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입식지는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나요?" 메리가 물었다.
"두 시간쯤 뒤에 알 수 있을 거예요." 베티조가 말했다. - P60

"그럼 지금은 모른다는 겁니까?" 몰리가 말했다. "오기 전에아무 얘기도 못 들었습니까?" - P61

"그럼 몰리 씨도 제말에 찬성해주시는 것이로군요.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다니 정말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노파는 몰리에게 낮고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P61

"나는 찬성하지 않아, 몰리." 프레이저가 말했다. "예비 테스트에 의하면 이들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그룹이라는 결과가 나왔거든. 전체적으로 보면 각자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타고났다고도 할 수 있겠지. 몇몇 사람들은 도대체 왜 선발되었는지도 이해가 안 될 정도야." - P61

"우리든 이들이든." 심리학자는 경련하는 듯한 동작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다들 강박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그룹 전체가 보이는 또 하나의 비정상적인 통계적 특징이지. 당신들 모두가 극도로 강박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뜻이야."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굴의 깊이는 2미터에서 2.5미터로 얕은 편이지만, 사방으로 끝없이 뻗어 있고 상쾌하고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그 광범위한 지하 세계에 생물체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 P240

중생대의 나무 고사리와 균류, 제3기의 소철 잎이 부채꼴인 야자수, 원시적인 속씨식물들이 미지의정글을 이루었던 흔적과 함께 뼈 조직에는 백악기와 에오세의 대표적인 생물을 비롯해 다른 동물의 흔적까지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아무리 뛰어난 고생물학자라도 분류하는데 1년은 족히 걸릴 만 했다. - P240

그렇게 해서 발굴의 첫 번째 보고가 내게 들어왔으며, 원시 조개류와 경린어를 비롯한 원시 어류, 멸종된 양서류와 조치류, 모사사우어의 두개골 일부와 공룡의 척추뼈, 갑각류, 익룡의 이빨과 날개 뼈를 비롯해 기제류와 우제류, 유제류와 에오히푸스 등을 포함하는 원시 포유동물의 뼈들도 열거돼 있었다. 마스토돈, 코끼리, 낙타, 사슴, 소의뼈처럼 최근의 동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 P241

 이 지역에서만 유독 3억 년전의 생물체와 3천만 년 전의 생물체 사이에 이례적이고 독특한 연속성이 있었다는 추정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동굴이 폐쇄된 올리고세 이후까지 어떻게 그토록 오랜 시간 연속성이 지속됐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 P241

레이크 교수는 첫 번째 보고에 만족하지 못했고, 몰튼이 캠프에서 발굴 현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추가로 작성한 메모를 보냈다. 그 이후 몰튼은 비행기의 무선기 앞에 앉아 레이크 교수가 줄기차게 인편으로 보내는 추가 보고를 내가 있는 남쪽 기지와 아컴 호에 타전했고, 그 내용은 아컴호에서 곧바로 외부 세계로 전해졌다. - P242

 남쪽 기지의 무선 기사인 맥티그가 연필로 받아 적은 레이크 교수의 전문 내용을 있는그대로 여기 옮기는 편이 낫겠다. - P242

"(생략) 시생대 점판암에서 발견된 것처럼 삼각형 줄무늬가 또렷한화석을 몇 개 더 발견, 이는 화석의 주인공이 형태와 크기에서 큰 변화를 겪지 않고 6억 년 이전부터 코만치기까지 생존했음을 말해 줌. 육안으로 보기에 줄무늬 화석보다 코만치아기의 화석이 오히려 더 원시적이고 퇴행한 것으로 보임. 이번 발견의 중요성을 언론에 강조해 주기바람. 이번 발견은 생물학계에 일대 파란을 예고하며, 아인슈타인이 수학과 물리학에 가져온 변화와 비견되는 것임.
(후략)" - P242

(중략) 지구가 원시적인 형태를 유지한 채 생명체나 일반적인 원형질 구조가 출현하지 않았다고알려진 10억 년 전 이미 일단의 생명체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임. 그 생명체가 과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화했는가가 문제임." - P243

"추가사항 육지와 해양에 서식하던 대형 도마뱀속 동물 및 원시 포유류의 뼈 조직에서 독특한 상처와 절상 흔적 발견. 그러나 천적이나 다른 육식 동물에 공격받은 상처는 아닌 듯. 상처는 두 종류로, 관통된 구멍과 불규칙하게 찢어진 것임. 뼈가 완전히 살려진 경우도 있음. 그러나 대부분의 표본에는 상처가 없음. 전둥을 가지러 캠프로 사람을 보냄. 종유석을 제거하면서 더 깊숙이 탐사할 계획임." - P243

"(중략) 5각형의 별 모양으로 끝이 부서진 상태며, 끝에서 중앙으로 금이 가 있음. 손상되지 않은 중심부 표면에서 움푹 들어간 작고 매끄러운 함몰 발견, 동석의 출처와 풍화 작용의 가능성에 상당한 호기심이 느껴짐. (중략)" - P243

