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자. 할 일이 없다.





1부의 머리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세 집단의 사람들, 소비자와 노동자, 자본가의 상호작용을 수반한다. 세 집단은 저마다 하기로 되어 있는 실제로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한다. 소비자는 크게 봐서 20세기에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다. - P95

노동이동성

 첫째, 새로 등장한 노동자들은 지리적으로 이동성이 매우컸다.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일자리를 찾아서 이동했다. 그들 대다수는 강제로 땅을 빼앗기거나 그들이 생산한 제품이 더는 팔리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 P96

이탈리아 이주민들은 대개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미국으로 분산되었는데 대다수가 당시에 공장, 철도, 광산, 가축사육장, 유전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값싼 노동력이 긴급하게 필요해진 미국으로 건너갔다.
1820~1860년에는 아일랜드(200만 명), 남서 독일(150만 명), 영국 제도(75만 명) 사람들이 주로 이주해왔다. - P96

그러자 미국과 러시아의 값싼 밀수입 때문에 자기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그들의 자리를대신했다 (오늘날 멕시코 농민들이 값싼 미국산 옥수수 수입 때문에 자기 땅에서 내몰리고 있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 P97

1849~1874년에 도제계약을 맺은 약 9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페루로 갔다. 1852~1875년에는 20만 명이 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가서 과일을 재배하거나 사금을 가공, 채취하거나 철로 까는 일을 했다. 약 1만 명에서 1만 4,000 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이 캘리포니아의 센트럴퍼시픽 철도를 건설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따라서 19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그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인류의 대이동이 일어난 때였다. - P97

세분화

 노동자계급의 두 번째 특징은 그들이 인종, 종교, 민족, 나이, 성에 따라 나뉘고 세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노동자계급은 크게 두범주로 나뉘는데 하나는 노동조합과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더 잘 방어할 수 있는 노동 귀족이고, 다른 하나는 저임금과 불안전란 노동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하층 노동자다. - P97

자본주의는 이런 인종차별과 민족차별을 직접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차별과 그것이 끼치는 경제적 영향력을 명백히 보여주고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Wolf, 1982, 380쪽). - P98

 실제로 이주민들이 자신들을 특정한 인종집단의 일원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새로운 사회에 어울려 살며 부딪치기 시작한 사회화과정을 거친 뒤부터였다. 그들은울프가 말했듯이 (1982, 381쪽) "자본주의 양식 아래서 노동시장의 세분화가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었다. - P98

자본주의 문화가 창출하거나 강화시킨 민족이나 인종에 따른 집단화는 대개 그들이 부족한 일자리와 자원을 두고 경쟁하면서 서로 갈등관계로 접어들었다. - P98

미국에서도 이와 똑같은 수준의 인종 간 적개심이 발전했는데 특히 아일랜드인과 흑인들 사이에서 심했다. 19세기 초 아일랜드의 지도자들은대개 노예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노예제 폐지를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멸시당한 것처럼 자기 나라에서 영국 지배자들에게 모진 대우를 받았던 아일랜드인들은 미국으로 이주하자마자 노예제를 찬성하고 흑인들을 적대시하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이런 태도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99

노엘 이그나티예프는 『아일랜드인들은 어떻게 백인이 되었나』How theIrish Became White에서 미국은 19세기 초반세기 동안 노예가 아닌 흑인들은 북부 지역의 경우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이 수월했다고 말한다. - P99

실제로 미국인들은 아일랜드인을 흑인보다 더 낮은 신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흑인은 아일랜드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노예로서의 가치가있었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에 있는 하역회사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깜둥이들은 여기서 매우 쓸 만한 가치가 있어서 다치면 안돼요. 하지만 아일랜드 애들은 갑판에서 떨어지거나 등이 부러져도 손해 볼 사람은 아무도 없죠." (Ignatiev, 1995, 109쪽) 결국 아일랜드인들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것을 포함해 가능하면 최대한 흑인들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 P100

그러나 신부들의 장려로 흑인들이 했던 천한 일을 서서히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아일랜드인이 비숙련 노동자 대열에 속하게 되었다. 1855년 뉴욕 시의 비숙련 노동자 2만 3,000 명 가운데 87퍼센트가 아일랜드인이었다. 1851년 미국의 흑인사회문제를 중점으로 다루는 잡지인 아프리칸레포지토리』African Repository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었다 (Ignatiev, 1995, 111쪽 인용). - P100

뉴욕을 비롯한 동부 도시들에 백인 노동자들이 마구 들이닥치면서 일반 노동 현장에서 흑인들 대부분이 쫓겨났다. 이제 더는 건물 안에서 흑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흑인이 짐수레를 끌거나 대중교통수단을 운전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백인들은 흑인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African Repositort, 1995, 111p - P100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강탈해가 놓고는 우리의 신분 하락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 P100

