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엘리베이터는 주택영단 이사장이나 설계자는물론이고 마포아파트 자금 지원은 거절했으나 건설 과정을끊임없이 살피던 USOM 측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미국의 반대로 10층에서 6층으로설계 변경을 해야 했을 때에도 마포아파트 설계자들은 비록 엘리베이터를 당장 설치하지 못하지만 엘리베이터 홀은 그대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대한주택공사, 대한주택공사20년사』, 360쪽. - P85
또 다른 규모는 ‘단지‘*의 넓이다. 마포주공아파트는 당시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의 압도적 크기였다. ‘한국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 마포 아파트보다 넓은 면적의 단일 주거지는 없었다. 엄덕문이 요청하고 장동운이 위촉한 외부전문가들과 주택영단 기술진은 전례 없는 크기의 땅을 3개의 주거동 유형으로빼곡하게 채워 단지를 완성했다.
*마포주공아파트 건립 당시 ‘단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서로다른 이해가 있었다. 하나는 오늘날까지그 의미를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경우로, ‘도시계획도로나 공원 등 개발이불가능하거나 하천, 철길 등으로둘러싸인 일단의 주택지‘를 말하지만다른 하나는 박병주의 주장처럼 ‘도시기반시설을 충분히 갖춘 계획적개발지‘를 의미했다. ‘집이란 자기 집울담 안만 좋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도로, 하수, 상수 사정, 시장(점포)의 위치, 초등학교, 어린이놀이터, 병원 등위치가 자기 집과의 사이에 알맞게배치되어 있어 주부나 어린이가일상생활을 하는 데 편리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의미했다(박병주, 「주택금고에 부치는나의 제안: 단지화된 주택사업에우선토록」, 「주택] 제20~21호 [1967년12월], 39쪽). 이런 의미에서 박병주는수유리 국민주택지를 한국 최초의주거단지로 평했다. 이 글에서의 ‘단지‘는 전자를 뜻한다. - P87
군인 출신 테크노크라트 기획자와 모더니즘의 이상을 동경하던 설계자들의 야심만만한 아이디어에 당대의 시민들은 얼마나 공감하고 동조했을까? - P209
그 밖에 공동시설로는 ‘어린이놀이터‘, ‘유치원‘, ‘탁아소‘ 그리고 옥상에 ‘빨랫줄‘을 마련할 것이라고 하며, 건물 주변은 ‘공원‘으로 꾸미고 ‘아파트‘마다 ‘구매장‘을 두어 시장에 나가는시간 낭비를 막아줄 것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전화를 가설하고 ‘엘리베이터‘를 놓을 예정이라고도 한다. 설계도에 의한 시설계획을 펴 놓고 보면 퍽 이상적이고 혁신적인구조 같다. - P211
(전략). 생활 개혁과 공동생활의훈련을 도모하기 위해 시범으로 건설하는 이 ‘아파트‘가 성공한다면 장차는 주택과 공동시설이 함께 마을을 구성해줄 ‘아파트‘가 잇따라 세워질 것이라 보는데, 이 성공 여부에 따라 대한주택공사에서는 장차 을지로에 11층 고급 아파트‘를 지을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아일보] 1962년 7월 30일자. - P211
이런 점을 충분히 참작한다 하더라도 5·16 쿠데타와 함께 들어선 권력 집단이마포아파트를 생활 혁명을 위한 실험 대상으로 간주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쿠데타와 아파트에 대한 찬성과 반대, 호불호를넘어서서 말이다. ‘생활개혁‘과 ‘공동생활의 훈련‘ 등은 박정희가 언급한 ‘생활혁명‘과 ‘현대적인 집단 공동생활양식‘과 맞닿아있으며, ‘입식생활‘과 ‘장독대의 철폐‘, ‘라디에이터 난방 방식‘ 등은 ‘고식적이고 봉건적인 생활양식에서 탈피‘의 구체적인내용이다. - P216
설계변경
10층 주거동 11개로 구성한 마포주공아파트 최초 설계는1961년 9월 일단 마무리됐고, 대한주택영단의 기관지 『주택』은 같은 해 12월 20일에 제7호를 발간했다. 쿠데타의 여파때문인지 발간 시기는 평소보다 넉 달 정도 늦어졌다. ‘발간이 늦어졌음을 우선 사과‘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집 후기」에는 "혁명이 있은 지 반년이 겨우 지난 오늘 주택영단에서는우이동에 211호, 답십리에 80호, 이태원에 61호의 국민주택을 완성했고, 대규모인 10여 동의 10층 ‘아파트‘가 마포 지구에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니 ‘복지사회 건설의 참된역군‘이 되어간다는 의미에서 사뭇 흐뭇한 감이 올해를 보내는 선물이라고 해둘까 싶다."*라고 전했다. - P216
* 대한주택영단, 「주택」 제7호(1961년 12월), 80쪽. - P217
보통 잡지 편집이 발행 한 달 전까지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적어도 1961년 11월까지는 10층 주거동 11개로 이루어진 마포아파트 최초 설계 내용이 여전히 유효했던듯 싶지만, 대한주택영단 문서과의 도면을 확인한 결과 1961년 9월에 작성된 Y자형 (C-1형) 주거동은 이미 일부가 6층으로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희춘건축설계연구소에서 작성한 C-1형 1층 전체 평면도는 1961년 10월에 6층으로변경됐다. - P217
최초 구상한 10층 높이의 아파트 주거동이 6층으로 변경된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를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대한주택공사는 미국의 반대와 함께 당시의 전력 사정과 기름부족, 열악한 상수도 현황 등을 꼽았다. - P217
당시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USOM (미국경제협조처)은 아파트보다 난민구호주택을 더 많이 지을 것을 강력하게 원했고, 언론에서도 전기와 유류 사정을 들어 중앙난방과 엘리베이터설치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했다. - P217
미국의 반대
그렇다면 USOM은 왜 10층 높이의 마포주공아파트를 반대했을까? 1961년 11월 15일 USOM은 대한주택영단과 Y자형 주거동 6개로 이루어진 1단계 임대아파트에 대해설계협의를 한 바 있다.*
