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스젠더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1600년대 철학에서도 언급되다니.


일본의 유명 가부키 배우 오노에 마쓰스케 尾上松助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본다. 
(중략)
얼굴의 주인공은 연극 <창녀 아사마 다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창녀다. 분장이 끝난 지금의 그녀는 사람이 아닌 유레이, 즉 유령이다. - P229

일본의 전통극 가부키에는 남자만 출연할 수 있고, 따라서 남자배우가 여성 역할을 맡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230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이따금 남성(보통은 소년)에게 여성역할을 맡겼으나 가부키에서 남성이 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차원이 다르다. 약 400 년 동안 가부키는 오직 남성들만 참여할수 있는 영역이었다.  - P231

창녀의 유령 역을 맡은 마쓰스케가 그랬던 것처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신을 마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좀 더 따져보면 마쓰스케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유령으로 두 번 변신한 셈이다. - P231

젠더 전환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온 주제다. 공연에서의 젠더 전환은 다양한 젠더 전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 P232

 일본에서는 특히 쌀의 여신 이나리가 젠더 전환 셰이프시프터로 자주 묘사된다. 이나리는 곡식을 관장하는 젊은 여신으로 그려지기도하고, 쌀가마니를 짊어진 늙은 남자로 나타나기도 하며, 자웅동체의 보살이 되기도 한다. - P232

젠더 전환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겉모습일까, 아니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언가일까? 세계의 수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신학자들이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논쟁해왔지만 아직도 확실한 답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 P232

학자 존 로크 John Locke는 1690년이 펴낸 《인간지성론》에서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정의하고 이해할 수 있은 방법을 모색했다.
(중략)
 로크는 원자가 아니라 원자의 배열이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며 우리 모두는 저마다 독특한 원자 배열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 독특한 배열을 ‘영혼soul‘이라 불렀는데, 의식이라 이해해도 무방하다. - P233

기본적으로 로크는 어떤 사람의 정체성(여기서는 젠더 정체성)이 그가 어떻게 보이는지 혹은 그가 자신의 자아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 P234

 베르다쉬 Berdache 남성은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들의 일을 하며 이따금 남성과 결혼하는 등 부족 내에서 남성이 아닌여성의 역할을 수행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전통에 따라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이라도 젠더 정체성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일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성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서 자신의 젠더 정체성까지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 P235

하지만 모든 문화에서 젠더 전환자를 존중했던 것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 중에는 여성들로 이루어진잔두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남성 역할을 하는 여성으로, 다른 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 P235

부족의 법을 수호하는 위대한 뱀 츄루tchooroo는 이 여성들을벌하고 사냥을 금지시켰다. 남성의 일인 사냥을 하는 것은 곧 법을 위반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 P235

우리는 셰이프시프터라면 으레 마법이나 주술로 모습을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젠더 전환 셰이프시프터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른성(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성)과 다른 모습이 되고 싶다는 내적 욕망을 표출한다. - P236

미국에서 복장 도착을 처벌했던 법 중 가장오래된 것은 1848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제정된 것으로,
‘자신의 성별과 맞지 않은 복장으로 공공장소에 나타나는 행동‘을 금지했다. - P236

미국정신의학회는 최근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 (자신의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상태)‘을 하나의 장애로 규정했다. 자신과 다른 성에 강하고 지속적인 동질감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은 성별 불쾌감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P238

 반면 전통적인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처럼 성에 대해 너그러운 문화라면 성별 불쾌감을 겪는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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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한글을 보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한글이 아주 특이하고 예뻐 보인다고 한다.
우리말은 용언이나 서술격조사에서 어미의 활용이 복잡하고, 조사의 사용법이 민감하여 외국인이 배우기에 그리 쉽지 않은 언어다. - P42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수강하는 전공과목을 영어로 된 교재로 배울 뿐만 아니라 수학을 영어로 쓰는 훈련을 받는다. - P43

첫째, 우리말에서는 명사, 대명사, 수사 등 체언을 수식하는관형사, 관형구(절)나 동사, 형용사 등 용언을 수식하는 부사, 부사구(절)와 같은 모든 수식어가 수식할 대상(피수식어)의 ‘앞에만‘ 오기 때문이다.  - P43

수학적 서술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정리라고 불리는 갈루아정리 Galois Theorem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내용이 어려우므로 구체적인 의미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

"2개의 부분적 순서관계를 갖는 집합들의 모둠 사이에"

여기서 부분적 순서관계가 2개라는 것인지 모둠이 2개라는 것인지 문장만 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 P44

이번에는 수학 문제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다음은 ‘2022년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1번 문제에서 마지막 문장이다.

