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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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좋은 책이다. 그래서 양장본으로 구비하고 싶다.






저항과 반란

자본주의는 규율에 복종하는 노동계급, 즉 기업이 이윤을 남기도록 임금을 받고 기꺼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대개 사람들은 규율과 통제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며 직·간접적으로 저항할 방법을 찾는다. - P127

가운데 하나가 룸펠슈틸츠헨Rumpelstilzchen(독일 민간설화에 나오는 난쟁이-옮긴이)의 이야기다. 민간설화는 단순히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있다. 그것은 민중의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대개 민간설화는 인간의 옳고 그른 행동에 따른 결과를 극적으로 표현한 도덕적인 이야기다. 예컨대제인 슈나이더(1989)는 룸펠슈틸츠헨 설화가 근세 유럽의 아마포산업의 발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 P127

우리는 이 설화가 16세기와 17세기 유럽의 농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잊어버린 지 오래다. 예컨대 당시에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가 아마포 생산이었다. 아마포는 아마의 짚으로 아마실을 자아낸 것이었다. 아마실로 짠 옷감은 시장에서 황금 동전을 받고 팔았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짚으로 황금을 자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128

 더 나아가 이 설화에는 악마와의 약속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가는 첫 번째 태어난 아기다. 따라서우리는 여기서 부의 생성은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돈 세례식을 통해 아이의 영혼을 팔아넘기는 것처럼 반드시 사회적 · 개인적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발견한다. - P128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지만 이슬람교는 마법이나 혼령을 믿는 토착신앙과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1980년대 말레이시아의 조립공장 관리자들, 특히 미국인과 일본인 관리자들은 뜻밖에도 공장 안에서 신들림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상황에 직면했다(Ong, 1987년,
204쪽). - P128

또 다른 미국계 반도체 공장은 여성노동자 15명이 신들림에 걸리자 문을 닫고 말았다. 공장의 인사책임자에 따르면 신들린 여자애들이 흐느껴 울면서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장 관리자들은그런 현상이 점점 확산되는 것처럼 보이자 곧바로 다른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보냈다. - P129

아이화 옹은 말레이시아 여성노동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산업자본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멸감이나 인간관계의 혼란과 같은 구체적인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콜롬비아 농민들이 임금노동에 대해 아이의 영혼을 팔아 돈 세례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방식이다. - P129

결론

이 책의 중요한 전제는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지 않고는 오늘날 세계와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 즉 인구증가나 기아, 빈곤, 환경파괴, 보건 전쟁, 종교적 격변 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 P130

여기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특징을 블랙박스로 나타냈다. 블랙박스의 목적은 돈을 더많은 돈으로 바꾸고 금전적 투자를 받아 그것에 이윤과 배당금, 이자를 덧붙이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이 볼 때 이런 과정은 콜롬비아 농민들이 세례를 받은 돈에 기대하는 행동만큼이나 신비로운 것이다. - P130

우리는 블랙박스가 그런 전환과정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알기 위해 해외에 조립공장들이 증가하는 모습과 블랙박스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의 창출과 세분화, 통제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노동은 민중을 자기 땅에서 쫓아내거나 그들이 생계를 꾸려나가던 소규모 산업을 파괴함으로써 생겨났다.  - P130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산업이나 기업에 있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선망받는 일자리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로 경쟁적이고 값싼 노동력 공급이 절실한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피하고 싶은 일자리들로 점점 더 분리된다. - P130

자본주의 경제는 값싼 노동력의 공급을 늘리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노동력을 규율에 따라 복종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공장 조직을 이용할 수도 있고 시간 개념을 재정립할 수도 있으며 가정이나 교회같은 전통적 사회기관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런 새로운 형태의 규율이 존재함에도 속내를 감춘 간접적인 비판 형식, 돈 세례식이나 신들림, 룸펠슈틸츠헨 설화 같은 도덕적 이야기를 통하는 아니면 노동조합 결성 같은 직접적인 반발 형태를 취하는 자신들의 저항의지를 나타내다. - P131