"오후 10시 15분, 중대한 발견, 전등이 도착하자, 오렌도프와 왓킨이작업을 하던 9시 45 분 전혀 알려진 바 없는 통 모양의 기괴한 화석을발견함. 미지의 해양 발광체가 과도하게 성장한 형태가 아니라면 식물로 추정됨. 광물성 염분 덕분에 조직이 또렷하게 보존된 상태임. 가족처럼 질기지만, 군데군데 놀라울 정도로 유연함. 말단과 측면에 떨어져나간 흔적이 있음. 길이는 1미터 80센티미터, 가장 두툼한 중심부의 지름이 1미터 정도, 양끝으로 갈수록 30센티미터까지 좁아짐. 통 주변에통널 형태로 다섯 개의 널판이 붙어 있는 형태임. (중략)" - P244

"(중략) 날개모양의 조직들은 거의 손상된 상태지만, 그중 하나를 펼쳐 보자 길이가2미터가 넘음. 『네크로노미콘』의 ‘고대 존재‘처럼 원시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을 떠올리게 함. 날개로 추정되는 조직은 얇은 막 구조이며,
형태는 선형의 관 조직으로, 이관 조직에서 날개를 펼칠 때 신축성을주는 것으로 보임. (후략)" - P244

"오후 11시 30분. 다이어, 피버디, 더글러스 박사님, 모두 집중하시기 바람. 감히 미증유의 사안이라고 할만큼 중대한 문제임. 아김 호도지체 말고 이 내용을 킹스포트 헤드 기지국으로 전송 바람. (중략)" - P245

"(중략) 모두 밖으로 가져 왔고, 개들의 접근을 막고 있음. 개들은 여전히 표본들을 보고 미친 듯이 날뜀. 지금부터 전달하는 내용을 주의 깊게 듣고, 정확한지 그쪽에서 다시 확인 바람. (중략)" - P245

(중략)
몸통 위에 연한 회색의 뭉툭한 구근 모양의 목과 아가미로 추정되는조직이 있음. 목에 달려 있는 불가사리 모양의 머리에 형형색색의 근육질 섬모가 8센티미터 길이로 뒤덮여 있음. 머리는 뭉툭하게 부풀어오른 형태로, 양끝까지 60센티미터, 5개의 모서리마다 길이 8센티미터 정도의 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관 조직이 달려 있음. 머리 중심부에 나있는 가늘고 긴 홈이 숨구멍으로 보임. 관의 끄트머리마다 둥근 조직이달려 있으며, 이곳의 노르스름한 점막을 걷어 올리면 광택이 있는 붉은홍채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눈이 분명함.
(중략) - P246

"(중략)
발견 당시, 불가사리 형태의 머리와 그 꼭짓점에 해당하는 모서리, 머리에 붙어 있는 관과 섬모들이 모두 단단하게 아래로 접혀 있는 상태였음. 관과 머리의 모서리 부분이 구근처럼 생긴 목과 몸통쪽으로 향해있음. 매우 튼튼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유연함.
(중략)" - P246

"(중략)
몸통의 아래쪽은 단단하지만, 역시 유연성이 뛰어나 머리의 기관들에 상응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임. 구근 형태로 연한 회색빛을 띠고 있는 목과 유사한 부분은 아가미의 흔적이 없지만, 불가사리 모양의녹색 머리를 적절히 지탱하는 역할을 함.
 (중략)" - P246

"(중략) 불가사리 머리에서 튀어나온 60센티미터 길이의 붉은 색 관들은 지름이 7.5센티미터 정도지만 끝으로 갈수록 2.5센티미터 정도로 가늘어짐. 관의 끝마다 구멍이있음. 모든 신체 기관들이 매우 단단하고 질긴 동시에 놀랄 만큼 유연함. 물갈퀴가 달린 120센티미터 길이의 팔을 볼 때, 해양과 기타 지역에서 이동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분명함.
(중략)" - P247

"(중략)
아직 동물과 식물 중 어느 쪽인지 분류가 어려우나, 동물일 가능성이큼, 원시적인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에서 놀랄 만큼 진화한 발광체일 수도 있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긴 하지만 극피동물의 일종으로 볼여지도 있음. 해양 생물이라고 가정한다면 날개 구조가 의아하지만 수중에서 방향을 잡는데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음. 일부 대칭 구조는 식물에 더 근접해 있기도 함. 이 생물체는 지금까지 알려진 시생대의 가장단순한 원생동물보다 훨씬 앞서 진화한 것으로 보이며, 그 기원을 추정조차 하기 어려움.
(중략)" - P247

"(중략)
 학자들은 지금까지 그것을 태고의 열대 발광체를 바탕으로 병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생각해 왔음. 또한 월마스가 말한 바 있는 크툴루 숭배를 비롯한 신사 시대의 전설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임.
(중략)" - P248

