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엘리베이터는 주택영단 이사장이나 설계자는물론이고 마포아파트 자금 지원은 거절했으나 건설 과정을끊임없이 살피던 USOM 측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미국의 반대로 10층에서 6층으로설계 변경을 해야 했을 때에도 마포아파트 설계자들은 비록 엘리베이터를 당장 설치하지 못하지만 엘리베이터 홀은 그대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대한주택공사,
대한주택공사20년사』, 360쪽. - P85

또 다른 규모는 ‘단지‘*의 넓이다. 마포주공아파트는 당시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의 압도적 크기였다. ‘한국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 마포 아파트보다 넓은 면적의 단일 주거지는 없었다.
엄덕문이 요청하고 장동운이 위촉한 외부전문가들과 주택영단 기술진은 전례 없는 크기의 땅을 3개의 주거동 유형으로빼곡하게 채워 단지를 완성했다.

*마포주공아파트 건립 당시
‘단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서로다른 이해가 있었다. 하나는 오늘날까지그 의미를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경우로,
‘도시계획도로나 공원 등 개발이불가능하거나 하천, 철길 등으로둘러싸인 일단의 주택지‘를 말하지만다른 하나는 박병주의 주장처럼
‘도시기반시설을 충분히 갖춘 계획적개발지‘를 의미했다. ‘집이란 자기 집울담 안만 좋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도로, 하수, 상수 사정, 시장(점포)의 위치, 초등학교, 어린이놀이터, 병원 등위치가 자기 집과의 사이에 알맞게배치되어 있어 주부나 어린이가일상생활을 하는 데 편리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의미했다(박병주, 「주택금고에 부치는나의 제안: 단지화된 주택사업에우선토록」, 「주택] 제20~21호 [1967년12월], 39쪽). 이런 의미에서 박병주는수유리 국민주택지를 한국 최초의주거단지로 평했다. 이 글에서의
‘단지‘는 전자를 뜻한다. - P87

σ.
USOM Η Ω설계변경 - P208

군인 출신 테크노크라트 기획자와 모더니즘의 이상을 동경하던 설계자들의 야심만만한 아이디어에 당대의 시민들은 얼마나 공감하고 동조했을까?  - P209

그 밖에 공동시설로는 ‘어린이놀이터‘, ‘유치원‘, ‘탁아소‘
그리고 옥상에 ‘빨랫줄‘을 마련할 것이라고 하며, 건물 주변은
‘공원‘으로 꾸미고 ‘아파트‘마다 ‘구매장‘을 두어 시장에 나가는시간 낭비를 막아줄 것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전화를 가설하고
‘엘리베이터‘를 놓을 예정이라고도 한다.
설계도에 의한 시설계획을 펴 놓고 보면 퍽 이상적이고 혁신적인구조 같다. - P211

(전략). 생활 개혁과 공동생활의훈련을 도모하기 위해 시범으로 건설하는 이 ‘아파트‘가 성공한다면 장차는 주택과 공동시설이 함께 마을을 구성해줄
‘아파트‘가 잇따라 세워질 것이라 보는데, 이 성공 여부에 따라 대한주택공사에서는 장차 을지로에 11층 고급 아파트‘를 지을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아일보] 1962년 7월 30일자. - P211

 이런 점을 충분히 참작한다 하더라도 5·16 쿠데타와 함께 들어선 권력 집단이마포아파트를 생활 혁명을 위한 실험 대상으로 간주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쿠데타와 아파트에 대한 찬성과 반대, 호불호를넘어서서 말이다. ‘생활개혁‘과 ‘공동생활의 훈련‘ 등은 박정희가 언급한 ‘생활혁명‘과 ‘현대적인 집단 공동생활양식‘과 맞닿아있으며, ‘입식생활‘과 ‘장독대의 철폐‘, ‘라디에이터 난방 방식‘
등은 ‘고식적이고 봉건적인 생활양식에서 탈피‘의 구체적인내용이다. - P216

설계변경

10층 주거동 11개로 구성한 마포주공아파트 최초 설계는1961년 9월 일단 마무리됐고, 대한주택영단의 기관지 『주택』은 같은 해 12월 20일에 제7호를 발간했다. 쿠데타의 여파때문인지 발간 시기는 평소보다 넉 달 정도 늦어졌다. ‘발간이 늦어졌음을 우선 사과‘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집 후기」에는
"혁명이 있은 지 반년이 겨우 지난 오늘 주택영단에서는우이동에 211호, 답십리에 80호, 이태원에 61호의 국민주택을 완성했고, 대규모인 10여 동의 10층 ‘아파트‘가 마포 지구에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니 ‘복지사회 건설의 참된역군‘이 되어간다는 의미에서 사뭇 흐뭇한 감이 올해를 보내는 선물이라고 해둘까 싶다."*라고 전했다. - P216

