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

당신은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이나 폴 포트에 관해 이성적으로 토론할 수있다. 하지만 히틀러를 입에 올리는 순간, 이성을 잃고 감정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편협한 생각을 고집하게 된다. 「타임」지가 ‘세기의 인물‘로누구를 선정할지 고민하던 2000년, 히틀러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 P9

히틀러의 성취는, 그가 가져온 파괴와 불행에도 역시 하나의 현상이라 할 만하다. - P9

. CBS가 히틀러의 젊은 시절에 관한 영화제작 계획을 발표했을 때, 한 저명한 유대인 지도자는 이렇게 항의했다.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안다. 뭘 더 알아야하나?" 아돌프 히틀러라는 괴물에게 인격을 부여하거나 그의 끔찍한 계획의 동기를 알아보려는 행위는 분명 도덕적 반발을 부르는 일이 될 것이다. 아무도 "어쩌면 우리 안에는 작은 히틀러가 들어있을 수 있다."라는 토마스 만Tomas Mann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 P10

역사상 그 누구보다 히틀러를 주제로 한 책이 많음에도 그의 캐릭터화된 모습 아래 숨은 또 다른 히틀러 예술가로서 히틀러에 관해 파고든 사람은 별로 없었다. 요아힘 페스트Joachim Fest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가 예외적인 작가들이다. - P10

따라서 이 책은 히틀러에게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모습을 발견하는 데 집중한 첫 번째 책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출간 뒤 ‘철저하게 새로운 해석‘, ‘근본적인 재평가‘, ‘지금까지 정치나 인물 전기 분야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참신한 시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P11

가장 주목할 것은 한결 복잡해진 히틀러의 모습을 독자들이 "불편하다"
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이 내세운 요점들은 전반적으로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완전히 서로 다른 이유이기는했지만 유대인 저널과 무려 백인 민족주의 커뮤니티 스톰프런트storm-front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기독교인들은 도덕적 문제에 흥미를 보였다. 이 책에 관한 한층 더 지적인 토론 중 하나가「크리스천투데이 Christianity Today」에 실렸다. - P11

놀랍게도 부정적인 평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는 대체로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무뚝뚝한 어조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울적한 기분이 든다."라고 하면서도 이 책은 "나치즘에 관한 주요 연구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아득할 정도로 수많은 디테일"을 동원해 "혼을 빼앗을 정도로 크게 한 방을 먹인다"라고 했다. - P12

이 책은 이후에 나온 많은 책의 토론 주제가 되기도 했다. 그중하나가 존 캐리의 논쟁적인 책 『예술이 뭐가 좋은가 What Good are theArts?」이다. 캐리는 문화의 도덕적, 사회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성에 관한 감각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고급문화가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을 반드시 고결하게 만드는것은 아님을 증명하는 근거로서 이 책을 인용했다. - P13

머리말

이 책은 아돌프 히틀러의 삶을 다룬 책이다. 정치적 노력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적 성취여야 한다는 신념과 예술가적 기질에 관한 책이며, 고대 이후로 또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위대한 문화국가를 만들어내겠다는 꿈에 관한 책이다. - P15

그는 진심이었을까? 그가 일으킨 형언할 수 없는 죽음과 파괴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1939년 전쟁 개시 직후,
알베르트 슈페어의 비서는 그가 "우리는 이 전쟁을 빨리 끝내야만 하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아. 건설하기를 원하지."라고 말하는 걸 엿들었다. 몇 년 후 비서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말이 거짓이었다고 생각해야 할까?" 앞으로 이 책에서 살펴보겠지만,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 P17

이 책에 묘사된 히틀러는 문화를 권력이 추구하는 목적이자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게 만드는 수단이라고 보는 사람이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는 표현주의의 출현 배경이 ‘철저한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했다. - P17

예술적 재능은 독일인들을 장악한 히틀러의 수수께끼 같은 힘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탈린이 테러를 통해 성취한 것을 히틀러는 유혹을 통해 성취했다. 그는 상징, 신화, 의례, 스펙터클, 사적인 드라마를 매개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를 활용하여 대중에게 다가갔다. 당대의 어떤 다른 지도자도 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 P17

하지만 지난 50년간 히틀러에 관한 책들은 그의 삶과 경력에서 예술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무시해 왔다. 지난 50년간 제3제국에서있었던 문화적 삶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연구들은 있었지만, 히틀러를 다루지는 않았다. 왜일까? - P18

이 책은 전기도 아니고, 제3제국 예술사도 아니다. 다만 히틀러의 예술적 성향을 이해하는 데 직접 도움이 되는 한에서 전기적인 자료나 문화적인 사건들을 다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성향이 히틀러의 사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알아볼 것이다. 히틀러는 영화를 즐겨 봤지만 예술로서 영화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를 괴벨스의 손에 맡겨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활용하게 했다. - P19

참고문헌에 관하여

세상의 절반은 다른 절반이 지어낸 것을 믿는다. 전기 작가와 역사가들도 히틀러에 관한 2차 자료를 다룰 때 반드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만은 않는다. 그의 사생활, 특히 젊은 시절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기에 작가들은 증언자들의 실제 경험인지 의심스러운 사건들에 관해, 그것도 사건 발생 이후 여러 해가 지나 쓰인 책들에 기대왔다. - P20

가장 악명 높은 사례가 아우구스트 쿠비체크August Kubizek의 나의 어릴 적 친구,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Mein Jugendfreund」이다.
이 책은 여러 작가가 젊은 시절 히틀러에 관한 가장 중요한 1차 자료로활용했다. 1905년과 1908년 사이에 쿠비체크는 린츠와 빈에서 히틀러와 알고 지냈다. - P20

