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은 지방(소멸) 시대

‘디나이얼 지방출신‘을 아십니까

신입사원 환영회든 동아리 회원 모임이든 자기소개 시간이면사람들은 출신지 혹은 사는 곳을 이름 옆에 나란히 두고 자신을 설명한다. 사람은 매 순간 자신의 출신지를 자각하며 살진않지만, 어떤 상황에서 지역의 이름은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요소가 된다. ‘어디 출신‘이라고 지역명을 언급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건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 P20

소풍갔던 보문산⁹과 친구들과의 보물찾기 놀이, 장기자랑의 기억이 그 지역명에 묻어 있다. 블론세이브 blown save¹⁰ 가 되자, 관중 모두 한꺼번에 탄식을 내뱉는바람에 다 날아갈 것 같았던 대전 이글스 파크 야구장의 녹색잔디도 나의 어떤 부분을 채우고 있다. - P2

9 _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산으로 대전 중구가 꼽은 ‘중구 10경‘에 포함돼 있다.

10_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세이브 기회를 날렸다는 뜻. - P154

비슷비슷한 자기소개 멘트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출신지에 따른 엄연한 차이가 있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저는 방배동 살아요."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부산에서 왔습니다.‘ ‘대전이 집‘이라고 얘기하는 와중에 서울 사람들은 동네 이름으로 자신의 출신지를 얘기하는 섬세함을 보인다.
심지어 아파트 이름을 대는 경우도 있는데, 더 신기한 건 서울사람들은 아파트 이름만 듣고도 어느 동네인지 알아챈다는것이다. - P21

행정 구역 서울특별시의 면적은 605.21 제곱킬로미터다. 포항시의 크기는 1130.8제곱킬로미터로 서울의 두 배가까이 된다. 하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포항시 대잠동에서 왔다‘라고 말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 P21

무엇 하나로 대표되는 도시는 그것 때문에 금방 알려질수 있지만, 결국 그 특징 하나로 끝나 버린다. 사람과의 관계맺기도 비슷하지 않나. ‘아, 그 매일 축구화 신고 다니는 애!‘
로 기억되면, 인맥 폴더에서 빨리 소환될 수는 있어도 ‘축구화 신는 애‘ 이상으로 궁금하지는 않다. 관계 맺기의 특징은 그 사람에 대한 지식과 소통의 추억을 계속 쌓는 데 있다. - P23

지방 도시들은 ‘그냥 맨날 축구화 신고 다니는 애‘ 이상의 부피와 복잡성을 지닌 정체성을 가지지 못해 왔다. ‘맨날축구화 신고 다니니까 축구는 잘하겠지, 체육 대회 때 부를까?‘ 이상의 관계 맺기를 상상하지 못해 왔다. - P24

웬만한 광역 시·도는 잘 가꿔진 도심 공원과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도서관 또는 미술관,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있는 호수와 수목원 정도는 가지고 있다. - P24

원본, 기준과 다른 특별함은 개성인 동시에 유머의 소재이거나 결핍으로서 안쓰러운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숨길수 없는 식성과 사투리 억양은 유머의 소재가 된다.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지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 묻는 사람들 앞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지역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다가도 돌연의기소침해지곤 한다. 나의 특별함을 벗어나 그저 담담히 오늘의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만, 쉽지 않다 - P25

내가 출발한 곳에 대한 부끄러움은 결국 그것에 대한혐오로 이어진다. 혐오가 꼭 대상에게 대놓고 침을 뱉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의 가치를 후려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위계질서에 대한 인식에 근거한다.  - P26

 살고 있는 동네, 도시나 지역이 식성과 억양에 배어 나오고, 그게 꼭 나를 다 설명하는 것 같다. 내가 속한곳이 허접하고 후진 것이라 취급된다면, 아니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챈다면 난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싶다.
내가 떠나온 곳을, 동네를, 지역을 부정deny 하고 싶다. - P26

‘디나이얼 지방출신‘은 자신이 속한 도시가 지역 위계질서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챈 사람들이다. - P27

누군가 대전에 뭐 있냐고 물으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와 관계를 맺어 온 지역 장소와 경험을 추릴 시간. 하지만 사람들은 지역의 콘텐츠를 재빨리 문제 삼는다. ‘그거 봐, 성심당 말고 없잖아‘라며, 지역의 자원이 그것뿐이라고 점수를 매긴다. - P27

지방 도시의 쪼그라드는 역사

서울이 크다는 말은 ‘서울이 그만큼 힘을 가져 왔다‘라는 말로 다시 쓸 수 있다. - P28

최근 20년간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꾸준했다. 속도도 빨랐다. 2020년엔 드디어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했고, 2022년에도 여전히 수도권 인구는 전국 인구의 50.5퍼센트에 해당하는 2605만 명이다. 2022년 서울의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1만 5551명으로 도시중 가장 높고, 부산이 제곱킬로미터당 4278명으로 그다음이다. 서울의 밀도는 2위인 부산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¹⁸ - P28

18_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시도편: 2020~2050>
국토교통부, <지역별 인구 및 인구밀도>, - P155

중심이 된 서울이 가져온 효과는 다양한 면에서 강력하다. 지방의 도시들이 소멸할 것이라는 ‘지방 소멸‘의 공포감은 인구의 자연 증가만이 해결의 열쇠인 듯한 인상을 풍겨 왔다. - P29

강준만²¹은 일자리와 명문 대학의 서울 집중화를 지적하며, 사실상 ‘서울공화국‘인 한국에서 지방은 ‘내부 식민지‘
라고 주장한다. - P29

21_ 강준만, <지방이 지방을 죽인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창작과 비평》 48(4),
2020, 268-284. - P155

이러한 서울 집중 현상,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을 정부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 중 여섯 번째 핵심 목표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 시대다. 지역간 격차가 없는 삶은 오랫동안 지방 정부뿐 아니라 중앙 정부의 중요한 정책 목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그 성적표는 꽤초라한 편이다. - P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키 번역을 앞선 구글 번역

2016년 겨울, <뉴욕 타임스>에 ‘위대한 인공지능, 깨어나다 The GreatA.I. Awakening‘¹ 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이 기사는진정한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다는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죠. - P251