* 대한주택영단, 「주택」 제7호(1961년 12월), 80쪽. - P217

보통 잡지 편집이 발행 한 달 전까지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적어도 1961년 11월까지는 10층 주거동 11개로 이루어진 마포아파트 최초 설계 내용이 여전히 유효했던듯 싶지만, 대한주택영단 문서과의 도면을 확인한 결과 1961년 9월에 작성된 Y자형 (C-1형) 주거동은 이미 일부가 6층으로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희춘건축설계연구소에서 작성한 C-1형 1층 전체 평면도는 1961년 10월에 6층으로변경됐다. - P217

최초 구상한 10층 높이의 아파트 주거동이 6층으로 변경된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를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대한주택공사는 미국의 반대와 함께 당시의 전력 사정과 기름부족, 열악한 상수도 현황 등을 꼽았다. - P217

 당시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USOM (미국경제협조처)은 아파트보다 난민구호주택을 더 많이 지을 것을 강력하게 원했고,
언론에서도 전기와 유류 사정을 들어 중앙난방과 엘리베이터설치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했다. - P217

미국의 반대

그렇다면 USOM은 왜 10층 높이의 마포주공아파트를 반대했을까? 1961년 11월 15일 USOM은 대한주택영단과 Y자형 주거동 6개로 이루어진 1단계 임대아파트에 대해설계협의를 한 바 있다.*

*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주택영단은 1961년 9월에 이미 10층 주거동을 6층으로 낮추는설계변경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두 달이지나 1961년 11월 15일 열린 USOM과의회의에서 설계변경 이전의 10층짜리 주거동 설계 내용을 놓고 협의에 나섰다. - P219

미분류 문건
PSD_H(Public Service Department_Housing)
1961년 11월 22일

경유:UD(Urban Development)
조지 그래버, UD_C(Urban Development_Chief)

마포주공아파트 제안, 마포, 서울, 대한민국 - P223

A. 배치계획

1. 지형 조건에만 주목한 도면은 완성도가 너무떨어진다. 이러한 정도의 도면 정보만으로 시공이 진행된다면시공 단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어떻게 지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 P223

B. 건축설계

2. 주거동의 전면 폭이 서로 다른 5가지 단위주택을 굳이한곳에 적용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나의 표준폭을 정하는 것이 평면을 단순하게 만들고 비용을 줄인다는점에서 당연히 필요하다.
3. 시공의 단순함과 비용 절감을 위해서도 출입문과창호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경우도 디테일이 같아야 한다.
현재의 내용은 이러한 점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
4. 방화계획 역시 불분명하다. 10층 건축물에 단 하나의계단실로는 위험하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계단실은반드시 외기에 노출되어야 한다. - P224

7. 단위주거 각 실의 마감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침실과 거실의 바닥을 널마루로 한다고 표기되어 있는데,
모양이나 유지 혹은 안전과 비용의 측면에서 다른 바닥재검토가 필요하다.
8. 지하층 점포 시설은 양곡이나 연료와 같은 필수적인것을 우선해야 하고, 오히려 점포 병용주택을 검토하는 것이바람직하다. - P225

C. 구조

1. 구조설계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다.
2. 기초공사 작업에 앞서 확인해야 하는 하층토조사에 관한 내용이 없다. 토질조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시공과정에서 비용 증가가 엄청날 것이며, 좋은 설계가 원천적으로불가능하다. - P225

4. 2.6미터 층고를 산정했는데, 보의 깊이가60센티미터라면 순(純)높이는 2미터에 불과하므로 의문이다.
5. 도면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않을 수 없다. 건축도면에서 분명하게 표기한 난간이 구조상세도에서는 단순 강재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 P226

D. 기계

(전략)
2. 변소는 공간 활용과 설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반드시 재검토하여야 한다. 배설물 처리와 환기 등을 위한파이프 설치에 대해 언급한 것이 없으며, 반드시 악취 방류를위해 팬과 더불어 기계적 장치가 들어가야 한다. 서구형 수세식화장실 설치에 대해 의문이다. - P226

4. 폭우 대비책이 없다.
5. 식수 공급을 위한 물탱크와 펌프 등등이 필요할것인데 이를 전혀 확인할 수 없다. - P226

E. 전기

2. 주거동마다 한 대의 엘리베이터를 둔다는 것에회의적이다. 승강기 대기 시간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며엘리베이터가 고장을 일으킬 경우에는 10층을 걸어 올라가야하는 불편함이 초래될 것이다. - P227