1938년 또는 1939년에 원고를 작성했다는 주장과 달리, 쿠비체크는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책의 서문과 본문에 털어놓았듯이,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 같은 당 관계자들로부터 작업에 착수하라는 독촉을 여러 번 받았다. 1943년 7월이 되면 히틀러조차 그가 글을 쓰게 하려면 일시불 지급과 함께 매월 수당 지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21

히틀러와의 친분 때문에 구금되었던 쿠비체크는 린츠의 지역 기록물보관소 사서인 프란츠 예칭어Franz Jetzinger와 연락이 닿았다.
1948년 당시 예칭어는 히틀러의 젊은 시절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 P21

1953년에 출간된 『나의 어릴 적 친구,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Mein Jugendfreund』는 히틀러의 젊은 시절에 관한 유일한 직접적인 증언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는 『젊은 히틀러: 우리들의 우정 이야기Young Hitler: The Story of Our Friendship』, 미국에서는 내가 본 젊은 히틀러The young Hitler I knew』라는 제목으로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거의 반세기 전의 일을 서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의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생애 초기를 설명하려고 필사적이었던 역사가들에게는 달리 믿을 만한 정보가 없었고, 그들에게 이 책은 마치 금광처럼 여겨졌다.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는 쿠비체크책의 영국판에 지나치게 감상적인, 하지만 오류가 많은 서문을 썼다. - P22

이에 예칭어는 1956년 자신의 책 『히틀러 유겐트Hitlers jugend』*로 응답했다. - P22

사실 그는 예칭어에게 "글을 좀 더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진짜 작가에게 맡겨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했다. 게다가 출판된 책은 쿠비체크의 ‘회고‘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회고‘는 분명 히틀러와 나치당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을 가졌던 데반해, 책은 고인이 된 독재자에 대한 애도를 전후 대중들로부터 감추려는 의도를 가졌다. - P23

 오스트리아 작가 브리지트 하만Brigitte Hamann은 출판사 슈토커로 넘어간 그의 초기 원고를 상상력이 풍부한한 편집자가 수정, 발췌했다고 주장했으나, 출판사는 그런 주장을 부인했다. 출판사의 책임자는 ‘쿠비체크가 제공한 완성된 원고를 "기록물로서의 가치 유지를 위해 현재까지)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 P24

빈에서 보낸 히틀러의 생활을 밝히는 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확실한 정보를 구할 수 없는 일부 역사가는 라인홀트 하니슈Reinhold Hanisch와 요제프 그라이너Josef Greiner라는 두불한당이 몇십 년 후 출판한 이야기에 의지해야 했다. - P24

정치 입문 후의 히틀러에 관한 다양한 인물들헤르만 라우쉬닝,
한스 프랑크, 에른스트 한프슈탱글, 요하네스 폰 뮐런쇤하우젠, 헨리에 테 폰 시라흐, 하인츠 하인츠, 아르노 브레커, 프리델린트 바그너의 묘사는 사실이라면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묘사에서는 명백한 날조와 사실을 구분해 내기가 매우 어렵다. (중략).
알베르트 슈페어의 두 권짜리 회고록 『기억: 제3제국의 중심에서 Inside the Third Reich』와 『슈판다우: 비밀일기 Spandau: The Secret Diaries』도 나름의 문제가있다.  - P25

하지만 전후 회고록이라는 또 다른 범주가 있다. 이는 히틀러의 수행원이나 정부 관료들이 썼다. - P25

문화와 예술에 관한 히틀러 자신의 전방위적인 발언은 『나의 투쟁MeinKampf』, 그의 연설, 당대회의 문화 세션에서 했던 장황한 말들 그리고 이른바 식탁에서의 잡담, 독백에서 발견된다. 이 책에서는 랄프 만하임Ralph Manheim이 번역한 표준영어본 『나의 투쟁』을 이용했다. - P26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기관에 보관된 기록물들을 참고했다. 린츠의 오버외스터라이히 국가기록보관소(아우구스트 쿠비체크의 ‘회고‘와 그가 프란츠 예칭어와 서신 교환한 내용), 뮌헨의 현대사 연구소와 바이에른중앙기록보관소, 베를린의 연방기록보관소, 워싱턴의 국립기록보관소(통합 심문 보고서 번호4-린츠: 히틀러 미술관 및 도서관, 1945년 12월 15일 OSS 보고서, 정밀 심문 보고서 번호 12-「헤르만 보스」, 1945년 9월 12일OSS 보고서, 통합 심문 보고서 번호 4에 관한 1946년 1월 15일 보충자료「린츠」, 정밀 심문 보고서 번호 1-「하인리히 호프만」, 1945년 7월 OSS 보고서, 1946년 6월 5일 파울라 볼프 심문 보고서), 뉘른베르크의 독일 국립박물관(한스 포세의 일기), 워싱턴의 미군 군사박물관(히틀러 수채화 네 점)그리고 가르미슈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기록보관소(슈트라우스와 비니프레트 바그너 사이의 서신 교환 내용). 나치당 중앙기록보관소에서 수집한 기록물들은 1945년 미군에게 압수되어 1964년 후버 연구소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기록된 뒤 베를린 도큐먼트 센터에 보관되었다가 현재는 베를린의 연방기록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은 마이크로필름을 참고했다. - P27

1장

마지못한
독재자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을 찾을 수만 있었다면난 절대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을 것이네.
나는 예술가나 철학자가 되었을 거야.

