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나이 드는 즐거움 - 자유롭고 우아한 노년을 위한 할머니 의사의 건강조언, 인생조언
류슈즈 지음, 박주선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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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랜75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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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저석과 번개가 같은 현상이라고?

모른다는 사실을 완전히 자각한 무지는, 과학 발전을 알리는 도입부이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 - P117

1820 년대가 되자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이 별개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실험 결과들이 속속 등장했다. 과학자들의 과제는 전기 현상과 자기현상을 봉합해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되었다. 그 과제를 해결하고 전자기학을 정립한 과학자가 바로 맥스웰이었다. - P118

나침반은 왜 늘 북쪽을 가리킬까?

(전략)
자석은 직접 접촉을 하지 않고도 물체를 움직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불가사의한 것, 수수께끼에 싸인 것, 신비한 것, 마술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자석의 힘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로 알려져 있다. - P119

 나침반을 맨 처음 만들어 사용한 이들은 고대 중국인들이다. 나침반은 화약, 종이와 더불어 중국의 3대 발명품중 하나로 꼽히지만, 언제 누가 나침반을 발명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 P119

중국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침반을 사용한 시기는 11세기초 송나라 시대부터였다. 이 시기에 중국인들은 항해에 나침반을 이용했는데, 이 나침반은 자침을 물 위에 띄운 형태였다. 해와 별이 없는 흐린날에는 이를 통해 남북을 알아냈다. - P120

중국의 나침반은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인들도 처음에는 바늘처럼 생긴 자석을 물에 띄워 방향을 알아냈다. 하지만 14세기를 거쳐 15세기가 되면서 유럽인들은 물에 바늘을 띄우는 대신, 바늘을 판에 고정해 방향을 찾는 나침반을 만들었다. - P121

나침반 바늘이 남북을 가리키는 성질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13세기 프랑스의 천문학자 페트루스 페레그리누스(Petrus Peregrinus de Maricourt, ?~?)였다. - P121

실험을 중요하게 여겼던 페레그리누스는 실험을 통해 자기현상에 대한 중요한 연구 결과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극(polus)‘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도 그였다. 페레그리누스는 자석에는 두 극이 있으며,
자석을 둘로 나누어도 각 조각들은 다시 두 극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 P122

나침반의 북극인 자북극, 지리상의 북극, 나침반의 중심을 선으로 연결했을 때 생기는 사잇각이 편각이다.
한편, 나침반 바늘은 지표면과 수평으로 있지 않고 극에 가까워질수록 아래쪽을 가리킨다. 복각은 자침의 방향이 수평면과 이루는 각도를 말한다. - P123

복각의 발견자는 영국의 로버트 노먼(Robert Norman, ?~?)으로 알려져있다. 노먼은 선원이었는데, 약 20년간 선원으로 일한 뒤 은퇴하고 런던에서 항해용 기계를 만들어 팔았다. 그러던 중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의 끝이 항상 아래로 기울어지는 현상을 알아챘다. 바로 복각을 발견한 것이다. - P123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자연철학자와 기술자의 사회적 지위에는 큰차이가 있었다. 기술자들은 자연철학자들보다 지위가 낮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대규모 건축이나 항해, 예술, 상업, 군사 등의 분야에서 기술자들의 중요성이 커졌다. - P124

길버트는 18년간의 자석 연구를 정리해 1600 년에 《자석에 관하여》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길버트는 자석과 자기에 관한 지식을 정리하고이론 체계를 세웠다. 그는 자연철학자들이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P124

지구가 자석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길버트는 천연 자철광으로 인공 소지구인 ‘테렐라(Terrella)‘라는 지구 모형을 만들었다. - P125

길버트의 연구 기반이 된 자료가 바로 노먼의 실험과 책이었다. 특히 노먼이 발견한 복각 개념은 길버트가 지구 자기장을 이해하는 초석이 되었다. - P125

전기에도 종류가 있다? 없다!