6. 기계번역: 외국어를 몰라도 파파고만 있다면

1 https://www.nytimes.com/2016/12/14/magazine/the-great-ai-awakening.html - P461

 먼저《위대한 개츠비》에서 문장을 뽑아 무라카미 하루키村上 1949~가일본어로 번역한 문장과 구글이 번역한 문장의 품질을 비교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에서는 하루키의 문체가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구글이 번역한 문장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구글의 영어-일본어 번역은 제대로 읽기도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었는데, 갑자기 번역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거죠. - P252

먼저 인간의 언어부터 살펴봅시다. 인간의 언어는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²

1. 역사와 유행에 따라 무작위로 생겨나는 규칙

먼저 규칙이 너무 많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몇 가지 규칙만으로설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신조어가생겨나면서 계속 확장하기 때문이죠.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도 너무 많아서 1866년 파리언어학회는 이 주제에 관한 토론을 아예금지시켜버릴 정도였습니다. - P252

2 닉 폴슨, 제임스 스콧, 《수학의 쓸모》,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2020, 182쪽. - P461

 ‘케첩‘을 예로 들어보죠. 케첩이란 이름은 어느 나라에서 지었을까요? 영국 아니면 프랑스나독일에서 건너온 이름일까요? 아닙니다. 놀랍게도 이 이름은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생선으로 만든 소스를 의미하는 ‘규즙‘의 중국어 발음이 ‘꿰짭‘이고, 이것이 영어권 나라로 넘어와 케첩이 된 것입니다. - P253

이처럼 사물의 이름은 일정한 패턴을 따라 생겨나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나라나 언어에서 파생하기도 하죠. 역사와 유행에 따라서도 생겨납니다. - P253

2. 수많은 오류

모든 사람이 말을 문법에 맞게 하면 좋겠지만 사실 일상적인 대화에는 엄청나게 오류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대화가 가능한 것은 우리의 뇌가 웬만한 오류를 보정하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 P254

3. 언어의 모호성

같은 발음을 지닌 단어가 여러 뜻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말 중에는 대표적으로 ‘배‘가 있죠. ‘배가 크다‘라고 한다면 여기서
‘배‘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먹는 배‘ 일까요? ‘타는 배‘ 일까요?
단어만 봐서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P254

I had a delicious breakfast with my best friend here.

이 문장을 예전의 번역기들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나는 맛있는 아침과 여기서 나의 최고의 친구와 가졌다.


단어를 하나씩 대입하면 틀린 부분 없이 번역된 듯 보이지만 문장 전체를 읽어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이죠. - P255

기계번역의 시작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컴퓨터를 사용해 다른 언어로 번역해내는 일을 기계번역 Machine Translation 이라고 합니다.
‘기계번역‘이라는 용어는 1949년부터 논문에 등장했고,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았죠. - P257

규칙 기반, 모든 규칙을 정의하다

기계번역을 대표하는 회사로 1968년에 설립한 시스트란SYSTRAN이 있습니다.
이제는 5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회사는 헝가리 출신의 컴퓨터 과학자 피터 토마Peter Toma, 1924~ 박사가 설립했습니다. - P258

하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규칙 기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규칙을 아무리 세워도 언어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결코 따라갈 수 없기때문이죠. 앞서 살펴본 ‘had‘ 처럼 말이죠. 무려 30가지가 넘는 의미를 지닌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하려면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가 필요한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 P259

게다가 우리말은 대표적인 교착어로 용언 활용만 해도 무궁무진합니다. 이 모든 걸 규칙으로 처리하는 건, 정말 ‘캐어려운‘ 문제죠.
아예 규칙으로 처리할 수 없는 단어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번역되어야 하는 경우입니다. - P260

예시 기반과 통계 기반, 가능성을 보이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연구자들은 새로운 시도를 해봅니다. 특히 국내총생산액이 세계 2위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성장한 일본은국제사회에서 활약하기 위해 영어-일본어 번역이 절실했죠. 교토대학교의 나가오 마코토尾, 1936~2021 교수는 예시 기반 기계번역Example-Based Machine Translation이라는 획기적인 방식을 제안하고, 이에 기반해 매우 성능 좋은 영어-일본어 번역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 P261

1990년대에 들어서는 통계적인 방법을 접목한 통계 기반 기계번역Statistical Machine Translation이 등장해 더 나은 성능을 보입니다.  - P2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어가는 말

1801년 10월 헤겔G. W. F. Hegel은 우여곡절 끝에 예나 대학에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제출했다. 그 논문이 바로 《행성궤도론 Dissertatio Philosophica de Orbitis Planetarum》이다. 그러나《행성궤도론에 관한 철학적 논구》(이하 《행성궤도론》으로 표기)은 출판되자마자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 거의 사장될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 P7

물론 《행성궤도론》의 의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20세기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포퍼Karl Popper 같은 적대자들이 헤겔을 야유하고 조롱하기 위해가끔 인용할 뿐 《행성궤도론》을 포함한 헤겔의 자연철학은헤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 P8

〈자연철학〉 영역본을 통해 헤겔에게 영향을 주었던 당대의 자연과학자와 자연과학상의 문헌이 소상하게 밝혀진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헤겔이 자연과학에 문외한이었다는 일부의 평가가 근거 없는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1983년 튀빙엔 대학에서 최초로 헤겔의 자연철학에 관한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이후 1986년 논문집 <헤겔의 자연철학HegelsPhilosophieder Natur》이 발간되었고, 다음해에는 《헤겔과 자연과학Hegel und die Naturwissenschaften》이 발간되었다. - P8

내가 《행성궤도론》을 처음 대한 것은 1997년이다. 당시 독일에 유학 중이던 한 후배가 노이저의 라틴어 독일어 대역본을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 P9

《행성궤도론》은 헤겔이 자연철학에 관해 작성한 최초의문헌이다. 이제까지 출간된 헤겔의 자연철학 문헌은 몇 가지가 있다. 1801년의 이 논문과 1803년부터 1806년까지 씌어진 《예나 체계초안Jenaer Systementwiürfe》, 《철학백과사전》 제2부 <자연철학>, 2002년에 비로소 출판된 《1819~1820년 베를린 대학에서의 자연철학 강의록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der Natur Berlin 1819/1820》 등이 그것이다. - P10

《행성궤도론》은 본론과 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론은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케플러JohannesKepler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뉴턴Issac Newton의 중력 법칙을 비판하고 후반부는 케플러의 법칙을 형이상학적으로 재해석한다. - P10

전반부에서 헤겔이 뉴턴을 비판하는 데 있어 핵심은 뉴턴이 물리학과 수학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뉴턴이물리학적 규정(질 규정)을 수학적 규정(양 규정)으로 치환한 결과 천박한 기계론 내지 수학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 P11