-정치에 입문하고 몇 년 뒤 참모들에게 - P30

보헤미안 예술 애호가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아돌프 히틀러가 본질적으로 예술가이며, 예술가적 본성으로 독일과 유럽을 꼼짝 못하게 마법의 주문을 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지적했다. 이 사실은 만이 예술가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 P31

체임벌린이 보기에 히틀러는 "광적인 사람이기는커녕 ・・・ 광적인 사람"²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인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 호소하며, 사람들을 지배하는 그의 힘은 눈과 손동작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 P31

1장 보헤미안 예술 애호가


2‘not a fanatic...‘ Letter of 7 October 1923 in Hartmut Zelinsky, Richard Wag-ner: Ein deutsches Thema, 169. - P614

 ‘과연 히틀러는 정치를 미사여구나 과장된 행렬, 가두행진과 정당 집회, 전쟁의 스펙터클보다 중요하게 여긴 적이 있을까?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라면 강하게 부인했을 것이다. 그는 제3제국을 겪은 누구보다 히틀러에 관해 잘 알았다. 슈페어는 나치 전범 수용소인 슈판다우 Spandau 감옥에서 이 문제에 관해 20년간 생각한 뒤 히틀러가 평생토록 진심 어린 천생 예술가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 P32

 어떤 이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도 했는데 독일의 덕망 있는 대통령, ‘그러나 경직되고 둔감한 정신의 소유자인‘⁵ 파울 폰 힌덴부르크 Paulvon Hindenburg조차 히틀러를 가리켜 곧잘 ‘보헤미안 상등병‘⁶이라 했다. 비록 이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가 아닌 보헤미아 출신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었지만, 힌덴부르크가 히틀러에게서 낭만적인 예술가기질을 감지했음을 보여준다. - P32

5 ‘of rigid mind...‘ John W. Wheeler-Bennett, The Nemesis of Power, 449.

6 ‘‘that bohemian corporal‘ Fest, Hitler, 781. - P614

이러한 예술적 취향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미스터리다. 그 원인은 확실히 유전도, 환경도 아니었다. 그는 교양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Alois Hitler는 세련되지 못한 세관원이고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Klara Hitler는 교육받지 못한 가정주부였다. - P32

1903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사망 이후 어머니는 그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지만 역시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예술가적 기질이라 여겨지는 어떤 것, 그러니까 그리기를 좋아하고 곧잘 공상에 빠지며 규율을 싫어하고 독립적인 정신을 추구하는 성향이 이미 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누이 파울라 히틀러Paula Hitler에 따르면 그는 ‘건축과 회화, 음악‘에 관한 ‘비상한 관심‘을 키워 나갔다.⁷ - P33

7 According to his sister Paula... Interview with Paula Wolf, 5 June 1946, 2. - P614

16세가 되던 해인 1905년 가을, 히틀러가 학교에서 낙제하자 어머니는 고민 끝에 그를 자퇴시켰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 P33

 그는 20여 년이 지난 후 쓴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도빈에 도착하던 순간의 감동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유명한 회화보다 그를 압도했던 것은 바로 공공건축물들이었다. - P33

그는 자신이 본 것들에 너무나 매혹된 나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한 건축 스케치도 했다. 언젠가 쿠비체크를 위해 지어주겠다고 약속하며 빌라의 외관과 평면도를 그리기까지 했다.⁹ 신축 빌라를 그린드로잉 한 점과 푀스틀링베르크의 레스토랑을 그린 수채화 한 점, 린츠 오페라하우스 실내 스케치 두 점이 남아있다.¹⁰ - P34

9the exterior and floor plan... August Kubizek, Adolf Hitler, Mein Jugendfreund,
45-6; Billy F. Price, Adolf Hitler: The Unknown Artist, figs 28, 29, 100.

10 an ink drawing... Kubizek, after 176; Price, fig. 59, 107; restaurant in Price,
fig.27, 100; opera house in Kubizek, after 176 and 192; Price figs 57, 58, 107. - P614

하지만 그가 결국 자신의 운명이라 느낀 것은 화가의 길이었다.
1907년 그는 마침내 집을 떠나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입학을 거절당해 심한 충격을 받았다. - P34

그 후 몇 년 동안은 그의 삶에 관하여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의 거주지 등록 서류에 근거한 빈 경찰의 기록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카페나 공원, 싸구려 숙소, 노숙자 보호소에서 잠을자는 사회 밑바닥까지 내려간 젊은이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이때가 나의 가장 슬픈 시절이었다."¹¹라고 했다.  - P35

11
"This was the saddest period... Mein Kampf, 21. - P614

예술적인 훈련을 받지 못했고 재능도 없는 그로서는 빈의 풍경화를 그려 파는 것으로 겨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한 끼 식사에 작품 한점을 교환해야 할 때도 있었다.¹³ "하지만 점차 형편이 나아졌고 거래에도 능숙해졌다. 일주일에 대여섯 점 정도를 완성해서 괜찮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그보다 중요한 변화는 남는 시간에 독서를 할 수 있었다는것이다. 그는 예술사, 문화사, 건축사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¹⁴ - P35

13 At times he had to barter... Price, figs. 276, 152, 364, 172(examples).

14 ‘art history, cultural history...‘ Letter of 29 November 1921 in Jäckel/Kuhn, eds,
Hitler: Sämtliche Aufzeichnungen, 1905-1924, 525. - P615

역사가들은 그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또 제대로 이해는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 시기에 ‘내 행동의 화강암 같은 반석‘¹⁷을 형성할 수있었다고 주장했다. - P36

17
‘the granite foundation... Mein Kampf, 22. - P615

어쨌거나 나의 투쟁을 쓰게 되었을 때,
그는 병역 의무를 기피했다는 의혹으로 생길 정치적인 위험을 피하고자 많은 변명을 해야 했다. 독일에 입국한 시기를 1년 앞당기는 식으로 조작함으로써, 오스트리아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무국적자로 등록했던사실을 은폐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떠난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합스부르크 국가에 대한 혐오감‘¹⁹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 P36

19
‘inner revulsion for the Habsburg state‘ Franz Jetzinger, Hitler‘s Youth, 157. - P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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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실험04

어려운 문제에서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풀이가 한결 쉬워진다고?


