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살해는 잘 알려진 대로 한 개인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도 최초의 가장 큰 범죄다(『토템과 터부』를 볼 것). 죄의식을 느끼는 감정은 그 주된 원천을 여기에 두고 있다. 이것이 유일한 원천인지 어떤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연구 상황으로 보아 죄의식과 속죄 욕구의 정신적 근원을 확정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 P551
어린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는 우리가 이미 밝혔듯이 양의성兩意性)을 갖는 관계다.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기며 제거하도록 부추기는 증오에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두 가지 태도는 모두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인도한다. - P551
이렇게 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사랑이라는 두 충동은 억압에 의해 무의식으로 침잠하게 된다. 하지만 심리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위험(거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포기하지만, 반면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근본에 있어서는 동일한 외적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해도내적이고 충동적인 위험으로 간주된다. - P552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버지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로서만이 아니라 응징으로서도 거세는 끔찍한것이다. - P552
도스토옙스키에게 이런 양성적 성향이 있었다는 가정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 성향은 잠재적 형태(내재적인 동성애)를 띠고있는데, 그가 남자 친구들과 나누었던 우정과 연적이었던 남자들에 대한 그의 특이한 애착, 그리고 그가 쓴 중편 소설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예들이 일러 주듯, 억압된 동성애밖에는 달리설명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 대한 그의 놀라운 이해력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 P552
뭔가 새로운 것을 추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아 속에 영구적인하나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동일시는 자아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자아 속에 자리를 잡지만, 조화를 이루는 것이아니라 특이한 심급으로서 자아의 다른 구성 부분과 대립하게 된다. - P553
만일 아버지가 거칠고 폭력적이었고 잔인했다면, 그때 초자아는 이러한 특징들을 물려받을 것이고, 억압되어야만했던 수동적 태도는 초자아와 자아의 관계 속에서 다시 형성된다. - P553
윤리 의식이 형성되는 정상적인 과정은 위에서 묘사한 비정상적인 과정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 양자 사이의 경계를 아직은 분명히 알아낼 수는 없지만, 양자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억압되어있는 여성성이라는 수동적 구성 요소가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 P554
이미 알려진것들에 이 양성적 특질을 첨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엄습>이라는 이 조숙한 징후는 아버지와 자아의 동일시였고, 이 동일시는 초자아가 응징으로서 허락한 동일시이기도 했다. <너는 너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자 했다. 이제 너는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너는 죽은 아버지밖에는 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히스테리성 증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제다. - P554
요약하자면 한 개인인 아버지와 욕망의 대상인 아버지의 관계는 그 내용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아와 초자아의 관계로 변형되는 것이다. 두 번째 무대에서 다시 연극이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유래한 이러한 어린아이의 반응들은 현실에서 자양분을 얻을 수 없을 때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특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 P555
승리와 애도, 혹은 즐거운 축제와 슬픈 초상이 공존하는 이 단계를 우리는 이미 아버지를 죽이고 토템 식의 음식 잔치를 벌이는 원시 부족에게서 볼 수 있었다.⁸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을 때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그가 일으켰던 발작들이 응징의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리라.
8 「토템과 터부」를 볼 것. - P556
히스테리성 증후가 갖고 있는 의미가 복잡한 변화를 보인다는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도스토옙스키가 겪었던 발작들의 의미를앞에서 살펴본 초기 단계를 넘어서서 심화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¹⁰
10 누구보다도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발작의 의미와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친구인 스트라호프에게 그는 간질성 발작을 일으킨 이후 자신이 극심한 신경과민과 의기소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느끼게 하고 자신을 짓누르는 알 수없는 무거운 죄의식에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자신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퓔뢰프-밀러의 도스토옙스키의 신성한 병』). 이러한 자아 규탄 속에서 정신분석학은 도스토옙스키가 <정신적 현실을 알고 있었다는 흔적을보게 되고, 이 알 수 없는 죄의식을 의식할 수 있도록 시도할 것이다원주 - P557
아버지와의 관계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다른 두 영역에서, 다시 말해 국가의 권위와 신에 대한 신앙에서 그의 행동을 결정했던 것도 바로이 죄의식이었다. 국가와 관계에서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버금가는 <작은아버지>였던 차르에게 완벽에 가까운 복종을 보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실제로도 차르와 죽음의 연극¹¹을 벌였고, 차르는 또 매우 빈번하게 그의 발작 속에 모습을 나타내곤 했다.