《행성궤도론》이라는 논문의 근본 취지는참된 철학적 입장에서 ‘이성과 자연의 동일성‘ 원리를 행성궤도의 법칙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 P11

《행성궤도론》이 번역, 소개됨으로써 국내 헤겔 연구에서미진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자연철학 분야의 연구 분위기가진작되고 활성화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자연을설명하는 데는 과학적 접근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접근 방식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기를기대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헤겔철학의 진수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이 번역본이 조금이나마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P12

서론

자연의 최초의 힘인 무게³와 관련해서 본다면 자연이 만들어낸 지상의 모든 물체는 완전히 자립적인 것은 아니다. 지상의 물체들이 어느 정도 완전하게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우주상을 표현한다고 해도, 전체의 힘에 압도당하고 마침내 소멸한다.⁴ - P12

3 헤겔은 ‘무게‘를 의미하는 라틴어 ‘gravitas‘를 쓰고 있지만, 이제는 이를 ‘중력‘을 의미하는 ‘Schwerkraft‘로 번역했으며, 무라카미 교이치도 마찬가지로 ‘‘으로 번역했다. 헤겔은 gravitas와 중력을의미하는 vis gravitatis를 엄격히 구별해서 사용한다. 뉴턴이 물체가 갖는 무게를 지구의 인력인 중력으로 환원한 이후 무게와 중력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 되어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 점에서 본다면 노이저와 무라카미 교이치 등이 그렇게 옮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특히 《철학백과사전 <자연철학>에서 헤겔은 무게를 자신의 중심을 제 바깥에 지니고 있는 물체의 실체로 본다. 유한역학에서 모든 물체는 끊임없이자신 바깥에 있는 자신의 중심을 향해 자신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며이것이 무게로 표현된다. 그래서 헤겔은 물체의 본질인 무게를 한갓 무게의 힘(중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본다. 이에 관해서는 <헤겔 자연철학 1》, $270과 $262. 주1  참조. 헤겔은 《행성궤도론》에서도 셸링의 《나의 철학 체계의 서술》을 마음에두고 셀링이 Schwerkraft라고 표기한 것을 경우에 따라서 gravitas.
고 옮기기도 하고 vis gravitatis라고 옮기기도 한다. 이것은 헤겔이gravitas와 vis gravitatis 의식적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 44 참조. 그래서 옮긴이는 모든 경우에 gravitas(Schwere)는
‘무게‘로, vis gravitatis (Schwerkraft)는 ‘중력‘으로 옮기고 비슷한 용어인 pondera(Gewicht)는 ‘중량‘으로 옮겼다. - P108

4 예나 시기에 성립된 헤겔의 우주론은 그리스의 우주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의하면 천상의 세계야말로 성스러운 신의 세계다. 이 때문에천상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천체 운동은 이성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있고 따라서 천체의 운동이야말로 이성의 숭고하고 순수한 표현의 귀감이다.
헤겔은 최초의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후기 체계에서도 절대적
‘으로 자유로운 운동으로서의 천체 물리학과 지상의 물체에 관한 지구 물리학을 구분한다(G. W. F. Hegel, G. W. F. Hegel Werke inzwangzig Bänden 9 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II DieNaturphilosophie Mit den mündlichen Zusätzen (Frankfurt a. M.: Suhrkamp Verlag, 1986), 82~85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헤겔(1986) Bd. 9‘로 표시하겠다). 이 둘은 각각 케플러Johannes Kepler의 천체 운동의 법칙과 갈릴레오Galileo Galilei의 낙하 법칙에 대응한다. 이 두 법칙을 구별함으로써 헤겔은 뉴턴이 폐기한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의 구별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MK. - P108

나는 우선 천문학이 물리학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개념을 논할것이다. 다음으로 참된 철학이 태양계의 연관에 관해서, 특히 행성의 궤도에 관해서 확증하고 있는 것들을 서술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대 철학에서 유명한 예를 빌려 철학이 수학적인 비례 관계의 규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밝히고자 한다.⁸ - P18

8 원래 라틴어로 씌어진 《행성 궤도론》은 목차도 없고 장과 절도 구분되어 있지 않다. 이 단락까지가 아마도 논문의 서론에 해당한다고생각된다. 간략한 요약이지만 논문에서 전개될 전체 내용의 핵심이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본론은 3개 항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라손Georg Lasson은 라틴어-독일어 대역본에서 본론을 로마 숫자를 사용해 3개 장으로 구분하여 논문의 형식을 갖추도록 체제를 정비했다. 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① 물리적 천문학이 일반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기초 개념에 관한 논구.
② 참된 철학이 이미 확증한 태양계의 연관, 특히 행성의 궤도에 관한 서술
③ 고대 철학에 근거하여 수학적 비례 관계의 규정에 대해 철학이기여할 수 있다는 예증.
그러나 이 논문의 구성을 더욱 상세히 알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구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우선 논리 전개에 따라 장과 절을 구별하고 여기에 적절한 소제목을 붙임으로써 목차를 좀 더 완전한 체제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프랑수아 드 강François de Gandt은 이 점을 고려하여 불어 번역본을 만들었다. 무라카미 교이5의 일어 번역본도 이를 따르고 있다. 이 책에서도 드 강의 불역본을 참조하여 장과 절을 구분하고 각각 소제목을 붙였다. 반면에 볼프강 노이저Wolfgang Neuser의 독일어 번역본은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소제목도 없다. - P110

제1장

뉴턴 천문학의 원리에 대한
비판적 논구

1. 물리학·역학·수학

(1) 뉴턴의 오류

물리학의 이 부문(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여기서의 문제가 물리학이라기보다는 천체 역학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⁹ 또한 천문학이 보여주는 법칙들이 실제로 자연 그 자체에서 가져오거나 이성에 의해 세운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근원을 다른 학문, 즉 수학에서 끌어온 것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¹⁰ - P21

9 이 장에서는 천문학이 물리학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기초 개념, 구체적으로 말해서 <프린키피아Mathematical Principles ofNarural Philosophy)에서 뉴턴Isaac Newton이 제시하고 있는 역학적 천문학의 원리를 비판적으로 논하고 있다.