 그 블랙박스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어떻게 진화했을까? 무엇보다도 상인은 어떻게 해서 그리고 왜 자본가로 발전했을까?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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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내 거야!"
완전히 미친 여자였다. 이런 병원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곧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복도에 화려하게 장식되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때문이었다. 로비에서 크리스마스 기념음악회를 한다는 현수막도 보았다. - P34

전단지를 게시판에 붙일 때였다.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환자복의 소매를 걷어 올린 여자가 예원의 전단지를 가로챘다. 한 손에 흰 종이로 접은 비행기가 들려 있었다. 이건 비행기 접는 종이가 아니라고, 처음엔 조용히 말해줬지만 엉망인 제 머리만큼이나 여자는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 P35

눈이 뒤집혔다. 그것도 모르고 여자는 찢어진 종이는 필요 없다는 듯 바닥에 내팽개쳤다.
퍽!
여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나가떨어졌다. 여자의 코와 입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예원의 주먹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로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며 두 사람을 보았다. - P35

"아뇨, 오히려 너무 자주 와도 안정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원장님이 그러셔서요."
선준의 맞은편에 앉으며 심명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힘들겠다. 사람 사는 일이 참・・・・・"
"그래도 여기에 입원시켜야 제가 일하러 왔을 때라도 좀 들여다볼 수 있죠." - P33

보안실은 1층 가장 안쪽이었다. 관계자 외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선준이 노크를 하자안에서 가벼운 목소리로 응답이 들려왔다. 회색 페인트를 칠한나무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갔다.
"어서와." - P32

"자식은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마누라는 정신병원에 가둬놓은 놈이 안색 좋으면 그게 더 대단한 거죠."
커피 잔 안으로 시선을 던져 넣었다. 안 봐도 심명훈의 안쓰러운 눈길이 자신을 향했던 걸 선준은 알고 있었다. 지난 3년간 매일같이 받았던 시선이다. 이제는 그것이 무겁다. - P33

"예원 씨! 예원 씨!"
심명훈이 예원의 팔에 매달렸다. 그사이 경보 벨을 들은 간호사와 의사가 달려나왔다. 푸른 옷을 입은 보호사들이 심명훈을제치고 예원의 어깨를 뒤로 젖혔다. 예원이 여자에게서 떨어져나가며 뒤로 나자빠졌다. 보호사들은 그대로 예원을 눌렀다. - P36

예원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딛고 선 땅이 조금은 안정될지도 모른다는 선준의 희망도 무너지고 있었다.
선준은 그대로 돌아섰다. 다시 보안실로 들어가 두고 온 가방을 집어 들었다. 출입문으로 향하던 그가 우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로비를 비추는 CCTV 화면이 보였다. 엎어진 자세로제압당했던 예원이 어느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 P36

그대로 갈 거야? 날 이렇게 버려두고?
이를 갈며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저런 사람에게 선우일지도 모르는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얘기는 절대 꺼낼 수 없었다.  - P37

예원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정신을 모았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팔다리가 무겁고 욱신거렸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자신을 누르던 수많은 손들. 그 와중에 주사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선준을 본것도 같았는데 병실에는 그가 없었다. - P38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맨발에 꿰신었다. 철제 침대를 붙잡으며 간신히 문밖으로 향했다. 복도로 나가자 노랫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뜨끈한 기운이 눈시울을 적셨다.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갈망하던 노래였다.
어디지.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 P39

예원은 눈을 크게떴다. 안쪽의 한 테이블에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노래는 그아이에게서 들려온 것이었다. 젊은 간호사 하나가 아이의 입에마이크를 대고 있었다. 옆에서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박자에맞춰 손뼉을 쳤다. 선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예원은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몇 살쯤 되었을까? - P39

그때였다. 밖에서 들어온 보호사 하나가 아이의 어깨를 살짝잡았다. 아이의 노랫소리가 끊겼다. 동시에 길을 잃은 것처럼 예원의 발도 우뚝 멈췄다.
"로운아, 엄마가 보러 오셨어."
로운이라고 불린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 P40