"(중략)
 생물체의 표본 위쪽으로 거대한 석순이 자라 있음. 석순 제거 작업이 몹시 어려웠지만, 표본 조직이 단단해서 별다른 손상은 없었음.
(중략)" - P248

"(중략)
현재 개들의 도움 없이 14개의 거대한 표본을 캠프로 이송 중인데, 개들이 사납게 짖어서 표본을가까이 두기 어려운 상태임. 3명이 발굴 현장에 남아 개를 지키고 있으므로 격렬한 바람을 뚫고 9명이 간신히 개썰매로 표본을 옮김.
(중략)" - P248

"(중략)
다이어 교수는서쪽 탐사 계획을 극구 반대했으므로 지금쯤 면목이 없을 거라 생각.
우린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산맥을 발견한데 이어 이 표본들까지 발견했고, 특히 표본이야말로 이번 탐사의 최대 성과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임. 틀림없이 과학적으로 대단한 개가를 올릴 것으로 자신함.
(중략)" - P248

이 소식을 접하고 피버디 교수와 내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형용할 길이 없으며, 다른 동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맥티그는 줄곧 단조로운 수신기에서 전해지는 내용을 간략히 해독해 놓았다가, 레이크 교수와 교신이 끝난 직후속기한 전문을 완전한 문장으로 작성했다. - P249

물론 그 같은 흥분에 휩싸여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속히 레이크 교수의 탐사 캠프에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돌풍이 심해서 당장은 비행할 수 없다는 말에 몹시 실망하고 말았다. - P249

표본이 예상외로 무거워서썰매를 끄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9명의 대원이 아주 훌륭하게 일을처리했다는 것이다. 현재 캠프에서 꽤 떨어진 곳에 눈으로 임시 축사를지어 개들을 따로 수용하기 위해 분주한 모양이었다. - P249

해부 작업은 예상보다 어려운 것 같았다. 실험실을 위해 새로 설치한막사에 석유난로를 피웠지만, 보존 상태가 완벽한 그 해부용 표본이 딱딱한 상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 P249

상태 완벽한 표본이 7개 더 남아 있지만, 동굴에서 표본을 무한정 발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므로 섣불리 해부를 강행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 P250

해부 과정에서 곧바로 전해진 무선 내용은 참으로 당혹스럽고 도발적인 것이었다. 일반적인 도구로는 그처럼 기이한 조직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해부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해부의 초기 단계에서 나온 결과에만도 우리는 깜짝 놀라고 얼이 빠져 버렸다. - P250

 퇴화의 흔적이 없는질기고 튼튼한 구조가 그 생물의 조직 전반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척추동물의 진화 주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건조한 상태였지만, 실험 막사 안의 열기에 생명체가 녹기 시작하면서 손상되지 않은 부위에서 지독한 악취의 수분이 배어 나왔다. 그 짙은 녹색의 액체를 혈액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 같았다. - P250

레이크 교수의 해부 작업은 기이한 생명체의 정체를 밝히기는커녕의혹만 증폭시켰다. 외부 조직에 대해 추론한 부분은 모두 맞아떨어졌으며, 그런 점만 놓고 보면 생물체를 동물이라고 부르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 P250

소화 기관과 순환 기관 외에도 불가사리 모양의 조직에서 나온 붉은 관들을 통해 노폐물을 처리했고, 호흡 기관은 희한하게도 이산화탄소 대신에 산소를 내보내는 것 같았다. 공기를 저장하는 기관이 따로있으며, 아가미와 숨구멍처럼 최소한 두 가지의 호흡 기관이 완벽하게발달된 상태라 호흡 방법을 자유자재로 바꾼 흔적도 발견됐다. - P251

 주요 호흡 기관과 관련해 발성 기관의 흔적도 발견됐지만, 당장은 추론하기 어려운 모종의 변형을 겪은 것 같았다. 실제로 명확한 발음을 통해 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 P251

레이크 교수가 혼비백산할 정도로 신경 체계가 복잡하면서도 고도로 발달돼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원시적이고 오래됐지만 고도로 분화된 신경절과 신경계를 지닌 생물임은 거의 확실했다. - P251

 레이크 교수의 의견으로는 이 생물이 오늘날의 개미나 벌처럼 원시 환경에서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기능을 소유했을 확률이 컸다. 민꽃식물, 특히 양치류처럼 날개 끝에서 포자를 재생산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이는 엽상체나 전업체에서 진화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 P251

하지만 그 상황에서 생물체의 정체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발광체처럼 보였지만, 분명히 그 이상이었다. 부분적으로 식물의특징을 보이면서도, 4분의 3은 동물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 P252

어떻게 신생 지구라는 환경에서 그토록 복잡한진화를 거치고 시생대 암석에 화석을 남겨 놓았는지 고민한 나머지 레이크 교수는 어느 별에서 온 ‘그레이트 올드원‘이 장난이나 실수로 지구의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원시 신화까지 떠올렸다. 미스캐토닉 대학 영문학과에서 민속학을 연구하는 동료 교수의 말처럼 산골에 은둔한다는 외계 생물체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 P252