10 천체 역학의 법칙들이 수학에서 도출된 것이라는 헤겔의 견해는《철학백과사전》 <자연철학> 서론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거기서 헤겔은 뉴턴의 천체 역학이 수학적 방법에 의한 자연 인식의 정점에서 있는 것이며, 더구나 경험과 개념에 반해 수학적 규정들만을 근거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다(헤겔(1986), Bd.9.9~13쪽 참조). - P110

하지만 뉴턴은 우리 지상의 일부를형성하고 있는 물체에 관해 경험이 보여주는 중력의 크기를천체운동의 크기와 동등하게 다루었으며 더구나 모든 것을 기하학과 미분학이라는 수학적 근거에서 논증했던 것이다.¹⁶ - P22

16 뉴턴 이전에 이미 지상에 있는 물체의 운동 법칙과 천체의 운동법칙은 따로따로 발견되었다. 뉴턴 이전에는 두 법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뉴턴이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힘의개념을 천체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비로소 천상계와 지상계를 동질의 힘과 동질의 운동 법칙이 지배하고 있음을 밝혔다. 뉴턴은 케플러가 주장한 천상계의 역학과 갈릴레오가 발견한 지상계의 역학 사이의 구별을 폐기하고 양자를 통일했던 것이다. 여기서 완성된 뉴틴의 역학적 자연관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수학적 방법이다(버나드 코헨,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 새물리학의 태동》, 조영석 옮김(한승, 1998), 169~212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코헨(1998)‘으로 표시하겠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따르면 천상계는 지상계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신성한 장소다(주 4 참조). 헤겔은 이 관점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천상계가 지상계와 동일한 운동 법칙, 동일한 성질의 중력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발견한 뉴턴의 업적을 배격하고 있는 것이다. - P114

(2) 수학적 형식주의와 물리적 실재성

이와 같이 물리학과 수학을 결합하기에 앞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순수한 수학적 근거를 물리학적근거와 혼동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기하학에서 작도(作圖)를 위해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을 덮어놓고 힘이나힘의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¹⁷ - P22

17 헤겔이 뉴턴을 비판하는 데 있어 핵심은 뉴턴이 물리학과 수학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 말하자면 물리학적 규정(질 규정)을 수학적 규정(양규정)으로 치환한 결과 천박한 기계론 내지는 수학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 P114

왜냐하면 수학에 의해 증명된 양의 비례관계는 그것이 이성적 비례 관계라는 이유 때문에¹⁹ 바로 자연 속에 내재하는 것이며 또한 이 비례 관계가 인식될 경우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의 완전한 총체성을 도외시하고 있는 자연에 관한 분석과 설명은 전체 자연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성적 관계와 엄밀히 구별될 수밖에 없다. - P22

19 라틴어 원문은 ‘rationes enim quantitatum, quas Mathesis exhibet, eam ipsamob causam, quod rationes sunt,
"이다. 노이저는 이것을 "Die Grunde für die Größen nähmlich, die die Mathematikerweist, sind eben deshalb, weil sie Grinde sind, "로 옮겼지만이 책에서는 드 강의 불역본을 따랐다. 또한 수학적 비례나 이성을의미하는 ‘ratio‘를 두 의미를 동시에 살리기 위해 ‘이성적 비례 관계‘라고 옮겼다. 불역본은 ‘rapports-rationnels‘이라는 합성어를 만들어 쓰고 있다. dG. WN. - P116

 다른 한편으로 기하학에 해석학적 계산법을 도입해 공간과 시간을 통일적으로 규정할 필요성 때문에 성립된 고등 기하학²¹은 어떠한가? 고등 기하학은 무한자의 개념을 통해서 공간과 시간의 분리를 단지 부정적으로 지양하고 있지만 결코 시간과 공간의 참된 종합을 보여주지는 못하며, 그 분리를 부정하는 데서도 기하학과 산술학의 형식적 방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P23

21 여기서 말하는 ‘고통 기하학sublimiore geometria‘은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이라든가 라이프니츠, 뉴턴의 미적분학 등을 의미한다. 헤겔은 이 이론들에서 공간과 시간의 통일이 아직 형식에 머물러 있을뿐 진정한 통일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이 참으로개념적 통일을 얻어야 비로소 자연의 전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것이 헤겔의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이것이 가능한 이론은 참된 수학, 즉 자연에 내재하는 변증법적 구조의 수학적 표현으로서의 자연의 수학뿐이다. MK. - P116

(3) 뉴턴 물리학에서 힘의 개념

뉴턴은 운동 법칙을 명시하고 세계 체계에서 그 실례를 끌어내고 있는 자신의 저명한 저술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a mathematica》라는 제목을 붙였을뿐만 아니라,²² 자신이 힘을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단지 수학적 의미에서 고찰함으로써 ‘인력‘, ‘충격‘, ‘중심으로 향하는 경향‘ 등의 명칭을 구분 없이 서로 뒤섞어 사용했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²³ - P24

22 이미 ‘(1) 뉴턴의 오류‘ 절에서 지적한 것처럼, 헤겔에 따르면 뉴턴의 첫 번째 오류는 물리학과 수학을 뒤섞었다는 것이다. 이는 흔히<프린키피아>라 불리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저서의 제목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은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 오류에 대해 비판한다.

23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전3권, 조경철 옮김(서해문집, 2000), 1권,
23쪽 정의 VIII 참조(이 책은 앞으로 ‘뉴턴(2000)‘으로 표시하겠다). - P117

그러나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충격은 역학에 속하는 것이지 참된 자연학(물리학)에 속하는것이 아니다.²⁶ 이 두 학문 사이의 구별에 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상세히 서술할 것이다. - P24

26 헤겔의 자연철학이나 자연관에서는 역학과 물리학의 구별은 기본적인 것이다. 헤겔은 초기의 체계와 후기의 완성된 체계에서 모두,
역학이 운동을 외적 동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자연 현상(충격, 낙하등)으로 규정하는 데 비해, 물리학은 운동을 자기 운동이자 제 자신이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기 Magnetismus는위에서 언급한 제 자신이 규정하는 개체 중 하나이다. 또한 물리학에서 운동은 항상 운동하는 물체 고유의 목적에 의해서만 야기된다고 한다. dG. - P117

(4) 케플러의 법칙과 그에 대한 뉴턴의 해석

케플러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무게가 물체의 공통된성질이며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달의 운행의 불규칙성이 태양과 지구의 힘의 합치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²⁸ 다만 나중에 보게 될 것처럼 철학과 학문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예민한 감수성을 타고난 그가 중력·구심력·원심력 등을 설명하면서발생하는 혼란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가 발견했던 불멸의법칙의 물리학적인 형태에 단순히 수학적 표현을 부여하는 것은 아마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²⁹ - P25