"이제 로운이 자해 증상 많이 사라졌어요. 집에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통원 치료 받으시는게 어떠세요?"
원장 민서진은 맞은편에 앉은 정주희에게 따뜻한 어조로 말했다. 로운을 입원시킨 지는 1년이 가까워져갔지만 민서진이 그녀를 본 것은 세 번뿐이었다. - P40

정주희는 스물네 살이었다. 로운을 열여섯 살에 출산한 셈이었다. 남편은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정주희는 물끄러미 테이블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퇴원해도 된다는 말에도 기쁨 같은감정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한참 만에 정주희가 말했다.
"꼭 데려가야하나요?" - P41

민서진은 말을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보호사가 로운을 데리고 왔다. 성마른 시선으로 휴게실을 둘러보다가 정주희를 발견하고는 기계처럼 히쭉 웃는 로운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 P41

"로운아, 엄마가 보러 오셨네."
로운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정주희는 조금 전 민서진이 자신을곤란하게 하는 말을 했을 때처럼 테이블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준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민서진은 낮은 한숨을 쉬며 보호사에게 눈짓을 했다. 보호사가 로운을 정주희의 맞은편에 앉혀주고 바깥으로 나갔다. - P42

아이의 짧은 다리가 철제 의자 아래에서 덜렁거렸다. 점점 다리를 세게 흔들었다. 의자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났다. 발끝으로 책상 아랫부분을 두드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턱턱 두드리자 조화를 꽂은 책상 위의 화병이 조금씩 옆으로 옮겨갔다. - P42

 로운이 그걸 물끄러미 보는 사이 그녀는 면회실을 나갔다.
만 원짜리 두 장이었다. 로운은 그걸 집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이 병원엔 돈을 쓸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 P43

일정 시간이 되면 보호사가 면회실로 와 확인을 하기는하지만 엄마가 5분도 채 안 지나서 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것같았다.
너무 커서 손을 덮는 환자복 상의를 걷고 로운은 작은 손으로손잡이를 잡아 돌려 면회실의 문을 열었다. - P43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따라오며 로운의 어깨를 잡았다. 아이는 무덤덤하게 여자를 보았다. 여자가 황급히 로운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몇 살이니?"
로운이 그녀를 보았다.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아홉 살이지?" - P43

로운은 다시 몸을 돌려 병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뒤에서 여자가 소리쳤다.
"선우야!"
로운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 P44

"예원 씨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 어린이 환자를 같이 데리고 나간 것 같아요!"
스피커폰에서 들려오는 민서진의 외침에 선준은 그대로 병원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차머리가 크게 돌았다. CCTV 설치건으로 방문하기로 한 약속 같은 것은 머리에 남지도 않았다. - P45

선준은 곧장 CCTV 기계에 달려들었다. 직접 컴퓨터를 조작해 녹화된 영상을 불러냈다. 병원 정문의 CCTV 영상이었다.
"아침 9시 8분이야." - P45

무언가를 본 선준이 버튼을 눌렀다. 영상이 멎었다. 다시 다이얼을 돌려 천천히 앞으로 감았다. 탑차옆으로 예원의 모습이 설핏 보였다가 사라졌다. 직원들이 정신이 팔린 틈에 벽을 따라 바깥으로 나간 것이 확실했다. 손을 잡고 있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작은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다. - P46

전화를 받지 말까 하다가 할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닿지 않으면 얼마나 불안해하실지도 알고 있었기에 계속 전화를 피할 자신이 없었다.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에서 곧장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르게 홍분한 그녀의 말은 선준이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 서방, 이게 무슨 일인가? 예원이가 왔어!" - P47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와 부서졌다.
-어머니, 예원이 잘 잡아두셔야 합니다! 제가 지금 가요!
사위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예원이를 잃어버렸었구나, 직감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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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디 적힌 글일까?