이제 어떤 일을 하느냐가 흑인과 백인을 구별하는 열쇠가 되었다. 백인은 ‘백인의 일을 하고 흑인은 ‘흑인의 일‘을 한다. 그 구별은 자의적인 것이었다. 아일랜드인들이 하면서부터 백인들의 일이 된 많은 일자리가 사실은 이전에 흑인들이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그나티예프가 지적한 것처럼 ‘백인‘은 신체적 특징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사회관계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이런 구별은 아일랜드인들이 ‘백인‘이 되기 위해서는 흑인들이 배제된 일자리에서 일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Ignatiev, 1995, 111쪽). - P101

규율

새로운 노동자계급은 이동성이 있고 인종과 민족, 성, 나이에 따라 세분화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규율에 적응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장이었다. 공장은 대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유럽에서 발달한 비교적 최근에 생긴 역사적 현상이다(물론 직물을 생산하는공장은 15세기 초에도 있었다). - P101

최초의 공장들은 징역장이나 감옥을 본떴다. 방적 공장은 4~5층 높이의 벽돌 건물에 수백 명의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일을 시켰다. 금속산업의 철공소는 여러 개의 용광로와 대장간, 대규모 인력을 한곳에 수용해야 했다(Beaud, 1983, 66쪽). - P101

예컨대 이런 공장환경은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시간 개념을 요구했고 따라서 노동자들은 그것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또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다. 우리의 시간은 대체로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인 시계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 시간은 노동행위나 자연현상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 P102

영국 인류학자E. E. 에번스프리처드(1940. 103쪽)는 수단 지역에 사는 누에르족의 생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누에르족은 ‘시간‘을 표현하는 말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처럼 시간을 말할 줄 모른다. 시간은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시간이 흐른다거나 시간을 낭비하거나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주로 느긋한 성격인 자신들의 행동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때문에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시각을 다툰다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건은 필연적인 질서를 따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활동이 아무런 자율성 없이 어떤 판단 기준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 그런 추상적인 체계가 그 사건들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에르족은 운이 좋다. - P102

역사가 E. P. 톰슨(1967)은 근대적인 시간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만해도 노동의 형태는 고된 노동과나태, 둘중 하나로 나뉘었다고 말한다. - P102

그렇다고 산업혁명 이전의 노동 형태가 편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톰슨(1967, 58쪽)은 1636년에 한 농장노동자의 전형적인 일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말을 돌보고 6시에 아침을 먹었다. 그런다음 오후 2시나 3시까지 밭일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다시 오후 6시까지 말을 돌보고 저녁을 먹은 뒤 밤 8시까지 다른 허드렛일을 하고 소를돌본 다음 일을 끝냈다. 그러나 이것은 1년 중 가장 바쁠 때 농장의 일상을 말한다. - P103

 벤저민 프랭클린이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Poor Richard‘s Almanac에서 썼듯이 "시간은 돈이다." 아마도같은 시기에 게으름은 부도덕한 짓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을것이다. 다음은 1689 년에 『유스스 모니터』Youth‘s Monitor에 나온 기사다. "시간은 너무나 귀중한 필수품이라서 경시해서는 안 된다. (・・・) 이것은 육중한 영원이 연결되어 있는 황금 사슬이다. 시간 낭비는 참을 수없는 일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Thompson, 1967 58쪽 인용) 대개 여가시간이 공격을 받았다. - P103

저항

 끝으로 새로운 노동자계급은 노동의 이동성과 세분화, 규율 외에도 세상을 ‘세계혁명‘으로 이끌 새로운 투쟁성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었다. 1848년 초 프랑스 정치사상가이자 미국 민주주의 연대기 기록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프랑스 하원에서 많은 유럽인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연설했다. "우리는 화산이 분출할 것 같은 상황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대지가 다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까? 혁명의 바람이 불고 폭풍이 지평선 위에 있습니다."
(Hobsbawm, 1975, 9쪽) - P104

비록 여러 나라에서 중도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반란자들이 이끄는 운동은 기본적으로 홉스봄(1975, 15쪽)이 말한 것처럼 "가난한 노동자들의 사회혁명"이었다. 이런 혁명은 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의 갈등이 점점 하나의 유형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각 집단은 저마다 자신들을 대변할 인물들을 배출했다. 한편에서 프랑스의장바티스트 세, 영국의 데이비드 리카도와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조건은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에서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로버트 오언, 앙리 생몽, 샤를 푸리에 등은 빈곤이 노동 착취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 P105

 예를 들어 맬서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은 부자들의 권한밖 일이다. 따라서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이런 것들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 설사 부자들이 희생할 수 있다고 해도, 특히 돈을 써서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사회의 하층민들 사이에서 빈곤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Beaud, 1983, 78쪽 인용). - P105

한 프랑스 기업가는 "노동자들의 운명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노동시간이 13 시간을 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혹사당하는 것은 아니다. (…………)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은 오히려 이윤이 별로 남지 않는제조업자다"라고 무덤덤하게 썼다(Beaud, 1983, 101쪽 인용). - P106

반면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같은 부류는 인간사회가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과 계급,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분리되고 있다고 믿었다.


공장으로 몰려드는 노동자 대중은 군인처럼 조직되고 있다. 그들은 산업군의 병사들처럼 장교와 하사관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위계질서하에 배치된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과 부르주아 국가의 노예일 뿐 아니라 날마다 시시각각 기계와 감독관, 무엇보다도 부르주아 제조업자 개인에 의해 노예화된다. 이런 압제는 이익이 최종 목적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질수록 더욱더 비열하고 증오스럽고 잔인해진다.

