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아티스트
현대미설 작품에 레퍼런스란?
현대미술과 ‘세계 표준‘
2016년 여름에 도쿄에서 개최된 아이다 마코토의 개인전 「덧없는 것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사물의 아름다운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⁰¹에서는 다소 흔치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 P292
도발적인 작업을 하는 현대미술 아티스트, 아이다 마코토의 우려
★마르셀 뒤샹 → 일회용 도시락 상자라는 전제, 레디메이드로서의 대량생산 공업제품. ★게르하르트 리히터 → 구상화와 추상화의 분리. ★잭슨 폴록→ 중력과 우연에 상당히 의존한 드리핑이분리.★잭슨라는 기법. ★가와라 온 → 작품 사이즈, 전시 스타일, 방법의 한정.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라가 카즈오 드 쿠닝, 나카무라 카즈미 등→ 안티로서의 대형 화면, 물감의 대량 소비, ★오카자키 켄지로, 히코사카 나오요시 등→ 회화의 분석 그 자체의 제시. ★무라카미 다카시,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 진짜 붓놀림이 아니라는 의미로 인조적인 회화 제작법.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키치 감각, 아트 마켓을 바보로 여기는 듯한 자세 등.⁰² - P294
5장 아티스트
01 ミヅマアートギャラリー 7월 6일 ~8월 20일 http://mizuma-art.co.jp/exhibition/16_07_aida.php
02 「はかないことを夢もうではないか、そうして、事物のうつくしい愚かさについて思いめぐらそうではないか」(전시보도) - P578
그럼 왜 아이다는 굳이 이런 항목까지 만들어가며 아티스트의 이름을 몇 명씩이나 거론한 것일까? 텍스트 자체가 작품의 일부이거나 관객이나 미디어를 의도적으로 교란시키기 위함? 혹은 그저 장난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을 품을 바에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 같다. - P294
‘장난친 작품으로 오해받을 우려
아이다는 폭력, 에로, 사회 풍자등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고, 또 그 작풍 때문에, 협잡꾼 혹은 이슈메이커 작가로 간주되기도 한다(나도 아이다를 잘 몰랐던 시기에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지금은 그러한 선입견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 P295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 작품 철거 요청 문제‘는 앞서 밝힌 대로 억지 트집에 휘말린 격이었다. 그러나 모리미술관의 회고전에서는 ‘성폭력적이고 성차별로 가득 찬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다‘며,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미술관을 상대로 항의문을 보냈고, 작품에 원자력 발전 사고와 관련된 트위터 화면을 ‘무단 게재했다는 오해를 사며 소셜미디어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 P297
아이다에게는 <아사다 아키라는, 미술에 관한 한, 하찮은 것을 칭찬하고, 소중한 것을 폄하해, 일본 미술계를 몹시 정체시킨 책임을 언제. 어떤 형태로 질 것인가>라고 제목 붙인 회화가 있다. 제목을 길게 붙이기로 유명한 오카자키 켄지로의 두꺼운 질감의 추상회화 시리즈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오카자키의 절친이기도 한 비평가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점이 왠지 야유로 느껴진다(본인은 『아트 잇』 2008년 10월 호에 수록된우치다 신이치의 인터뷰⁰³에서 ‘도발인지 러브콜인지는 알기 어려운 것‘이라 말하고 있다). - P299
03 「アンビバレンスの中にいるから、挑発なのかラブコールなのかわかりづらいものが生「まれる」 http://www.shinichiuchida.com/2008/10/art-it.html - P578
‘장난친 작품으로 오해받을‘ 우려는 과거에도 있었고, 도록에 수록될때까지는 자작 해설을 붙일 수 없었던 작품도 많다. 이메일에 적은 ‘이 작품의 아트월드 안에서의 위상과도 같은 것을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로부터 특정하고 싶었다‘라는 대목도 현재 상황에 대한 아이다의 염려를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P299
무라카미 다카시의 절망
그로이스나 솔츠 등은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비평가지만, 일본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이다보다도 더 깊이 일본의 아트 저널리즘에 절망하고 있는 듯하다. - P300
정확하게는 ‘현대미술의 감상에 있어서는, 그 작품이 현대미술사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되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다. 이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그의발언을 더 인용하자면, 2006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예술기업론」에는 "(일본인은) 유럽과 미국의 예술 세계의 룰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라고했고, 2010년에 펴낸 『예술투쟁론』에 쓴 글에서는 "(일본의 젊은이가) 작가가 되고 싶다면. (…) 예술=서구식 ART의 룰을 알아야 합니다." 등의 발언을 찾을 수 있다. - P300