미국 코넬대 마노즈 토머스 교수의
‘물리적 거리가 업무에 미치는 영향 실험‘ - P35

수학이나 물리 문제를 풀 때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는 게 좋다. 쉽게 말해 책에 고개를 파묻지 말고 고개를 들어 문제지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라는 말이다. 그러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느껴질 수 있다. - P36

미국 코넬대학교 마노즈 토머스(Manoj Thomas) 교수는 대학생 92명에게 단어를 보여 주고 나서 그 단어를 소리 내어읽는 작업을 수행하게 했다.
(중략).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얼굴을 화면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작업한 학생들이 얼굴을 가까이 두고 작업한 학생들보다 문제가 쉬웠다고 답했다. 얼굴을 멀리 두고 작업하는 조건에서는 -0.88점, 얼굴을 가까이 두고 작업한 조건에서는-1.31점이 나왔다. - P37

어려운 작업을 할 때는 물리적 거리를 최대로 두는 게 좋다.
그러면 심리적 거리도 멀어져 불안 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여유있게 눈앞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7

까다로운 작업이라 일에 진척이 없을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커피를 사러 나가 머리를 식히며거리를 두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잠깐의 거리 두기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니 기회가 있을 때시험해 보자. - P37

심리실험02

학습(일)과 학습(일) 사이에
‘수면‘을 끼워 넣으면
재학습에 드는 노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프랑스 클로드베르나르 리옹1대 스테파니 마자 교수의
‘수면과 학습의 상관관계 실험‘ - P25

책상 앞에 앉아 엉덩이가 뻐근할 때까지 공부하여 머릿속이꽉 찼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이렇게 녹초가 된 채 하루를 마감할 때 사람들은 잠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진다. (중략).
하지만 이 방식을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는 않다.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는 딴짓을 하지 말고 바로 잠자리에 들어 꿈나라로 떠나는 게 정답이다. - P26

프랑스 클로드베르나르 리옹1대학교 뇌과학연구소의 스테파니 마자(Stéphanie Mazza) 교수와 연구팀은 "재학습은 짧고기억 보존은 길다"라는 수면의 중요성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대학생 4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스와힐리어 단어를 완벽하게 외울 때까지 두 차례씩 학습시켰다. 조건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설정했다.


A 그룹: 아침 9시에 기억→12시간 경과→ 같은 날 밤 9시에 다시 한 번 학습

B 그룹: 밤 9시에 기억→ 12시간 경과 다음 날 아침 9시에 다시 한 번 학습 - P27

연구팀은 일주일 후와 6개월 후에 스와힐리어를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했다. 그러자 B 그룹, 즉 학습과 학습 사이에 수면을 끼워 넣은 그룹 학생들의 경우 재학습에 걸린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일주일 후에도 6개월 후에도A 그룹에 비해 B 그룹 성적이 좋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P27

공부를 열심히 한 후에는 머리를 식힐 겸 노력한 자신에게 보상도 줄 겸 뭔가 다른 일을 하다 잠들고 싶다. 그냥 자면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공부하고 나서는 엉뚱한 데로 새지 말고 바로 잠을 자야 한다. - P29

심리실험03

술마시는 사람의 수입이
술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평균 10퍼센트나 높은 이유


애널리시스 그룹 연구원 베서니 피터스와미국 산호세주립대 에드워드 스트링엄 교수의
‘음주와 수입의 관계 연구‘ - P30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애널리시스 그룸(Analysis Group) 연구원 베서니 피터스(Bethany L. Peters)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주립대학교의 에드워드 스트링엄(Edward P. Stringham) 교수는 "술꾼이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왜 술꾼이 술을 마시지 않는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까(No Booze? You May Lose: WhyDrinkers Earn More Money Than Nondrinkers)"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논문을 2006년에 발표했다. - P31

놀랍게도 "술을 마시는 사람일수록 수입이 높다"라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술 마시는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무려 10퍼센트 이상 수입이 높다. - P31

피터스와 스트링엄의 주장은 이렇다. 술이 아니라 술자리가
‘인맥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좀 더 그럴듯하게 바꿔말하면 술자리가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대개는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시곤 한다. 요컨대 ‘술을 많이 마신다‘는 말은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 P32

연구팀은 술을 즐길수록 수입이 높아지는 현상을 일컬어
‘드링커스 프리미엄(The Drinkers Premium)‘이라고 했다. 술을마시는 사람은 10퍼센트의 드링커스 프리미엄이 붙은 수입을얻을 수 있고, 술을 마시러 자주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여기에더해 연 수입이 7퍼센트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 P32

술을 마시며 덤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프리미엄을챙길 수 있다. 그저 술이 좋아 혼자 집에서 마시거나 정해진 사람들과 마시는 것은 수입을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 P34

심리실험9

칭찬은 왜 때로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맥 빠지게 할까?