Marx and Engels, 1948/1941, 14p - P107

애덤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자본주의의 출현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창조하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몰락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창조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 결과, 마르크스의 저작은 노동조합 조직가들과 혁명가들의 청사진이 되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창조했다. - P107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세계로 돌아가보자. 19세기에 노동자가 형성되었던 과정은 오늘날에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는 해외에 조립공장들이 증가하는 모습에서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 P107

해외 조립공장의 증가

자본주의에서 이윤과 이자는 제품의 생산원가와 판매가격 사이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 어떤 제품을 독점하고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 제품을 찾는다면 생산자는 이윤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 가격을올릴 것이다. 그러나 다른 회사에서 같은 제품을 생산한다면 회사가 책정할 수 있는 제품의 가격은 경쟁사가 가격을 얼마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P107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블랙박스 안에서의 노동은 다른 형태를 취한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들은 돈이 어떻게 더 많은 돈을 만들어내는지 알려면 노동이 생산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생각한다. 그들은 이윤이 이른바 노동의 잉여가치라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 P108

 예컨대 옷감을 사서 셔츠를 만들어 팔려고 한다고하자. 2달러를 주고 옷감을 사서 셔츠를 만들어 10 달러에 판다면 8달러의 이윤이 발생한다. 그럼 그 이윤은 어디서 나오는가?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옷감을 셔츠로 바꾼 것이 바로 노동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경우에 우리는 노동력이 8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셔츠를 내가 직접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2달러를 주고 시키고 셔츠가격은 그대로 10달러였다고 하자. 그러면 셔츠를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력의 가치는 여전히 8 달러지만 내가 고용한 노동자가 받은 돈은 2달러밖에 안 된다.  - P108

 내가 셔츠를 만들기 위해 고용한 사람에게 시급이나 일급을 지불한다고 할 때 그들이 셔츠를 한 벌 만들 시간에 두 벌을 만들게 한다면 이윤은 2배로 껑충 뛸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사람들이 더 빨리 일하도록 강요하거나 아니면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기술을 개발하거나 제조공정을 개선할 수도 있다. - P109

직물, 전자제품, 장난감 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노동집약적이다. 쉽게 말해 그들 기업은 제품의 제조기술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인간의 노동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언제나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임금을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논리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109

생산자들이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컨대 주변부 국가에서 주로 저임금 노동력을 수입할 수 있다. 2008년에 미국 국민16세 이상의 노동력 가운데 15.6퍼센트에 해당하는 2,410만 명이 외국 태생이었다(Bureau of Labor Statistics, 2008). 이들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양계장이나 정육회사 노동자, 정원사, 호텔 잡역부, 재봉사, 식당 종업원, 건물철거 인부, 과수원이나 밭일을 거드는 일꾼으로 일했다(Greenhouse, 2000). - P109

 오늘날 미국에서 민간 기업이 징역형을 받은 죄수를 노동력으로 활용하도록 허용된 곳은 30개 주에 이르며, 실제로 민간 기업에 고용된 죄수의 수능 8만 명이 넘는다. - P110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런 노동력의 대부분은 미국의 광산, 철도 건설 현장,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1900년 미국 인구의 14퍼센트가 외국 태생이었다(Haugerud, Stone and Little, 2000 참조). 그러나 일자리가 모두 채워지자이미 일자리를 구한 이민자나 그들의 자손들은 추가로 더 많은 사람이이주해와서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자신들과 경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노동조합이나 교회, 정당들에 로비를 벌여 정부가 이민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키도록 압력을 넣었다. - P110

 그 결과, 미국 연방의회는 1882년 중국인 이민 금지법을제정했고 서부 해안 지역에서는 중국인 이민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미국 인종주의 역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 P110

예컨대 조립공장 설립을 용이하게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과테말라, 멕시코 같은 나라의 정부들은 자국에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중심부 국가의 대기업들이 조립할옷감이나 전자부품 같은 물품을 하역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물품들이 조립된 나라에서 판매되지 않는다면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 P111

.나이키와 같은 기업들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임금의 일부를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지불함으로써 다른 제조업자들과 경쟁할 수 있다.
. 제3세계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는다.
.소비자들은 옷, 전자기기, 장난감 같은 제품들을 싸게 산다.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올린다.

