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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인간 아닌 동물의 선호가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전형적인 인간은 분명 기본적인 생물학적 필요와 관련된 것들 이상의 선호를 가지고 있다.
미술, 음악 그리고 문학에 대한 관심과 관련된 바람과 목표의 연결망은 이의 분명한 사례들이다. - P244

이 책에서 이러한 논쟁을 해결할 수는 없으며, 심지어 적절하게 소개할수도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물이나 보금자리에 대한 필요와 같은 기본적인 생물학적 필요가 포함된 내용들, 그리고 인간의 복리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더 중요한 일부 내용들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이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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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의 그림자가 석양처럼 드리워진 미로를 걸어가면서, 우리는 구멍이 나타날 때마다 그 내부를 살피며 들어갈 수 있을지 가늠했다.
어떤 구멍들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고, 일부는 지붕도 없는 언덕의 성벽에서처럼 폐허가 되어 얼음에 덮여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널찍한 구멍이 우리를 부르듯 끝없는 심연을 향해 열려 있기도 했다. - P285

얼마 뒤 창문들이 줄줄이 나타났는데, 5개의 홈이 파인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의 불룩 튀어나온 부분에서 창문 너머 잘 보존된 큼지막한 공간이 돌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 P285

그 방은 공회당이나 집회 장소로 보였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벽을 따라 넓은 수평 띠처럼 전통적인 아라베스크 무늬가 오싹한 모습을 뚜렷이 드러냈다. 좀 더 수월한 건물 출입구를 찾지 못한다면, 그 창문으로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위치를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 P286

거대한 왼쪽 건물에 잔해가 쌓여 있어서 밟고 올라가기는 수월했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바라던 기회를 앞에 두고 한동안 망설였다. 태고의 신비 속으로 들어서긴 했지만, 완벽하게 보존된 불가해한 세월의 내부는 우리에게 더욱 끔찍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다시 마음을 추슬러야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 P286

우리가 들어갈 공간이 얼마나 넓을지는 직접 몸으로 부딪쳐봐야 알일이었다.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빙하가 거대한 건물 내부까지완전히 침투하지는 못했으므로, 붕괴되거나 지표면이 갈라진 곳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빙하 밑의 다리를 지나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P287

(전략). 그러나 빙하가 오랫동안 단계적으로 도시를 몰락에 빠뜨린 것은 아니었다. 눈사태, 강물의 범람, 산맥에 있는 얼음벽의 갑작스런 붕괴 등이 눈앞에 펼쳐진 독특한 상태에 대한 더 유효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 도시와 관계된 것이라면 어떤 상상력도 설득력이 있었다. - P287

VI

영겁의 죽음을 간직한 원시 석조물의 지하 미로는 벌집이 따로 없었다. 숱한 세월 만에 처음으로 인간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던 그 기괴한 소굴을 우리가 어떻게 헤매고 다녔는지 자세히 늘어놓는다면 지루할것이다. 여기저기에 많은 벽화들은 한 번도 세상에 보고된 바 없는 것이기에, 우리가 그곳에 들어간 최초의 인간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 P288

우리가 들어간 곳은 규모가 크고 정교한 건물 중 하나여서, 아득한 태고의 건축 양식에 대해 인상적인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내부 구획은 외벽만큼 거대하지 않았지만, 지하 공간은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 P288

 보이는 것마다 거대함과 웅장함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윤곽과 차원, 비율과 장식, 불경한 고대 석조물의 구조적인 뉘앙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인간이 아닌 숨결이막연하면서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벽화들은 그 기이한 도시의 역사가 수백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려 주었다. - P289

수평과 수직의 배열에서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양식은 하나였다. 그러나 가끔씩 아라베스크 띠장식을 따라 점무늬가 박혀있는 매끈한 카르투슈¹¹⁵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곧 그 기법이 모든 면에서 인류의 전통과는 무관하지만, 완숙미가 탁월할 뿐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고도로 발전된 문명의 소산임을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정도의 섬세함을 갖춘 조각품을 본 적이 없었다.
정교한 식물이나 야생 동물의 세밀한 표현은 대담한 조각 기법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생생했다. 나아가 전통적인 도안에 나타난 기교대차그ㄴ 시ㅇ하 수하 - P289