다음 날, 업무차 희망 요양원에 간 선준은 심명훈을 만나기 위해 보안실을 찾았다. 보안실은 1층 가장 안쪽이었다. 관계자 외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문앞에 붙어 있었다. 선준이 노크를 하자안에서 가벼운 목소리로 응답이 들려왔다. 회색 페인트를 칠한나무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갔다. - P32

심명훈은 열세 대의 CCTV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에는 병원의 정문과 1층 로비, 그리고 각 병동의 복도를 비추는화면이 떠 있었다. 심명훈이 선준을 사무실 중간에 놓인 원형 테이블로 안내했다. - P32

"아뇨, 오히려 너무 자주 와도 안정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원장님이 그러셔서요."
선준의 맞은편에 앉으며 심명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힘들겠다. 사람 사는 일이 참・・・・・"
"그래도 여기에 입원시켜야 제가 일하러 왔을 때라도 좀 들여다볼 수 있죠." - P33

"자식은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마누라는 정신병원에 가둬놓은 놈이 안색 좋으면 그게 더 대단한 거죠."
커피 잔 안으로 시선을 던져 넣었다. 안 봐도 심명훈의 안쓰러운 눈길이 자신을 향했단 걸 선준은 알고 있었다. 지난 3년간 매일같이 받았던 시선이다. 이제는 그것이 무겁다. - P33

"뭐죠, 저 사람?"
"누구?"
심명훈이 고개를 돌렸다. 선준이 가리킨 화면 안에서 예원이어떤 중년 여성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종이 한 장의 끝과 끝을 쥐고 서로 놓지 않고 있었다. 선준이 벌떡 일어섰다.
그 종이가 무엇인지 그는 알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끝을찔렀다. 선준은 그대로 보안실에서 뛰쳐나갔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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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장점은 읽기 쉽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세금을 내기 싫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 제10회

기어이 여기까지 왔군, 하가는 아사히카와역 앞에 서서 생각했다. 이쓰미 야스마사는 이 거리에 어딘가에 있을 게 분명해. - P9

"그럴 겁니다. 이 메시지에 따르면." 하가는 가죽 코트 주머니에서 한 장의 메모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불가해한 숫자와 알파벳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쓰미 야스마사가 남긴 유일한 단서였다. 이 몇 개의 문자를정리하면 ‘ASAHIKAWA‘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어젯밤이었다. - P10

덜컹덜컹 덜커덕.
계단 아래에서 격렬한 소리가 났다. ‘택시에 타자‘까지 컴퓨터 화면에 친나는 키보드 위의 손을 멈추고 방을 나왔다.
계단 위에서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여보, 무슨 일이야?" - P11

그것은 하마사키 회계사무소에서 온 서류였다. 소장인 하마사키 고로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구였다. 나는 소설가가 된 지 10년인데 올해 웬일로 수입이 많았던 터라 내년 확정 신고를 대비해 얼마 전 하마사키에게 상담하러 갔었다.
지금까지는 확정 신고는 혼자 적당히 했는데 그렇게 처리할수 있을 정도로 수입이 적었다. - P12

처음에 나는 그 숫자를 멀거니 바라봤다. 그다음에는 자세히 들여다봤고 마지막에는 0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중략)
"당신, 정신 차려요." 이번에는 아내가 내 몸을 흔들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잖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런 바보 같은, 엉터리 금액을, 어째서? 하하하!" - P12

"여보, 어쩌지? 이렇게 큰돈은 우리한테 없는데, 어쩌면좋지?" 아내도 울었다.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고말았다.
"하마사키를 불러." 나는 아내를 향해 결연하게 말했다. - P13

"서류를 봤나 보군." 하마사키는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봤어." 내가 말했다. "넋이 나갔지."
"그랬겠지. 아! 고맙습니다." 아내가 내온 커피를 하마사키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서 이 숫자는 뭔데? 농담 아니야?" - P13

"저기, 어떻게 안 될까?" 나는 하마사키에게 말했다. 한심하게도 아부를 떠는 듯한 말투가 되어버렸다.
"좀 더 빨리 얘기했으면 여러모로 손을 썼을 텐데 벌써 12월이라." 하마사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최대한 영수증을 모으는 게 전부야. 그게 가장 빨라." - P14

"뭔데? 다 제대로 된 영수증일 텐데.‘
"제대로 되어 있긴 한데." 하마사키는 파일을 열었다. "우선 이거야. 4월에 여행을 갔더라. 여행지는 하와이"
"맞아. 그게 왜?" - P14

