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오늘날 우리는 대의제 정치체제에서 살고 있다. 이 체제는 18세기 후반,
세계를 뒤흔든 혁명적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른바 인민이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 P23

우리는 대의제 창설자들이 꿈꿨던 이상과 실제로 존재하는 제도에대한 설명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장막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평가를 왜곡하고 있다.  - P23

내가 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탈신비화이다. - P23

‘민주주의‘는 그 의미가 끊임없이 변화해 왔지만 계속해서 네 가지 도전과 마주했다. - P24

네 가지 도전에 대해 민주주의가 보여 주는 무능력은다음과 같다. ①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평등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 ②인민이 자신의 정치 참여가 결과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점, ③ 정부로 하여금 약속한 일을 하도록 하고,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일은 하지 못하도록 보장할 수 없다는 점, ④ 질서와 불간섭non-interference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 P24

사실, 민주주의가 실제 작동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진 사람일수록 민주주의가 모든 상황에서 최고인 체제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제도가 개선될 수 있고, 민주주의에서 소중한 가치들이 모두 유지될 수 있으며, 오작동은 제거될 수 있다는 희망은 커지고 있다. - P24

이를 위해 제기해야 하는 핵심 질문은 위의 네 가지 ‘무능력‘ 가운데 무엇이 조건부적contingent 무능력이고, 무엇이 구조적 무능력인지이다.
조건부적 무능력은 특정 조건이나 제도 때문에 발생하며, 따라서 바로잡을 수 있다. 반면 구조적 무능력은 그 어떤 대의제 정부도 피할 수 없다. - P24

 즉,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평등을 창출할수 있을까? 다양한 유형의 참여는 [집단적 의사 결정에] 어느 정도나 효과적일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부로 하여금 최선의 시민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끔 하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부를 통제할 수 있을까? - P25

확실히 민주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앞서 제시한 무능력의정도도 저마다 다르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가늠하기 위해 나는 근대이후 세계에 존재한 모든 민주주의국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민주주의의역사와 관련된 문헌들을 살피다 보면, 누구든 몇 안 되는 나라들의 경험에 대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P25

 반면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두 가지 중요한 역사적 경로- 영국에서 발전한 입헌군주제와 프랑스혁명에서 등장한 공화주의-를 민주주의로 가는 출발점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먼저 대의제를 시도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작동하고무엇을 하는지 이해하려면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존 마크오프가지적하듯이, "모든 일이 강대국들에서 제일 먼저 발생한 것은 아니다."¹ - P25

1. 서론

1 Markoff (1999, 661). - P340

실제로 현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않다. 오히려 현대 그리스 정치사에는 영국 입헌군주제가 아테네 정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자국에서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의 이면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 P26

하지만 민주주의의 한계는 관찰을 통해 귀납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
심지어 모든 역사적 사례를 본다고 해도 그렇다. 우리가 관찰한 최상의민주주의라 해도, 실현 가능한 최선의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한계를 알려면 분석적인 모형이 필요하다. - P27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대의제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대의제 창설자들 역시 그것을 민주주의로 보지 않았다.⁴ - P27

4 Dunn (2005), Hansen (2005),
Manin (1997), Rosanvallon (1995). - P340

존 던이 지적했듯이, 이 사실은 구분해야 하는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① 왜 정치제도가 주기적인 선거에서 정당들이 경쟁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공직에 취임하는 식으로 발전했는가? ② 어째서 우리는 이런 정치제도를 ‘민주주의‘라고 부르게 됐는가? - P27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영어로 처음 쓰인 것은 1531년이다. "민주적인democrat-ical 또는 인민의popular 정부"라는 말은 1641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헌법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레하다: 겉모습이 깨끗하지 못하고 생기가 없다. - P1321

삭다: 1. 물건이 오래되어 쉽게 부서지거나 떨어질 것처럼 약해지다.
 2. 김치, 젓갈 같은 먹을거리가 익어서 맛이 들다. 
3. 마음이 들뜨거나 화난 것이가라앉다. 또는 얼굴이나 몸이 팔팔한 기운을 잃다.
 4. 음식이 소화되다. 또는 침 때문에 묽어지다. - P729