여기서 유일하게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자리를 빼앗긴미국 노동자들인 것 같다(지난 25년 동안 약 500만 명 이상). - P111

또한 멕시코에서 조립공장을 의미하는 마킬라도라maquiladora는 1960년대에 생겨나서 1988년에는 1,279개 공장에서 32만 9,413명이일하고 1999년에는 4,000개가 넘는 공장이 100만명 넘는 노동자들을고용했다(Hodder, 1999). 그러나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조립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 노동조합 결성을 막는 외국 정부의 압력, 자유무역지대 주변의 자연환경을 크게 훼손하는 느슨한 환경규제 같은 문제는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았다. - P112

또한 엘살바도르의 일부 조립공장에서는 여성들이 하루에 4달러 51센트 또는 한 시간에 56 센트를 받고 일한다.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곧바로 해고된다. 화장실은 잠겨 있고 허락을받아야만 갈 수 있다. 작업 중에 얘기를 나누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 P112

자유주의의 탄생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한 가지 명확란 특징은 자기 노동력알 기꺼이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이며 그들은 일자리를 요구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특히 노동자들은 왜 자본주의를 위해 일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임금도 낮고 노동조건도 열악한데 사람들은 왜 조립공장에서일하는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들 노동자가 그런 일자리나마 얻은 것은 다행이 아닌가? - P113

 미국에서, 특히말레이시아와 멕시코 같은 나라들에서 최근까지 사람들은 대부분 땅을일구거나 자신이 직접 생산한 것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왜 농부나 장인과 같은 비교적 독립적인 삶을 버리고 임금노동과같은 종속적인 삶을 택했는가 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P113

예컨대 19세기까지 말레이시아는 술탄들과 농민들에게서 공물을 상납받는 이른바 대인들이 다스리는 여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농민들은 토지 사용권이 있었고 자신이 일군 토지가 무엇이든 상관없었지만 딱 그만큼만 자식에게 양도할 수도 있었다. 생활의 중심은 캄풍kampung, 즉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영국 식민지 지배자들은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환금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토지로 전환하고 자기 땅이없는 농민들을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게 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시켰다. - P113

이런 토지 박탈과정은 멕시코와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앞으로 논의할 테지만)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결국팔 것이라고는 자기 노동력밖에 없는 땅 없는 사람을 대량으로 양산했다. 게다가 이른바 자유무역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부자나라 상품들이이들 나라의 시장에 등장하면서 대규모 다국적 기업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 현지 농민들과 수공업자들은 생계수단을 잃고 노동시장에 몸을 맡겨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이들 나라의 정부는 국민의 일자리를 빠르게 늘려야 하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 P114

그러나 이런 조립공장들은 한 가지 역설을 수반한다. 멕시코와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임금노동자는 남성이었지만 나이키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고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여성이었다. - P114

 따라서 우리는 이제 왜 최저 생계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일자리가 존재하는지,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왜 그런 일자리라도 구하려고 애쓰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 P115

노동력의 세분화

해외에 조립공장들이 늘어나면서 열여섯 살에서 스물네 살 사이의 젊은미혼 여성들이 새로운 노동인구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조립공장들은 왜 젊은 여성들을 고용하는 걸까? 그 여성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도조립공장에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왜, 어떻게 여러 가지 다른 차원으로 세분화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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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깊은 책이 점점 많아진다. 공간은 그에 비례해 좁게 느껴진다.






자본주의 문화를 이끌고 가는 사람은 소비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자가 없다면 그들이 소비할 상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즉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살아가는 사람의 출현은 최근에 나타난 역사적 현상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사람들 대다수는 토지를 이용해 자기가 먹을 곡식을 키웠고 남는 것이 있으면 내다 팔았다. 또한 판매나 거래를위해 여러 가지 물품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들(예컨대 물레나 철제기구)을 손수 만들어 썼다. - P86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1861년에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쓴 피에르 프루동은 그것을 "소득의 원천인 자본이 실제로 자기 노동력을 통해 자본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속하지 않는 경제사회적 체제"라고 불렀다(Braudel, 1982, 237쪽). 자본주의라는 용어는1902년에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사회주의에 반대되는 말로 언급하기 전까지만 해도 널리 쓰이지 않았다. - P86

자본주의의 진수가 상품, 즉 사람들이 사서 소비하는 유용한 물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의 제품, 즉 사람이 언젠가 한 번은 사서 신는 운동화를 예로 들어 자본주의로의 짧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세계 최대의 운동화 제조업체인 나이키를 살펴보자. - P86

오늘날 우리가 신고 입는 운동화와 옷 대부분은 해외에서 제조되는데 나이키 같은 대기업은 제조공장을 자기 나라가 아닌 주변의 다른 나라들로 이전시켜왔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입는 옷과 보고 - P87

자본주의 경제와 발전에 대한 핵심적인 기본 개념을 대강 살펴보자.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 경제는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성장했다. - P87

1. 상품(C): 기본적으로 자본재와 소비재, 두 가지 형태의 상품이 있다. 토지, 원재료, 도구, 기계, 공장 등 자본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될 소비재(예컨대 텔레비전, 비디오 녹화기, 컴퓨터, 주택)를 생산하기위해 쓰인다. - P87

2. 화폐(M): 화폐는 무엇보다도 표준화된 교환수단이다. 모든 상품과 물품을 표준가치로 환산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것(예컨대 숲에 화폐가치를 매김으로써 그것을 다른 상품(예컨대 국채)과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화폐는 상품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 P87

3. 노동력(lp): 노동력은 어떤 형태의 상품을 다른 형태의 상품으로 바꿔주는 작업이다(예컨대 강철을 자동차로 바꾼다).
4. 생산수단(mp): 다른 말로 자본재라고 하는데 다른 상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기계, 토지, 도구들을 뜻한다.
5. 생산(P):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합쳐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 P88