28 헤겔은 케플러의 <신천문학>에 나타난 만유인력과 달의 인력에 영향받는 밀물과 썰물에 관한 명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JohannesKepler, New Astronomy, (trans.) William H. Donahue (Cambridge:Cambridge Univ. Press, 1992), 29~31쪽, 255~257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케플러(1992)‘로 표시하겠다. 또한 Johannes Kepler, The Secret of the Universe, (trans) A. M. Dunc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by E. J.
Aicon with a preface by I Bernard Cohen (New York: Abaris Books, 1981),
30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케플러 (1981)로 표시하겠다). WN.
케플러는 지구와 달의 인력에 관해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밀물과 썰물을 달의 인력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합리적인 생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지구의 호흡으로 설명하는 신비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밀물과 썰물에 관한 합리적 이론의 측면은 뉴턴의 만유인력의법칙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MK.

29 헤겔은 케플러가 현상들 속에 제시된 수학적 규칙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예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데 비해, 뉴턴은 가공으로 꾸며놓은 공허한 힘의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헤겔(1986), Bd, 9.86쪽 참조). - P110

(5) 힘의 분할나는 그 유명한 ‘힘의 분할‘이라는 명제가 수학적 증명에는 대단히 유용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에 대한 이해력은 전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계적 운동의 방향이 대립하는 힘의 여러 방향에서 생기는 경우, 살아 있는 힘의 방향이 반대의 힘으로부터 생겨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과 무관한 힘이 물체를 움직이는 기계적 관계는 살아 있는힘과 명백하게 구별되어야 한다.³³ - P26

33 라이프니츠는 역학적 관점에서 데카르트의 힘의 개념을 검토하면서 소위 ‘죽은 힘‘과 ‘살아 있는 힘‘이라는 개념을 구별했다. 아마 헤겔은 《행성궤도론》을 쓸 때 라이프니츠가 《역학 시론Specimendynamicum》에서 이 두 개념을 구별한 것을 참조했을 것이다. "힘은이중적이다. 그 하나는 원초적 힘인데 나는 이것을 죽은 힘이라고부르겠다. 왜냐하면 이 힘에는 아직 어떤 운동도 없으며 그저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탄력이 있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총신에 장전된 탄환의 경우나 끈에 매여 있는 투석기의 돌의 경우와 같다. 다른 힘은 현실의 운동과 일치하는 보통의 힘인데 나는 이것을 살아 있는 힘이라고 부르겠다. 원심력이나 중력 또는 구심력도죽은 힘의 실례이다. 그러나 낙하하는 추에서 생기는 진동의 경우나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 있는 활에서 생기는 진동의 경우에 힘은살아 있다. 그것은 죽은 힘이 연속적으로 각인됨으로써 발생한다"
(Gottfried Wilhelm Leibniz, Specimen dynamicum, (hrsg.) H. G. Dosch G.
W. Most E. Rudolph (Hamburg, 1982). 13쪽). 이렇게 본다면 헤겔이 말하는 기계적(역학적) 힘은 ‘죽은 힘‘이며 이에 반해 물리적 힘은 ‘살아 있는 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WN. - P120

역학과 천문학 등 거의 모든 과학이 방금 말한 힘의 분할과 ‘힘의 평행사변형의 원리‘ 구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³⁵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는 이 위대한 과학은 앞서 말한 가설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27

35 뉴턴의 천체 역학에 나타나는 수학적 증명은 오직 ‘힘의 평행사변형의 원리‘에 의한 분할과 종합에 바탕을 두고 있다(뉴턴(2000), 1권,
55쪽 참조). 이 원리는 단순한 수학적 요청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결은 이 원리가 취급하는 힘이 참된 힘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헤겔에 따르면 살아 있는 참된 힘과는 무관한 기계적 작용만을취급하는 과학, 그것이 뉴턴의 역학이다. - P123

여기서는 다만 다음의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직선이나 곡선으로 그려지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여러 선들로 해체된다면 이는 하나의 수학적 요청일 것이고, 그러한 요청은 수학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유익함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의) 이러한 원리는 다른 과학에 의존한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의 원리를 그 효용이나 결과에 따라 평가해서는 안된다. - P27

2. 대립하는 두 개의 힘

(1) 기하학적 추리

(전략).
물론 탄젠트의 기하학적 필연성이 결코 탄젠트의 물리적힘의 편연성을 보증해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순수 기하혹은 원의 참된 형식을 전혀 변경하지 않는다. 또한 기하학은 원둘레 그 자체를 반지름을 통해 비교하거나 식별하는 것이 아니라 원둘레의 반지름에 대한 비례 관계가 규전하는 여러 선을 비교하고 식별할 뿐이다. - P28

(2) 원심력의 물리적 실재성

나아가 우리가 기하학적 증명 없이 원심력의 물리적 실재성을 문제 삼을 경우, 일찍이 뉴턴이나 모든 영국인이 역사상 최상의 철학이자 유일무이한 철학이라고 간주하고 있는저 실험 철학⁴⁰이 원심력을 철학적으로 구성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P29

40 여기서 말하는 실험 철학자란 영국왕립협회의 회원 및 베이컨, 훅,
로크, 뉴턴 그리고 마틴과 맥로린Colin Maclaurin 등이다. 영어권에서 ‘실험 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이라는 용어는 뉴턴 이전에는
‘전과 완전히 다른 자연 고찰 방식‘을 의미했다. 그러나 여기서 해결은 뉴턴 이후의 실험 철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WN. - P127

(3) 힘의 동일성과 구별에 관한 참된 철학적 개념

그 결과야 잘못될 수밖에 없고 쓸모없을 수밖에 없지만 철학이라는 이름을 참칭하는 실험적 방법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인식하고자 시도한 것을 철학은 스스로 아 프리오리a priori 하게 연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30

무지하기 짝이 없는 이 철학은 막연하게, 끄는 힘과 밀쳐내는 힘의 대립을 관찰하면서 이 이론을 운동에 적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철학은 힘의 이러한 구별을 물질의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⁴³ 무게 혹은 동일성 그 자체가 이들 힘의 전제 조건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⁴⁴ 이.
러한 근거에서 보았을 때 왜 행성 운동의 구조가 큰 오류를범하고 있는지 명백하다. - P31