미국 컬럼비아대 스테이시 핀컬스틴 부교수의
‘피드백이 목표 추구에 미치는 영향 실험‘ - P58

많은 교육 관련 서적에는 모두 한목소리를 내자고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며 칭찬의 교육효과를 강조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이는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굳이 따져 보자면 반은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 P59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보건정책 및 관리를 연구하는 스테이시 핀컬스틴(Stacey R. Finkelstein) 부교수는 프랑스어 초급과정(간단한 회화와 문법을 공부하는 수업)을 이수한 학생과 프랑스어 상급 과정(프랑스 고전문학을 읽고 프랑스어로 논문을 쓰는 수업)을 이수한 학생에게 수업을 지도한 교수를 평가하게했다.
"아낌없이 칭찬하는 교수와 따끔하게 지도하는 엄한 교수에게 7점 만점으로 각각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겠는가?" - P59

‘내 수준은 내가 알지. 일일이 칭찬해 줄 것이 아니라 내가부족한 부분을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도록 따끔하게 지도해주는 것이 지금 내게 더 필요해‘ - P60

. 물론신입사원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새까맣게 어린 후배에게는 친절하게 알려 주고 사소한 일도 칭찬해 주면 좋은 선배라고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업무 기술과 지식을 익힌 후배에게는 어설픈 칭찬을 남발하는 대신 때로 따끔한 말로 지도하는 선배가 훨씬 소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 P62

심리실험 53

월요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존 헬리웰 교수의
‘주말 효과 실험‘

사람들은 요일에 따라 특별한 기분을 느낄까?
‘월요병처럼, 월요일 직전인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일내내 몸과 마음이 무거운 기분을 느낀다든가, 주말을앞둔 금요일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다든가 하는 것말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존 헬리웰 교수가1년 반에 걸쳐 5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요일이라고 우울해지거나 하는 것은 존재하지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P247

 우리는 흔히 ‘월요병‘이라고, 영어권에서는 ‘우울한 월요일(Blue Monday)‘이라고 부르는현상이다. (중략).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존 헬리웰(John F.
Helliwell) 교수는 1년 반에 걸쳐 행해진 대규모 조사에 착수했다. 헬리웰 교수는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요일마다 행복감, 즐거움, 기분 고양 등의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 조사 결과 ‘월요병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 평일은 어느 요일이나 비슷비슷했다. - P248

한편 연구팀은 ‘일요일이 되면 기분이 들뜨고 행복해진다‘
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월요병은 없어도 일요일만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연구였다. 헬리웰 교수는이러한 현상을 ‘주말 효과(Weekend effects)‘라고 불렀다. 그런데이 주말 효과에도 몇 가지 규칙이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조직에서 낮은 직급의 사람이 중역이나 대표이사보다 두 배 정도 높은 고양감을 주말에 느낀다는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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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는 서로의 집에 가지 않는다. 가족의 얼굴을 보거나 친구를 소개하지도 않는다. 요컨대 누구에게도 이 세상 어떤사람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 P27

 친어머니는 내장 쪽에 생긴 암으로 네가 세 살 때 세상을 떴다. 거의 기억이 없다.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네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재혼했고, 이듬해여동생이 태어났다. 즉 지금의 어머니는 새어머니인 셈인데,
아버지보다는 그 어머니에게 그나마 친밀감이 생기는 것 같다‘는 요지의 말을 네가 한 번 한 적이 있다. 
- P28

또하나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너는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어째서인지 항상 자기 손바닥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마치 줄거리를 따라가려면 그 위에 새겨진 손금(인지 무언지)을 꼼꼼히 해독하는 일이 필수불가결하다는 듯이. - P29

너를 처음 만났던 때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장소는 ‘고등학생 에세이 대회 시상식장이었다. 5등까지 입상한 학생들이 그곳에 불려왔다. 나와 너는 3등과 4등으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 P29

나는 특별히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다. 책 읽는 건 어릴 적부터 무척 좋아해서 틈날 때마다 손에 잡고 살았지만, 직접 글을 쓰는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어 시간에 우리 반모두가 대회에 낼 에세이를 의무적으로 써야 했고, 그중 내가쓴 글이 뽑혀서 심사위원회에 보내졌으며, 최종심사에 남더니 생각도 못한 높은 등수로 입상까지 했다. - P30

너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썼다. 한 고독한 노년 여성과 한고독한 소녀 사이에 오간 마음의 교류에 대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소소하고 진실된 가치관에 대해서, 차밍한, 사람의 마음을끄는 에세이다. 내가 쓴 글 따위보다 몇 배는 훌륭하다. 어째서 내 글이 3등이고 네가 4등인지 이해할 수 없다. - P31

다섯 명의 입상자가 차례로 단상에 올라 표창장과 기념 메달을 공손하게 받아든다. 1등상을 받은 키 큰 여자아이가 짧게수상소감을 말한다. 상품은 만년필이었다(만년필 회사가 대회후원사였다. 나는 그 뒤로 그 만년필을 오랫동안 애용했다). 길고 따분한 시상식이 끝나갈 즈음, 수첩 메모난에 내 주소와 이름을 볼펜으로 적고 그 장을 찢어내 너에게 살짝 건넨다. - P32

네 편지는 일주일 후 나에게 도착한다. 멋진 편지다. 나는적어도 스무 번쯤 그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그날 부상으로 받은 새 만년필로 긴 답장을 쓴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둘만의 교제를 시작한다.
우리는 연인 사이였을까? 간단하게 그런 이름을 붙여도 될까? 나는 알 수 없다. - P33

5

그 건물의 문을 민 것은 도시에 들어오고 사흘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이렇다 할 특징 없는 오래된 석조 건물이다. 강을 따라 한동안 동쪽으로 걷다가 옛 다리를 마주보는 중앙 광장을 지나면 나온다. - P34

무거운 나무문이 낮게 삐걱이며 안쪽으로 열리자 어둑한 정사각형 방이 보였다. 사람은 없다. - P34

마주보는 정면에 문이 있었다. 간소한 나무문으로, 얼굴 높이쯤에 작은 불투명 창이 있고 거기에도 ‘16‘이라는 숫자가 고풍스러운 장식체로 적혀 있다. 불투명 유리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 P35

카운터 안쪽에는 서고로 통하는 걸로 보이는 짙은 색 문이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역시 ‘도서관‘일 것이다. 책은 한 권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를 보나 도서관다운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크건 작건, 오래됐건 새롭건, 전 세계 도서관이 공통적으로 지닌 특별한 분위기다. - P36