따라서 농부는 셔츠(C)를 약간의 옥수수(C)와 맞바꾸거나 돈을 주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여기서 셔츠를 구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우리는 이런 교환 형태를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C→C‘ 또는 M → C‘ - P88

 다시 말해 그들이 어떤 상품(C)을생산하거나 구하는 목적은 또 다른 상품(C‘)을 손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이나 화폐(M)를 얻기 위해서다. 여기서 상품은 교환가치라는 것이 생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어떤 상품을 사서 그것을 더 높은 가격에팔 때 우리는 그 상품이 교환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M→ C → M′ - P88

 따라서 고유한 방식으로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결합하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발전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완전히 발전된 자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M→C→P→C→M′

또는

M → C →mp/lp→C‘→M - P89

여기서 자본주의 기업의 대명사인 나이키를 예로 들어 이 공식에 적용해보자. 나이키는 돈(M)을 투자해 가죽, 고무, 직물을 짜는 기계, 공장(mp)과 같은 것들로 구성된 상품을 산 다음 그 상품들을 노동력과 결합해 운동화라는 또 다른 상품(C)을 디자인, 생산, 조립한 뒤 시장에 팔아돈(M‘)을 번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목적은 투자한 돈 M보다 가능한 한 더 많은 돈 M‘를 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윤, 즉 손익계산서의 맨 아랫줄에 나오는 순이익이라는 것이다. - P89

그러나 실제 경제 세계에서는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가 많다. 예를 들어 상품 생산자들은 대개 혼자 힘으로 생산의 순환을 시작할 돈(또는 자본)이 없다. 그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아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산수단을 구입하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지불한다. 결과적으로 이윤의 일부는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원금과 이자의 형태로 지출된다. - P90

훨씬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다른곳에 그 돈을 투자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운동화를 생산해서 판매할 경우 10퍼센트의 이윤을 남길 수 있지만 그것을 다른 곳에 재투자해서 12 퍼센트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좋은 일이다. - P90

이윤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생산의 순환을 개시할 돈이나 자본을 공급하는 투자자들은행, 주주 등)에게 그 밖의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충분한 투자수익을 보장해야 한다. - P90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공장이나 기계(mp), 노동력(1p)에 지출되는 돈을 가능한 한 적게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구성된 생산원가를 최소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회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한다(이 문제는 잠시 후에 다시 거론할 것이다). - P91

잠깐 곁길로 빠져서. 주식을 발행하지 않아 투자자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기업들은 회사 운영자본을 투자자와 은행에 크게 의존하는 기업들보다 노동자들에게 더 좋은 임금과 복리후생, 노동조건을 제공할 수있다.  - P91

창업자인 포레스트 마즈는 노동자들을 배려하고 고객들을 섬겨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마즈는 세후 3퍼센트의 이익만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그들이 ‘동료‘라고 부르는 직원들의 봉급은 다른 경쟁사들보다 더 높다. 반면에 임원들의 봉급은 다른 데 비해 낮다(Fernandez-Armesto, 2002, 199쪽). - P91

투자자와 제조업자들은 생산과정의 한쪽 끝에서 돈을 투입해 반대쪽 끝에서 이윤이나 이자의 형태로 더 많은 돈을 얻는다. 그가운데 가상의 장치 같은 것이 있는데, 시스템공학자들은 그것을 블랙박스라고 부른다. - P91

물론 어디에 돈을 투입하고 얼마나 많이 투자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고도로 복잡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윤이 발생되는 방식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윤이 남는가 하는 문제다.
여하튼 상품들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은 블랙박스 안이다. 또한 돈이더 많은 돈으로 바뀌는 것을 장려하거나 억제하는 사회, 정치, 경제, 생태, 이념적 삶의 형태를 발견하는 것도 블랙박스 안이다. - P92

따라서 자본주의는 하나의 경제체제 이상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작동은 사람들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아주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 대다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이 상품들을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명령한다. 자본주의체제를 돌아가게 하는 이윤과 이자를 발생시키는 것이 바로 그 상품들인 것이다. - P92

돈 세례식

콜롬비아의 저지대에 사는 영세농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대농장주에게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임금노동자로 생계를 보충할 수밖에 없게 된 뒤부터 가톨릭교회에서 새로 태어난 갓난아기에게 세례를 줄 때 돈에다 세례를 주는 의식을 은밀히 행했다. 부모는 갓난아기가 신부 앞에서 세례를받을 때 1페소짜리 지폐를 들고 있는데 갓난아기의 세례를 빙자해 신부의 축복이 지폐에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 P93

이처럼 돈이 살아 움직인다는 생각, 돈이 신기하게도 더 많은 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에는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마이클 타우시그(1977)는 콜롬비아 사람들의 돈에 대한 생각이 오늘날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블랙박스와 관련된 그들의 생각이다. - P93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은 돈이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돈은 시장에 팔 수 있는 상품에 투자되거나 그런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 투자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돈 자체가 돈을 번다거나 돈이 자기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 P93

달리 말하면, 이와 같은 말에는 자본이 본디 스스로 확장하는 특징을 가졌다는 생각이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자본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살아 있는 생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콜롬비아 농민들이 세례를 받은 지폐가 살아서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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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책을 읽기가 싫다.
과일이 비싸다.
영화 ‘해피 아워‘는 봐야지 생각만 하고 구매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5시간, 예전에 구매한 ‘화이와 알랙산더‘도 4시간이고, ‘고령가소년 살인사건‘도 4시간이다. 둘 다 보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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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코드를 읽지를 못 하니.
과일, 너무 비싸다.
빵도 비싸다.
시급이 올라도 인건비만큼 싼 것은 없다.