전기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은 16세기 말에 자석을 연구했던길버트였다. 전기와 자기를 구분하기 위해 전기를 연구했던 길버트는 밀도가 극히 낮은 전기소라는 액체가 전기를 매개한다고 생각했다. - P126

영국 캔터베리 출신의 아마추어 실험가 스티븐 그레이 (Stephen Gray,
1666~1736)는 1729 년에 전기가 접촉을 통해 꽤 먼 거리까지 전달된다는것을 발견했다. 그레이는 수많은 물질들을 가지고 전기가 통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실험을 했다.  - P127

사람 몸에도 전기가 통하는지 궁금했던 그레이는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와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아이를 허공에 매달고 유리 막대로 옷을 문질렀다.  - P127

이후 전기학은 프랑스의 샤를 프랑수아 드 시스테르네 뒤페(CharlesFrançois de Cisternay du Fay, 1698~1739)가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보병 장교였지만 화학자로 변신했고, 마찰을 통해 여러 물체를 대전시켰다. 그 결과전기를 띤 유리는 전기를 띤 호박을 잡아당기지만, 전기를 띤 유리 조각끼리는 서로 밀어내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보고 뒤페는 전기에는 수지성과 유리성 두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 P128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뒤페의 이중 유체 이론에 반대하고 전기는 한 종류의 유체로 이루어졌다는 ‘단일 유체 이론‘을 주장했다. 프랭클린은 어떤 물체에 유체가 과잉되면 양전하를 띠고, 유체가 부족해지면 음전하를 띤다고 생각했다. - P128

오늘날 우리는 마찰 전기를 전자의 이동으로 간단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전자라는 개념이 없어서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설명은 불가능했다. - P129

전기를 저장하고 수학으로 표현하다

프랭클린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전기를 연구하고 있는 동안 네덜란드의 레이던이라는 곳에서는 놀라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레이던 병‘의 발명이었다. - P130

레이던병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유리병의 안쪽과 바깥쪽에 주석 판을 붙인다. 그 유리병에 물을 조금 채우고 철사나 못을 꽂은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는다. 이때 철사나 못이 아래쪽의 물에 닿아야 한다. - P130

레이던병을 발명한 뮈스헨브룩은 오른손으로 레이던병을 잡고 왼손으로 철사에 스파크를 만들어 내려고 했다. 그때 그는 온몸이 벼락을 맞은것처럼 떨렸다고 한다.  - P131

시간이 흐르자 과학자들은 전기 현상을 정량화하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중략) 이 발견의 영광은프랑스의 샤를 오귀스탱 드 쿨롱(Charles-Augustin de Coulomb, 1736~1806)에게 돌아갔다. - P132

쿨롱은 대전된 물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두 물체가 서로 밀어내는 힘이 커지고, 이와 반대로 멀어질수록 밀어내는 힘이 작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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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번째 바퀴
하바롭스크로

호수치고는 너무 크다. 일본 혼슈 지역 면적과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혼슈보다 클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물에는 바닷물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요컨대 옛날에는 그곳이 바다였다는 말일 수도 있다. - P75

이 호수 근처에 이르쿠츠크라는 도시가 있다. 당신은 그곳에서 묵었다. 낮에는 도시를 산책했다. - P75

당신은 그 도시에서 더 동쪽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이제 모스크바가 상상도 못할 만큼 멀어져버린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사흘만 더 타고 가면 이 대륙의 동쪽 끝자락에 닿는다. - P76

이게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 인간과 잠이 깨버린 인간과 일어나기 싫은 인간을 다 더해도 결국은 단 한사람이다. 자신이 혼자라고 이토록 절절히 느껴지는 순간은 없다. 설령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동행을 깨워서 화장실에 갈 수는 없다. 인간은 화장실에 갈 때는 늘 혼자다. - P76

눈을 감은 채 더듬더듬 볼일을 보고 곧바로 침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화장실 문 손잡이에 손을 얹고 힘을 꽉 주며 밀었다.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반대편으로 움직였고, 그 바람에 당신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발바닥이 바닥에서 붕떴다. 커다란 암흑이 입을 쫙 벌리며 당신을 집어삼켰고, 순식간에 음량이 열 배로 높아진 선로와 기차 바퀴의 마찰음이 파도처럼 엄습해왔다. - P77

나는 지금 열차에서 떨어진 것이다. 시베리아 한복판의 초원에 혼자 누워 어둠 속에서얼어가는 것이다. 내일까지 열차가 지나가지 않을 게 뻔하다. 설령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해도, 내가 여기 누워 있는 것을 어떻게 알린단 말인가. 두툼한 트레이닝복을 잠옷 대신 입었는데도, 벌써부터 냉기가 목 언저리로 비집고 들었다.  - P77

