 말이야?"
"둘 다 젖는 것보다야 낫지. 재킷이랑 짐은 내가 들고 내릴게.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거야." - P396

구사나기 곁으로 돌아온 유가와는 어느 틈엔가 비닐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 우산은 어디서 났어?"
"방금 그 여자가 줬어."
"여자? 운전하는 사람이 여자였어?"
"응. 젊은 여자였어. 게다가 상당한 미인이던걸 타이어를교체하고 있는 사람이 홀딱 젖은 모습이 안돼 보이더라는 거야.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있다니, 아직은 세상이 살만해." - P398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그리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가와와 마찬가지로 대학 시절 배드민턴부에서 같이 활동했던 친구 둘이다.
"이봐, 자네들, 드디어 때가 왔어."
고가라는 친구가 구사나기와 유가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독신은 자네들 둘뿐이라고, 잊지는 않았겠지? 마지막 남은 한 명이 모두에게 고기를 마음껏 먹게 해 주자는 약속 말이야." - P399

"멀리까지 오라고 해서 미안해. 그래도 이 호텔이 음식이 맛있는 데다 온천도 있고 각종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꽤 괜찮아. 모처럼 왔는데 다들 느긋하게 쉬다가."
다니우치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와 현청에 들어갔다. 거기서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다가 2년 전에 그만두고 이곳 읍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다니우치의 아버지도 읍장 출신이다. 결과는 단독 후보로 당선. - P400

2

가쓰라기 다에가 방을 나선 것은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중략).
식욕은 전혀 없지만 뭐라도 먹어 둬야 했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와인이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유리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머금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듯하다. 별장이 어떻게 되었을지 조금신경이 쓰였다. 질척이는 땅을 걸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우울했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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