115) 카르투슈(cartouche): 바로크 건축 양식의 장식 디자인에서 판지의 끝이 말려 올라간 것 같은 모양의 무늬. - P352

아라베스크 장식은 풍화 작용을 겪지 않은 벽면에 깊이는 2.5센티미터에서 5센티미터 정도로 오목새김한 형태였다. 점무늬가 박힌 카르투슈의 경우 알려지지 않은 원시 언어와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비문이 분명했는데 매끄러운 표면을 오목새김한 깊이가 3.5센티미터 정도,
점무늬의 경우는 그보다 1센티미터 가량 더 깊었다. - P290

원시 종족의 비범한 역사의식 - 우리에겐 기적처럼 유리하게 작용했을 환경론은 벽화를통해서 놀라운 정보를 전달했으며, 우리는 사진을 촬영하고 스케치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 P291

영겁의 침묵에 빠져 있는 비인류의 석조물 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 어땠는지 대충이나마 설명하려면 쫓기는 듯한 분위기, 기억, 인상들이 뒤엉키는 무기력하고 당혹스러운 혼란을 떠올릴필요가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오싹한 세월의 깊이와 황폐함만으로 짓눌리겠지만, 워낙에 캠프에서부터 불가사의한 공포를 체험한데다 섬뜩한 진실을 담은 벽화들로 충격에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 P292

우리는 주위에서 계속 발견되는 5각형의 모티프를 원시 자연물에 대한 문화적, 종교적 찬미에 불과할 뿐이라고 각자 절박하게 스스로에게되뇌고 있었다. 황소를 신성시했던 크레타인, 갑충석을 신성시했던 이집트인, 늑대와 독수리를 신성시했던 로마인, 그밖에 다양한 동물을 토템으로 삼았던 원시 부족들의 장식 모티프처럼 말이다. - P293

그들은 지구생명체의 창조자이자 통치자였으며, 『프나코틱 필사본』과 『네크로노미콘에서 섬뜩하게 암시한 사악한 원시 신화의 근원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어느 별에서 신생 지구로 스며든 ‘그레이트 올드원‘이었다. 그들의 형태는 전혀 다른 진화를 거친 결과이며, 지구상의 어떤 존재보다 강력한 힘을 소유했다. - P293

앞으로 공개할 사진들이 없었다면, 나는 정신병자로 감금되지 않기위해서라도, 내가 보고 추측한 것들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역사의 초기 부분별 모양의 머리를 지닌 존재들이 지구에오기 전에 다른 우주, 다른 은하, 다른 행성에서 살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그들만의 신화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 P294

짧은 시간에 우리가 그토록 많은 사실을 추측해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가 아는 것은 대략적인 윤곽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그중의 상당 부분은 나중에 우리가 가져온 사진과 그림을 연구해서 얻은 결과다. 그 후속 연구 때문에 되살아난 기억과 막연한 인상이 댄포스의 예민한 성격과 그가 마지막에 봤다는 공포와 결합해서 그는 신경 쇠약에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해야만하는 일이었다. 충분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효과적인 경고를 할수 없으며, 우리는 경고를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질서한 시간과 생경한 자연 법칙이 지배하는 미지의 남극을 향해 꿈틀거리는 사람들의 미련 때문에 더더욱 이후의 탐사 활동을 기필코 저지해야 하는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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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데리다의 주장처럼 경험이 해체되어야 하고, 미첼의 주장처럼 그것이 담론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플럭서스 작품의 경험적인 차원은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을 현실 세계와 서로 연결하고, 장소와 집단에 대한 개인의 소속감을 확장하는 존재론적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실제적이거나 경험에 근거한 담론을 통해) 능력을 가지고 있다. - P87

이벤트와 플럭스키트는 부수적인 경험에 대한 주요한 경험, 즉 해석이나 연상의 가치를 존재론적으로 주장한다. 비록 존재하더라도 부수적인경험은 작품의 요점이 아니다. 즉 플럭서스는 포스트모던적 의미에서 보자면 메타 담론이 아니다.  - P88

이번 장의 나머지 부분은 교착상태를 협상하고, 진짜 경험 세계에 플럭서스를 위치시키지만, 그와 동시에 플럭서스 사물들을 이해하기 위한 담론적 맥락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를 제시한다. - P88

그러나 거의 모든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적인 습관의 세계로 물러나 미니멀한 플럭스키트와 이벤트를 결코 영원히 만들어내지 않을뿐더러,
<블링크> 그래픽이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예술적 미디어로 작업한다. 플럭서스는 "세계에 진실한 접근을 보장하는" 척하면서 독점적으로 경험주의적인 제작은 분명히 아니다. - P90