F. 결론

마포아파트 건설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기술 정보는 조화롭지도 않으며 불완전하다. 특히 기본 설계 (generaldesign)는 회의적이다. 바닥면적의 20퍼센트 이상이 로비와 통로 등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제안된 평면은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대한주택영단이 제안한 6개 동에 앞서 토지이용, 주거동의 향, 효율과 비용 등의 측면에서 통합적인 대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조지 C. 그래버 (George C. Graeber) - P227

USOM의 검토 의견은 점잖은 외교적 형식을 취했지만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설계 자체가 모든 면에서 미흡하다고평가하며 통합적 대안 마련이 우선이라면서 대한주택영단의 마포아파트 프로젝트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 P229

정부와 대한주택영단은 USOM의 의견을 수용해 10층이던 아파트 구상안을 6층으로 낮췄고, 1962년 9월 USOM의수석주택고문관인 귀도 낫조를 건설부 주택자문위원회위원으로 위촉하며 먼저 관계 개선에 나섰다. - P229

 귀도 낫조는 한국전쟁 후 재건 과정에서 전개된 한국의주택 정책에 대해 누구보다 밝은 인물이었다. 쿠데타 세력에대한 미국의 판단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그런 그의 반대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었을 것이다. - P229

 미국의 입장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이상을무리해서 실현시켜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반면, 민정이양 약속기한을 얼마 앞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인들에게는 미국의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해야 하는 사업이 마포아파트였다.
다가올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와 제6대 국회의원선거를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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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play of columns and rows is the heart of linear algebra. It‘s not totally easy,
but it‘s not too hard. Here are four of the central ideas:

1. The column space (all combinations of the columns).
2. The row space (all combinations of the rows).
3. The rank (the number of independent columns) (or rows).
4. Elimination (the good way to find the rank of a matrix).

I will stop here, so you can start the course. - P6

The Breakdown of Elimination

Under what circumstances could the process break down? Something must go wrongin the singular case, and something might go wrong in the nonsingular case. This may seem a little premature-after all, we have barely got the algorithm working. But thepossibility of breakdown sheds light on the method itself. - P13

Section 1.5 will discuss row exchanges when the system is not singular. Then the ex-changes produce a full set of pivots. Chapter 2 admits the singular case, and limps forward with elimination.  - P13

The Cost of Elimination

Our other question is very practical. How many separate arithmetical operations doeselimination require, for n equations in n unknowns? If n is large, a computer is going totake our place in carrying out the elimination. Since all the steps are known, we shouldbe able to predict the number of operations. - P14

Suppose we call each division, and each multiplication-subtraction, one operation.
In column 1, it takes n operations for every zero we achieve-one to find the multiple l,
and the other to find the new entries along the row. There are n 1 rows underneath thefirst one, so the first stage of elimination needs n(n - 1) = n² -n operations. (Another approach to n² - n is this: All n² entries need to be changed, except the n in the firstrow.) Later stages are faster because the equations are shorter.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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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를 마음대로 두드려서 얻은 숫자는 난수일까?

컴퓨터에서 난수random number가 어떻게 생성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중략)
 다음과 같은 두 수열을 보자.

000100100010010001000110001000100111100010101010101000011101011

1111000110001101000111100000100010000111110000100110100010000100

두 수열 중 하나는 내가 키보드에 마음대로 두드려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의 난수 생성 알고리즘을 이용한 결과이다. 당신은 이 두 수열을 구별할 수 있을까? 아마도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된다. - P67

만약 길이가 10,000인 0과 1, 두 값으로 이루어진 난수열random number sequence이 있다고 할 때, 가장 긴 연속하는 1의 길이가 4라면 직관적으로도 이 수열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P68

동전을 1,000회 연속으로 던질 때 앞면이 연달아 나타나는 횟수를 라고 하면, x < 8인 확률을 구하시오(계산이 좀 번거로우니, 건너뛰고 나중에읽어도 된다). - P68

결론적으로 동전을 10,000번 던질 때 앞면이 연속으로 나타나는 횟수가 8을 넘지 않을 확률은 약 0.0056%로 계산된다. - P71

하지만 도대체 진정한 ‘랜덤‘이란 무엇일까? 의외로 이것은 매우 미묘하고 심지어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동전을 던져서 생기는 수열은 ‘랜덤‘일까? - P72

첫째, 역사적 난수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진짜‘ 난수는역사와 무관하다. 따라서 역사적 난수를 분석하여 난수 추측성공률을 1만분의 1이라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이 난수는 여전히 ‘진짜‘가 아니다. - P74