 부산한 출근 시간 직후 수빈이 거대한 상자를 실은 카트를 끌고 나타나더니, 마치 전쟁에서 귀환한 영웅처럼 상자를 열어젖히며 "여러분, 도착했습니다. 백년전의 신선한 산딸기!" 하고 외쳤다. 토종 과일복원 프로젝트로 복원한 재건 이전의 산딸기였다. 연구실에서 소량으로만 기르다가 대량 재배로옮겨 성공한 것을 수확해서, 드디어 오늘 첫 시식을 위해 가져왔다는 게 수빈의 설명이었다. - P25

아영도 산딸기 앞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연구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커다란 상자 한가득 처음 보는 산딸기가 담겨 있었다. - P25

수빈이 바구니에 산딸기를 가득 담아 테이블 옆 개수대에서 씻어 왔다. 이동식서랍장 위에 바구니가 놓였다. 우쭐해 보이는 수빈의 시식 허가가 떨어졌다.
"자, 한번 먹어볼까요?" - P26

"저……… 맛없어요?"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박소영 팀장이 조금 난감한 듯 말했다.
"음, 산딸기가 원래 떫은맛이 나나?"
아무도 대꾸해주지 않았다. 다들 수빈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뒤, 참았던 말들이 하나씯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 P26

"21세기 사람들은 우리랑 입맛이 달랐나보죠. 그땐 이런 걸좋은 과일로 쳤나봐요."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 21 세기 사람들 무시하는 거예요? 이건 무조건 농림청에서 잘못 키웠어요. 백 퍼센트."
"맞아. 제대로 키운 거 맞나 확인 좀 해보라고 해."
"수빈 씨가 샘플로 먼저 키워보고 보낸 거잖아요." - P27

산딸기 맛의 진실을 두고 결론 없는 논쟁이 시작되자, 수빈은 결국 산딸기를 몇 알 먹어보더니, 실망한 표정으로 상자를 재차 확인했다. 다들 상심한 수빈을 위로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산딸기가 담긴 상자를 자리로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 P27

"아니에요. 이거 슴슴하면 안 되고요, 달아야 하는데.…수빈은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괜히 말을 덧붙였다가는 더실망하게 만들 것 같아서 아영은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섰다. 옆에서 지켜보던 윤재가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었다. - P28

그런데 첫해 복원한 오렌지와 밀감의 교배 품종인 제주금향이 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연구센터의 재정과 명성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그 이후 한동안 수많은 연구원들이 동원되었는데, 많은 프로젝트들이 그렇듯이 품종 복원 사업 역시 난발성성공으로 그쳤고, 지금은 막내 연구원인 수빈에게로 떠넘겨져 수빈만 실컷 고생을 하고 있었다. - P28

데이터 처리 프로그램이 초안을 자동 작성해주기는 하지만, 보기 좋게 다듬으려면 지금부터 밤을 새워야 할판이었다.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은 연구 실적을 평가하는 윗선들과는 견해가 달라서, 식물 연구자들에게나 흥미를 끌 만한 하찮은 식물들에 ‘중요‘ 표지를 마구 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생물자원 평가는 전부 아영이 수작업으로 다시 해야 했다. - P29

"이건 진짜 특이하게 생겨서 복원해보고 싶은데, 뿌리의 구조가 엄청 독창적이거든요. 그런데 갖다 쓸 말이 없어요. 뿌리의구조가 독창적이다. 이렇게 쓸 수도 없고."
"그럴 땐 역시 ‘생물다양성‘이지. 생물다양성이 우릴 구원할거야. 더스트 종식 이후 가장 먼저 재건된 지역도 생물다양성이 잘 보존된 지역이었다. 뭐 이런 얘기라도 써놔야지. 더스트 폴이 또 터질 수도 있다고 겁도 좀 주고." - P30

샌드위치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싱거운 산딸기를 주워먹으며 오후 내내 작업을 했더니 겨우 보고서 초고가 완성되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수십 번씩 보다보면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충혈된 눈을 깜빡이며 아영은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식물팀 전체에 공유했다. - P31

잡무를 처리하며 느긋하게 기다리려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다가, 아영은 윤재와 박 팀장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같은 기사가 떠있는 것을 보았다.