비평 자체에 흥미가 없는, 혹은 그렇게 우기는 작가도 있다. 잘 알려진 예로는, "자신에 대해 쓰인 글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지면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만 세보면 된다."는 앤디 워홀의 발언이 있다. - P301
아이 웨이웨이와 아브라모비치
아이 웨이웨이는 자신의 아티스트로서의 활동과 액티비스트로서의 활동에는 차이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고, 비평가보다는 체제와의 싸움으로 바쁘다. - P302
티나리에 따르면, 이때 이후, 아이 웨이웨이는 "뒤에서 요셉 보이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⁰⁶고 한다. 『가디언』의 에이드리언 설도, 2015년 후반 런던의 RCA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대한 리뷰⁰⁷에 뒤샹의 이름을 언급한 후, ‘지금까지 본 아이 웨이웨이의 전시 중 베스트‘라고 격찬했다. - P303
06 「A Kind of True Living: The Art of Ai Wei-wei」, "Artforum, 2007년 여름호. https://artforum.com/inprint/issue-200706&cid=15365
07 「Ai Weiwei reviewmomentous and moving」, 『The Guardian』, 2015년 9월 14일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5/sep/14/ai-weiwei-royal-academy-review-momentous-and-moving - P578
아브라모비치는 최근 호주 원주민(아보리진)을 대상으로 한 과거의 차별적 발언으로 규탄을 받는다거나, 공동 제작한 작품의 저작권을 둘러싼 옛 파트너 울라이와의 소송에서도 패소, 거기에 퍼포먼스 아트 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한 자금을 바닥내기도 하면서 매스컴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지만, 아티스트로서의 평가는 거의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 P303
틸만스와 쿤스
틸만스는 어쩌면 다소 불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0년 그가 터너상을 수상했을 때, 저널리즘의 반응은 혹독했다. 「페이스」나 「D」등의 잡지에서 일하는 ‘포토 저널리스트‘에게, 어째서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미술상을 수여해야만 했냐는 것이다. - P304
한편, 어느 한 비평가에게 "너는 아무것도 몰라. 난 엄청난 천재야." 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 말했다는 제프 쿤스¹¹는 현대미술사를 참조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상위 4명 중 단연 으뜸이다. 당연히 그에 관한 평론 등에도 현대미술사적인 문맥으로 이어지는 것이 많다. - P306
쿤스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가인지라 신문이나 현대미술 관련매체에 게재되는 리뷰 중에는 유별난 것이 많기는 하다. 포르노 배우치치올리나와의 관계 등 작가의 추문을 새삼 언급하는 기사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단토의 견해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P306
‘이론가로서의 작가, 작가로서의 이론가‘ 슈타이얼은 쿤스보다 더욱 명시적으로 현대미술사의 인용을 실천하고있다. 일본에서 개최된 「도지마 리버 비엔날레 2015」¹⁵에서도 전시된 바있는 그녀의 작품 <유동식 주식회사>(2014)에는 디지털 가공을 거친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나 파울 클레의<새로운 천사>가 화면에 등장한다. - P308
15 http://biennale.dojimariver.com/ - P579
(전략). 하지만 슈타이얼은 지금까지 다룬 5명의 작가중에서는 예외적인 존재다.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쓴 자신의 글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아트 리뷰 리스트의 작가 이름 옆에 붙은설명문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론가로서의 아티스트, 아티스트로서의 이론가. 대체 이 ‘아티스트‘는, 왜, 어떻게 ‘이론가일까?" - P308
히토 슈타이얼과 한스 하케의 투쟁
히도 슈타이얼은 1966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에세이 다큐멘터리‘라 불리는 필름이나 비디오 작품을 제작하는 한편, 주로 『e-flux』¹⁸나 『eipcp』(유럽 집단문화정책 연구소) 등의 웹 매거진에 비평이나 이론에 관하여 집필한다. 작품은 영화와 순수미술의 경계면에 자리매김 된다." (『eipcp』, 「Hito Steyer」¹⁹)라고 평가되곤 하는데, 제작에 있어서나 비평 활동에 있어서도, 이미지나 현대미술과 사회적 현실의 관계라는 주제를 일괄되게 추구하고 있다. - P310
18 http://www.e-flux.com/