당연히 그는 현재 발견된 표본보다 덜 진화한 생물체가 선캄브리아기의 화석을 남겼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의 경솔한 추론은 곧바로 부정되었다. - P252

레이크 교수는 신화를 떠올리며 자신이 발견한 생물체에 임시적으로 ‘엘더원‘이라는 익살스러운 이름을 붙였다. - P252

그는 밖에 놔둔 표본들을 새로운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지지 않는 남극의태양 빛에 조직이 약간 녹아서 표본 두세 개의 촉수와 관들이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그러나 레이크 교수는 영하 18도의 기온을 감안할 때쉽게 표본이 부패될 염려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해부하지 않은 표본들을 한군데로 모으고 직사광선이 닿지 않게 텐트를 씌웠다. - P253

캠프 보완 작업을 마무리하고 레이크 교수가 교신을 끊겠다며 우리도 휴식을 취하라고 알린 것은 새벽 4시가 넘었을 때였다. 그는 피버디교수와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면서 뛰어난 드릴 장비 덕분에 이번 발견을 할 수 있었다며 또 한 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P253

우리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교신을 재개하기로 약속했다. 레이크 교수는 폭풍이 잠잠해지면 우리가 있는 캠프로 비행기를 보내겠다고 했다. - P253

 좀 더 구체적인 증거 없이는 불신만 일으킬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 P254

우리 중에서 아침까지 숙면을 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레이크 교수의 발견이 가져온 흥분이 가시지 않은데다 바람이 점점 거세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는 지역에서도 돌풍이 심한 편이라 바람의 근원인 미지의 거대한 산봉우리 바로 밑에 자리잡은 레이크 교수의 캠프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할지 걱정이었다. - P254

 3시 이후 바람이 잠잠해지자 우리는 레이크 교수와의 교신에 총력을 기울였다.
레이크 탐사팀의 비행기 4대 모두 고성능 단파 장비가 장착돼 있었으므로 왜 그들 무선 장치가 한꺼번에 사용불가인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묵직한 침묵은 변함이 없었다. - P2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우라 야스시는 내 동서다. 즉 아내의 여동생인 쓰구미의 남편이었다. - P124

다음해에 첫 작품집을 내놓으며 소설가로서 위치를 굳힌 그는 자기 작품의 영상화로 관심을 돌렸다. 8밀리 독립영화를 계획했는데 당연히 본인이 감독 겸 주연이었다. 제작비는 책 인세로 충당할 생각이었지만 여주인공 섭외가 만만치 않았다. - P124

쓰구미는 학창시절부터 친구들의 추천이나 부탁으로 아마추어 극단 무대에 오르곤 했다. 그런데 한 연극에서 우연히 선보인 애드리브가 반응을 얻고 인기몰이를 하자 그녀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팬까지 생기게 됐다. - P125

나도 회사 행사 때 그녀에게 몇 차례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전무의 가족으로서 가깝게 지내게 된 게 이 무렵부터다. 쓰구미는 클라이언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아서 맞선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전무인 아버지가 알아서 다 잘랐던 모양이지만. - P126

 요새 유행하는 페미니즘과는 다른 자기만의 쿨한 남성관으로 스스로를 지켜왔던 것이다. 쓰구미가 이렇게 된 데는 주변의 남자들이 그녀를 특별 취급하며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로 떠받든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 P126

쓰구미 앞에 나타난 청년은 재능과 야심으로 넘쳐서 누구보다 찬란하게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를 저높은 곳에 두고 올려다보지 않고 대등한 인격으로 대했다. 두 사람이 열렬한 사랑에 빠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 P126

미우라는 영화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본인의 의욕과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고 일 년이 지나도 영화는 완성되지 않았다.
(중략)
 이유는 훨씬 간단했고,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다. 미우라는 쓰구미를 찍은 장면을 단 한 컷도 자르지못했다. 그래서는 영화가 될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일 년이 두 사람에게 완전히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 P127

"자네한테 가즈미를 보낼 때가 더 가슴 아팠어." 피로연 후가도와키 료이치 전무는 내게 털어놓듯 말했다. 나는 이미 칠 개월 전에 그의 사위가 되어 있었다. - P127

"만약 쓰구미가 얼토당토않은 남자를 잘못 고른 거라고 해도그때 가서 얼른 정리하고 돌아오면 그만이야. 언니와 달리 보통고집이 센 게 아니니까 그 정도 고생은 해야 아비 말을 듣겠지." - P127