강원도 해월, 폐허에서 유해 잡초 이상증식ㆍㆍㆍㆍㆍㆍ 인근 마을 민원 쇄도

해산림청과 회의한다는 일이 저건가? - P31

다음날 아침, 아영은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인 바이오플라스틱 상자 두 개를 보았다. 상자 하나는 크기가 꽤 컸는데, 흙이 묻은 뿌리가 입구로 삐죽 튀어나온 갈색 종이봉투가 담겨 있었다.
다른 하나에는 한줌 정도의 흙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 P32

옆에서 스크린을 들여다보던 윤재가 지듬 자리를 비운 강 소장 목소리를 흉내 내며 "어머, 성실하게 초고를 다 작성한 연구원이 아영씨밖에 없지 뭐예요"
하고 아영을 약올렸다. 손빠른 사람이 더 많이 일하게 되는 조직의 불합리함이란. - P33

"뉴스 제목은 지나가면서 봤는데, 찾아볼게요."
윤재가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산림청에서 분석해 왔는데 이상한 점이 많아서, 혹시 자기들이 원인을 못 찾고 있는 건 아닌지 크로스체크를 좀 해보고 싶다는 거야. 거기서 우리한테 뭘 시키겠다. 이런 건 아니고 말 그대로 도움 요청이지. 되도록 이번 주까지 분석 끝내서 보내주면 좋대."
"이번 주까지요? 이번 주가 이틀 남았는데요?" - P33

아영이 스티커를 뜯어내고 상자를 열어젖히려고 하는 순간윤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조심해, 조심, 그거 맨손으로 만지면 안 돼."
움찔한 아영의 손이 상자 위에서 멈췄다.
"피부에 닿으면 엄청 간지럽고 따끔해. 나도 어제 미팅 갔다가 처음 알았어. 장갑 꼭 끼고 팔 걷지 말고."
윤재가 소매를 약간 걷어 아영에게 보여주었다. 손목 부분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 P34

 한국에서 흔히 보이던 자생식물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무시한 식물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원래 식물의 무시무시함이라는 게 외관으로는 판별불가능한 것이기는 했지만.
"외래종이죠? 한국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요."
"다들 그렇게 추정하는데, 일단은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아.
찾아보면 재건 이후에 한국에서도 몇 번 증식했다는 기록이 있더라고 언제부터 자리를 잡은 건지는 모르겠어." - P35

"생물 테러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잡초로 테러를 해요? 그건 음모론 같은데."
"그거야 두고 봐야지. 음모론 제일 좋아하는 건 아영 너잖아?"
윤재가 놀리듯 하는 말에 아영은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 P36

"정말 과하게 증식했네요. 이상해요."
"그렇지. 네가 좋아하는 이상하고 위험한 식물이야."
아영은 고개를 돌려 상자 속의 덩굴식물을 힐끗 보았다. 일단겉으로는 너무 평범해 보이는 식물일 뿐인데,
"그러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연구원님."
윤재는 아영의 어깨를 툭 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 P37

그날 오후 내내 아영은 모스바나의 줄기와 잎, 뿌리를 각각 나누어 화학 처리를 하고, 분석단위별로 담고, 분석 장비에 넣을수 있게끔 정제해서 샘플을 준비했다. 장비 스케줄을 보니 정규근무 시간에 하려다간 예약을 못 잡을 것 같아서, 밤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야간 실험실 사용 허가서를 써주며 박소영 팀장은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 P37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스트레인저 테일즈‘에 접속한 전술관에 가까웠다. 아영의 비밀스러운 취미였지만 윤재에게 들킨이후로는 늘 놀림거리가 되고 있었다. 괴담과 음모론의 세계 아영은 언제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것에 끌렸다. - P38

물론 어디까지나 취미에 불과하다고, 아영은 스스로 선을 그었다. 과학자로서 아영은 괴담이 대부분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괴담이라는 것들은 대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현상을 공포와 미스터리로 얼버무리는 이야기다. 딱히 창의적인 발상의 씨앗이 되지도 않는다. 읽고 나면어딘가 으스스하고 찝찝한 기분이 드는데, 그 중독적인 상태가 또 다른 괴담들을 읽도록 이끌 뿐이다. - P39

‘악마의 식물‘이라고 이름 붙은 것치고는 그저 성가신 식물에 가까웠다. 좀더 살펴보니 해외에서 모스바나가 악마의 식물로불리는 건 식물 자체의 유해성보다는 모스바나에 입혀진 이미지 때문인 것 같았다.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 후기, 그리고 재건 직후의 빈곤한 시대에 가장 번성했던 우점종dominant species 이었다. 당시에는 세계 어디에나 모스바나의 덩굴이 가득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불행한 기억, 혹은 겪어본 적도 없는 시대의 절망과 이 식물을 연관 짓는 것인지도 몰랐다. - P41

 모스바나는 재건 직후에는 지구상의 전 대륙에 퍼져 있을 정도로 엄청난 확장성을 자랑했지만, 생태계 다양성이 회복되면서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급격히 밀려났고,
현재는 일부 지역에 정착한 사례 외에는 흔히 발견되지 않았다.
그만큼 한번 보이면 ‘왜 이게 갑자기 나타났지?‘ 하는 의문을 생기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 P41

 다만 작은 소득이라면 해외에서도 모스바나가 성가신 식물로 여겨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정도 어쩌면 해월의 모스바나 이상 증식은 그 자체로 특별히 놀랍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세계 각지에서 흔하게 반복되어온 일일 수도 있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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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너무 싫은 날이다.