산들바람: 시원하고 부드럽게 부는 바람.  - P731

깔깔하다: 1.살갗에 닿는 느낌이 까칠까칠하다. 
 참고어) 껄껄하다. 
2. 입 안이나 혀가 깔끄럽고 메마르다.  - P219

깔끄럽다: 살갗에 닿는 느낌이 거칠하고 따끔하다. 
참고어) 껄끄럽다. 
바뀜꼴) 깔끄러운, 깔끄러워, 깔끄럽습니다. - P219

깔아뭉개다: 1. 세게 누르다. 
 2. 힘으로 억누르거나 무시하다.  - P219

깝죽거리다:
 1. 자꾸 까불거리면서 움직이다.
 2. 잘난 체하고 아니꼽게 굴다. - P220

꾸덕꾸덕: 물기가 있던 것이 겉이 말라서 조금 굳어진 모양.
 꾸덕꾸덕하다 - P235

꿩의밥: 양지바른 풀밭에 자라는 풀. 잎가장자리에 길고 흰 털이 있고, 봄에검붉은 꽃이 동그랗게 모여 핀다. - P238

끝물: 한 해의 맨 나중에 나는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  - P234

늙수그레하다: 꽤 늙어 보이다. - P318

능란하다: 어떤 일이 몸에 배어 막힘없이 아주 잘하다. - P318

능통하다: 어떤 일에 훤해서 막힘없이 잘하다.  - P319

능하다: 막힘없이 아주 잘하다.

능히 - P319

달싹: 1. 가벼운 물건이 조금 들렸다가내려앉았다 하는 모양. 2. 몸의 한 부분이 가볍게 들려서 움직이는 모양. 3. 마음이 가볍게 들뜬 모양

 달싹거리다 달싹대다 달싹이다 달싹하다 달싹달싹 - P3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링크>이미지는 캔버스뿐만 아니라 수영복, 베갯잇, 성냥갑, 셔츠에도 인쇄되었다. 그것은 그 위에서 잠을 잘 수 있고, 입을 수 있으며,
부딪힐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블링크>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의미가있는 것으로서 눈을 깜빡거리는 것이 인간의 신체에 깃들어 있음을 암시한다.
세 개의 수평 밴드로 구분된 실크스크린 이미지는 대략 정사각형이며, 반짝이는 노란 바탕이다. - P44

 즉 오른쪽에서는 한 남녀가 관람자를 마주하고 있으며, 왼쪽에서는 한 남자가 관람자 쪽으로 자신의 등을 향하고 서 있다. 세 사람의 신체는 모두 정사각형 나선들과 식물 문양들로 덮여 있다. - P46

<블링크>는 가시적인 것과 관계하는 우리의 감관과 더불어 작용한다.
즉 <로프티크 모데르네>, <아이블링크>, <플리커>처럼 그것은 시각적 경험의 일부 요소가 시야의 불연속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관람자들이 스스로 깜빡거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등록 명부는 관람자 비전의 영역을 가로질러 천천히 기어오르는 필름 프레임처럼, 그리고 눈앞에놓인 밴드들처럼 깜빡거린다. - P46

‘BLINK‘라는 단어 아래에 있는 가위들은 촉감을 유발한다.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갈수록 더 벌어진 그 모습은 가위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가위들은 그것들이 만들어진 재료로부터 인쇄된 것처럼 보인다. - P47

이것은 촉각적인 이미지로서 "접촉 가치에 기반을 둔 지각 체계"나 촉각에 속하는 이미지이다.¹⁴ - P47

14) 로버트 위트킨(Robert Witkin), 「예술과 사회적 구조(Art and Social Structure)』(Cambridge: Polity, 1995), 64. - P291

<블링크>에서 가위의 사실주의는 표준 시각의 부정에서 촉각적이고 경험적이며 따라서 주관적인 경험(이 점에서 그것은 <로프티크 모데르네>와 같다)으로 향하도록 주의를 돌린다.  - P48

공간에서의 위치와 대립하는 것으로 마치 다양한 장소들로부터 낚아챈 것과 같은 그 이질적인 요소들에서, 그것의 분명한 조립의 부족에서, 표면 질감에 대한 강조에서 <블링크>는 사진적 시각의 요소인 파편, 임의의 프레임, 그리고 근접성이나 촉각적인 직접성의 감각에 대한 요소들을 가진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와 눈속임 이미지의 직접적인 후손이다. - P49

이것은 심지어 <블링크> 그래픽에서처럼 한 작품이 단지 시각적일 때나 머추너스의 <플럭스포스트(스마일)[Fluxpost(Smiles)]>의 우표처럼 주로 그러할 때조차도 사실이다(<그림 13>) - P49

플럭스스마일은 광고 속 미소와 가족 사진(치즈)의 반전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신흥 문화권의 열악한 치과 또는 민영화된 치과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그 국제적 대응물인 자본주의 제국주의를 겨냥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 P50