그렇게 생각하고 당신은 걸음을 내디뎠다. 바람은 없었지만, 걷기 시작하자 앞에서 맞부딪쳐오는 공기 저항이 얼음벽으로 변했다. (중략)
그래도 계속 걸어가자 몸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공도 조금은 어둠에 익숙해졌을 즈음, 굵직한 나무 다섯 그루가 오른쪽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 P78

천만다행이라 생각한 순간, 당신은 아주 잠깐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오열도 마치 딸꾹질이나 재채기처럼 우스꽝스럽게 지나가버렸다. 감동에 젖어들 여유가 없었다. - P78

당신이 러시아어 단어를 늘어놓으며 손짓발짓으로 야간열차에서 떨어졌다고 설명하자, 이해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턱짓을 했다. - P79

남자는 사모바르*에서 뜨거운물을 졸졸 받아 홍차를 넣고, 거대한 설탕단지와 함께 당신 앞에 내려놓았다. 죽을 다 먹은 당신은 후유 한숨을 내쉬고 홍차를 마셨다. 어느새 추위가 어떤 감각인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러시아 전래의 특유한 주전자 - P79

당신은 이르쿠츠크를 가리키며 "어제 난 여기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조금 동쪽으로 옮기고 열차를 탔는데, 화장실에 가야 해서 화장실 문을 열었죠. 그랬는데" 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떨어진다는 동사를 몰라서 움직이던 손가락을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탁자 테두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흉내를 냈다. 남자는 웃으며 당신의 어깨를 두드렸고, ‘내 집처럼 편히 생각하세요‘라는 듯한 말을 건넸다. 적어도 당신에게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 P80

이미 열차에서 떨어졌으니 더이상 떨어질 리 없건만 지금부터 정말로 떨어져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를 다 마시자, 남자는 당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따라오라고 했다.
부엌 찬장 뒤쪽으로 돌아서자, 커다란 통이 놓여 있고 뜨거워 보이는 물에서는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 P80

통주위에는 낡은 모피가 깔려 있었다. 곰의 털가죽이었다. 자기 손으로 사냥해서 잡았을까.
찬찬히 보니 얼굴도 붙어 있다. 곰의 얼굴은 누군가의 얼굴과 아주 비슷했다.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아 불안해졌다.  - P81

 몸을 정갈하게 한다고 뭐가 변하겠느냐고 생각해본들 아무 소용도 없는 지금 당신은 자기가 평소에 어떤 순서로 어떻게 몸을 씻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물에 희미하게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저건 여자의 얼굴일까 남자의 얼굴일까 생각해본다.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느 쪽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젖어 있어서 분명치 않다. - P82

물은 식어가기는커녕 오히려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육수가 되어버린다. 통 밑에 아궁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전에 먹은 새콤달콤한 사과 무스가 장 속에서 발효되기 시작해, 하반신이 왠지 모르게 불안정해졌다. - P82

당신은 눈을 번쩍 떴다. 어두운 천장이 눈 바로 위에 있다. 차체가덜컹덜컹 흔들리는 소리, 선로와 기차 바퀴의 마찰음. 화장실에 가고싶다. 시계를 보니 새벽두시 반이었다. 아침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성가셔도 일어나서 갈 수밖에 없겠지. - P83

여덟번째 바퀴

빈으로

아주 최근의 일이다. 당신은 빈에서 있는 공연에, 비행기를 타지 않고 야간열차로 가기로 했다. 당신은 몇몇 댄스 페스티벌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후로 초청이 잇달았고, 교통비는 늘 상대방이 부담해서 이제 더이상 조금이라도 싸게 가는 방법을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 P84

함부르크에서 워크숍을 끝내고 다음날 야간열차로 빈으로 이동한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의욕이 샘솟았다. 요즘에는 재미있는 사람을 별로 못 만났다. 재미있는 사건도 접하지 못했다. 돈 걱정이 사라져 최단거리를 택하게 된 탓이 아닐까.  - P84