11 페트라솁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잔인한 장난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특사령이 내려진 사건을 지칭한다. 물론 사형 의도는처음부터 없었고, 형장에 끌려 나가는 것조차 미리 계획된 각본이었다. 당시 같이 투옥되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은 이 연극으로 실성하고 만다. - P557
그는 자신의 대단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이 힘을 극복할수 없었다. 공정해야 할 분석이 공정성을 잃었고, 오직 편파적인 세계관을 가졌을 때만 내릴 수 있는 판단으로 도스토옙스키를 심판했다고 혹자는 우리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종교 재판관의 입장을 취하면서 도스토옙스키를 전혀다르게 심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의 제기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로서는 도스토옙스키의 결정이 신경증 때문에생긴 사고 금지 현상¹²에 의해 내려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이의 제기에 약간의 토를 달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12 생각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금지하는 의식작용으로서 무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심적 갈등의 주요한 한 증후다.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도 간혹 관찰할 수 있지만, 도스토옙스키를 다루고 있는, 특히 그의 신앙문제를 다루고 있는 프로이트의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은 없다>고 말해야 될 때<신은 죽었다>는 식의 환언법을 쓰는 경우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 P558
가장 꾸밈없이 표현된 경우는 물론 그리스 전설을 따르고 있는비극이다. 이 비극에서도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은 역시 주인공 자신이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완화시키거나 숨겨야만 한다. 분석하면 아버지 살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우회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때 이 아버지 살해의 의도는 분석의 준비 과정이 없는 상황 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 P559
영국의 희곡 작품 속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한층 간접적이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직접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죄악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데, 이 사람에게는 그의 행동이 아버지 살해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 P559
죄의식은 신경증의 진전 과정과 완벽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할 수 없는 그의 무능에 대한 지각 행위쪽으로 이동해 있다. 몇 가지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죄의식을 초개인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자격을 따진다면, 과연 누가 이 채찍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¹³
13 『햄릿』 제 2막 2장 - P560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앞의 두 작품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이 소설에서도 살해는 다른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러나이 다른 사람은 주인공인 드미트리와 살해당한 사람과 같은 친족관계를 맺고 있고, 또 그의 행동에서 성적 경쟁 관계가 동기였다는 점이 공개적으로 밝혀져 있다. - P560
누가 실제로 행동을 저질렀느냐의 문제는 거의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심리학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단지 누가 이 행동을 원하고 있었으며, 완결된행동을 누가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느냐를 밝히는 것이다.¹⁵ 이런 이유로 해서, 다른 사람들과는 대비가 되는 알료샤를 제외한 모든 형제들은 똑같이 죄인이었다.
15 할스만의 경우에 대한 프로이트의 언급에서 능동적인 범죄에 대한 실제적인적용을 찾아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여기에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대하여 다시 논하고 있다. - P561
오히려 이것은 한성자가 살인자를 경멸하고 증오하려 했던 자신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이런 유혹을 느꼈던 자기 자신을 형편없는 인간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범죄자에 대해 도스토옙스키가 가지고 있던 애정은 실제로 끝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공감은 불행한 자에게 보내는 동정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것이었다. - P561
죄의식에 짓눌려 있는 작가의 극단적인 경우에서 단지 좀 더 수월하게 이 메커니즘을 식별해 낼 수 있는 것뿐이다. 동일시에 의한 이러한 애정이 도스토옙스키가 주제를 선택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략). 근원적인 죄악인 아버지 살해를 저지른 죄인을 다룬 것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서였고, 이런 죄인을 다루면서 그는 문학적으로 고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P562
신경증 환자에게서는 결코 드물지 않은 죄의식은 이 경우 뭔가 손으로 만지는 것으로 대체된 것인데, 노름을 하며 지게 된 빚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는 빚쟁이들에게서 벗어나 러시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노름에서 돈을 따야만 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 P562
그는 도박을 위한 도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¹⁶
16 도스토옙스키는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도박그 자체다. 맹세하건대, 비록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돈이 필요한 처지이지만, 돈 욕심이 나서 도박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원주 - P563
우리는 이 사실을 그녀의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녀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유일한 출구였던 남편의 문학 창작이 가장 잘 진전되는 때는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재산마저 저당을잡혔을 때였다고 쓰고 있다. 물론 아내가 이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의식이 그가 자기 자신에게스스로 가한 응징에 의해 해소되었을 때, 비로소 작업을 방해하던 금지가 사라졌던 것이고, 성공을 향해 몇 발자국 옮겨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¹⁷
17 퓔뢰프-밀러는 도박장의 도스토옙스키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다 잃을 때까지, 완전히 파산할 때까지 그는 테이블에 남아 있었다. 완전한 파멸을 맞이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악령은 창조의 수호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그의 영혼에서빠져나갔다> 원주. - P563
나의 친구이기도 한 작가가, 비록 소설 속에 나오는 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비밀스러운 흔적을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한 해석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의도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다고알려 왔을 때, 이는 예술 창조의 한 본성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 P564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기도 한 이 환상은 어머니는 청년을 자위라고 하는 두려운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그를 성에 입문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 기초해 있다(속죄를 다루는 많은소설들은 같은 기원에서 비롯된 작품들이다). 자위라는 <악습>이 노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¹⁸ 작가가 두 손의 격정적인 움직임을 특이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는 데서 자위행위와 노름벽 사이의 파생 관계를 읽을 수 있다.
18 1897년 12월 22일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이후 모든 탐닉으로 대체되는 <첫 번째 탐닉>이 이 자위라고 추측했다(프로이트, 편지 79) - 원주, - P566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마는 노름에서 벗어나려는 싸움이 뒤따랐던 노름벽과 그로 인해 반복되었던 자기 응징의 기회들이 자위의 강박적 반복과 동질의 것이라면, 자위의 강박적 반복이 도스토옙스키 생애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놀라운 일이 아니다. - P567
이러한 만족을 억압하려는 노력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이므로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²⁰
20 지금까지 내가 취했던 관점들은 노이펠트Jolan Neufeld가 쓴 「도스토옙스키, 정신분석적 소묘」라는 탁월한 글에서 대부분 이야기되었던 것들이다-원주 - P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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