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의 자료에 따르면 "여배우 에드나 월레스 호퍼는 아틸라의 체육관에서 덤벨 운동이나 메디신 볼(medicine ball: 무거운 가죽공으로 하는 근육 단련 운동) 운동 외에도 정기적으로 잭 쿠퍼와 권투 시합을 했다." 아틸라의 스크랩북에 남아 있는 《배니티 페어》의 한 기사는 ‘뉴욕 여성들의 몸매 가꾸기‘ 라는 제목 아래 한 여성이 아틸라의 스튜디오에서샌드백을 치고, 남자를 상대로 권투 연습을 하고 덤벨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P71

"스포츠 역사가들은 1920년대를 스포츠의 황금기라고 간주합니다."라고 토드는 말했다.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도 곤봉과 역기로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운동을 했으며, 직업적인 차력사와 여성 차력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테니스를 치거나 트랙과 필드에서 육상 경기를 즐겼고수영 시합도 했다. 피트니스는 "큰 유행을 탔다." 그러나 모든 유행이그렇듯이 운동의 유행 역시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 P72

1960년대, 운동을 권하지 않는 시대

피트니스에 대한 관심은 징병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뉴욕 대학교 벨레뷰 메디컬 센터 산하 신체 의학 및 재활연구소의 한스 크라우스와 루스 허시랜드는 미국 아동 4,264 명을 대상으로 한 체력장에서 56.6퍼센트가 기준 체력 미달이었으며 "건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최저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 P72

크라우스와 허시랜드는 미국 어린이들의 운동부족이 "비타민 결핍증에 비유할 수 있는 심각한 결핍 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결론 내렸다. - P73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 내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청소년 건강 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명령하고 부통령 리처드 닉슨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위원회에는 내각의각료 다섯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 P73

아기들은 유모차에 태워서 밀고 다니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태워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차에 태워서 교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자녀들이 집에 와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모두 끝날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빈둥거리도록 방치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모두가 걸어 다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리고 바깥 날씨가 추우면 몸에서 온기를 느끼기 위해 뛰어 다녔다. - P73

물론 이러한 의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 P73

 만약 어린이들이 테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5분만준비 운동을 했더라도 기준에 미달되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합격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P74

그러나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보고서는 미국 국민들의 건강과 운동을 국가적 정책의 대상으로 부상시켰다. - P74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완전히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 P74

여성들은 그 시대에도 몸매에 무척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패션 스타일이 바뀌면서 몸매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는 비키니가 등장했습니다. 짧은 바지를 입는 것도 유행이었죠.
홀터 탑은 대담한 노출에 속했습니다. 의상이 이렇게 크게 변하다 보니 여성들이 ‘팔 굽혀 펴기를 하는 윗몸 일으키기를 하든 운동을 좀 해야겠어‘ 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죠."라고 토드는 말했다. - P75

당시 사람들이 완벽한 육체미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람한 근육질의몸이 아니었다. 또 여성이든 남성이든 신체 단련을 위해 격렬하게 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이상적 몸매라고 생각했던 몸은 근육질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몸이 아니라 남성의 경우는 영화배우 캐리 그랜트, 여성의 경우는 오드리 헵번 정도였다. - P75

그 이유는 패션과 문화 때문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청년층 문화와 히피 운동이 미와 건강의 척도를 제시했다. "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쿨하지 못하다."고 여겼다고 토드는 전한다. - P76

물론 1960년대나 1970년대에도 시대적인 조류를 무시하는 운동선수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경우 열심히 운동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었다. - P76

연방 정부도 당시 미국인들의 운동 습관에 대한 통계 자료는 갖고있지 않았다. 이러한 종류의 통계는 1985년 질병 통제 센터가 낸 보고서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 번에 최소한 20분씩,
매주 최소한 세 번 이상 격렬한 운동을 하는 성인은 15퍼센트, 한 번에최소한 30분씩, 매주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격렬한 운동을 하는 성인은 22퍼센트에 불과했다. - P78

건강한사람들은 운동을 경시했고, 심장병처럼 만성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은 격렬한 운동이 죽음을 불러오는 가장 큰 원인인 것처럼 두려워하고 멀리했던 것이다. "내가 의과 대학생이던 1960년대에는 40대가 넘은 사람은 운동을 하면 안 된다고까지 말했습니다."라고 쿠퍼는 말한다. - P78

"1968년에도 나는 40대, 50대, 60대, 심지어 70대인 사람도 조깅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쿠퍼는 회고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 P78

드디어 시작된 달리기의 대유행

그러나 쿠퍼와 달리기의 효과를 주장하던 몇몇 의학자들의 목소리가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일시적인 유행의 물결이 서로 교차하기 시작한 탓인지도 모른다. 운동의 효과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열성으로, 그들은 헬스클럽과 에어로빅 강습,
개인 트레이너 양성, 보디스컬프팅, 특수 운동 장비 제작, 피트니스를통한 건강과 아름다움을 약속하는 잡지와 책의 출판 등을 위한 초석을 깔았다. - P79

달리기의 유행을 더욱 부채질한 사람은 뉴저지 주, 바다에서 멀지않은 네이브싱크 강 주변의 조용한 소도시 럼슨에서 가정의로 일하던 조지 시언이었다. - P79

그러나 결국 조지 시언은 거리로 나섰다. 시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엉뚱한 행동에 대해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우리 형제들은 ‘너희 아버지는 도대체 왜 속옷 바람으로 온 동네를 헐레벌떡 뛰어다니니?‘ 라는 친구들의 놀림 섞인 질문을 받기 일쑤였다. 나는 그런 질문에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황당했고 곤혹스러웠다." - P80

조지 시언 외에 짐 픽스라는 또 한 명의 달리기 전도사가 있었다. 이사람이 쓴 『달리기 완전 정복(The Complete Book of Running)』은 1978년의베스트셀러였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달리도록 만들었다. - P80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스, 시언, 쿠퍼 같은 달리기 운동의 전도사들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당장 거리로 나가 달리기를 시작하라고자극했다. 물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정적인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려하지 않았다. - P81

드디어 피트니스 프로모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성들은 에어로빅 강습을 받으러 다녔고, 여배우 제인 폰다가 에어로빅 열풍에 편승해내놓은 에어로빅 비디오 (1982년)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폰다는 운동이 여성을 더욱 활달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하며 바로 자기자신을 그러한 예로 들었다. - P82

헬스클럽마다 운동 강습 프로그램을 마련하느라 분주했으며, 1985년에는 신체의 충격량이 적은 새로운 에어로빅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기존의 에어로빅 프로그램에서 높은 도약을 시도하다가 부상을 입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었다. - P83

1991년에 IDEA에 등록되어 있는 개인 트레이너의 수는 791 명이었는데, 2001년에는 8,000명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2002년을 기준으로 개인 트레이너의 유료 지도를 받아 운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은 520만 명에 달했다. - P83

그러나 운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직접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증가하면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었다. 어느 정도의 운동량이 적당한가? 운동에 과도하게 집착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어떤 경우에 운동이 사람의 건강에 오히려 해가 되는가?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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