이미지가 유발하는 기표들, 즉 미의 서구 모델들, 의학적인 접근과 건강의 사슬은 호우가 작품에서 감관들의 내면적인 작용"이라고 칭하는 것을 놓친다.¹⁹ <플럭스포스트(스마일)> 페이지를 볼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순간적으로 이상하다. 우표에 묘사된 썩은 입과 치아를 훑어보니, 내 치아가 하드웨어처럼 너무 매끄럽게 느껴진다. - P50

19) 데이비드 하우즈, 서문: 모든 감각을 소환하기 위해(Introduction: To SummonAll the Senses)」, 데이비드 하우즈 편, 감각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Sensory Experience)』(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1), 7~8쪽. - P292

사실 플럭스포스트(스마일)>는 1970~1972년의 입 모양을 바꾸는 <플럭스 스마일 머신(Flux Smile Machine)>(<그림 14>)과 관련이 있는데, 이 기계적 고문 도구는 미소와 육체적 즐거움 또는 정신적 행복의 정상적인 연관성을 해제한다.²⁰ - P50

20) 머추너스는 소위 영웅적인 시기(1962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에 플럭서스 활동에 있어서 에너지가 가장 넘치고 헌신적으로 조직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플럭서스 아방가르드의 그래픽 양식에 책임이 있고 많은 대부분의 중요한 페스티벌을 조직했지만, 그를 플럭서스의 리더나 정의를 내리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실수이다. 왜냐하면 (비록 플럭서스가 아마도 그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라도) 몇 가지 다른 플럭서스 양식들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콘서트에 항상 참여하지는 않았으며, 이 그룹은 몇 년 전에 그가 죽은 후에도 활동을 계속 수행했기 때문이다. 머추너스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플럭서스 작품 내에서의 임의적인 분류를 요구한다. 이 문제는 제2장에서 더 탐구된다.

다시 말해, 플럭서스 작품들이 <플럭스포스트(스마일)>에서처럼 보이기위해 만들어지는 곳에서조차 그것들 또한 종종 느껴지도록(아니면, <블링크>의 경우에서처럼 닳아버리도록) 의도된다. 인간 의식과 사물들 세계의 상호 침투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경험적인 역동성은 여태까지 시험받은 플럭스 필름이나 사물들에서는 고유한 것이 아니다. - P53

<플럭스포스트(스마일)>를 부정적인 문화 비평의 한 형식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듀이의 이분법적인 관점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며, 그러므로 변증법적인 방식을 혐오하는 신비주의와 곧잘 결부되는 용어인 통합이나 변모가 반드시 부족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플럭스포스트(스마일)>, 그리고 신체적인 효과가 미소 짓는 문화를 특징화하는 것은 바로 문화적인 이중성과 개인적인 변모의 통합이다 - P53

플럭서스 비전을 경험적 용어로 생각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미적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다시 한번 마틴의 용어로 말하자면 플럭서스의 경험적인 기반은 "예술과 삶 사이의 격차가 이론상으로는아무리 근본적으로 줄어들고 희박해지더라도 계속 하나의 모토, 하나의원리가 될 수 있다. 그 격차가 충분히 줄어들었을 때, 이 원리를 준수하는것 자체가 삶의 향상에 보탬이 되는 하나의 방법이라 볼 수 있다."²³ - P54

23) 헨리 마틴, 「플럭서스와 인본주의적 전통」 5쪽. - P292

플럭스키트와 이벤트에서의 정보와 경험


이 글이 쓰인 것처럼, 대륙 전체의 정보 초고속도로 건설에 수십억 달러가 사용되고 있다. 이 고속도로는 하나를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종류의 정보가 흘러갈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개발에서 제외된 정보가가장 중요한 종류이다. 모든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며, 냄새를 맡고 맛을봄으로써 환경에서 얻는 정보, 즉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보 . 따라서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 정보가 일차적이며, 처리된 정보는 이차적이다.²⁴ - P54

24) 에드워드 리드, 「경험의 필요성」(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2), 2쪽 나의 견해 강조). - P295

머추너스가 고안했던 첫 번째 플럭스키트인 <플럭서스 > (<그림 4> 참고)은 사물들, 시각적인 작품, 예술가 39명의 수필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들모두는 그 그룹과의 사회적인 통합이나 우정으로 정의하는 플럭서스 예술가들이 아니다. <플럭서스I>에서 다양한 항목들은 다감각적인 주요한 정보를 생산해 낸다. - P55