너는 장부에서 눈길을 들고 왼손에 연필을 쥔 채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그렇다. 너는 왼손잡이다. 이 도시에서도, 이곳이 아닌 도시에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뇨, 뵌 적 없는 것 같습니다." 너는 대답한다. 말투가 깍듯한 건 아마 너는 아직 열여섯 살 그대로인데 나는 열일곱 살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너에게 나는 이제 훨씬 나이 많은어른 남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시간의 흐름이 가슴을 찌른다. - P38

나는 천천히 그 약초차를 마신다. 걸쭉한데다 특유의 쓴맛이 나서 결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차는 아니다. 그러나 그 양분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내 눈을 치유하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렇게 특별한 용도를 지닌 차다. - P39

방은 따뜻하고 조용하다. 시계가 없어도 무음 속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발소리를 죽이고 담장 위를 걸어가는 야윈 고양이처럼. - P39

6

우리가 그리 자주 편지를 주고받은 건 아니다. 대략 이 주일에 한 번꼴이었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은 매번 꽤 길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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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품절


향이 좋습니다. 맛도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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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아티스트

현대미설 작품에 레퍼런스란?

현대미술과 ‘세계 표준‘

2016년 여름에 도쿄에서 개최된 아이다 마코토의 개인전 「덧없는 것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사물의 아름다운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⁰¹에서는 다소 흔치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 P292

도발적인 작업을 하는 현대미술 아티스트, 아이다 마코토의 우려

★마르셀 뒤샹 → 일회용 도시락 상자라는 전제, 레디메이드로서의 대량생산 공업제품. ★게르하르트 리히터 → 구상화와 추상화의 분리. ★잭슨 폴록→ 중력과 우연에 상당히 의존한 드리핑이분리.★잭슨라는 기법. ★가와라 온 → 작품 사이즈, 전시 스타일, 방법의 한정.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라가 카즈오 드 쿠닝, 나카무라 카즈미 등→ 안티로서의 대형 화면, 물감의 대량 소비, ★오카자키 켄지로, 히코사카 나오요시 등→ 회화의 분석 그 자체의 제시. ★무라카미 다카시,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 진짜 붓놀림이 아니라는 의미로 인조적인 회화 제작법.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키치 감각, 아트 마켓을 바보로 여기는 듯한 자세 등.⁰² - P294

5장 아티스트

01 ミヅマアートギャラリー 7월 6일 ~8월 20일 http://mizuma-art.co.jp/exhibition/16_07_aida.php

02 「はかないことを夢もうではないか、そうして、事物のうつくしい愚かさについて思いめぐらそうではないか」(전시보도) - P578

그럼 왜 아이다는 굳이 이런 항목까지 만들어가며 아티스트의 이름을 몇 명씩이나 거론한 것일까? 텍스트 자체가 작품의 일부이거나 관객이나 미디어를 의도적으로 교란시키기 위함? 혹은 그저 장난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을 품을 바에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 같다. - P294

‘장난친 작품으로 오해받을 우려

아이다는 폭력, 에로, 사회 풍자등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고,
또 그 작풍 때문에, 협잡꾼 혹은 이슈메이커 작가로 간주되기도 한다(나도 아이다를 잘 몰랐던 시기에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지금은 그러한 선입견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 P295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 작품 철거 요청 문제‘는 앞서 밝힌 대로 억지 트집에 휘말린 격이었다. 그러나 모리미술관의 회고전에서는
‘성폭력적이고 성차별로 가득 찬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다‘며,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미술관을 상대로 항의문을 보냈고,
작품에 원자력 발전 사고와 관련된 트위터 화면을 ‘무단 게재했다는 오해를 사며 소셜미디어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 P297

아이다에게는 <아사다 아키라는, 미술에 관한 한, 하찮은 것을 칭찬하고, 소중한 것을 폄하해, 일본 미술계를 몹시 정체시킨 책임을 언제.
어떤 형태로 질 것인가>라고 제목 붙인 회화가 있다. 제목을 길게 붙이기로 유명한 오카자키 켄지로의 두꺼운 질감의 추상회화 시리즈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오카자키의 절친이기도 한 비평가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점이 왠지 야유로 느껴진다(본인은 『아트 잇』 2008년 10월 호에 수록된우치다 신이치의 인터뷰⁰³에서 ‘도발인지 러브콜인지는 알기 어려운 것‘이라 말하고 있다). - P299

03 「アンビバレンスの中にいるから、挑発なのかラブコールなのかわかりづらいものが生「まれる」 http://www.shinichiuchida.com/2008/10/art-it.html - P578

‘장난친 작품으로 오해받을‘ 우려는 과거에도 있었고, 도록에 수록될때까지는 자작 해설을 붙일 수 없었던 작품도 많다. 이메일에 적은 ‘이 작품의 아트월드 안에서의 위상과도 같은 것을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로부터 특정하고 싶었다‘라는 대목도 현재 상황에 대한 아이다의 염려를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P299

무라카미 다카시의 절망

그로이스나 솔츠 등은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비평가지만, 일본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이다보다도 더 깊이 일본의 아트 저널리즘에 절망하고 있는 듯하다. - P300

정확하게는 ‘현대미술의 감상에 있어서는, 그 작품이 현대미술사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되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다. 이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그의발언을 더 인용하자면, 2006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예술기업론」에는
"(일본인은) 유럽과 미국의 예술 세계의 룰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라고했고, 2010년에 펴낸 『예술투쟁론』에 쓴 글에서는 "(일본의 젊은이가) 작가가 되고 싶다면. (…) 예술=서구식 ART의 룰을 알아야 합니다." 등의 발언을 찾을 수 있다. - P300