"야! 취재 여행이면 되잖아.‘
"그럴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너, 올해 쓴 작품 속에 하와이가 전혀 나오지 않았잖아?" - P15

"우와!" 다시 울고 싶어졌다. "그럼 하와이 여행비를 경비로 공제할 수 없어?"
"그런 셈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그럼, 내년에 쓸 작품에하와이를 넣을 계획이라고 하면 되잖아. 그럼, 할 말이 없을텐데." - P15

물론 농담이었는데 하마사키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한 표정으로 "맞아"라고 말했다. "친한 세무서 직원에게 들었어. 사디스트 기가 있는 사람을 우선 뽑는다고." - P16

"거기에 하와이를 넣을 수 없어?"
하마사키의 말에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말도 안 돼. 홋카이도가 무대라고 하와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 P16

"그럼 내 말대로 해. 게다가." 하마사키는 파일로 시선을돌리고 이어 말했다. "하와이에서 쇼핑을 무척 많이 했더군. 골프도 치고, 이것도 가능한 이유를 대야 할 텐데."
"이유?"
"그러니까 정당한 이유지, 일테면 주인공이 하와이에서 쇼핑이나 골프를 하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오면 그를 위한 취재라고 주장할 수 있지." - P17

"죄다 경비에 넣기 어려운 것들이야. 일테면 이 여성용 코트 19만5천 엔이라는 영수증, 이거, 부인을 위해 샀지?"
"올해 1월에 세일 할 때 샀어. 그게 왜 안 되는데?"
"안 될 건 없지. 부인 사랑으로는 좋아. 다만 경비로는 힘들어." - P18

"그리고 이거." 하마사키는 그렇게 말하고 다른 영수증을꺼냈다. "신사 용품이야. 양복과 셔츠, 넥타이와 구두까지 총33만8천7백 엔짜리."
(중략)
"일본 미스터리 작가 협회 파티에 입었어. 그리고 화보 촬영에서도 입었고." - P18

"안 입어." 내가 말했다. "사적인 시간에 아르마니 양복을입는 사람이 있겠냐? 보통 때는 반바지에 티셔츠면 충분하지. 너도 알잖아."
"나는 알지. 하지만 세무서는 그런 데 까다로워." 하마사키는 미간에 팔자 주름을 잡았다.
쳇, 나는 혀를 찼다. - P19

"소모품으로 인정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에 사용하고 나면 다른 데는 사용할 수 없는 게 명백한 것들이어야 해. 일테면 필기구라거나."
"필기구도 일이 아니라도 쓸 수 있잖아!"
"그러니까 비율의 문제야. 양복은 일 외에도 입을 때가 많다고 세무서 마음대로 생각하는 거지." - P19

"경비는 되는데 소모품은 아니야."
"뭐? 왜?"
"영수증에 따르면 구매 가격이 22만 엔이야. 20만 엔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고정 자산이 되지. 그러니까 감가상각 항목으로 경비에 올려야 해." - P20

"그리고 이거 노래방 기계를 샀네."
"부부 공통 취미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거 다 합쳐 수십만 엔인데, 그것도 감가상각이야?"
"아니, 이건 다행히 할부라 그럴 필요는 없어." - P20

"소설을 쓰는 데 노래방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까. 세무서는 반드시 지적할 거야."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하와이 여행도, 코트도, 아르마니도, 노래방 세트도 경비 처리가 안 되고, 컴퓨터도 몇 푼 안되는 돈만 인정되고. - P21

"그런 큰돈이 어디 있겠냐?"
"종종 벌어지는 일이야. 갑자기 수입이 늘어난 것까지는좋은데 세금을 까먹고 다 써버리는 경우 말이야."
"다른 사람 일이라고 태평하게 말하지 말지!" - P21


"그럼 주민세는………….
"대충 계산해보니." 하마사키는 계산기를 꺼내 손바닥 위에서 탁탁 두드리며 계산했다. 그리고 그 금액을 얘기했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정신이 멀어졌다. 앗, 기절하네, 라는자각이 있었다. - P22