개별적인 예술가들이 순차적으로 만들었던 일부 플럭스키트는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손가락 구멍이 뚫려 있어 만져볼 수 있는 신비한 내용물이 담긴 상자, 교육용 퍼포먼스 카드, 이벤트 악보, 공, 실제 음식(콩), 음식 모형, 호루라기, 냄새로만 구별할 수 있는 말들이 있는 체스 세트, 예방약으로 가득 차 있다.²⁶ - P55

26) 한 권의 전체 책보다는 좀 더 짧은 분량으로 그것들을 조사해 보기에는 너무나많은 플럭스키트가 있다. 그 이후에 나오는 것은 심화 연구에 대한 초대로서 기능하게 되는 재현적인 표본이다. - P292

이러한 오리피스 플러그들의 촉각성은 플럭스키트 사용자들이 그것과의 감관적 조우를 통해 그들의 신체적인 환경에 연결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예방약의 역사에 대한 분석은 작품의 요점을 놓친다. 왜냐하면 "내가사물을 만지고 잡으며 밀어낸다는 사실은 거기에 실제로 어떤 것이 있다는 느낌, 나는 마술이나 환상의 놀이가 아니라는 느낌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다."²⁷ - P56

27) 윌리엄 아이빈스(William Ivins), 「미술과 기하학: 공간 직관에 관한 연구(Artand Geometry: A Study in Space Intuitions)』(New York: Dover, 1964), 4쪽. - P2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어떤 것에 대해 결코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않기때문에, 플럭서스는 보티에(Ben Vautier)의 말에 의하면 "예술계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양식이나 물질 혹은 의미는 그 어느 것도 예술가들 가운데서 의견 일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 P11

사학자인 스미스(Owen Smith)가 말하고 있듯이, "플럭서스의 역사적인 속성과 그 개념적 틀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급진적이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좌절간으로 보일 수 있다."¹ - P11

머리말

1)오언 스미스, 서문(Introduction)」, 「플럭서스: 태도의 역사』(San Diego SanDiego State University Press, 1998), 1쪽. - P287

『플럭서스 경험』은 본질적으로 경험적 성격의 플럭서스 형태에 대해 부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 책은 미국의 철학자인 듀이가 "세계와의 활동적이고 경계심이 있는 교류, 자아에 대한 완전한 해석, 그리고 사물과 이벤트의 세계"³로 묘사한 것처럼 몇 점의 핵심적인 플럭서스 작품들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한 개인이 서술한 것이다. - P12

3) Art as Experience) (New York: Capricorn, 1934),
25쪽. - P287

다음에서 나는 하나의 주어진 경험자에게 궁극적으로 속박되는 개인 작품들이나 일련의 작품들에 대한 여러 해석의 제공에 대한 반대로 플럭서스경험 그 자체의 정보적인 구조를 강조했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특별한 플럭서스 경험보다는 오히려 그 경험의 역학과 관계가 있다.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플럭서스 운동에 대한 이해가 발전함에 따라 개별 플럭서스 경험에 대한 주제별 분석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 P13

5)특정한 콘서트와 페스티벌에서 퍼포먼스를 했던 장소, 참가자와 작품에 대한세세한 것은 스미스, 「서문」 참고. - P287

예술 운동에 대한 나 자신의 경험적인 지식은 플럭서스가 본질상 경험적이라는 나의 확신에서 일부분 확실하게 작용한다. 아직도 나는 나 자신을 매번 점검한다. 플럭서스 경험은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용어와 저작뿐만 아니라 사물들과 퍼포먼스 자체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진행될 설명은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본능과 직관으로부터도 나온다. 여태까지 모든 지적인 노력이 엄밀하게 행해졌기 때문에, 이 특별한 프로젝트는 평범하다. - P14

작곡 수업이 공식적으로 끝난 후에도 플럭서스(뿐만 아니라 해프닝, 팝 아트, 실험 영화와 연극, 무용)와 관련된 예술가들은 비공식적으로 실험을 계속했다. 플럭서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1959~1960년에 한센과 히긴스가 뉴욕 오디오비주얼 그룹(New York Audiovisual Group)을 창설한것과 맥로와 영이 웨스트 코스트의 실험적인 악보 잡지 《비티튜드 웨스트(Beatitude West)》를 확장한 《비티튜드 이스트(Beatitude East)》를 출간하기 시작한 일이다. - P24