비평 자체에 흥미가 없는, 혹은 그렇게 우기는 작가도 있다. 잘 알려진 예로는, "자신에 대해 쓰인 글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지면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만 세보면 된다."는 앤디 워홀의 발언이 있다. - P301

아이 웨이웨이와 아브라모비치

아이 웨이웨이는 자신의 아티스트로서의 활동과 액티비스트로서의 활동에는 차이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고, 비평가보다는 체제와의 싸움으로 바쁘다. - P302

티나리에 따르면, 이때 이후, 아이 웨이웨이는 "뒤에서 요셉 보이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⁰⁶고 한다. 『가디언』의 에이드리언 설도, 2015년 후반 런던의 RCA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대한 리뷰⁰⁷에 뒤샹의 이름을 언급한 후, ‘지금까지 본 아이 웨이웨이의 전시 중 베스트‘라고 격찬했다. - P303

06 「A Kind of True Living: The Art of Ai Wei-wei」, "Artforum, 2007년 여름호. https://artforum.com/inprint/issue-200706&cid=15365

07 「Ai Weiwei reviewmomentous and moving」, 『The Guardian』, 2015년 9월 14일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5/sep/14/ai-weiwei-royal-academy-review-momentous-and-moving - P578

아브라모비치는 최근 호주 원주민(아보리진)을 대상으로 한 과거의 차별적 발언으로 규탄을 받는다거나, 공동 제작한 작품의 저작권을 둘러싼 옛 파트너 울라이와의 소송에서도 패소, 거기에 퍼포먼스 아트 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한 자금을 바닥내기도 하면서 매스컴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지만, 아티스트로서의 평가는 거의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 P303

틸만스와 쿤스

틸만스는 어쩌면 다소 불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0년 그가 터너상을 수상했을 때, 저널리즘의 반응은 혹독했다. 「페이스」나 「D」등의 잡지에서 일하는 ‘포토 저널리스트‘에게, 어째서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미술상을 수여해야만 했냐는 것이다. - P304

한편, 어느 한 비평가에게 "너는 아무것도 몰라. 난 엄청난 천재야."
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 말했다는 제프 쿤스¹¹는 현대미술사를 참조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상위 4명 중 단연 으뜸이다. 당연히 그에 관한 평론 등에도 현대미술사적인 문맥으로 이어지는 것이 많다. - P306

쿤스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가인지라 신문이나 현대미술 관련매체에 게재되는 리뷰 중에는 유별난 것이 많기는 하다. 포르노 배우치치올리나와의 관계 등 작가의 추문을 새삼 언급하는 기사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단토의 견해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P306

‘이론가로서의 작가, 작가로서의 이론가‘
슈타이얼은 쿤스보다 더욱 명시적으로 현대미술사의 인용을 실천하고있다. 일본에서 개최된 「도지마 리버 비엔날레 2015」¹⁵에서도 전시된 바있는 그녀의 작품 <유동식 주식회사>(2014)에는 디지털 가공을 거친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나 파울 클레의<새로운 천사>가 화면에 등장한다. - P308

15 http://biennale.dojimariver.com/ - P579

(전략). 하지만 슈타이얼은 지금까지 다룬 5명의 작가중에서는 예외적인 존재다.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쓴 자신의 글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아트 리뷰 리스트의 작가 이름 옆에 붙은설명문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론가로서의 아티스트, 아티스트로서의 이론가. 대체 이 ‘아티스트‘는, 왜, 어떻게 ‘이론가일까?" - P308

히토 슈타이얼과 한스 하케의 투쟁

히도 슈타이얼은 1966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에세이 다큐멘터리‘라 불리는 필름이나 비디오 작품을 제작하는 한편, 주로 『e-flux』¹⁸나 『eipcp』(유럽 집단문화정책 연구소) 등의 웹 매거진에 비평이나 이론에 관하여 집필한다. 작품은 영화와 순수미술의 경계면에 자리매김 된다."
(『eipcp』, 「Hito Steyer」¹⁹)라고 평가되곤 하는데, 제작에 있어서나 비평 활동에 있어서도, 이미지나 현대미술과 사회적 현실의 관계라는 주제를 일괄되게 추구하고 있다. - P310

18 http://www.e-flux.com/

19 http://eipcp.net/bio/steyerlr - P579

앞서 언급한 <유동식 주식회사>는 30분가량의 영상을 중심으로 한비디오 설치작품이다. (중략).
여기서 유동성(Liquidity)이란 금융에 있어서는 유동성 자산을 의미한다. 서퍼나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파도 영상이 몇 번이나 등장하며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이고도 은유적으로 보강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점은, 영상(시청각) 미디어가 지배적인 현대의 온갖 문제들을다름 아닌 영상을 통해, 게다가 다양한 디지털 영상미디어 기술을 이용해 가면서, 기존의 특정 사건이 담긴 장면을 편집해 넣어 중층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 P312

프란츠 파농과 고다르의 계보를 잇겠다는 슈타이얼

『아트 리뷰』는 슈타이얼을 ‘이론가로서의 아티스트, 아티스트로서의 이론가‘라 칭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론‘은 미술이나 미술사라기보다는 미디어 이론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 영상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작품활동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슈타이얼은 1980년대에 일본영화학교(현 일본영화대학)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와 하라 카즈오의 가르침을 받았다. - P312

첫 번째 저서의 제목 『스크린의 저주받은 자들』은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오마주한 것이다. 1925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파농은 프랑스에서 정신과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알제리로 건너가, 알제리 독립전쟁에 참가한다. 이저작물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의 선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슈타이얼은 자신이 파농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는 것이확실하다.