둘째, 무한한 계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허용되어도 진정한난수는 도전자의 계산 속도에 의존하지 않는다. - P75

3단계 테스트: 분산 테스트, 난수 값의 변화 정도를 본다. 평균 테스트에서 기댓값이 100이라고 하자. 그러나 실제로 매번 10,000개의 난수 평균값을 확인할 때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정확히 100이라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런 상황은 좋은가, 나쁜가? - P76

배럴 테스트는 이미 상당히 정확한 테스트이지만 이 정확도는 배럴의 분할 밀도와 관련이 있다. - P79

바로 콜모고로프 스미르노프 검정 Kolmogorov-Smirnov test 줄여서 KS 검정‘이라고 한다. - P79

‘확실‘에서 ‘불확실성‘

앞에서 난수 검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기서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난수를 생성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흔히 컴퓨터의 난수 생성 알고리즘을 가짜 난수 생성 알고리즘 또는 결정식 난수 생성기 DRBG라고 하는데, 이는 한 자리 이진수 0 또는 1을 50%의 확률로 생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82

그렇다면 왜 ‘가짜 난수 생성 알고리즘‘이라고 할까? 굳이 ‘가짜‘를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한 ‘진짜‘ 난수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82

이후 구체적인 알고리즘 예에서도 모든 가짜 난수 생성 알고리즘에는 ‘주기‘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 알고리즘은 매우 많은난수를 출력한 후, 다시 이전의 출력 모드로 돌아가 자신의 출력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가짜‘ 난수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유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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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한국주택 유전자』가 세상에 나온 때는 2021년 6월이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가 지구 전체를 두텁게 감싸고 있을때였다. 그때까지 벌써 1년 반이나 문을 열지 못한 학교를 뒤로하고 온라인으로 다시 한 학기를 마칠 즈음이었다. 오랜시간 공들여 책을 썼기 때문인지 몸도 전처럼 가볍지 않았고,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두가 모임을 기피하고 있었다. - P13

내용을설명하기보다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정리했느냐‘고 묻는 대학원생이나 건축가들에게 방법을 전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앞에두고 ‘나의 공부법과 태도‘를 보태면 연구가 책으로 엮이는 과정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13

『한국주택 유전자』를 쓰는 동안 곁눈질을 해서 몇몇 독립연구자와 함께 『경성의 아파트』라는 이름의 책도 엮었다.
1930년대 일본이 서구의 사례를 번역해 조선에 들여온
‘아파트‘가 지금의 ‘단지식 아파트‘와는 달리 거리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건축 유형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 책이었다. - P14

『마포주공아파트』는 『한국주택 유전자』의 또 다른심화편이다. 연대기적으로 본다면 20세기 초 『경성의 아파트』가 쥐고 달리던 바통을 넘겨받아 다른 주자에게 또전해야 할 뜀박질의 중간 주자 격에 해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바통을 받아 전달해야 할 마땅한 최종 목적지는 아마도 21세기일 것이니 『마포주공아파트』는 20세기 한국의 모던을 그대로 드러낸 전범이겠다. - P14

오래전 어떤 자리에선가 박정현 전 편집장과 마주 앉아
‘대한민국의 20세기를 오롯이 설명하는 물질적 대상‘을 골라 단행본 시리즈를 만들면 어떨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그 자리에서 ‘마포아파트‘와 ‘미군기지‘를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P15

반공주의와 발전주의 그리고 여기에 권위주의가 결합한 박정희 정권에서 탄생해 1970년대 후반에 완성을 본 ‘마포아파트 체제‘는 곧 대한민국의 공간 생산 방식이자 규범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는 아닐것이다. - P17

3 국가 프로젝트 이데올로기

1970년 전체 주택 중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95.3퍼센트로 415만 4,902호였고, 아파트는 0.77퍼센트인3만 3,372호에 불과했다. ○ 집은 곧 단독주택이었다.
50년 뒤 이 수치는 극적으로 바뀐다. 통계청이 발표한「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00년에 전체 주택 중47.8퍼센트였던 아파트의 비중은 2005년 (52.7퍼센트)에 절반을 넘겼고, 2016년 (60.1퍼센트)에 처음으로 60퍼센트대를 돌파한 뒤 계속 상승하여 2020년에는 1,166만 2,000호로 총주택 1,852만 6,000호의 62.95퍼센트를 차지했다. - P67