"왜 코트를 꼭 찢어야 하는데?" 나는 옆에 서 있는 하마사키에게 물었다. 이런 장면을 적어 넣게 한 사람이 그였다.
"이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실제로 여자 코트를 찢은 적이있는 것으로 해야지. 그럼 실험 재료비로 코드를 겅비에 넣을 수 있어. 다만 세무조사가 들어오면 그 코트는 어딘가 숨겨야 해." - P24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하가도 옷을 벗고 싶어졌다.
그는 아르마니 양복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셔츠도 벗었다.
그리고 라이터 불을 켜서 그 옷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아르마니 옷은 활활 탔다. 끝내는 구두까지 벗어 불꽃 속에 던졌다. 가죽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제 후련하네." 하는 트렁크 팬티만 입은 모습이었다. - P24

"정말 올드하네. 좀 더 새로운 노래는 몰라?" 하마사키가옆에서 말했다.
"하와이 노래 같은 거, 갑자기 나오지 않아."
"뭐 됐다. 이런 식으로 종종 노래를 작품 속에 넣어줘. 그럼 자료 및 자료 검색 기자재로 노래방 세트를 경비에 넣을수 있어." - P25

"자, 여기서부터가 문제야."
"지난번 연재에서 암호를 해독하는 장면이 나왔어. 이쓰미야스마사가 남긴 유일한 단서였지. 그 몇 가지 문자를 정리하자 ‘ASAHIKAWA‘라는 답을 일단 냈다고. 그걸 어떻게 다루지?" - P26

"잠깐만요! 여기에 이상한 게 적혀 있어요." 시즈카가 방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가는 그곳을 봤다. 그러자 벽구석에 칼 같은 것으로 새긴 문자가 있었다.
‘KASAGANAI, ITSUMIYORI‘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 P27

하는 수첩을 펼치고 볼펜으로 거기에 ‘ASAHIKAWA‘라고 적었다.
"여기서 카사를 없애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어? 우산이요?"
"우산・・・・・・ 그러니까 K, A, S. A요."
하가는 ‘ASAHIKAWA‘에서 K, A, S, A의 네 글자를 지웠다. 남은 글자는 ‘HIAWA‘였다. - P28

"하면 할 수 있네! 역시 프로 작가야." 하마사키도 감탄한듯 말했다.
"이제는 무대를 아사히카와에서 하와이로 바꾸고, 원래 줄거리대로 쓰면 되겠어."
"무슨 소리야? 명목에 넣기 힘든 영수증이 아직 많다고." - P29

"이 정도면 평범한 여행객처럼 보이겠죠?" 하는 양손에종이봉투를 들고 말했다.
"맞아요. 하와이에 와서 쇼핑을 전혀 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기겠죠." - P29

"하지만 단서가 하나도 없어요."
"아닙니다. 단서는 있습니다. 이쓰미는 골프를 밥보다 좋아했어요. 하와이에 와서 골프를 치지 않을 리 없습니다. 하와이의 골프장을 돌면 반드시 뭔가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P30

"물론 그렇죠. 그러므로 조금 힘들 수도 있겠으나 우리도실제로 각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 그러네요. 힘들겠네요."
둘은 근처 골프용품점에 들어가 골프 세트와 캐디 백, 골프화, 그리고 골프웨어를 골고루 갖추었다. - P30

 하마사키가 말했다. "다른 영수증 더 없어? 1만이나 2만 같은 소액이 아니라 수십만 정도의 영수증."
"없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긴자 같은 비싼 거리의 술집에서 놀지도 않고 작업실을 따로 빌리지도 않았으니까."
"소설 매수는 어때? 아직 여유가 있어?" 하마사키가 물어왔다. - P31

 주인공들은 몇 개의 골프장을 돌았고 크루즈를탔고 쇼핑한 후 끝내 별다른 수확 없이 일본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리타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는 구사쓰 온천에 갔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올가을에 갔던 온천 여행의경비를 털기 위해서다. - P31