19 http://eipcp.net/bio/steyerlr - P579
앞서 언급한 <유동식 주식회사>는 30분가량의 영상을 중심으로 한비디오 설치작품이다. (중략). 여기서 유동성(Liquidity)이란 금융에 있어서는 유동성 자산을 의미한다. 서퍼나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파도 영상이 몇 번이나 등장하며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이고도 은유적으로 보강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점은, 영상(시청각) 미디어가 지배적인 현대의 온갖 문제들을다름 아닌 영상을 통해, 게다가 다양한 디지털 영상미디어 기술을 이용해 가면서, 기존의 특정 사건이 담긴 장면을 편집해 넣어 중층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 P312
프란츠 파농과 고다르의 계보를 잇겠다는 슈타이얼
『아트 리뷰』는 슈타이얼을 ‘이론가로서의 아티스트, 아티스트로서의 이론가‘라 칭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론‘은 미술이나 미술사라기보다는 미디어 이론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 영상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작품활동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슈타이얼은 1980년대에 일본영화학교(현 일본영화대학)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와 하라 카즈오의 가르침을 받았다. - P312
첫 번째 저서의 제목 『스크린의 저주받은 자들』은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오마주한 것이다. 1925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파농은 프랑스에서 정신과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알제리로 건너가, 알제리 독립전쟁에 참가한다. 이저작물은 포스트 콜로니얼* 이론의 선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슈타이얼은 자신이 파농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는 것이확실하다.
*포스트 콜로니얼 과거의 식민 상황이 독립 이후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_역자주 - P313
선배 작가와 후배 작가의 공통점
물론 슈타이얼의 선배나 친구는 현대미술계에도 존재한다. - P314
공통점을 비교했을 때, 재미있는 선배가 있다. 바로 한스 하케다. 1936년 쾰른에서 태어난 하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백남준과 함께 독일관 대표를 맡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초기에는 생태계나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자본주의 사회의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 P315
맨 먼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1970년에 발표한 <MoMA Poll>로 제목을 직역하면 ‘현대미술관 투표‘가 되는데, 투표함과 투표용지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하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걸고 실제로 관객에게 투표를 독려했다. "뉴욕주의 넬슨 록펠러 주지사가 닉슨대통령의 인도차이나 정책을 비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11월에 치를선거에서, 당신이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이유가 될까요? 만약 ‘예스‘라면 왼쪽 상자에 ‘노‘라면 오른쪽 상자에 표를 던져 주세요." - P316
이어 1971년에는 <샤폴스키 맨해튼 부동산 회사. 1971년 5월 1일 현재의 실시간 사회체제>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기로 예정되어 있던 개인전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미술관으로부터 거부당하면서 개인전 자체가 취소되고 만다. 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맨해튼 최대의 부동산 회사에 관한 건물 142동과 그 데이터를 정리한 차트와 설명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 P316
하케는 1930년대에 건설된 독일관의 바닥에 잘게 부순 대리석 덩어리들을 깔아놓았다. 현관에서 바라본 전시장 안의 정면 상부에는 ‘GERMANIA‘라는 문자가 내걸렸는데, 이것은 고대 게르만인의 이주지를 가리키는 고어인 동시에, 아돌프 히틀러가 구상한 베를린 세계수도의 명칭이기도 하다. - P317
사진을 걸어둔 배경이 되는 벽은 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중략) 하케는, 60여 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사진을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가진 국민국가의 국위선양이라는 본래의 성격을 상기시킨 뒤, 바로 이어. 전후 유럽 경제에서 최강의 힘을 지니게 된 통화를 고도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제시한 것이다. - P318