혁명 주체의 ‘시범‘

장동운 대한주택공사 초대 총재가 마포아파트 건설과 관련해
"이 일을 ‘시범아파트‘로 강력하게 추진한 배경에는 ‘혁명주체‘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신뢰 때문"○이라고 여러 차례밝힌 바 있다. "그 당시 ‘아파트‘라고 불리던 다세대주택은 주로영세민들이 살고 있어서 ‘빈민굴‘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이런 인상을 불식시키려고 10층의 최신식 아파트단지를지으려고 했습니다. - P69

발전국가와 건축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난다. 1960년대한국에서 미래를 현재로 호출하는 건축의 이데올로기와발전국가의 계획은 유례없이 공명했다. - P69

아파트의 점유율이 0.77퍼센트에불과했던 1970년에서 10년쯤 더 거슬러 올라간 1961년에 중앙집중식 난방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아파트를 입주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오르고 내리는 장면은 아직 손에 잡히지않는 흐릿한 미래 풍경이었다. 어떤 면에서도 당대에 불가능해보였던 예외, ‘각종 첨단 설비와 장치‘는 이데올로기를 전하는 매체였다. 이는 "근대문명의 혜택"이었고, 체제 홍보와 대북선전의 장치였다. - P71

최신 설비를 갖춘 10층 아파트 설계는 한국 건축가들에게미지의 영역이었다. 엄덕문 당시 주택영단 건설이사 겸건축부장은 ‘영단 수준으로는 설계 못 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엄덕문은 와세다대학교 부설 고등공업학교에서건축을 공부했고, 훗날 세종문화회관(1978), 과천정부종합청사 (1982) 등을 설계하며 당대 최고의 건축가 가운데한 명으로 성장하는데, 그런 그에게도 10층 아파트는 무모한 계획이었다.** 군사 정부의 서슬에 기가 눌려 죽을 상황이었지만 못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위대한 세대의 증언 : 주거혁명의기수 장동운」, 「월간조선 뉴스룸]2006년 7월호 중 엄덕문 회고 부분.

**그는 1957~1958년에 ICA주택기술실장을 거쳐 1958년 11월 11일 대한주택영단 건설이사로 취임했으며영단의 겸직제가 실시된 1959년부터 건축부장도 겸했다. 1961년 11월 11일 퇴임했는데 이때는 이미 마포아파트 기본설계를 마무리한 뒤였다. 그의 후임으로 1962년 7월 1일 홍사천이 취임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5년 뒤인1966~1967년경에 다시 반복된다.
정부종합청사 설계경기에서 등장했던 ‘규모의 실현 문제‘가 그것이다. 이에대해서는 박정현, 「건축은 무엇을했는가』, 70~97쪽 참조. - P73

10층 높이는 아니었지만, 외국인들을 위한 주택인 한남동 유엔빌리지의 외인아파트처럼 다양한 설비를 갖춘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역시 중앙산업이설계하고 당시 한국에서 가장 다양한 경험을 지닌 육군공병단이 시공을 맡아 완공 후 이를 대한주택영단에 인계한 것이었다. - P77

엄덕문의 회고는 장동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포아파트의 예외적인 위상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이내 자부심으로 바뀌고, 이 과정에서 마포아파트의이데올로기는 증폭된다. 엄덕문은 ‘최고 전문가들을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해 단 3개월 만에10층 아파트 설계를 마무리했다‘**며 전형적인 극복의 서사를 들려준다.

**대한주택공사는 분야별외부 전문가를 위촉해 자문위원회,
건설추진위원회, 건설위원회 등을조직해 선례가 없는 사업의 기술적난관을 극복하고자 했고, 이를
‘공동설계‘라 불렀다. "공사는 마포아파트의 설계를 할 때 당시건축계의 권위였던 김희춘, 강명구,
정인국, 나상진, 김종식, 합성권 씨 등을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공동설계‘를했으며, 약 50억 원의 예산을 들여이 건물들을 1961년 10월 16일에 착공, 1962년 12월 말까지 준공할예정이었다." 같은 책, 360쪽. - P77

계획가 박병주, 건축가 엄덕문과 김중업의 평가

설계 책임을 맡았던 엄덕문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린다.
최첨단 · 최신식 설비를 갖추고 입식 생활을 추구한 마포아파트가 이후 변기와 싱크대 등 주택 관련 산업이발전하는 데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건축가 김중업 역시[경향신문] 좌담회를 통해 "마포아파트 건립은 결국 ‘대규모아파트군(群) 형성‘의 첫 케이스"라 평한 뒤 ‘인공대지와 도시입체화‘를 통해 택지 문제와 공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위대한 세대의 증언 : 주거혁명의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활황을기수 장동운」, 「월간조선 뉴스룸』2006년 7월호. 실제로 주택산업과의연관성 측면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경우는 한강맨션아파트라 할 수 있다.
한강맨션아파트 준공(1970.9.9)이후 소위 ‘맨션산업‘은 타 분야의구가했으며, 부엌 가구와 침대를 비롯해다채로운 가전제품과 가구, 도기에이르는 품목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 P81