유럽에서의 플럭서스도 유사하게 출발했다. 1950년대 초부터 독일의 음렬주의 작곡가인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은 독일에서 전위 음악의 중심에 있었다. 플럭서스 예술가 영(1958년)과 백남준(1957~1958년)이 참석한 다름슈타트에서의 그의 작곡 과정은 1950년대 후반 플럭서스예술가인 윌리엄스를 포함한 실험적인 다름슈타트 시 · 연극회와 궤도를.
공유했다. - P24

비록 보이는 것이 물리적인 대상이 아닐지라도 <플리커>에서처럼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수 있다. 비록 (귀신, 꿈, 모든 종류의 환각 눈의 고장, 신기루, 마술, 비전 게임으로 야기되는 이미지들과 같은) 비가시적인 비전들을 만들어내는 다른 요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시각적인 피로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이다. - P37

다시 말해, 이 경험은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 자극(필름)은 보이는 바(부분)가 아니며, 보이는 것과무관하지도 않다. 오히려 보이는 것은 "저쪽에 있는" 세계와 "이쪽에 있는" 자아와 결합한다. - P37

그것이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플리커>는 경험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정보의 발신자들(객체)과 수신자들(주체들)에 의해 중재된다는 믿음과는 반대로 작용하는데, 그것은 서구의 철학적인 전통의 핵심인 이중성이다. - P37

즉 눈은 외부 스크린에 비치는 필름을 보는 사람의 유기적인 경계를 이룬다. 필름을 보는 경험은 요소들을 한 영역 또는 다른 영역에 배타적으로 위치시키기 위해 쉽사리 해부될 수 없다. 두 영역 모두에서동일하게 발생한다. 그러므로 <플리커>의 경험은 "자아, 그리고 사물들과상황들의 세계에 대한 완전한 상호 침투를 나타내는 것"³이라고 보는 심미적 경험에 대한 듀이의 개념과 부합된다. - P38

제 1장 정보와 경험

3)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 25쪽. - P289

<플리커>와는 속도 면에서 정반대인 같은 플럭스필름과 프로그램에 포함된 오노(Yoko Ono)의 필름 <아이블링크(Eyeblink)>(1966)가 있는데, 그것은 플럭서스 촬영 기사인 무어(Peter Moore)의 고속 카메라로 초당 2000개의 프레임으로 찍은 깜빡거리는 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칙적인 속도로 보이는 그 필름은 깜빡거림의 극단적으로 느린 동작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 P38

눈을 깜빡이는 동안에는 눈이 완전히 열리지 않기 때문에, <아이블링크>의 대부분은 보고 있지 않는 동안, 적어도 가시적인 사물들을 보고 있지 않는 동안의 눈을 보여준다. 오히려 스크린 위의 이미지는 규범적인 시각 경험 사이의 연장된 공간이나 틈을 보여준다.  - P39

두 필름에서 비전은 신체 내에 확고하게 위치를 잡았다. <플리커>에서의 구현은 관람자의 시신경과 눈 근육에 미친 피로의 효과를 통해 일어나며,
<아이블링크>에서는 하나의 시각적 틈의 지연된 재현을 통해 일어난다. 비객관적인(하지만 시각적인 요소들의 이러한 구현을 통해 <플리커>와 <아이블링크>는 상업용 필름과 연합된 연속적이고 객관적인 비전의 영역이나범위상 통일성에 대한 대안들을 제공한다.⁵ - P39

5)멀베이의 획기적인 「시각적 쾌와 서술적 영화(Visual Pleasure and NarrativeCinema)는 예술사 분야에서 특히 영향력이 있었다. 그것은 콘스턴스 펜리(Constance Penley) 편, 「페미니즘과 필름 이론(Feminism and Film Theory)」(New York: Routledge, 1988)에서 발견될 수 있다. - P289

현대 예술사 용어에서는 눈을 그 시각적인 능력(<플리커>)의 한계까지 강요함으로써, 그리고 깜빡거림(<아이블링크>)으로 특징지어지는 시각성에서 휴식에 접근함으로써 이 필름들은 신체에서 떠난 응시의 권한을 약화한다.⁷ - P39