43 ‘인력과 척력의 대립‘에 착안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헤겔이 <프린키피아> 이전의 뉴턴의 운동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턴은 이 두 개념에서 물질의 철학적 구조에 관해 영감을 얻은 게분명하다. 이 때문에 그는 원심력이 물질의 고유하고 단순한 반발력에서 유래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칸트는 《일반적 자연사와천체론Allgemeine Natingeschicine und Theorie des Himmels》의 서문에서 자신의 우주론을 전개하면서 자연계 질서의 진화와 발전을 설명하기위해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서 ‘인력‘과 ‘척력‘이라는 두 힘을 도입하고 있으며, 이 개념이 뉴턴 철학에게서 빌려온 것이라고 설명한다(Immanuel Kant, Vorkritische Schriften bis 1768 1 Werkausgabe Band I.
(hrsg.) Wilhelm Weischedel(Frankfurt a. M.: Suhrkamp Verlag, 1977), Bd.
1. 242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칸트(1977)‘로 표시하겠다). 헤겔은 《행성궤도론》에서 이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헤겔의 평가는 《대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헤겔(1986). Bd. 5. 203~208쪽참조), MK. - P129

44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셸링의 철학인 것으로 보인다. 헤겔이 《행성궤도론》을 집필하던 당시 셸링은 스피노자주의의 입장에서 자연철학과 선험철학을 통일하는, 소위 동일철학을 확립하고자 했고, 이입장을 표명한 책이 <나의 철학 체계의 서술Darstellung meines Systemsder Philosophie)이다. 헤겔은 이 책을 마음에 두고 있다. 최초의 존재에 있어 A와 B의 실재성의 직접적인 근거로서 절대적 동일성은 중력이다"(Schelling, Darstellung meines Systems der Philosophie. in SchellingWerke, (hrsg.) M. Schröter (Miinchen, 1927), Bd. III, $54. 이 책은 앞으로 ‘셀링, Darstellung‘으로 표시하겠다). 이때 A와 B는 최초의 대립을 의미하며 인력과 척력을 가리킨다. 이 때문에 중력은 물질과 동등한 절대적 동일성의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물질계는 인력과 척력 사이에 균형을 형성하게 된다" (셀링, Darstellung. 57쪽). dG.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셀렁이 Schwerkraft라고 표기한 것을 헤겔은 경우에 따라 gravitas와 vis gravitatis로 구별하여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셸링은 gravitas에 해당하는 Schwere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이에 반해 노이지는 헤겔이 본문의 서술을 셸링의 《자연철학 체Einleitung zu dem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에서 인용하고 있다고 말한다(Schelling. Einleitung zu dem Entwurf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 (1799). 99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셀링,
Einleitung‘으로 표시하겠다). WN. - P130

참된 철학은 실험 철학의 원리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실험철학의 원리는 다름 아닌 역학에서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학은 죽어 있는 물질 속에서 자연을 위조하여서로 완전히 상이한 여러 힘들의 종합을 어떤 물체에나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 자체를 인식하기 위해 자연을 위조하는 데 힘쓰는 것을 단호히 중단해야 하며 물리학에서 우연이나 자의가 감히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⁴⁹ - P32

49 자연을 위조하는 데 힘쓰는 것은 역학이다. 헤겔에 따르면 역학은 관성적 물질을 취급하는데, 관성적 물질의 세계는 자의와 우연이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역학은 살아 있는 자연을 파악할 수 없다고 헤겔은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차이 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s der Philosophic》에서도 발견된다. "자의와 우연은 더 낮은 차원의 입장에서만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학문의 개념에서는 추방되어 있다" (헤겔(1986), Bd. 2, 108). - P131

(4) 참된 기하학에서 부분과 전체

비록 실험 철학이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의 개념과 접선력의 개념⁵¹을 기하학적·물리학적 증명에서 끌어오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대립된 현상들로 구성하는 이러한 방법을 결코 기하학적 방법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 P32

51 여기서 헤겔이 ‘구심력‘, ‘원심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고의로 vis ad centrum tendentis(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와 vistangentialis (접선력)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힘을 오해하고 있는(헤겔은 그렇게 생각했다) 실험 철학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MK. - P131

 물리학은 기하학의 이러한 참된 방법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리학은 우선 전체를 정립하고 그로부터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연역하지만 결코 서로 대립하는 힘들, 즉 부분들로부터 전체를 구성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물리학적 천문학은 수학을 따르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그것의 수학적 법칙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 P33

(전략). 마찬가지로 구심력, 원심력, 중력의 크기를 가지고 전체 운동의 동일한 현상을 규정함으로써 우리가 중력의 크기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구심력의 크기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아니면 원심력의 크기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상관없게 되어버린다. - P33

(5) 원심력과 구심력의 동일성

이 천문학에서는 명백한 모순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구심력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버스트 사인을 통해서 설명하고, 원심력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탄젠트를 통해서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들 두 힘을 서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⁵³ - P34

53 헤겔은 여기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동동함을 논증하고 있다. 이때헤겔이 제시하는 논거는 복잡하고 설득력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몇 줄의 명확하지 않은 논증 후에 원심력은 구심력과 같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제시된 전제가 어느 하나도 명쾌하지 않기 때문에 이로부터 도출된 귀결도 불명료하다. 동일한 서술이 칸트(1964), Bd. I, 282쪽에서도 발견되며, 마틴과 호이헨스의 저술에도 나타난다. 특히 헤겔은 라플라스 (1797), Bd, 1, 291쪽 이하를 참조했을 것이다. WN. - P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가진 서울 아닌 것을 피하고 싶은 ‘디나이얼 지방출신‘에게 놓인 가장 암울한 미래는 ‘두려움이 가져올 변화 없음‘이다. - P4

프롤로그

성심당 갈 때 대전 한번 들를게 - P7

친구가 데려온 서울 애들은 "울산에선 고래 타고 다닌다며?" "광주시 공공 자전거가 ‘타랑께‘래!" 농담하며 깔깔댄다. 대전시 자전거 ‘타슈‘는 모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같이 박장대소했다. 내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뜨끈해진 뒷덜미를 쓸어내린다.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 아닌지역의 삶은 고래 타고 다닐 만큼 원시적이고, 사투리의 독특함을 살린 공유 자전거 이름은 유머가 된다. - P8

서울은 ‘올라가고 대전은 ‘내려간다.‘ 대전보다 북쪽에 있으니까 올라가는 게 맞는데, 왠지 위에 있으니까 서울 사람들은 상전 같다. 20세기 초 표준어가 된 건 서울 중산층¹의 말이고, 서울말을 곧 표준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울 사투리‘라는 말 자체에 발끈한다.² - P9

1_이익섭, <국어 표준어의 역사>, <국어문화학교> 1. 국립국어연구원, 1992, 71~79쪽.