당신은 무거운 트렁크를 질질 끌며 게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객실에 트렁크를 들여놓았다. 그리고 복도에 서서 창으로 플랫폼을 내다보았다. 역 뒤편에 새로들어선 호텔의 레스토랑이 보인다. 레스토랑 벽은 투명한 유리로 만든데다 조명이 밝아서 실내가 또렷이 보였다. - P85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혼자 올라탔다. 대기실에서 나온 승무원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 여성이 막 차에 오른 여성의 얼굴을 보고 놀라며 "어머나" 하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복도에서 길음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재미있는 일이 시작될 게 틀림없다. - P85

당신 머릿속에서 염가판 시나리오 서너 개가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죠. 최근에 이 열차를 타셨나요?"
"아뇨, 야간열차는 오늘이 처음이에요. 하지만 저도 당신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요. - P85

그때 또 한 사람 다른 승객이 올라타서, 승무원은 일단 그쪽으로 가버렸다.
발차 시간이 되자 그녀가 잰걸음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기억났어요."
검은 드레스 여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지금 막 생각났어요."
그러더니 두 사람은 소리를 맞춰 키득키득 웃었다. 당신은 따돌림을당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렇다고 가르쳐달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 P86

다음날 아침 아홉시, 당신은 시무룩하게 아침을 먹었다. ‘희망하는항목에 표시해주세요. 세 가지까지는 무료, 그 이상은 한 가지당 추가요금 1 마르크 50페니히를 받습니다‘라고 어젯밤에 건네받은 주문서에쓰여 있어서, 빵 두개, 버터, 치즈, 커피에 표시를 했다. - P86

 역시 버터와 치즈 혹은 버터와 잼이 필요하다. 그것만 택하고, 빵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난센스다. 아무래도 네 가지가 되고만다. 네번째는 사치가 아니라 필연인데, 왜 추가요금을 받아서 욕심부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할까, 그 정도 금액은 아예 처음부터 요금에포함시키면 좋을텐데. 아니, 어쩌면 사람은 일단 지갑을 열면 그 이상으로 이것저것 사고 싶어지기 마련이니, 그것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 P87

아아, 한심하긴 야간열차 아침식사에 제아무리 사치를 한들 낭비까지도 안 되니, 아침식사 가격에관한 생각은 이제 그만 집어치우자. - P87

 하노버 역에서 열차가 멈춰 차에서 내리는 몇몇 사람들을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별안간 객실 문이 열리더니 여자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아침이 된 후에 침대차에 타다니 이상하다. 아마도 함부르크행 보통열차에 타려다 잘못 알고 급히 올라탔겠시. 흐트러진 시트를보면 누구나 금방 자기 실수를 알아챌 텐데, 그 이자는 망설임 없이 벡씨 맞은편의 구깃구깃한 시트 위에 자리를 잡고, 창밖 상황을 열심히살폈다. - P88

"누구에게?"
"저를 죽이려는 남자가 있어요."
벡 씨는 곤란해지고 말았다. 혹시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일어나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건 망상일 뿐이라고 여기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 뭔가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  - P89

문이 섬뜩해 보인다.
금방이라도 노크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그것은 전염성 공포였다. 무슨수를 써서든 자기를 죽이려고 결심한 사람이 있다. 설득하려 해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도망쳐도 따라온다. 문을 닫고 집안에 숨으면, 자기가 나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문밖에서 기다린다. 길을걸어도 어느 모퉁이에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다. - P89

여자의 손을 잡고 둘이서 달리는 열차 창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졌다. 이렇게 두려워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심정을 처음으로 이해할 것 같았다. - P90

 언뜻 보기에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여자의 겉모습에 백 씨는 휘말려버렸지만, 막상 여자의평범하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고 보니 불안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평범하고, 상대는 평범하지 않다는 마음이 갑자기 든 것이다. 그것은 이 여자의 불안이지 나의 불안이 아니다. 이 여자가 살해당할 거라는 말은망상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 P90

. 그러나 발견한 것을 지그시 바라보다보면, 머지않아 불안이 그 자리에 깃들면서 자기 안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야간열차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눈에 흡혈귀임을 알아챌 수 있는 상대를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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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어 글을 썼다.
하지만 보람은 없다.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①


용언의 어간에 붙는 건 어체언에 붙는 건,
조사다. 조사 중에서 방향이나 경로를 나타내는 조사는 문장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다 문장의 몸이랄 수 있는 체언이 어디를 향하는지 결정하는 터라 잘 가려 써야한다. - P90

내 문장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②


‘-에‘와 ‘-을(를)‘ 또한 가려 써야 하는 조사들이다. ‘에‘
는 처소나 방향 등을 나타내고, ‘을(를)‘은 목적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격 조사다. 따라서 구분해 쓰지 않으면 어색해진다. - P94

‘가다‘나 ‘보내다‘ 같은 동사에 맞는 방향을 나타내야 할때 ‘-을(를)‘을 붙이니 어색하다. - P94

‘-에‘와 ‘-에게‘, ‘에게서‘를 구분해 쓰는 것도 중요하다.