*포스트 콜로니얼 과거의 식민 상황이 독립 이후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_역자주 - P313

선배 작가와 후배 작가의 공통점

물론 슈타이얼의 선배나 친구는 현대미술계에도 존재한다. - P314

공통점을 비교했을 때, 재미있는 선배가 있다. 바로 한스 하케다.
1936년 쾰른에서 태어난 하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백남준과 함께 독일관 대표를 맡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초기에는 생태계나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자본주의 사회의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 P315

맨 먼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1970년에 발표한 <MoMA Poll>로 제목을 직역하면 ‘현대미술관 투표‘가 되는데, 투표함과 투표용지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하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걸고 실제로 관객에게 투표를 독려했다. "뉴욕주의 넬슨 록펠러 주지사가 닉슨대통령의 인도차이나 정책을 비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11월에 치를선거에서, 당신이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이유가 될까요? 만약 ‘예스‘라면 왼쪽 상자에 ‘노‘라면 오른쪽 상자에 표를 던져 주세요." - P316

이어 1971년에는 <샤폴스키 맨해튼 부동산 회사. 1971년 5월 1일 현재의 실시간 사회체제>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기로 예정되어 있던 개인전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미술관으로부터 거부당하면서 개인전 자체가 취소되고 만다. 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맨해튼 최대의 부동산 회사에 관한 건물 142동과 그 데이터를 정리한 차트와 설명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 P316

하케는 1930년대에 건설된 독일관의 바닥에 잘게 부순 대리석 덩어리들을 깔아놓았다. 현관에서 바라본 전시장 안의 정면 상부에는
‘GERMANIA‘라는 문자가 내걸렸는데, 이것은 고대 게르만인의 이주지를 가리키는 고어인 동시에, 아돌프 히틀러가 구상한 베를린 세계수도의 명칭이기도 하다. - P317

사진을 걸어둔 배경이 되는 벽은 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중략) 하케는, 60여 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을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가진 국민국가의 국위선양이라는 본래의 성격을 상기시킨 뒤, 바로 이어. 전후 유럽 경제에서 최강의 힘을 지니게 된 통화를 고도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제시한 것이다. - P318

현대미술계와 글로벌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

위의 예들로 알 수 있겠지만, 하케 작품의 표적은 자본주의 사회만이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거의 그대로 구현하는 아트계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 P318

슈타이얼의 관심과 행동은 하케의 그것과 크게 겹쳐진다. - P318

현대미술계는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는 ‘죽음의 상인‘도 있다. 자신은 그 안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관객도 그 안에서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와 연결된 작품을 감상하며, 구매하고 있다. 하케의 문제의식과 겹치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슈타이얼은 작품만이 아닌 글로도 표현한다. - P319

현대미술의 중요 중심지는 더 이상 서양의 대도시에만 위치하지 않는다. 오늘날, 탈구축주의 건축의 형태를 갖춘 컨템퍼러리아트 뮤지엄은 그 어떤 철통 독재국가라 할지라도 선보이고 있다.
어딘가에 인권침해 국가가 있다면, 자 이제, 프랭크 게리 미술관이 생길 차례다.²²

이러한 발언은 하게의 주장과 거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 P320

21~22 Hito Steyerl (저) 大森俊克(역) 「アートの政治学 コンテンポラリー・アートとポス民主主義への変遷」, 『美鈴手帖』FREE OF 2016년 6월호.

23 Nicholas Law, 「Horseplay: What Hans Haacke‘s fourth plinth tells us about art andthe City」, 『The Guardians』, 2015년  2월 27일. https://www.theguardian.com/attanddesign/2015/feb/27/hans-haaacke-horseplay-city - P579

 예를 들어한 저널리스트에게 했던 아래와 같은 이야기와.


우리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무렵, 컬렉터들이 작품을 샀던 이유는 그들이 현대미술과 연관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은 엄청난 수의 컬렉터가 현대미술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있어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들은 재무 고문을 고용하듯이 아트어드바이저를 고용하고 있다.²³ - P320

‘제4대좌‘에 설치된 말의 해골

하케는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갤러리에게 자신의 작품을 아트 페어에 출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이후부터는 작품이 되팔려 가격이 오를 경우, 그 차익에 대한 15%를 작가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약 거래가 무산되기도 해요. - P321

글로벌 자본주의와 결탁한 현대미술계를 비판하고, 미술관으로부터따돌림 당하며, 아트 마켓의 관행에는 따르지 않는다. 1994년에는 좌익적 분석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문화 제도를 비판하는 대담집25을 간행하기도 했다. 이런 작가는 아트월드에서 추방당하고 말지..라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 P321

2015년에는 런던시의 요청으로 트래펄가 광장의 ‘제4대좌‘에 <선물로 받은 말>이라는 제목의 조각을 전시했다. 런던에는 수많은 기마상이 즐비하지만, 하케의 브론즈 말은 눈에 띄게 이채롭다. 말은 뼈대만으로 이뤄져 있고, 왼쪽 앞다리에 묶인 리본 모양의 전광게시판에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주가를 표시하고 있다.²⁶ - P321

일찍이 하게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정치적인 아티스트‘로 간주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이런 꼬리표가 붙은 작가의 작품은 일원적으로밖에 이해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모든 아트 작품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예외 없이 정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대중들 사이에는, 그리고 때로는아트 전문가들 사이에도, 현대미술은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정치는 현대미술 작품을 불순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누군가가 ‘정치적인 구석으로 몰이 당하고, 실질적으로 제명당하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는, 지극히 흥미로운 현상이다.²⁷ - P322

27 "Für eine Kunst mit Folgen>, "Neue Zürcher Zeitung (z), 2004년 3월 13일 자*.
http://www.nzz.ch/article9 FP30-1.226930 - P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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