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은 지방(소멸) 시대
‘디나이얼 지방출신‘을 아십니까
신입사원 환영회든 동아리 회원 모임이든 자기소개 시간이면사람들은 출신지 혹은 사는 곳을 이름 옆에 나란히 두고 자신을 설명한다. 사람은 매 순간 자신의 출신지를 자각하며 살진않지만, 어떤 상황에서 지역의 이름은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요소가 된다. ‘어디 출신‘이라고 지역명을 언급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건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 P20
소풍갔던 보문산⁹과 친구들과의 보물찾기 놀이, 장기자랑의 기억이 그 지역명에 묻어 있다. 블론세이브 blown save¹⁰ 가 되자, 관중 모두 한꺼번에 탄식을 내뱉는바람에 다 날아갈 것 같았던 대전 이글스 파크 야구장의 녹색잔디도 나의 어떤 부분을 채우고 있다. - P2
9 _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산으로 대전 중구가 꼽은 ‘중구 10경‘에 포함돼 있다.
10_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세이브 기회를 날렸다는 뜻. - P154
비슷비슷한 자기소개 멘트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출신지에 따른 엄연한 차이가 있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저는 방배동 살아요."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부산에서 왔습니다.‘ ‘대전이 집‘이라고 얘기하는 와중에 서울 사람들은 동네 이름으로 자신의 출신지를 얘기하는 섬세함을 보인다. 심지어 아파트 이름을 대는 경우도 있는데, 더 신기한 건 서울사람들은 아파트 이름만 듣고도 어느 동네인지 알아챈다는것이다. - P21
행정 구역 서울특별시의 면적은 605.21 제곱킬로미터다. 포항시의 크기는 1130.8제곱킬로미터로 서울의 두 배가까이 된다. 하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포항시 대잠동에서 왔다‘라고 말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 P21
무엇 하나로 대표되는 도시는 그것 때문에 금방 알려질수 있지만, 결국 그 특징 하나로 끝나 버린다. 사람과의 관계맺기도 비슷하지 않나. ‘아, 그 매일 축구화 신고 다니는 애!‘ 로 기억되면, 인맥 폴더에서 빨리 소환될 수는 있어도 ‘축구화 신는 애‘ 이상으로 궁금하지는 않다. 관계 맺기의 특징은 그 사람에 대한 지식과 소통의 추억을 계속 쌓는 데 있다. - P23
지방 도시들은 ‘그냥 맨날 축구화 신고 다니는 애‘ 이상의 부피와 복잡성을 지닌 정체성을 가지지 못해 왔다. ‘맨날축구화 신고 다니니까 축구는 잘하겠지, 체육 대회 때 부를까?‘ 이상의 관계 맺기를 상상하지 못해 왔다. - P24
웬만한 광역 시·도는 잘 가꿔진 도심 공원과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도서관 또는 미술관,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있는 호수와 수목원 정도는 가지고 있다. - P24
원본, 기준과 다른 특별함은 개성인 동시에 유머의 소재이거나 결핍으로서 안쓰러운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숨길수 없는 식성과 사투리 억양은 유머의 소재가 된다.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야지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 묻는 사람들 앞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지역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다가도 돌연의기소침해지곤 한다. 나의 특별함을 벗어나 그저 담담히 오늘의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만, 쉽지 않다 - P25
내가 출발한 곳에 대한 부끄러움은 결국 그것에 대한혐오로 이어진다. 혐오가 꼭 대상에게 대놓고 침을 뱉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의 가치를 후려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위계질서에 대한 인식에 근거한다. - P26
살고 있는 동네, 도시나 지역이 식성과 억양에 배어 나오고, 그게 꼭 나를 다 설명하는 것 같다. 내가 속한곳이 허접하고 후진 것이라 취급된다면, 아니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챈다면 난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싶다. 내가 떠나온 곳을, 동네를, 지역을 부정deny 하고 싶다. - P26
‘디나이얼 지방출신‘은 자신이 속한 도시가 지역 위계질서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챈 사람들이다. - P27
누군가 대전에 뭐 있냐고 물으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와 관계를 맺어 온 지역 장소와 경험을 추릴 시간. 하지만 사람들은 지역의 콘텐츠를 재빨리 문제 삼는다. ‘그거 봐, 성심당 말고 없잖아‘라며, 지역의 자원이 그것뿐이라고 점수를 매긴다. - P27
지방 도시의 쪼그라드는 역사
서울이 크다는 말은 ‘서울이 그만큼 힘을 가져 왔다‘라는 말로 다시 쓸 수 있다. - P28
최근 20년간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꾸준했다. 속도도 빨랐다. 2020년엔 드디어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했고, 2022년에도 여전히 수도권 인구는 전국 인구의 50.5퍼센트에 해당하는 2605만 명이다. 2022년 서울의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1만 5551명으로 도시중 가장 높고, 부산이 제곱킬로미터당 4278명으로 그다음이다. 서울의 밀도는 2위인 부산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¹⁸ - P28
18_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시도편: 2020~2050> 국토교통부, <지역별 인구 및 인구밀도>, - P155
중심이 된 서울이 가져온 효과는 다양한 면에서 강력하다. 지방의 도시들이 소멸할 것이라는 ‘지방 소멸‘의 공포감은 인구의 자연 증가만이 해결의 열쇠인 듯한 인상을 풍겨 왔다. - P29
강준만²¹은 일자리와 명문 대학의 서울 집중화를 지적하며, 사실상 ‘서울공화국‘인 한국에서 지방은 ‘내부 식민지‘ 라고 주장한다. - P29
21_ 강준만, <지방이 지방을 죽인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창작과 비평》 48(4), 2020, 268-284. - P155
이러한 서울 집중 현상,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을 정부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 중 여섯 번째 핵심 목표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 시대다. 지역간 격차가 없는 삶은 오랫동안 지방 정부뿐 아니라 중앙 정부의 중요한 정책 목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그 성적표는 꽤초라한 편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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