물론 당시에는 신랑이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가 아니었고, 장인도 자기 딸이 고생하기를 부러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우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프로덕션에 들어갔다. 여기에도 장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구 년 전의 일이다. - P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드의 자료에 따르면 "여배우 에드나 월레스 호퍼는 아틸라의 체육관에서 덤벨 운동이나 메디신 볼(medicine ball: 무거운 가죽공으로 하는 근육 단련 운동) 운동 외에도 정기적으로 잭 쿠퍼와 권투 시합을 했다." 아틸라의 스크랩북에 남아 있는 《배니티 페어》의 한 기사는 ‘뉴욕 여성들의 몸매 가꾸기‘ 라는 제목 아래 한 여성이 아틸라의 스튜디오에서샌드백을 치고, 남자를 상대로 권투 연습을 하고 덤벨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P71

"스포츠 역사가들은 1920년대를 스포츠의 황금기라고 간주합니다."라고 토드는 말했다.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도 곤봉과 역기로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운동을 했으며, 직업적인 차력사와 여성 차력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테니스를 치거나 트랙과 필드에서 육상 경기를 즐겼고수영 시합도 했다. 피트니스는 "큰 유행을 탔다." 그러나 모든 유행이그렇듯이 운동의 유행 역시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 P72

1960년대, 운동을 권하지 않는 시대

피트니스에 대한 관심은 징병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뉴욕 대학교 벨레뷰 메디컬 센터 산하 신체 의학 및 재활연구소의 한스 크라우스와 루스 허시랜드는 미국 아동 4,264 명을 대상으로 한 체력장에서 56.6퍼센트가 기준 체력 미달이었으며 "건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최저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 P72

크라우스와 허시랜드는 미국 어린이들의 운동부족이 "비타민 결핍증에 비유할 수 있는 심각한 결핍 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결론 내렸다. - P73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 내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청소년 건강 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명령하고 부통령 리처드 닉슨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위원회에는 내각의각료 다섯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 P73

아기들은 유모차에 태워서 밀고 다니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태워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차에 태워서 교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자녀들이 집에 와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모두 끝날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빈둥거리도록 방치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모두가 걸어 다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리고 바깥 날씨가 추우면 몸에서 온기를 느끼기 위해 뛰어 다녔다. - P73

물론 이러한 의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 P73

 만약 어린이들이 테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5분만준비 운동을 했더라도 기준에 미달되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합격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P74

그러나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보고서는 미국 국민들의 건강과 운동을 국가적 정책의 대상으로 부상시켰다. - P74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완전히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 P74

여성들은 그 시대에도 몸매에 무척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패션 스타일이 바뀌면서 몸매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는 비키니가 등장했습니다. 짧은 바지를 입는 것도 유행이었죠.
홀터 탑은 대담한 노출에 속했습니다. 의상이 이렇게 크게 변하다 보니 여성들이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윗몸 일으키기를 하든 운동을 좀 해야겠어‘ 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죠."라고 토드는 말했다. - P75

당시 사람들이 완벽한 육체미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람한 근육질의몸이 아니었다. 또 여성이든 남성이든 신체 단련을 위해 격렬하게 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이상적 몸매라고 생각했던 몸은 근육질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몸이 아니라 남성의 경우는 영화배우 캐리 그랜트, 여성의 경우는 오드리 헵번 정도였다. - P75

그 이유는 패션과 문화 때문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청년층 문화와 히피 운동이 미와 건강의 척도를 제시했다. "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쿨하지 못하다."고 여겼다고 토드는 전한다. - P76

물론 1960년대나 1970년대에도 시대적인 조류를 무시하는 운동선수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경우 열심히 운동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었다. - P76

연방 정부도 당시 미국인들의 운동 습관에 대한 통계 자료는 갖고있지 않았다. 이러한 종류의 통계는 1985년 질병 통제 센터가 낸 보고서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 번에 최소한 20분씩,
매주 최소한 세 번 이상 격렬한 운동을 하는 성인은 15퍼센트, 한 번에최소한 30분씩, 매주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격렬한 운동을 하는 성인은 22퍼센트에 불과했다. - P78

건강한사람들은 운동을 경시했고, 심장병처럼 만성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은 격렬한 운동이 죽음을 불러오는 가장 큰 원인인 것처럼 두려워하고 멀리했던 것이다. "내가 의과 대학생이던 1960년대에는 40대가 넘은 사람은 운동을 하면 안 된다고까지 말했습니다."라고 쿠퍼는 말한다. - P78

"1968년에도 나는 40대, 50대, 60대, 심지어 70대인 사람도 조깅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쿠퍼는 회고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 P78

드디어 시작된 달리기의 대유행

그러나 쿠퍼와 달리기의 효과를 주장하던 몇몇 의학자들의 목소리가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일시적인 유행의 물결이 서로 교차하기 시작한 탓인지도 모른다. 운동의 효과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열성으로, 그들은 헬스클럽과 에어로빅 강습,
개인 트레이너 양성, 보디스컬프팅, 특수 운동 장비 제작, 피트니스를통한 건강과 아름다움을 약속하는 잡지와 책의 출판 등을 위한 초석을 깔았다. - P79