현대미술계와 글로벌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
위의 예들로 알 수 있겠지만, 하케 작품의 표적은 자본주의 사회만이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거의 그대로 구현하는 아트계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 P318
슈타이얼의 관심과 행동은 하케의 그것과 크게 겹쳐진다. - P318
현대미술계는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는 ‘죽음의 상인‘도 있다. 자신은 그 안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관객도 그 안에서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와 연결된 작품을 감상하며, 구매하고 있다. 하케의 문제의식과 겹치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슈타이얼은 작품만이 아닌 글로도 표현한다. - P319
현대미술의 중요 중심지는 더 이상 서양의 대도시에만 위치하지 않는다. 오늘날, 탈구축주의 건축의 형태를 갖춘 컨템퍼러리아트 뮤지엄은 그 어떤 철통 독재국가라 할지라도 선보이고 있다. 어딘가에 인권침해 국가가 있다면, 자 이제, 프랭크 게리 미술관이 생길 차례다.²²
이러한 발언은 하게의 주장과 거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 P320
21~22 Hito Steyerl (저) 大森俊克(역) 「アートの政治学 コンテンポラリー・アートとポス民主主義への変遷」, 『美鈴手帖』FREE OF 2016년 6월호.
23 Nicholas Law, 「Horseplay: What Hans Haacke‘s fourth plinth tells us about art andthe City」, 『The Guardians』, 2015년 2월 27일. https://www.theguardian.com/attanddesign/2015/feb/27/hans-haaacke-horseplay-city - P579
예를 들어한 저널리스트에게 했던 아래와 같은 이야기와.
우리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무렵, 컬렉터들이 작품을 샀던 이유는 그들이 현대미술과 연관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은 엄청난 수의 컬렉터가 현대미술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있어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들은 재무 고문을 고용하듯이 아트어드바이저를 고용하고 있다.²³ - P320
‘제4대좌‘에 설치된 말의 해골
하케는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갤러리에게 자신의 작품을 아트 페어에 출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 이후부터는 작품이 되팔려 가격이 오를 경우, 그 차익에 대한 15%를 작가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약 거래가 무산되기도 해요. - P321
글로벌 자본주의와 결탁한 현대미술계를 비판하고, 미술관으로부터따돌림 당하며, 아트 마켓의 관행에는 따르지 않는다. 1994년에는 좌익적 분석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문화 제도를 비판하는 대담집25을 간행하기도 했다. 이런 작가는 아트월드에서 추방당하고 말지..라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 P321
2015년에는 런던시의 요청으로 트래펄가 광장의 ‘제4대좌‘에 <선물로 받은 말>이라는 제목의 조각을 전시했다. 런던에는 수많은 기마상이 즐비하지만, 하케의 브론즈 말은 눈에 띄게 이채롭다. 말은 뼈대만으로 이뤄져 있고, 왼쪽 앞다리에 묶인 리본 모양의 전광게시판에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주가를 표시하고 있다.²⁶ - P321
일찍이 하게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정치적인 아티스트‘로 간주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이런 꼬리표가 붙은 작가의 작품은 일원적으로밖에 이해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모든 아트 작품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예외 없이 정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대중들 사이에는, 그리고 때로는아트 전문가들 사이에도, 현대미술은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정치는 현대미술 작품을 불순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누군가가 ‘정치적인 구석으로 몰이 당하고, 실질적으로 제명당하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는, 지극히 흥미로운 현상이다.²⁷ - P322
27 "Für eine Kunst mit Folgen>, "Neue Zürcher Zeitung (z), 2004년 3월 13일 자*. http://www.nzz.ch/article9 FP30-1.226930 - P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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