다윈파 예술사가인 디사나야케(Ellen Dissanayake)는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What Is Art for?)」에서 예술의 생산은 그것이 형식과 기능에서언어와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언어처럼 하나의 보편적인 생물학적 명령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순수미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고급 예술에 대해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들에 의해 생산된 미술은 "특별하다"라고 주장한다. - P90

디사나야케의 인문학적인 틀은 비록 그것이 예술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없다고 할지라도 미학을 허용한다. 즉 "자기를 자위하거나 조각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예술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 맥락을 벗어나서 미학적인이유가 있기에, 퍼포먼스를 정교하게 행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특별하게 되며,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를 리얼리티로 전환한다."⁷⁴ - P91

74) 엘런 디사나야,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101쪽. - P297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그들 자신의 정서적인 세계를 추상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미학적인 메타 리얼리티를 표방하면서 구체적인 일상 재료에 관객이 주의력을 가지도록 했다. 마틴이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는 온전함과 충만함에 기여할 수 있는 이벤트, 경험, 정서, 감수성을 위한 여지를 우리의 삶에서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로 우리는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⁷⁵ - P92

75) 헨리 마틴, 『플럭서스와 인본주의적 전통』, 4쪽. - P297

덴마크의 플럭서스 예술가인 안데르센의 설치미술은 관객의 환경과 일상적인 삶 속으로 확장되는데, 재료들과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을 요구한다. 특히 성공한 그의 작품인 <트래블링 월(Travelling Wall)>(1985)은 통행인들에게 쌓아놓은 벽돌을 앞으로 나르도록 지시한다. - P92

플럭서스는 종종 예술로부터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 P94

 디사나야케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녀는효과적으로 예술을 긍정적이고 인류학적인 의미로 만들면서 일상적인 것을 메타 리얼리티로 전용했다. 마틴의 관용법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무시되었을 그녀 주위의 이벤트, 경험, 감성과 감수성을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 P94

나에게는 평범한 재료와 경험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주체에 개방되는동안에 주체에 대한 비판적인 관계성을 유지하는 감상적(냉소적인 것에 반대된 것으로), 공감적(소외된 것에 반대된 것으로), 인식적인 모델로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 P94

 문화 속의 예술에 대한 대부분의 심리학적 설명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난 이 이론에 따르면 비록 예술이 개인이나 심지어는 문화를 위한 것일지라도 그 예술이 반드시 심리적 트라우마의 부산물일 필요는 없다. 그 대신에 예술은 개인을 문화와 연결한다. - P96

심리치료사인 힐먼(James Hillman)은 특별한 것에 대한 디사나야케의 개념, 플럭서스 이벤트와 평범한 플럭스키트의 일상성을 공명하는 것과 관련지어 발견된 사물(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처럼)을 예술로 묘사했다. 의미심장하게 발견된 사물은 예술의 종말(맨 처음 뒤샹의 경우가 해당하는 것처럼)을나타내지 않으며, 오히려 힐먼의 경우에는 살아 있는 초월적인 메타 리얼리티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다. - P96

"살아 있게 되는 사물들"의 경우에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그것들의 지위에 대해 어떤 예측 불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가 사물들을 이해하고 탐구하며 깊이 있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 P97

 오히려 플럭서스는 그 물질주의에서 인간의 생존, 즉 그 경험으로 생겨나는 폭에 관한 모든 종류의 증거라는 도식을 합리화하는 것에 대한 인간의 저항에 근본적으로 개입한다.
맨더(Jerry Mander)는 지구촌 경제에 반하는 사례(The Case against theGlobal Economy)에서 모든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요소인 경험의 모든 목소리에 대한 심오한 민주주의, 관용과 주의력을 주장한다.⁷⁹ - P97

79) 제리 맨더 · 에드워드 골드스미스(Edward Goldsmith) 편, 『지구촌 경제에 반하는 사례: 그리고 지역으로 향하는 전환(The Case against the Global Economy:And for a Turn toward the Local)』(San Francisco: Sierra Books, 1996). - P297

플럭스키트와 이벤트에서 평범한 사물들과 행동들을 탐구하는 것은 주요한 지식과 다감각적인 경험을 낳는다. 이러한 경험을 논의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그것을 부분적으로는 부수적으로나 담론적으로 표현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플럭서스의 요점이다. - P98