‘시범‘을 물리적 규모나 최신 설비 도입이 아니라 정책적인 측면으로 해석한 이도 있었다. 대한주택영단 주택문제연구소단지 연구실장을 거쳐 홍익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긴 박병주는1967년 발표한 글에서 마포의 임대아파트가 분양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금의 현실에서 임대아파트가 사라져도 괜찮은지 탄식에 가까운 질문을 던진다. - P83

‘공영주택 건설 비용에 정부의정책 자금이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때문에 대단위 주택지에서 (공공이) 먼저 몇 곳을 골라 집을지은 뒤 이를 모범적 선례로 삼도록 민간을 지도하는 의미‘*가
‘시범‘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소수에 불과했다. 마포아파트 건립을 추진한 이들에게 임대냐 분양이냐는 부차적 문제였고, 이 결정이 지금까지 이어지는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규모, 이 규모가 선사하는새로운 도시 경관, 즉 발전과 등치되길 원한 혁명의 이미지였다.

* 박병주, 「아파트 건설과주택사업」, 「주택」 제19호(1967년 6월),
78~79쪽. 나아가 박병주는 가능한한 단지 규모를 대단위로 해야 성과를 1거둘 수 있다면서 ‘단지화 전략‘을 적극 주장했다. 박병주, 「주택금고에 부치는 나의 제안: 단지화된 주택사업에 우선토록」, 『주택』 제20~21호(1967년12월), 39쪽. - P83

그러나 장동운은 USOM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데실패한다. USOM의 입장에서 마포아파트는 적절치 않은사업이었다. 담당자의 말대로 규모와 형식 모두 최빈국의 주택정책에 적합하지 않았다. 장동운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자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건설부장관이었던 조성근과최고회의 자금 담당 오정근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육사 8기동기인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도 부탁한다.

김 부장에게 "내가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데 협조해달라"며 아파트 조감도를 보여줬더니 "아주 좋다"고 하더군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일본인 재산을 처분해 마련한 귀속자금으로 마포아파트 자금을 마련했어요. 당시 화폐로 5억 원 정도 됐을 겁니다.*** - P85

***「위대한 세대의 증언 : 주거혁명의기수 장동운」, 「월간조선 뉴스룸』2006년 7월호. - P84

실제로 엘리베이터는 주택영단 이사장이나 설계자는물론이고 마포아파트 자금 지원은 거절했으나 건설 과정을끊임없이 살피던 USOM 측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미국의 반대로 10층에서 6층으로설계 변경을 해야 했을 때에도 마포아파트 설계자들은 비록 엘리베이터를 당장 설치하지 못하지만 엘리베이터 홀은 그대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 대한주택공사,
『대한주택공사20년사』, 360쪽.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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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살해는 잘 알려진 대로 한 개인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도 최초의 가장 큰 범죄다(『토템과 터부』를 볼 것).
죄의식을 느끼는 감정은 그 주된 원천을 여기에 두고 있다. 이것이 유일한 원천인지 어떤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연구 상황으로 보아 죄의식과 속죄 욕구의 정신적 근원을 확정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 P551

어린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는 우리가 이미 밝혔듯이 양의성兩意性)을 갖는 관계다.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기며 제거하도록 부추기는 증오에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두 가지 태도는 모두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인도한다. - P551

이렇게 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사랑이라는 두 충동은 억압에 의해 무의식으로 침잠하게 된다. 하지만 심리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위험(거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포기하지만, 반면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근본에 있어서는 동일한 외적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해도내적이고 충동적인 위험으로 간주된다. - P552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버지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로서만이 아니라 응징으로서도 거세는 끔찍한것이다.  - P552

도스토옙스키에게 이런 양성적 성향이 있었다는 가정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 성향은 잠재적 형태(내재적인 동성애)를 띠고있는데, 그가 남자 친구들과 나누었던 우정과 연적이었던 남자들에 대한 그의 특이한 애착, 그리고 그가 쓴 중편 소설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예들이 일러 주듯, 억압된 동성애밖에는 달리설명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 대한 그의 놀라운 이해력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 P552