2_이정봉, <[카드뉴스] 이정섭 ‘참기름 더~‘ 알고보니 서울사투리라고?>, 《중앙일보》2017. 10. 18. - P154

서울이라는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달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다. 공부를 잘하면, 취업이 잘되면 청년들은 부지런히 짐을 싸 서울로 갔다. - P9

동경하는 서울에 왔지만, 몇 년이 지나도 아직 ‘서울 사람‘이 되지 못한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방에 대한농담을 들으며, 마치 ‘내 얘긴 아니니까 난 웃을 수 있지‘ 식의 태도를 보이거나 ‘뭘 이런 걸 심각하게 여기나‘라고 생각하며가볍게 무시하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 P10

이 책은 설명하기 어려운 그 기분에서 시작됐다.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하지 못한 부러움과 그 부러움을 부정하고싶은 분노,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서울에 속하지 못한
‘시골 쥐‘의 부끄러움과 출신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 말이다. - P10

노잼의 도시 대전에 사는 나는, 이 복잡하고 이상한 기분과 이 기분을 만들어 낸 실체를 스스로 찾아 설명해 보려고
‘노잼도시⁶‘를 연구하기로 했다. 노잼도시란 수식어를 대전만이 가진 개성이자 브랜드라고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세상 매력 없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고 싶었다. - P11

6_ 이 책에서는 ‘노잼‘과 ‘도시‘를 붙여 하나의 고유 명사처럼 사용한다. 용어 사용에대한 상세한 설명은 3장에서 찾을 수 있다. - P154

 대전이 ‘노잼도시‘로 불리는 건 불명예스러운 일이었고, 대전이재미없어서 청년들은 떠난다고 했다. 지방 도시의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위기가 팽배한 이 시국에 ‘노잼‘이라는 별명은 재앙과도 같았다. - P12

도시의 재미는 곧 쓸모와 쓰임새로 연결된다. 쓸모와쓰임새를 부지런히 찾는 노력과 발견은 꾸준히 있었다. 이런발견은 도시를 잘 포장해서 팔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발견은 도시를 하나의 소비재로 규정해 버린다. - P12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잼도시민‘의 난감한 기분에서 시작한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자꾸만 쪼그라드는 게 고민이라 어떻게든 저 위 대도시처럼 되고 싶지만 고유한 정체성은 지키고 싶은, 대전을 포함한 지방 도시의 상황을 ‘지금은 지방 (소멸) 시대‘에서 다룬다.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
『웹스터 사전(Webster)』처럼 우리가 "말이란 마속(屬)에 속하는, 발굽을 지닌 네발짐승이다."라고 정의할 때, 이 정의는 실제로 서로 다른 세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1) 내가 ‘말‘이라고 말할 때, 마속에 속하는, 발굽을 지닌 네발짐승에 대해 내가 말하고 있음을 네가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단순한 의미로 우리는 이 정의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자의적인 언어상의 정의(the arbitrary verbal definition)라고 말할 수 있다. - P51

내가 선이란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뜻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선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마음속으로도 그것을 대체할 그 어떤 부분을 우리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지금 나는 말하고 있다. - P52

9.
선이란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중요 장애물을 과연 내가 완전히 제거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 선한 것들(the good)이 정의될 수 없다는 의미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윤리학에 관해 글을쓰고 있다고 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 P52

내가 생각하기에 ‘선한‘이라는 단어는 형용사로 여겨지고있다. 반면에 ‘선한 것들‘, 즉 선을 가진 것들은 ‘선한‘이라는 형용사가 적용되는 실질적인 명사를 가리킨다. 즉, 선한 것들이란 ‘선한‘이라는 형용사가술어로 적용될 수 있는 대상 전체를 지칭함에 틀림없고, 이 형용사는 ‘선한 것‘에 항상 참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 P52

 예를 들어 그 선한 것은 ‘즐거움을 주는‘이라는 형용사를, 혹은 ‘지성적인‘이라는 형용사를 술어로 취할 수 있다. 이 두 형용사가 참으로 그 선한 것의 한 부분을 이룬다면, "쾌락과 지성도 선한 것이다."라는 명제도 확실히 참이 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쾌락과 지성은 선한 것이다."라고 혹은 쾌락과 지성만이 선한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지금 선을 정의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P53

물론 "지성은 선이고, 그리고 지성만이 선이다."라는 명제와 그 형태가 동일한 몇몇 참인 명제들이 존재할 수있음을 나는 확실히 믿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이러한 명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정의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선한 것들‘은 정의가 가능하다고 믿지만, 선 자체는 정의될 수 없다고 여전히 주장하는 바이다. - P53

10.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이 선하다."라고 말할 때, 선이란 그대상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속성을 의미한다면, ‘선‘이란 이 단어의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는, 그 어떤 정의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정의‘의 가장 중요한 의미란 다음과 같다. - P54

11.
이러한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찰해보자. 먼저 주목할사실은 이들 철학자 사이에서도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이들은 선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취하는 자들이 틀렸음을 입증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철학자는 선은 쾌락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또 다른 철학자는 선이란 욕구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P55

(1) 그는 욕구의 대상은 쾌락이 아니라는 명제가 참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면 도대체 그의 윤리학은 어디에 있는가? 즉,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입장은 단지 심리학적인 견해일 따름이다. 욕구는 인간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인 반면에, 쾌락 역시 인간 마음에서 일어나지만 욕구가 아닌 다른 무엇일 따름이다. - P56

(2) 자연주의 윤리설이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은 이러한 논의는 결국 언어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인데, 이는 앞의 대안에 비해 더더욱 달갑지 않다. 예를 들어 A가 "선이란 쾌락이다."라고 말하고, B는 "선이란 욕구된 것이다."라고 말할 때, 이들은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이란 용어를 쾌락적인 것을, 그리고 욕구된 것을 각각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주장하고 싶어 한다. 이는 아주 재미있는 논의 주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앞의 (1)의 접근법이 윤리학적이지 않듯이, 윤리학적이라고 전혀 말할 수 없다. - P57