7) 미술사 내에서 응시의 변하는 기능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로버트 넬슨(Robert S.Nelson) · 리처드 슈리프(Richard Schriff) 편, 미술사를 위한 비평적인 용어들(Critical Terms for Art History)』(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에 나오는 마거릿 올린(Margaret Olin)의 「응시(Gaze)」를 참고. 미술사학자들과 문화적인 비평가들이 행한 응시에 대한 유명한 서적 분량의 연구는 노먼 브라이슨(Norman Bryson), 「비전과 회화: 응시의 논리(Vision and Painting:The Logic of the Gaze)」(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3), 기드보드(Guy Debord), 스펙터클의 사회(The Society of the Spectacle)』(Detroit: Blackand Red, 1983)와 마이클 프리드, 「몰입과 연극성: 디드로 시대의 회화와 관Absorption and Theatricality: Painting and Beholder in the Age ofDiderot)(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0)를 포함한다. - P290

이러한 경험에 의한 시각의 입체감과는 대조적으로 상반된 시선을 가진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철학적인 사학자인 비릴리오(Paul Virilio)에 의하면,
"시각의 입체감이 발전하고 이를 통해 보는 방식의 모든 가능한 표준화가 이루어지는 결절이었다."⁹ 이러한 견해는 후기 르네상스의 맥락에서 다른 시각적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 P42

9) 폴 비릴리오, 『비전머신(Vision Machin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1988] 1996), 15쪽 - P290

격자/스크린이 없다면 혼돈이 지배하게 된다. "서구에서 신과 예술의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리고 재현의 제로 지점은 인습 파괴자들과 투쟁하는 동안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니케포루스(Nicephorus)가 천년 전에 말했던 예언을 성취했을 뿐이다.
즉 우리가 그 이미지를 제거한다면, 예수뿐만 아니라 전 우주도 사라지는 것이다.¹⁰ - P42

10 )BAR PE (Vision Machin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Press; 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1988] 1996), 16~17쪽. - P290

다시 말하면, 비실리오의 경우 신체를 없앰으로써 모든 진실 묘사적인 미술에서 세계를 객관화시키는 스크린이나 "보기 위한 장치"는 시각적인 경험의 한 부분에 지나지않는다. 응집력을 가진 다른 논리들이 있다. 우리는 "바로 그 존재인 실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 P43

비릴리오의 원근법으로부터 두 개의 플럭스필름과 스포에리-뒤프렌의 사물은 필름의 범주적 통일성, 환영주의적 이미지들과 부정적으로 공명하는 반면에, 로마니신의 원근법으로부터는 필름과 사물이 더 광범위한 생리적인 비전의 기반을 확신시켜 줄 것이다. 시신경의 피로나 눈꺼풀에 생리적인 틀(<플리커>)을 제공함으로써, 눈꺼풀이 깜빡거리는 것(<아이블링크>)으로 눈꺼풀을 표현함으로써 플럭스필름은 눈을 모든 운동성과 감각성을 가진 인체 내에 둔다. 이와 함께 세 편의 플럭스 작품들은 범주적인 통일성에 대해 하나의 대안을 제공하며, 그와 동시에 경험적인 혼돈이라는 개념을 배척하게 된다. - P43

 만약 우리가 신체를 수동적인 시각의 단순한 연장, 즉 단순히 눈의 배후에 덧붙여진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각의 일치된 입체감은 역동적이다. - P44

즉 "신체는 주체적 역할에 덧붙여 그 자체가 하나의 대상으로 제시된다.
"이와 더불어 주체와 객체는 행위, 언어, 사물, 소리 사이의 조사를 위해 변하면서 상호 관계성을 가지는 지각적 영역을 만들어낸다."¹² 퍼포먼스처럼 이렇듯이 "변하면서 상호 관계성을 가지는 지각적 영역은 눈 깜빡거림을유발하는 다른 플럭서스 작품에서 간결하게 설명된다. - P44

12) 크리스틴 스타일스, 「물과 돌 사이, 플럭서스 퍼포먼스: 행위의 형이상학(Between Water and Stone, Fluxus Performance: A Metaphysics of Acts)」엘리자베스 암스트롱(Elizabeth Amstrong) · 조앤 로스퍼스(Joan Rothfuss)편, 「플럭서스 정신(In the Spirit of Fluocus)』(Minneapolis: Walker Art Center,
1993), 65쪽. 스타일스가 사용한 퍼포먼스적(performative)이라는 용어는 오스틴의 단어들로써 어떻게 사물들과 접하는가(How to Do Things with Words)」(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에서 유래한다. 오스틴은단어들이 일하는 방법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스타일스는 이것을 확장하여 생각과 행동을 연결하는 비교적 광범위한 활동과 경험을 포함한다. 퍼포먼스성 언어적 의미에 대해서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흥분할 수 있는 말(Excitable speech)』(New York: Routledge, 1997) 참고. - P2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