"초기의 배열이 어떤 것이더라도, 작업 과정의 어떤 순간에는 가장 왼쪽의 개의 동전이 모두 같은 종류가 되도록 하는 순서쌍 (n, k), 1<k<2n을 모두 구하여라."

문장이 길고 어려워서 독자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 P44

둘째, 영어에서는 부정관사와 정관사를 쓰므로 문장에 나오는 명사가 어떤 특정한 것인지 불특정한 것인지를 구별하기 쉽지만, 우리말에는 그런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 P45

셋째, 우리말은 문장이 길어지면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는 서술어가 문장의 가장 뒤에 나오므로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긍정문인지 부정문인지 등을 문장을 다 읽고나서야 알 수 있다. - P46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영어에서는 문장에 ‘주어+서술어‘로 시작하는 기본적인 틀이 있는 반면, 우리말에서는 서술어가 문장의 맨 뒤에서 나오므로 주어를 생략하거나 주어와 잘맞지 않는 서술어가 등장하기 쉽다. - P47

넷째, 우리말의 부정문 사용법이 어려운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에게 어떤 명제의 ‘부정명제‘를 써보라고 하면 ‘어떤‘과 ‘모든‘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예를 하나들어보자. "세 문제를 받았는데 다 풀지 못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P47

"철수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이라는 문장에서도 철수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뜻인지 그 반대라는 뜻인지알 수가 없다. "철수는 영희같이 체력이 좋지않다"라는 말에서도 영희가 체력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잘 구별되지 않는다. - P48

끝으로 이것은 사소한 부분이어서 다섯 번째로 분류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우리말에서는 문장에서 비교되는 것(또는 인용되는 것)의 ‘동격‘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으나 영어에서는 그런 편이다. - P49

 국립국어원은 10년쯤 전에 갑자기 수학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 ‘최대값, 최소값의 표기를
‘최댓값, 최솟값‘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발표하여 수학 교과서, 참고서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고 수학자들의 반발을 크게 샀다.*


*대푯값에서 ‘푯‘이라는 글씨는 이전에 써본 적도 없는 글씨인 데댜 칠판에 이 글씨를 써 보면 벌레같이 보인다. - P50

 교과서 집필 시에는 물론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한국수학올림피아드 출제 등에서 수학자들은 두 개의 파로 나뉜다.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만족시키는 ~를 구하시오"와 같은문장에서 ‘만족하다‘가 맞다는 파와 ‘만족시키다‘가 맞다는 파가있다. - P51

숫자 읽는 법도 한자어 때문에 혼란스럽다. 
(중략)
그때 발표자는 535명을 ‘오백른다섯 명‘으로, 36506명을 ‘삼만육천오백여섯 명‘이라고 읽다. 즉, 백 단위까지는 한자어로 읽고, 십 단위부터는 고유어로 읽는다. - P52

따라서 사람들이 사소한 것이라도 정확한지 부정확한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에 좀 더 관대해지기를 바란다. - P54

최근 정부에러 2023년도 6월부터 우리도 난 나니를 쓰기로 발표했다.
(중략)
그런데 실은 아직도 국민 대다수가 만 나이와연 나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거나 그 차이를 굳이 따지려고 하지않는다. - P55

물론 이런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런오류가 생기는 것 자체보다는 그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그래서 아무도 반성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다. - P57

나는 남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문화에 ‘지적화‘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름을 붙이면 개념을 확대재생산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 P61

반면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우리나라보다는 지적문화가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 P61

 이 영상에서 사회자가 두 어린이에게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는 뭘까요?"라고 질문하니까 그중 한 어린이가 "잔소리는왠지 모르게 기분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라고 대답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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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돈의 역설
08. 루커스의 역설 Lucas paradox

자본 이동은 자본이 풍부한 선진국에서 자본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으로 일어난다는 고전 경제이론의 예측을 깨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자본이 흘러가는 ‘자본 흐름의 역전‘이 발생하는 현상,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루커스Robert Lucas가 1990년에 논문을통해 지적했다. - P133