 뭔가 새로운 것을 추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아 속에 영구적인하나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동일시는 자아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자아 속에 자리를 잡지만, 조화를 이루는 것이아니라 특이한 심급으로서 자아의 다른 구성 부분과 대립하게 된다. - P553

만일 아버지가 거칠고 폭력적이었고 잔인했다면,
그때 초자아는 이러한 특징들을 물려받을 것이고, 억압되어야만했던 수동적 태도는 초자아와 자아의 관계 속에서 다시 형성된다. - P553

윤리 의식이 형성되는 정상적인 과정은 위에서 묘사한 비정상적인 과정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 양자 사이의 경계를 아직은 분명히 알아낼 수는 없지만, 양자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억압되어있는 여성성이라는 수동적 구성 요소가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 P554

 이미 알려진것들에 이 양성적 특질을 첨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엄습>이라는 이 조숙한 징후는 아버지와 자아의 동일시였고, 이 동일시는 초자아가 응징으로서 허락한 동일시이기도 했다. <너는 너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자 했다. 이제 너는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너는 죽은 아버지밖에는 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히스테리성 증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제다. - P554

요약하자면 한 개인인 아버지와 욕망의 대상인 아버지의 관계는 그 내용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아와 초자아의 관계로 변형되는 것이다. 두 번째 무대에서 다시 연극이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유래한 이러한 어린아이의 반응들은 현실에서 자양분을 얻을 수 없을 때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특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 P555

승리와 애도, 혹은 즐거운 축제와 슬픈 초상이 공존하는 이 단계를 우리는 이미 아버지를 죽이고 토템 식의 음식 잔치를 벌이는 원시 부족에게서 볼 수 있었다.⁸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을 때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그가 일으켰던 발작들이 응징의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리라.

8 「토템과 터부」를 볼 것. - P556

히스테리성 증후가 갖고 있는 의미가 복잡한 변화를 보인다는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도스토옙스키가 겪었던 발작들의 의미를앞에서 살펴본 초기 단계를 넘어서서 심화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¹⁰

10 누구보다도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발작의 의미와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친구인 스트라호프에게 그는 간질성 발작을 일으킨 이후 자신이 극심한 신경과민과 의기소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느끼게 하고 자신을 짓누르는 알 수없는 무거운 죄의식에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자신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퓔뢰프-밀러의 도스토옙스키의 신성한 병』). 이러한 자아 규탄 속에서 정신분석학은 도스토옙스키가 <정신적 현실을 알고 있었다는 흔적을보게 되고, 이 알 수 없는 죄의식을 의식할 수 있도록 시도할 것이다원주 - P557

아버지와의 관계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다른 두 영역에서, 다시 말해 국가의 권위와 신에 대한 신앙에서 그의 행동을 결정했던 것도 바로이 죄의식이었다. 국가와 관계에서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버금가는 <작은아버지>였던 차르에게 완벽에 가까운 복종을 보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실제로도 차르와 죽음의 연극¹¹을 벌였고,
차르는 또 매우 빈번하게 그의 발작 속에 모습을 나타내곤 했다.

11 페트라솁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잔인한 장난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특사령이 내려진 사건을 지칭한다. 물론 사형 의도는처음부터 없었고, 형장에 끌려 나가는 것조차 미리 계획된 각본이었다. 당시 같이 투옥되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은 이 연극으로 실성하고 만다. - P557

그는 자신의 대단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이 힘을 극복할수 없었다. 공정해야 할 분석이 공정성을 잃었고, 오직 편파적인 세계관을 가졌을 때만 내릴 수 있는 판단으로 도스토옙스키를 심판했다고 혹자는 우리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종교 재판관의 입장을 취하면서 도스토옙스키를 전혀다르게 심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의 제기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로서는 도스토옙스키의 결정이 신경증 때문에생긴 사고 금지 현상¹²에 의해 내려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이의 제기에 약간의 토를 달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12 생각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금지하는 의식작용으로서 무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심적 갈등의 주요한 한 증후다.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도 간혹 관찰할 수 있지만, 도스토옙스키를 다루고 있는, 특히 그의 신앙문제를 다루고 있는 프로이트의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은 없다>고 말해야 될 때<신은 죽었다>는 식의 환언법을 쓰는 경우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 P558

가장 꾸밈없이 표현된 경우는 물론 그리스 전설을 따르고 있는비극이다. 이 비극에서도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은 역시 주인공 자신이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완화시키거나 숨겨야만 한다. 분석하면 아버지 살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우회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때 이 아버지 살해의 의도는 분석의 준비 과정이 없는 상황 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 P559

영국의 희곡 작품 속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한층 간접적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직접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죄악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데, 이 사람에게는 그의 행동이 아버지 살해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 P559