달리기의 유행을 더욱 부채질한 사람은 뉴저지 주, 바다에서 멀지않은 네이브싱크 강 주변의 조용한 소도시 럼슨에서 가정의로 일하던 조지 시언이었다. - P79

그러나 결국 조지 시언은 거리로 나섰다. 시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엉뚱한 행동에 대해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우리 형제들은 ‘너희 아버지는 도대체 왜 속옷 바람으로 온 동네를 헐레벌떡 뛰어다니니?‘ 라는 친구들의 놀림 섞인 질문을 받기 일쑤였다. 나는 그런 질문에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황당했고 곤혹스러웠다." - P80

조지 시언 외에 짐 픽스라는 또 한 명의 달리기 전도사가 있었다. 이사람이 쓴 『달리기 완전 정복(The Complete Book of Running)』은 1978년의베스트셀러였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달리도록 만들었다. - P80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스, 시언, 쿠퍼 같은 달리기 운동의 전도사들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당장 거리로 나가 달리기를 시작하라고자극했다. 물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정적인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려하지 않았다. - P81

드디어 피트니스 프로모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성들은 에어로빅 강습을 받으러 다녔고, 여배우 제인 폰다가 에어로빅 열풍에 편승해내놓은 에어로빅 비디오 (1982년)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폰다는 운동이 여성을 더욱 활달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하며 바로 자기자신을 그러한 예로 들었다. - P82

헬스클럽마다 운동 강습 프로그램을 마련하느라 분주했으며, 1985년에는 신체의 충격량이 적은 새로운 에어로빅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기존의 에어로빅 프로그램에서 높은 도약을 시도하다가 부상을 입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었다. - P83

1991년에 IDEA에 등록되어 있는 개인 트레이너의 수는 791 명이었는데, 2001년에는 8,000명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2002년을 기준으로 개인 트레이너의 유료 지도를 받아 운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은 520만 명에 달했다. - P83

그러나 운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직접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증가하면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었다. 어느 정도의 운동량이 적당한가? 운동에 과도하게 집착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어떤 경우에 운동이 사람의 건강에 오히려 해가 되는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 P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럼 성으로 부르는 노인네 습관은 피하고 이름으로 가유스 군, 기기나 군이라고 부르겠네."
나는 끄덕이기만 했다. 몰딘이 말을 잇는다.
실은 자네들 두 사람에게 내 특별 임무에 따른 에리다나 안내와 신변 경호를 부탁하고 싶어. 지금 이 순간부터." - P111

"최근엔 흑룡 한쪽을 쓰러뜨렸다는 것도 들었고."
기기나의 얼굴에는 명확한 의심이 있었다.
"에리다나 안내에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은 이해하겠어."
입술에서는 험악한 느낌을 포함한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른 채 끌려왔는데 갑자기 호위를 맡으라니.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데." - P112

"그리고 일부러 우리 같은 외부 공성주식사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기가 말한 대로입니다. 몰딘 추기경장 예하께는 소위 ‘12 익장‘이라 불리는 정예 부대 공성주식사들이 따르고 싶어할 텐데요."
나는 생각나는 대로 그들의 이름을 대보았다. - P112

"하지만 그 12억장은 누구 하나 이 자리에는 없어."
몰딘이 말을 이었다.
"그들을 데려올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나 몰딘 추기경장의 특수 임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 P113

"그럼 내 ‘관광 안내‘를 명한다."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추기경의 호위들은 내 질문이 담긴 시선에서 눈을 피했다. - P113

12억장이라는 근엄하고 눈에 띄는 인간을 데리고 다니면 관광을 즐길 수 없겠지? 그래서 자네들이 필요한 거야."
추기경장이 일어섰다.
"자, 지금부터 에리다나 축제로 들떠 있는 거리에 나가보지." - P113

헤로델을 보았다. 내 악우는 콧수염의 잔상이 남을 정도로 고속으로 얼굴을 피했다. - P113

길거리 공연, 불꽃놀이, 음악, 춤, 연극, 그리고 길과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파도.
가냘픈 아를리안 인, 왜소한 노르그무 인, 거인들만 있는 란도그인, 고양이처럼 온몸이 모피로 덮이고 삼각형 귀가 있는 아냐 인까지 있어서 인류 각 종족의 홍수가 되었다.
그것은 월급날의 창관처럼 대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에리다나 거리 전체가 노래, 춤으로 흔들리고 있다. - P114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호송범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야. 관광을 하러 온 거다."
가볍게 손을 내젓고 몰딘 추기경장은 걷기 시작했다. 황급히 호위들이 경비망을 이동시킨다. - P115

"확실히 에리다나에서는 법의 차림 신부나 목사 등 수십 명이 걸어 다녀도 눈에 띄지 않지요. - P115

우선은 내가 지각안경으로 음료수 성분을 확인하고 다음으로 입에 대고 혀끝에서 굴려본다.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 추기경장에게 잔을 돌려준다.
"과연, 노점이라고는 해도 안심해선 안 된다는 것이로군." - P115