탐구를 위해 택한 자료인 플럭스키트나 이벤트의 내용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가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플럭스키트의 사용자나 이벤트의 퍼포머에 의해서도 "특별함"의 속성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플럭서스의 재료들이 부분적으로는 미술로서 의미를 얻을 뿐만 아니라,
(좀 더 중요하게는) 그렇지 않다면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의 특별하지 않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초월적인 미학적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들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심대하기 중요하다. - P99

제5장
예술 형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기
플럭서스에서 영감을 받은 교육학

플럭서스 경험이 예술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험이 거기에 어느 정도 상관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즉 주요한 정보가 서구 문화에서 정보와 분석의 부수적인 형식에 부여하는 압도적인 우선권에 대한 긍정적인 균형임을보여준다. 플럭서스 경험은 논의의 틀 내에서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담론적기능을 갖는다. - P257

 그러기 위해 나는 몇몇(그리고 연관된)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실험교육학에 기반을 둔 광범위한 기반을 가진 교육학적 모델을 전개할 것이다.¹ - P257

제5장 예술 형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기: 플럭서스에서 영감을 받은 교육학

1) 특히 미국에서 내가 플럭서스의 역사, 즉 보이스, 브레히트, 케이지, 패터슨은모두 미국과 유럽에서 플럭서스와 유대관계를 가져왔다고 이미 개략적으로 기술했을 때 이것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 P325

대락적인 설명

(전략)
필리우는 자신의 저서 퍼포먼스 예술로 가르치고 배우기 (Teaching andLearning as Performing Arts)」의 서문에서 실험교육학에 대한 플럭서스와 관련된 예술 형식들의 적용 가는성을 묘사하고 있다. - P258

필리우는 이러한 이념들에 이어서 (독서도 결국 퍼포먼스의 한 형식임) 창조적인 독자를 말 그대로 초대하기 위해 자신의 저서를 3분의 1 정도 비워둔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 공간은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의도한다. "물론 독자는 기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이방인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퍼포머로서 게임을 기술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편안하게 계속 기술하게 만드는 길고도 짧은 책이다."⁸ - P259

8)로베르 필리우, 가르치고 배우기』, 1쪽. - P326

이 프로젝트에서도 공동체적 접근이 중요하다. 필리우의 저서에 소개된 인터뷰에서 케이지는 "더 많은 양의 정보 교환이나 경험 교환은 거기에있는 더 많은 사람과 즉각적으로 관여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우리가 지금사는 상황, 즉 넘쳐 나는 이념과 경험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⁹ - P260

9) 같은 책, 114쪽. - P327

그가 교환되는 것을 특징짓기 위해 "풍부한 아이디어와 경험"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은 크고 접근이 가능한 교환 물질의 세계를 전달한다. 이 물질은 몇 가지 예를 들면 책이나 전문화된 정보 같은 전통적인 것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거나 시적인 모델, 음악, 음식, 춤, 심지어는 지역적인 환경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 등 모든 형태의 인간 발명품들이다.¹⁰ - P260

10) 이 점은 95개 언어와 7개 지능 형태(Ninety-five Languages and Seven Formsof Intelligence)」(New York: Peter Lang, 1999)에서 다양성이 문화적인 자부심과 공유로 표현될 때 그 다양성으로부터 얻게 되는 복합 문화적인, 더 나아가복합 언어적인 교실의 이점을 주장하는 힉스에 의해서도 행해졌다. - P327

그러한 학습은 (동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상호 이해라는 목표를 갖는데, 그것은 전문가들이 세계가 어떻게 경험되어야 하는지를 구술하는 곳에서 전통적인 교육 모델에 역행하는 지점이다. 교육 비평가인 힉스(D. EmilyHicks)가 언급하고 있듯이 정치적이고 탈영토화된 주체라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에서 빌려온 것이다. - P260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 및 신경학 교수인 가드너는 인지적 차원에서 개인 차이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인간은 적어도 7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지능형태를 이용하여 세상과 상호작용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제1세계 교육체계의 모든 등급에서 표준화된 시험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언어, 논리-수학 형태 외에도 인간은 음악, 신체운동, 공간, 대인관계, 자기이해에 관한 지능을 다양한 수준에서 보유하고 있다.¹⁴ - P261