 이혼을 앞두고 둘이 같이 살면서 모은 재산을 서로 나누어 가지기 위해 협의를 했는데, 루커스의 부인은 독특한 계약을 제안한다.
"로버트 루커스가 앞으로 7년 내에 노벨상을 수상하면, 그상금을 부인과 절반으로 나눈다."
루커스는 이에 동의했고, 둘은 이혼했다.  - P134

세상일이 재미있는 것은 정말로 나중에 루커스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기가 막히게 정확히 7년째인 1995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세간에 도는 말로는 이혼을 하며 내건 조건의 마감 날짜에서 한 달도 차이가 안 났다든가, 몇십 일이 차이 났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 P135

돈이 생기면 집이 없었던 사람들은 집을 사려고 할 것이다.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집값이 오르게 된다. 이런 미래는 충분히 기대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만약 어떤 나라에서 사업을 크게 일으킬 준비를하면, 사람들은 곧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므로 집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져 집값이 빠르게 오를 수가 있다.  - P136

그래서 루커스의 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경제를 따질 때 어떤 정책의 효과를 단순하게 예상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합리적 기대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섬세하게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P136

돈이 많은 선진국 사람들이 돈이 더 적은 개발도상국에서돈을 쓰고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널리 퍼진 통념이다.  - P137

이런 현상은 상식적인 일이다. 본래 돈이 많은 사람들이돈이 적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P137

그런데 루커스는 꽤나 자주 거꾸로 개발도상국의 돈이 오히려 선진국으로 들어오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려고 하는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 P139

세계적인 강대국인 러시아 역시 1998년 8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때는 한국 정부도 러시아에 받을 돈이 꽤 많이있었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은 한국에서도 큰 문제였다. - P141

모라토리엄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들로부터 루커스의 역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찾을 수 있다.
경제력이 약한 개발도상국들은 경제가 부실하기 때문에 돈이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나 정부가 불안할 위험이 있다. - P142

 모라토리엄으로도 빚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는 소위 디폴트default 라고 하여 아예 돈을 갚지 않겠다고 해 버리는 수도 있다. - P142

(전략), 갑자기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그 돈으로는 빵 열 조각 밖에 사지 못하게 된다. 크게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많은자본을 들여 독일 돈을 잔뜩 구했지만,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모인 작업자들이 아침 식사 한 번 하고 나면 그 모든 돈을 다날리게 된다. - P143

이렇게 한 나라의 정책이나 나라 전체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 위험을 흔히 뭉뚱그려서 소버린 리스크 sovereign risk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 P143

그런데 민주주의국가들이 많은 요즘에는그 나라의 전체적인 정치, 정책 상황에 얽힌 경제적 위험을 두루 말할 때에도 소버린 리스크라는 말을 자주 쓴다.
소버린 리스크에는 경제정책의 혼란뿐만 아니라 전쟁, 정변, 혁명 등의 위험도 포함되어 있다. - P143

이렇게 소버린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면 가난하고 개발이덜 진행된 나라에서 역으로 부유한 나라로 돈이 흘러드는 루커스의 역설이 일어날 수 있다. - P144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195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에 어떻게든 한국에 많은 숫자의 미군을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보았기때문이다.  - P144

그러므로 루커스의 역설이 일어나는 한 가지 이유는 돈이없고 가난한 나라일수록 정치 혼란과 경제 불안에 시달리는약소국일 가능성이 높고, 소버린 리스크가 클 가능성이 있기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루커스의 역설을 극복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단은 평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P145

 과학, 문화, 지식, 인재가 중요한 현대사회에서는 다른 여러 가지 차이보다도 바로 그런 기술 영역의 차이가 경제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점이 역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 P146

 신발을 만드는 작업은 사람 손이 꽤 많이 가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싼값에 고용할 수 있는 나라에 공장을 건설하는 편이 유리하다. 20세기 중반, 미국이나 유럽의 신발회사들은 그런 이유로 아시아에 신발공장을 지었다. - P146

자동으로 신발을 만들어 내는 로봇이 계속해서 발전한다고생각해 보자. 그러면 적은 돈을 받고 신발 만드는 작업을 하는직원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은 과거에 비해 큰 장점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로봇을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는 직원을 구하기 쉬운 편이 유리하다.  - P147