"바렌하이트의 무명시대의 진부한 시가 떠오르는군."
"일설에 의하면 원래 노래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바렌하이트가 개작했다고 합니다." - P117

"유스 군은 음악까지 잘 아는 것 같군."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학창시절에 저작에 손을 댔을 것뿐만 아니라 바렌하이트와는 실제로도 만난 적이 있다. 최악의 학자이며 시인이었다.
"하지만 기습이 유래라니, 나한테 어울리는 거리야." - P117

예외 없이 고위 주식사가 되기를 원하는 츠에 베른 용황국에서 몰딘은 주식에 관한 재능을 전혀 갖지 못했다. 병약한 팔푼이라 불렸지만 한편으로 지성과 견식이 높아 차기 오제스 선왕에 추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장남인 쌍둥이형 아스에리오의 미움을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성직자가 되어 교회에 들어가게 된다. - P117

마침내 그는 교황 유리나스 IV세를 퇴위시키고 신수파를 소탕했다. 꼭두각시인 데레크 II세의 즉위를 성공시키고 자신은 추기경장으로 자리 잡았을 때, 사람들은 몰딘이 선량하고 순진무구한 이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 P118

기기나 본인은 타인의 시선조차 무시하고 멈춰 서 있었다. 전사의 시선은 길가의 한 가게에 쏠려 있다. 오래된 의자를 향한 시선은 열을 띠고 있었다.
나는 축제의 열광적인 모습을 보고 있었다. - P118

"정말로 관광을 즐기시는군요. 혹시나 몰딘 예하는 본인이 황국의 중요 인물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아니십니까?"
"아닐지도 몰라." - P119

수많은 무리가 걸어가는 보도 위와 빌딩 벽면에는 입체 광학 영상, 광고 영상에서 보도 프로그램으로 바뀐다.
(중략)
영상 안에서 몰딘 추기경장이 의자에 앉아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얹고서 말하고 있었다. 보도 기관의 요구에 의견을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 P119

화면의 몰딘이 말을 이어가자 눈앞에 있는 진짜 몰딘 추기경장은눈을 피하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쓴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 P119

몰딘 추기경장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나한테는 죽은 아스에리오 외에 다른 형제는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된…." - P120

"저것을 연기하는 것은 12익장 중 한 사람인 제논 칼 다리우스다.
어떤 인간으로도 변장하여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연극의 천재지."
몰딘이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평소에도 변장하고 있어서 나도, 제논 군 본인도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애인지 노인인지, 맨얼굴조차 잊어버릴 정도야." - P120

들을수록 이 인물의 엉뚱한 사고와 그 이상으로 편집증적인 조심성과 이상한 취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정적이 보낸 암살자나 순교 자객까지 연중행사처럼 끊이지 않으니까. 요즘엔 동방에서 온 암살자까지 나를 노리고 움직이는 모양이야." - P121

설명을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몰딘의 눈에는 기대하는 빛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실제로 보이기로 했다.
손에 들고 있던 빈 종이컵을 던져 허리의 마장검 가드에서 주식을 전개. 포물선의 궤도가 불꽃과 함께 변화, 수평으로 비상하더니다시 궤도가 변화, 휴지통 상공에서 직각으로 굽어지며 수직 낙하했다. - P121

"초산칼륨 75퍼센트, 유황 10퍼센트, 목탄 15퍼센트를 합성하여검은 화약을 생성. 남은건 기초전자 주식으로 순차 발화시켜 궤도를 바꾼다. 저 불꽃도 이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야말로 현대는 주식의 세기로군." - P122

"유감스럽게도 주식은 만능 마법이 아닙니다. 물리적 제약에 지배되는 단순한 기술입니다."
연극에 눈길을 향한 몰딘에게 말을 던졌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수소 원자를 원소 주기표로 바로 옆에 있는헬륨으로 변환시키려면 태양과 같을 정도인 2,500억 기압, 수백만도의 고열로 정(正)의 전하로 반발하는 수소원자를 핵융합시켜야합니다." - P122

그러나 원래 학구파였던 추기경장은 따분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 주식사는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을 주장하는데 자네는 낙관하지 않는군." - P123

"비관적으로 낙관한다고나 할까요."
"주식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그리고 자네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하는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어떤 위인이나 철학자의 말도 사상누각과 같다고밖에 생각할 수없는 것뿐입니다." - P123

"말장난은 이 정도로 하고 단것이라도 먹지 않겠나?"
추기경장이 가리키는 방향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이 있었다.
추기경장을 말리고 이번엔 내가 돈을 내기로 했다. - P123

사는 김에 헤로델과 호위들에게도 나눠주었다. 둘이서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것이 좀 창피했다. 기기나는 거부했다. 한 명정도는 경비에 집중하는 편이 좋겠지. - P124