『사회계약론』은 게다가 하나의 시민종교의 묘사로 끝맺고 있고 또 거기서 루소는 반대뿐만 아니라 중립까지도 용납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선구자가 된다. 사실루소는 현대에 있어 시민적 신앙을 선언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리고 루소는 가장 먼저 시민사회에서의 사형을 정당화하고 주권자의 왕권에 대한 신민의 복종을 정당화한다.  - P208

 이 신비로운 개념은 생쥐스트가 체포되는순간부터 단두대에 오르기까지 지킨 침묵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개념을 제대로 전개한다면 스탈린식 재판에 희생된 피고들의 열광 또한 설명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 P208

1789년 혁명이 "성스러운 인류"¹⁰⁸와 "우리 주이신 인류¹⁰⁹가집권하는 원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실격된 주권자가 사라져야 한다. 사제-왕을 살해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인정받게 된다. 그 새로운 시대는 지금껏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108) 베르니오의 말 (원주) 피에르 빅튀르니 베르니오(Pierre VicturnienVernigaud, 1755-1793), 지롱드 당원들의 지도자들 중 하나로 간주되어 처칭되었다.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혁명은 사투르누스와 같은것이다. 그것은 그의 자식들을 잡아먹는다."
109) 아나카르시스 클로츠의 말(원주) - P209

그러나 누가 이 일반 의지를 해설하고 누가 판결을 내릴 것인가? 그것은 국민의회다. 국민의회는 그 기원으로 보아 이 일반 의지를 대표하고 있으며, 계시받은 공의회¹¹²로서 이 새로운 신성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회의 판결은뒤이어 인민의 비준을 받아야 할 것인가? 국민의회 내 왕당파의 노력은 결국 이 점을 겨냥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왕의 생명은 이처럼 부르주아-법관들의 논고에서 벗어나 적어도 인민의 자발적 감정과 동정에 맡겨질 수도 있었다.


112) 가톨릭교에서 교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최하는 주교들의 회의.
- P212

 만인이 용서한다 할지라도 일반 의지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민들도 전제 군주의 범죄는 지워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희생자가 법에 따라 자신의 제소를 철회할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이것은 법학이 아니라 신학이다. 왕의 범죄는 동시에 지고한 질서에 반하는 죄가 된다. - P212

생쥐스트의 연설은 단두대로 통하는 출구만 남겨 놓고 왕에게 모든 출구를 하나씩 닫아 버리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 계약론』의 전제들을 받아들인 이상 과연 이러한 본보기는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만 비로소 "왕들은 사막으로 달아나고 자연은 권리를 되찾으리라. 국민의회가 보류 투표를 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고, 루이 16세를 재판에 회부할 것인지 아니면 그의 안전에 대한 보장령을 내릴 것인지 아직 예심하지 않았다고 말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 P213

1793년 1월 21일, 사제-왕이 살해됨으로써 의미심장하게도루이 16세의 수난이라고 불렸던 사건은 종결된다. 분명 약하고 선량한 한 인간의 공공연한 살해를 프랑스 역사의 위대한한순간으로 내세웠던 일은 혐오할 만한 추문이다. 그렇다고이 단두대가 절정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어림도 없다. 그러나적어도 왕의 심판이 그 원인과 결과로 보아 프랑스 현대사로넘어오는 전환점이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것은 프랑스 역사의 신성 상실과 강생한 기독교 신의 사멸을 상징한다. - P214

혁명가들은 복음서를 내세울 수 있다. 사실 그들이 기독교에 무서운 타격을 가해 기독교는 아직도 그 타격으로부터 재기하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숱한 자살과 광란의 경련하는 상황들이 뒤따른 왕의 처형은 가담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의식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 P214

덕의 종교

그러나 이렇게 옛 주권자를 처형하는 종교는 이제 새 주권자의 권력을 확립해야한다. 그 종교는 교회를 폐쇄한다. 따라서 다른 하나의 사원을 세우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루이 16세라는 사제에게 한순간 끼얹어졌던 신들의 피는 새로운 세례를 예고한다.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대혁명을 일컬어 악마적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의 이유와 의미를 안다. 그렇지만 대혁명을 연옥이라고 부른 미슐레의 말이 한층 진실에가깝다. - P216

만약 인민이 자유롭다면 인민은 오류를 범할 리 없다. 왕이 죽고 낡은 전제주의의 사슬이 풀린 이상 인민은 그러므로언제 어디서든 진리이고 진리였고 진리일 것만을 표현하게 되리라 인민은 세계의 영원한 질서가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알기 위하여 자문을 구해야 할 신탁인 것이다. "인민의 소리는곧 자연의 소리다.(Vox populi, vox naturae.)" 영원한 원리들은우리의 행동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니 그것은 곧 ‘진리‘요 ‘정의‘요 ‘이성‘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신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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