요즘 세상은 그렇기 때문에, 힘들여 산에서 캔광석을 팔거나 고된 농장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도 그 나라의 은행과 금융투자회사 사람들은 미국과 중국의 첨단 소프트웨어 회사에 투자한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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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플롯 짜기‘라고 하는 글쓰기 원리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글을 한 자라도 쓰기 전에 먼저 플롯, 즉 소설의 외양을 이루는 사건들의 개요를 짜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옛날 옛적에 "부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을 작가가 정해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인데, 정답을 아깝게 살짝 비껴간 얘기다. - P53

내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외적인 플롯에만 주목하고 있으니, 주인공이 이미 갖고 있는 내적인 ‘왜‘가 아닌 외적인 ‘무엇‘에 치중하는 결과가 된다. - P53

 플롯 속 사건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가? 주인공으로 하여금 구체적이면서도 정말로 힘든 어떤 내적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플롯 구상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 내적 변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한다.  - P54

‘외적 스토리 구조모형‘의 허구

주인공을 구상하기 전에 플롯을 짠다면 소설의 외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외적 사건의 틀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 P54

소설의 긴장, 갈등,
드라마가 모두 오로지 플롯에서 기인해야 할 텐데, 무슨 일이 어떤 순서로 벌어지는지 도대체 어떻게 정해야 하나?

- P55

그런 스토리 구조 모형의 시초이자 가장 칭송받는것이 바로 조지프 캠벨 Joseph Campbell이 주창한 ‘영웅 서사 구조‘다. 뒤이어 등장한 구조 모형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기본 전제는 신화, 소설, 영화 등을 관찰하면 비슷한 구조와 모양새가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형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웅의 내적 투쟁을 암시하기도 하고 ‘여정‘이니 ‘도전‘ 같은 말들을 수없이 언급하지만 정작 그 투쟁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 P56

생각해 보자. 그런 모형들은 하나같이 소설, 신화, 영화 등수많은 ‘완성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신화의 원형을 창작한 사람들이 과연 ‘외적 스토리 구조 모형‘을 본떠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 P56

그때 딱 빠지기 쉬운 착각이 좀 기름칠하고 광내면 해결되겠지‘ 하는 것이다. 스토리 속으로 뛰어들어 안에서부터 다시 써 나가야 하는 데다, 십중팔구 첫 페이지부터 재작업해야하는 마당에, 도리어 밖에서부터 다듬어 들어가는 작업에 몰두한다. 이러면 얄궂게도 소설의 문제가 고쳐지기는커녕 더 부각되기 쉽다. - P57

 이렇게 되면 작가의 본의가 결코 아니건만 독자는 슬슬 짜증이 난다. 작가가 좀 잘난 척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마치 "내 글솜씨 끝내주지?" 하는 것 같다. "내 존재는 잊고 스토리에 푹 빠져!"해야 할 텐데 말이다. - P57

아주 간단히 말해, 스토리란 누군가가 어떤 불가피한 문제와 씨름하면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랜 시간을 들여 매끈한 외관의 소설을 써낸다 해도 그저 이런저런 사건의 지루한 묘사에 그치고 말 뿐이다. - P58

 우리가 살면서 번번이깨닫는 점이지만, 우리 눈앞에 나타난 골치 아픈 문제는 사실갑자기 튀어나온게 아닐때가 많다. 수년, 수십 년, 심지어 태어나서 지금까지 쌓여 왔던 무언가가 원인일 수 있다. - P58

모든 소설은 거두절미하고 중간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미 3천 년 전에 ‘인 메디아스레스in medias res‘, 즉 ‘사태 한가운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브오보ab ovo‘, 즉 ‘알(시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설파했다. - P59

문제는, 작가들이 이 ‘인 메디아스 레스‘라는 개념의 뜻을오해해서, 그냥 진행 중인 사건의 한복판에 독자를 밀어 넣고 설명은 나중에 하는 기법 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 P59

정확히 짚고 가자. 소설의 본체는 중간에서 시작하는 게맞다. 무엇의 중간이냐, ‘스토리의 중간‘이다.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펼쳐지는 것은 ‘스토리의 후반부‘다. 플롯이 거기서부터 진행된다. - P60

이제 다음 몇 장에 걸쳐 그 전반부를 낱낱이 파헤쳐 보려고 한다. 그렇게 소설의 시작점을 정확히 잡고난다음에야 비로소 소설의 밑그림 작업을 정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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