"어린이가 행복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천진하게 웃을 수 있는한 나는 이 세계를 긍정한다."
몰딘의 말이 번화가를 관통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속이고 배신하고, 피를 흘리고 죽여왔어. 앞으로도 그럴 테지. 부족하다면 그 위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그래도 부족하면 더욱 위의 합리성을." - P124

"그래, 관광 안내책자에 있던 우르크 요리 가게에 가고 싶어. 나는 뜨거운 우르크 요리라면 정신을 못 차리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몰딘이 걸어갔다. 멍하게 서 있던 헤로델과호위들의 비명이 등 뒤에서 쫓아왔다.
"각하, 갑자기 예정을 바꾸지 말아주십시오!" - P125

"격식을 갖춘 가게를 전세 내는 게 뭐가 즐겁지? 본토 가게 아무데나 들어가보는 것이 관광이지." - P125

에리다나의 가희 축제는 밤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차에 흔들리며 나는 에리나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검게 칠한 고급차는 쾌적했다. 옆에는 몰딘 추기경장이 앉아 있다.
"오랜만에 즐거웠다." - P128

"티엔룬 합의에 대한 라페토데스 7 도시 동맹 비준에 단호히 반대한다!"
"사람이 용, 기괴한 용모와 대화 같은 걸 할 필요는 없다!"
"츠에베른 용황국도 조약을 파기하라!"
사람들의 목소리에 몰딘이 쓴웃음을 지었다.
"티엔룬 조약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군." - P129

"하지만 라페토데스 7 도시 동맹이 황국에서 독립한 것은 고작해야 백 년 전의 일이야. 수백 년도 더 전인 황력 36년에 맺은 티엔룬조약을 동맹이 비준할 필요는 없었지."
몰딘의 목소리에 진지한 기운이 섞였다. - P129

"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나?"
내 움직임을 저지하듯이 몰딘의 질문이 스며들어왔다.
"무지와 빈곤이 결합하면 행진하는 수밖에 없겠죠."
"그들의 주장은 어떤 부분은 정당해. ‘기괴한 용모‘와 인간과의사이에 진짜 이해나 융화 같은 건 있을 수 없어. 모두가 사이좋게지내자는 말은 꿈같은 헛소리지." - P131

"적에게 가족이나 지인이 살해당했다면 조약이 허락하기 어려운 타협으로 생각되겠지요." - P131

조수석의 헤로델이 자리 위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여기 머무르는 편이 위험합니다. 걸어서 린츠 호텔로 갑시다."
내가 먼저 밖에 나가서 차폐물 역할을 하면서 몰딘 추기경장을나오게 했다. 기기가 이어서 옆을 호위했다. 앞뒤의 차에서 호위들이 나와 더욱 굳건한 벽을 만든다. - P132

경관대와 시민이 서로에게 경찰과 간판을 휘두르며 격돌하는와중에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아젤이 뛰어다니고 있다.
아젤은 시민을 발로 차는 경찰에게 "어이, 권력의 개 신문에 잘나오게 좀 더 박력 있게 차봐!" 라고 지시하며 촬영했고 경찰차량을 쓰러뜨리는 시민에게는 "분위기에 휩쓸려 난동을 피운 지금 기분은?" 하고 물으며 기록하고 있다. - P132

대리석 기둥 사이에 있는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자 작은 현관이 있었다. 헤로델이 휴대 주신기를 갖다대자 문이 열렸다.
"귀빈용 특별 출입구야. 자동승강기도 여기에서 직통으로 가는게 설치되어 있어." - P133

"헤로델, 앞으로의 경비 계획은 어떻게 되어 있지?"
"린츠 호텔 13층을 통째로, 그리고 위층과 아래층도 위장으로 빌렸어. 강력한 주식 결계와 경비 장치가 몇십 겹으로 쳐져 있어. 준전략급 공성주식의 직격을 맞아도 버틸 수 있어. 즉 백 퍼센트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지." - P133

"남은 건 호위하는 오제스 왕가의 기사들과."
호위들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나와 기기나를 바라본다.
"가스와 기기가 감시해주면 만전을 기하는 것이지." - P133

"내일 아침부터 할 관광까지는 호위도, 안내도 필요 없어."
몰딘의 말에 헤로델이 안색이 변했다.
"각하, 호위를 물리시다니!"
"백퍼센트 안전하다고 말한 것은 헤로델 군이야." - P133

"게다가 헤로델 군과 유스 군도 오랜만의 재회라서 할 이야기가 많겠지? 오늘 밤은 추억담이라도 나누지 그래. 나는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 않나?"
몰딘 추기경장이 혼자서 납득한다. - P134

"갑작스럽게 일을 부탁해서 미안해.
여섯 잔째의 제다 술을 정확히 반 정도 마신 헤로델이 입을 열었다.
"각하의 변덕 때문에 갑작스런 관광을 하게 되어 아무래도 현지사정에 밝고 신용할 수 있는 공성주식사를 생각했더니 너밖에 떠오르지 않았어." - P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