6. 적국에게 선전 포고를 하다.
7. 우리 정부는 미국에게 바뀐 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8.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아이들
9. 업자에게서 뇌물을 받은 공무원이 적발되다. - P95

조사 ‘-‘와 ‘에게‘의 차이는 ‘에‘는 무생물에, 에게‘는 생물에 붙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게서‘는 ‘-에게‘와 ‘-에서‘가 합쳐진 조사인데 쓰임에 따라 표현이 어색해질 수 있으니 가려 써야 한다.
따라서 선전 포고는 ‘적국에게‘가 아니라 ‘적국에 하는것이고, 정부는 ‘미국에게 아니라 ‘미국에 설명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한다. - P96

당신 문장은 이상합니다

(중략) 당신은 내게 그저 수많은 저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비아냥거림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게비쳤으리라. 그렇다고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 P98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장난처럼 비쳤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내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선생님의 물음을 여러 번들여다보다가 물음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식으로 묻게 되었을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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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①

-에 대한(대해) - P63

‘대한‘은 동사 ‘대對하다‘의 관형형이다. ‘대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풀이가 나온다.

① 마주 향하여 있다.
② 어떤 태도로 상대하다.
③ 대상이나 상대로 삼다. - P63

가령 ‘미래에 대한 불안‘은 미래가 불확실해서 불안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래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미래에 맞서기가 불안하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 P64

그런가 하면 ‘음식에 대한 욕심‘이나 ‘꿈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에 대한‘을 빼버려도 문제없을 만큼 ‘대한‘이 특별한 뜻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P64

 더구나 ‘맞선‘, ‘향한‘, ‘다룬‘, ‘위한‘ 등등의 표현들로 분명하게 뜻을 가려 써야 할 때까지 무조건 ‘대한‘으로 뭉뚱그러 쓰먼 글쓴이를 지적으류 게을러 보게 만들기도 한다. - P64

이처럼 ‘대해‘는 빼 버리면 그만일 때거 많지만, ‘대한‘을 쓰는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가령 ‘사랑에 대한 배신‘, ‘노력에 대한 대가‘처럼 단지 빼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 P66

사랑에 대한 배신
노력에 대한 대가

예문에서 보듯 ‘대한‘이 들어간 문장은 ‘대한‘을 활용한문장이라기보다 ‘대한‘이라는 붙박이 단어를 중심으로 나머지 단어를 배치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니 주체적으로 ‘대한‘을 선택해 쓴 것이 아니라 ‘대한‘에 기대서 표현한 것뿐이다. - P66

사랑을 저버리는 일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행위 또는 사랑에 등 돌리는 짓 등등
노력에 걸맞은 대가(또는) 노력에 합당한 대가 (또는)노력에 상응하는 대가 등등 - P66

함인주의 문장 1

우선 주격 조사로 대부분 ‘이, 가‘를 쓴 것이 특이했다.
흔히 주격 조사 하면 ‘은, 는, 이, 가‘를 꼽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가‘만이 주격 조사고 ‘은, 는‘은 보조사다. - P79

가령
‘모두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모두‘는 주격 조사 ‘가‘가 붙어 주어의 자격을 갖는 반면, ‘집은 예전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에서 ‘집‘은 보조사 ‘은‘이 붙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 P80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내가 말했다‘와 ‘나는 말했다‘는다른 뜻을 갖는 문장인 셈이다. - P80

아무려나 외국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가장 신경쓰이는 것이 바로 이 주격 조사이리라. 가령 영어라면 1,
You, He, She, They, It‘ 따위에 ‘이, 가든 ‘은, 는‘이든 붙여줘야만 한다. 이름 뒤는 말할 것도 없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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