 죄의식은 신경증의 진전 과정과 완벽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할 수 없는 그의 무능에 대한 지각 행위쪽으로 이동해 있다. 몇 가지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죄의식을 초개인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자격을 따진다면, 과연 누가 이 채찍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¹³

13 『햄릿』 제 2막 2장 - P560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앞의 두 작품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이 소설에서도 살해는 다른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러나이 다른 사람은 주인공인 드미트리와 살해당한 사람과 같은 친족관계를 맺고 있고, 또 그의 행동에서 성적 경쟁 관계가 동기였다는 점이 공개적으로 밝혀져 있다. - P560

누가 실제로 행동을 저질렀느냐의 문제는 거의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심리학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단지 누가 이 행동을 원하고 있었으며, 완결된행동을 누가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느냐를 밝히는 것이다.¹⁵ 이런 이유로 해서, 다른 사람들과는 대비가 되는 알료샤를 제외한 모든 형제들은 똑같이 죄인이었다.

15 할스만의 경우에 대한 프로이트의 언급에서 능동적인 범죄에 대한 실제적인적용을 찾아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여기에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대하여 다시 논하고 있다. - P561

오히려 이것은 한성자가 살인자를 경멸하고 증오하려 했던 자신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이런 유혹을 느꼈던 자기 자신을 형편없는 인간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범죄자에 대해 도스토옙스키가 가지고 있던 애정은 실제로 끝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공감은 불행한 자에게 보내는 동정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것이었다. - P561

 죄의식에 짓눌려 있는 작가의 극단적인 경우에서 단지 좀 더 수월하게 이 메커니즘을 식별해 낼 수 있는 것뿐이다. 동일시에 의한 이러한 애정이 도스토옙스키가 주제를 선택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략). 근원적인 죄악인 아버지 살해를 저지른 죄인을 다룬 것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서였고, 이런 죄인을 다루면서 그는 문학적으로 고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P562

 신경증 환자에게서는 결코 드물지 않은 죄의식은 이 경우 뭔가 손으로 만지는 것으로 대체된 것인데, 노름을 하며 지게 된 빚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는 빚쟁이들에게서 벗어나 러시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노름에서 돈을 따야만 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 P562

그는 도박을 위한 도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¹⁶

16 도스토옙스키는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도박그 자체다. 맹세하건대, 비록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돈이 필요한 처지이지만, 돈 욕심이 나서 도박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원주 - P563

우리는 이 사실을 그녀의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녀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유일한 출구였던 남편의 문학 창작이 가장 잘 진전되는 때는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재산마저 저당을잡혔을 때였다고 쓰고 있다. 물론 아내가 이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의식이 그가 자기 자신에게스스로 가한 응징에 의해 해소되었을 때, 비로소 작업을 방해하던 금지가 사라졌던 것이고, 성공을 향해 몇 발자국 옮겨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¹⁷

17 퓔뢰프-밀러는 도박장의 도스토옙스키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다 잃을 때까지, 완전히 파산할 때까지 그는 테이블에 남아 있었다. 완전한 파멸을 맞이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악령은 창조의 수호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그의 영혼에서빠져나갔다> 원주. - P563

나의 친구이기도 한 작가가, 비록 소설 속에 나오는 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비밀스러운 흔적을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한 해석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의도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다고알려 왔을 때, 이는 예술 창조의 한 본성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 P564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기도 한 이 환상은 어머니는 청년을 자위라고 하는 두려운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그를 성에 입문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 기초해 있다(속죄를 다루는 많은소설들은 같은 기원에서 비롯된 작품들이다). 자위라는 <악습>이 노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¹⁸ 작가가 두 손의 격정적인 움직임을 특이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는 데서 자위행위와 노름벽 사이의 파생 관계를 읽을 수 있다.

18 1897년 12월 22일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이후 모든 탐닉으로 대체되는 <첫 번째 탐닉>이 이 자위라고 추측했다(프로이트, 편지 79) - 원주, - P566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마는 노름에서 벗어나려는 싸움이 뒤따랐던 노름벽과 그로 인해 반복되었던 자기 응징의 기회들이 자위의 강박적 반복과 동질의 것이라면, 자위의 강박적 반복이 도스토옙스키 생애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놀라운 일이 아니다. - P567

이러한 만족을 억압하려는 노력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이므로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²⁰

20 지금까지 내가 취했던 관점들은 노이펠트Jolan Neufeld가 쓴 「도스토옙스키,
정신분석적 소묘」라는 탁월한 글에서 대부분 이야기되었던 것들이다-원주 - P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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