14) 하워드 가드너, 『다중 지능: 실제론(Multiple Intelligences: The Theory inPractice)』(New York: Basic Books, 1993), 8~9쪽. 또한 그의 마음의 틀 다중지능 이론 참고. - P327

이 성향은 매우 광범위하게 변하기 때문에, 교육은 많은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들을 포함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왜냐하면 교육과정 자체가 지시되는것이라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배워야 할 이유는없다. 기하학 수업이 공간적, 논리적, 언어적 혹은 수리적 능숙도에 의지할수 있다고 할지라도, 역사 수업도 언어적, 논리적, 공간적 앎, 그리고/아니면 개인적 방식의 앎을 통해 제시될 수 있다."¹⁵ - P262

16) 데이비드 겔런터, 『기계 속의 뮤즈: 인간 사상의 시 컴퓨터화(The Muse in theMachine: Computerizing the Poetry of Human Thought)』 (New York, FreePress, 1994), 46~47쪽. - P327

빌데메이르스는 현재의 고등교육 모델에서 지지하는 객관성에 대한 가식과는 거리가 먼, 주관적 리얼리티와 객관적 리얼리티를 연결하는 해석적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는 성인 교육을 참여자들 간의 거래적 대화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대화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개인적, 전문적, 정치적 및 여가 생활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 그리고 다양한 목적, 동기와 기대를 가져온다"라고 말한다.¹⁸ - P263

18) 빌데메이르스(같은 책, 65쪽)는 브룩필드(S. Brookfield)의 「성인 교육의 비판적정의(A Critical Definition of Adult Education)」(Adult Education Quarterly 1,
1985) 41쪽을 인용하고 있다. - P327

우리의 (정상적으로 구분된 객관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를 과정으로 한데 모으는 방식으로서의 이러한 교육 모델은 소위 표준 운동(StandardsMovement), 특히 그것이 고등교육과 과정에 적용됨으로써 미래 성공이 표준화된 시험들(예를 들면 SAT와 GRE)에 의해 "계량화"되었을 때 그 운동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 P264

인지 심리학자들은 재빠른 회상과 반복만을 요구하는 "표면" 사고, 그리고 "정보를 해석하고 얽힌 문제를 해결하며, 가능하다면 흥미롭고도 새로운 것도 만들어내기 위해 그 정보의 다양한 원천을 종합, 분석하는"²² 심층 사고를 구분한다. 경험적으로 가공 처리된 정보와 복합적인 지능의 골치 아픈 영역을 피하는 시험 문화는 인식적인 피상성을 조장한다. - P264

22) 피터 색스, 『표준화된 마음들: 미국의 시험 문화의 고 비용과 그것을 변화하기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209쪽. - P328

그러나 결국 경험적인 학습에 좀 더 중요한 평가를 할 때 어떤 위협에 직면하게 되는 전문 지식의 문제는 무엇인가? 아마도 한쪽에는 우리 직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전문 지식의 기준이 실제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 P265

탐구적인 창조성을 통해 일종의 인식적인 교차 훈련을 허용하는 ‘인터미디어 도해‘(<그림 33> 참고)상의 선들을 따라 교육학적 접근에 대해 조정이 가능한 도해식 메커니즘을 상상해 보라. 나는 이 이념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다중지능 이론을 적용할 활동 매뉴얼을 보았다. 예를 들어 플럭스키트와 이벤트, 그리고 향기 나는 상자를 만들거나(예를 들어 많은 종이 클립 길이로서 장갑의 크기를 표현하는 논리적으로 무관한 사물들과 관련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사물들을 측정하는 설명서와 유사한 것들이 아주 많다.²⁵ - P266

25) 『다중지능 활동 중 최상의 것(The Best of Multiple Intelligence Activities)』(Westminster, Calif.: Teacher Created Materials, Inc.), 각각 43쪽, 95쪽,
181쪽, 331쪽. - P328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즉 서로 다른 유형의 지능은 적절한 자극과 상호작용이 주어지면 서로 충돌하고 서로를 활성화한다. 일례로 한나 퍼드는 촉감이 어떻게 두뇌의 다른 부분에 있는 잠재 학습을 실제로 증가시키는지를 설명한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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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벤트에서 히긴스, 머추너스, 놀즈, 윌리엄스는 예술협회의 오래된 작동하지 않는 피아노를 확실하게 파괴하는 데 가담했다. 그들은 악기를 파괴했지만, 무계획적이지 않았다. <그림 22>는 멋진 동작을 보여준다. 즉 현들을 벽돌로 신중하게 문지르며, 망치를 사용할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는 인내를 보여주었다. - P79