*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주택영단은 1961년 9월에 이미 10층 주거동을 6층으로 낮추는설계변경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두 달이지나 1961년 11월 15일 열린 USOM과의회의에서 설계변경 이전의 10층짜리 주거동 설계 내용을 놓고 협의에 나섰다. - P219
미분류 문건 PSD_H(Public Service Department_Housing) 1961년 11월 22일
경유:UD(Urban Development) 조지 그래버, UD_C(Urban Development_Chief)
마포주공아파트 제안, 마포, 서울, 대한민국 - P223
A. 배치계획
1. 지형 조건에만 주목한 도면은 완성도가 너무떨어진다. 이러한 정도의 도면 정보만으로 시공이 진행된다면시공 단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어떻게 지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 P223
B. 건축설계
2. 주거동의 전면 폭이 서로 다른 5가지 단위주택을 굳이한곳에 적용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나의 표준폭을 정하는 것이 평면을 단순하게 만들고 비용을 줄인다는점에서 당연히 필요하다. 3. 시공의 단순함과 비용 절감을 위해서도 출입문과창호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경우도 디테일이 같아야 한다. 현재의 내용은 이러한 점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 4. 방화계획 역시 불분명하다. 10층 건축물에 단 하나의계단실로는 위험하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계단실은반드시 외기에 노출되어야 한다. - P224
7. 단위주거 각 실의 마감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침실과 거실의 바닥을 널마루로 한다고 표기되어 있는데, 모양이나 유지 혹은 안전과 비용의 측면에서 다른 바닥재검토가 필요하다. 8. 지하층 점포 시설은 양곡이나 연료와 같은 필수적인것을 우선해야 하고, 오히려 점포 병용주택을 검토하는 것이바람직하다. - P225
C. 구조
1. 구조설계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다. 2. 기초공사 작업에 앞서 확인해야 하는 하층토조사에 관한 내용이 없다. 토질조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시공과정에서 비용 증가가 엄청날 것이며, 좋은 설계가 원천적으로불가능하다. - P225
4. 2.6미터 층고를 산정했는데, 보의 깊이가60센티미터라면 순(純)높이는 2미터에 불과하므로 의문이다. 5. 도면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않을 수 없다. 건축도면에서 분명하게 표기한 난간이 구조상세도에서는 단순 강재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 P226
D. 기계
(전략) 2. 변소는 공간 활용과 설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반드시 재검토하여야 한다. 배설물 처리와 환기 등을 위한파이프 설치에 대해 언급한 것이 없으며, 반드시 악취 방류를위해 팬과 더불어 기계적 장치가 들어가야 한다. 서구형 수세식화장실 설치에 대해 의문이다. - P226
4. 폭우 대비책이 없다. 5. 식수 공급을 위한 물탱크와 펌프 등등이 필요할것인데 이를 전혀 확인할 수 없다. - P226
E. 전기
2. 주거동마다 한 대의 엘리베이터를 둔다는 것에회의적이다. 승강기 대기 시간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며엘리베이터가 고장을 일으킬 경우에는 10층을 걸어 올라가야하는 불편함이 초래될 것이다. - P227
F. 결론
마포아파트 건설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기술 정보는 조화롭지도 않으며 불완전하다. 특히 기본 설계 (generaldesign)는 회의적이다. 바닥면적의 20퍼센트 이상이 로비와 통로 등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제안된 평면은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대한주택영단이 제안한 6개 동에 앞서 토지이용, 주거동의 향, 효율과 비용 등의 측면에서 통합적인 대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조지 C. 그래버 (George C. Graeber) - P227
USOM의 검토 의견은 점잖은 외교적 형식을 취했지만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설계 자체가 모든 면에서 미흡하다고평가하며 통합적 대안 마련이 우선이라면서 대한주택영단의 마포아파트 프로젝트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 P229
정부와 대한주택영단은 USOM의 의견을 수용해 10층이던 아파트 구상안을 6층으로 낮췄고, 1962년 9월 USOM의수석주택고문관인 귀도 낫조를 건설부 주택자문위원회위원으로 위촉하며 먼저 관계 개선에 나섰다. - P229
귀도 낫조는 한국전쟁 후 재건 과정에서 전개된 한국의주택 정책에 대해 누구보다 밝은 인물이었다. 쿠데타 세력에대한 미국의 판단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그런 그의 반대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었을 것이다. - P229
미국의 입장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이상을무리해서 실현시켜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반면, 민정이양 약속기한을 얼마 앞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인들에게는 미국의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해야 하는 사업이 마포아파트였다. 다가올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와 제6대 국회의원선거를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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