 우리가 알고자 하는 바는 단지 "선이란 무엇인가?"이다.  - P58

12.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는 즐거워한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리고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 말이 참이라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는 그의 마음즉, 어떤 뚜렷한 표식에 의해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는 특정의 마음이 바로 그 순간에 쾌락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느낌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쾌락‘은 쾌락을 가짐 이외의 그 어떤 다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P59

 즉, 한 예로서 쾌락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쾌락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쾌락을 의식하고 있다 등을 우리는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내가 지금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쾌락과 다른 것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쾌락 자체를 정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 P59

다시 말해 내가 지금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쾌락과 다른 것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쾌락 자체를 정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른 어떤 자연적인 대상으로 쾌락을 정의하고자 시도한다면, 예를들어 쾌락은 붉은색 감각을 뜻한다고 정의를 내린 다음 이로부터 쾌락이란 색깔이라고 누군가가 추론해 나간다면, 그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고,
후에 그가 말하는 쾌락에 관한 다른 진술은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P59

(전략). 하지만 동일한 의미로는 결코 자연적인 대상이 아닌 ‘선‘과그 어떤 다른 자연적 대상을 어떤 사람이 서로 혼동하고 있다면, 그는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할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선‘에 관해 범하는 이러한 혼동은 아주 특이한 특징을 지니고,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아주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잘못에 대해 자연주의 오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 P61

 반대로 선이 쾌락 외의 다른 무엇이 아니라면, 쾌락은 선이라는 말은 아예 의미조차 없어지게 된다. 선이 생명이나 쾌락 외의 다른 그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윤리학에 관한 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시도한 것처럼, 쾌락의 증가는 생명의 증진과 일치한다는 점을 입증하려는시도는 전혀 쓸모없게 된다. 그는 단지 오렌지가 항상 종이에 싸여 있다는것을 보여줌으로써, 오렌지가 노랗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시도하는 것과같은 일을 하고 있는 꼴이다. - P62

13.
실제로 ‘선‘이 단순하여 정의 불가능한 어떤 것이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두 대안이 가능할 따름이다. 즉, 선은 복합체로 부분으로 구성된 전체이어서, 그 본성의 정확한 분석에 관해서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수밖에 없거나, 아니면 선은 전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으로 아예 윤리학과 같은 학문은 애초에 성립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 P63

(1) 선의 의미에 관한 불일치는 주어진 전체의 정확한 분석에 관한 불일치라는 가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보면 잘못이라는 점이 아주 명백하게 밝혀진다. 즉, 그 어떤 정의가 제시되어도, 그렇게 정의된 복합체에대해서 "그것이 선 자체인가?"라는 의문을 우리는 언제나 의미 있게 제기할 수 있다. - P63

(2) ‘선‘은 전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가설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데도 앞서 논의한 동일한 고려 사항을 고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보편적으로 참인 것은 그 부정이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본성을 지닌다고가정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즉, 철학의 역사에서 분석 명제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실수가 얼마나 쉽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 P65

 이 질문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 의미가 다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질문이 다른 질문과 구분되는 특이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본래적 가치(intrinsic value)‘나 ‘본래적 값어치(intrinsicworth)‘에 대해 생각할 때, 혹은 어떤 대상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고말할 때, 우리는 마음속에 어떤 독특한 대상, 즉 그 말이 적용되는 것들의그 어떤 독특한 속성을 떠올리는데 이것이 바로 ‘선‘이 의미하는 바이다. - P66

14.
그러므로 ‘선‘은 정의 불가능하다. - P66

시지윅 교수는 자신의 근본 원칙을 벤담(Jeremy Bentham)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말한다. 즉,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모든 당사자의 최대 행복이 인간 행위의 올바른 유일한 목적이다." 하지만 같은 장의 다른 곳에서 벤담이 사용한 언어가 함의하는 바에 따르면, ‘옳은(right)‘이라는 용어는 일반 행복(general happiness)을 산출하는‘을 의미한다. - P67

내가 생각하기에 벤담은 참으로 이러한 오류를 범한 철학자들 중 한사람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논의하겠지만,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역시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에 확실하다. 아무튼 벤담이 이러한 오류를 범했든 범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앞의 인용 구절에 나타난 그의 입장은자연주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선은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반대 명제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의 구실을 할 것이다. - P66

이제부터 벤담의 이론을 고찰해보자. 시지윅 교수의 말에 따르면, 벤담은 ‘옳은‘이라는 단어를 ‘일반 행복을 산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을 의미하는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의 자체는 자연주의 오류를 필연적으로 함의하지 않는다. - P68

(전략). 왜냐하면 잘 알다시피 그는 근본 원칙을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최대 행복이 인간 행위의 올바른(right) 유일한 목적이라는 주장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여기서 ‘옳은‘이라는 용어를 행복을 산출하는 수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목적 자체에 적용하여 사용하고있기 때문이다. - P68

그런데 나는 자연주의 오류가 갖는 중요한 의의를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즉, 이러한 오류의 발견은 최대 행복이 인간 행위의 올바른 목적이라는 벤담의 주장을 결코 논박하지는 않는다. - P69

(전략). 이렇게 되었다면, 벤담의 윤리 체계는 그 핵심적인 주장에 아무런 변화 없이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다 해도, 그가 범한 자연주의 오류는 윤리 철학자로서 그에게 치명적인 반대 논거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단언적으로 주장하건대, 참된 결론을 얻는 것 못지않게 그 결론을지지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는 일 역시 윤리학의 주된 과제이기 때문이다. - P70

자연주의에 대한 나의 반대는 첫째, 그 윤리원칙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자연주의는 그 원칙을 옹호하는 이유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타당한 이유를 결코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 P70

 둘째로, 자연주의는 그 어떤 윤리 원칙에 대해서도 지지 이유를 제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못된 윤리 원칙을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하는 원인 구실을 한다는 점을 나는 주장하고 싶다. 즉, 자연주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여 잘못된 윤리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자연주의 윤리학의 전반적인 목적에 반하는 이론이다. - P71

 선에 대한 정의가 발견될수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게 되면, 우리는 선은 사물의 어떤 하나의 속성외의 다른 것을 결코 의미할 수 없다는 확신에서 논의를 출발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속성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이 곧 우리의 과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선의 의미가 적용되는 한 무엇이든 간에 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되면, 우리는 훨씬 더 열린 마음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셈이 된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