레빈에 의하면, "우리가 다루는 사물들은 항상 우리 손에서 받는 처우에 화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동작이 매우 배려하는 모습일 때, 그 동작은 그 사물들의 존재론적 진리의 훨씬 심오한 노출을 주의 깊게 다루었던 사물들로부터 되돌려 받는다."⁶² - P79

62) 데이비드 레빈, 『존재에 대한 신체의 회상』 153쪽. - P296

그러나 의미의 본능적인 기반은 이벤트의 내부적인 논리를 일부 설명할뿐이다. 여태까지 논의한 악보가 의미하는 것처럼, 이벤트는 실제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뉴스쿨에서 열렸던 케이지의 1958~1959년 음악 작곡 수업에서 유래했다. - P79

음악을 근본적으로 본능적이라 했던 하이데거의 묘사는 이벤트에서 음악적인 생각의 긍정적인 영향을 확신시킨다. 그는 음악이 "모든 형식의 구체화, 전체화, 환원주의를 대변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항상 일시적이고,
항상 의문을 제기하며, 존재들의 있음이란 그러한 것이어서 그 존재들은스스로를 다양한 해석에 맡긴다는 사시 항상 경계하는 인식론적인 겸손, 즉 엄격한 실험적인 태도를 격려한다"라고 말한다 - P82

바이올린을 광택 내거나 파괴할 수 있으며, 피아노를 꽃병으로 장식하거나 내부를들어낼 수 있고, 패터슨의 고전 이벤트인 <페이퍼 뮤직(Paper Music)>(<그림 24>)의 경우에서처럼 종잇장을 신중하게 기록하거나 둘둘 말 수 있으며,
조각으로 찢을 수 있고, 관객에게 던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벤트에 내재하는 음악성은 서구의 주류 인식론을 비판하는 반면에 구조화된 부수적인 지식 대형(예를 들어 미술사, 음악학, 철학, 문학)의
"구체화, 전체화, 환원주의"도 해체한다. - P85

하이데거에 대해 언급하는 레빈은 경험뿐만 아니라 계몽주의에서 유래하는 비전에 관한 철학적 태도와 관련지어서도 시각적으로 습득한 지식과 청각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구별한다. 비전에 뿌리를 둔 "현존의 형이상학은 비전이 "시각적인 형태를 보는 바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무표정하며,
감동되지 않는 관찰이나 명상으로 귀결되며, 권력에의 의지에 따라 내몰리는 경향이 있고 종종 그러하다."⁶⁵ - P85

65) 데이비드 레빈, 「쇠퇴와 몰락: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사 독해에 나타난 시각중심주의(Decline and Fall: Ocularcentrism in Heidegger‘s Reading of theHistory of Metaphysics)」, 데이비드 레빈 편, ‘근대성과 비전의 헤게모니(Modernity and the Hegemony of Vis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Press, 1993), 203쪽. 나의 견해 강조. 나는 하이데거에 대한 그의 분석에 빚을많이 지고 있다. - P296

진짜라는 문제

직접적인 지각, 주요한 정보,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 자체는 현재의 예술 철학적 풍토에서, 특히 플럭서스와 같이 일반적으로 정치적 동기가있고 광범위하게 해체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운동에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 P86

 즉 "경험주의를 미학적인 경험으로 다시 기술하는 것은 형이상학에서 새로운 학문으로 해방하는 것으로 광고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경험주의적인 전통의 소위 직접적인 지각 메커니즘은간접적이고 상징적인 매개라는 개념으로 가득 차 있다."⁶⁹ - P86

69) W. J. T. 미첼 (W. J. T. Mitchell), 『이코놀로지(Iconology)』 (Chicago: Universityof Chicago Press, 1986), 59. - P297

즉, 데리다의 주장처럼 경험이 해체되어야 하고, 미첼의 주장처럼 그것이 담론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플럭서스 작품의 경험적인 차원은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을 현실 세계와 서로 연결하고, 장소와 집단에 대한 개인의 소속감을 확장하는 존재론적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실제적이거나 경험에 근거한 담론을 통해) 능력을 가지고 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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