"어때?" 하마사키가 물었다.
"안 돼. 아무래도 쓸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영수증 다발을 하마사키에게 건넸다.
"어디 좀 보자." 그는 그렇게 말하고 종이 다발을 쭉 훑었다. 조금 후 그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지?" 내가 말했다.
"목욕탕 개축 공사에 50만 엔, 자동차 수리 19만 엔 ・・・・・" - P32

"하지만." 하마사키는 턱에 손을 댔다. "목욕탕과 자동차를 일 때문에 일부러 부쉈다면 설명이 될 듯도 한데."
"뭐, 뭐라고?"
"소설을 쓰는 데 아무래도 필요해서 일부러 부인 친정의목욕탕과 자동차를 망가뜨린 것으로 하지. 하지만 그대로 둘수는 없으니까 수리 비용은 네가 낸 것으로 하자." - P33

"그걸 생각하는 게 자네 역할이지. 아, 그리고 다음 고액영수증은・・・・・…." 하마사키는 아내가 가져온 영수증 다발을 넘겼다. "걸개 20만 엔, 항아리 33만 엔 ・・・ 이건 뭐죠?"
"아버지가 골동품을 좋아해요." 아내가 말했다. - P33

"여보, 그리고 이건 못 쓰겠지?" 아내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받아들고 보니 그건 슈퍼마켓 영수증이었다.
소고기, 파, 두부, 실곤약, 달걀・・・・・・ 오늘 밤의 스키야키 재료가 거기에 적혀 있었다. - P34

"이상하네, 어디가 현관이지?"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시즈카가 말했다.
그것은 자세히 보니 기묘한 건물이었다. 전체가 하얀 벽토로 덮여 있었다. 출입구 없이 창도 작은 것 하나가 전부였다.
하는 유일한 창문 밑에 차를 대고 자동차 보닛을 밟고올라가 작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안은 캄캄했다. 자세히 보니 어둠 속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 P35

차에 탄 하는 일단 최대한 후진했다. 그리고 차의 방향을 건물에 맞추고 이번에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충격이 하가의 몸을 덮쳤다. 차는 앞부분이 찌그러졌다. 건물도 벽이 거의 무너져 있었다. - P35

 이번에는 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데 그곳은 아무래도 목욕탕 같았다. (이 장면을 쓰기 위해 목욕탕과 차의 파괴 실험이 필요. 각각의 수리비를 경비로 처리) - P36

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하얀 바탕에 선명한 무늬가 그려진 고이마리 항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흉기인 듯하네요." 하가가 말했다. (고이마리라는 걸 쓰기 위해 골동품에대해 취재, 사들인 자료 몇 점을 경비로 처리) - P36

그 아이섀도는 올해 유행하는 색으로 장미색깔의 립스틱과 맞춰산 것이다. (이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화장에 대해 취재, 자료로 산 화장품 수십점 요금을 경비로 처리) - P36

시즈카는 도로 옆에 서서 미니스커트를 살짝 올리는 대담한 모습으로 히치하이크를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차도 세워주지 않았다.
"이럴 리 없는데." 시즈카는 분한 나머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를 가는 연습하다가 의치 파손, 경비 처리) - P37

"이상하네. 어디로 사라졌지?" 하가가 중얼거렸다.
화재 현장에서 몇 가지 물품이 발견되었다. 우선 여성용기모노 다섯 벌이 재가 되어 나왔다. 그중 한 벌은 오시마 비단이었다. 모두 새까만 재가 되었다. (실제로 태우는 실험. 기모노 다섯 벌 분량을 경비처리) - P38

또 진주 목걸이와 1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도 재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목걸이와 반지를 경비로) - P38

"아, 그러니까" 수사원이 말했다. "소고기, 파, 두부, 곤약,
달걀・・・・………." (이들 식품을 태웠을 때, 어떻게 되는지 조사하기위해 실험했다. 재료비는 경비 처리) - P39

그런데 3월 20일, 나는 지방 세무서의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필요 경비의 명세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나는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 제10회』의 원고 복사본과 함께 서류를 제출했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경비 대부분을 인정받지 못했다. - P39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 제10회를 쓴 이후 어떤 출판사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얼어붙은 거리의 살인』도 연재가 중단되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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